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서 1장 13-23절. 우리의 구속자 되신 예수님
1. 지난주에는 바울 사도가 골로새 교인들을 위해서 몇 가지 기도를 드린 데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1) 하나님께서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알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2)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으면, 그 뜻대로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셔서, 선한 열매를 가득 맺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3) 이처럼 성도가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선하게 살려고 해도, 이 세상에는 마귀와 죄악과 고통들이 많아서, 착한 신앙생활 하기가 힘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셔서, 모든 역경과 고난을 잘 견디고 천국 행진을 잘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4) 끝까지 천국 행진을 잘함으로써, 천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실 하나님께 감사하기를 기도를 드렸습니다.
2. 앞부분에서 바울 사도는 골로새 교인들에게 ① 1-8절에서, 믿음 소망 사랑의 신앙생활을 잘한 것에 대한 감사를 드렸고, ② 9-12절에서, 골로새교회 성도들을 위한 기도를 드렸고, ③ 이제 13절부터는 본론적인 말씀을 시작합니다.
3. 골로새서를 기록하게 된 동기를 알면, 골로새서의 핵심적인 주제가 무엇인가를 알게 됩니다.
(1) 골로새서를 기록하게 된 동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골로새 교회의 목회자인 에바브라가 골로새교인들의 헌금을 가지고, 로마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 사도에게로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1장 7절에는 “너희가 에바브라에게 배웠다”고 칭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로마 감옥에 있는 바울에게 찾아온 에바브라는 골로새 교회에 이상한 이단 사상이 침투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걱정을 했습니다.
그 이단 사상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2장 8절부터 끝절까지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이 이단은 소위 영지주의(Gnosticism)라고 하는 것입니다.
모든 이단의 특징이 그렇듯이 이것도 예수님을 머리로 붇들지 않고, 신비주의로 흐르고, 또 금욕주의로 흐르는 이단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처음부터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으니, 예수님을 붙들어야 하고, 신비주의에 빠져서 천사숭배까지 하는 자들에게 예수님이 우주의 주권자이심으로 예수님을 섬기라고 권면합니다.
오직 예수님 밖에는 하나님과 우리 인간을 화목케 할 존재가 없다고 분명히 밝힙니다.
(2) 이러한 골로새 교회의 형편에 대해서 바울 사도는 다음과 같이 교훈합니다.
즉 오늘 13-23절의 내용도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설명드릴 수 있습니다.
13-14절.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 죄인들을 마귀와 죄악과 지옥 형벌에서 구원하신 분이시다는 것입니다.
15-18절. 오직 예수님만이 보이는 물질세계와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와 천사들조차도 주관하시는 만물의 주권자시고,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19-23절. 오직 예수님만이 자신의 십자가 피로써, 하나님과 죄악에 빠져서 하나님을 멀리 떠난 우리 죄인들 사이를 화목케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예수님께 대한 복음 신앙에서 흔들리지 말고, 신비주의와 율법주의가 혼합된 <영지주의 이단사상>에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3. 이 부분의 핵심은 <그리스도론>인데, 요한복음 1장 1-18절과 히브리서 1-3장과 더불어 3대 <그리스도론>에 해당합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이 세분할 수도 있습니다
13-17절. 예수님의 선재와 창조사역
18-20절. 예수님의 교회와의 관계
21-23절. 예수님의 화목 사역.
4. 오늘 설교의 제목은 <구속자 되신 예수님>입니다.
13-14절은 예수님의 속죄 사역을 말씀합니다.
즉 오직 예수님이 우리를 흑암의 권세자인 마귀에게서 건져내셔서, 하나님 나라로 옮겨주신 구원을 이루어주셨다는 것입니다.
13절.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He rescued us from the domain of darkness, and transferred us to the kingdom of His beloved Son,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ὃς ἐρύσατο ἡμᾶς ἐκ τῆς ἐξουσίας τοῦ σκότους
who delivered us from the dominion of darkness
‘건져내사’(ἐρύσατο)는 부정과거로서(delivered) 완전히 단번에 영원히 건져내셨다는 뜻입니다.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καὶ μετέστησεν εἰς τὴν βασιλείαν τοῦ Υἱοῦ τῆς ἀγάπης αὐτοῦ,
and transferred into the kingdom of the Son of the beloved of Him
‘옮기셨으니’(tμετέστησεν)도 부정과거로서(transferred) 단번에 완전히 옮겨버리신 것을 가리킵니다.
1. ‘흑암의 권세’란 마귀가 지배하는 나라를 가리키고, ‘사랑의 아들의 나라’란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주신 사랑이 지배하는 하늘나라를 가리킵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을 마귀의 지배 아래서 사랑의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로 옮기신 것을 가리킵니다.
