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했던 우상숭배의 가문
장인성 목사가 태어나 자란 곳은 충북 보은의 산골 마을이다.
해방 후 할아버지 일가가 모두 남쪽으로 내려왔고, 친조부에 이어 아버지까지 대를 이어 터를 잡은 곳은
화전민들이 옹기종기 살아가는 산 속 외딴 곳이었다.
당시 국민학교를 다녔던 장목사는 학교까지 가려면 고개를 두 개나 넘어 걸어가야 했다.
하지만 먼 거리를 다니는 것보다 싫은 것은 따로 있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가 귀가 시간이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그날은 낭패를 보는 것이다.
금방 어둑해지는 산길을 거슬러 집으로 오는 길은 어린 나이에 무섭고 조마조마한 일이었다.
국민학교 4학년이 되어 장목사 가족은 산동네에서 내려와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로 이사를 했다.
아버지는 보은 오일장이 열리면 좌판을 펼쳐놓고 찢어지거나 구멍 난 고무신을 수선해주는 일을 하셨다.
평소 이른 아침에도 벌써 풀 한짐 지고 마당에 들어서곤 하였고, 집에서 누워있는 것을 보지 못할만큼
부지런하셨던 아버지는 모든 일에 열심이셨다.
어머니는 활동적이었지만 마을 굿당에서 대잡이를 할만큼 신기神氣가 있었다.
하지만 악한 영을 모시고 있으니 늘 영적으로 시달렸다. 자녀들은 자라며 외가와 관련된 어떤 얘기도 들을 수 없었고,
왕래 또한 없을 정도로 어머니 가문에도 적지 않은 영적문제와 어려움이 있음을 미루어 짐작할 뿐이었다.
아버지 또한 보름이나 명절 때마다 마을을 대표하여 성황당에서 제를 올리고, 일년에 두 번씩 일주일간 드리는
산신제에 빠짐없이 참석하였다.
할아버지부터 이어져온 우상숭배와 무속의 가문 배경은 그만큼 뿌리가 깊었다.
무속에 지배받는 영적 눌림 속에 부친의 손재주로 생계를 꾸려갔지만 가난은 운명처럼 따라 다녔다.
우상숭배를 많이 한 가문에 나타나는 저주가 또 한 가지 있었다.
바로 가족들이 대대로 뇌혈관 질환으로 고통 당하고 단명하는 것이다. 조부와 부친 그리고 큰 형님이 그랬고
큰 조카 역시 같은 질환으로 반신불수가 되어 지금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것은 복음 안에 있는 장목사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훗날 전도운동의 와중에 장목사 역시 급성 뇌경색으로 쓰러져 한동안 목회 활동을 중단해야 했다.
신앙의 첫 발을 뗀 교회학교 유년부
어릴 적 장목사는 공부를 곧잘 했다.
한 번은 산수 시험문제를 받았는데 문제가 틀리게 출제되었다. 그래서 선생님에게 얘기했더니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장목사를 칭찬하며 ‘문제 틀린 걸 찾아내는 애도 있는데 문제 하나 못 맞추는 놈들은 뭐냐’며 반 아이들에게
핀잔을 주었다.
얌전하고 자기 할 일을 알아서 하는 모범생 스타일이어서 부모님은 어린 아들을 신뢰하였고 이런 저런 잔소리를
하지 않으셨다. 나이 차가 컸던 위에 누님 두 분과도 사이가 좋았다.
4학년 때 산동네에서 내려와 좀 더 큰 마을로 이사를 했는데 바로 집 앞이 교회였다.
자연스럽게 친구들과 교회 마당에서 놀기도 하고, 주일이나 성경학교 때 교회에서 주는 선물을 받으러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다.
교회 유년부에 참석하며 예배를 드리던 중 성경암송대회가 열렸는데 요절말씀이 마태복음 5장의 팔복에 대한
구절이었다.
아직도 그때 외운 성경 구절이 장목사의 기억에 또렷하다. 옥토같은 마음밭에 떨어진 말씀 각인의 힘은 놀라왔다.
비록 성도 수는 얼마 안되는 작은 시골교회였지만 어릴 시절 함께 교회에 다녔던 친구들이 그 교회에서 신앙이 자라
훗날 장목사를 포함해 5명의 목회자가 배출된 것이다.
이렇듯 하나님은 우상숭배의 가문 속에서 영적 재앙의 흐름을 끊기 위해 한 사람을 택하셨고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절대여정 속으로 들어가게 하셨다.
출가出家 결심을 돌이키신 하나님의 은혜
중학교 3학년이 지나면서 장목사에게 사춘기가 찾아왔다.
내가 누구인지, 왜 살아야 하는지, 고난은 왜 오고 죽음은 무엇인지 끊임없는 상념으로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교회를 다녔지만 신앙이 깊지 않을 때여서 성경적인 답을 얻지 못했고 답답함은 커져만 갔다.
그때 떠오른 사람이 당시 월정사 주지스님으로 계셨던 육촌 형님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무렵 여름방학을 맞아 절을 찾아갔고, 며칠 절밥을 먹은 후에 주지스님에게 면회 신청을 하였다.
“스님, 이런저런 마음의 고민 때문에 이곳을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스님은 여기에 대한 답을 갖고 계신지요?”
