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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목사의 자기 훈련
1-5절, 귀신들의 교훈들을 조심하라
[1절]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속이는 영들]과 귀신의 가르침[귀신들의 교훈들]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경건의 비밀과 반대되는 것은 배교(背敎) 곧 진리에서 떠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날 것이라는 성령의 분명한 말씀을 전한다. 신약시대의 사도들은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처럼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뜻을 전한 자들이었다. 사도들의 교훈은 성령의 교훈이다. 그러나 사도시대 말기에 이미 배교의 징조가 나타났었다. 사도 요한은 말하기를, “적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고 하였다(요일 2:18).
배교자들이 따르는 교훈은 ‘속이는 영들과 귀신들의 교훈들’이다. 세상에는 항상 악령들의 활동들이 있어 왔다. 에덴 동산에서 하와를 속여 아담을 범죄하게 한 자는 바로 사탄이었다. 지금도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활동하는 영”은 사탄이다(엡 2:2). 지금도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혼미케 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깨닫지 못하게 하는 자가 사탄이다(고후 4:4). 이단은 속이는 영들의 활동이다. 사람들의 잘못된 사상들과 이념들과 종교들은 귀신들의 교훈들이다. 어떤 사람들은 귀신들의 교훈들을 좇을 것이지만, 우리는 오직 성경말씀만 믿고 따라야 한다. 우리는 신비적 체험을 의존해서도 안 된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오직 성경 교훈에 근거해야 한다. 그것이 바른 길이다.
[2절]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성도는 선한 양심을 가지고(1:5, 19) 범사에 양심대로 행해야 한다. 양심이 화인(火印) 맞는다는 것은 양심이 마비되어 제 기능을 못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양심이 더러워지는 것보다 더 심한 상태다. 이런 자는 옳고 그른 것을 분별치 못하고, 선과 악, 진리와 비진리를 분간치 못하게 될 것이다. 양심이 마비된 자는 외식하며 거짓말한다.
이단자들은 그들의 양심이 마비되어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다. 외식은 이중적인 것을 말한다. 믿지 않으면서 믿는 척하는 것, 미워하면서 사랑하는 척하는 것, 하나님을 대적하면서 순종하는 척하는 것, 하나님 없는 세속적 삶을 살면서 경건한 척하는 것, 돈과 쾌락을 크게 여기면서 하나님만을 섬기는 척하는 것, 진리를 대항하면서 진리 안에 거하는 척하는 것이 외식이다. 외식자들은 귀신의 교훈을 따르는 자들이며 성령의 교훈을 저버린 자들이다. 그러나 선한 양심을 가진 자들은 진실하며 진실한 말을 할 것이다. 성령께서는 사람들이 그들의 양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하게 믿어 구원과 영생에 이르게 하시지만, 귀신들은 사람들을 거짓되고 불신앙적이게 만들어 멸망에 이르게 한다.
[3-5절]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할 터이나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사도 바울은 귀신들의 교훈들의 예로 결혼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는 교훈을 들었다. 이것은 금욕주의 사상이다. 그러나 결혼과 음식 먹는 일은 하나님께서 주신 복된 일들이며 결코 죄가 아니다.
결혼 제도는 사람이 범죄하기 전부터 하나님께서 주신 제도이었다. 창세기 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을 만드신 후에 그가 혼자 있는 것이 좋지 못하여 그 갈빗대 하나로 여자를 만드셨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셔서 부부가 되고 한 몸이 되게 하셨다.
창세기 1:27-28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노아 시대에 홍수 심판 후에도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편만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고 말씀하셨고(창 9:7), 후에 아브라함에게도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창 22:17). 결혼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선하고 복된 제도이다.
먹는 음식도 하나님께서 지으셨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들이 선하다. 창세기 1:29, 31,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하나님께서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노아 시대에 홍수 심판이 있은 후 하나님께서는 산 동물을 채소같이 식물로 사람들에게 주셨다(창 9:3). 예수께서는 무리를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셨다(마 14:19). 율법 아래서는 정결, 부정결의 음식이 구별되었으나, 복음 아래서는 그 구별도 없다고 본다. 그러므로 모든 음식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지고 감사함으로 먹을 수 있고 버릴 것이 없다.
금욕주의는 잘못된 교훈이다. 그것은 구원의 길도, 성화의 길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반대되는 불건전한 자기 학대에 불과하다. 절제는 좋은 덕이지만, 금욕주의는 잘못된 사상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창조물을 감사함으로 먹고 마시며 사용할 수 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사역으로 이루어졌고 우리의 성화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루어진다. 단순한 금욕생활은 죄성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골 2:21-23). 우리는 성령을 따라 행함으로 몸의 욕심과 죄성을 죽일 수 있다(갈 5:16).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아무도 영적으로 자라지 못한다. 성도의 영적 성장과 성화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성경말씀의 바른 교훈 안에서 또 우리 안에 영원히 거하시는 성령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을 따라 성화를 이루어야 한다.