여기 ‘건져내사’(ἐρύσατο)와 ‘옮기셨으니’(transferred)는 모두 부정과거로서 마귀의 지배에서 단번에 영원히 하나님 나라로 옮기신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마귀가 하나님의 손에서 성도들을 빼앗을 수 없고(요한복음 10:28-29), 마귀가 더 이상 하나님의 자녀를 건드리지도 못합니다(요한일서 5:18).
원래 구약성경에서는 ‘옮긴다’(גֶּלֶה)는 말이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론에 포로로 옮긴다는 뜻인데, 신약에서는 ‘옮긴다’(ῥύομαι)는 말은 마귀의 나라에서 하나님 나라로 구원하신 것을 가리킵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공중 권세 잡은 마귀를 따라 종노릇 하면서 살았습니다. (에베소서 2:2)
에베소서 2: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그러나 예수 믿게 하셔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사도행전 26:17-18).
그래서 성도들은 마귀의 나라 시민에서 하나님 나라 시민으로 시민권이 옮겨졌습니다. (빌립보서 3:20)
빌립보서 3: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2. ‘흑암의 권세’에서 권세란 말(ἐξουσία)은 마태복음 8장 9절에서 로마의 백부장이 자기도 권세 아래 있고(ὑπὸ ἐξουσίαν) 자기 수하에도 부하들이 있다고 할 때 쓴 단어로서, 마귀가 많은 군사들을 거느리고 불신자들을 지배하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불신자들은 마귀와 그 군사들에게 꼼짝 못하고 지배를 당하면서 삽니다.
그래서 한 번 귀신 제사나 귀신 숭배에 사로잡히면 꼼짝을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강한 자를 결박하시기 때문에, 사람들을 마귀의 권세에서 빼앗아 올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1:20-22.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 소유가 안전하되, 더 강한 자가 와서 그를 굴복시킬 때에는 그가 믿던 무장을 빼앗고 그의 재물을 나누느니라.
이처럼 예수님께서 우리를 마귀의 손아귀에서 빼앗아 하나님 나라 자녀가 되게 하신 것은 천천만만 감사할 일입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불신자들은 알게 모르게 마귀에게 사로잡혀서 불신세상 풍조를 따라 살고 있습니다. (요한일서 5:19. 에베소서 2:2-3)
그런데 우리 예수님께서는 마귀의 나라를 멸하기 위해서 오셨고, 이 세상 임금인 마귀를 쫓아내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요한일서 3:8, 요한복음 12:31)
즉 하나님께서는 예수 믿는 성도들을 그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내 사랑하는 자요 기뻐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3:17, 17:5)
14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in whom we have redemption, the forgiveness of sins.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ἐν ᾧ ἔχομεν τὴν ἀπολύτρωσιν, τὴν ἄφεσιν τῶν ἁμαρτιῶν
in whom we have the redemption, the forgiveness of the sin
직역하면 ‘그 안에서 속량 곧 죄 사함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가지고 있다’(ἔχομεν)는 현재형으로서(we have) 현재 지금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1. ‘구속’(ἀπολύτρωσις: redemption)이란 ‘속전’(贖錢: λύτρον, ransom)을 주고 토지나 노예를 해방시키는 것을 가리킵니다( release effected by payment of ransom).
레위기 25:24-25. 너희 기업의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 만일 네 형제가 가난하여 그의 기업 중에서 얼마를 팔았으면 그에게 가까운 기업 무를 자가 와서 그의 형제가 판 것을 무를 것이요
레위기 25:47-49. 만일 너와 함께 있는 거류민이나 동거인은 부유하게 되고 그와 함께 있는 네 형제는 가난하게 되므로 그가 너와 함께 있는 거류민이나 동거인 또는 거류민의 가족의 후손에게 팔리면, 그가 팔린 후에 그에게는 속량 받을 권리가 있나니 그의 형제 중 하나가 그를 속량하거나, 또는 그의 삼촌이나 그의 삼촌의 아들이 그를 속량하거나 그의 가족 중 그의 살붙이 중에서 그를 속량할 것이요
이처럼 속량하는 것을 구약에서 ‘무르다’(גָּאַל)라고 했고, 신약에서는 ‘속량하다’(λυτρόω)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죄를 짓고 마귀에게 종노릇하게 되었는데, 우리 예수님이 우리 죄 값(속전: 贖錢: λύτρον, ransom)을 십자가에서 지불하시고, 우리를 죄와 마귀와 사망과 저주와 지옥에서 해방(구원)시켜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 ‘구속 곧 죄 사함’(ἀπολύτρωσιν, τὴν ἄφεσιν τῶν ἁμαρτιῶν: the redemption, the forgiveness of the sin)이라고 했습니다.
죄를 사함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피 흘림이 있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9:22.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하나님께 죄를 지은 사람은 지옥에 가야 하고,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피 흘림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 자신이 피를 흘려서는 흠이 있기 때문에 속죄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바로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에 흠 없는 피를 흘려서 죽으셨습니다.
