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3. 17. 3시 30분. 관옥목인의 집
라떼 : 참고로 잠깐만 하나를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오늘 새로운 얼굴이 두 분이 계셔요.
한 분은 저도 모르게 오셨고요. 한 분은 저희가 이 장자 산책 시간을 위해서 초청을 드렸어요. 그래서 먼저 우리 신난다 사랑어린 배움터에 신난다 배움지기이시고요.
네, 한번 우리 관옥 선생님의 귀를 그대로 입으로 잘 표현해 주시는 정말 능력자십니다.
한번 인사드리도록.
신난다 : 안녕하세요. 저도 공부 덕분에 잘하겠습니다.
관옥 : 이 사람은 제 귀입니다.(웃음) 지금 여러분이 노래하고 그랬죠? 뭐라고 얘기하고요? 나는 전혀 못 들었어요. 그러니까, 아까도 얘기했지만 요즘 내가 느끼는 게 귀머거리가 이런 세상을 사는구나 알겠어요. 그게 뭔지를 몰랐는데, 이렇게 한평생 사시는구나. 지금 내가 하는 말이 안 들려. 귀에. 그러니까, 여러분이 뭔 얘기하고 노래하는 것 같긴 한데 전혀 못 들었어요. 난 아주 덕분에 아주 고요한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웃음)이 말이 들리죠? 나한텐 참 내가 볼 때 신기해. 어떻게 이 말을 듣지? (웃음) 그래, 참 재밌어요. 시작 시작하는 거야.
라떼 : 이 친구 여기 동무 한 번만 같이 새로운 사람 네네. 인사만 잠깐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하몬 : 안녕하세요. 저는 하몬 류시형이라고 하고요. 오늘 어머니 따라서 지금 캐나다에서 살고 있는데, 가기 전에 잠깐 이렇게 한번 함께할 시간이 생겨 가지고 어머니 따라서 함께 왔어요.
라떼 : 부럽고 고맙습니다. (웃음)
관옥 : 그래 잘 왔다. 그래 언제 가니?
하몬 : 저 모래 가요. 모래.
관옥 : 그랬구나. 갈 예정이지? (웃음) 그래. 내가 너한테 써준 글씨가 “화이부동” 맞지? 그래, 그 공자님 말씀이야. 내가 너한테 그 이름 할 때 하몬, 내가 하모니를 생각하고 지어진 건 알지? 그 하모니가 참 참 소중한 거야. 어울려준단 말이야. 나를 고집해 가지고는 어울려주기가 어려워. 그지? 나라고 하는 게 딴딴하면은 누구하고 어울려지는 게 참 어렵지. 내가 누구하고 어울린다는 얘기는 내 문제지, 저 사람 문제가 아니라고. 그래서 네가 모든 사람과 함께 잘 어울려서 살으면 좋겠다 그런 얘기야. 근데 공자님이 “화이부동”이라 내가 너하고 어울리긴 하지만 내가 너하고 똑같이 되는 건 아니야. 그게 진짜야. 그거 봐. 거꾸로 보면 “동의 불화”란 말이 있어. “동의 불화” 겉으로 보면 똑같은데, 속으로 보면 서로 안 어울려. 군대 같은데 보면 다 똑같잖아. 모양이 그런 건 소인들 군자의 길이 아니야. 겉모양을 내가 똑같이 유니폼 입어도 전부 서로 갈등하고 다투고. 그러니까, 보통 우리 사람 세상인데 군자의 길은 누구하고나 안 다퉈 싸우지 않아. 그러나, 그 사람하고 똑같이 되지는 않아. 왜 물은 왔다 갖다 놔도 물이야. 네모난 그릇을 담아놓으면 네모난 모양을 하고 있고, 길쭉한 그릇에 담으면 길쭉한 모양을 하고 있지만, 물은 변함이 없지. 물이 그릇으로 되지는 않잖아. 그런 사람이 되라 그런 얘기야. 니가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고 되는 건 아니야. 그러나, 나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네가 안 먹으면 안 돼. 난 너한테 할 말 다 했으니까 너 집에 가도 돼.(웃음) 그래요.
우리 장자를 왜 읽어요? 이 선생은 멀리 광주에서 1시간 반 차를 타고 오시는데, 내가 한번 물어보고 싶어요. 왜 장자를 읽으시려고 하는지.
학생 : 이유는 없고요. 선생님을 뵈면서 명상하려고요.
관옥 : 지금 내가 들리는 척하고. (웃음) 뭔 말인지 무슨 말씀인지 좀 짐작은 가요. 저도 그랬거든요. 무위당 선생님 생존해 계실 때는 아주 이렇게 한 달에 한 번 이렇게 가지는 못했지만, 특히, 노자를 같이 읽을 때는 거의 매 주일 가서 뵙죠. 그때가 참 행복했어요. 선생님하고 단둘이 단둘이 앉아가지고. 그래서, 노자를 읽을 때 나도 하고 싶은 말 하고 선생님도 하시고 싶은 얘기하고. 그때가 참 행복한 시대가 되지. 그래요. 주파수가 많은 사람끼리 이렇게 만나서 그래서 어느 한 곳을 지향한다는 거. 둘이 둘이 마주 보는 건 아주 근사해 보이지만 위험해요. (웃음) 결혼할 때 처음에는 둘이 마주 보고 살지만 그래봤자 다투거나. 그 사실 조금 세월이 지나면 시선을 돌려서 한 군데를 바라보고 같이 가는 게 그게 진짜 부부야.
맨날 이렇게 마주 바라보는 것이 아주 좋을 때는 기가 막히게 좋지만 그렇지만, 우르렁거린단 말이야. 그러지 않고, 동료라고 하는 건 뭐냐. 사실은 같은 곳을 지향하는 거야. 한 곳을 쭉 그러면 친구가 되는 거야. 부부가 아니라 그냥 친구처럼 그게 내가 성공한 부부들이라고 생각을 해. 그래 좋죠.
저 어울, 어울 왜 오늘 처음 봤잖아. 왜 오셨어?
어울 : 진작 오려고 했는데, 이제 왔습니다. 첫 등교했습니다. (웃음) 어른이 학교 오고 싶었는데 반갑습니다. 한지숙이라고 합니다. 어울라고 부릅니다.
관옥 : 늦게 오셨다고요? 그건, 그건 댁의 생각이죠. 늦지 않았어요. 제 때에 왔어요. 정확하게 이런, 이런 말이 있어요. “어떤 일도 어떤 일도 사전에 일어나지 않는다.” 그죠? 맞죠? 사전에 미리 일어나지 않는다. 어떤 일도 동시에 추후에 일어나지도 않는다.(웃음) 맞죠? 일어났으면, 정확하게 그때 일어난 거예요. 늦었다고 하는 건 우리 생각이에요. 없어요. 물론 잃은 것도 없고, 바로 그때 그 일을 하는 거죠. 그거.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우리가 어려서부터 안 배웠어요. 우리는 시간을 정해놓고 거기에 따라서 늦었다 뭐 그러다 이런 식의 사고방식을 배웠잖아요. 그렇죠? 근데 아까 얘기한 것처럼 어떤 일도 사전에 일어나지 않아요. 또, 추후에 일어나지도 않고,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났다? 그럼, 제때 일어난 거예요? 어때요? 그것도 한 생각이에요. 그렇죠.
어울 : 근데 아쉬워서요.
