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여행 가방을 꾸릴 때는 집에 있는 물건을 통째로 옮기려는 듯 많이 담았다. 경험이 쌓이면서 여행할 때는 가방도 몸도 가벼워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아이와 여행을 떠나면 서로 부딪치고 힘겹지만, 발걸음을 맞춰 나란히 걷노라면 아이도 부모도 자란다.
미루(만 3세) 엄마 최승연
여행은 머물기 위해 떠나는 거야
여행의 시작은 ‘어디서 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길 위의 삶이 고달파도 엄마 아빠는 멈출 수 없다. 사랑하는 딸아이 ‘미루’와 오래도록 머물 수 있는 곳을 찾아가는 여행, 미루네 집은 어디에 있을까?
★ 미루 엄마 최승연 씨는 여행이 일상인 네덜란드인 남편 카밀과 함께 노마드 생활을 즐기고 있다. 두 사람의 특별한 여행은 미루를 낳고도 계속됐다. 미루와 함께 머물 곳을 찾기 위한 여행이다. 그 소소한 여행기는 <노마드 베이비 미루>에 담겨 있다.
케냐에서 잉태된 아이는 한국에서 태어났고 생후 6개월 만에 독일 베를린 땅을 밟았다. 첫 크리스마스는 네덜란드에서, 첫돌은 룩셈부르크 서쪽 풋샤 이드Putscheid라는 작은 마을에서 맞이했다. 한국인 엄마와 네덜란드인 아 빠를 둔 아이의 이름은 ‘미루’다. “미루나무의 ‘미루’예요. ‘넓은 들판’이란 뜻도 있어요.” 엄마 최승연 씨는 미루가 드넓은 세상에서 자유롭게 살길 바란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노마드 생활이다. 일정한 거처 없이 돌아다니며 사는 유목민처럼 미루네 가족은 여러 나라를 돌고 있다. 철없고 무모한 여행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엄마 최승연 씨와 아빠 카밀이 부모가 되기 전부터 시작한 그들만의 삶의 방식이다.
미루를 낳고도 노마드 생활을 계속한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정착’하기 위해서다. “엄마가 되니까 ‘좋은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어요. 미루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이니까요. 우리 힘으로 이상적인 세상을 만들 수는 없지만 미루가 안정적으로 자라고, 교육적으로도 만족스러운 환경이 어딘가엔 있지 않을까요?” 엄마 아빠는 생후 6개월인 미루를 데리고 다시 배낭을 꾸렸다. 더 늦기 전에 미루를 위한 정착지를 찾아야 했다.
여행은 우리의 운명
독일의 소도시 위트리히Wittlich에서 시작된 미루의 여정은 네덜란드·프랑스·스페인·폴란드·포르투갈 등 국경을 넘나들며 다이내믹하게 흘렀다.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어요. 미루는 여행자 생활에 최적화된 아이였어요.” 카시트에 종일 앉아 있어도 보채지 않고, 밤에도 신생아치고는 긴 잠을 잤다. “다행히 지금껏 크게 아픈 적이 없어요. 타고난 건지, 어려서부터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 스스로 적응한 건지 모르지만 워낙 순해서 가능했던 여행이었어요.” 그렇다고 마냥 수월했던 것만은 아니다. 매일 잠자리가 다르고 자동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이유식을 만들거나 빨래를 하는 건 그야말로 사치였다. “이유식보다 빨래가 더 힘들었어요. 세탁기를 쓰거나 손빨래를 할 수 있을 때까지 빨랫감을 가지고 다녀야 하니까요. 2~3일은 옷 한 벌로 버티기도 했죠. 이젠 어디든 세탁기만 있으면 행복해요.” 미루가 친구 없이 혼자 놀거나 책을 가지고 다닐 수 없어 마음껏 읽어주지 못할 땐 안쓰럽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여행을 그만두고 싶단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정착할 곳을 아직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꿈꾸던 이상적인 곳이라 해도 지내다 보면 안맞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한때는 히피 촌이 저와 맞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스페인에서 실제 머물다 보니 우리가 있을 곳은 아니었어요.” 언젠가 학교를 다닐 미루도 생각해야 한다. 그곳을 찾을 때까지 엄마 아빠는 여행을 멈출 수 없다.
