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장: 아그립바 왕 앞에서 증거함
[1-3절] 아그립바가 바울더러 이르되 너를 위하여 말하기를 네게 허락하노라 하니 이에 바울이 손을 들어 변명하되 아그립바 왕이여, 유대인이 모든 송사하는 일을 오늘 당신 앞에서 변명하게 된 것을 다행히 여기옵나이다. 특히 당신이 유대인의 모든 풍속과 및 문제를 아심이니이다. 그러므로 내 말을 너그러이[참고](KJV, NASB, NIV) 들으시기를 바라옵나이다.
손을 들거나 손짓하는 동작은 사람들에게 인사하며 시선을 모으는 동작이거나 시끄러운 무리를 조용하게 하는 동작이었던 것 같다(행 12:17; 13:16; 19:33; 21:40; 26:1). 바울은 아그립바 왕 앞에서 담대하게 그리고 아첨하지 않고 차근히 자신을 변명하기 시작하였다.
[4-8절] 내가 처음부터 내 민족 중에(와) 예루살렘에서 젊었을 때 생활한 상태를 유대인이 다 아는 바라. 일찍부터 나를 알았으니 저희가 증거하려 하면 내가 우리 종교의 가장 엄한 파를 좇아 바리새인의 생활을 하였다고 할 것이라. 이제도 여기 서서 신문받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이니 이 약속은 우리 열두 지파가 밤낮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받들어 섬김으로 얻기를 바라는 바인데 아그립바 왕이여, 이 소망을 인하여 내가 유대인들에게 송사를 받는 것이니이다.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 다시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
바울은 자신이 젊었을 때 예루살렘에서 유대교의 가장 엄한 파인 바리새파의 생활을 했다고 증거했다. 바리새파는 그 당시에 유대인 사회에서 구약성경의 모든 말씀을 다 믿는 보수적인 입장을 가진 파이었다. 그와 반대되는 파는 사두개파이었다. 그들은 당시에 천사도 영(靈)도 부활도 믿지 않는 자유주의파이었다. 바울은 바리새파에 속했다. 성경을 그대로 다 믿는 것은 올바른 태도이다. 신명기 4:2에서, 모세는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라”고 말했다. 성경의 모든 내용들을 다 믿는 보수신앙은 바른 신앙이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파의 문제점은 단지 신앙과 행위가 일치하지 않은 데 있었다. 바른 신앙은 바른 인격과 삶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그것은 형식주의와 외식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바울은 특히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것, 즉 메시아께서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실 것을 믿었다. 그는 자신이 심문받는 까닭은 부활하신 메시아에 대한 문제 때문이며 근본적으로 말하면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문제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이 왜 하나님께서 죽은 자를 부활시키실 수 없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우리는 성경의 모든 말씀을 다 믿어야 하고 죽은 자의 부활도 믿어야 한다.
[9-12절]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범사를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세를 얻어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가편 투표를 하였고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저희를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까지도 가서 핍박하였고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세와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
바울은 자신이 과거에 예수님에 대한 잘못된 지식과 선입견 때문에 예수님과 그를 믿는 자들을 핍박하였고 그 일에 열심을 내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예수님 믿는 많은 성도들을 옥에 가두었고 또 죽일 때 찬성했고 모독하는 말을 하게 했고 외국 성에도 가서 믿는 자들을 잡아오려 했다. 그것은 다 잘못된 지식 때문에 잘못 행한 것들이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려면 우리는 하나님과 그의 모든 말씀, 특히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바르게 알아야 한다. 하나님과 그의 뜻에 대한 잘못된 지식은 오히려 큰 악을 범하게 할 수 있다.
[13-18절] 왕이여, 때가 정오나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서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방언으로 [내게]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뒤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일어나 네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사환[일꾼]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정오쯤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 죽은 지 삼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살아계셨다. 만일 그가 살아계시지 않았다면 그는 바울에게 나타나 말하실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해보다 더 밝은 빛으로 그에게 비추셨다. 그는 바울을 구원하여 일꾼과 증인 삼기를 원하셨다. 바울의 사역은 사람들을 구원하는 사역, 즉 그들의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며 그들에게 죄씻음을 주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거룩하게 된 자들, 즉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 가운데 속하게 하는 사역이다. 그들은 장차 천국 기업을 상속받을 것이다. 그것이 구원 사역이다. 그것이 교회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이다.
[19-23절]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리지[거스르지] 아니하고 먼저 다메섹에와 또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행하라 선전하므로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나를 잡아죽이고자 하였으나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거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선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하늘에서 보이신 것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자신을 증거하시고 그에게 사명을 주신 일을 가리킨다. 그래서 바울은 다메섹에서부터 시작하여 예루살렘에서와 온 유대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전하였다. 회개는 자신의 죄악됨을 뉘우치고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 즉 하나님 없이 사는 데서 돌이켜 하나님을 인정하고 예수님 믿고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것이다. 전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전하는 것뿐 아니라 회개를 전하는 것이다. 바울은 또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고 전하였다. 회개에 합당한 일이란 다시는 죄짓지 않고 의와 선을 행하려고 애쓰는 것을 가리킨다. 참된 회개는 회개에 합당한 일들을 동반한다. 복음 신앙이 중요하듯이, 의롭고 선한 행위들도 중요하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바울을 잡아죽이고자 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구주, 구약성경에 예언되었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고 그가 불러 세우신 종 바울을 죽이려 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죽음의 위험 속에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죽지 않고 그때까지 전도하였다.