관옥 : 괜찮아요. 그것도 또 말꼬리 잡으면 또 아쉽다고 하는 건 뭐냐 하면 뭐가 아쉬워요? 미래의 일을 두고 아쉽다고 한 말은 할 수가 없어요. 그죠? 뭘 지나간 걸 가지고 얘기할 때 아쉽다고. 그렇죠? 우리 어떨 때 아주 경기 좋은 데 가면, 뜻밖의 경기 좋은 데 가면, “야, 여기 안 왔으면 후회할 뻔했다.” 그런 말 하죠? 그 택도 없는 소리예요. (웃음) 여기 안 오면 후회 안 해요. (웃음) 우리 생각이 얼마나 얼마나 많이 소위 터무니 없는 생각을 하는지 근거 없는 생각, 이렇다 저렇다, 이게 다 우리 생각이에요. 사실이 그런가? 보면 아니야. 그래 지금 오늘 읽을 해자가 장자가 하는 말이 그런 말이에요. 우리가 얼마나 터무니 없는 생각을 하면서 사는가. 그리고 그 생각이 진리라고 생각해서 그걸 움켜잡는단 말이야. 그리고 그거를 주장한다 말이야. 자기만 주장하는 것도 봐줘. 남까지.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우리가 어차피 사람을 생각을 안 하고 살기는 어려운데 그렇죠? 아주 정말 자유로워진 사람이라면 생각 없이 사는 것도 가능하겠다는 건 좀 짐작이 가요. 그러나, 우리 보통 사람은 그건 그런 생각하기 어려운 경지이고 어차피 머리를 생각하게 돼 있으니까. 그렇죠? 생각을 하면서 하면서 살기는 어렵다. 인정하자. 숨 안 쉬고 살기는 어렵워요. 인도에 어떤 사람이 뭐 며칠씩 숨 안 쉬고 산대요. (웃음) 하여튼, 인간 별일까 다 있어 숨 안 쉬고 산단 말이죠. 그것은 그런 사람들 얘기이고, 보통사람들은 숨을 쉬고 사는 것처럼 생각하면서 사는 거야. 받아들이자. 오케이! 어떻게 하면 생각도 가지각색인데, 골라서 나한테 도움이 될 만한 그런 생각을 하며 살 것인가? 이제 우리들의 숙제라고 할 수 있겠죠. 내가 부모로부터 배운 생각 있잖아. 또, 우리 선배들로부터 배운 생각, 그 생각들 가운데 많은 것들이 사실은 근거 없는 생각이 많아. 그래서, 참 여러 가지 생각들 가운데 내가 골라서 마치 음식점에 가 가지고 맛있는 것만 이렇게 골라 먹는 것처럼, 자기 마음에 들고 건강에 도움 될 만한 것들만 이렇게 골라서 먹으면, 내 건강 좋을 거 아니에요? 그죠? 독 있는 거 해로운 거 그런 거 안 먹고 생각도 독 있는 생각 많잖아요? 그 생각 속에 독소가 들어있다고 미워하는 마음, 그죠? 화나는 거, 질투하는 거, 이거는 건강하지 않아. 근데, 그런 생각을 자꾸 머릿속에 집어넣는 이유가 뭐야? 그러지 말자는 거지. 안 그럴 수 있어요.
그럼 그건 그거고, 오늘 세 번째 해자와 장자의 대화 거기 읽을 때 거기라고 기억하는데 맞죠? 그럼 거기 한번 읽어봅시다. 여러분 다 책이 있으시니까 책을 한번 같이 읽어보실래요?
그냥 누가 누가 좀 똑똑하게 한 목소리로 읽어줬으면 좋겠어요. 오늘 하몬이, 네가 왔으니까 너 캐나다에 살지만 한글 읽을 줄 알지? 그럼 네가 읽어줘라. (웃음)
하몬 : 해자가 장자에게 이르기를 위왕이 나에게 큰 박씨를 주기에 내가 그것을 심었더니 박이 열렸는데 다석들이는 돌마마였어.
관옥 : 다석들이라는 얘기는 뭐냐 하면 요즘 우리 식으로 말하면 다섯 가마, 거의 다섯 가마를 들을 수 있는 그런 양이라니까 바가지가 얼마나 얼마나 크면 거기다 물 닫았다가 다섯 가마를 하는 말이예요.
하몬 : 물을 담으면 무거워서 들 수가 없고, 쪼개서 바가지를 만들면 평평하고 얕아서 도무지 담을 것이 없는지라 크기는 매우 컸지만 쓸모가 없어서 깨뜨려 버렸소. 장자가 대답하기를 그대는 참으로 크게 쓰는 일에 서투르구려. 신나라 사람으로 손 트지 않는 약을 잘 만드는 자가 있었는데, 집안 대대로 손 빠는 일을 가업으로 삼았지요. 하루는 나그네가 소문을 듣고 와서 약 만드는 방법을 100금에 사겠다고 하자, 가족을 모아놓고 은근히 이르되 우리는 대대로 솜을 빨아왔으나 몇 푼 벌지 못했는데, 오늘 하루아침에 양 만드는 기술을 100급에 팔 수 있게 되었다. 넘기기로 하자. 나그네가 비방을 얻어 우왕에게 가서 설득하는데 마침 모 나라하고 전쟁이 터진지라. 오왕이 나그네를 장수로 써서 겨울에 월나라 사람들과 물에서 싸워 저들을 크게 무질렀소. 그런 다음 땅을 나눠주고 용주로 삼았지요. 손 트지 않게 하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누구는 영주가 되고 누구는 손 빠는 일을 헤어나지 못했으니 이는 글 쓰는 방법이 달랐기 때문이오. 오늘 그대는 다석들이 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째서 그것을 큰 술통을 만들어 강물에 뛰어놓고 즐기려 하지 않고 오히려 너무 커서 쓸모가 없다고 걱정하는 거요. 그대는 아직 쑥고갱이 마음이구려.
관옥 : 재밌죠. 장자가 얘기가 참 재밌어요. 이 사람 얘기꾼이야. 이 해자라는 사람은 실존 인물이었던가 봐요. 근데, 이 사람은 아주 논리적이고 소위 말하자면 논쟁 같은 데 아주 잘하는 사람이라, 말 가지고 다투는 데는 아주 능해서 해자를 당할 사람이 없었다. 워낙 말을 잘하고 조리 있게 딱 얘기를 하고 그래서, 누구하고 논쟁을 해도 지지않는 그런 사람으로 알려진 사람인가 봐요. 근데, 그 해자를 지금 등장시켜요. 그래서 해자하고 얘기를 하게 되는 건데, 이 해자가 얘기하니까 그 어마어마하게 큰 박을 얻었는데, 이거 쓸 때 쓸모가 없더라. 물을 담아서 너무 무거워 들 수도 없고, 이걸 잘라 가지고 바가지 쓰려니까 평평해 가지고 담을 수도 없고, 그래 이거 못 쓰겠더라. 뭔 얘기일까요? 헤자가 지금 장자를 할 때, 너 얘기하는거 보니까. (웃음) 뭐 뭐 새가 날아가지 몇 천리를 날아가 무슨 뭐 뭐 어쩌고 저쩌고 아이고 참 아주 커 보이는데 쓸모없다. 내 일상생활에 네 얘기 하나도 도움이 안 된다. 그런 얘기예요.
해자를 동원시켜서 장자를 공격하는 거라고 볼 수 있어요. 아마 장자는 자기 얘기를 이렇게 듣고 많은 사람이 그걸 느꼈을게 첫 장부터 굉장히 뻥이 심하잖아요. (웃음) 그래서, 뭐 새가 날아가는데 한 번 날아가는데 몇 천리를 뭐 어쩌고. 그러니까, 이게 굉장히 스케일이 크게 얘기하는 것 같은데, 당신 얘기가 크긴 크지만, 일상생활에 아무 도움이 안 된다. 쓸데없는 소리 하고 있다 뭐 이런 식의 얘기입니다. 아마 해자뿐이 아니라 이런 생각하는 사람 지금도 있을 거예요. 장자, 그거 허풍치는 거고 뭐 하러 이거고 뭐 이런 얘기 장자에 등장하는 사람 변변한 인물이 없어. 전부 다 참 이상하고 바보 같고. 그거 뻥치기 하는 건 얘기인데, 그 얘기 뭐 하러 하냐 이런 얘기야. 예수님도 그랬어요. 예수님 얘기 들을 때 많은 사람이 동의하는 사람 동감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어요. 생각해 봐요. 저 사람 나를 힘들게 하고 괴롭혔어. 원수 같아. 이 사람은 망했으면 좋겠어. 저거 어떻게든지 그런 사람한테, “그러지 마시오. 그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시오.” 아 ,이거 이게 말이 돼? 이게 지금 잘못하는 놈은 벌 주고 잘하는 사람 상 주고 이런 하나님을 우리가 몇 천 년 동안 믿어왔는데. 그렇잖아요? 모세 하나님이 그런 하나님이잖아요. 잘하면 상주고, 못하면 벌 주고. 죄 지으면, 죽이고. 그럼 하나님 저렇게 했는데, 예수가 나타나 가지고 “아니야, 하나님은 그런 분 아니야. 잘하는 놈이나 못하는 놈이나 똑같이 사랑해.” 아이 그러니까, 이 속에 이게 이제 받아들이기 어렵단 말이야.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어. 지금 이런 세계 얘기를 지금 장자한테 하는 거라고 볼 수 있어요.
진짜 얘기 들려요? (웃음) 신기하다. 참. (웃음) 그러니까, 이제 장자가 거기에 대한 대답이야.그래서 그러면서 이제 그 옷 손 트지 않는 약 만든 사람 예를 들잖아요. ,그 약을 만든 사람은 겨울 손 안 트게 하는 거 그거밖에 몰랐는데 이 사람은 그걸 이용해서, 겨울에 전쟁을 하는데 병사들이 손이 안 타서 전쟁에 이겼고, 그래서 그 사람이 나중에 땅을 크게 차지하고 영주가 됐다. 똑같은 건데 “누가 쓰느냐에 따라서 다른 거야. 이놈아.” 이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여러분, 쓸모라는 말 많이 들어봤지요? 쓸모가 어디에 쓸모가 있을까요?