이 놀라운 지극한 사랑을 지극히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찬송가 143장. 왠 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 가셨나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나. 내 지은 죄 다 지시고 못 박히셨으니 웬 일인가 웬 은혠가 그 사랑 크셔라.
2. 인간은 원래 마귀의 말을 듣다가 속아서 죄악으로 마음이 악하게 변해서 모두 지옥에 갈 수밖에 없었는데, 예수님께서 불쌍한 우리 죄인들을 마귀의 지배에서 건져내시고, 하나님의 나라로 옮기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우리를 마귀와 죄악과 지옥 형벌에서 구원하신 것은 우리의 범죄에 대한 대가를 치루시고 이루신 것입니다.
과거에 노예로 팔린 사람을 자유인으로 석방시켜 주려면, 황소 한 마리의 값을 물러주어야 했습니다.
옛날에는 농사를 짓는 농경사회였기 때문에, 소 한 마리가 밭이나 논을 가는 데는 절대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요즘에는 소 값이 육고기로만 팔기 때문에 별로 값이 나가지 않지만, 트렉타와 같은 값이라고나 할까요, 수천만 원에 해당하는 값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 인류가 마귀에게 종노릇 하게 된 것을 해방시켜주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그 값이 얼마나 비쌀 것입니까?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배신하고 마귀의 종이 된 것을 예수님이 해방시키시려고, 자신의 목숨을 바치신 것입니다.
이처럼 오직 예수님의 목숨이 아니면, 우리 죄인들이 마귀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받을 길이 없었습니다.
3.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 안에서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은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1) 원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계신 하늘나라에 영원히 계시는데,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해서 이 땅과 하늘을 만드셨습니다.
특히 하늘에는 천사들이 하나님의 심부름을 하라고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땅에는 만물을 만드시고 사람을 창조하셔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셨습니다.
(2) 그런데, 천사중에 일부가 타락하여 귀신들이 되었고, 귀신의 대장인 마귀가 첫 인간인 아담과 하와를 꼬셔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범죄케 했습니다.
그 결과 인간은 죄악으로 본성이 부패해졌고, 만물들도 인간과 더불어 악하게 변질되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앞으로 인간과 만물들이 불로써 소멸되고, 새 하늘과 새 땅의 천국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3) 그런데, 천만뜻밖에도 하나님께서 죄로 죽어가는 인생을 불쌍히 여기셔서, 당신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세상에 인간으로 보내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마치 수억만 조의 카드빚으로 죽게 된 사람들을 모두 예수님이 대신 다 갚아주신 것과 비슷합니다.
우리는 계산할 수 없는 수많은 죄의 빚 때문에, 영원한 세월 동안 지옥 감옥에서 고통을 당해야 할 가련한 인생들인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대신 수많은 죄의 빚을 다 갚아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한 지옥에 갈 필요가 없고, 이제는 영원한 행복과 즐거움의 나라 천국으로 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이 세상에 이런 좋은 일이 있다니요....
이 세상 불신자들은 집을 팔아서라도, 세상 향락을 누리고 보자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께서는 세상 향락보다 훨씬 완전한 행복과 즐거움이 있는 천국으로, 영원히 완전한 행복을 누릴 곳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이 세상은 잠시 잠깐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곧 오라고 하실 것입니다.
우리 이 세상에서 죄악의 향락을 누리지 맙시다.
우리 이 세상에서 마귀를 따라서 지옥으로 가지 맙시다.
15-17절은 예수님의 선재, 창조, 피조물을 주관하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오직 예수님이 보이는 물질계와 보이지 않는 영계와 천사들조차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주권자시고, 또한 교회의 머리가 되십니다.
15절.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오,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He is the image of the invisible God, the firstborn of all creation.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ὅς ἐστιν εἰκὼν τοῦ Θεοῦ τοῦ ἀοράτου,
he is image of the God of the invisible,
‘이시오’(ἐστιν)는 현재형입니다(is).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πρωτότοκος πάσης κτίσεως,
firstborn over all creation
1. 예수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εἰκὼν τοῦ Θεοῦ: image of the God)이시고,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이’(πρωτότοκος: firstborn)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본질적으로 동등하신 분이시고, 모든 피조물의 근본 창조주이신 것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것은 당시 영지주의(Gnosticism)자들이 예수님이 천사이지만 그 보다 더 높은 천사가 있다고 천사 숭배를 주장한 데 대한 반론입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다윗 왕처럼 지상 왕국을 다스리는 이상적인 군주라고 생각했지만, 바울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당시 헬라인들은 이상적인 로고스(λόγος)는 반신반인의 비인격적인 존재라고 했으나,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의 형상이시고, 하나님께서 말씀(Λόγος)으로 창조하실 때, 그 말씀이시고, 창조주가 되십니다. (요한복음 1:1)
2. ‘하나님의 형상’(εἰκὼν τοῦ Θεοῦ: image of the God))이란 표현은 하나님을 대신하고(represent), 하나님을 볼 수 있게 나타내신(manisfest) 분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대신하신 분이란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을 닮았고(likeness), 하나님의 모형(prototype)이시란 뜻인데, 빌립보서 2장 6절에는 ‘그는 하나님의 본체’(μορφή: form, shape)시라고 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볼 수 없는 하나님을 나타내셨다는 뜻입니다.
