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하는 마음으로 수도산을 올랐네. ▣
▲수도산에서 바라본 가야산 방향 풍경.
◐ 프롤로그 ◑
첫마디의 ‘끝’을 보고, 곧 ‘시작’하는 둘째 마디.
땅속의 긴 기다림 끝에 세상과 마주한 새싹들처럼
수도지맥 스토리에도 갓 살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수도지맥을 걸으며 특별한 하루를 경작해 보렵니다.
누구에겐 당연함이 누구에겐 특별함이기도 하지요.
속도와 거리 욕심을 털고 산행 본질에 충실하렵니다.
◐ 산행 얼개 ◑
▶언제 : 2023년 5월 14일 (일요일).
▶누구랑 : 뫼또메종주클럽 여러분과 함께.
▶어디를 : 수도지맥 두 번째 마디.
(배티재~거말산~우두령~시코봉~수도산~구곡령~수도리).
▲오늘 산행의 출발점은 배티고개.
오늘, 눈으로 본 것을 가슴으로 들여 제대로 발효시키고 싶습니다.
▲입산하는 초입,
저 멀리서 수도산이 유혹의 미소를 흘리고 있네요.
▲‘잘 듣는 것이 잘 말하는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 산길을 걸으면서, 듣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을 키웁니다.
내가 간절해지면 결국 상대도 속에 깃든 진심을 듣게 되겠지요.
▲까까머리 벌목지대는 연두색 새순으로 단장을 하는 중이고.
▲출발지점에서 500m 지점, 거말흘산 정수리를 향해 계속 상승중.
▲지나온 길 휘이 돌아보면서,
징징거리며 살지 말자고 마음을 단도리합니다.
징징거리는 사람은 정작 타인의 울음은 듣지 못하는 법이니.
▲감자에서 싹이 나면 그게 감자의 눈이 되지요.
감주재를 넘어가는 시선에 ‘내감주’라는 싹이 돋아납니다.
▲저 모퉁이를 돌아가면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며 반겨줄까나.
▲(631.5m봉).
▲올라야 할 거말산 고스락을 바라봅니다.
도달하고픈 목표가 있다는 건 행복한 거지요.
▲중간중간의 안부나 고개는 도약을 위한 잠깐의 머무름.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면서 땀의 소중함을 체험합니다.
삶의 허무에 최면을 걸고, 헤진 곳에 색을 덧대려는 안간힘이죠.
▲(거말산 오름길 돌아보기 1).
삼봉산과 대덕산이 키재기를 하며 기싸움을 하고.
▲(거말산 오름길 돌아보기 2).
국사봉 뒤에 대덕산, 대덕산 뒤에 삼도봉, 민주지산......
▲(우두령 갈림지점). 50~60m만 더 오르면 거말산 고스락.
이 지점에서 왼쪽 우두령으로 내려서야 시코봉 루트가 열립니다.
▲바람은 나무에 사무치고 노래는 마음에 사무치고,
고스락을 목전에 둔 산사람의 발걸음은 행복감에 사무칩니다.
▲(거말산 고스락 풍경 1). 고스락만 산이 아니지요.
들머리 출발지점부터 고스락, 날머리 하산지점까지 모두가 산이지요.
처음부터 어른이었던 사람은 없는 것처럼. 애가 크면 어른이 되는 것처럼.
▲(거말산 고스락 풍경 2). 멋진 데크시설이 우리를 반겨주네요.
▲(거말산 고스락 풍경 3).
전망대에서 멍하니 바로 위 고스락을 올려다 봅니다.
뜬금없이 뜬구름 같은 인생이라는 생각이 스쳐갑니다.
▲(거말산 고스락 풍경 4).
곰 한 마리, 거말산을 끌어안고 거말산은 자기 거라 우겨댑니다.
▲(거말산 고스락 풍경 5). 거말산의 정식 명칭은 巨末屹山이었네요.
▲(거말산 고스락 조망 1).
빵 터지는 조망을 보면 가슴이 쿵쿵 뛰기 마련입니다.
이럴 때면, 마음 문을 열고 들어 오는 귀한 사람의 영상이 그려집니다.
▲(거말산 고스락 조망 2).
지금 우리에게 희망은, 쿵쿵 뛰는 가슴을 안고 오를 수도산 자락입니다.
▲우두령을 향해 내려서는 산길은 가풀막입니다.
박쥐처럼 매달리듯이 가파르게, 신발 바닥으로 비질하며 내려갑니다.
▲새가 아닌데, 가끔 유쾌한 상상을 해봅니다.
가파르게 내리꽂히다 보면 언젠간 날 수 있지 않을까. 활공장 패러슈트처럼.
▲잠깐 숨 쉴 틈을 주는 고갯마루가 힐링을 선물합니다.
▲(우두령 풍경 1). 우두령에는 생태통로가 복층으로 건설중입니다.