세상에는 귀신들의 교훈들이 항상 있어 왔다. 말세에 배교의 시대에는 그것들이 더욱 많을 것이다. 그것들은 성경 진리에서 떠났거나 성경 진리와 다른 잘못된 사상들과 이념들과 종교들에 나타나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책인 성경의 말씀 안에 거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를 가감치 말고(신 4:2; 계 22:18-19) 오직 성경말씀 안에 거해야 한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오직 성경에 근거해야 한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우리는 속이는 영들과 귀신들의 교훈들을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양심에 화인(火印) 맞아 외식하며 거짓말하는 자들, 즉 기독교의 이름을 가진 각종 이단종파들, 특히 오늘날 천주교회와 자유주의 신학과 은사주의를 조심해야 한다. 요한일서 4:1,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둘째로, 우리는 결혼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는 금욕주의를 조심해야 한다. 금욕주의는 진리가 아니다. 성도의 성화는 금욕주의로가 아니고 성령으로 몸의 죄성을 이김으로써 이루어진다. 갈라디아서 5:16,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셋째로, 우리는 오직 성경적 교리들과 생활 교훈들 안에 거해야 한다. 신구약성경은 기록된 하나님 말씀이다. 디모데후서 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데살로니가후서 2:15, “이러므로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을 지키라.”
6-10절, 경건 훈련
[6절]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선한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좇는 선한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믿음과 좋은 교훈의 말씀으로 양육을 받는,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이 되리라].
디모데가 사람들을 가르칠 때에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는 교훈이 귀신의 교훈이라는 분별력과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므로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는 지식을 가지고 한다면, 믿음과 좋은 교훈의 말씀으로 양육받는,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이 될 것이다. 성경은 믿음과 좋은 교훈의 말씀이며 또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고 성경말씀으로 양육받는 몇 년의 혹은 긴 세월들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질 것이다.
[7절] 망령되고(베벨로스)[속되고, 세상적이고] 허탄한(그라오데스)[나이 많은 여자들이 말하는]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귐나제)[훈련하라].
‘신화’는 사실이 아닌 이야기이다. 기독교는 사실들에 근거하고 있다. 성경 사건들은 신화들이 아니다. 그러므로 속되고 어리석은 신화적 이야기들은, 비록 그것이 육신의 재미와 즐거움을 일으키는 것일지라도, 다 버려야 한다. 그것들은 참된 믿음에 아무 유익이 없다.
그 대신, 우리는 경건에 이르기를 훈련해야 한다. ‘경건’은 하나님을 알고 그를 두려워하고 그를 믿고 그를 섬기는 것이다. 경건은 곧 하나님 앞에 사는 것이다. 우리는 경건 훈련이 필요하다. 경건은 훈련이 필요하다. 경건생활은 성도에게 당연한 생활이며 또 진실한 성도라면 다 그렇게 알고 있겠지만, 그것이 훈련되지 않으면 성도가 실제로 그렇게 살 수 없다. 아무리 성도라 하더라도, 경건의 훈련을 힘쓰지 않으면 세상 사람처럼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인 성경 읽기, 기도 생활, 가정예배, 주일을 거룩히 지키는 것, 예배 시간에 늦지 않는 것, 십일조 생활, 수요일 밤과 금요일 밤 예배나 새벽예배에 참석하는 것, 권찰이나 교사나 찬양대 봉사하기, 전도하기 등은 다 훈련을 통해 더 잘하게 되는 것이다.
[8절] 육체의 연습[몸의 훈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경건은 유익하다. 사람들은 건강을 위해서 빨리 걷기나 달리기나 등산 등을 한다. 몸의 훈련은 유익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 세상의 삶에 국한되고 이 세상의 평안한 생활도 보장하지 못한다. 건강 관리를 잘하던 사람도 때로는 예기치 못한 무서운 질병에 침입을 당하고 심지어 목숨을 잃기도 한다. 그러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다. 경건은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
‘금생의 약속’은 마음의 평안, 몸의 건강, 물질적 안정, 사회적 평안 등을 가리킨다. 신명기 28:1-6,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시편 1:1-3,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시편 119:1, 165, “행위 완전하여 여호와의 법에 행하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잠언 3:1-2, 7-10,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너로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건강, 치료]이 되어 네 골수로 윤택하게 하리라.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마태복음 6:33, “너희는 먼저 그의[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의식주]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내생의 약속’은 영생 복락을 가리킨다. 우리가 경건 생활에 힘쓰면 미래의 구원은 확실해진다. 고린도전서 15:1-2,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갈라디아서 6:7-8,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썩는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베드로전서 1:8-9,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베드로후서 1:10-11,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9절] 미쁘다, 이 말이여[이 말은 신실하며], 모든 사람들이[전적으로] 받을 만하도다.
