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안에서 문안 합니다.
매월 첫째주 화요일과 셋째주 화요일은 구조분석 방법론을
함께 연구 할수 있도록 하신 성령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목사님들께서 동참하시여 성서의 깊은 성찰이 있기를 기도 하겠습니다.
많은 은혜 받으시고 하나님만 자랑해 주세요.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시는 것을 아주 좋아 하세요.
주제절
외울 말씀 3장 18절이다.
외울 말씀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3장 1-7절 단락구조분석 【부부 간의 올바른 도리】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3:1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3:1 아내 여러분, 이와 같이 여러분도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비록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남편이라 할지라도 아내의 말없이 행하는 행실을 통하여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3:1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여라.
3:1 Wives, in the same way submit yourselves to your own husbands so that, if any of them do not believe the word, they may be won over without words by the behavior of their wives,
직역: 아내들아 이와같이 너희 자신들의 남편에게 순복 하여라 또한 비록 누구든지 말씀에 순종하지 않더라도 그 아내들의 말 없는 생활방식을 통하여 그 남편들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3:1 Ὁμοίως αἱ γυναῖκες,
이와같이 그 아내들아
ὑποτασσόμεναι τοῖς ἰδίοις ἀνδράσιν,
순복하여라 그(너희) 자신들의 남편들에게 (분사: 현재 수동태 주격 2복)
ἵνα καὶ εἴ τινες ἀπειθοῦσιν τῷ λόγῳ,
위함이라 또한 비록 누구든지 손종하지않더라도 그 말씀을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3복)
διὰ τῆς τῶν γυναικῶν ἀναστροφῆς ἄνευ λόγου κερδηθήσονται
통하여 그 그 아내들의 생활방식으로 없는 말의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 (동사: 직설법 미래 수동태 3복)
주해
▣ 아내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 그리스도인으로서 종된 자의 자세에 대해 설명한 베드로(벧전 2:18-25)는 이제부터는 그리스도인 부부의 윤리에 대해서 언급한다(1-7절). 이러한 교훈은 바울 서신에서도 나타나는데 1-6절 사이에서는 특히 믿지 않는 남편과의 관계에서 아내들이 지녀야 할 태도에 대해서 교훈하고 있다. '이와 같이'(호모이오스)는 전장에서 그리스도인이 제도에 대하여, 또는 가정에서 종이 주인에 대하여 순복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을 말한다.
▣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구원을 얻게하려 함이니. - 믿지 않는 남편과의 관계에서 아내가 순종해야 하는 목적에 대하여 설명하는 것으로 그것은 남편의 구원에 있다는 것이다. '도'와 '말'을 가리키는 헬라어는 모두 '로고스'이다. 하지만 전자에는 관사 '토'가 붙어 있어 복음을 가리키며, 후자는 관사가 없으므로 '아내들의 말'을 가리킨다. 여기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복음에 대하여 순종치 않는 남편들에게 말로써 복음을 전하기보다는 그들에게 순종하는 행동이나 생활 방식을 통하여 전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불신 남편에 대한 아내의 태도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교훈을 준다. 우리의 신앙이 우리의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친척 또는 이웃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 그것은 열 번의 말이나 설교로 되기보다는 우리의 생활 속에서 나타나는 겸손의 태도를 통해서 보다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입술을 통해서가 아닌 행동을 통하여 이웃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것이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3:2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3:2 그들은 여러분의 경건하고 순결한 행실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3:2 이는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이라도, 너희가 두려움으로 행하는 정결한 행실을 보고, 말이 아니라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다.
3:2 when they see the purity and reverence of your lives.
직역: 너희의 두려움 가운데 순수한 생활방식을 지켜본다.
3:2 ἐποπτεύσαντες τὴν ἐν φόβῳ ἁγνὴν ἀναστροφὴν ὑμῶν.
지켜 보고 그 가운데 두려움 순수한 생활 방식을 너희의 (분사: 과거 능동태 주격 복수)
주해
▣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 - 본절을 직역하면 '너희의 두려워하는 중에서의 청결한 행위를 봄이라'이다. 즉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신앙에서 나오는 정결한 행위를 말한다. 이러한 말들이 그리스도인 아내들에게 남편을 무서워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은 분명히 아니며, 하나님에 대한 '경건한 두려움'이 그들의 삶의 주요 동기가 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봄이라'(에포프튜산테스)는 '주의 깊게 관찰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이 말은 벧전 2:12에서 비방하는 불신자들이 그리스도인들의 선한 행실을 지켜본다고 할 때 사용되었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3:3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3:3 여러분은 머리를 치장하거나, 금붙이를 달거나 옷을 차려 입거나 하는 겉치장을 하지 말고,
3:3 너희는 머리를 땋거나, 금 장식을 달거나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치장하지 말고,
3:3 Your beauty should not come from outward adornment, such as elaborate hairstyles and the wearing of gold jewelry or fine clothes.
직역: 너희는 외모로 머리털들을 땋거나, 금들로 둘러차거나 또는 옷들을 입음으로 치장하지 말라
3:3 ὧν ἔστω οὐχ ὁ ἔξωθεν ἐμπλοκῆς τριχῶν
너희는 되어라 아니 그 외모로 땋거나 머리털들의 (동사: 명령법 현재 능동태 3단)
καὶ περιθέσεως χρυσίων ἢ ἐνδύσεως ἱματίων κόσμος,
그리고 둘러차거나 금들로 또는 입음으로 옷들을 치장하지
주해
▣ 단장.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코스모스'이다. 흔히 알고 있듯이 이 단어는 보통 '세상' 또는 '우주'로 번역되나 고전 헬라어의 용법에서는 '장식'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본절에서는 후자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 외모로 하지 말고. - 베드로는 장신구의 적당한 사용을 금하지 않았으며, 예수께서도 단장에 대해 엄격하거나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내면의 아름다움임을 강조하기 위해 기록한 것이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당시의 로마의 부인들은 장식을 요란하게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주로 모셨음에도 그런 것에 큰 가치를 두곤하였다. 이러한 내용으로 보아 이 권고를 듣는 회중 가운데는 유복한 여인들도 많았음을 알 수 있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3:4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3:4 썩지 않는 온유하고 정숙한 마음으로 속 사람을 단장하도록 하십시오. 이것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값진 것입니다.
3:4 오히려 마음에 숨은 자를 온유하고 안정된 영의 썩지 않을 것으로 치장하여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매우 값진 것이다.
3:4 Rather, it should be that of your inner self, the unfading beauty of a gentle and quiet spirit, which is of great worth in God’s sight.
직역: 오직 그 썩지 아니하는 온유하고 조용한 심령의 숨은 마음의 사람은 이것이 하나님의 앞에서 매우 값진 것이다.