요한복음 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3.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란 말씀을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즉 ‘먼저 나신 자’(πρωτότοκος)란 단어에서 ‘나신’(τίκτω: beget)이란 단어는 아리우스(Arius: 256-336년)가 주장한 대로 창조된 피조물이란 뜻이 아니고, 아타니우스(Athanasius: 293-373년)가 주장한 대로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란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피조물들을 창조하신 창조의 근원이 되시고, 모든 죽은 자들을 부활하게 만드시는 부활의 주도 되십니다.
그래서 골로새서 1장 16절에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었다”고 했습니다.
4.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십니다.
하나님은 볼 수 없는 분이십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보면, 죽게 됩니다.
마치 인간의 눈으로 태양을 바라보고 있으면 실명되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본질적으로 동일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예수님이라는 인간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4장 9절에서, 도마라는 사람이 하나님을 보여달라고 할 때에 예수님이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5. “예수님이 만물보다 먼저 나셨다”는 말씀은 영원히 하나님의 아들로 존재하신 분이 만물을 창조하셨는데, 역사의 중간에 이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 예수님으로 오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실상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만물이 하나님의 아들로 인해 창조되었다는 뜻입니다.
6. 예수님이 만물의 창조주가 되시고, 주관자가 되시기 때문에, 성도는 마땅히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야지, 자기가 주인이 되어서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부활하셔서,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첫 열매가 되심은 역시 이 세상 나라에서 살던 성도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살게 될 때도 역시 예수님을 머리(주님)로 섬기며 사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붙들지 않고, 신비적인 천사 숭배나 미신을 숭배해서는 안 되고, 자신이 주인이 되어서 자기의 율법적인 의를 내세우려고 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16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by Him all things were created, both in the heavens and on earth, visible and invisible, whether thrones or dominions or rulers or authorities-- all things have been created through Him and for Him.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ὅτι ἐν αὐτῷ ἐκτίσθη τὰ πάντα ἐν τοῖς οὐρανοῖς καὶ ἐπὶ τῆς γῆς,
because in Him were created the all things in the heavens and on the earth
직역하면 ‘왜냐하면 그 안에서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이 창조되었기 때문이다’란 뜻입니다.
‘창조되되’(ἐκτίσθη)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were created) 과거에 단번에 창조된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τὰ ὁρατὰ καὶ τὰ ἀόρατα, εἴτε θρόνοι εἴτε κυριότητες εἴτε ἀρχαὶ εἴτε ἐξουσίαι·
the visible and the invisible, whether thrones and dominions or rulers or authorities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τὰ πάντα δι’ αὐτοῦ καὶ εἰς αὐτὸν ἔκτισται·
the all things through Him and onto Him have been created
‘창조되었고’(ἔκτισται)는 완료수동태로서(have been created) 이미 창조되어 있고 현재도 관계되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1. ‘그에게서’(ἐν αὐτῷ), ‘그로 말미암고’(δι’ αὐτοῦ), ‘그를 위하여’(εἰς αὐτὸν) 창조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모든 피조물의 주권이 예수님에게 있고, 모든 피조물이 예수님에게서 피조되었고, 모든 만물과 인간과 천사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창조되었다’는 말이 두 번 나오는데, 앞의 단어(ἐκτίσθη)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were created) 과거에 단번에 창조된 확실한 사실을 가리키고, 뒤의 단어(ἔκτισται)는 완료수동태로서(have been created) 이미 창조되어 있고 현재도 관계되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태초에 만물의 창조를 완성하셨고, 현재도 만물을 다스리고 계신 것을 의미합니다.
만물을 설명할 때,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 즉 물질계와 ‘보이지 않는 것들’ 즉 인간의 영혼들이나 천사들이나 심지어 정의나 사랑 등도 창조하신 것을 가리킵니다.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θρόνοι, κυριότητες, ἀρχαὶ, ἐξουσίαι)은 지 상의 권세자들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으나, 천사들의 명칭을 가리킵니다(에녹서 20:1 참조).
2. 여호와 증인은 예수님이 창조주가 아니고, 피조물 중에 뛰어난 분이라고 하지만, 잘못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원래 하나님의 아들로서, 만물과 천사들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17절.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He is before all things, and in Him all things hold together.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καὶ αὐτός ἐστιν πρὸ πάντων
and He is before all things
‘그가’(αὐτός, He)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계시고’(ἐστιν)는 현재형입니다(is).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καὶ τὰ πάντα ἐν αὐτῷ συνέστηκεν,
and the all things in Him have held together
‘함께 섰느니라’(συνέστηκεν)는 완료형으로서(have held together) 함께 서 있는 모습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1.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신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창조주가 되셔서 만물을 창조하신 것을 뜻합니다.