길 위에서 성장하다
잠시 한국에 온 미루는 한 달 정도 어린이집을 다녔다. 어린이집에 간 첫날, 미루는 오래 다닌 아이마냥 놀라운 적응력을 보였다. “주변에선 저희의 노마드 생활에 대한 걱정이 많지만, 전 이런 미루의 모습만 봐도 충분히 의미가 있는 여정이라고 생각해요. 미루는 쉽게 겁내지 않아요. 어떤 환경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낯선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죠. 물론 미루가 지금의 시간을 다 기억하진 못할 거예요. 그저 미루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엄마 아빠가 이런 선택을 했음을 알아줬으면 해요.” 새로운 곳에서 눈을 뜨는 날이 많을수록 미루는 단단하게 자랄 것이다. 그런 미루 곁을 지키는 엄마도 스스로 변하고 있음을 느낀다. “여행 때문에 성장한 건 아니에요. 엄마가 된 순간부터 저는 성장하고 있어요. 세상을 보는 시선이 긍정적으로 변하고, 참아야 할 일이 늘면서 이제야 어른이 된 것 같아요. 여행하면서 달라진 점도 있어요. 전보다 책임감이 커지고, 신중해졌죠. 둘이 아닌 셋이 여행하는 건 분명 다르거든요.”
미루의 여행은 계속된다
아이가 좋은 환경에서 살았으면 하는 바람은 부모라면 누구나 갖는다. 단지 좋은 환경이 어디냐에 대한 시선이 다를 뿐이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 꿈꾸던 정착지의 풍경은 조금씩 변하고 있다. “자연과 가깝고, 미루 또래 아이들이 있는 조그만 시골 마을이었으면 좋겠어요. 미루가 다닐 학교가 있고, 제가 일할 수 있는 곳도 멀지 않았으면 해요. 한국에서 산다면 수도권보다는 지방이 낫겠죠?”
엄마는 얼마 전 <노마드 베이비 미루>라는 책을 펴냈다. 미루와 여행의 순간 들을 추억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무엇보다 아이는 스스로 자란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언제 끝날지 모를 노마드 생활이 고생뿐일 거라는 편견도 이겨내고 싶었다. “환경만 달라지는 거지, 3년 넘게 함께 여행하면서 저와 카밀은 늘 미루 옆에 있었거든요. 어디서 사느냐보다 아이에게 안정적인 정서를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엄마 아빠에게 여행이란 미루가 살아갈 세상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곳이 어디든, 그래서 미루는 행복하다.
∨ 미루 엄마 최승연 씨가 꼽은 최고 여행지, 포르투갈 코자 마을
주민들이 서로의 일상을 훤히 알 정도로 정감 있는 시골 마을이에요. 작지만 학교, 우체국, 도서관 등 있을 건 다 있답니다. 코자 마을은 마음 편히 머물 수 있었던 정착지예요. 아빠와 미루는 매일 아침 산책을 즐겼습니다. 마을 어르신들은 미루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듯 따뜻한 인사를 주고받고, 맛있는 사과를 미루 손에 쥐여주곤 했죠. 이런 소소하지만 여유로운 일상이 기억에 남는 곳이에요.
가브리엘(만 7세) 엄마 김미화
너는 나의 든든한 여행 파트너
우연히 떠나게 된 아들과의 여행은 녹록지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고집을 부리며 우는 다섯 살 아이와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곤 했다. 그런데도 엄마는 아들과의 여행을 놓을 수 없었다. 훌쩍 자란 만큼 엄마와 아들의 거리는 가까워졌다. 엄마는 여행 덕분이라고 말한다.
★ 가브리엘 엄마 김미화 씨는 이탈리아인 남편과 여덟 살 아들 가브리엘과 함께 이탈리아에서 머물고 있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지친 일상을 달래주는 건 여행이라고 믿는다. 지난해 가브리엘과의 첫 여행기를 담은 <아이와 함께 떠난 토스카나 여행>을 펴냈다.
