히피의 자화상
이송우 시인
- 구십년대 얼터너티브 록 스타일로 강남좌파를 연주할 것
신축 중 건물 옥상 나무판 사이에 J를 끼워 넣고 랩으로 칭칭 감아서 시멘트로 밀봉했어 신음 소리를 내면서도 J는 의연했지 시멘트 반죽 속에 놈들을 유기하는 일이 탄로나자 J는 자신의 죽음 역시 같은 방식이길 바랐지 우리가 수사선상에 오르지 않도록 J는 목수답게 단도리를 치고 싶었던 거야 혹시 J 봤나요 애인이 실종 신고를 했는지 제복입은 경찰들이 오갔어 나는 건물에서 빠져나갈 궁리를 했는데 라만차의 풍차로 돌격하듯 A가 먼저 건물에서 뛰어내렸지 이봐 나는 고소공포증이 있다고 줄을 타고 내려오다 떨어져 나는 다리가 부러졌어 빗물이 상처까지 씻어주고 있을 때에서야 나는 A가 사라졌음을 알았지 억억 내 울음 소리는 울리지 않았고 M은 장어처럼 긴 성기를 내 항문에 집어넣으며 내가 아픈지 걱정했어 지린내 나는 골목에 누워 쾌락에 몸서리치며 궁금했지 A가 왜 실종되었는지 이건 음모야 그가 실수할 리는 없잖아 구십년대풍 버클리 거리는 웃통을 벗은 히피들이 막노동을 하며 행복한 웃음을 컹컹 짖어댔지 처음인가 어디에서 왔나 자네는?
나는 죽어가던 Jesus의 참을성과, 잃어버린 Alonso와, 할 일 없는 Marx와의 거친 섹스를 떠올렸지 애인이 틀어주는 엘피판에서 우리가 녹음한 곡들이 흘러나왔고 나는 M의 소리에 번쩍 정신을 차렸지 잘 지냈어 너랑 구색 맞추려 양복 입고 오려고 했는데 말야 멋쩍은 웃음을 짓는 M에게 정찬을 사고 돌아섰지 함께 먹을 필요는 없었어 그가 다시 날 찾아오지 않을 거란 예감에 내 정장은 높은 휘파람 소리를 내며 울었어 기억나니 A, 거대한 트럭을 몰고 우리를 쫓던 놈들 산산조각으로 부서진 건물 입구를 상처투성이 A의 손길이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어 잘 살고 있군 미래의 A가 양복입은 모습도 꽤나 어울리는 걸
백미러는 없다
- 엄효섭의 노래
92년식 스즈키 GSXR 1100, 시속 320km의 속도에서 시간과 공간은 한점으로 만나지 뒤를 돌아보면 안돼 삶과 죽음의 경계가 흐릿해질 때까지 추월을 위해 사는 오토바이는 작은 부대낌에도 뒤집히니까
백미러는 없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남은 이유지 부딪히지 않으려면 치고 나가야 해 아주 느린 스쿠터가 도로 위로 굴러 목뼈가 부러지는 걸 봤어 질주하지 않는 것들은 여기를 떠나야 해 눈물 날리지 마라 실드Shield 위 달리는 바람 네 폭주biker의 이름은 남을 거야
구타유발자들*
너의 주먹은 예리하지 않아서
모래를 때리는 파도처럼 철썩철썩
내 얼굴에 달라붙었다
뼈들이 부서졌다 붙었다
그때마다 세상이 달라졌는데
주먹을 달고 다니는 얼굴이
너무 무거워 돌아보았더니, 글쎄
너는 벌벌 떨며
- 장난이었잖아
- 그래도 되는 줄 알았어
그랬군요 잠시만요
너의 뼈들이 부서졌다 붙었다
어때요
내가 좀 달라져 보이나요
*원신연 감독, 한석규 주연의 2006년 개봉 영화
약력
이송우 시인
이송우. 2018년 《시작》 등단. 시집 『나는 노란 꽃들을 모릅니다』, 『신세기 타이밍』, 미얀마 혁명시 모음인 공편 시집 『나의 투쟁 보고서』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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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 시대 왕성한 활동과 신선한 시각으로 시대와 문학을 힘차게 견인하고 계시는 이 시인님의 값진 시편들 감사합니다~
항상 응원해주시고 따뜻한 격려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