라고 묻자 돌아온 스님의 대답은 의외였다.
당신도 여전히 그 답을 찾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일곱살에 출가하여 당시 일흔이 훨씬 넘은 나이로 꽤 오랜 세월동안
수도생활을 했을텐데 답을 모른다니 가짜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면의 방황을 끝내 줄 답을 얻게 된다면 머리를 깎고 중이 될 결심까지 하며 절을 찾와왔던 터라 육촌형님이었던
노스님의 대답은 큰 실망을 안겨주었다.
느닷없는 아들의 가출로 부모님을 비롯해 온 가족은 한바탕 난리를 치렀다.
집으로 돌아온 장목사는 주변이 잠잠해지자 성경을 처음부터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성경책을 펼쳤다.
그런데 첫 구절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는 말씀이 아닌가.
‘그렇구나! 인간은 피조물이고,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구나.’ 마음 속에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생각이 없이 교회를 다닐 때는 몰랐지만 출가를 결심할 정도로 깊은 고민 끝에 창세기를 읽어내려가면서
모든 것에 이유 있는 시작을 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믿어지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은혜로 꼬리를 물던 근본에 대한 질문들은 어느덧 사라져버렸다.
선천성 희귀질환을 가진 자녀의 태어남
고등학교를 마치고 곧바로 군 입대를 했다. 제대 후에는 영농 후계자의 꿈을 키우며 농사일을 배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영농 후계자가 본인이 원하는 길이 아님을 깨달았다.
결국 삼년반 넘게 해오던 농사일을 그만두고 서울로 상경하였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아내인 김정자 사모를 만났다.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넉넉하지 못한 시골마을의 불신자 가정에서 태어나 가족 중 유일하게 신앙생활을
하며 자랐고, 상경하여 연고 없는 서울에서 객지 생활을 하고 있었다.
다른 점이라면 아내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집안의 반대가 무척 심하였고 교회에 갔다 오면 아버지로부터 매를
맞기 일쑤였다.
부모로부터 독립한 두 사람은 마침내 가정을 이루고 첫째 딸과 둘째 아들 이렇게 두 자녀를 낳았다.
뜻하지 않은 불행이 찾아온 것은 둘째 자녀가 태어나면서였다.
태어난 아들이 심장이 자라지 않는 선천성 희귀 심장병 진단을 받은 것이다.
전국에 유명하다는 병원을 다 찾아다녔지만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을 뿐이었다.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 발을 동동 구르다가 문득 하나님께 매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집에서도 교회에서도 기도하고 금식하며, 심지어 어린 아이를 업고 산기도를 다녔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주의 종’의 사명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으로 아이의 병을 고쳐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는 것은 일상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성령의 은사로 예언하는 사람이라며 자신을 소개한 어떤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자신은 목사가 될 사람을 알아보는 은사가 있다며 반드시 사명자의 길을 가게 될 것이라고 말해 해주는 것이었다.
그 후에도 여러 사람들을 통해 같은 예언을 수 차례나 듣게 되었다.
그때부터 장목사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목사가 되겠다는 생각을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지만 그것이 하나님이의 계획이 맞는지 확인을 받고 싶어졌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작정기도하며 응답받기 위해 찾아간 곳이 한얼산기도원이었다.
기도원에서 예배하고 기도를 드리던 오후 집회시간, 잣나무 숲 마당에서 온 회중이 뜨겁게 통성기도를 하고 있는데
기도회를 인도하던 이천석 목사가 갑자기 큰소리로 외쳤다.
“저기 성령의 불이 떨어진다.!” 그러면서 장목사가 있는 곳을 가르키는 것이었다.
그때 또 다른 중년여성이 장목사의 옆으로 다가왔다. 자신은 하나님의 종이 될 사람들에게 그것을 알려주어
주의 길로 인도하는 특별한 사명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토록 여러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었음에도 불순종하다가 오늘 그 확신을 갖기 위해
이곳에 온 사람이 있다는 성령의 음성을 들었다고 하였다.
그가 기도하는 중에 그 사람이 장목사인 것을 보여주셨고, 하나님이 택한 사명자임을 그에게 알려주라는
계시를 받았다는 것이다. 오늘 저녁에 하나님 앞에 그것을 놓고 기도하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날 밤, 함께 동행했던 장로와 기도원 뒤쪽 깊은 계곡에 올라가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며 기도하였다.
한참 기도를 하는 중에 입이 열리며 그토록 원하던 방언이 터져나왔고, 자신도 모르는 방언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드리며 마음 속에 응답의 확신이 들었다. 하나님은 장목사를 예비하여 택하셨고, 주님이 원하시는 길을
걷게 하실 것이라는.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신 분이시다.
돌이켜보면 기도원에서의 성령 체험은 당시 한국기독계에 일반화된 신앙 흐름 중 하나였다.
오늘날의 복음주의적인 접근방식보다는 기도의 은사와 신비에 가까웠지만 하나님은 기꺼이 그것을 사용하셨다.
희귀병을 가지고 태어난 자녀로 인해 하나님 앞에 더 나아가게 되었고, 그로 인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명을
발견하여 그 길을 가게 하심은 주님의 특별한 은혜가 분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