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이어 역동적 믿음을 위한 실천 원리들1)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역동적인 믿음을 형성하려면 하나님과 친밀함을 경험해야 합니다.2)
2. 복잡한 세상에서 문화적인 분별력을 길러야 합니다.3)
이 세상 문화가 중립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문화는 악한 사람들이 많은 문화기 때문에 그 문화를 잘 분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디지털 문화를 만들었고 디지털 세계에 빠져 있습니다. 사람들은 휴대전화에 의해 즉각 만족을 얻고 도파민 중독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오랜 시간 인내를 가지고 습득하는 인내력이 잃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절대화된 시간을 낭비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4)
사람들이 이 네모난 것 쳐다보느라고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 가치 있는 일에 쓰여야 할 시간이 필요 없는 일에 낭비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 조작된 현실은 무엇이 사실인지를 알기 어렵게 만듭니다.5)
영화 매트릭스를 보면 사람 뒤에다가 목 뒤에다가 코드를 꽂고 있는데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세계가 진짜 세계인 줄 알고서 일상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목 뒤에다가 코드를 꽂고 누워서 가상세계에 살아갑니다. 현실하고 가상세계하고 구별할 수 없는 그러한 세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딥페이크(Deepfake) 영상이 발견되었다고 하였는데 딥페이크가 아닌 짜깁기 영상이었다고 합니다.6)
어쨌든 오늘날에는 없었던 일을 얼마든지 있었던 일로 꾸밀 수 있으며 오늘날은 영상이 조작되어도 진짜와 가짜가 구별할 수 없는 시대입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과 영상이 다 진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느 날 하늘에 UFO가 나타나 가지고 사람들을 막 공격할 수 있는데, 그때 뉴스에는 외계인이 침공해 사람들을 죽였다고 보도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무엇입니까?
그게 가짜임은 ‘스파이더맨(Far From Home)’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악인들은 자신들의 예정표를 영화나 드라마로 미리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 영화를 보면 도시를 파괴하는 괴물에 스파이더맨이 맞서 싸웁니다. 괴물은 3D 홀로그램일 뿐이었고 파괴는 숨겨둔 드론을 통해서였습니다. UFO 홀로그램 속에 드론을 숨긴 후 UFO의 공격으로 속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디지털 바벨론에 살아가려면 역동적인 지혜가 필요합니다.7)
다니엘은 음식 문제로 갈등이 빚어지자 지혜롭게 처신하였습니다. 다니엘의 친구들이 우상에 절하지 아니하였던 것도 지혜였습니다.8)
우리는 영적 분별력이 최고로 중요한 주제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범적 성경 인물들을 연구를 통해 영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9)
우리가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지 않을 때 우리의 믿음은 떠내려갑니다. 다니엘이 바벨론 안에 살았어도 바벨론에 속하지 아니하였던 것과 같이, 신자들은 이 세상 안에 살아도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여야 합니다.10)
참 지혜에 이르기 위해서는 ① 바위 아래 숨지 아니하여야 합니다.11)
칼 바르트는 “한 손에는 성경 한 손에는 신문을”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신앙인은 성경뿐만 아니라 세상과 역사에 관한 조망을 가져야만 합니다. 성경 본문을 21세기 상황에서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신문으로 성경을 해석할 것이 아니라 성경을 현실에 적용해야 합니다. 새로운 계시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 계시를 적용하자는 것입니다.
성경 계시를 정확히 이해하고 그 원리를 삶에서 적용하자는 것입니다. 바르트의 신학을 옹호한 것이 아니라 현실을 알아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목사들이 진실을 몰라서 코로나 백신을 맞아야 한다고 선동한 것입니다.
세상에 속하지 않은 상태에서 세상 안에 사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세상이 중립적이라고 말하여도 우리는 악하다고 말하여야 합니다.12)
우리가 참 지혜에 이르기 위해서는 ② 성경에 닻을 내려야 합니다.13)
사람이 성경에 닻을 내리는 때에 역동적인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14)
참 지혜에 이르려면 ③ 참여만 하지 말고 참여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다니엘은 사회에 공적으로 참여하기 전, 준비 기간을 거친 것입니다.15)
교회는 현세를 보는 관점과 삶의 방식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합니다.16)
역동적인 지혜에 이르려면 ④ 배우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17)
지혜로우려면 ⑤ 디지털 바벨론에서의 학습에 적응하여야 합니다.18) 우리는 유배의 삶을 살아가는 바벨론이라는 환경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바벨론에서 어떻게 집을 짓고서 정착할 것인가를 배워야 합니다. 본향에 돌아갈 날이 남았으므로 새로운 환경에서 살기를 배워야 합니다.
포로들이 끌려갔는데 거짓 예언자들은 곧 돌아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예언자 예레미야는 70년이 지나야만 고향에 돌아올 수 있으므로 포로로 끌려간 바벨론에서 집을 짓고서 정착하여 살라고 말한 것입니다.
