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말에 온전한 자
[1절]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성경을 가르치고 영혼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일은 이 세상에서 매우 귀한 일이지만, 성경을 바르게 가르치지 못하면 그 잘못에 대한 책임이 크고 그 벌이 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무나 가르치는 일을 사모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 직분을 사모하는 자는 성경에 대한 바른 지식과 믿음과 건전하고 선한 인격을 갖추어야 한다.
[2절] [이는]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많음이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우리가 많이 선생이 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다 실수가 많고 특히 말에 실수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가 말에 실수가 없다면 우리는 온전한 자로 여김을 받을 것이다. 사람의 인격의 온전함은 말의 온전함에서 증거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바른 말, 덕스러운 말, 참되고 진실한 말만 하고 남에 대한 오해의 말이나 잘못된 비난의 말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상당히 성숙하고 온전한 인격일 것이다.
혀는 사람의 몸을 통제하며 말은 그의 인격을 나타낸다. 선한 자는 선한 말을 하며 악한 자는 악한 말을 한다. 예수께서는 그를 비난하는 바리새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다(마 12:34-37).
[3-5절] 우리가 말(馬)을 순종케 하려고 그 입에 재갈 먹여 온 몸을 어거(馭車)하며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 사공의 뜻대로 운전하나니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야고보는 혀의 중요성을 말의 재갈이나 배의 키에 비교한다. 말은 힘이 센 동물이지만, 사람은 말의 입에 재갈 즉 쇠토막을 물려 자기 뜻대로 그것을 이끌고 사용한다. 큰 배도 배 밑에 달려 있는 작은 키로 사공의 뜻대로 운전된다. 또 야고보는 혀를 불에 비교한다. 작은 불이 많은 나무를 태우듯이, 작은 혀가 큰 것을 자랑하며 큰 일을 행한다. 잠언은 의인의 혀가 천은(天銀)과 같고(잠 10:20) 지혜로운 자의 혀가 양약(良藥) 같다고 말하며(잠 12:18), 또 확실한 증인의 말이 힘이 있다고 말한다(잠 21:28).
[6절] 혀는 곧 불이요 불의(不義)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불에서 나느니라.
혀는 불과 같다. 그것은 산불이나 건물 화재처럼 나쁜 결과를 주는 불과 같다. 혀는 또 불의(不義)의 세계이다. 그것은 우리의 몸을 더럽히고 우리의 삶의 과정을 무너뜨린다. 사람은 자기가 쌓은 선을 잘못된 말 한마디로 다 무너뜨릴 수 있다. “그 사르는 것이 지옥불에서 나느니라”는 말은 “그것[혀]은 지옥불에 사루어지리로다”라고 번역되어야 한다고 본다(KJV, NASB, NIV).
[7-8절] [이는]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며 벌레[기는 것=파충류]와 해물은 다 길들므로 사람에게 길들었거니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다루기 힘든, 길들이기 어려운]6)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것임이니라].
본문은 야고보가 혀를 불의의 세계라고 말한 이유를 말한다. 혀를 불의의 세계라고 말한 것은 혀가 길들여지지 않고 남을 죽이는 독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여러 종류의 짐승들과 새들과 기는 것들과 해물들은 다 길들이면 길이 든다. 우리는 개나 소나 말이나, 또는 비둘기나 뱀이나 물개 등이 어떻게 길들여지는지 알고 있다. 그러나 사람의 혀는 길들일 수 없고 길들여지지 않는다. 그것은 ‘다루기 힘든’ 악이다. 혀는 또 죽이는 독이 가득하다. 사람의 혀는 심히 악하다.
[9-12절] 이것으로 우리가 주[하나님]7)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물과 쓴 물을 내겠느뇨?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뇨? 이와 같이 짠물이 단물을 내지 못하느니라[어떤 샘도 짠물과 단물을 함께 내지 못하느니라](전통사본).