3:4 ἀλλ᾽ ὁ κρυπτὸς τῆς καρδίας ἄνθρωπος
오직 그 숨은 그 마음의 사람은
ἐν τῷ ἀφθάρτῳ τοῦ πραέως καὶ ἡσυχίου πνεύματος,
으로 그 썩지아니하는 것 그 온유하고 그리고 조용한 영(심령)의
ὅ ἐστιν ἐνώπιον τοῦ θεοῦ πολυτελές.
이것 이다 앞에서 그 하나님의 매우값진 것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3단)
주해
▣ 마음에 숨은 사람. - 본 구절은 머리, 보석, 옷 등의 외적인 장식과 대조되는 '품성' 혹은 '인격'으로 표현되는 기독교 여인들의 참된 성격을 말한다. 이 말은 바울의 '속 사람'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바울이 말한 '속사람'은 육체와 대조되는 '영혼'을 가리키는 반면, 본구절의 '마음에 숨은 사람'은 '육체의 행위'와 대조되는 영혼의 동작인 '인격'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 - '숨은 사람'이 단장해야 할 것들이다. 여기서 '온유'는 남편의 부당한 요구와 훼방에 대해 벌컥 화를 내지 않으며, 응수하지 않으며, 거친 말도 공손하고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를 말한다. 그리고 '안정한 심령'은 고요하고 침착하며 그 자신 스스로 평화롭고 주위에 평화를 퍼뜨리는 것으로 남편과의 생활 전반에서 나타나는 꾸준한 태도를 가리킨다. '심령'(프뉴마)은 베드로가 지금까지 성령을 말하는 데 사용하였으나, 본절에서는 사람의 '기질', '성질'을 의미한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3:5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3:5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던 거룩한 여인들도 이와 같이 자기를 단장하고 자기의 남편에게 순종하였습니다.
3:5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여자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복종함으로 스스로를 치장하였다.
3:5 For this is the way the holy women of the past who put their hope in God used to adorn themselves. They submitted themselves to their own husbands,
직역: 왜냐면 거룩한 여자들도 전에 하나님으로 부터 소망하는 여자 자신들을 치장하였다. 이와같이 자신들에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였다.
3:5 οὕτως γάρ ποτε καὶ αἱ ἅγιαι γυναῖκες
이와같이 왜냐하면 전에 역시 그 거룩한 여자들도
αἱ ἐλπίζουσαι εἰς θεὸν ἐκόσμουν ἑαυτὰς, (동사: 직설법 미완료 능동태 3복)
그 소망 하는 부터 하나님 치장하였다 여자자신을 (분사: 현재 능동태 주격 복수)
ὑποτασσόμεναι τοῖς ἰδίοις ἀνδράσιν,
복종 하게 되며 그 자신들을 남편들에게 (분사: 현재 수동태 주격 복수)
주해
▣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자기를 단장하였으니. - 아내들에게 자기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단장할 것을 권면하는 저자는 이제 본절과 다음절에서는 구약 성경에서 순복함으로 단장한 여인의 구체적인 실례를 들어 자기주장에 대한 권위를 높이고 있다. 저자가 '거룩한 여인'이라고 부르는 이들은 그들의 행동이 윤리적으로 선하거나 덕망이 높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않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다는 점에서 그와 같이 부른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께 소망을 둔 여인들은 생활 속에서도 값비싼 보석이나 장식들로 단장한 것이 아니라 남편에게 순복하는 삶을 통하여 자신을 단장하였던 것이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3:6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
3:6 마치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인이라고 부르면서 그에게 순종한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도 선을 행하고 아무리 놀랄 만한 일에도 무서워하지 않으면 사라의 딸들이 될 것입니다.
3:6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부르며 그에게 순종한 것과 같이, 너희가 선을 행하며 어떤 무서운 일에도 두려워하지 않으면 그 여자의 딸들이 된 것이다.
3:6 like Sarah, who obeyed Abraham and called him her lord. You are her daughters if you do what is right and do not give way to fear.
직역: 사라가 그 아브라함에게 순종하였던것 같이 주라 부르면서 그를 너희가 선을 행하면서 아무일에도 깜짝 놀라지 아니하고 두려워 하지 아니하면서 그의 자녀가 되었다.
3:6 ὡς Σάρρα ὑπήκουσεν τῷ Ἀβραὰμ
같이 사라가 순종 하였던 그 아브라함에게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단)
κύριον αὐτὸν καλοῦσα
주라 그를 부르면서 (분사: 현재 능동태 주격 단수)
ἧς ἐγενήθητε τέκνα ἀγαθοποιοῦσαι (분사: 현재 능동태 주격 2복)
그의 너희가 되었다 자녀들아 선을 행하면서 (동사: 직설법 과거 수동태/디 2복)
καὶ μὴ φοβούμεναι μηδεμίαν πτόησιν.
그리고 아니하면서 두려워하지 아무일에도아니하고 깜짝 놀라지 (분사: 현재 중수디 주격 2복)
주해
▣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같이. - 전술한 '거룩한 여인'의 대표로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꼽는다. 그리고 그녀의 여러 특성 중 아브라함에 대한 순종적 자세를 지적한다. 본절은 창 18:12에서 인용한 것으로, 본래 사라는 아브라함의 이복 누이 동생이었으며, 신약에서 아브라함이 '모든 믿는 자의 조상'으로 간주되는 것처럼 사라 또한 그들의 어미로 간주되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아브라함에게 복종을 다하여 '주'라고 불렀다. 여기서 '주'로 번역된 헬라어 '퀴리오스'는 벧전 2:18에 있는 '주인'으로 번역된 '데스포테스'와는 구별된다. '데스포테스'가 드물게 그리스도를 지칭할 때 사용되기도 하였으나, 대부분의 경우 가정이나 공적인 생활의 영역 속에서 소유자나 주인으로서 '주'를 의미하는데 이 경우 주권은 때로 가혹함이나 변덕을 수반하기도 하였다. 반면 '퀴리오스'는 보다 광범위하게 사용되며 주권의 합법성과 인정된 권세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단어로 신약에서는 주로 '그리스도'를 지칭할 때 사용된다.
▣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 이 구절에서 '선행'은 주로 자신들의 남편에 대한 복종을 말한다. 반면 후자의 내용은 '사라'와는 별 관계가 없는 내용으로 당시 소아시아 지역의 그리스도인들이 처해 있던 상황 가운데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비 그리스도인 남편과 함께 사는 아내들은 십중팔구는 이교도인 남편에 의해 난폭한 취급을 당할 위험을 갖고 있었다. 여기의 '두려운 일'은 바로 그러한 경우를 말해주며 그리스도인 여인들은 그러한 두려운 상황에도 그 위협에 놀라지 않고 믿음을 지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 그의 딸이 되었느니라. -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다. 그와같이 이방 여인이라 할지라도 남편에게 순복하여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모든 여인들은 사라의 딸이 된다는 것이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3:7 남편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3:7 남편 여러분, 이와 같이 여러분도 아내가 여성으로써 자기보다 약한 그릇임을 이해하고 함께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생명의 은혜를 함께 상속받을 사람으로 알고 존중하십시오. 그렇게 해야 여러분의 기도가 막히지 않을 것입니다.