믿는 교회와 믿는 가정이 좋은 학습 공동체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하며 배우고, 생각하고, 깨닫고, 행동하는 법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합니다.19)
“콘텐츠(contents)”는 인터넷을 통하여 제공되는 각종 정보를 뜻하며, 크리스트교의 정보 내용물들을 보고서 소화하는 습관이 중요합니다.20)
풍성하고 건전한 진리를 가르치는 일은 사람을 지루하게 할 수 있으나 풍성하고 건전한 진리를 가르치는 일이 교회에 꼭 필요한 일입니다.21)
⑥ 온전한 복음을 가르쳐야 합니다.22)
⑦ 성경적 세계관으로 일컫는 사고 체계의 훈련을 하여야 합니다.23)
“세계관(世界觀)”이 무엇입니까? 세계를 보는 관점(觀點)을 말합니다. 똑같은 현상을 두고도 사람마다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관점으로 세계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바벨론의 세계관을, 세상의 세계관을 가지고서 살아갑니다. “맹인모상”이라는 고사성어는 눈먼 소경이 코끼리를 찾는다는 뜻입니다. 사람마다 자기가 본 것들을 토대로 세계를 바라보기에 관점이 다릅니다. 우리는 성경을 표준으로 삼고서 성경에 비추어서 세계를 보아야 합니다.
무엇이 옳고 그르고 무엇이 혼란스러운가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잘못된 점은 고치고, 혼란스러운 것은 명료하게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간단한 질문들이 세상에 더 충실하게 참여할 수 있게 돕습니다.24)
3. 세대 간의 의미 있는 관계를 형성하여야 합니다.25)
오늘날 많은 목사가 사업가나 예능인처럼 행동한다는 사실입니다.26) 교회에서 목사가 사장이고 부목사나 전도사들은 직원들입니다.
제가 전도사, 강도사였던 때 담임목사들이 교역자들을 출석시킵니다. 그래서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할 일이 없습니다.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 평일에 불러내서 교회에 아이들 모으고 그러면, 사람들은 교회가 부흥하고 아이들 많이 왔다 갔다 한다고 칭찬하겠지만, 공부하는 아이들은 공부해야지 평일에 왜 교회로 불러냅니까?
그래서 중고등부 담당자는 교회에 출근하여도 할 일이 없는 것입니다. 아무 할 일이 없어 교회당 사무실 책상에 앉아 성경을 펴서 읽고 있으면, 담임목사가 성경은 집에 가서 읽고 교회에 출근했으면 일하라고 합니다. 세상에! 목사라는 사람이 전도사, 강도사에게 성경 읽지 말라고 합니다. 목사의 정신이 사업가의 정신입니다.
‘어떻게 교인들을 즐겁게 하겠는가’라는 예능인 정신을 목사도 있는데 교인들이 교회에 오면 교회가 교인들을 위로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목사가 받은 첫째 임무는 무엇입니까? “목사”는 “목자”입니다. 교인들이 영(靈)이 살도록 양식을 공급하여 주는 것이 첫째 사명입니다.
목자에게 양들에게 줄 양식이 없다면 양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합니다. 양들에게 좋은 양식을 주려면 목자가 성경을 읽고 연구하여야만 합니다.
담임목사들이 부목사들을 교회당에 출석시키고 교구를 담당시킵니다. 부목사들은 심방을 하기 바쁘므로 성경을 읽고 연구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다가 담임목사가 되면 교인들에게 깊이 있는 설교를 하지 못합니다.
담임목사가 사업가의 정신을 가지고 부목사들을 직원으로 부려먹으니 부목사들이 다음 세대를 이끄는 실력 있는 목사들로 성장하지 못합니다. 담임목사들이 다음 세대 목사들을 키우지 않고 양성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교회에서 전도사도 그 목사에게 많은 오류와 모순을 발견하는데, 머리가 빨리 돌아가는 젊은이들 눈에는 목사의 오류가 보이는 것입니다. ‘저것 아닌데’, 그러면서 교회를 비판하고 교회를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젊은이들은 도움이 되는 관계를 찾기 위해 홀로 먼 길을 가야 합니다. 이 상황에서 의미 있는 세대 간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필요합니다.27)
사람들은 고독이라는 팬데믹(Pandemic) 유행병에 걸려 있습니다.28)
자기중심적인 삶은 나를 지나칠 정도로 먼저 앞세우는 현상을 낳았고, 사람이 화상을 통해 그 삶의 많은 것을 경험할 때는 특히 더 그렇습니다. 그 결과물을 가리키는 ‘셀피’(selfie), ‘셀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는데 모두가 ‘나와 자신’의 완전한 형상을 포착하느라고 여념이 없습니다.29)
사람들은 목사들에게 실망을 느끼고 혼자 영상 보며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인 것으로 착각합니다.