이 접시의 쓸모는 어디 있습니까? 쓸모라고 하는 게 현 주소가 어디 있어요? 여기 있어요? 그럼 어디 있어요? 쓰는 사람은 있지요. 쓰는 사람이 없으면, 이거 진짜 쓸모없는 거야. 어떻게 생각하세요? 소금의 짠맛이 어디 있을까요? 소금의 짠맛, 그렇죠? 내가 짜다고 하면 짠 거 아니에요? 인간의 쓸모라고 하는 거 인간뿐이 아니라 천지만물에 있는 것 쓸모가 어디 있느냐? 누구한테 있어요? 바가지한테 있어요? 아니예요. 바가지를 쓰는 사람한테 있는 거예요. 근데, 너는 내가 그게 내가 중심인데, 내가 아무리 뭘 쓰고 싶어도 그게 없어요. 그거 쓸 수 있어요? 없죠. 내가 글을 쓰고 싶어요. 펜이 없어. 그럼 어떻게 써? 못 쓰는 거예요. 그게 나한테 쓸모가 있다고 얘기해도 말이 안 돼요. 그렇죠? 저 물건이 없는데, 저 물건에 쓸모가 나한테 어떻게 있어요? 소금이 없는데 내 입이 짜져요? 그래요. 묘하죠. 그래서, 쓸모라고 하는 거는 그 물건과 쓰는 주체가, 이게 딱 만날 때 그때 비로소 쓸모가 존재하는 거다. 그런 얘기죠. 우리 너 쓸모있는 사람 되라는 말 많이 들었지지요? 어려서부터? 그치? 너는 세상에서 쓸모있는 사람 되라. 좋은 말이야. 덕담이야. 근데, 그 빌어먹을 세상에 날 써줘야지. (웃음) 그 다음에 더 계속 읽어봅시다. 그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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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해자한테 장자가 말하는 거는 뭐냐 하니까. 내가 먼저 그러니까, 뭘 볼 때, 이 해자가 바가지를 봤을 때는 이 사람 머릿속에 있는 거는, 물을 떠먹는 그런 그릇이라고 하는 그런 걸 생각한 거예요. 그것이 이 사람의 쓸모야. 거기에 맞는 걸 찾아보는데 애는 아니란 말이야.
그러니까 쓸모없다. 내가 어떤 사람을 내가 저 사람을 좀 써봐야 되겠다 할 때 내가 그 사람한테 기대하는 게 있단 말이야. 저 사람이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저렇게 했으면 좋겠다 .그런 게 있잖아요? 막상 해보니까 아니란 말이야. 이런 거. 그렇죠? 나는 이거 물 떠 먹는 바가지지니까 물 떠 먹는 거를 써보라는데, 이건 거기 소용이 안 돼. 이거 이 물건은 그러니까 쓸모없다. 이렇게 얘기하는 거야. 근데, 이제 장자 얘기는 아니야. 그걸 네가 쓸 줄 몰라서 그런 거지. 쓸모가 없는 건 아니야. 이런 얘기를 지금 하고 있는 거야. 똑같은 건데, 네 머릿속에 프로그램 돼 있어. 뭐가 거기에 안 맞으니까 쓸모가 없다고 그래서 이거 지워버려. 그러면 쓸모 있어. 그런 얘기 아니겠어요? 더 읽어보고 얘기합시다.
그 다음에 또 누가. 오케이. 비슷한 얘기니까 한 번 더 읽어봐.
최선호 : 해자가 장자에게 이르기를 나에게 큰 나무가 있는데 사람들이 일컬어 가죽나무라 하지요. 줄기에 옹이가 많아서 먹줄을 칠 수가 없고, 작은 가지는 뒤틀리고 굽어서 그림쇠로 잴 수가 없는지라 길가에서 있건만 목수들이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오. 이제 그대의 말은 크기만 하고 쓸모가 없으니 사람들이 모두 등을 돌리는구려. 장자가 대답하되 그대 또한 너구리와 살괭이를 보았을 것이오. 몸을 낮추어 엎드려 있다가 나와서 돌아다니는 작은 짐승을 누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높고 낮은 배를 가리지 않지요. 그러다가 그만 올가미에 걸리거나 그물에 걸려 죽소. 그런데 저 검은 소는 크기가 하늘에 드리운 구름 같아서 크기는 과연 크나 쥐를 잡지는 못하오. 지금 그에게는 큰 나무가 있는데 쓸모가 없어서 차리라고 하니 어째서 그 나무를 아무것도 없는 시골의 드넓은 들판에 심고 그 곁에서 하는 일 없이 거닐며 노닐다가 그 그늘에 누워 잠들지 않는 거요. 도끼에 찍히지도 않을 것이며 와서 해칠 물건도 없으니 쓰일 데가 없다 하여 어찌 괴로워할 바 있겠소.
관옥 : 수고했어. 오늘 본문은 여기서 끝나는 겁니다. 같은 아까 얘기하고 같은 내용의 얘기라고 볼 수 있어요. 쓸모가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 손 들어봐요. 없어요? (웃음)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참 희망이 없네. (웃음) 여러분, 이 말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간디가 그런 말을 했대요. “나는 하나님의 심부름꾼이다.” 유명한 말이에요. “넌 누구냐?” 그러니까, “나는 하나님의 심부름꾼이다.” 그러니까, 그 말은 뭐예요? 나는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다. 내 쓸모는 나한테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한테 내가 쓸모가 있는 사람이다. 사람이 욕심을 한번 품고 싶으면 욕심이 없을 수는 없는데, 욕심을 품고 싶으면 그 정도 욕심을 한번 품을 만도 하지 않을까 싶어. 하나님이 쓰는 사람 어떻게 생각해? 내가 쓰고 싶어요? 나를? 내가 나를 쓰니까 내 인생이 요 모양이 꼴이라고. (웃음) 어떻게 생각해요? 내가 날 쓰니까. 되는 게 없어. (웃음) 여기 가도 막히고, 저기도 막히고. 도무지 예측한 대로 되는 게 없어. 왜 나라고 하는 게 그렇잖아. 쥐뿔도 몰라. 세상 돌아가는 게 어떤 건지, 언제 뭐 해야 되는 건지, 나라고 하는 물건이 모른단 말이야. 오늘 저녁에 무슨 일 있을지 알아요? 아는 게 뭐 있어요? 감자! 뭘 알아? 나 이거 안다고 얘기할 수 있는 게 있어요? 찾아봐요. 뭐가 있나. 그런 인간이 나를 쓰겠다니까.