3:7 남편들아, 이와 같이 아내는 더 연약한 그릇이니, 지식을 따라 동거하고, 또한 생명의 은혜를 함께 상속받을 자이니, 귀하게 여겨라. 이는 너희의 기도가 막히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3:7 Husbands, in the same way be considerate as you live with your wives, and treat them with respect as the weaker partner and as heirs with you of the gracious gift of life, so that nothing will hinder your prayers.
직역: 남편들아 이와같이 지식을 따라 동거하라 더 연약한 그룻과 같이 아내에게 존중하고 또한 생명의 은혜를 함께 상속 받을사람 같이 해주어라 너희의 기도들이 가로 막히지 않기 위함이라
3:7 Οἱ ἄνδρες ὁμοίως, συνοικοῦντες κατὰ γνῶσιν,
그 남편들아 이와같이 동거 하라 따라 지식을 (명령분사: 현재 능동태 주격 2복)
ὡς ἀσθενεστέρῳ σκεύει τῷ γυναικείῳ, ἀπονέμοντες τιμὴν,
같이 더 연약한 그룻과 그 아내에게 해 주어라 존중을 (명령분사: 현재 능동태 주격 2복)
ὡς καὶ συγκληρονόμοις χάριτος,
같이 또한 함께 상속을 받을사람들 은혜의
ζωῆς εἰς τὸ μὴ ἐγκόπτεσθαι τὰς προσευχὰς ὑμῶν.
생명의 위함이라 그 않기 가로 막히지 그 기도들을 너희의 (부정사: 현재 수동태 대격)
주해
▣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 아내들이 가정에서 남편에게 순복해야 할 것을 길게 설명했던 저자는 이제 남편들도 그들의 아내에게 자신의 의무를 다할 것을 권한다. 그런데 남편에 대한 권고는 아내에 대한 권고에 비해 훨씬 간결한데 그것은 아내에 대한 남편의 의무가 가볍기 때문이 아니라. 수신자 가운데 남자들은 모두 그리스도인들이며 고대 사회의 상황에 비추어 보았을 때 보통 그들의 아내와 온 가족들도 그들의 신앙을 따랐을 것이 분명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남편들에게는 믿지 않는 아내를 둔 경우 같은 특수 상황에 대한 도움말이 필요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는 앞에서 말한 아내가 남편들에 대하여 그 의무를 다함 같이 남편들도 아내들에 대하여 의무를 다하라는 것이다.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 '지식'(그노시스)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통찰력과 감성, 곧 그 뜻에 대한 민감한 의식을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결혼 관계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충분히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 여기서 '연약함'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스데네스'(아스데네스)는 육체적 연약함이나 윤리적이며 영적인 연약함 모두에 쓰이나 본절에서는 전자의 의미로 쓰였다. 그리고 '그릇'(스큐오스)은 본래 '항아리', '접시' 그리고 '도구' 등을 의미하나 여기서는 상징적으로 육체적인 연약성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한편 '더' 연약하다는 말에는 남편도 연약하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즉 저자는 아내의 상대적 연약함을 근거로 해서 아내가 응당 받아야 할 관심을 줄 것을 명하고 있는 것이다.
▣ 생명의 은혜를‥‥함께 받을 자. - '생명의 은혜'는 바로 '영생'(永生)이다. 이방인 사회에 있어서는 '성'의 차이가 여성 지위 하락의 원인이었다. 그러나 기독교에 있어서 여자는 비록 더 연약한 그릇이나 영생에 있어서는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
▣ 이는‥‥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 여기서는 남편들이 아내들을 '귀히' 여겨야 할 실제적인 이유가 제시된다. 만일 남편과 아내가 서로 존경과 애정이 없이 함께 산다면, 나아가 남편이 아내를 경멸하고 박해한다면 그런 마음에서는 진정한 기도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한편 여기서 '너희 기도'(프로슈카스 휘몬)를 남편의 기도로 보는 견해와 부부 공동의 기도로 보는 견해가 있다. 본서에서는 오직 남편의 기도를 말하고 있으나 고전 7:5은 아내의 기도도 포함되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러한 권면에는 하나님과의 살아 있는 관계는 다른 사람들과의 바른 관계, 특히 부부 사이의 올바른 관계에 달려 있다는 원리가 내재되어 있다
베드로전서 3장 8-12절 단락구조분석 【고난 중의 성도의 삶의 자세에 대한 원론적 교훈】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3:8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3:8 마지막으로 말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한 마음을 품으며, 서로 동정하며, 서로 사랑하며, 자비를 베풀며, 겸손하십시오.
3:8 마지막으로, 너희는 모두 같은 마음을 품고, 서로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해져라.
3:8 Finally, all of you, be like-minded, be sympathetic, love one another, be compassionate and humble.
직역: 그러나 마지막으로 말한다. 모든사람아 한 마음으로 불쌍히 여기며, 형제를 사랑하며, 동정하며, 겸손하며,
3:8 Τὸ δὲ τέλος πάντες ὁμόφρονες,
그 그러나 마직막으로 모든사람아 한 마음으로
συμπαθεῖς, φιλάδελφοι, εὔσπλαγχνοι, ταπεινόφρονες,
불쌍히여기며 형제를사랑하며 동정하며 겸손하며
주해
▣ 마지막으로. - 1장에서부터 성도의 개인적 생활과 사회적 생활 등에 대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생활지침을 전해주던 저자가 이제 본격적으로 박해에 대비한 성도들에 대한 권면과 격려를 주기에 앞서 다시 그리스도의 말씀과 구약 성경을 인용하여 원론적인 교훈을 주고 있다. 여기서 '마지막으로'(토 텔로스)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는 두 가지 의견이 있다.
첫째는 앞부분의 결론이라는 주장이고(Oecumenius, Clarke),
둘째는 뒤에 이어지는 부분의 서론이라는 견해이다.
이 단어가 전환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특정한 집단들에 대한 앞부분의 권고들에 대한 요약이라기보다는 새로운 단원을 도입시켜 주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이하의 내용에서 저자는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받게되는 고난, 특히 말세가 가까울수록 더욱 극심하게 닥칠 고난을 극복하기 위해 필수적인 성도들의 자세에 대한 실제적인 교훈들을 제시하고 있다.
▣ 마음을 같이 하여. - '마음을 같이 하여'(호모프로네스)는 신약에서 이곳에만 나타나는 낱말로 '같은 것을 생각한다'는 뜻이다. 외부의 박해에 대응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안으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일치는 단순히 인간 간의 일치된 마음으로 하나가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를 받아들이는 자들 간의 일치, 즉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에 의해 조명되어진 공용된 마음을 갖는 것을 말한다.
