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으로 나와
전창수 지음
1. 뻉소니
2. 난, 어쩌면, 이미 로그아웃되었는지도 모른다
뺑 소 니
1
버리지 말아야 할 것들까지 모두 버리고 왔다던 어느 시인의 말처럼 난, 어느날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걸 버리기로 했다. 어쩌면 당시의 나는, 가장 적절하다 싶은 판단 – 내가 속한 사회집단, 가정, 당시 나의 주변상황을 고려해 보았을 때 – 그런 것들 때문에, 낯선 나를 택하는데 가장 현명하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노동자들의 파업은 연일 계속되었고, 국가 경제는 최악의 경우까지 이르렀다. 이른바, 불황이라는 말이 연일 계속 터져나올 때였다.
그나마 임신 중인 아내는 겨우겨우 힘든 몸을 이끌고 공장에를 다녔고, 내가 다니던 공장은 공황의 여파가 몰아쳐, 감원 바람이 일고 있었다. 그 감원대상 1호가 바로 나였다. 파업이 일어나면, 어김없는 주동자는 나였었고, 이번 파업은 감원바람과 함께 일어나는 것이라, 나는 해고되기 전에, 먼저 사직서를 제출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이번 파업 사태는 불황과 동시에 일어나, 파업하는 업체들은 속속들이 부도로 쓰러졌다. 그러한 사태를 관찰하던 공장 간부는 나를 주시했고, 툭하면 “이봐, 만약, 감원사태가 빚어지면, 1차 감원 대상이 자네란 걸 아나? 똑바로 하라구!” 간부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럴 때면 난, 슬쩍 그 간부를 쳐다보몬, 그전에 내가 만들 테니 걱정마쇼, 이렇게 냅소 소리질러 버리곤, 하던 일을 계속한다. 그것은 농담 반, 진담 반의 이야기였지만, (아니, 농담보다는 악담에 가까웠다고 하는 쪽이 더 어울릴 것이다) 이제는 순수한 진담이 되어 버린 것이다. 사직서를 제출하고 아니, 특별하게 사직서라고 할만한 것도 없다, 그냥 나 그만둬요! 하고 나와버리면 되는 것이다) 공장을 나서면서, 반장은 나를 고소한 듯이 쳐다보았다. 후후 결국은 제발로 걸어나가는군? 반장의 말에, 푸하, 두고보슈, 이 빚은 꼭 갚아줄테니. 내 눈의 살기를 느꼈는지, 반장은 눈을 돌려, 자자, 일들해야지, 뭐하나? 하며 딴청을 피운다. 그런 반장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니, 충동적 구매, 아니, 충동적 기질, 아니, 충동적으로 반장의 얼굴에 칼을 꽂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 숨이 가쁘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나는 손을 떨었고,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이면, 숨이 가빴다. 가끔, 충동적으로 부엌으로 가서 칼을 들어보곤 한다. 아내는 그런 나를 보고, 놀라 소리치고, 그런 후에야 나는 정신이 든다. 나는 그렇게 아내를 괴롭혔다. 아내를 처음 만난 그때는 모기업 회사에 정사원으로 막 입사했을 때, 아내는 나보다 좀더 먼저 들어와 일을 하고 있던 터라, 나는 선배 선배 하며, 그녀를 쫓아다녔다. 그 후 한달쯤 지났을까? 나는 아예 그녀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아침에 출근할 때부터 시작해서 퇴근할 때까지. 그리고 그녀가 집을 나설 때부터 집에 들어갈 때까지, 나는 그녀가 밖에 있는 동안은 하루종일 같이 있었다. 이보세요? 언제까지 쫓아다닐 거에요? 이제 그만 좀 해요! 그러나, 나는 그말에 아무 느낌없이 대답했다. 당신이 집에 안전하게 들어와야 제 마음이 편해져요. 그런 나를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던 그녀는 내가 따라오거나 말거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녀의 집까지 가선, 힐끗 쳐다보고는 흥하고 콧방귀를 끼고는 들어가 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또 한달이 흘렀나 보다. 아내는, 오늘또 쫓아오신다면 전 집에 들어가지 안헥ㅆ어요, 하고 말하고는 한강 시민 공원으로 가더니, 한강 앞에서 소리를 한번 꽥 질렀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나는 고막이 터질 듯한 그 소리에 얼떨결에 귀를 막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휘유, 이제 시원하네. 저를 밤새도록 길거리에 버려 둘 계획이라면 계속 쫓아오세요! 그러더니, 휙 가버린다. 나는 그녀가 소리 지르던 그 한강을 바라보았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깜짝 놀란 그녀가 나를 쳐다보았다. 