요번 지난주에 내가 천지인 학교 아이들하고 수업하면서, 영어 문장을 하나 내가 소개해줬어요. 기억나지? 그런 문장이에요. 이 문장을 내가 언제 읽었냐 하니까, 군대 제대하고, 그리고 그냥 어디 뭐 갈 데도 없고, 오라는 데도 없고, 몸도 부실하고, 그리고, 그냥 참 힘들게 살다가 어머니가 아무래도 서울에 이사 가야 되겠다. 그래도 서울에 가야 좀 뭐 이렇게 살기 쉽다니까, 서울로 거기 목사님 한번 또 서울에 충주에 계셨던 목사님이 서울 가시면서, “무조건 와. 내 방 하나 내가 만들어줄 테니까 와서 있어.” 그래서, 이제 서울로 올라가는데 진짜 처음에 올라갔을 때 리어카 하나가 짐이었어요. 그 아까 우리 외삼촌이 그 리어카를 끌고 종로 3가에서 문화청까지 갔어. 그게 우리 짐 전체야. 집 하나 이삿짐 사람이 끌 수 있는 리어카 하나, 그게 다였어. 가서 이제 그릇 사고, 뭐 빗자루 사고, 그러니까 어머니가 요즘 돈으로 2천 원 남았다. 그게 생각이 나. 그래서, 아주 작은 방에 이렇게 살고, 내 누이 동생이 그때 전하국 교환수, 교환소 있잖아요. 그걸 다녀서 3만 원, 월급 받아서 그걸로 이제 식구들이 먹고 사는데, 나보고 종로 어떻게 나갔다가, 나를 사랑하셨던 학교 선생님을 한 번 만났어요. 유동식 교수님이라고. 내가 장가 두 번 갔는데, 내가 장가를 두 번 갔는데, 두 번 다 주례하신 분이야. (웃음) 그 선생님을 만났는데, “너무 반갑다. 요새 뭐 하냐?” 그래서, 저 놈팽이라고. 그러니까, “내가 취직시켜 줄게. 내가 알아볼게 자리 알아볼게.” 그러고, 나를 취직시켰어요. 그래서, 이제 어떤 감리교 본부라고 하는 데 가서, 월간 만드는 데 편집을 좀 도와주는 그런 일을 좀 하다가 사정이 생겨서 거기를 못하게 됐어. 그나마도 8천 원 봉급 받았는데 ,그마저도 이제 쫓겨났어요. 해고당한 거지. 요즘 말로 하면. 그 무렵에 내가 작은 전단지를 읽었어요. 근데, 영문으로 된 전도지 같은 거야. 제목이 뭐냐 하면, “The man GOD uses.” “하나님이 쓰는 사람” 이런 제목이었어요. 그 첫 문장이 이래요. “There are two kinds man in the world.” “세상에 두 종류 사람이 살고 있다.” “One is the man uses the other is the man GOD uses.” “세상에 두 종류 사람이 살고 있다. 하나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야. 다른 사람은 하나님이 쓰는 사람이다.” 그게 머리에 박혔단 말이야. 그래서, 이왕이면 내가 나를 쓴다는 게 사람이 사람 쓰는 거잖아요. 그렇지? 내가 누구 밑에 가서 일하는 것도 사람을 쓰는 거지만, 사실은 내가 날 쓰는 게 사람이 사람을 쓰는 거란 말이야. 근데, 나보다 나를 만드신 분이 하나님인데, 나를 만든 사람이 나에 대해서 나보다 잘 알 거 아니야? 내가 만든 사람이 훨씬 나보다 더 날 잘 알 거 아니야? 그분이 쓰신다. 하나님이 날 쓰신다. 이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될 것인가? 그건 내가 선택하는 것이다. 이런 문장을 내가 읽고, 나도 이왕이면 하나님이 쓴 사람이 되고 싶다. 이런 생각을 했단 말이죠. 그러다가 거기서 쫓겨났죠? 8천 원짜리도 쫓겨나서, 이젠 또 빈털털이 돼서 집으로 가는데, 문화촌이라고 하는 데서 버스를 타면, 문화촌 가는 버스를 타려면, 옛날 서울고등학교 앞에 거기서 버스를 타야 돼요. 거기까지 가는데 저 해는 저물었고, 불은 들어왔고 저녁이 됐어요. 근데, 내가 진짜가 하도 기가 막히고 딱해서 “이게 뭐야?” 너무 내가 기가 막히게 그 말하자면 내가 좀 딱 했어요. 불쌍하고 나 자신. 이거 아주 어떻게 앞으로 이 험악한 세상을 사나. 그러면서 답답해서 이렇게 가는데, 눈물이 나더라고. 눈물이 나. 그러니까, 눈물이 나면 그게 그래도 명색이 말이야 이러고 가는 게 좀 그렇지 않냐? 그래서, 들어가지. 이러면 눈물 들어가요.
해봐야 알죠. 눈물 나올 때 딱 하면 다시 들어가. 눈물이. (웃음) 하늘을 봐서 눈물 좀 들어가라고. 그 눈물은 들어가지. 한 몇 년 후에 어떤 가수가 노래 만들었더라. (웃음) 그 첫 가사가 “눈물을 감추려고 하늘을 보니까.” (웃음) 그 친구가 그랬던가? 나는 그거 알아. (웃음) 하늘 보니까, 하늘에 보이지 전봇대가 있고, 옛날에 서울도 전봇대 있었어. 전깃줄이 쭉 가는데. 거기에 거기에 누가 있는지 모르지만, 거기 하나님이라는 말이 생각나서, “하나님!” 불렀어. 내가. 참 지금도 생각 나네요. 내 첫마디가 “하나님도 사람 차별하시오?” (웃음) “사람이 사람 차별하는 건 그럴 만한데, 당신도 사람 차별하시오? 왜 베드로는 바닷가에서 거기 자는 사람인데 당신이 일부러 찾아왔어요? 나하고 같이 가자. 내가 당신을 고기를 낚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낳는 사람으로 만들어 보겠다. 그렇게 불렀잖아. 자기가 날 왜 안 불러요? 내가 베드로보다 못 한게 뭐가 있어요?” 진짜 그랬어. 베드로하고 나 비교해 봤어요.
베드로가 얼마나 공부하는지 모르지만, 난 대퇴예요. (웃음) 퇴학은 당했지만, 내가 대학 신학생 남았어요. “신학 대퇴인 내가 베드로보다 못한 게 뭡니까? 왜 나는 안 불렀습니까? 베드로는 자기가 불렀잖아요? 왜 사람 차별해요? 내가 못할 게 뭐요?” 내가 그랬어요. 그러니까, 걷지 않고 딱 서서 좁은 골목이야. 이쪽에 짜장면집도 있고 막 그래 아주. “나도 당신의 일 좀 합시다. 나도 하나님 당신의 일을 좀 하겠습니다. 나한테 좀 시켜주시오.” 그랬어요. 그때, 내가 들은 말이 내 평생 소위, 그 신비로운 체험이라고 하는 거 있잖아요. 난 딱 한 번 그때 해봤어요. 그건 지금 설명하기 어려워. 마치 뜨거운 숯불 위에 내가 서 있는 것 같아. 그 뜨거운 난로 위에 내가 서 있는 것 같은 느낌. 저 땅에서부터 열이 뜨거운 열이 올라와. 발바닥부터 시작해서 이렇게 정강이로 해서 허벅지로 해서, 이렇게 척추를 타고 온 몸이 아주 뜨거워진 걸 한번 딱 한 번 느꼈어요. 그리고 ,그다음은 또 그 비슷한 거 좀 더 좀 맛봤으면 좋겠는데. (웃음) 그때 내가 들은 음성이, “네 입에서 그 말이 나오기를 내가 오래 기다렸다.” 그러시더라고. “그래 같이 가자. 이것부터 나랑 같이 가자.” 그 길로 내가 걷고 걸어서 버스를 안 타고 계속 걸어가면 내가 쫓겨난 학교가 나와요. 거기서 한 몇 정거장 걸어가면 그 퇴학당한 신학교를 갔어요. 그냥 가졌어요. 발이 저절로. 왜냐하면, 다 퇴근하고 학생들 다 퇴교하고, 저녁 때니까 건물이 4층짜리 학교 건물인데, 다 불이 꺼져 있고, 방 하나만 불이 켜져 있어요. 저 안에 누가 있나 하고 들여다 봤더니, 그때 그 학교 요즘 말하면 총장 홍현설 박사라고 그러지. 그 양반이 혼자서 돋보기를 이렇게 끼고 뭐 책을 뒤적거리고 있어요. 학교 학장이지. 그래서, 내가 문을 두드렸어요. 그러니까, 들어오라고 그래서 들어갔어요. 나 아셔. 학교에서 말썽부리고, 퇴학만 시키고, 그러니까, 안단 말이야. 첫마디가 “왜 왔어?” 너 같은 녀석이 또 왜 왔냐 이거야. 그래서, 내가 이 학교 좀 다시 다니게 해달라고 했어. 다시 학교 다녀 보겠습니다. 그때 첫마디 말씀이 “회개했나?” (웃음) 그래서 했다고 그랬지.
사실은 그 학교에서 이제 그때만 해도, 학교 안에서 교수님들이 합의하면 또 등록이 돼요. 요즘은 이제 그게 법으로 안 되지만, 그때는 됐어. 그 해까지 됐어. 그 다음 해부터는 박정희 씨가 법을 만들어서 이제 문교부에서 결정을 하도록 그렇게 했는데, 학교에서 결정 못하고 할 때까지는 이제 학교에서 그래서, 이제 학교에서 선생님 다시 오라고 그랬어. 그러다 보니까 오늘 여기까지 왔어요. 근데, 이게 뭐냐 하니까. 그래 쓸모라고 하는 건 임자를 잘 만나면 기가 막히게 쓰이는 거야. 안 그래요? 똑같은 물건인데, 누가 쓰느냐. 그렇죠? 제가 오늘 잡지를 이렇게 보다 보니까 누가 쓴 붓글씨인데 붓글씨를 바위에다 새겼어요. 그래서, 그걸 탁본을 쓴 거를 내가 이렇게 봤는데 글씨가 참 묘해. 아주 잘 쓴 글인데, 근데, 이게 너무 뭉툭뭉툭뭉툭뭉툭한 게 이게 뭐를 썼길래 이렇게 썼나. 참 잘 쓴 글씨인데, 이게 어떻게 하고 이렇게 설명을 읽어보니까 그게 사연이 있어요. 그게 무슨 약수터의 제목이야 무슨 무슨 약수야. 근데, 이제 구한 말 그때 우리나라 스님 가운데 만공스님이라고 유명한 스님이 계셔요. 만공스님은 참 그 양반이 글씨를 잘 썼어요. 그 스님이 이제 어느 동네에 갔는데, 시골에 아주 깊은 산골에 갔는데, 가보니까 이 사람들이 이거 참 귀한 스님이 오셨는데, 하룻밤 주무시고 가시는데, 잘 됐다. 우리 동네에 이 약수터가 있는데, 물이 너무 좋아. 그래 거기다가 제목을 좀 하나 새겨서, 이게 약수 이걸 좀 현판을 만들고 싶은데, 오셨으니 한번 글을 써달라. 그러니까, 그러자. 그 그래서 뭐 붓 타고 종일 가져와라. 없어. 먹은 하나 있는데, 종이도 어디서 구했어. 붓이 없어요. 붓이 온 동네를 뒤져봐도 붓이 없어. 하나도. 그러니까, 붓이 없으면 이게 글을 쓸 수가 없단 말이야. 그러니까, 이 시골에서 붓 가지러 갔다 오면, 그 동안에 만공 스님은 다른 데 가야 되는데. 부산을 가려면 또 몇십리를 가야 되는 거고. “야, 이거 스님 글씨 밖에 틀렸구나.” 얘기했대요. “스님, 다 되는데 붓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래, 그러면 이불, 이불은 있지? 이불에 솜이 있지? 그래서, 그 솜을 좀 뜯어와라.” 그래서, 솜을 가져왔단 말이야. 그걸 이렇게 뭉쳐. 뭉쳐가지고 그 점을 찍어서 글씨를 쓴 거란 말이야. 어쩐지 글씨가 뭉툭뭉툭하더라 그래요. 솜 뭉치도 임자를 만나면 명필을 쓸 수 있단 말이에요. 그런 거예요. 문제는 누가 나를 쓰느냐가 문제 아니겠어요? 근데, 그 결정은 미안하지만, 내가 선택하는 거야.임자를. 누가 날 쓸 것인가. 하는 임자를.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인 줄 알고 착각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the man uses, the other man GOD uses.” 그래서, 여기서 볼 때 장자 얘기는 하나님한테는 쓸모없는 게 없다.
