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유 오운은 오석복의 증손자이다.
西臺醉裏。次呈龜鶴主人。五首○癸卯
서대(西臺)에서 취하는 동안 귀학정 주인의 시에 차운하여 드립니다.
淸遊雨散憶前昏。맑은 날 놀다가 비가 와 헤어졌던 일이 생각나는 저녁,
奇會今宵聒醉言。귀한 만남인데 오늘 밤 취해서 떠들어보세
從此管絃魚慣聽。지금부터 풍악(管絃)을 울리면 물고기도 듣기 좋아하겠지만
誰知在昔作荒村。밤엔 적막한 마을이 되는 것을 누가 알겠는가
暮鴉歸盡日將昏。저녁 까마귀 다 돌아가고 날이 저물 무렵
鶴駕晴容靜不言。학가(산)[1]은 청명한 얼굴로 고요히 말이 없네
絶境爲公天乞與。공[2]을 위해 절경(아름다운 경치)을 하늘이 빌려주었나
况從遊老在鄰村。마침 이웃에 있는 노인[3]도 따라 같이 노네
一臺煙月自晨昏。온 대(西臺)를 비추는 희뿌연 달이 밤새(晨昏) 그대로인데
今古遊人幾永言。예나 지금이나 노는 이, 몇 번이나 시를 읊조리네
莫道名區近城市。경치 좋은 곳이 성시(城市, 도시)와 가깝다 말하지 마라
蒼屛遮斷別成村。푸른 산이 병풍처럼 막은 곳에 따로 달리 마을을 이룬다네[4]
一上高臺洗眼昏。높은 대(龜臺)에 올라 흐린 눈을 씻으니[5]
欲竆模寫轉忘言。묘사할 것이 한없이 많아 말을 잊은 채 둘러보네
平蕪遠峀俱詩料。거친 벌판과 먼 산봉우리 모두 시의 재료(詩料)요
魚稻郊煙自一村。물고기와 벼, 들판과 연기는 절로 한 마을이 된다네[6]
雷斧何秊斬老虬。우뢰 도끼는 언제 늙은 용(老虬)을 베었는지[7]
斷溪中注作龍門。나뉜 시내는 흘러서 용문(龍門)[8]이 되었다네
化工應賀公爲主。조물주(化工)가 공이 주인됨을 응당 칭찬하니[9]
莫喚龜臺托後昆。구대(龜臺)[10]를 후세에 맡긴다 외치지 마라[11]
[1] 학가산(鶴駕山): 예천과 안동의 경계에 있는 산. 귀학정 정자에서 남쪽으로 멀리 학가산이 보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2] 귀학정 주인 백암(김륵) 선생을 지칭한다.
[3] 오운 자신을 지칭한다.
[4] 번화한 도시가 아닌 곳(영주 서대를 지칭)에 별유천지(別有天地, 별세계)가 있음을 말한다.
[5] 누각에 올라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하니, 자신의 눈이 맑아지는 듯하다는 의미이다.
[6] 물고기(魚)는 강을, 벼(稻)는 논을, 연기(煙)는 밥 짓는 집을 상징하며, 이것들이 郊(들)과 함께 하나로 모여 마을 풍경을 이루고 있음을 뜻한다.
[7] 늙은 용은 서천이 구불구불 흐르는 모습을 뜻한다. 영주 서천(西川)은 귀학정 옆으로 흘렀던 강으로, 내성천(乃城川)으로 합류한다. 두 갈래로 나뉘어 흐르는 강물의 모습을 용이 베어져 쪼개졌다고 은유적으로 표현하였다.
[8] 경북 예천 용문면을 말한다.
[9] 주변의 경치가 좋은 구대(龜臺)에 귀학정을 잘 지었다고 칭찬하는 의미이다.
[10] 귀학정이 있는 서구대를 의미한다.
[11] 화자 오운이 생각하기에 ‘구대(龜臺)는 귀학정과 아름다운 자연 경관이 어울려 완벽한 작품으로 완성되었으므로 다음 세대가 추가로 더 고칠 것이 없다’는 의미이다.
한편, 영주의 고지도(古地圖)인 ‘輿地圖(여지도, 제작자 미상)’에는 서구대(西龜臺)와 동구대(東龜臺) 사이에 물이 흐르고, 서구대 아래 귀학정(龜鶴亭)이, 또 멀리 남쪽에는 학가산(鶴駕山)이 있음을 표시하고 있다. 다음은 輿地圖에서 영주(榮川, 영천)의 일부 지역을 확대한 것이다.
지도 출처: 규장각(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