▣ 체휼하며.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쉼파데이스'는 본절과 롬 12:15에만 사용된 단어로 '함께 겪음'이란 뜻을 가지고 있으며 '동정'이란 뜻의 영어 'sympathy'의 어원이기도하다. 이 말은 다른 사람들과 같은 감정을 가지고 기뻐할 것을 함께 기뻐하며, 슬퍼할 것을 함께 슬퍼하는 것을 말한다.
▣ 형제를 사랑하며. - 일반적인 형제애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 사이에 그리스도 안에서 결속시켜야 할 특별한 사랑이다.
▣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 '불쌍히 여기며'에 해당하는 헬라어 '유스프랑크노이'를 히포크라테스는 '내장이 건강한 사람'이란 뜻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신약에서 이 단어는 인간의 가장 깊은 감정, 특히 사랑과 동정을 의미한다. '겸손하며'(타페이노프로네스)는 하나님과 사람들에 대하여 낮은 마음을 갖는 것으로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가져야 할 태도이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3:9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3:9 악을 악으로 갚거나, 모욕을 모욕으로 갚지 말고, 복을 비십시오. 여러분으로 하여금 복을 이어받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불러 주셨습니다.
3:9 악을 악으로, 또는 욕설을 욕설로 갚지 말고, 도리어 축복하여라. 이는 너희가 복을 유업으로 받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3:9 Do not repay evil with evil or insult with insult. On the contrary, repay evil with blessing, because to this you were called so that you may inherit a blessing.
직역: 악한 것을 대신하여 악한 것을 또는 욕설 대신으로 욕설을 갚지 말라 그러나 도리어 축복하라(칭찬하라,감사하라) 이것을 알고 있는것으로 부르심을 받았다. 왜냐하면 너희가 복을 상속받기 된다면 상속받기 위함이라.
3:9 μὴ ἀποδιδόντες κακὸν ἀντὶ κακοῦ ἢ λοιδορίαν ἀντὶ λοιδορίας,
말라 갚지 악한것을 대신으로 악한것의 또는 욕설을 대신으로 욕설의 (명령분사: 현재 능동태 주격 2복)
τοὐναντίον δὲ εὐλογοῦντες,
도리어 그러나 축복 하라 (칭찬하라, 감사하라) (분사: 현재 능동태 주격 2복)
ὅτι εἰς τοῦτο ἐκλήθητε,
알고있는 것을 으로 이것을 부름을 받았다 (동사: 직설법 과거 수동태 2복)
ἵνα εὐλογίαν κληρονομήσητε.
위함이라 복을 너희가 상속받기 (동사: 가정법 과거 능동태 2복)
주해
▣ 악을 악으로‥‥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 이 구절은 주님의 산상수훈을 반영한 구절이다. 그 사상과 어법은 바울에게서도 아주 유사하게 나타난다. 전절에서 저자는 그리스도인 상호 간의 태도를 말했으나 본절에서는 외부의 박해자를 대하는 태도를 알려준다. 저자는 구약에서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께 속하였으므로 사람이 스스로 그 일을 수행하는 것을 금하고 있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박해를 당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오히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들을 축복하고 하나님께 기도하여 축복하시도록 하라고 권고한다.
▣ 이를 위하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 이것은 벧전 2:21의 반복된 구절로서 거기에서는 불공평한 대우에 대하여 순복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 데 반해, 본절에서는 악을 선으로 갚는 능동적인 행동을 가리키고 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죄인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축복을 주신 것같이 성도들도 우리에게 범죄한 자들에게 선으로 갚아야 하는데 이것이 우리를 부르심의 본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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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3:10 a)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을 보려고 하는 사람은 혀를 다스려서 악한 말을 하지 못하게 하며, 입술을 다물어서 거짓말을 하지 못하게 하여라. (a. 시34:12(70인역))
3:10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못하게 하고,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못하게 하며,
3:10 For, “Whoever would love life and see good days must keep their tongue from evil and their lips from deceitful speech.
직역: 왜냐하면 생명을 사랑하는 것과 좋은 날들을 보는 것을 원하는 자는 혀를 악한 것으로 부터 금하게 하라 그리고 입술들로 교활하게 말하는것을 말고,
3:10 ὁ γὰρ θέλων ζωὴν ἀγαπᾶν (부정사: 현재 능동태)
그 왜냐하면 원하는 생명을 사랑하는 것 (분사: 현재 능동태 주격 단수)
καὶ ἰδεῖν ἡμέρας ἀγαθὰς παυσάτω τὴν γλῶσσαν ἀπὸ κακοῦ (부정사: 과거 능동태)
과 보는 것을 날들을 좋은 금하게 하라 그 혀를 부터 악한 것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단)
καὶ χείλη τοῦ μὴ λαλῆσαι δόλον,
그리고 입술들을 그 말고 말하는 것을 교활한 (부정사: 과거 능동태 속격)
주해
▣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 - 본절에서 12절까지는 시 34:12-16을 인용하여 박해자들에게 보복하지 말고 친절하게 대할 것에 대하여 권면하고 있다. 구약에서 '생명'과 '좋은 날'은 인간의 현세에서 얻을 수 있는 만족들을 나타내지만, 여기서 '생명'은 7절에서처럼 '영원한 생명'을 의미하며 '좋은 날'은 '장래 영광의 날'을 의미한다. 이러한 영생과 장래의 영광에 대한 소망을 가진 자들은 그들을 박해하는 자들을 저주하기 보다는 오히려 축복할 수 있다.
▣ 혀를 금하여‥‥궤휼을 말하지 말고. - 전절의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 것에 대한 구체적 설명이다. 실로 말은 그 사람의 행위를 대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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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3:11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며, 평화를 추구하여, 그것을 좇아라.
3:11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추구하여 이것을 이루어라.
3:11 They must turn from evil and do good; they must seek peace and pursue it.
직역: 그러나 너는 돌아서라 악한 것으로 부터 그리고 너는 선한 일을 행하라 너는 찾으라. 평화를 그리고 그것을 추구하라
3:11 ἐκκλινάτω δὲ ἀπὸ κακοῦ καὶ ποιησάτω ἀγαθόν,
너는 돌아서라 그러나 부터 악한것으로 그리고 너는 행하라 선한일을 (동사1,2: 명령법 과거 능동태 3단)
ζητησάτω εἰρήνην καὶ διωξάτω αὐτήν·
너는 찾으라 평화를 그리고 추구하라 그것을 (동사1,2: 명령법 과거 능동태 3단)
주해
▣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 본절을 직역하면 '악에서 돌아서서 선을 행하라'인데 이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필수적인 행동이다.