기가 막히게 썼습니다. 이만큼 큰, 그래서 그거 그러면 그거 다 술 담아가지고 방에 띄워놓고 놀 수 있지 않냐. (웃음) 이제 그런 얘기를 지금 하고 있는 겁니다. 막판에 가서 쓸모라고 하는 거 없어도 돼. 이런 얘기를 지금 하고서 놀란 거예요. 맨 마지막 문장, 47페이지 거기 원문 있죠. 원문 한문으로 된 거 한문으로 된 거 제일 밑에서 셋째 줄부터 읽어봐요. 넷째 줄부터 읽어, 넷째 줄, 금에 자유대수하고 자는 당신이야. 당신은 큰 나무가 있는데, 환기 무용하니, 환은 걱정한단 말이야. 그것이 쓸모없다고 걱정하니, 그다음에 하 불수지여 무하지유향 광막지하하고, 이렇게 돼 있어요. 이걸 이제 풀면 이렇게 돼요. 한은 왜 어째서 그런 말입니다.어째서 그 나무를 무화 유지향 광막지야. 거기다가 심어라. 이거 수라고 하는 그 나무를 심는단 말이죠. 그것을 무하유지향 광막지야라는 말이 재미있어요. 무하유지향이라는 한 말은 뭐냐 하니까,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까 웬만한 것이 없다. 그런 얘기예요. 그런 광막지형 거칠 것이 없는 들판에 그 나무를 심어놓고. 그리고, 방황호 무위 기척하여 집어넣고 그 축인 그 벽이야. 방황은 방황이라면 이렇게 헤맨다 그런 얘기죠. 그러니까, 이거는 목적지 없이 왔다 갔다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무위 기척, 왜 그렇게 하지 않느냐 하고 묻는 겁니다. 소여호와 치마 기하인가. 그래서, 그렇게 놀다가 그 그늘에서 편히 쉬어서 잠들지 않느냐. 뭐 이런 얘기입니다. 그 위에 번역한 걸 읽어보면, 지금 내가 얘기한 그대로입니다. 어째서 그 나무를 지금 그대는 큰 나무가 있는데, 쓸모가 없어서 탈이라고 하니, 어째서 그 나무를 아무것도 없는 시골에 드넓은 벌판에 심고 그 곁에서 하는 일 없이 거닐며 놀다가, 그 그늘에 누워 잠들지 않는 거요. 그게 진짜 이제 장자가 하고 싶은 말이에요. 그래, 하나님이 널 들어서 큰 일 쓰는 거 그것도 참 좋지. 그러나, 그렇게 되면 아직까지 위대한 나, 멋있는 나, 근사한 나,라는 게 너한테 남아 있어. 그건 지난번 자기하신 것처럼 무화 무기 무 무공 참 진짜 정말 제대로 배운 사람은 내가 없고, 내가 이룬 공이 없고, 나 이름이 없다. 그거 정말 제대로 배운 사람이라, 그게 뭐야? 나라고 하는 게 없단 말이지. 내가 있으니까, 쓸모가 있다 없다 이런 얘기하고 있지 않아. 지금? 그건 그래 봤자 쓸모 있어봤자, 아직도 나라고 하는 울타리에서 내가 못 벗어나는 거야. 장자는 그걸 벗어난 경지를 얘기하고 있는 거라 보는 겁니다. 거까지만 얘기합시다. 이거 너무 깊이 얘기하려고 그러지 말고, 아직 우린 거기까지 가려면 멀었어요. (웃음) 그러니까, 지금 우린 그저 지금 이 상태에서 나라는 인생, 정말 하나님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분이 나를 쓰셨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 마음 가지고 한번 살아보시면 어떨까 싶어요. 그것까지는 우리가 할 수 있잖아요. 그러려면 내가 해야 할 일이 뭐냐. 나를 내가 고집하지 않고, 내가 이것이 내 거라고 하는 착각에서 벗어나고, 이 물건, 이 몸뚱어리, 이거 내 거 아니에요. 내 소유가 아니라고요. 내 거 같으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야 내 거예요. 아니잖아요.
그렇죠? 내 마음대로 안 돼요. 내 인생도 마찬가지야. 내 마음대로 돌아가는 게 아니에요. 임자가 있다는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 임자가 나를 쓰도록 그렇게 “내가 쓰십시오.” 라고 하면 저쪽에서 “내가 그 말 할 때를 오래 기다렸다. 왜 니가 그 말 하지 않으면 나는 너를 못 쓴다.” 베드로에게 가서 “너는 나를 따라와라.” 그러면, 안 따라가면 돼요. 그건 못 써. 그렇죠? 따라가고 안 따라가는 건, 내가 결정해야 되는 거라고. 그저 하나님이 “저를 좀 써주십시오.”라고 하는 것까지는 내가 할 수 있고, 할 만한 일이다. 그런 얘기예요. 그럼 어떻게 쓰실지는 알 수가 없는 거지. 난 지금 고, 아까 얘기한 거 짧은 에피소드를 얘기했는데, 아마 그것이 오늘 오늘 여기까지 나를 이끌어온 힘이 아닌가. 나는 그렇게 생각해. 그래서, 난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모양, 내가 살아온 거 물론 많은 실수를 저지르고 많은 그런 헛걸음 많이 했지만, 그런 나름대로 이만큼도 후회하거나 아쉽거나 그러지만, 건방진 얘기한 것 같아요.
혹시 질문하고 싶은 거 있거나 꼭 책하고 관계에도 안 가도 좋으니까, 살면서 여러분이 이런 거 한번 어떨까 하고 질문하고 싶은 거 있으면, 이제 한번 돌아가면서 얘기를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학생 : 질문이 좀 정리가 안 되긴 한데, 나라고 할 것이 없다라고 하는 것이, 겸손해야 된다 이런 의미는 아니 아니겠죠? 그거 이상의 의미인 것 같은데, 그러니까, 이제 약간의 불교에서 말하는 나라고 할 것이 없다라고 어떤 실체가 없다는 것과 하느님한테 나를 맡기는 것에 오늘 제가 약간 그전에는, 이게 맥이 닿는다고 생각을 했는데, 오늘은 그건 종속적인 거 아닌가? 이런 그러니까, 주인 된 삶을 살아야 되는데, 오늘은 넌 주인 아니다. 이렇게 얘기하시니까, 좀 헷갈리거든요? 그래서, 그 무기 무명 무공은 이제 나를 고집함으로 인해가지고 다른 나와 충돌하고, 그래서 세상이 어지러워지고, 이제 이러지 말아야 한다라고 하는, 이제 그런 효능감도 있을 거고, 그리고 실제로 나라고 할 것이 없다. 아까 내 것이라고 할 것도 없고라고 했을 때, 본래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없다는 거 저도 인정을 하는데, 그러면 하느님의 것인가? 제가 오늘 약간 혼돈이 좀 와서 질문을 드리는데 도움이 안 되나요?