‘함께 섰느니라’(συνέστηκεν)는 완료형으로서(have held together) 함께 서 있는 모습을 가리키는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물의 존재를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히브리서 1장 2절에는 주께서 세계를 지으셨다고 했고, 3절에는 능력으로 만물을 붙들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14장 17절에는 주님이 하늘에서 비를 주시고, 결실기를 주시고, 음식과 기쁨으로 마음을 만족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17장 26-28절에는 주께서 인류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한계를 정하시고, 우리는 그분을 힘입어 살며 기동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시편 104편 13-15절에는 주께서 물을 주시고, 땅에서 먹을 것이 나게 하셔서 사람의 마음을 힘있게 하는 양식을 주신다고 했고, 24절에는 주께서 하시는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라고 했고, 27-29절에는 모든 생물이 주께서 때를 따라 먹을 것 주시기를 기다리다가 주께서 손을 펴서 주시면 좋은 것으로 만족하다가, 주께서 호흡을 거두시면 죽어서 먼지로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사무엘상 2장 5-6절에는 주께서 살리기도 하시고, 죽이기도 하시고, 가난하게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신다고 했습니다.
욥기 34장 14-15절에는 주께서 영과 목숨을 거두시면 모든 사람이 다 죽어 흙으로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2. 즉 본 절의 말씀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원래 창조하시고, 인간과 만물이 타락하고, 십자가에서 구속을 이루신 후, 지금 하나님의 아들은 모든 세계를 통치 보존하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즉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시고, 참새 한 마리도 간섭하시고 성도의 머리털도 다 헤아리시는 통치자로 계신다는 뜻입니다.
마태복음 10:29-31.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그러므로, 세상 삶을 원망하지 마시고, 날마다 예수님 앞에 나아가서, 예수님과 교제하고, 주님 모시고, 주님 뜻대로 살아가시는 복된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8-20절은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인 것을 말씀합니다.
즉 15-17절에서는 그리스도가 만물의 머리인 것을 말씀하고, 이와 비교해서 18-20절은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이신 것을 말씀합니다.
18절.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New American Standard Bible: He is also head of the body, the church; and He is the beginning, the firstborn from the dead, so that He Himself will come to have first place in everything.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καὶ αὐτός ἐστιν ἡ κεφαλὴ τοῦ σώματος, τῆς ἐκκλησίας·
and He is the head of the body, the church
‘그는’(αὐτός, He)이 강조되어 있고, 동사(ἐστιν)는 현재형입니다(is).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ὅς ἐστιν ἀρχή, πρωτότοκος ἐκ τῶν νεκρῶν,
who is beginning, firstborn from the dead
직역하면 ‘그는 시작이시오, 죽은 자들 가운데서 처음 나신 자시다’는 뜻입니다.
‘근본’(ἀρχή)이란 단어는 ‘시작, 근본’(beginning, origin)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ἵνα γένηται ἐν πᾶσιν αὐτὸς πρωτεύων,
so that He might be in all things He first place
직역하면 ‘그가 만물 가운데서 첫째가 되려 하심이다’는 뜻입니다.
‘그가’(αὐτός, He)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되려 하심이요’(γένηται)는 부정과거 가정법 동사로서(might be) 분명하고 틀림없이 되려는 것을 가리킵니다.
1.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시라는 것은 창조주와 피조물, 통치자와 피통치자의 관계를 가리키며, 이 둘은 생명적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뜻합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란 뜻은 예수님을 필두로 성도들이 모두 부활할 것을 가리키고(고린도전서 15:20), 아담이 첫 인류의 머리가 된 것처럼, 예수님은 부활의 첫 머리가 되심을 가리킵니다.
2.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로마서 12:5. 고린도전서 12:12)이기 때문에, 바울(사울)이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할 때 예수님은 바울(사울)에게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고 말씀했습니다(사도행전 9:4).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근본이라는 것은 교회가 존재하도록 하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부활하셔서, 부활의 세계 천국에서 으뜸이 되시고, 지금도 살아계셔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시고, 다스리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3. 주님은 교회의 머리이시기 때문에, 모든 교인들은 주님으로부터 영육간에 모든 은혜를 공급받아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는 모든 충만한 것이 있으므로(다음 19절), 우리 성도들은 예수님에게서 모든 것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기도하면 좋은 것으로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7: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시편 107:9.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시편 103:5.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기도하면 성령을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시편 20편 4절에는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계획을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고 하셨고, 5절에는 ‘ 네 모든 기도를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고 하셨습니다.
4.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라고 했고,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 성도들은 머리 되신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해야 건강한 교회입니다.
몸의 팔이나 다리가 머리의 말을 안 들으면, 불구자입니다.