이보세요, 오늘은 따라가지 않겠지만, 당신이 들어갈 시간에 맞춰서 전화하죠. 걱정되니까요. 그녀는 경멸의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는 홱 고개를 돌려 가던 길을 걸었다. 그녀의 멀어지는 뒷모습에 왠지 씁쓸해지는 나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을 하며, 한참 동안을 그렇게 소리를 질렀다. 사람들이 나한테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면, 성악 연습 중이에요, 라고 얼버무리곤, 한참동안 그렇게 소리를 지르다가 문득 지금쯤, 그녀가 집에 들어왔을 거란 생각을 하며, 근처의 공중전화를 찾아,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때르릉, 때르릉... 세 번 째 울릴 떄까지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나는 다시 5분 동안 소리를 더 지른 다음, 다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번엔 전화가 채 울리기도 전에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안심이 된다. 집에 무사히 도착하셨군요? 이만 끊습니다. 아아아아악~ 전화기 저편으로 그녀의 놀란 눈이 보이는 듯했다. 찰칵. 집에 가려다가 다시 강변에 섰다. 아아악~ 이제 목이 제대로 소리가 나질 않는다. 휘유... 숨을 헐떡이며 총각냄새 나는 조그마한 자취방으로 돌아온 나는, 가장 따뜻한 한쪽 구석에 몸을 웅크려, 그 어느 때보다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2
사표를 낸 날, 아내는 아무 말 하지 않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여보, 그럼 다른 직장은요? 나는 아무 말 하지 않고 아내를 바라보고, 아내는 아무 말 하지 않고 나를 바라보고……
회사에 출근했을 때, 부장은 나를 부르더니, 자네 오늘은 출장 좀 가야겠네, 했지만, 나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입만 벙긋하며, 고개만 끄덕였다. 부장은 이사람아, 귀먹었나? 출장 갔다오래니까 아니꼽나? 아닙니다, 라는 말이 목구멍에서 막혀버렸다. 이사람 보게? 왜 대답이 없어? 나는 손으로 입을 가리키며, 목소리가 안나온다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부장은 그래, 나같은 부장이란 말하기 싫다 이거지? 알았어, 다른 사람 알아보지. 들어가게. 이거, 영 내가 사람을 잘못 봤구만. 나는 힘없이 내 자리로 돌아가, 내가 하는 일에 열중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으려니, 사장님이 나를 찾는다고 한다. 사장이? 일개 사원을? 사장실로 불려갔을 때, 사장은 아무 말없이 하얀 봉투를 내밀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믿네. 해고당하는 것보단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하는 ㅍ녀이 훨씬 낫겠지? 자네를 위한 배려라면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보네. 가보게. 나는 아무 대꾸도못하고, 사무실로 돌아와, 내 책상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아내는 그때 말했다. 아니, 지금 모하세요? 모하긴요? 짐 싸잖아요. 그런데, 이 소리도 입 밖으로 새어나오지 않는다. 나는 메모지를 한창 집어들고 거기에 갈겼다. 목이 쉬어서, 회사에서 쫓겨나요. 그녀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황당하다는 듯이 말한다. 그러면, 전 어쩌구요? 나는 갑자기 뒤통수를 맞은 듯한 기분이 들어, 방금 뭐라고 했어요? 제가 잘못 들었나요? 뭘 어째요? 당신은 당신 갈길 가면 되는 거지요. 이제, 맘 편해질텐데. 왜 그런 얼굴을 하세요? 이해할 수 없군요. 전 떠나면 그만이지만, 당신은 남아서 행복하게 사세요. 그러자, 그녀가 놀란 듯이 말한다. 멀쩡하네요? 나는 당황해서, 뭐라구요? 하니, 정말 말이 새어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저 그만 가요. 안녕히 계쎄요. 그러자, 그녀가 다시 잡는다. 이보세요. 목이 쉬었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한다는 건, 뭔가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요? 아니요, 문제 없어요. 안녕히 계세요. 난 내 짐을 싸들고 회사를 나왔다.