관옥 : 요약을 참 잘하죠. 오히려 얘기한 사람보다 더 잘하고 아주 잘해요. (웃음) 탁월해요. 그래요. 우리가 나란 말을 하잖아요. 근데, 이 모든 물건이 사물이 존재하면 그 사물은요. 하나의 사물은 수많은 파트로 구성이 되는 거예요. 쉽게 얘기하면 내 몸은 머리, 가슴, 손, 발 이런 것들이 있어서 내가 이루어지잖아요. 이것들이 없으면 내가 없는 거예요. 하나라도 빠지면. 그죠? 전부가 다 합해져서 내가 있는 거예요. 맞죠? 이 머리가 없으면, 내가 없는 거예요. 그렇죠? 가슴도 마찬가지고. 이게 많은 부분들이 다 완전히 합해지면 그게 그거란 말이야. 그게 그거예요. 나라고 하는 몸, 내 몸만 봐도. 내 머리, 이게 납니까? 좋아요. 그렇죠? 내 머리만 가지고 얘기하면. 나라고 말할 수가 없죠. 곧 이해가 가죠? 붙어 있어요. 코가 깁니까? 아니잖아요. 그렇죠? 다 달라요. 그러니까 나 아닌 것들이 꽉 차 있어요. 내 안에. 코도 나 아니고, 피도 아니고, 몸도 아니고, 이건 나라고 말할 수 없어요. 왜냐하면, 그건 한 부분이니까. 그렇죠? 나 아닌 것들이 다 모아지면 나야. 그러니, 내가 나야? 나 아닌 거야? (웃음) 이렇게 되는 거야. (나인 것도 아니고 나 아닌 것도 아니고) 이제 그쯤 되면, 이제 인간의 언어로 가서 얘기하기 어려운 경지로 들어가는 거예요. 뭔 얘기를 해도. 사랑은 우리가 경험할 수 있잖아요? 아,이게 사랑이구나. 그렇죠? 겪어서 알 수 있어요. 그걸 뭔 말로 설명할 거예요? 사랑이 이런 거라고 그런 얘기입니다. 그래서 없다고 해도 말이 안 되고요. 있다고 해도 말이 안 되고. 그래서, 아리소용한 말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있으면서 없다 없으면서 있다. 이렇게 얘기하는 거야. 인간의 말은 그것까지밖에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이제 깨달은 사람들은 입을 다무는 거야. 그렇대요. 그러니까, 이것만 하면 돼요. 니 몸뚱어리가 나라고 하는 건 착각이에요. 왜냐하면, 내 몸이 죽어도 난 안 죽어요. 그건 죽어보면 알아요. (웃음) 다 알 거예요. 죽어보면, 그때 저 관옥 선생이 안 죽는다고 그러더니 진짜 안 죽네. 이제 언젠가는 이제 죽을 거 아니에요? 감자도? 그러면, 그때 가서 보고 진짜 안 죽었네. 분명해요. 왜냐하면 당신은 생명이라고. 생명이 지금 저런 모양을 하고 있어. 오케이? 사람이야. 당신 사람이잖아. 사람이 지금 저런 모양을 하고 있어. 사람은 안 죽어. 어디 있다고 말할 수도 없어. 그 인간은 언어는 거기까지 밖에 안 돼. 그래서 이제 이 착각만. 착각을 벗어나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거야. 이 몸이 나라고 하는 건 이건 착각이다. 고까지만 해도 진실이 뭐라고 얘기할 수는 없다.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러나, 소위 말해서 안개가 자욱해가지고 거기 산이 안 보이잖아요. 그래도 안개가 쫙 걷히면 산이 쫙 보이잖아요. 그런 것처럼 안개 같은 내 생각, 내 착각 다 맑아지면 진실이 보인다.
학생 : 저기 하나님께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삶과 그냥 저는 부족하고 어리석고 그러지만 제 삶 또한 분명 하나님이 어느 곳에 그냥 잘 해서 살고 있다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하나님이 말씀드려서 나를 하느님이 써주세요 했을 나의 삶과 지금 현재의 삶은 많이 달라질까요? 다 모두 다 하나님이 쓰시고 계시는 거 아닐까요? 곳곳에서?
관옥 : 그럼 그럼. 도둑질도 한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못해. 정말이야.(웃음) 강도질도. 강도질 할 때 숨 쉴 거 아니냐? 숨 쉴 거 아니야? 그지? 누가 숨을 주니까. 마시는 거란 말이야. 그걸 한님이라고 부른다면, 한님이 강도질 하게 한 거야. 그런 얘기를 해. 사람들이. 그러니까 많이 헷갈려. 하나님이 시켰으니까 나 강도질을 했다. (웃음) 생각해. 이를테면, 지금 그야말로 어 말대로처럼 그냥 하나님이 날 써주십시오. 안 그래도 내가 이렇게 사는 거, 이것도 또한 하나님이 쓰신 거 아닌가? 오케이! 그래, 그걸 알게 되면, 나에 대해서도 심판하지 않고 다른 사람도 심판하지 않지. 저 사람들 쓰시는구나, 정말 그런다면. 누가 뭘 한다는 것은 되니까 하는 거야. 안 되면 못하지. 아무리 하고 싶어도 안 되는 건 못해. 뭘 누가 했어. 그건 되니까 한 거야. 되니까. 그렇지? 하니까 된 게 아니야. 이걸 착각해. 사람들이. 아니야. 되니까 한 거야. 해서 된 게 아니라, 되어서 한 거야. 누가 뭘 했어?
학생 : 일어날 만하니까 일어난다. 일이 일어날 만하니까 일어났어. 하나님의 이렇게, 이런 일이 일어났다라고 생각을 하게 되면, 어떠한 제가 알고 있는 것은 내가 선택한 거 내가 책임지는 삶, 거기에서 괴로움이 없는 삶, 그걸 내가 선택했을 때 다 받아들이는 삶 이런 것과 같은 건가요?
관옥 : 저 소리가 다 들렸어? 야.. (웃음) 내가 선택했다 하더라도 내가 어떤 걸 선택했잖아요.
그걸 내가 했어. 그건 그 일이 됐기 때문에 한 거야.
됐기 때문에 한 거라고요. 되니까 한 거라고요. 그렇죠? 내가 이거 먹잖아요.
이거 먹어지니까 먹는 거예요. 이게 내가 못 먹을 때 있잖아요. 암만 먹고 싶어도 안 돼. 못 먹어. (선택이라는 개념없이) 그냥 물론 내가 이걸 이렇게 선택해서 들지 않으면 내가 못 먹죠. 있어도 그렇죠. 그러니까 내가 선택한다는 것과 하나님이 나를 쓰신다는 게 이게 동떨어진 건 아니에요. 같은 거라고 말할 수 있죠. 근데, 우리는 이제 하나 바람 게 있다면 나라고 하는 건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나. 이게 모르는 게 너무 많아요. 무식하고. 그건 알잖아요. 내가 옛날에 아주 명창, 머리가 아주 기이하고 그럴 때, 한 번은 나한테 그러셔. 저분이. “야, 넌 참 완벽한 존재야.” 나보고 완벽하대. 내가. 내가, 그걸 못 받아들였어요. “제가 어떻게 완벽합니까? 내가 얼마나 모자라 인간인데.” “아니야, 넌 완벽해.” “아니에요. 저는 부족한 게 맞습니다.” 내가 그 말을 못 받아들였어요. “아니, 넌 완벽하다니까.” 자기 코를 심는 거야. 끝까지 내가 그 말을 동의하지 않으니까. “그래, 이놈아, 너 완벽하게 모자라다.” (웃음) 그래서 일단 그냥 넘어갔어요. 그런가 보다. 모자람 자체도 완벽하다는데 뭐 할 말이 없죠. 얼마 전에 나한테 그랬어요. “너한테 내가 이 내가 둘이야. 하나는 내가 만든 데가 있고, 하나는 네가 만든 너가 있어. 내가 만든 너는 완벽해. 니가 만든 나는 네가 만든 너, 내가 생각하는 나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나 그 내가 만든 나야. 사실은 사회가 만들어준 나야. 넌 이런 사람이야, 넌 여자야, 넌 뭐야, 이렇게 내가 엑세트 한 거야. 동의한 거야. 그래서 그게 나 형성된 거야. 그게 나라고 넌 남자야. 너는 한국 사람이야. 이렇게 이렇게 그게 그게 결국은 내가 동의했단 말이야. 그러니까, 내가 나를 만든 거지. 나의 정체를. 내가 만든 나. 내가 봐도 너는 완벽하지만, 니가 봐도 너는 네 말대로 완벽하게 모자라다. 어떤 게 진짜 너냐?” 그러시더라.