▣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 '구함'(제테오)은 열심 있는 구함을, '좇음'(디오코)은 강한 추구를 말하는 것으로, 다른 표현을 빌면 감추어진 보물처럼 이를 구하고 마치 그것이 달아날 것처럼 여겨 그것을 뒤좇으라는 것이다. 화평은 모욕을 당했을 때 적극적 축복을 빌어줌으로써(9절) 얻어진다. 그러나 이것은 불의와 타협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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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3:12 주님의 눈은 의인들을 굽어 보시고, 주님의 귀는 그들의 간구를 들으신다. 그러나 주님은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서는 얼굴을 돌리신다."
3:12 이는 주님의 눈은 의인들을 향하시고 주님의 귀는 그들의 기도에 기울이시나, 주님의 얼굴은 악을 행하는 자들을 대적하시기 때문이다." 라고 하였다.
3:12 For the eyes of the Lord are on the righteous and his ears are attentive to their prayer, but the face of the Lord is against those who do evil.”* / *Psalm 34:12-16
직역: 주님의 두 눈은 의인들 위로 향하여 주님의 두 귀는 그들의 간구를 들으신다. 그러나 주님의 얼굴은 악을 행하는 사람들을 대적하시기 때문이다.
3:12 ὅτι ὀφθαλμοὶ κυρίου ἐπὶ δικαίους
때문이다 그 두 눈은 주님의 위로 의인들을
καὶ ὦτα αὐτοῦ εἰς δέησιν αὐτῶν,
그리고 두 귀는 그의 향하여 간구를 그들의
πρόσωπον δὲ κυρίου ἐπὶ ποιοῦντας κακά.
얼글은 그러나 주님의 대적하시기 행하는 사람들 악한것들을 (분사: 현재 능동태 대격 복수)
주해
▣ 주의 눈은‥‥기울이시되 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시느니라. - 여기서 '주의 눈'은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그의 귀'는 자기 백성의 간구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낸다. 반면에 '주의 낯'은 악인을 향해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나타낸다. 특별히 여기서 '향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피'는 '~에 대항하여'라는 뜻으로 악인을 대적하여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선명하게 묘사되고 있다. 하여튼 본절은 성도가 선을 행해야 할 분명할 이유를 제시해 준다.
베드로전서 3장 13-17절 단락구조분석 【핍박자에 대한 성도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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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 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3:13 여러분이 뜨거운 마음으로 선한 일을 하면, 누가 여러분을 해치겠습니까 ?
3:13 너희가 열심히 선을 행하는 자가 되면 누가 너희를 해치겠느냐?
3:13 Who is going to harm you if you are eager to do good?
직역: 너희가 열심히 선한 일을 하게 된다면, 누가 너희를 해치겠느냐?
3:13 Καὶ τίς ὁ κακώσων ὑμᾶς,
그리고 누구든지 그 해치는 너희를 (분사: 미래 능동태 주격 단수)
ἐὰν τοῦ ἀγαθοῦ ζηλωταὶ γένησθε;
면 그 선한일을 열심히 너희가 된다 (동사: 가정법 과거 중디 2복)
주해
▣ 또‥‥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 본절은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리니 나를 정죄할 자 누구뇨'라는 사 50:9을 반영한 말씀이다. '또'라는 접속사로 보아 이 말은 전절과 연결하여 '하나님의 눈이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하는 자들을 향해 기울이신다면 누가 그들을 해하겠는가?'라는 의미가 분명하다. 그러나 베드로는 비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들을 어떻게 박해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고 또한 앞으로 닥칠 박해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예언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저자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믿음의 사람에게 어떠한 재난이 엄습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육체를 상하게 할 수는 있으나 하나님 안에 있는 자신의 영혼은 결코 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는 구약과 신약 전반에 자주 등장하는 믿음의 인물들의 공통된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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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고
3:14 그러나 정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여러분은 복이 잇습니다. b) "c) 그들의 위협을 무서워하지 말며 흔들리지 마십시오. (b. 사8:12. c. 또는 그들이 무서워하는 것을 무서워하지 마십시오.)
3:14 그러나 너희가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이 있는 자들이니, 그들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말고 흔들리지도 마라.
3:14 But even if you should suffer for what is right, you are blessed. “Do not fear their threats*; do not be frightened.”** / *Or fear what they fear / **Isaiah 8:12
직역: 그러나 너희가 의를 인하여 고난을 받기를 원한다면 복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이 두려워함을 두려워 하지 말며 괴로워 하지도 말라.
3:14 ἀλλ᾽ εἰ καὶ πάσχοιτε διὰ δικαιοσύνην, μακάριοι.
그러나 만일 역시 고난을 받기를 원한다면 인하여 의를 복들이 있나니 (동사: 희구법 현재 능동태 2복)
τὸν δὲ φόβον αὐτῶν μὴ φοβηθῆτε μηδὲ ταραχθῆτε, (동사: 가정법 과거 수동태 2복)
그 그러나 두려워함을 그들의 말며 두려워하면 도말라 괴로워하면 (동사: 가정법 과거 수동태/디 2복)
주해
▣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 헬라어 원문을 보면 본 구절은 희구법(希求法)으로 쓰였다. 그래서 혹자는 이 사실에 근거하여 박해를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닌 먼 미래의 불투명한 가능성으로만 여긴다. 또한 그는 저자가 여기서 교훈하는 것은 박해에 대한 성도의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있을지 모르는 쓸데없는 두려움을 극복하도록 격려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박해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벧전 4:12 이하의 내용과 맞지 않는다. 즉 본절에서 희미하게 가능성으로만 언급된 박해가 벧전 4:12에서 비로소 나타났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을 뿐만 아니라 본서 전체의 분위기도 박해가 현실적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옳지 않다. 따라서 예수의 산상수훈을 반영하고 있는 본절은 성도들이 지금 의를 위해서 고난을 당하지만 그러한 고난 속에서 그들은 해를 당하는 것이 아니라 복 있는 자로 여겨질 것이라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
▣ 저희의 두려워함을 두려워 말며 소동치 말고. - 본절은 사 8:12을 인용한 것으로 성도들로 하여금 그들에게 가해 오는 어떠한 박해에 대해서도 마음이 약해지거나 흔들리지 말고 믿음에 굳게 설 것을 교훈하고 있다. 한편 '저희의 두려워함'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포본 아우톤'의 의미에 대하여 혹자는 '아우톤'을 주격으로 보아 '저희가 느끼는 두려움'으로 해석하기도 하나, 그것은 목적격으로서 '저희가 주는 두려움'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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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3:15 다만 여러분의 마음 속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거룩하게 높이며, 여러분이 가진 소망을 설명하여 주기를 바라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답변할 수 있도록 준비하십시오.