- ......그러다가 우리는 잠이 들었다. 자다가 무슨 소리에 잠을 깼는데, 옆에서 아내의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다. 여보 , 안 자? 아내가 대답한다. 우리 아기는 어쩌죠? 이제, 저도 공장일 힘들어져서 그만둬야 할 것 같은데. 우린 그럼 뭘 먹고 사는 거죠? 걱정마, 다 잘될거야. 그런 영화같은 이야기는 집어치워요. 당장 현실을 보라구요. 모아 놓은 돈이 있어요? 당장 다닐 직장이 있어요? 나는 그런 아내의 손을 꼭 쥐어주었다. 마치, 영화에서 하듯이 그렇게 말이다.
회사에서 쫓겨난 다음날, 나는 내 자취방에서 뒹굴다가 배가 고파 라면을 끓여먹을까 그냥 한숨 더 잘까 고민하다가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일어나 옷을 입었다. 아니, 웬일이세요? 아내가 나의 앞에 있었다. 당신의 뒤를 따라왔어요. 나는 휘둥그래진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아니, 당신도 목이 쉬었나요? 그녀는 살짝 웃더니, 그게 아니라요, 평소부터 부장은 당신을 못마땅하게 생가했어요. 글쎄, 뭐라는지 아세요? 제가 어떻게 목이 쉬었다는 이유로 사람을 자를 수 있냐고 했더니, 그럼, 너 나랑 하룻밤 잘래? 그럼, 다시 복귀시켜 주지 이러지 않겠어요. 그래서, 저는 부장의 뺨을 냅다 갈겼죠. 그리고 사장에게 가서, 그 사실을 말했지요. 사장은 아무 말 안 하더니, 하얀 봉투를 꺼내더니. 이거면 되지? 하는 거에요. 나는 사장의 뺨도 냅다 갈기고, 그 봉투를 낚아채 가지고 왔어요. 그녀의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내 앞에 있는 게 현실인가 꿈인가 생각해 보는 중이었다. 이보세요? 정신차려요? 내 말 들려요. 이제 귀까지 먹었나 봐? 이봐요!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난 그 소리에 놀라 정신을 차려 그녀를 쳐다보았다. 꿈은 아니구나. 주인 아줌마가 놀라 문을 두드렸다. 이봐, 총각, 뭔 일 있어? 아니에요, 제 애인인데, 좀 화가 나 있거든요. 애인? 애인이 있었구랴. 좋을 때야, 처음 온 게지? 오늘 같은 날은 씨암탉을 잡아서 푹 고와야 되는 건디. 대신 양념통닭이나 한 마리 시켜줄테니, 둘이 같이 먹도록 하지? 총각, 아직 아침 안 먹었지? 사내가 그렇게 부실해서 사내 구실 하겠나? 아침마다 매일 굶재? 눈치보지 말고, 내한테 밥 달라그래. 식은밥이라도 안 주겄나? 다 정에 죽고 정에 사는 건디. 그럼, 시킬 테니, 군말 말고 먹게. 아주머니는 내 말은 듣지도 않고 전화통으로 조르륵 달려가더니, 양념통닭 한마라만 배달해 달라고 한다. 아주머니는 다시 방문을 두드리더니, 총각 문열어도 되지? 아주머니는 대답은 듣지도 않고, 문을 열더니, 아구, 색시가 무척이나 예쁘나 그랴, 색시 이제 화 풀렸지? 시켰응꼐, 가더라도 그거 먹고 가더라구. 아주머니의 말에 아내는 재빠르게 대답했다. 아주머니, 걱정 마세요. 저 오늘부터 여기서 살까 생각 중이에요. 음식도 해드리고 그럴께요. 나는 정신없이 아주머니와 그녀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이게 대체 무슨 소린가 하고 생각다하다 아구 모르겠다 난 꿈인지 현실인지를 아예 분간 못하게 되었다. 그래도 간신히, 아주머니 감사합니다, 라는 인사는 남길 기력은 있었나보다. 아주머니가 나가고 나자, 그녀는 수줍은 듯 말했다. 저희 집 전세값 빼고 나면, 몇 달간은 먹고 살 수 있을 거에요. 그동안 어떻게든 다른 일자리 마련해야 돼요. 그리구요, 우리 내일 당장 혼인신고 해요. 나는 눈만 껌벅거리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 상황 속에서도, 머리 속에 스쳐가는 생각은 있었는지, 부모님은요? 하고 물었다. 사실은, 전 혼자 살아요. 아니, 혼자는 아니지만, 혼자인 거랑 똑같아요. 차차 알게 될 거에요. 그보다도, 제 의견에 동의하시죠? 난 이건 분명 꿈일거야 라는 생각을 하며, 그녀의 의견에 아니요, 찬성. 이라고 말했다.
