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부는 날에 배를 타러 그들은 그곳에 간다
양달준
바람이 검문하여 출항을 금지 당한 구릿빛들 조업에 차질이 생기면 방파제 같은 꽃마담 선술집은 저들이 거쳐가는 곳 하지만 바람은 그곳에도 분다 일기예보를 빗나간 치맛 바람
누가 저 비릿한 바람을 두고 바람불어 좋은 날이라 했던가 크라스에 바다를 퍼다 마셔도 모자랄 뱃사람들이지만 눈을 흘긴 마담의 알랑방구에 맛이가 끝장을 볼참이다 한물간 뽕작은 갈때까지 가보자며 삼각 스텝까지 질러댄다 그래 씨발 제대로 한 번 놀아보자 우리같은 뱃놈 들이 불알 빼면 뭐있어 배타는 일에는 선수라는 이가 마담에게 눈빛을 주며 좆팔 배는 무신 오늘 못타믄 사람꺼라도 타믄 탄건 똑같은 거여 고것도 요런날 타믄 죽지죽어 그말이 무슨 말인지 저들은 잘안다
배에 올라 탄다는 말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간다는 건가 만다는 것인가, 저들만의 유행어 같은데 어차피 뱃놈소리 듣고사는 마당에 저정도 호기는 있어야지 저 배를 탈까 이배를 탈까 술맛 걸죽한 저물녘 만선호 흰깃발은 바람의 속도를 재느랴 펄럭이고 항구는 풍랑으로 과부 치맛끈처럼 단단히 묶였는데
누가 초저녁 부터 배로 올라탄다
앗,갈매기다
선수는 선수다
ㅡㅡㅡ
저녁의 별
양달준
사랑해야 할 사람이 너무 많아 가슴이 뜨겁다
모두가 별이다
내가 사랑하므로
그들은 반짝이고
글썽인다
ㅡㅡㅡ
설악산 단풍
양달준
부탁했던 단풍 한 잎 도착했습니다
고맙게도 설악산 심장 가장 붉은 쪽을 보내주셨습니다
가을병이 도진 한 사람
이식 수술에 들어갑니다
ㅡㅡㅡ
소록도와 녹동항 사이
양달준
녹동과 소록도 가운데 바다는
죄없는 소록도 사람들에게는 철조망이다
바다는 푸른 희망,
시인 한하운 어른은 바다를 바라보며
얼마나 절망했을까
통통선 한 척
녹동항 앞 바다를
부수고 지나간다
원통해서
ㅡㅡㅡ
고래가 보고 싶다
양달준
내 유년의 바다에는 숨은 여라는 바위가 있다
바닷물이 빠지면 몸통을 드러내고
바닷물이 차면 가물가물하게 보여
숨은 여는 한 마리 고래 같은 것이었으므로
나는 수시로 그 바위를 보며 꿈을 키웠다
바닷물이 빠지면 사람들은 바윗등에 올라타
갯것을 잡으러 물질은 했지만
바위를 끌고 뭍으로 오지 않았는데
객지살이 십 수년
이리저리 끌려 다닌 나는
파도치는 바다 그자리에 그대로 있는
숨은 여가 보고 싶다
다도해 해안에서 하루에 한 번씩 나타나는
한 마리 고래
도시에서 표류하며 살아가는 나는
숨은 여
고래가 보고 싶다
ㅡㅡㅡ
슬픈 악사
양달준
라이브 카페 홍씨는 악사다
농사꾼 아버지가 암소를 팔아 대처 유학길에 올랐다는 그는
딴따라 인생은 막장이었다
그의 건반에 7080 술구세 들이 뽕짝을 올려놓고
밤을 탕진하면
그는 여러 곡을 타작해야 한다
노래가 끝이 나고
가뭄비 같은 지폐 한 장이 허공에 날리면
팔아먹은 소가 눈에 밟혀
피눈물이 난다는 홍씨
무덤에서 그의 아버지가 벌떡 일어나
황진이 한 곡 기차게 뽑았을 밤도 있었을텐데
별이 지는 시간
밭갈이를 마치고
뚜벅뚜벅 골목을 걸어가는 그림자
외양간을 찾아 가는
지친 소 한 마리 같으다
ㅡㅡㅡ
애월에서
양달준
이 세상 모서리에서 다치고 지친 몸을 만월의 바다에 눕히면
애월이 서방님 하며 달려들 것 같다
그런 사랑 한 번 저질러 보고 싶다
하지만 응큼한 생각 말기로 했다
저,
둥근달이 애월
그녀의 문은
구릿빛 어부들만이 열어보았거나
목숨 걸고 열었던
암스트롱 말고는 없으리
애월,
불러는 보대 싸가지 없는 생각 거둬라
이곳은 유배지 같은 곳
들통나면
육지로 나갈수 없다
ㅡㅡㅡ
만원짜리 푸른 닢
양달준
한파가 오기전에 월동 준비를 해야겠다며
긁어대는 바가지 소리에