지금은 실선 화살표로 진행하지만 조만간 점선으로 연결할 수 있을 듯.
▲(우두령 풍경 2). 미래의 마루금 청사진이 깔끔하게 그려집니다.
▲(우두령 풍경 3). 우두령은 경상남도와 경상북도의 지경고개.
고개 모양이 소 머리처럼 생겼다는 이야기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옛소리가 되었네요.
▲우두령에서 시코봉까지는 해발고도 약650m를 치올려야 하는 구간.
이제 그 서막을 열면서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수련의 길로 들어섭니다.
▲울울창창 뻗어올라간 건강한 송림을 보니 절로 웃음이 피어납니다.
▲사랑이 깊은 사람들이 가끔 이야기하지요. 한 날 한 시에 같이 죽자고.
이 깊은 산속에서 뿌리째 송두리 뽑힌 솔 부부를 목격하니 숙연해집니다.
▲진심을 다해 열심히 시코봉을 오르다가 잠시 돌아봅니다.
잠깐 열린 마루금 창틀 사이로 멋진 산경도가 펼쳐졌습니다.
▲범산의 현재 희망이라면 빨리 어른이 되는 것.
식충이처럼 나이만 먹지 말고, 세상 哲理를 이해하는 어른이 되는 것.
▲(마당바위).
이 조망 명당의 앉음새를 위해서 오늘 그렇게 땀을 흘렸나 보다.
무심히 굽어보는 시공의 틈새로 자신도 모르게 눈시울이 축축해집니다.
▲수도산과 시코봉이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하지만,
서두를 생각이 눈꼽만큼도 없으니 이를 어찌하리.
진귀한 마음을 숨겨 가진 사람처럼 천천히 걸어가렵니다.
▲빈 산길을 걸어가니 마음이 한없이 풍요로움을 느낍니다.
▲얕은 바람에도 한들거리는 그늘사초의 부드러움을 대하니,
자신도 모르게 피이 미소가 번져 나와 발걸음까지 가벼워집니다.
▲연두색 천지인 저 봉우리가 시코봉일 텐데. 산은 말이 없고.
▲시코봉이 가까워지니 땀방울이 자랑처럼 배어나옵니다.
산행기는 흘린 땀방울에 대해 기록하는 다큐멘터리의 일종.
다큐멘터리는 미화하거나 왜곡하지 않는 事實性이 생명이라 생각됩니다.
▲(시코봉 풍경 1).
수도지맥은 시코봉에서 양각지맥이라는 명품 산줄기를 분가시키고.
▲(시코봉 풍경 2).
붙잡아도 붙잡아도 아까운 세월은 자꾸 가는데....
산행하면서 흘리는 땀만큼 가성비 착한 일이 또 있을까.
▲(시코봉 조망 1).
금송아지를 묶어둔 것도 아닌데, 시간이 멈추는 것도 아닌데,
수도산이 살짝 고개만 들어도, 가슴이 벌렁벌렁 난리부루스를 칩니다.
▲(시코봉 조망 2).
시코봉 표지석 앞에 뿌리를 박은 나무처럼 서서, 산바람에 휘청입니다.
▲(시코봉 조망 3).
양각지맥에 대한 좋은 기억이 꼬물꼬물 머리를 간질이며 돋아납니다.
▲세상엔 누군가 배워주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 있지요.
땅심이 왕성한 산길에서의 흙맛은 산 초심자도 절로 알 수 있는 것처럼.
▲약초꾼 둘이 갈림길에 서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네요.
이야기 바람에 취해 술에 취한 듯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이 세상의 주인공인 양 꽃터널 속을 시름없이 걸어갑니다.
▲(비행접시 전망대).
지구의 아름다움에 홀딱 빠져있는 저 분,
혹시 멀리 외계에서 날아온 우주의 손님일까.
▲(비행접시 전망대 조망 1).
비행접시에 올라앉아 수도산을 뚫어지게 바라봅니다.
그러면서 나는, 나 자신을 저 수도산의 일부라 생각해봅니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힘들었던 기억들이 싹 지워짐을 느낍니다.
▲(비행접시 전망대 조망 2). 수도산~단지봉~좌일곡령.
머리속에서만 살아있던 꿈의 능선이 실제 눈 앞에서 꿈틀대고 있네요.
▲(비행접시 전망대 조망 3). 좌가천을 중심으로,
좌 수도지맥 - 우 양각지맥이 사이좋게 줄을 대고 있습니다.
▲(비행접시 전망대 조망 4).
시코봉은 이미 마음속에 소중한 보물로 자리를 잡았고.
▲(비행접시 전망대 조망 5).
오늘 구간 하이라이트로 손색 없던 마당바위가 레이더에 포착됩니다.
▲신선봉(수도산 서봉).
굵직한 산줄기 하나(금오지맥)를 떨궈놓고 아쉽게 돌아섭니다.