3
노조파업은 점점 확산되어갔다. 1997년 1월 15일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총파업을 결의할였으며, 노조에 속한 대부분의 사업장은 이에 동참을 선언했다. 일본에서 1월 15일은 성인식이 치루어지는 법적 공휴일이었다. 정부는 이에 대해 공권력을 투입을 유보하고, 대화국면으로 우유부단한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야당 역시 강경 대응보다는 눈치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걱정마, 우리만 망하는 건 아니니까. 아내는 황당한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망하면 다같이 망하는 거지, 뭐. 그러면, 집없는 사람이 더 많아질테니, 집없는 사람이 서민이 되겠지. 그러면, 이 나라 사람들은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봄 살지는 않겠지. 당장 잠잘 곳도 없고, 먹고 살 길이 막막한데, 남의 눈치나 보고 다닐 여력이나 남겠어? 그러면, 이제 우리는 떳떳하게 나가서 말하는 거야. 우리에게 식량을 달라! 우리는 떳떳하게 권리를 주장하는 거야. 우리에게 최소한의 식량을 달라! 우리는 최소한 인간이니ᄁᆞ. 여보, 일본에선 오늘이 성인식 날이래. 당신 성인식 날은 어땠을까? 난 아마 그날을 잊지 못할거야. 친구들과 술을 마셨지. 거기엔, 형들도 있었고, 누나들도 있었고, 여자애들도 있었어. 그날은 왜 그렇게 술이 잘 받았는지 몰라. 평소엔 소주 한잔 먹고도 얼굴 빨개져서 몸을 못 가누었는데. 아무튼, 그때는 정말을 술을 한참 마셨어. 그래도, 아무렇지 않은 거야. 그래서, 계속해서 술을 마셨지. 그런데, 어느 순간에 보니깐, 여자애들이 여자애들로 보이는 거야. 무슨 소리냐구? 평소에 보던 애들은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그날은 그 애들이 왜그렇게 예뻐 보일까? 그리고선, 필름이 끊겼지. 다음날 애들이 나한테 그러더라구. 너 어제 기억나냐구. 아니, 전혀. 애들은 키득거리며 웃었어. 난 영문도 모른 채 형들을 찾아갔지. 어제 대체 무슨 일 있었냐구. 너, 어제 큰 일 날 뻔 했다. 하마터면, 네 동정을 바칠 뻔 했어. 이게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구 따지니깐, 형들이 그러더라구. 내가 그랬대, 오늘 나랑 잘 사람, 손들어봐! 이러니깐, 아무도 손을 들지 않는데. 그중에 제일 못생긴 애가 일어나더니, 너 나랑 잘래? 하니깐,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와 그러더래. 그런데, 난 일어나자마자 그 자리에 푹 쓰러져 버렸대. 그러니깐, 그 못생긴 여자애가 그랬다는 거야. 아쉽다. 숫총각 하나 따먹을 수 있었는데. 형들은 그 말을 듣고 황당해 했는데, 여자애들은 그냥 키득키득 웃기만 하더래. 그게 사실일까? 내가 기억을 못하니까,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난 그게 사실이라고 믿고 싶지 않아서, 그냥 잊어버리고 살지. 그런데, 성인식 날만 되면, 그 생각이 나곤 하는데, 오늘은 왜 하필 일본의 성인식 날일까? 그 소식을 내가 어디서 들었지? 여보, 듣고 있어?