경건이 중요하고 복되며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다는 말은 신실하고 전적으로 받을 만하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하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섬기는 것이 영생이요 행복이다. 하나님께서는 생명과 복의 근원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근본적 진리를 의심치 말고 더디 믿지 말고 전적으로 받아서 경건한 사람이 되기를 힘써야 한다. 경건 훈련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훈련이다.
[10절] [이는]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진력(盡力)하는[모욕을 당하는](전통본문)3)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이를 위하여’는 ‘경건을 위하여’라는 뜻이다. 바울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고 그를 두려워하고 그를 믿고 그를 섬기도록 하는 이 일을 위해 수고하고 모욕도 당하였다. 그것은 그와 그의 일행들이 그들의 소망을 돈이나 육신의 쾌락 같은 세상의 것에 두지 않고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께만 두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며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이시다. 그는 오늘 우리도 구원하셨고 양육하고 계신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우리는 경건 훈련을 힘써야 한다. 경건 훈련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것을 포함한다. 우리는 새벽에든지 밤중에든지 성경 읽고 기도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둘째로,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고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다. 몸의 훈련도 약간 유익하지만, 경건은 범사에 그리고 현세와 내세에 유익하다. 경건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현세에서 마음의 평안과 몸의 건강과 물질적 여유를 주고 내세에서 확실히 영생을 보장할 것이다.
셋째로, 우리는 우리의 소망을 돈이나 육신의 쾌락 같은 이 세상의 것들에 두지 말고 오직 살아계신 구주 하나님께만 두어야 한다. 세상적인 것들, 육신적이고 물질적인 것들은 일시적이며 우리가 죽을 때 허무해지고 또 생전에도 재앙의 날에 허무해진다. 하나님만 영원하시다.
11-16절, 목사의 자기 훈련
[11절] 네가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
‘이것들’은 본 서신의 앞에서 가르친 내용들을 가리킬 것이다. 그것들은 특히 바로 앞에서 말한 금욕주의의 미혹을 받지 말고 참된 경건 훈련에 힘쓰라는 교훈을 포함한다. 본 서신에 주신 하나님의 교훈들은 디모데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디모데는 그 진리들을 또 다른 성도들에게 명하고 가르쳐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도이며 하나님께서 사도들을 통해 신약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목적이다.
특히 ‘명하라’는 말은 이 진리가 신적 권위를 가진 것임을 잘 보인다. 사도들의 가르침이 인간적 권위를 가진 말이라면 명령할 성질의 것은 아닐 것이다. 오늘날처럼 사람들이 자기의 주관을 가지고 살기를 원하는 시대에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명령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성경말씀은 하나님의 명확한 뜻이며 하나님께서 명하시고 요구하시는 바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명령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성경은 우리에게 뿐만 아니라 주께서 부르시는 모든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과 교훈이며, 그러므로 모든 사람에게 유익하다.
[12절]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심령과](전통사본)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청년은 보통 지식과 인격에 부족이 없지 않겠지만, 젊은 사역자인 디모데는 말과 행실과 사랑과 심령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들에게 본이 되어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받지 말아야 하였다. 오늘날에도 모든 말씀 사역자들은 자기 훈련의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로, 말씀 사역자는 말에 있어서 본이 되어야 한다. 말은 사람이 가장 실수가 많은 영역이다. 그래서 야고보서 3:1-2는,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말씀 사역자는 말에 본이 되어야 한다.
둘째로, 말씀 사역자는 행실에 있어서 본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말만 하고 행동이 따르지 않는 자가 되기 쉽다. 그러나 생명은 삶이다. 참된 신앙은 의롭고 선한 행위를 수반한다. 그러므로 야고보서 2:17, 26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고 말했다.
셋째로, 말씀 사역자는 사랑에 있어서 본이 되어야 한다. 사랑은 그리스도인의 최고의 덕이다. 십계명은 사랑으로 요약된다. 즉 그것은, 하나님을 네 마음과 네 성품과 네 힘을 다하여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명령이다. 사랑은 하나님의 율법의 완성이다. 또 주께서는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을 실천해야 하며 말씀 사역자는 이 일에 본을 보여야 한다.
넷째로, 말씀 사역자는 심령에 있어서 본이 되어야 한다. ‘심령’이라는 말은 생각을 가리킨다고 본다. 사람의 생각은 그의 인격을 나타낸다. 말씀 사역자는 생각에 있어서 본이 되어야 한다.