3: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안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모든 자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3:15 But in your hearts revere Christ as Lord. Always be prepared to give an answer to everyone who asks you to give the reason for the hope that you have. But do this with gentleness and respect,
직역: 그러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너희의 마음들 속에 거룩하게 하라. 너희 소망 속에 관한 말씀되어진 이유를 너희에게 묻는 모두에게 답변을 위하여 항상 준비하고,
3:15 κύριον δὲ τὸν Χριστὸν ἁγιάσατε ἐν ταῖς καρδίαις ὑμῶν,
주님으로 그러나 그 그리스도의 거룩하게하라 속에 그(사람) 마음들 너희의 (동사: 명령법 과거 능동태 2복)
ἕτοιμοι ἀεὶ πρὸς ἀπολογίαν παντὶ τῷ αἰτοῦντι ὑμᾶς
준비하고 항상 위하여 답변을 모두에게 그 묻는 너희에게 (분사: 현재 능동태 여격 단수)
λόγον περὶ τῆς ἐν ὑμῖν ἐλπίδος,
말씀되어진 관한 그 속에 너희 소망에
주해
▣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 사 8:13에서 인용한 구절이다. 모스코 사본(K), 레기우스 사본(L), 풀피리안 사본(P)과 같은 곳에서는 '그리스도를'(크리스톤)을 '하나님을'(데온)로 읽고 있다. 이는 아마도 이사야 본문의 영향을 받은 까닭으로 여겨진다. 어느 것을 취해도 무방하나 16절에 비추어 볼 때 한글 개역 성경과 같이 '그리스도'로 표기하는 것이 합당하다. 한편 본구절의 '주'라는 말이 술어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보아 '그리스도를 주로 거룩하게 하고'라고 번역하기도 하나, '주 자신을 거룩하게 하고'(하기아사테)는 70인역으로 보아 '그리스도'는 주에 대한 언급을 분명 히 하기 위해 의도된 동격으로 보는 것이 좋다. 또한 '거룩하게 하라'는 '거룩하신 분으로 인정하라'는 의미이다. 좌우간 두려워하지 않고 소동하지 않을 비결은 마음에 주님을 거룩하게 모심에 있다.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두려움은 우리로 하여금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초월하게 한다.
▣ 너희 속에‥‥항상 예비하되. - 성도들이 직면한 상황이 법정에서의 심문인지, 아니면 박해자들의 집단이나 박해자들에 의한 비공식적 질문인지 결정하기는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그러나 '항상'과 '묻는 자'라는 단어가 법정적이라기 보다는 일상적인 것이며, '대답'과 '이유'라는 말이 법률적인 용어이기는 하나 언제나 그렇게 사용된 것이 아니라는 점과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이란 말이 악의를 가진 사람들의 회의적이고 조소적인 질문들을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성도들이 법정에서 받을 질문이라기보다는 비공식적으로 질문을 받게 되는 상황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한편 여기서 '소망'(엘피스)는 믿음의 대명사로 쓰였으며, '이유'라고 번역된 헬라어 '로고스'는 일반적으로 '말씀'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으나 여기서는 '설명'이란 의미로 쓰였다. 결국 본절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성도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의 소망에 대해서 언제, 어디서든지 질문을 받게 되면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것은 성도 자신을 위할 뿐 아니라 묻는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 '온유'(프라우테스)는 자신을 변호할 때, 자신을 향한 비평자들에 대해서 취해야 하는 태도이다. 반면 '두려움'(포보스)은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경외를 의미한다. 성도가 이런 태도를 가져야 하는 이유는 박해나 외압(外壓) 때문이 아니라 내심(內心)의 경건 때문이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3:16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3:16 그러나 온유와 두려움으로 답변하십시오. 선한 양심을 가지십시오. 그리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여러분의 선한 행실을 비방하는 사람들이 여러분을 비방한 그 일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3:16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져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행한 너희의 선한 행실을 비방하는 자들이 너희를 비방하는 그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는 것이다.
3:16 keeping a clear conscience, so that those who speak maliciously against your good behavior in Christ may be ashamed of their slander.
직역: 오직 함께 온유와 두려움으로 선한 양심을 가지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한 생활방식 때문에 너희가 비방을 받는 동안에 너희을 욕하는 그 사람을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기 위함이라
3:16 ἀλλὰ μετὰ πραΰτητος καὶ φόβου, συνείδησιν ἔχοντες ἀγαθήν,
오직 함께 온유 와 두려움 양심을 가지라 선한 (명령분사: 현재 능동태 주격 복수)
ἵνα ἐν ᾧ καταλαλεῖσθε ὑμῶν καταισχυνθῶσιν (동사: 가정법 과거 수동태 3복)
위함이라 속에 동안 비방을 받다 너희가 부끄러움을당하게하기 (동사: 직설법 현재 수동태 2복)
οἱ ἐπηρεάζοντες ὑμῶν τὴν ἀγαθὴν ἐν Χριστῷ ἀναστροφήν.
그(사람) 욕하는 너희의 그 선한 안에 그리스도 생활방식 (분사: 현재 능동태 주격 복수)
주해
▣ 선한 양심을 가지라. - 저자는 성도들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부당한 형벌과 박해에 대항하는 그들의 최상의 변론은 '선한 양심'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여기서 '양심'(쉬네이데시스)이란 본래 자기 행위의 윤리적 속성에 대한 사람의 내적 의식을 나타낸다 여기서 '선한 양심'이란 일반적으로 인간의 타락한 본성 때문에 죄에 대해 무감각해져 버린 마비된 양심과 달리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들이 갖는 새롭게 된 것으로 본래의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어 하나님 앞에서 선하게 살고자 하는 양심을 말한다. 따라서 '선한 양심'은 성령 안에서 사는 구원받은 자의 특징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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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7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3:17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뜻이라면,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는 것이 악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는 것보다 낫습니다.
3:17 선을 행하다 고난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악을 행하다 고난받는 것보다 낫다.
3:17 For it is better, if it is God’s will, to suffer for doing good than for doing evil.
직역: 왜냐하면 하나님이 원히시는 뜻이라면 선을 행하면서 고난받는 것이 악을 행 할때 보다 더 나음이라.