한낮 기온이 40℃까지 오르던 어느 날, 엄마 김미화 씨는 아들 가브리엘과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이탈리아에서 사는 엄마와 아들의 목적지는 토스카 나 지방이었다. 여행은 마냥 편할 순 없었다. 남편이 여름휴가를 낼 수 없어 아들과 단둘이 떠나는 첫 여행인 데다 대중교통으로 움직여야 했다. 남편과 친구들의 걱정을 뒤로하고 엄마는 유모차를 꺼내고 배낭을 멨다. “가족 여행을 떠나면 아내 역할, 엄마 역할을 하느라 남편과 아이가 원하는 여행에 맞추게 되는데요. 아이와 둘이서만 여행을 해보니 엄마인 제가 대장이 되고, 아이는 꽤 든든한 파트너가 되더라고요.”
다섯 살 아이와의 서툰 여행
그렇게 시작된 여행. 하지만 여행 파트너 가브리엘이 늘 든든했던 건 아니다. 숙소를 나서야 하는데 자신이 좋아하는 만화를 봐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고, 박물관을 나와 두오모 성당으로 가려 하자 갑자기 가기 싫다고 거부하기도 했다. 패스트푸드점 간판만 보이면 햄버거를 사달라고 조르고, 읽지도 못하는 이탈리아어 관광안내 책자를 갖고 싶다며 옥신각신하는 날도 있었다. 배낭과 휴대전화를 잃어버렸던 날은 아찔했고, 급한 마음에 뛰다 넘어져 아이 무릎에 멍이 든 날은 속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를 돌보는 엄마 못지않게 낯선 장소에서 엄마를 따라다니는 아이도 힘들다는 걸 알아야 한다. “여행하다 보면 사소한 일로 작은 전쟁을 치를 때가 많은데요. 아이를 엄마의 여행 파트너로 동등하게 대해야 해요. 아이와의 싸움에서 지는 엄마가 되어보세요. 아이는 새로운 걸 보고 싶은 욕심이 전혀 없거든요. 억지로 이끌기보다는 아이의 속도에 맞추고 때로는 멈추기도 하는 거죠. 그러다 보면 아이도 엄마가 자신을 존중하듯 엄마의 의견을 따라야 한다는 걸 자연스레 배울 수 있어요.” 김미화 씨 역시 가브리엘과의 여행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아이와 제대로 대화하고 있는지, 아이가 어리다고 무시하고 명령만 한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 시간이었다. 그래서 유독 아이에게 미안한 게 많은 여행이었다고, 엄마는 말한다.
아이가 자라면 여행이 달라진다
얼마 전 엄마와 아들은 이스라엘 예루살렘으로 또다시 둘만의 여행을 다녀왔다. “토스카나 여행을 하면서 깨달은 게 있어요. 아이와의 여행에는 준비가 필요하다는 거죠. 혼자 떠나는 여행이야 평소 아는 만큼만 보고 와도 상관없는데 미리 여행지에 관해 공부하고 아이에게 무엇을 알려줄지 정리해서 가면 더 알찬 여행이 되겠더라고요. 실제 유럽의 엄마들이 아이 눈높이에 맞춰서 설명해주는 모습을 봤는데 참 인상적이었어요.” 이번 여행은 준비할 때부터 예루살렘이 어떤 곳인지 가브리엘과 함께 공부했고, 여행 중에도 무엇이든 배우려 했다. 엄마는 분명 전보다 유익한 여행이었다고 말한다.
달라진 점은 또 있다. 유모차 없이는 한 시간 이상 걷기도 힘들던 아들은 올해 여덟 살로 이제 6시간 동안 예루살렘 성벽을 걸을 수 있을 만큼 자랐다. “토스카나 여행 때는 제가 온 짐을 다 들고 다녀야 했는데, 이번엔 가브리엘이 제법 저를 도와주더라고요. 가방도 나눠 들고, 돈과 여권도 챙기고, 심지어 저보다 길도 잘 찾아요. 제가 여행지에 관해 설명해주면 귀담아듣고요. 앞으로 시간이 더 흐르면 아이와의 여행이 어떻게 달라질지, 상상만 해도 흐뭇해요.”
여행이 준 선물
여행하며 가브리엘과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아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고민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여행을 하다 보면 알게 돼요. 제가 아는 한 엄마는 두 아들과 여름마다 캠프를 떠나요. 10대인 두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친구가 엄마라고 하더라고요. 사춘기 아이들이 부모와 멀어지는 이유가 집에 오면 친구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아이와 무엇이든 함께 할 수 있는 친구가 되고 싶다면 여행만큼 좋은 방법은 없는 것 같아요.” 엄마는 더 이상 외롭지 않다. 여행이라는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구 같은 아들 가브리엘이 있기 때문이다.