추리닝 바지에 운동화를 꺾어 신고
일 년에 한 번 갈까 말까하는 농협에 갔네
창구 앞에서 서성이다
바닥난 예금을 탈탈 털어
배추 한 푸대 들고 집으로 왔네
속이 튼실한 배추를 절쿠는 사람
만원 짜리가 한 푸대면 얼마나 좋을까
혼잣말 그 옆에서
소금대신 눈물을 뿌렸네
엄동설한 걱정 덜은 푸른 닢
짜디짠 눈물로 절쿤
배춧 닢
아,
푸른 닢 푸른 닢
ㅡㅡㅡ
미시령
양달준
보이는건 눈발과 암흑
분간이 안간 고갯 길
눈 덮힌 도로 표지판은
여기서 부터라며 령의 길이를 알린다
길이는 줄과 같으므로
줄을 제대로 잡아야 출세한다는데
사람들은 여기서 줄을 여러 번 놓치고 만다
그러면서 다시 잡는다
단지,
때절은 마음이
동해를 만나고 싶어
ㅡㅡㅡ
첫 눈
양달준
점찍었던
첫 사랑 정순이
두고두고 잊고 사는데
어쩌자고
해마다
발랄하게
오시는가
ㅡㅡㅡ
폭설
양달준
일기 예보는 오일장이라 했다
산 아래 누옥 한채
상복 차림으로 허리를 구부린 감나무
조문객 대신 머리를 쪼아리는 콩새
하늘에서 보낸 국화 송이 사흘째
두절이 만든 풍경은
수묵화 한 점 같기도
흑백 사진 한 장 같기도 한데
경주땅 신라 고분 같은 눈더미 속에
멀둥멀둥 눈뜨고 있을
노부부
오일장은
지루하겠다
ㅡㅡㅡ
수수꽃 인생들
양달준
골목길 인력시장
급하게 달려온 승합차가
초조하게 서있는 몇몇을 호명한다
난민처럼 가방을 껴안고 도착한 곳은
주식회사 신축현장
토막난 각목들이 불타는 드럼통 앞에서
언손을 녹이던 차
붉은 완장을 찬 아침 해가
작업지시를 내린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인생들
벽돌을 짊어진다
벽돌은 주식과 같아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한다
올라갈 때마다 바닥을 치는 저들을
개잡부라고 부르는 공사판
철근처럼 녹슬고 휘어진 삶이 무거운데
하루를 감독한
저문 해가
품삯으로 수수꽃 몇송이
서녘에 두고간다
ㅡㅡㅡ
즐거운 저울질
양달준
이 세상 아줌마들은 무게에 민감하다
저울 앞에서 표정을 바꾸는
그녀들 얼굴을 보면 안다
바야흐로 비타민의 계절
아줌마들의 입 맛을 돌게한 딸기를 저울에 올린다
저울의 바늘이 파르르 떨다 값의 눈금에서 멈춘다
금이 야박하다며 데굴데굴 구르는 드럼통들
비겁하게 그녀들은 볼록한 뱃살과
풀어진 젖가슴을 올려 놓은
동네 목욕탕 저울에서는
s라인 눈금과 거리가 멀다며
구시렁댔을지 몰라도
나는 달작지근한 유혹앞에서 맘대로 무너진
그녀들 지방꽃을 보며
양심을 후하게 얹어준다
저울의 바늘이 오바를 떨 때까지
가벼운 바늘에 즐거운 무게를
팍팍 보태준다
ㅡㅡㅡ
낮 달
양달준
낮 달이 보고 싶어
애쓰는 사람 그리 많지 않다지
낮 달은 사무쳐야 보인다지
남쪽의 노모를 하늘 요양원에다 모시고
습관이 생겨
대낮에 하늘을 쳐다보면
때마다,
구름재 너머
수수밭 고랑에
어머니가 보인다
야위고 휘어진 등으로
지심메는 엄니는
그믐달이다
ㅡㅡㅡ
동백지다
양달준
한발 늦었더군
하필이면 추운 날만 골라 기다리다
이불 뒤집어쓴 굼벵이 같은 내가 괘씸해서
가 버렸다더군
꽃보러 갔던 작년에
지고만 동백꽃대신 붉은 입술 한없이 대주며
나를 달래 주던
여자
기다리다 지쳐
붉은 립스틱 싹지운 티슈만
동백나무 밑둥에 버리고
보란듯이
가버렸더군
ㅡㅡㅡ
다시 봄
양달준
밑둥만 남은 나무에서 싹 하나가 고개를 내밀고 바같을 살핀다
엄동설한 문걸어 잠그고 감감 무소식이던 장성 양반이시다
ㅡㅡㅡ
두 손 모아
양달준
어부가 건진 등푸른 희망
염부의 노고로
시장 좌판에 소금꽃 반짝이는 염전
저녁 밥상에 자반 고등어
잘 먹겠습니다
ㅡㅡㅡ
봄밤
양달준
거울에 비친 얼굴을 보던 각시가
좋은 시절 다 지났다며
푸념을 한다
달빛에
목련이 환한 초저녁 밤
한 수 거들었다
젊어지고 싶은가?