3:17 κρεῖττον γὰρ ἀγαθοποιοῦντας,
더 나음이라 왜나하면 선을 행하면서 (분사: 현재 능동태 대격 2복)
εἰ θέλοι τὸ θέλημα τοῦ θεοῦ,
만일 원하시면 그 뜻을 그 하나님의 (동사: 희구법 현재 능동태 3단)
πάσχειν ἢ κακοποιοῦντας. (분사: 현재 능동태 대격 2복)
고난 받는 것 보다 악을 행 할때 (부정사: 현재 능동태)
주해
▣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나으니라. - 본절은 고난의 원인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으로 악인들은 자신들이 행한 악행으로 인해 고난을 당하지만, 선을 행하고도 고난을 당하는 자들의 경우는 그 고난이 하나님의 신비로우신 뜻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받는 고난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감지할 수 있다면 그들은 참으로 고난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악인의 고난은 수욕(羞辱)을 가져올 따름이나 선인의 고난은 영광과 많은 결실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 하나님의 뜻일진대. - 본절을 문자 그대로 직역하면 '만일 하나님의 뜻이 그렇다면'으로 동사가 희구법(希求法)으로 쓰여졌다. 그래서 혹자는 본절을 '그런 일이 좀처럼 없는 것이나'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문장으로 이해하고 '고난'이 오직 가정적인 가능성일 뿐이라고 주장을 하나 이러한 주장은 앞에서와 같이 설득력이 없다. 왜냐하면 본 구절과 같은 표현은 헬라어에 있어 조건을 최소화하는 경건한 상투어이며, 또한 본서의 내용은 수신자들 중에 이미 박해와 고난의 환경에 처한 자들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드로전서 3장 18-22절 단락구조분석 【택한 죄인들의 대속을 위한 그리스도의 고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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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8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3:18 그리스도께서도 죄를 사하시려고 단 한 번 결정적으로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곧 의인이 불의한 사람들을 위해서 d) 죽으신 것입니다. 그것은 그가 육으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셔서, e) 여러분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려는 것입니다. (d.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고난을 받으신. e.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우리를)
3:18 그리스도께서도 죄를 인하여 고난을 당하시므로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너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시려는 것이다. 그분께서는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셨으나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다.
3:18 For Christ also suffered once for sins, the righteous for the unrighteous, to bring you to God. He was put to death in the body but made alive in the Spirit.
직역: 참으로 그리스도께서 죄들에 대하여 한 번 고난을 격으셨다. 의인으로 불의한자들을 대신하여 너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기 위함이라. 그러나 한편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신후에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다.
3:18 ὅτι καὶ Χριστὸς ἅπαξ περὶ ἁμαρτιῶν ἔπαθεν,
때문이다 참으로 그리스도께서 한번 대하여 죄들에 고난을격으셨다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단)
δίκαιος ὑπὲρ ἀδίκων, ἵνα ὑμᾶς προσαγάγῃ τῷ θεῷ,
의인으로 대신하여 불의한자를 위하심이라 너희를 그가 인도하기 그 하나님께 (동사: 가정법 과거 능동태 3단)
θανατωθεὶς μὲν σαρκί, ζῳοποιηθεὶς δὲ πνεύματι·
죽임을당하신 후에 한편 육체로 살리심을 받으시고 그러나 영으로 (분사1,2: 과거 수동태 주격 단수)
주해
▣ 그리스도께서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 그리스도인의 삶은 곧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이라고 설명하던 베드로는 이제 그러한 삶의 예로서 '그리스도의 고난 받으심'을 소개한다. 이러한 본절은 신약 성경에서 제시된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에 대한 가장 짧고 간략한, 그러면서도 가장 풍부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요약들 중의 하나이다. 한글 개역 성경에는 나타나 있지 않으나 헬라어 원문에는 '즉', '왜냐하면' 등의 뜻을 가전 접속사 '호티'가 문장 처음에 나오는데 이는 본절이 바로 앞절에서 언급한 성도들이 의를 위해 고난을 감수할 이유를 들고 있음을 말해준다. 즉 그리스도께서 먼저 의를 위한 죽음을 당하신 것같이 그에게 속한 성도들은 의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죄를 위하여'(페리 하마르티온)는 70인역에서 속죄제를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되었는데, 여기서는 그리스도의 죽음이 대속적 죽음이었음을 암시한다. 한편 '한번'에 해당하는 헬라어 '하팍스'는 '단 한 번으로 영원히'라는 의미로서 구약의 속죄 제사가 항상 반복된 데 반해 그리스도의 죽음은 한번으로써 영원히 그리고 완전히 속죄하셨음을 나타낸다. 완전히 무죄한 존재이신 그리스도 자신이 고난을 받으시고 자신을 죽음에까지 바치셨으니 우리도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은 필수적인 것이며 또한 그와 같이 고난 받는 자들은 그분을 닮아가는 것이다.
▣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원문을 직역하면 '의가 불의를 대신하여'이다. 여기서 '의'(디카이오스)는 단수로서 그리스도를 나타내며 '불의'(아디콘)는 복수형으로서 '전 인류'를 가리킨다.
▣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 바티칸 사본(B)을 비롯하여 다른 몇몇 사본들에는 '우리를' 대신에 '너희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를'이 보다 나은 사본적 권위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대체로 회중에 의해 암송될 기도문에 자연스럽게 조화된다. 본 구절은 구약적 배경에서 설명이 가능한데 제사장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듯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성도들이 제사장이 된다는 해석과,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물이 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하여튼 그리스도의 고난 받으심과 죽으심은 하나님과 인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죄의 장벽을 제거하였으며 그 결과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나아가심처럼 성도들도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게 하셨다.
▣ 육체로는‥‥영으로는. - 본절의 '육체'와 '영'의 실제적 의미에 대해서 많은 잘못된 생각이 있다. 첫째는 여기서의 '영'이 삼위 중 한분이신 '성령'을 가리킨다는 견해이고, 둘째는 '육체'와 '영'을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본절에서의 '육체'(사륵스)는 일반적 의미의 육체를 말하고, '영'(프뉴마)은 그리스도의 인간적 육체에 대조되는 그의 인간적 영을 지칭한 것이다. 그러나 본절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육적인 것이 아닌 영적인 것임을 말하지 않는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한정된 육체에서 죽으셨으나 영원한 영성으로 죽지 않으시고 종내에는 육체를 포함하여 완전하게 부활하셨음을 말한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3:19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3:19 그는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도 가셔서 선포하셨습니다.
3:19 주께서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가셔서 선포하셨다.
3:19 After being made alive,* he went and made proclamation to the imprisoned spirits - / *Or but made alive in the spirit, 19 in which also
직역: 또한 그 영으로 감옥 안에 있는 영들에게 가신 후에 주께서 전파하셨다.
3:19 ἐν ᾧ καὶ τοῖς ἐν φυλακῇ πνεύμασιν πορευθεὶς ἐκήρυξεν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단)
으로 그영 또한 그 안에있는 감옥 영들에게 가신 후 그가-전파하셨다 (분사: 과거 수동태/디 주격 단수)
주해
▣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 본절은 카톨릭에서 주장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옥강하설'(地獄降下設)의 근거가 되는 구절이다. '예수의 지옥강하설'과 관련해서는 본장 자료노트를 참조하라. 그러나 본절은 결코 예수 그리스도의 지옥강하를 증거하는 구절이 아니다. 한편 본절의 해석에 있어서는 많은 견해가 있지만 잘못된 해석으로 문제을 야기 시킨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3: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3:20 그 영들은 옛적에 노아가 방주를 짓고 있는 동안에 곧 하나님께서 아직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하지 않던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방주에 들어감으로써 물에서 구원받은 사람은 겨우 여덟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3:20 그들은 전에 노아가 방주를 예비하던 날 동안 하나님께서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불순종했던 자들이다.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던 사람이 적으니 여덟 명뿐이다.