혀의 악함은 성도들에게서도 종종 보인다. 그것은 그들의 이중적인 언어생활에서 나타난다. 성도들은 자신의 혀로 거룩하고 선하고 아름다운 말로 ‘하나님 아버지’를 찬송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 동일한 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다른 사람을 저주한다. 한 입으로 찬송도 하고 저주도 하는 것이다. 한 샘물이 단물과 짠물을 낼 수 없듯이, 한 입으로 찬송도 하고 저주도 하는 것은 이중적이고 모순되다. 이것은 성도에게 합당치 않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교훈하기를,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라”고 하였다(엡 4:29, 31).
[13절]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참 지혜는 단순히 이론이 아니고 행위로 표현되되 선함과 온유함으로 표현된다. 참 지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요 성령의 열매인 지혜이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선함]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이다(갈 5:22-23). 전도서는, “사람의 지혜는 그 사람의 얼굴에 광채가 나게 하나니 그 얼굴의 사나운 것이 변하느니라”고 말하였다(전 8:1). 참된 지혜는 선함과 온유함으로 표현되며 그 얼굴에 기쁨과 평안으로 나타난다.
[14-16절]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거슬러] 거짓하지[속이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이는]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혼란, 무질서]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
마음에 온유함 대신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는 자는 참된 지혜가 없는 자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지혜자인 것처럼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 그는 진리를 거슬러 속이지 말아야 한다. 그가 가지고 있는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 곧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고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다. ‘세상적’이라는 표현은 세상 사람들에게서 나온 것이라는 뜻이다.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2:16에서,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고 말했다. ‘정욕적’이라는 원어(프쉬키코스)는 ‘육욕적’이라는 말로서 육신의 죄악된 생각과 감정과 욕망을 따르는 것이라는 뜻이며 ‘마귀적’이라는 말은 ‘귀신들에게서 나오는’ 것이라는 뜻이다. 마음 속에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무질서와 모든 악한 일이 있다. 이러한 지혜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다.
[17-18절]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의의 열매는 화평케 하는 자들에 의해 화평 중에 심어진 것이니라].
이와 대조적으로, 위로부터 난 지혜, 곧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는, 첫째로, 성결하다. 그것은 죄악된 일을 버리고 거룩하고 의로운 것이다. 둘째로,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다. 그것은 한마디로 사랑이다.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말한 성령의 열매들과 비슷하다(갈 5:19-23). 셋째로, 편벽과 거짓이 없다. 그것은 공정하고 진실하다. 신적 지혜는 의로움과 선함과 진실함이다. 잠언은 지혜를 가르치는 책인데, 거기에서 말하는 지혜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떠나는 것이며 하나님의 율법대로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하게 사는 것이다. 잠언의 모든 말씀은 결국 야고보서 본문이 가르치는 ‘위로부터 난 지혜’와 동일하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많이 선생이 되지 말고 말에 온전한 자가 되기를 힘써야 한다. 성경을 가르치는 일은 귀한 것이지만, 잘못 가르치면 벌을 받을 것이다. 사람의 혀는 가장 길들이지 않는 것이지만, 말에 온전한 자가 되기를 소원해야 한다. 작은 불이 많은 나무를 태우듯이, 작은 혀가 온 몸을 더럽히고 우리의 삶의 과정을 허물어뜨릴 수 있다. 성화는 말의 온전함에서 나타날 것이다. 우리는 바르고 선하고 진실한 말을 하고 특히 남을 비난하는 말을 조심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닌 세상적, 정욕적, 마귀적 지혜를 버려야 한다. 세상적, 정욕적, 마귀적 지혜를 가진 자들 가운데는 시기와 다툼이 있고 혼란과 무질서와 온갖 악이 있다. 말에 있어서 악하고 거짓되고 부덕한 것은 다 이런 지혜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에서는 지혜자인지 모르나 교회를 어지럽히고 파괴시키는 자이다.
셋째로, 우리는 위로부터 나는 지혜를 사모해야 한다. 위로부터 나는 지혜는 성결하고 화평하고 온유하고 양순하고 긍휼과 선함이 가득하며 편벽과 거짓이 없다. 그것은 잠언이 가르친 지혜와 같다.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또 그것은 성령의 열매들과도 같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고 바르고 선하고 진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