ㅡㅡㅡ
바닷가 봉분 또는 폐선
양달준
다시 찾은 고향 어촌
한 집 건너 또 한 집 날만 기다리고 있는 노인들
바닷일에 골병 들어 거동은 못하지만
평생을 바람의 바다와 싸우며 만선의 깃발을 날렸지
세월의 두께 만큼 상한 곳이 두꺼워
바닷 물을 거침없이 밀고나갈 자력을 잃고
뻘 밭에 비스듬히 누워 있는 저들을
폐선이라 부르는데
이미 거처를 산으로 수습하여 누워 있는
폐선의 봉분을 보면 죄다 바다를 바라보고 있어
생전에 만들었던 어장을 잊지 못하고 있는걸까
가끔은 뚜겅을 열고
바다에 나갔다 돌아 왔을지도 모르는
바닷가 봉분들
저 아래 골골대며 폐선들이 누워 있는 산으로 올라오는
목선 한 척
자리를 잡으러 오는갑다
ㅡㅡㅡ
비오는 날엔 너가 그리웁다
양달준
이렇게 보슬비 나리면
잉잉 젖어
그대가 두고 간 발 자국마다
눈물이 고여요
고인 눈물 넘치면
그대 사는 강마을 까지 흘러 갈 수 있을까,
울어도 울어도 모자란 눈물
얼마나 더 울어야
그대 가슴
적실까요
ㅡㅡㅡ
하바나 블루스
양달준
혁명 그딴 것 이제는 바라지 않아
저들은 체 게바라에게 미래를 맡길 수 없었다지
어두운 새벽이여 태양을 꿈꾸는 암울한 청춘들이 악보를 따라 춤을 추면 거리는 뜨거워지고 연인들은 손등에 입술을 포갠다지 내일은 우리의 시대 혁명은 지루해 부둣가 맥주잔엔 파도가 넘쳐 뱃고동 소리는 밀항을 포기 한다지 하바나 하바나 사랑은 빵처럼 부풀어 자꾸만 달콤해 가난은 조금 불편할 뿐 낭만을 버릴 수 없어 거리에 악사들이 기타를 치지 하바나 하바나 저녁별 아래서 카브리 해변처럼 출렁이는 연인들에 가슴엔 밤마다 뜨거운 피가 돌지
부앙부앙 뱃고동 소리에 흔들어 봐
자유는 찾아가는 것보다 만드는 것이 더 짜릿해
하바나 하바나
우리 밀착해
가슴끼리
ㅡㅡㅡ
구로공단 굴뚝
양달준
하얀색칠의 기다란 굴뚝
연기가 폴폴난다
한까치 담배 같으다
한 시대 공순이들이 두고간 구로공단
디지털 이 시대
콜센터 상담사들이 그 빈자리를 이어 받았다지
누가 알까,
도처에 깔려 있는 언어 폭력이 저들에 삶인 것을
닭장 같은 휴식 공간에서
쌓인 것 뱉어내는
입에 댄
저 굴뚝
ㅡㅡㅡ
봄비
양달준
겨울 창문처럼 마음에 문을 닫고 잊기로 했던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었네
갑작스런 소식에 나는 날궂이처럼 헛소리를 했네
그녀의 목소리는 먹구름처럼 무거웠으며
우리가 이상기류로 비구름을 만들어 눈물 뿌렸던
그날처럼 그녀가 먼저 울었네
우우우 우우
어린 잎들에 손등을 적시는 푸른 눈물은
모과차 마시며 다정했던 시절이었네
한 번 간 사랑은 다시 올 수 있을까,
간절한 기다림은 갈증이라지
가물었던 내가슴에도 비가나리네
우우우 우우 어색한 침묵도 잠시
촉촉해진 나는
그녀를 다시 파종하고 싶어
그래 목마르게 기다렸어 그말을 참지 못하고
나도 울었네
같이 울었네
ㅡㅡㅡ
목련
양달준
음 삼월은 허파에 바람들기 좋은 달
아파트 창문들을 사방에다 두고 나는 늘 하던 습관으로 욕실에서 거실로 나와 알몸을 닦다 건너의 창문들이 수상했던가 뒤통수가 뜨듯해 뒤돌아 본 순간 젖 가슴 봉곳한 여자와 마주쳤지