3:20 to those who were disobedient long ago when God waited patiently in the days of Noah while the ark was being built. In it only a few people, eight in all, were saved through water,
직역: 그들이 전에 순종치 아니한 노아가 방주를 예비되던 날들 중에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고 그 때에 한차례 몹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방주 안으로 적은 사람들이 들어갔다. 그것이 물을 통하여 여덟 영혼들이 온전히 구원을 받았다.
3:20 ἀπειθήσασίν ποτε,
순종치 아니한 전에 (분사: 과거 능동태 여격 복수)
ὅτε ἀπεξεδέχετο ἡ τοῦ θεοῦ μακροθυμία ἐν ἡμέραις
때에 한차례 몹시기다리고 있었다 그 하나님의 오래참고 중에 날들 (동사: 직설법 미완료 능수디 3단)
Νῶε κατασκευαζομένης κιβωτοῦ εἰς ἣν ὀλίγοι,
노아가 예비 되던 방주를 안으로 그(방주) 적은(사람들이) (분사: 현재 수동태 속격 단수)
τοῦτ᾽ ἔστιν ὀκτὼ ψυχαί, διεσώθησαν δι᾽ ὕδατος
그것이 이다 여덟 영혼들이 온전히구원을 받았다 통해서 물 (동사1,2: 직설법 현재 능동태 3단)
주해
▣ 그들은 전에‥‥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 본절은 앞에서(19절) 말한 '옥에 있는 영들'의 정체에 대하여 밝혀주고 있는데 이들은 노아 시대에 하나님이 참고 기다리실 때 노아를 통하여 전파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자들이다. 성경에서 노아의 홍수(창 6,7장)는 종말론적인 심판을 예시하는 것으로 결국 여기서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복음을 전파하시고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성취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듣지 아니하는 모든 불순종하는 자들을 예표한다.
▣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 - 여기서 '~에서'라고 번역된 헬라어 '에이스'는 문자적으로 '~속으로'라는 뜻으로, 방주 안으로 들어가 그 안에서 구원을 얻는다는 이중적인 의미를 나타낸다. 또한 '물로 말미암아'(디 휘다토스)는 문자적으로는 정확한 번역이지만 의미상으로는 오히려 '물에서'(에크 휘다토스) 구원을 얻었다는 것이 맞는 표현으로, 이는 다음절(21절)의 세례를 설명하는데 더욱 적절하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3:21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3:21 그것은 지금 여러분을 구원하는 침례를 미리 보여 준 것입니다. 침례는 육체의 더러움을 씻어 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힘입어 선한 양심을 가지려고, 하나님께 드리는 호소입니다.
3:21 물은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 곧 세례이니, 이것은 육체의 더러움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호소하는 것이다.
3:21 and this water symbolizes baptism that now saves you also - not the removal of dirt from the body but the pledge of a clear conscience toward God.* It saves you by the resurrection of Jesus Christ, / *Or but an appeal to God for a clear conscience
직역: 이 물은 이제 너희를 위한 구원의 표징이니 세례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을 통하여 육체의 더러움을 제거함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대답이니라.
3:21 ὃ καὶ ὑμᾶς ἀντίτυπον νῦν σῴζει βάπτισμα,
이 물은 역시 너희를위한 표징이니 이제 구원이다 세례는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3단)
οὐ σαρκὸς ἀπόθεσις ῥύπου ἀλλὰ συνειδήσεως ἀγαθῆς ἐπερώτημα εἰς θεόν,
아니요 육체의 제거함이 더러움의 오직 양심의 선한 대답이니라 향한 하나님을
δι᾽ ἀναστάσεως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통하여 부활 예수 그리스도의
주해
▣ 물은‥‥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 본절에서 저자는 노아의 홍수를 통하여 신령한 구원의 표인 세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즉 노아의 홍수는 세례의 예표라는 것이다. 노아의 가족은 옛 세계가 그 죄 값으로 물속에서 멸망되었을 때 구원받아 새 세계로 들어갔다. 그와 같이 세례는 우리의 죄로 말미암은 옛사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매장되고 그의 부활에서 그와 더불어 다시 사는 중생의 표이다. 또한 노아의 방주는 교회의 가장 훌륭한 예표이다.
▣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세례라는 의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통해서이다. 만약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의 세례도 무익한 것이다. 세례는 성도가 그리스도와 연합된 것에 대한 외부적인 증거요 확인인 것이다.
▣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 본절은 또 하나의 난해 구절로서 다음과 같이 여러 방법으로 번역할 수 있다. '선한 양심이 하나님께 무엇을 구함', '선한 양심이 하나님께 계약함', '선한 양심이 하나님께 대답함',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구함' 등이다. 여하튼 본절은 세례의 소극적 특성을 뛰어넘어 적극적인 특성을 설명하는 것이다. 즉 '세례'는 소극적으로 우리의 죄악된 요소를 씻어 없애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선한 양심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즉 하나님과의 신비로운 교제에 들어가는 것을 뜻한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3:22 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느니라
3:22 그리스도께서는 하늘로 올라가셔서 하나님의 오른쪽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고 있습니다.
3:22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오르시어 하나님 오른쪽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권능들이 그분께 복종한다.
3:22 who has gone into heaven and is at God’s right hand - with angels, authorities and powers in submission to him.
직역: 그는 하늘 안으로 가신 후에 하나님의 오른편 안에 계신다. 천사드르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분께 복종하게 되었다.
3:22 ὅς ἐστιν ἐν δεξιᾷ τοῦ θεοῦ πορευθεὶς εἰς οὐρανὸν
그는 계다 안에 오른편 그 하나님의 가신 후에 안으로 하늘의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3단)
ὑποταγέντων αὐτῷ ἀγγέλων καὶ ἐξουσιῶν καὶ δυνάμεων.
복종하게 되어 그에게 천사들 과 권세들 과 능력들이 (분사: 과거 수동태 속격 복수)
주해
▣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 의를 위해 고난 받는 자의 실제인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관련하여 설명한(18절) 저자는 이제 본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영광을 설명한다. '우편'은 유대인의 사상 배경 속에서는 최고의 위엄과 존귀와 권력의 자리를 가리키는데 이는 바로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여 고난 받으신 주님께서 이제는 하늘에 오르셔서 최고의 위엄과 존귀와 영광을 받게 되셨음을 뜻한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본받아 선을 행하며 고난을 받는 성도들 또한 전능자의 우편에서 존귀케 되신 그의 영광에도 동참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이에 성도는 고난 후의 영광을 생각하며 선을 행함으로써 고난 받는 일을 결코 두려워하거나 또한 고난 받는 일로 인해 낙심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 천사들과‥‥저에게 순복하느니라. - 여기서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은 선한 천사나 악한 천사의 구별 없이 하늘에 있는 모든 영적 존재들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본절은 주님께서 모든 것 위에 초연히 군림하시는 최고의 영원된 자리에 계심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