듣고 있어요. 매년 한번씩 듣잖아요. 그런데, 올해는 두 번은 듣겠네요. 그런데, 들을 때마다 재미있군요. 아직까지도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겠다구요. 아마, 당신은 영원히 알 수 없을 거에요. 누군가 당신에게 ‘그때 그거 우리가 지어낸 말이야’라고 하지 않는 한 말이죠. 그 이야길 듣고 보니, 저의 성인식 날도 떠오르네요. 성인식 날 가장 받고 싶은 건 뭐였을까요? 아마, 그때는 꽃을 받고 싶어 했을 거에요. 그리고 달콤한 키스? 이건 너무 식상했어. 그래서, 키스는 싫었어요. 남들이 해보지 못한 걸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전 집에다 말했죠. 성인식 날, 집을 나가게 해 주세요. 뭐야? 이년아? 엄마는 말했죠. 집을 나가다니? 전세 하나만 내줘요. 나머지 생활비는 제 다 댈 테니깐요. 안돼! 처음부터 된다는 부모님은 없죠. 그렇게 몇날 며칠을 엄마를 협박했죠. 계속 안된다고 하면 할 수 없죠. 어느날 쓰러진 나를 발견한 엄마, 이년아? 너 뭐야? 그거 안된다고 자살을 시도해? 이년이 죽을라고 환장했네? 사실, 듣고보면, 엄마의 말은 한편의 코미디죠? 이년이 죽을라고 환장했네? 자살을 시도한 사람이 죽을려고 환장한 건 당연한 거 아니겠어요? 그런데, 그건 결코 코미디나 개그의 종류는 아니라고 다들 그려죠. 그건 분명, 치사량의 수면제는 아니었거든요. 그저, 스트레스가 쌓여서, 며칠만 잤으면 좋겠다 싶어서, 죽지 않을 만큼만 수면제를 먹어버렸는데, 제 말이 무슨 뜻인가 의아해 하던 엄마가 조금 지나친 걱정을 했나봐요. 덕분에 전세방을 얻을 수 있었고, 혼자만의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죠. 대신, 금기한 건, 남자든, 여자든, 절대로 집안에 들이지 않았어요. 항상, 집안에 누군가 있는 척 한거죠. 무언가가 겁난다거나 두려운 건 아니었어요. 그저, 이렇게 마련한 나만의 공간이 깨어질까봐, 그것이 싫었던 것 뿐이죠. 전 혼자 있는 게 좋았거든요. 그런데, 전세방을 마련한 뒤, 얼마 뒤에 엄나는 돌아가셨어요. 교통사고 때문에요. 이놈의 뺑소니차를 빨리 찾아내야 되는데. 밤중에 길을 걷다, 차에 치었대요. 이놈의 뺑소니차를 빨리 찾아내야 되는데, 당신, 듣고 있어요?
<그런데 말이야, 그 뺑소니차를 언제쯤 찾아낼 수 있을까?>
<글쎄요, 어쩌면 영원히 못 찾을지도 모르죠.>
난, 어쩌면, 이미 로그아웃되었는지도 모른다
1.
“시버, 시버, 시버…”
나의 아들인 그 녀석은 연신 싫다는 표현을 하고 있었다. 뭐가 싫으냐고 물어봐도, 제대로 된 대답을 기대하기는 그른 저녁이었다. 이 녀석이 자꾸 왜 이러지? 내가 방송에 나온 게 싫다는 건가, 내가 싫다는 건가, 아니면 밥을 먹기 싫다는 건가? 나는 녀석에게 다시 물었다.
“아들! 싫은 걸 말을 해야지? 엄마가 잘 모르겠어서 그래.”
“시버, 시버, 시버…”
아들은 꺼져 있는 TV를 바라보면서, 차려놓은 밥은 쳐다보지도 않고 연신 싫다고만 했다. 도대체 이 녀석이 왜 이러는 걸까.
“아들? 밥 먹을 거야, 안 먹을 거야?”
“시버, 시버, 시버…”
도대체, 이 녀석이 오늘 왜 이러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녀석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밥은 안 먹을 거야?”