그래서, 내가 만든 나, 그걸로 살고 싶지 않다. 당신이 만든 나로 살고 싶다. 그게 지금 내 현주소다. 근데, 그건 내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마음대로 하시오. 그릇이 그릇을 쓰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릇이 그릇을 쓰는 거 아니잖아요? 사람이 쓰는 거지 그런 대화를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두 나예요. 완벽한 나와 모자란 나. 어느 것이 정말 나인가? 진짜 나인가? 그래서, 이것을 말하자면, 이거는 내가 만든 나를 가짜 나라 그러고, 이걸 참나라고 그러고 이렇게 말 많이 하잖아요. 진짜 나 참나 지나 참나 그건 언제 태어났는지 언제 죽을지 없어요. 생사가 없어요. 요거는 있지. 생일이 있고. 죽은 날 있고. 이건 이거 말하자면, 필요해서 만든 거야. 필요해서 만들었어요. 가짜가 왜 필요한가? 가짜가 있어야 돼요왜냐 하면요. 요게 누가 처음 만들었어요. 그럼 이거 세상은 이것밖에 없어. 그럼 얘는 진짜 아니에요. 그냥 얘지. 근데 얘가 진짜가 되려면 뭐가 있어야 돼요? 가짜가 나와야 돼요. 가짜가 있어야 진짜가 있어야 돼요. 이거 진짜로 만들기 위해서 제일 공이 많은 게 가짜예요. 그래서, 우리가 거짓된 사랑, 거짓된 사랑, 가짜 사랑, 사랑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까, 아닌 거, 이런 걸 우리가 가짜라고 그래요. 맞아. 그게 그런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까 아니야 이런 거예요. 허망하다고 그런 거예요. 이게 여기 있는 줄 알았더니 가보니까 없어.
이거 이런 것들을 우리가 이 세상에서 경험한다는 거죠. 우리가 사랑한다, 사랑한다, 이렇게 얘기하지만, 그것들이 그러고 보면 나라고 하는 걸 중심으로 하게 될 때는 아직 사랑이 아니야. 그래서, 아픈 거야. 사랑 때문에 울고, 사랑 때문에 속상하고, 그걸 경험해. 그런 거 많이 경험한 끝에 참 사랑이 뭔가라고 하는 걸 알게 되는 거야. 그래서, 이런 가짜들이 필요하다. 그래야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 나타난단 말이죠. 그렇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러니까 이쯤 되면 다 좋아요. 다 좋아.
아까 학교에서도 꿈 얘기했는데, 간밤 꿈에 내가 집사람하고 새벽 5시에 어디 충주역인가 어디서 만나가지고 어디 같이 가기로 했어요. 저 사람하고 만나서. 근데 내가 서울에 있는데, 근데 그날 내일 새벽 5시에 충주역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그래 어디 가야 돼. 근데 오늘 일이 너무 일찍 끝났어. 그래서 지금 출발하면 오늘 밤 안으로 충주 가겠어. 내가 그럼 하루 좀 일찍 가가지고, 내일 5시에 만날 거 미리 가 가지고 가면 좋잖아. 그리고 출발할 때부터 같이 가면, 또 무거운 짐도 내가 들어주고, 그리고 얼마나 좋아요. 착한 마음 아니에요? 그렇죠? 그래서, 그 선한 마음을 가지고, 내가 출발해서 길을 떠났어. 근데 이놈이 되는 일이 없어. (웃음) 버스 정류장 갔더니, 그 조폭이래. 그 동네 조폭이 버스 정류장을 완전히 장악해가지고 버스표 샀어도 아무 소용이 없어. 이게 버스도 못 타 전화를 좀 하려고 그랬는데, 그 텅 터미널에 공중전화가 하나도 없어. 그 집에 전화도 못 하겠어. 그걸 어떻게 어떻게 하다가 송호일 목사가 연락이 왔는데, 그 친구가 트럭을 가져왔어. 태워 가지고 가려고. 그 트럭을 타고 왔는데 하여튼 이놈이 또 중간에 고장이 나네. 그래 가지고, 이제 뭐 꼼짝도 안 해. 그러니까 할 수 없이 내려서 걸어가는데, 다리는 아프고 한 몇 시간 걷다가 둘이 손 잡고 엉엉 울었네. 엉엉 소리 내면서 울었어. (웃음) 길바닥에 앉아가지고 그래 했는데, 꿈이 아주 복잡해. 한마디로 말해서 막히고 뒤틀리고 비틀리고 어쩌고 어긋나고 해가지고. 예상에 없었던 민감한 일들이 자꾸 닥치는 거야. 그걸 해결하면 또 오고. 이러면서 밤새도록 고생해서 충주역에 내가 도착하니까 10시야. 10시. 5시에 가기로 하고. 근데 물론 저 사람 없지. 그래 어떡해. 연락할 방법이 없어. 근데, 어서 급히 막 헐떡거리면서 나타났어. 당신이 늦게 오는 바람에 말이야. 자기가 뭐 누구 인터뷰 하기로 했는데 이 빵꾸 났다나? 그렇게 얘기해. 그러면서 뭐라고 하냐면 그래도 무사히 여기 왔으니 됐다 이거야. 생글생글 웃어. 꿈에. 그리고 깼어. 근데 내가 깨고 나서 가만히 생각하니까, 내가 그렇게 난감한 일을 당하고 뭐 생각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고, 그런데, 이만큼 더 누구 원망하지 않았단 말이야. 그냥 그대로. 울기도 하고 쩔쩔매기도 하고 했지만, 나를 탓하지도 않았어. 내가 왜 약속대로 내일 그냥 가면 될 건데, 이런 게 없이. 나를 탓하지도 않고 누굴 원망하지도 않고 내가 그랬더라고. 그게 깨고 나니까 참 그게 기특하더란 말이지. (웃음) 그렇다는 얘기는 뭐냐 하면, 생시에도 그럴 수 있다는 얘기예요. 세상이 왜 이리 힘들지? 어떻게 새끼들이 내 마음대로 안 되잖아? 그렇잖아? 장사가 내 마음대로 되나, 회사가 내 마음대로 돌아가나, 세상 정치가 내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나. 그런데도 누구를 원망하거나 탓하지 않고, 조용하게 대처해 나간다. 그런 대로. 그럼 됐잖아.
학생 : 그럼 살면서 억울한 건 없겠네요? (웃음)
관옥 : 없죠. 그쯤 되면. 근데, 지금 그러려고 애쓰지 마. 그러나, 나도 내가 그랬잖아. 베드로도 어부인데, 들어서 당신이 성자로 만드셨지 않습니까? 그래 나도, 그 길 좀 가게 합시다. 하고 했던 거. 그게 그게 스물 몇 살 때니까 맞아. 50년 넘은 얘기잖아. 반세기 전 얘기야. 그 오랜 세월 동안 여러 가지로 이런 일 겪고 저런 일 겪고 이렇게 넘어지고 쓰러지고 막 그러면서 온 거야. 그러다 보니까, 내가 꿈에 그렇게 걸리지 않게 이런 일 저런 일 다 당하면서도 태연하게 내가 그걸 하고 있더라. 그런 얘기야. 그러니까, 지금 당장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건 택도 없고, 그러나, 그렇게 되기를 소망하는 거 매우 중요하다. 네가 그걸 원하지 않는다면 안 돼. 방법이 없어. 그래서 난 아이들에게 될 수 있는 그런 얘기를 해주고 싶은 거야. 네 인생은 결국 니가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 인생이 어떻게 될 것인가 그 남 탓하는 건 모자라는 사람이 하는 거다. 공자님이 그러셨어. 성인은 상부는 천유 하불의인이다. 유명한 말씀이야. 성인, 성인은 공자 말씀 성인은 여기 지인 이런 건데, 성인 잘 배우고 배울 거 다 배운 사람, 그래서, 이제 사람으로 가장 높은 경계에 올라간 사람. 상불원천 위로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하불위인, 아래로는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 내가 이렇게 된 거는 부모님 잘못 만나서 그런 거야. 이런 거. 내가 이렇게 되면 시절을 잘못 만나서 그런 거야. 그런 얘기 하지 않아. 하늘을 원망하지 않아. 그리고, 사람을 탓하잖아. 너 때문에 이렇게 됐어. 내가 불행한 건 너 때문이야. 내가 널 만난 게 얼마나 후회스러운지 몰라. 이런 얘기를 안 한단 말이지. 그럴 수 있어. 그럴 수 있다는 거야. 공자님이 자기가 그렇지 못하면서 그런 얘기하면, 이제 말이 우습기지 그지? 근데, 그 양반 왕들이 자기를 안 써준다고 해서 원망하지 않아. 써주지 않으니까 주위천을 하는 거야. 그래도 괜찮아. 자기 세 가지 즐거움이 있다고 그랬잖아. 세 가지 즐거움. 먼 데서 친구가 날 찾아와주니 참 고맙다. 즐겁다. 그리고, 옛날 문장을 배워서 오늘을 깨치니 이게 공부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즐거운 일이냐.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데 섭섭하지 않다. 이게 얼마나 즐거운 일이냐 그런 사람이 있었단 말이지. 그러니, 그런 사람이 존재한다는 얘기는 너도 원한다면 나처럼 될 수 있다. 예수님처럼 십자가 달려 돌아가시면서 자기를 죽이는 사람들 향해서 “하나님 쟤들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 나쁜 놈들이 아닙니다. 몰라서 그래요. 그러니 좀 용서해 주십시오.”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다면. 멋있잖아. 그림만 그려도.