▲귀 기울이면 왁자지껄 반가운 소리가 들려오는데,
수도산 고스락의 산님들 모습이 조그만 점으로 보이네요.
▲수도산으로 가는 길목에 환영의 퍼포먼스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나무들의 환영사에 눈자위가 불그레해집니다.
▲터지면 어쩌나, 하마하마, 위태롭게 부풀어 오르던 풍선이
더 견디지 못하고 마침내 빵 터져버렸을 때의 이상한 안도감.
수도산 고스락에 이르는 길은 길고 그리운, 기다림의 시간이었습니다.
▲(수도산 고스락 풍경 1).
재물은 저축해서 쌓아 놓을 수 있지만, 시간은 저축이 불가능하지요.
재물은 ‘몰아서’ 벌 수도, 쓸 수도 있지만, 시간은 그게 불가능하지요.
그래서 산에 오른 귀중한 시간은 마음 곳간에 쟁여둘 수밖에 없음이니,
지금 수도산에 오른 이 찰나의 시간이 내내 안타깝고 소중하기만 합니다.
▲(수도산 고스락 풍경 2).
생의 소중한 시간이 지금 이 순간도 흘러가고 있습니다.
▲(수도산 고스락 조망 1).
수도산의 광활한 조망을 만끽합니다 <가야산 기점, 시계진행 방향 순>.
▲(수도산 고스락 조망 2). 황매산은 오늘도 눈 먼 당신입니다.
▲(수도산 고스락 조망 3).
가좌천을 품고 있는 심방마을 계곡의 품이 엄청 넓어보입니다.
▲(수도산 고스락 조망 4).
거말산~시코봉의 뒷배를 봐주고 있는 덕유산이 든든합니다.
▲(수도산 고스락 조망 5).
신선봉에게 특별한 말을 건넵니다. “신선봉, 너 참 귀엽구나.”
▲(수도산 고스락 조망 6).
대간 너머로 월이산, 어류산도 고개를 내밀고 있고.
▲(수도산 고스락 조망 7). 금오지맥의 삼방산이 군계일학입니다.
▲(수도산 고스락 조망 8). 금오산까지의 금오지맥 마루금을 가늠해봅니다.
▲(수도산 고스락 조망 9). 독용산~형제봉 뒤로는 칠봉지맥이 흐르고 있을 텐데.
▲(수도산 고스락 조망 10).
성암산 근처 칠봉산은 날씨와 카메라가 가늠을 방해하네요.
▲수도암 갈림지점을 통과하면서 산에게 마음을 전해봅니다.
평생 산에게 감사하며 살겠다고, 평생 산에 대해 궁금해 하면서 살겠다고.
▲떨어져서 수도산을 쳐다보니 더 멋져 보입니다.
떨어지면 궁금해지고, 시간 지나면 그리워지는 것, 그게 사랑일까요.
▲날머리까지의 산자락이 조감도처럼 펼쳐집니다.
한 걸음씩 옮길 때마다 날머리까지의 거리가 줄어들고,
산을 떠날 시간이 다가오니 마음이 안타까움으로 범벅이 됩니다.
▲구곡령으로 향하는 길섶에 눈요기거리가 비치되어 있습니다.
▲(돌아보기).
수도산은 아득한 곳을 향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거울에 비치는 제 모습을 부리로 쪼는 새장의 새처럼,
있지도 않은 山門을 찾아서 더듬대며 산길을 걸어갑니다.
▲(구곡령).
오늘은 수도리로 하산하고, 다음에는 심방마을에서 올라올 겁니다.
▲다음에 올라올 심방마을 산길을 찜해 놓으니 배가 부릅니다.
▲구곡령에서 1km 정도 희미한 길을 내려왔습니다.
돌아보면, 훅 스쳐가는 친숙한 냄새, 햇빛, 바람 같은 게 느껴집니다.
▲우측은 ‘수도산 치유의 숲’.
▲(수도리 주차장).
하루 동안 산자락에 갇혀서 행복했던, 자신을 해방시킬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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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필로그 ◑
산길을 걸으면서 인생의 보물찾기를 시도합니다.
산을 바라보는 눈매에 꿀이 뚝뚝 떨어지는 듯했지요.
생의 본질은 생로병사라고, 실존적 허무에 쩐 날!
허무에 최면을 걸고 수도하듯 수도산을 올랐습니다.
어쩌면 우연으로 착각했을지도 모를 귀한 인연들,
그 우연들을 생의 변곡점으로 치환하고 싶었습니다.
연주자가 악기 다루듯이 산을 능숙히 연주하면서
설렘, 그 감정 하나에 모든 걸 걸어보기로 했습니다.
때론 짱짱한 산길과 헤어질 결심이 필요하겠지만
계절의 희망을 앞세워 인생 보물찾기를 계속하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