마찬가지로, 몸 된 교회의 각 지체되는 성도들이 머리 되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고장 난 교회입니다.
아무쪼록 우리 교회는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교회 되기를 축원합니다!
왜 이 말씀을 하는지 그 배경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골로새 교회에는 예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신앙생활 하는 성도들보다도, 신비적인 환상을 따라서 신앙생활 하는 신비주의자들이 많았고, 또 주님의 말씀을 믿는 신앙보다는 자기의 율법적인 의로운 행동을 더욱 자랑하고 내세우는 율법주의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교회는 예수님의 복음의 말씀을 믿고 순종해가는 곳인데, 골로새 교인들은 자기의 신비체험을 제일로 삼았고, 어떤 이들은 자기의 율법적 선행을 믿는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이러한 신비주의와 율법주의는 잘못된 인간 중심적 신앙이고, 올바른 신앙은 예수님을 믿고 성령님 따라 살며, 그 복음의 말씀을 믿으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참으로 감사한 것은 우리 교회 성도님들은 올바른 정통적인 신앙 가운데서, 선조들로부터 올바른 신앙생활 하신 것을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5.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만물의 머리가 되신다”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부활하신 것은 예수 믿는 모든 사람이 장차 예수님을 따라서 부활하게 되고, 또 만물도 다시 새롭게 되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뜻입니다.
즉, 우리 교회 성도님들이 예수님만 믿고 성령님 모시고 살고, 말씀을 잘 따라 살아가면, 결국 예수님처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을 얻게 되고, 만물이 새롭게 된 천국에서 살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감격스러운 말씀입니까?
우리가 비록 이 세상에서 신비체험이나 율법적인 의로 사람들에게 존경과 대접을 받지 못할지라도, 예수님만 믿고 예수님만 모시고 그 말씀 따라서 살아가면, 반드시 부활과 천국의 복락을 누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천국은 참으로 세상 고통이 없고 평안한 나라이고, 세상 즐거움과 비교할 수 없는 참된 기쁨, 거룩한 환희가 있는 곳입니다!
질병도 가난도 죽음도 속상함도 이별도 없는 영원한 낙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천국의 복락을 소망하면서, 괴로움 많은 세상에서 예수님만 믿고 살아가시는 성도님들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9절.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it was the Father's good pleasure for all the fullness to dwell in Him,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ὅτι ἐν αὐτῷ εὐδόκησεν πᾶν τὸ πλήρωμα κατοικῆσαι
because in Him He was pleased all the fullness to dwell
직역하면 ‘왜냐하면 그(예수님) 안에 모든 충만이 거하는 것을 그(하나님 아비지)가 기뻐하셨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앞의 ‘그’와 뒤의 ‘그’를 서로 혼돈할 수 있으므로, 한글 성경은 풀어서 번역했습니다.
‘기뻐하셨기’(εὐδόκησεν)는 부정과거로서(He was pleased) 모든 충만이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완전히 기뻐하신 것을 가리킵니다.
한글 성경에는 ‘기뻐하심이라’가 20절에 번역되어 있습니다.
‘거하는 것을’(κατοικῆσαι)은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dwell) 모든 충만이 예수님 안에 완전히 거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1. 바울이 사용한 ‘충만’(πλήρωμα, fullness)이란 것은 하나님의 신성과 권능이 예수님 안에 가득한 것을 가리키고, 영지주의(Gnosticism)가 주장하는 충만이란 우주의 에이온(Aeon)들이 세상에 유출되어 그것들이 가득한 것(유물론)을 가리킵니다.
본 절은 하나님의 신성이 예수님 안에 영원히(부정과거) 거한다고 말씀하는데, 이단들이 제한적으로 보는 데 대해 지적한 말씀입니다.
2. “하나님 아버지께서 모든 충만한 것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하여 구하는 것은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다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20절.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through Him to reconcile all things to Himself, having made peace through the blood of His cross; through Him, I say, whether things on earth or things in heaven.
만물(이)---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καὶ δι’ αὐτοῦ ἀποκαταλλάξαι τὰ πάντα εἰς αὐτόν,
and by Him to reconcile the all things to Himself
직역하면 ‘그로(예수로) 말미암아 만물이 자기와(하나님과) 화목하는 것을’ (9절. 그가 기뻐하셨다: εὐδόκησεν, He was pleased)는 뜻입니다.
‘화목하는 것을’(ἀποκαταλλάξαι)은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reconcile) 완전히 화목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εἰρηνοποιήσας διὰ τοῦ αἵματος τοῦ σταυροῦ αὐτοῦ,
having made peace by the blood of the cross of Him
‘화평을 이루사’(εἰρηνοποιήσα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made peace) 완벽하게 화평을 이룬 것을 가리킵니다.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δι’ αὐτοῦ εἴτε τὰ ἐπὶ τῆς γῆς εἴτε τὰ ἐν τοῖς οὐρανοῖς.
through Him whether the things on the earth or the things in the heavens
1. 예수님이 십자가의 피로써 하나님과 만물을 화목하게 하시는 중보자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인간의 범죄로 인간과 만물이 신음하고 탄식하게 되었는데(로마서 8:22), 예수님의 십자가 피로써 만물이 다시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피로써 ‘화평을 이루사’(εἰρηνοποιήσας) 그 결과 화목케 되었습니다(ἀποκαταλλάξαι).