어제인가 학교 가서 얘기를 했는데, 몇 사람들 들은 얘기인지도 모르겠는데, 어떤 교수가 학교에서 아이들하고 수업을 끝나고 수업을 마치고 마시던 커피를 들고 복도에 왔대. 복도에 서서 아이들이 자꾸 질문을 하니까 문답을 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사람이 못 보고 툭 쳤어. 커피가 엎질러졌다 말이야. 쏟아졌어. 그러니까, 교수가 그 둘러서 있던 학생들에게 물었대요. “자네들 커피가 쏟아진 거 봤지? 왜 커피가 쏟아졌을까? 땅에?” 물었다는 거야. 그러니까, “그놈 자식이 보지 못하고 와가지고 쳐가지고 엎드렸죠.” “우리가 이 좁은 복도를 차지하고 이렇게 있어서 우리한테도 문제가 있죠.” 이런 식으로 얘기를 아이들이 했단 말이야. 근데 교수가 말이야. 내 생각엔 말이야. “왜 커피가 쏟아졌냐 하면 이 컵 속에 커피가 있었거든. 그래서 쏟아졌어.” (웃음) 그러더래. 똑같은 건데 이렇게 볼 수도 있는 거야. 우리는 뭔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아주 기계적으로 “이거 어떤 놈이야? 누가 이랬어?” 그렇죠? 안 보이면 이것도 지 탓이여.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우리들의 버릇인데 생각의 버릇인데, 그거 참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그런 거예요. 근데, 이 교수는 뭐냐 하면 아니야. 커피가 담겨 있었으니까 커피가 써도 었지 이건 뭐예요? 참 재미있어요. 내 속에 뭐가 담겨 있느냐? 그게 문제야.
학생 : 그럼 잘못되거나 그리 된 일이 아무 탓도 없어요? 그러면, 잘못되고 그릇된 일에 아무 탓도 없냐고요. (웃음)
관옥 : 탓이라는 게 뭐냐 하면,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그 탓이 공자님이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 하는 얘기는 나는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 그런 얘기. 그렇게 보이니까. 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됐다 라는 생각이 없어. 그러니까, 자기는 아무도 탓하지 않는다 이렇게 얘기했지. 그게 아주 그 수준에 가지 못한 사람 보고 너도 그렇게 해라. 이건 아니야. 원망하는, 원망스러운 사람이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런 사람에게 원망하지 마라 하는 얘기는 좀 지나친 얘기라고. 그러나, 얘기하길, 거기에 머물렀으면 너는 끊임없이 계속 괴로울 수밖에 없어. 좀 생각해 봐라. 이런 얘기를 할 수 있잖아요. 용서해. 왜? 너 좀 잘 살려고. 그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좀 잘 살려면 그거 놔버려. 왜 움켜 잡지 마. 이게 용서야. 왜 움켜잡고 있니? 그 사람 놔버려. 상처받지 마. 네가 상처받은 건 과거야. 왜 지금도 받으냐? 이런 얘기. 그래서 용서하라고 얘기하는 거야. 용서했는데, 누굴 원망하냐? 근데, 그게 아까도 얘기했지만 우리 마음대로 안 되잖아요. 내가 마음대로 그렇게 먹는다고 너 말 따라가지 않아. 그죠? 그래서 누군지 모르지만, 저 하나님하고 자꾸만 거래를 해야 되는 거야. 내가 여기 있는 건 누가 나를 여기 있게 하니까 있는 거잖아. 누군지 모르지만.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없으면 내가 어떻게 있어요? 우리 어머니, 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가 없으면 어떻게 있어요? 무수한 사람들이 나를 위한 거야. 그러면 자꾸 올라가면 한 사람들이 나를 위한 거야. 그래 나라고 하는 것이 뚝 떨어진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는 걸 아는 거야. 무지 무지하게 큰 어떤 것의 한 부분이야. 내가 그걸 알아. 오늘 장자 얘기는 그만할까?
여기서 들은 얘기, 한 두마디 들은거가 여러분한테 이 만큼이라도 부담이 안 됐으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그렇게 하지 말고. 내가 하고 싶은 얘기에 그냥 기본만 캐치하면 될 것 같아. 억지로 뭘 하린 밀은 절대 아니에요. 내가 배운 나의 하나님은 절대로 억지를, 아무리 작은 일도 억지를 부리지 않아. 그러니까, 내가 사람한테도 억지를 부리지 않아. 여러분 지금까지 잘 살아왔어. 이건 내가 장담해. 다. 너도 참 잘 살아왔어. 잘못 없어. 아픈 것도 잘 아팠어. 그걸 알았으면 좋겠어. 이 만큼도 잘못한 거 없어. 다.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할 뿐이야. 아니야. 원래 그렇게 생겨 먹었어. 그래서 그런 거야. 그러니까, 제발 자기 자신을 학대하거나, 나무라거나, 비탄하거나, 그런 거 좀 안 했으면 좋겠어. 부탁을 해. 하지 마. 그렇다고 기고 만장해서 자기가 최고라고. 그러지 말고. 그것도 아니니까. 그래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 좀 보통 우리가 학습한 거는 냉혹해. 나무라지 말고. 좀 따뜻하게 자기를 좀 대해줬으면 좋겠어. 자기를 존중하고, 자기를 사랑하는 거, 그게 내 마음에 꽉 차 있어. 그럼 누가 툭 치면 그게 나와. 그렇지? 툭 칠 때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거, 그게 진짜 나지. 작심하고 하는 말은 그거 좀 그건 수상해. 무심코 나오는 말, 자기도 모르게 불쑥하고 나오는 말, 그게 내 본심이란 말이야. 근데 내 본심, 거기에 내가 사랑과 따뜻함과 너그러움과 이런 것들이 꽉 차 있으면 우리가 그 노래 나오잖아. 내가 어렸을 때 들은 얘기야. 음성인가 충주에 충청도 음성인가 어디에서 만세운동하다가 사람이 하나 만세 부르다가 잡혔대요. 그러니까, 형사가 가서 때릴 거 아니야. 한 대 맞아 만세 만세, 정신 차리면 만세. (웃음) 그래. 그러니까, 이 자식 봐라. 그러고 아 제발 좀 때리지 말라고. 때리니까 만세가 나오잖아요. (웃음) 왜냐하면 내 속에 요까지 조선독립 만세가 꽉 찼는데, 누가 건드리면 그게 나온다. 이거야. 이게 그런 얘기를 했다고 말이야. (웃음) 내 안에 있는 것이 밖으로 나가는 거예요. 내가 나한테 없는 걸 내가 어떻게 해줘? 그렇잖아? 나한테 있는 걸 줄 수 밖에 없어. 그러니까, 문제는 내 속을 뭐로 채울 것이냐? 그건 미안하지만 네가 결정해. 선택을 네가 해야 돼. 오케이! 그까지는 다들 이해가 가시죠? 그럼, 이제부터 좋은 것만 골라 먹읍시다. (웃음) 좋지 않은 건 개워내고. 요새 꿈 공부하는 사람들은 학교에 있던데, 꿈이 참 좋은 거야. 그게 내 속에 있는 아주 더러운 것들을 토해내는 씻어내는 좋은 것이 꿈이야. 그렇게 해서 내가 원한다면 저분이 “나 좀 청소해 주세요.” 그렇게 부탁할 수 있어요. 그릇이 그릇을 설거지 못하잖아. 그렇죠? 식모가 하지. 그런 것처럼 내가 나를 깨끗하게 할 수가 없어. 그러니 “하나님! 난 당신이 누군지 모르지만, 나를 여기 이렇게 만들어주신 분, 나를 존재하게 한 분, 당신께 부탁합시다. 나 좀 깨끗하게 해주시오.” 그렇게 할 수 있잖아요. 그러면, 왜 그 양반이 그 기도를 안 들어주겠어. 자기 건데. 자기가 쓰려고 만든 것인데. 그까지는 우리가 하자 그 얘기예요.
라떼 : 장자 산책을 공부한다고 해서 마치 뭔가를 배우는 느낌으로 왔는데, 항상 선생님 요즘에 드는 생각이 선생님 말씀을 들으면 이렇게 비워지는 것 같아요. 샤워가 되는 느낌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장자 산책 세 번째 시간 마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관옥의 노래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첫댓글 고맙고 고맙습니다.. 이런것을 두고 은혜롭다 하는 거 같아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