“머거 머거… 시버 시버…”
그러면서, 녀석은 밥을 흘겨넣은 채, TV를 계속 바라보았다.
“TV 켜줄까?”
“시버, 시버, 시버…”
아들 녀석은 계속해서 싫다고만 할 뿐, 그 이상은 말하려 하지 않았다. 아들은 계속해서 밥을 먹으면서 꺼진 TV만 바라볼 뿐, 더 이상의 어떤 표현도 하지 않았다.
2.
“오늘은 발달장애 아들을 돌보면서 10년을 살아온 공공이의 엄마 설상희씨를 모시고, 얘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설상희씨, 발달장애 아들을 벌써 10년째 돌보고 계시는데요, 힘든 점은 없으신가요?”
“제 아들인데, 힘들기는요. 아들이니까, 사랑스럽기만 하죠.”
“그래도, 발달장애 아들과 함께 사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거라는 생각은 드는데요?”
“아, 그러신가요? 오히려, 저는 아들을 사랑하기에 같이 있는 게 더 행복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사회자님은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요?”
“아, 정말로 아들을 사랑하시는군요. 제가 잘못 생각한 거 같습니다.”
생방송에서 발달장애 아들을 두고 있는 설상희씨의 방송은 그렇게 어색하게 종료되었다. PD는 빨리 다른 화면으로 돌리라고 재촉하였고, 설상희씨와의 인터뷰는 부랴부랴 마무리되었다.
3.
“공공이 엄마, TV에 나왔네?”
“어, 봤어?”
“근데, 인터뷰를 뭐 이렇게 빨리 끝냈어?”
“글쎄, 원래 질문하기로 되어 있는 게 있었는데, 시간관계상 여기서 생략한다고 하면서 빨리 끝내 버리네?”
“아, 그런 거지? 어쩐지. 너무 싱겁게 끝나 버려서.”
“싱거웠어? 인터뷰가?”
“아니, 방송이.”
“방송이, 왜?”
“많은 발달장애 어머니, 아버지들, 그리고 발달장애인 센터 원장님들께서 잔뜩 기대하고 계셨는데, 몇 마디 하고 끝났잖아? 너무 싱겁게 끝나버려서 아쉬웠대.”
“아, 그래? 인터뷰를 좀더 길게 하자고 말을 할 걸 그랬나?”
“아, 다음에 혹시 또 나갈 기회가 있으면 좀 길게 하자고 해.”
“아, 그래야겠네.”
4.
남편이 들어왔다.
“밥은?”
“먹었어.”
“먹었는데, 일찍 들어왔네?”
“배고파서.”
“저녁은 안 해도 돼?”
“아들 녀석은 먹었어?”
“아, 대충 먹었어. 계속 싫다고만 하네.”
“뭐가?”
“나도 모르겠어. 아까 엄마가 TV에 나온 걸 보더니, 그 다음부터 계속 싫다고만 해.”
“TV는 껐어?”
“응, 껐어. 자꾸 싫다고 해서 껐더니, 그래도 계속 싫다고만 하네. 뭐가 싫다는 건지 모르겠어.”
“그래? 왜 그러지.”
그런 다음, 남편은 말없이 옷을 갈아입더니, 자기 서재로 들어가려 했다.
“책 보려고?”
“아니.”
“그럼?”
“그냥 쉬고 싶어서”
“응 그래”
“나, 쉴게.”
“응.”
5.
“공공이 엄마, 오늘은 TV에 안 나와?”
“글쎄, 인터뷰는 하루로 끝나는 거 아냐?”
“출연료는 얼마나 받았어?”
“30만원.”
“에게? 고작 그거?”
“작은 건가?”
“어떤 사람은 인터뷰 한번 하면 3천만원도 받는다던데?”
“아, 그래? 작은 거구나.”
“그래, 다음에 또 나가게 되면, 출연료 좀 많이 달라고 해봐.”
“그래야겠네.”
6.
“아들, 오늘 또 왜 그래?”
공공이는 두 눈을 부릅뜨고 엄마를 쳐다보았다.
“시버, 시버, 시버…”
“도대체 왜 그래? 왜 자꾸 싫다고만 해?”