∨ 아이와의 여행을 준비한다면 추천해요
여행일기 아이가 여행지에서 짧게라도 일기를 쓰면 좋아요. 아이가 보고 느낀 것을 직접 정리하게 하면 오래도록 기억에 남으니까요. 어른이 되어서도 엄마와 보낸 시간을 추억할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배낭여행 여행이라고 해서 꼭 유명 관광지를 갈 필요는 없어요. 집, 학교 등 늘 보던 풍경에서 벗어나면 그곳이 어디든 훌륭한 여행지가 된답니다. 무엇보다 아이와 더 가까워지고 싶다면 단체로 움직이는 패키지 여행보다는 아이와 엄마가 코스를 함께 만들어가는 둘만의 배낭여행이 도움이 돼요.
∨ 가브리엘 엄마 김미화 씨가 꼽은 최고의 여행지
이탈리아 로마 도시 자체가 하나의 박물관이나 다름없는 여행지입니다.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하던 옛 로마제국의 흔적을 볼 수 있어 아이와 역사여행을 떠나고 싶다면 추천합니다. 특히 르네상스 시대 3대 거장으로 꼽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의 작품을 직접 만나는 감동을 놓치지 마세요.
이스라엘 예루살렘 막상 가보니 도시도 사람도 평화로운 곳이에요. 유모차가 필요 없고, 6시간 동안 성벽을 걸을 만큼 아이가 자랐기에 가능했지만요. 예루살렘 성벽의 8개 문 중 하나인 자파 문Jaffa gate에서 시작하는 일일 투어 상품이 있는데, 아이와 함께라면 반나절 투어를 추천합니다.
소라(만 15세)·성묵(만 13세) 엄마 이동미
떠나기 전에 알아두면 행복해져
‘어디’ 가서 ‘무엇’을 하는가는 형식에 불과하다. 가족의 대화가 얼마나 편안한지, 아이가 호기심에 눈을 반짝이는지, 웃음이 얼마나 맑은가를 살피는 여행이야말로 ‘아이가 진짜 행복한 여행’이다. 여행이 끝난 후에야 깨닫게 되는 노하우를 이동미 작가가 꼼꼼하게 살폈다.
★ 이동미 씨는 여행 잡지 의 여행기자로 활약하다가 결혼 후 프리랜서 여행작가로 활동하며 가족들과 수많은 국내여행을 다녔다. <여행작가 엄마와 떠나는 공부 여행>(그리고책), <교과서 속 인물 여행>(그리고책)을 출간했고, 최근 <엄마표 아이 여행>(지식너머)을 펴냈다.
아이 키우는 부모들은 “아이와의 여행은 언제 시작해야 좋을까요?”라는 질문을 자주 한다. 어릴 때 여행은 기억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두 아이 엄마이자 여행작가인 이동미 씨는 “사실 저희 아이들도 어릴 때 했던 여행은 기억하지 못합니다. 헌데 우리가 사용하는 ‘기억’이란 단어는 무언가 생각이 나고 그것을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을 뜻해요. 언어적·두뇌적 기억이지요. 그런데 그것만이 기억일까요?”라며 “어린 시절의 여행은 무의식에 자리하고 있다가 저도 모르게 발견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우리 엄마들은 아이를 가지면 ‘태교’를 합니다. ‘태아가 뭘 알까?’라고 생각 한다면 태교는 필요치 않을 겁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뱃속의 아이도 다 안다고 믿고 태교를 합니다. ‘기억’에는 몸이 기억하고 감성이 기억하는 것도 있습니다. 다만 말로 표현되지 못할 뿐이죠. 멀리 가지 않아도 좋아요.”
여행은 두려움과 편견 없는 아이로 키워요
어릴 때 책을 읽은 아이는 커서도 책을 즐겨 읽는다. 어려서 사람들과 잘 어울려 놀아본 아이는 커서도 대인관계가 좋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어릴 때 해 보아야 그 느낌과 맛을 알게 된다. 여행작가 엄마를 둔 그의 아이들은 엄마 뱃속에서 여행을 시작했고 아장아장 걸을 무렵부터는 제대로된 가족여행을 다녔다. “여행에서 다양한 환경과 상황과 사람을 만나고 그 낯섦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다 보면 새로운 상황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 아이들은 글로벌 사회에서 살 것이므로 다양한 상황과 생활 방식, 문화를 만나게 해주는 것이 필요해요. 어릴수록 편견 없이 자연스럽게 익힙니다.”