자기 혼자서 하는 ‘독자적인 제자의 신분’은 모순(矛盾)된 말일 뿐이며 ‘1인 기업’ 같은 제자 신분이 불가능함을 인정해야 합니다.30)
목회자들이 전통적인 지혜만이 의사소통을 나눌 방법이라고 생각하면 젊은 세대와 관계를 맺기가 더더욱 어려워질 것입니다.31)
젊은 크리스천들이 교회를 ‘사업’으로 여기며 교회에 대해 오해하는데 교회가 제자의 신분과 사람들을 변화시킬 기회를 포기하지는 않는가요? 젊은이들이 교역자를 ‘급여를 받고 친구 노릇을 하는 자’로 인식하나요? 우리 교회 ‘관계적 지능 지수(relational IQ)’는 과연 얼마나 될까요?32)
사람들은 이 일에는 관심이 없고 영어, 수학 학원만 열심히 보냅니다. 어떻게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것인가에 관심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관계 지수가 지극히 낮은 것입니다.
젊은 세대가 우습다고 여기는 것이 냉소주의 성격을 띠게 되었습니다. TV 프로그램들이 세상을 냉소적인 방식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젊은이들은 프로그램을 통하여 냉소적인 유머를 습득하며 자랍니다.33)
트위터나 페이스북도 모두 개그맨인 것으로 생각하게 유도합니다.34) 이 시대에는 진지하게 생각하기보다 틱톡의 재밌는 영상을 보며 삽니다.
이런 시대 속에 처해 있으나 교회는 관계적 지능 지수가 높아야 하며, 아이들과 어른들이 친밀하게 되는 세대 간의 의미 있는 관계가 형성되는 그런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에 다닌 아이들의 관계적 지능 지수가 높게 될 것입니다. 세대 간의 친밀한 관계로 다음 세대도 예수님의 제자들로 만들어집니다.
1) David Kinnaman·Mark Matlock, 『디지털 바벨론 시대의 그리스도인』, 조계광 옮김 (서울: 생명의말씀사, 2020), 37
2) Kinnaman·Matlock, 『디지털 바벨론 시대의 그리스도인』, 37.
3) Kinnaman·Matlock, 『디지털 바벨론 시대의 그리스도인』, 87.
4) Kinnaman·Matlock, 『디지털 바벨론 시대의 그리스도인』, 101.
5) Kinnaman·Matlock, 『디지털 바벨론 시대의 그리스도인』, 102.
6) https://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6136
7) Kinnaman·Matlock, 『디지털 바벨론 시대의 그리스도인』, 104.
8) Kinnaman·Matlock, 『디지털 바벨론 시대의 그리스도인』, 105-106.
9) Kinnaman·Matlock, 『디지털 바벨론 시대의 그리스도인』, 107.
10) Kinnaman·Matlock, 『디지털 바벨론 시대의 그리스도인』, 108.
11) Kinnaman·Matlock, 『디지털 바벨론 시대의 그리스도인』, 109.
12) Kinnaman·Matlock, 『디지털 바벨론 시대의 그리스도인』, 110-111.
13) Kinnaman·Matlock, 『디지털 바벨론 시대의 그리스도인』, 112.
14) Kinnaman·Matlock, 『디지털 바벨론 시대의 그리스도인』, 114.
15) Kinnaman·Matlock, 『디지털 바벨론 시대의 그리스도인』, 115.
16) Kinnaman·Matlock, 『디지털 바벨론 시대의 그리스도인』, 116.
17) Kinnaman·Matlock, 『디지털 바벨론 시대의 그리스도인』, 118.
18) Kinnaman·Matlock, 『디지털 바벨론 시대의 그리스도인』, 119.
19) Kinnaman·Matlock, 『디지털 바벨론 시대의 그리스도인』, 120.
20) Kinnaman·Matlock, 『디지털 바벨론 시대의 그리스도인』, 125.
21) Kinnaman·Matlock, 『디지털 바벨론 시대의 그리스도인』, 127.
22) Kinnaman·Matlock, 『디지털 바벨론 시대의 그리스도인』, 128.
23) Kinnaman·Matlock, 『디지털 바벨론 시대의 그리스도인』, 129.
24) Kinnaman·Matlock, 『디지털 바벨론 시대의 그리스도인』, 130.
25) Kinnaman·Matlock, 『디지털 바벨론 시대의 그리스도인』, 141.
26) Kinnaman·Matlock, 『디지털 바벨론 시대의 그리스도인』, 144.
27) Kinnaman·Matlock, 『디지털 바벨론 시대의 그리스도인』, 145.
28) Kinnaman·Matlock, 『디지털 바벨론 시대의 그리스도인』, 150.
29) Kinnaman·Matlock, 『디지털 바벨론 시대의 그리스도인』, 154.
30) Kinnaman·Matlock, 『디지털 바벨론 시대의 그리스도인』, 155.
31) Kinnaman·Matlock, 『디지털 바벨론 시대의 그리스도인』, 158.
32) Kinnaman·Matlock, 『디지털 바벨론 시대의 그리스도인』, 159.
33) Kinnaman·Matlock, 『디지털 바벨론 시대의 그리스도인』, 160.
34) Kinnaman·Matlock, 『디지털 바벨론 시대의 그리스도인』, 1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