다섯째로, 말씀 사역자는 믿음에 있어서 본이 되어야 한다. 믿음은 성도의 기본적 덕이다. 우리는 복음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 믿음이 없으면 죄사함도 구원도 영생도 없다. 이 믿음은 성경말씀과 기도를 통해 강해진다. 말씀 사역자는 믿음이 견고한 자이어야 한다.
여섯째로, 말씀 사역자는 정절에 있어서 본이 되어야 한다. ‘정절’이라는 말은 순결함을 가리킨다. 이것은 이성 관계에 있어서 깨끗함을 뜻한다. 말씀 사역자는 이성 관계에 있어서 본이 되어야 한다.
말씀 사역자는 말과 행실과 사랑과 심령과 믿음과 순결함에 있어서 성도들의 본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은 그들이 그를 통해 받는 모든 교훈에 신임성을 두고 그것을 믿고 그를 따를 것이다.
[13절]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
‘착념하다’는 말은 ‘집중하다, 전념하다’는 뜻이다. 디모데는 아직 젊어서 지식과 인격에 있어서 부족함이 없지 않을지라도 그의 현재의 상태에서 말씀 사역에 집중하고 전념해야 했다.
우선 그는 성경 읽는 일에 전념해야 한다. 그것은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는 것뿐 아니라 공적으로 읽는 것을 가리킬 것이다. 성경 읽는 일은 자신을 위해 또 교인들을 위해 유익한 일이다. 또 그는 성경을 읽을 뿐 아니라, 그것을 권하고 가르쳐야 한다. ‘권하는 것’은 ‘권면하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을 가리키며, ‘가르치는 것’은 성경말씀을 해석하며 그 중요한 교훈을 설명하고 증거하는 것을 말한다.
[14절]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받을 때에 예언으로 말미암아 받은 것을 조심 없이[소홀히 여기지] 말라.
‘장로의 회’는 오늘날의 노회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디모데가 말씀 사역자로 안수받을 때 특별한 은사를 그에게 주셨다.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는 각 사역자에게 특별한 은사를 주신다고 본다. 예를 들어, 어떤 이에게는 해외선교의 은사를, 해외선교도 어떤 이에게는 이슬람 지역의 사명을, 어떤 이에게는 공산권 지역의 사명을, 어떤 이에게는 국내의 농어촌 전도사역, 장애인 전도사역, 군 부대 전도사역, 전문인 전도사역 등을 주신다. 그러므로 말씀 사역자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와 사명을 따라 각각 하나님께 충성해야 한다.
[15절]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이 모든 일’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말과 행실과 사랑과 심령과 믿음과 순결함에 있어서 모범이 되는 것과, 성경말씀을 읽고 권하고 가르치는 말씀 사역에 전념하는 것 등을 포함한다. 말씀 사역자는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자신의 진보, 즉 지식의 진보, 입장과 분별력의 진보, 인격과 생활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내어야 한다. 참된 일꾼은 성화와 직무 수행에 진보를 나타내어야 한다.
[16절]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네 자신을 삼가라’는 것은 말씀 사역자의 자기 훈련을 말한다. 이것은 넓게는 모든 성도의 자기 훈련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늘 자신을 성찰하고 자신을 훈련시켜야 한다. 또 ‘가르침을 삼가라’는 것은 말씀 사역자에게 중요한 것이 그의 가르치는 것임을 보인다. 가르침은 단지 가르치는 방법보다 가르치는 내용이 중요하다. ‘이 일을 계속하라’는 것은 앞에서 한 교훈들이 한 번 실천하고 중단될 것이 아니고 계속 실천되어야 할 것임을 보인다.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는 말씀은 말씀 사역자의 자기 훈련이 자기 영혼의 구원을 확실하게 할 뿐 아니라, 그의 말을 듣는 자들의 구원을 확실하게 할 것이라고 뜻이다. 잠언 14:25, “진실한 증인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느니라.” 말씀사역의 결실은 첫째로 하나님의 은혜에 달려 있지만 또한 상당히 말씀 사역자의 자기 훈련에 달려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말씀 사역자의 꾸준하고 부지런한 자기 훈련이 없다면 영혼 구원의 일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말씀 사역자는 말과 행실과 사랑과 심령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본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말과 행실과 사랑과 심령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온전한 자들이 되어야 한다.
둘째로, 말씀 사역자는 개인적으로 또 공적으로 성경 읽기와 연구와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해야 한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고 교회에서 성경 강해를 들음으로 믿음과 인격이 온전해져야 한다.
셋째로, 말씀 사역자는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자신의 진보, 즉 지식과 분별력과 인격과 사역에 있어서 진보를 다른 모든 성도들에게 나타내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믿음 생활에 전심전력하여 지식과 분별력과 인격과 삶에 있어서 진보를 나타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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