가족 여행, 부모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
가족 여행이라고 해서 희생이나 봉사라는 단어가 떠오른다면 그건 뭔가 개선해야 한다는 뜻이다. 가족 여행은 가족 모두가 즐거워야 한다. 아이가 어리면 부담스럽지 않은 선의 도보여행을 추천한다. “가족 구성원의 상태와 상황에 따라 속도를 조절할 수 있고, 중간에 멈춰서 간식을 먹을 수도 있잖아요. 이야기를 나누다가 눈을 맞추며 상대의 느낌을 알아챌 수도 있고요. 함께하며 서로 힘이 되어줄 수 있다는 느낌이 저는 좋아요.”
부부 사이도 오히려 더 잘 이해되고 배려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속 깊이 꽁꽁 숨겨둔 이야기가 술술 나오기도 한다. “숲에 있으면 나무만 보인다고 하지요. 숲을 보려면 숲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여행을 하면 한 발자국 떨어져서 나와 가정과 직장을 바라볼 수 있어요. 그만큼 객관화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나를 객관적으로 돌아보기에 아주 좋아요. 현실로 돌아왔을 때 새로운 힘이 생겨나기도 하고요.”
그는 “가족 여행은 쉼표 한 잔, 사랑 한 모금”이라고 말한다.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다가 잠시 쉴 때 커피 한 잔이 필요하듯,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더 활기차게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가족 여행은 가족 모두에게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고 그 안에서 사랑을 나눌 수 있어 더없이 좋다.
‘설명’보다 ‘호응’이 좋아요
여행지에서 많은 것을 보고 많이 느끼기를 바라는 건 부모의 욕심이다. 부모가 모든 것을 공부하고 설명해줄 필요도 없다. 그저 아이가 마음껏 느낄 수 있도록 내버려두며, 아이의 말에 호응해주는 정도면 충분하다.
“모든 것을 설명해주어야 한다는 부담감은 내려놓으세요. 여행지에서는 아이들이 하는 말에 귀 기울여 들어주고 호응해주는 것이 더 좋아요. ‘응’ ‘그래’ ‘그래서’처럼 그다음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도록 추임새를 넣어주는 거죠. 말이 안 되는 이상한 전개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럴 수 있지”라고 긍정 모드를 보여주면, 생각이 생각을 낳으며 사고의 영역이 확장돼요.”
그는 행복한 가족 여행을 만드는 기술을 덧붙였다. “일정을 재촉하거나 아이가 얼마나 배웠는지 확인하면 여행을 즐기지 못해요. 아이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주는 행동을 내버려둬서는 안되겠지만, 편안한 분위기를 만드는 게 중요하죠. 사소한 질문에도 성실하게 답해주고, 엄마 아빠가 일관성 있게 행동 한다면 가족 여행이 더욱 행복해질 거예요.”
∨ 이동미 작가 추천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화 여행지
영월 김삿갓 계곡 김삿갓 계곡은 물도 맑고 주변에 김삿갓문학관이 있어 문학 여행도 가능해요.
부천 아인스 월드 세계 유명 건축물을 25분의 1로 축소해 재현한 미니어처 테마파크. <걸리버 여행기>를 읽고 가면 좋아요.
가평 쁘띠 프랑스 <어린 왕자>를 모티브로 한 프랑스 시골 마을 분위기. 저자생 텍쥐페리 기념관이 있어요.
∨ 이동미 작가가 꼽은 최고 여행지 대관령 의야지 바람마을
아이들과 대관령 목장에 갔을 때 넓은 초원에 소들이 있어 마구 뛰어다녔어요. 끝없는 초원이 좋았고, 순식간에 안개가 끼었다가 맑아지는 날씨의 변덕도 재미있었어요. 무엇보다 아이들이 소를 따라다니며 즐거워했습니다. 소가 응가를 했는데 아이가 “엄마, 소가 걸어가면서도 똥을 누는 걸 봤어. 어떻게 걸어가면서도 응가를 하지?” 하던 기억이 생생해요.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웃음이 번지는 소중한 추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