처음 창조 세계를 보시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셨는데(창세기 1:31), 예수님의 십자가 피로써 화목된 세계를 보시고는 만물의 회복을 더욱 기뻐하신 것입니다.
2.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이 창조주 되신 하나님을 배반하고 마귀를 따름으로써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었는데, 이제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써,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하나님과 화목하고, 천국에서 하나님을 영원토록 섬길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과 화목케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서, 모든 진노를 받다가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을 받을 인생이 예수님의 십자가 피 덕분으로, 영생 천국 구원을 얻었으니, 얼마나 감사할 일입니까?
마음에 평화가 없는 인생살이 참 불행합니다.
가정에 평화가 없는 가정생활 참 비참합니다.
직장과 사회에 평화가 없는 곳은 참 괴롭고 피곤합니다.
이제 예수님만 모시면, 우리 마음에 평화가 이루어집니다.
이제 예수님만 가정의 주인으로 섬기면, 가정이 평화롭고 행복합니다.
이제 예수님을 우주의 주권자로 모시고, 주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직장과 사회는 행복하고, 평화가 가득할 것입니다.
아무쪼록 예수님을 모시고 매일매일 살아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그런데 자세히 보면,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써 우리와 화목하기를 기뻐하셨다”고 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정작 죄악과 고통과 지옥에 대한 불안으로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과 화목을 원해야 할 쪽은 바로 우리 인간인데,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죄인된 우리 인간과 화목하시기를 기뻐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으셨습니다.
가장 소중한 아들까지 희생시키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위대한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요한일서 4장 10-19절에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없이는 못 삽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예수님도 우리가 없이는 못 사시는 사랑의 주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그러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우리를 더욱 사랑하시고, 우리가 예수님 없이는 못 사는 것 같이 예수님도 우리 없이는 못 사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21-23절은 예수님의 피로 화목한 결과를 말씀합니다.
21절.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although you were formerly alienated and hostile in mind, engaged in evil deeds,
전에--멀리 떠나--너희를
καὶ ὑμᾶς ποτε ὄντας ἀπηλλοτριωμένους,
and you once being having been alienated,
‘멀리 떠나’(ὄντας ἀπηλλοτριωμένους)는 직역하면 ‘멀리 떠나 있어서’( being alienated)란 뜻인데, 앞의 동사는 현재분사이고(being), 뒤의 동사는 완료분사 수동태로서(having been alienated) 둘을 합하면, 이미 멀리 떠나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악한 행실로--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καὶ ἐχθροὺς τῇ διανοίᾳ ἐν τοῖς ἔργοις τοῖς πονηροῖς,
and hostile of the mind in the deeds the evil
1. ‘멀리 떠나’(ἀπηλλοτριωμένους)는 하나님과 남남이 되고,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이 지내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마음으로 원수가 된’ 상태는 사람이 마음으로 하나님과 원수처럼 지내는 것을 가리킵니다.
22절.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yet He has now reconciled you in His fleshly body through death, in order to present you before Him holy and blameless and beyond reproach--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νυνὶ δὲ ἀποκατήλλαξεν ἐν τῷ σώματι τῆς σαρκὸς αὐτοῦ διὰ τοῦ θανάτου,
now however He reconciled in the body of the flesh of Him through the death
직역하면 ‘그러나 이제는 죽음을 통하여 그의(예수님의) 육체의 몸 안에서 그가(하나님께서) 화목하셨다’는 뜻입니다.
‘화목하셨다’(ἀποκατήλλαξεν)는 부정과거로서(He reconciled) 확실하고 완전하게 화목하신 것을 가리킵니다.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παραστῆσαι ὑμᾶς ἁγίους καὶ ἀμώμους καὶ ἀνεγκλήτους κατενώπιον αὐτοῦ,
to present you holy and unblemished and blameless before Him
‘세우고자 하셨으니’(παραστῆσαι)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present) 단호하게 세우고자 하신 것을 가리키고, 구조상으로는 ‘세우기 위해서 화목하셨다’는 뜻입니다.
물론 결과적인 용법으로 번역한 한글 성경은 좋은 번역입니다.
1. 21절의 ‘전에’(ποτε)와 22절의 ‘이제는’(νυνὶ)이 대조되어 있어서, 전에는 하나님과 원수된 관계였으나, 이제는 하나님과 화목된 관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써 속죄와 하나님과의 화목이 이루어진 사실을 가리킵니다.