아아 ,
꽃이었지
나하고 꽃 사이에 이상한 바람 불었지 실없이 허둥지둥대다 고민했던 문을 활짝 열었지 쓸만한 근육질을 훔쳐본 꽃하고 아싸하게 좋았던 내 인생에 최고의 봄날
겁도 없이 제정신이 아니었던
그해 그 봉곳한 꽃
저기
ㅡㅡㅡ
1980년
양달준
해떨어지면
홍은동 백련사에서 범종이 울었다
저녁은 둥근 밥상에 평온하게 보내거라
늘어지게 딩 딩 딩 울리면
내 뱃속에서는 또랑물 소리가 급하게 들렸다
그러나 열여덟 직공살이에게 범종은
밥도 수당도 없는 연장의 시간을 알리는 소리였다
용접을 배우던 철공쟁이 나는
산소통을 들고가
그 입을 땜질해 버리고 싶었던 생각이
한 두번이 아니었지만
쇠망치질을 멈추고 가만 듣다보면
사람은 고파야 큰다는 부처의 고함 같아
때를 거르더라도 맘을 밥처럼 든든하게 먹으라는
남쪽의 당부 같아 저절로 기다려지던
빈 그릇에 고봉밥 같았던
그 범종의 소리
21세기 이시대에
누가 또 듣고 있을까
ㅡㅡㅡ
꽃답게 시들거라
양달준
한 번 피었다가 미련 없이 시드는 것이 꽃이다
장례식장 쉴낙원
조문을 마친 조화
리본에 이름들이 가차없이 칼질 당해도
국화꽃은 살아남아
1톤 트럭에 다치지 않게 실려 부릉부릉 출발한다
얼핏 들었던 조화의 행방이 궁금해진다
어디로 갈까,
너에 이름은 꽃이다
꽃답게 시들거라
ㅡㅡㅡ
농부가 쓴 시
양달준
빗물이 가득찬 다랭이논
한 장의 원고지다
굽은 등의 촌부가 한 줄 두 줄 문장을 만든다
힘겨운 노동이다
농가의 대물림 모심기는 농부가 허리 굽혀 쓴
꿈틀대는 푸른 글씨다
저녁이면 둥근 달이 어린 글씨를 비추고
개구리가 낭송 할
세상으로 나가
한 그룻 따신 밥이 될
저런 시,
나도
써보고 싶으다
ㅡㅡㅡ
즐거운 식사
양달준
풋살구 빛깔의 꼿꼿한 새순은 보약 같은 밥이라지
유랑간 양들이 돌아와 느긋느긋 잡수고
뒤따라 달려온 말들이 허겁지겁 뜯어대는
몽골 초원은
걸게 차려진 큰 밥상
흰 두루마기에 점잖게 앉아서
삼베옷 종들은 서서
음식을 즐기는
조선시대 잔칫 집 같은
시끌벅적한 풍경
먹다 말고
히히힝 히히힝
아랫 것들은 맛나서
촐랑댄다
ㅡㅡㅡ
하관
양달준
밭둑에 매화 꽃 한창
땅에 가시 없는
고슬고슬한 오후 두 시
씨를 묻으려 파놓은 구덩이에 호박씨를 앉혔다
생각하건데
저세상 가는 길도 이런날 묻힌다면 캄캄하지 않겠다
눈감은게 아니겠다
너는
여기와서 눕거라
뻐국뻐어꾹 기도 소리에
흙 한 삽을 뿌렸다
ㅡㅡㅡ
늦 가을
양달준
차갑게도 비가 온다
적색의 잎들은 고개를 더 숙였다
비야 속절없이 왔다 가면 그만이지만
징후 없이 닥친
누군가의 작별은 비에 젖어 아프고 춥다
모퉁이 그 길에도 비가 오겠지
그 해,
그 길에서 비를 맞으며 이별을 겪었다
빗 물이었는지 눈물이었는지
길 바닥에 뿌리며 저물도록 걸었다
바람불어 휘청거릴 때마다
노오란 손수건 흔드는 은행나무 똑똑히 보았다
나의 사랑은 계절의 명령으로 이별하였으니
나는 외로운
한 그루 나목이었다
그때처럼 찬비 나리는
아,아
한 사발 독약 같은 늦가을
다시,
불거지는 통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