바울은 오직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하였다. 그것은 모세와 선지자들이 예언한 바이었는데, 곧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으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이 되실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빛은 의와 생명과 기쁨을 상징한다. 이 세상은 무지와 부도덕으로 어두워져 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피흘려 죽으심으로 우리를 위해 의(義)를 이루셨고 그 피로 우리의 죄를 씻어주셨고 우리를 의롭다고 여겨주셨고 영원한 생명과 기쁨을 주셨다.
[24-29절]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하여 가로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지식]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바울이 가로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정신차린 말을 하나이다.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 줄 믿나이다. 이 일은 한편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로소이다. 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아그립바가 바울더러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바울이 가로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시간이 짧든지 길든지 간에] 당신뿐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노이다 하니라.
바울이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해 말하자, 베스도는 큰 소리로 “바울아, 네가 미쳤다. 네 많은 지식이 너를 미치게 한다”고 외쳤다. 세상은 하나님을 부정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하고 부활을 부정하고 천국을 부정하고 구원을 부정한다. 이것이 세상이다. 이것이 하나님 없는 세상이다. 거기엔 육신의 삶의 끝인 죽음과 허무만 남아 있다.
바울은 아그립바 왕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일들을 상당히 알고 계실 줄 믿는다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문은 갈릴리뿐 아니라, 유대와 사마리아와 그 주위의 지역들에 널리 퍼졌을 것이다. 아그립바 왕은 예수 그리스도의 일들을 듣고 알고 있었을 것이다. 또 그가 유대인일진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성경말씀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그립바 왕은 바울에게 “네가 적은 말로(혹은 짧은 시간에)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라고 말했다. 그때 바울은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노이다”라고 대답하였다. 바울은 짧은 시간에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였고 듣는 사람들이 구원 얻기를 소원하였다.
[30-32절] 왕과 총독과 버니게와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이 다 일어나서 물러가 서로 말하되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사가 없다 하더라. 이에 아그립바가 베스도더러 일러 가로되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호소하지 아니하였더면 놓을 수 있을 뻔하였다 하니라.
아그립바 왕과 총독과 또 그들과 함께한 자들은 바울이 사형이나 결박당할 일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고 아그립바 왕은 그가 만일 가이사에게 호소하지 않았다면 놓을 수 있을 뻔했다고 말했다.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 한 것은 부당한 일이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유대 지도자들은 부패되어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고 판단할 힘을 잃어버렸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심령이 밝아질 수 없고 구원을 얻을 수 없고 정직하고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다.
본장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두운 세상에 빛이시다(23절). 이 세상은 죄와 슬픔과 죽음으로 어두워져 있다. 이 어두움을 밝혀줄 수 있는 빛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시다. 그는 십자가 대속 사역으로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셨다. 그를 믿는 자마다 어두움에서 빛으로 나아올 수 있다. 참 지식을 얻을 수 있고, 죄인이 의인이 될 수 있고, 슬픔과 근심이 많은 자가 기쁨과 평안을 얻을 수 있고, 영적으로 죽었고 육신도 죽을 존재이며 장차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을 자들이 영생하는 새 생명을 얻을 수 있다. 이 세상의 구주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시다.
둘째로, 우리는 구원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 구원은 사람들로 하여금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구원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대속 사역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 받는 것이며 거룩하게 된 무리들 중에 기업을 얻는 것이다. 구원 얻은 자들이 교회이며 장차 천국을 기업으로 상속받을 자들이다. 이 구원의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것이 사도 바울의 사명이며 사도들의 사명이며 신약교회가 주께로부터 받은 사명이다. 우리는 영적 어두움, 즉 무지와 죄와 슬픔 가운데 있는 세상 사람들, 사탄과 악령들의 권세 아래 있는 사람들을 빛의 세계로, 하나님의 나라로 구원해야 할 사명을 받았다. 우리는 구원의 복음을 만인에게 전해야 한다.
셋째로, 사람은 하나님께로 돌아와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거룩함이다(살전 4:3). 즉 우리가 죄를 멀리하고 의와 선을 행하는 것이다. 선한 행위가 중요하다. 악인에게는 평안이 없다(사 48:22; 57:21). 회개의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찍힘을 당할 것이다(마 3:10). 죄의 값은 죽음이다(롬 6:23). 우리가 몸의 죄성을 따라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롬 8:13). 중생한 성도는 죄를 짓지 아니한다(요일 3:9). 사람은 그의 행위의 열매로 그가 바른 사람인지 알 수 있다(마 7:16). 죄를 회개하고 믿은 자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