‘우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세우셨다’는 것은 속죄와 화목의 결과요 목적입니다.
즉 최후의 심판 때(계시록 7장) 무죄하고 성결한 상태로 주님 앞에 서는 것을 가리킵니다.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것’은 성전 제물의 흠 없는 양처럼 하나님께 용납될 수 있다는 것이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원수에게 책잡힐 것이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2. 21-22절에서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우리를 이제 예수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세우셨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조상 아담 적부터 결정적으로 하나님을 배신하고 마귀에게로 떠나갔던 죄인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가 너무도 사랑하셔서, 그 아들 예수님을 우리 대신 죽게 하셔서, 마귀의 종된 데서 해방시키셨습니다. 할렐루야!
그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피로써 우리는 죄악이 깨끗하게 씻음 받고, 하나님 앞에 서도 거룩하고, 흠도 없고, 아무 책망 받을 것도 없는 사람으로 인정받았다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비록 우리의 죄악이 하늘같이 높고, 우리의 죄의 본성이 바다같이 깊어도, 예수님의 피는 우리를 온전히 깨끗하게 하셔서, 언제나 예수님만 모시고 살면, 언제나 우리는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받을 것이 없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할렐루야!
이 놀라운 사실이 믿어집니까?
네. 이 놀라운 사실이 사실이며, 우리는 이 복음의 말씀을 믿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죄악이 많고, 내 죄의 본성을 끊을 수 없더라도, 오직 지금 이 순간 예수님만 믿고, 예수님만 마음에 모시고 있으면, 나는 하나님 앞에서는 온전한 의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정죄하고, 마귀가 아무리 죄악을 지적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요 천국 갈 의인이라는 사실입니다! 할렐루야!
23절.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if indeed you continue in the faith firmly established and steadfast, and not moved away from the hope of the gospel that you have heard, which was proclaimed in all creation under heaven, and of which I, Paul, was made a minister.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εἴ γε ἐπιμένετε τῇ πίστει, τεθεμελιωμένοι καὶ ἑδραῖοι
if indeed you continue in the faith, have been established and firm
직역하면 ‘만일 너희가 믿음 안에 계속 거하고, 터에 서서 굳건하게 된다면’이란 뜻입니다.
‘거하고’(ἐπιμένετε)는 현재형으로서(you continue) 믿음에 계속 거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터 위에 굳게 서서’에서 동사(τεθεμελιωμένοι)는 완료분사 수동태로서(have been established) 굳게 세워져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καὶ μὴ μετακινούμενοι ἀπὸ τῆς ἐλπίδος τοῦ εὐαγγελίου, οὗ ἠκούσατε,
and not being moved away from the hope of the gospel, that you heard
‘너희 들은 바’(ἠκούσατε)는 부정과거로서(you heard) 과거에 확실히 들은 것을 가리키고, ‘흔들리지 아니하면’에서 동사(μετακινούμενοι)는 현재완료 수동태로서(being moved away) ‘떠나가지 않으면’이란 뜻입니다.
‘그리하리라’는 번역상 첨가한 것입니다.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τοῦ κηρυχθέντος ἐν πάσῃ κτίσει τῇ ὑπὸ τὸν οὐρανόν,
of the having been proclaimed in all creation the under heaven
‘전파된 바요’(κηρυχθέντος)는 부정과거 분사 수동태로서(having been proclaimed) 과거에 확실히 전파된 사실을 가리킵니다.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οὗ ἐγενόμην ἐγὼ Παῦλος διάκονος.
of which became I Paul minister
‘나’(ἐγὼ, I)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되었노라’(ἐγενόμην)는 부정과거로서(became) 과거에 확실히 된 것을 가리킵니다.
1. 심판 때 주 앞에서 흠 없이 서는 방법으로 세 가지를 말씀합니다.
⓵ 믿음에 거하고 ⓶ 터 위에 굳게 서서 ⓷ 너희가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믿음’이란 복음 신앙을 가리키고, ‘터 위에 굳게 서는 것’은 건물의 기초와 건축을 가리키는데, 예수님이 기초가 되시는 교회의 건축물을 가리키고, ‘소망’이란 영생에 대한 소망을 가리킵니다.
‘복음이 만민에게 전파되었다’는 것은 당시 이단설이 일부 지역에 전파된 것과 대조해서 복음이 만민에게 전파되었다는 것을 지적한 것입니다.
‘바울이 복음의 일군이 되었다’는 것은 이단자들이 이단 교사가 된 것과 대조해서 바울은 복음 전파의 사도가 된 것을 가리킵니다.
2. 오늘 23절은 “이러한 믿음에 굳게 서고,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비록 내 양심이 나를 책망할지라도, 내 가족이 나를 정죄할지라도, 국가가 나를 정죄할지라도, 나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나는 예수님 믿고 천국 영생을 믿습니다. 나는 천국 갈 때까지 예수님만 믿고 살겠습니다”라고 고백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