나의 신경질에 아들 녀석은 금세 눈물을 글썽거리시 시작했다.
“시버, 시버, 시버…”
아들 녀석의 눈물에 잠시 마음이 동하기도 했으니,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아들, 다음부터 싫단 말 하면, 엄마도 더 이상 아들하고 대화할 마음 안 생겨.”
그러자, 아들 녀석, 글썽이던 눈물을 터뜨려 버렸다. 그렇게 서럽게 울던 모습을 본 건, 내가 공공이를 본 이래 처음이었다.
7.
“그렇게 서럽게 울었다고?”
“밤새 울었는데, 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구. 말을 안 하니, 알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아침에 그냥 맛있는 반찬 해줬어.”
“그게 다야?”
“응, 다른 때보다 반찬에 더 신경을 썼어.”
“그랬더니?”
“한참 울던 애가, 반찬을 먹더니, 뚝 그치더라구.”
“그리고?”
“더 이상 시버, 시버, 시버… 이 소리를 안 해”
“왜지?”
“모르겠어. 도대체 얘 왜 이런 거야?”
“우리도 모르겠어.”
“난 지금까지 공공이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생각하면 정말 모르겠어.”
“그러게, 왜 그랬을까? 궁금하다.”
“공부를 좀 더 많이 해야 할 거 같아.”
“공부?”
“심리학 공부?”
“아니, 발달장애인에 대한 공부.”
“왜?”
“모르니까.”
“심리나 상담에 대해 공부해야 하는 거 아냐?”
“그런가?”
“아닐 거야. 발달장애인에 대한 책도 나올 거야.”
“그걸 본다고?”
“그래야 할 거 같아.”
“뭐가 맞지?”
“모르겠어.”
“일단, 공부를 해 보고 난 다음에 결정하자구. 뭘 공부할지는.”
“근데, 이거 같이 하자구?”
“싫어?”
“싫어.”
“넌 또 왜? 왜 공공이처럼 말하고 그래?”
“싫다는 게 공공이 같은 거야?”
“아, 아닌 거 같은데.”
“그러게.”
“그래서, 공부 안 할 거야?”
“난 안 해.”
“왜?”
“왜 싫냐고?”
“응.”
8.
남편이 출근하려고 서재에서 나오고 있다.
“밤새 거기 있었어? 거기서 잔 거야?”
“응.”
“왜?”
“그걸 말해야 돼?”
“말하기 싫어?”
“응”
“왜?”
“그냥.”
9.
“다들 나한테 왜 이러는 거지?”
“그런 일이 있었어?”
“응, 다혜는 안 와?”
“여기 있으면, 공부 같이 해야 할 거 같다고 자기는 오기 싫대. 공부 끝나거든 부르래.”
“그래?”
“응.”
“그리고”
“응”
“이 말 해서 미안한데.”
“응”
“우리도 공부 안 해.”
“왜???”
“하기 싫어서”
10.
아들이 두 눈을 부릅뜨고 나를 노려보다가, 이내 웃음을 보였다. 그러다가 또 다시 “시버, 시버 시버”를 하더니, 다시 “괘안아져쪄”라며, 괜찮다는 말을 하였다. 그러면서, 내가 하고 있는 요리를 빤히 쳐다보았다.
“오늘은 뭐 해 주까?”
“마싰는 거, 마싰는 거, 마싰는 거.”
“알았어, 맛있는 거 해줄게. 그럼, 맛있는 거 같이 찾아볼까?”
녀석이 연신 깔깔대며 냉장고를 뒤적거리고 있었다. 냉장고 속에는 앞으로 익혀가야 할 많은 요리들이 대기 중이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생각지 않기로 했다. 냉장고 안에서 들리는 소박한 소음들이 하나 둘 나의 마음에 들리고 있었다. 그렇지! 녀석, 그것 때문이었구나. 이제야 이해한 녀석의 마음이 내게도 들려왔다. 나는 또 하나의 결심을 하였다. 그 결심은 내게 공공이를 더욱 더 이해하게 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냉장고를 바라보는 나의 마음 한편에는 남편까지 들어 있었다. 공공이의 해맑은 웃음소리는 길게길게 이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