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지 벨
19세기 말 영국의 인기 작곡가였던 해리 데커(Harry Dacre)는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자전거를 갖고 갔다. 미국 세관에서는 그의 자전거에 세금을 부과했다. 화가 난 그는 친구에게 그 사실을 말하면서 불평을 했다. 그러자 그 친구는 이렇게 얘기했다.
"2인용 자전거를 가져오지 않은 게 다행이네. 그랬더라면 두 배로 세금을 낼 뻔했네."
데커는 친구가 말한 '두 사람을 위한 자전거'라는 말이 인상적이어서 이 말을 노래에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1892년 〈두 사람을 위한 자전거(Bicycle Built For Two)〉라는 노래를 작곡했다. 이 곡은 원래의 제목보다 〈데이지 벨(Daisy Bell)〉이라는 제목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데이지 벨〉은 런던에서 큰 인기를 얻은 뒤 미국에서도 유명해졌고, 지금도 널리 불리고 있다. 이 곡의 가사는 한 젊은 남성이 데이지라는 여성에게 애틋한 마음을 전하면서 구혼하는 내용이다. 그는 데이지에게 2인용 자전거에 앉은 모습이 아름다울 것이라고 노래한다.
두 사람이 앞뒤로 나란히 탈 수 있도록 돼 있는 2인용 자전거를 '탠덤 자전거(Tandem Bicycle)'라고 부른다. '탠덤'은 원래 두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를 일컫는 말인데 2인용 자전거에도 탠덤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2인용 자전거라고 하면 흔히 공원에서 빌려주는 조잡한 자전거를 생각할 수 있지만 오늘날에는 첨단 소재와 최신 기술을 적용한 아주 세련된 2인용 자전거가 나오고 있다. 탠덤은 레저용뿐 아니라 여행용, 경기용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탠덤이 널리 보급된 나라에는 탠덤 클럽이 많고 대회도 자주 열린다. 탠덤 경기는 한때 올림픽 정식 종목이었다.
캡틴과 스토커
탠덤은 두 사람이 타기 위한 자전거이기 때문에 혼자 타는 자전거와는 다른 점이 많다. 우선 두 사람의 무게를 견딜 수 있도록 바퀴와 차체를 튼튼하게 만들기 때문에 자전거가 더 무겁고 자축도 길다. 긴 차축 때문에 탠덤은 훨씬 더 안정감이 있다. 탠덤은 여러 가지 장점이 있는데 그중에 하나는 힘은 덜 들지만 더 빠르게 갈 수 있다는 점이다. 앞에 탄 사람이 바람을 막아주기 때문에 뒤에 탄 사람은 공기 저항을 줄일 수 있고 페달을 밟는 힘은 두 배가 되기 때문이다.
탠덤의 앞자리에 타는 사람을 캡틴(Captain)이라고 부르고 뒤에 타는 사람은 스토커(Stoker)라고 한다. 스토커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이 함께 자전거를 타는 두 사람은 결코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는 것이다. 탠덤을 타는 두 사람에게는 각자 역할이 있다. 캡틴은 앞을 보고 달려가며 자전거의 방향을 전환하고 브레이크를 작동한다.
자전거를 운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뒤에 타는 스토커는 좀더 여유가 있다. 앞을 볼 필요가 없기 때문에 다른 일을 할 수도 있다. 스토커는 지도를 보기도 하고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또 주위 사람들과 대화를 할 수도 있다. 탠덤을 타는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역할을 하면서도 같은 방향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다.
탠덤을 탈 때는 한 가지 기술이 필요하다.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뒷좌석에 앉은 스토커는 앞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캡틴은 코너를 돌 때나 장애물이 있을 때 대화로 스토커에게 알려야 한다. 울퉁불퉁한 길을 지날 때 충격을 잘 흡수할 수 있도록 서스펜션 같은 장치나 두꺼운 타이어를 사용해 스토커가 훨씬 편하게 탈 수 있도록 하기도 한다. 탠덤의 단점이라면 자전거의 차체가 길기 때문에 차가 많은 곳에서는 타기가 어렵고 운반이나 보관이 어렵다는 점이다.
함께 나누는 추억
탠덤은 두 사람이 함께 운동을 하기에도 아주 좋다. 일반적으로 두 사람이 운동을 같이 하는 것은 쉽지 않은데 그것은 서로의 실력이 차이가 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 사람은 잘하는데 다른 사람이 못 한다면 두 사람이 보조를 맞추기가 쉽지 않다. 실력이 비슷해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이 서로 경쟁심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탠덤은 실력 차이가 나더라도 충분히 함께 운동을 할 수 있다. 이런 점 때문에 부부가 함께 운동하기에 아주 적합하다. 탠덤은 한 사람이 신체적인 장애를 갖고 있을 때도 함께 운동을 할 수 있다.
탠덤은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탠덤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회복시켜주고 친밀하게 해준다. 오늘날의 가정은 가족들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고 서로간의 관계는 단절되고 있다. 탠덤은 현대 가정의 단절된 관계를 회복시키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 두 사람이 함께 탠덤을 타면 자전거를 타는 시간만큼은 함께 보낼 수 있다. 그러면 자전거 위에서 편안하게 대화할 수도 있다.
또 새로운 것을 보고 느끼면서 공동의 추억을 만들 수 있다. 부부가 탠덤을 가장 많이 구입하는 때는 바로 두 사람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시기나 인생의 전환점에 이를 때다. 은퇴를 하거나 자녀들이 집을 떠나 부부만 남게 됐을 때도 탠덤을 많이 산다. 결혼기념일에도 탠덤을 많이 산다. 이런 시기에 탠덤을 사는 것은 두 사람이 탠덤을 통해 서로의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서다. 탠덤은 두 사람을 단단하게 결속시키는 역할을 한다.
탠덤은 가장 낭만적인 자전거다. 사람들은 탠덤을 타고 가는 한 쌍의 남녀를 보면 자연스럽게 미소를 짓는다. 무엇보다 탠덤이 좋은 점은 탠덤을 타고 가면 결코 외롭지 않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