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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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농기술
도시에서 무언가를 하다가 풀리지 않으면
‘시골에 내려가 농사나 짓지’라고 한단다.
농사는 그리 생각만큼 만만한 일이 아니다.
농사(農事)란 별의 노래,
해와 달의 리듬에 맞춰 농부가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오래된 미래의 단꿈 뒤에 가려진
고단하고 땀내나는 농부의 일상은
누구나 시작할 수 있지만 아무나 이어갈 수 없기에
꿈속의 농사와 시골 농사꾼의 꿈은
한 번도 맞닿은 적이 없이 평행선을 달려왔다.
묻고 묻고 또 물어 도달한 귀착지가 시골이 아니라면,
농사가 가슴속에 뜬 별이 아니라면,
단언하지만 더 이상 농촌에 구원은 없다.
제 3장 영농기술
물어물어 짓는 첫농사
농사 첫해의 고민은 대개 무슨 작물을 어떻게 심을까 하는 것이다. 텃밭이나 주말농장이라도 해 본 경우는 좀 낫지만 처음 씨앗을 뿌려보거나 모종을 대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해야 할 일도 많지만 주변에 선생님도 많다. 이웃과 마을 어르신들 모두가 선생님이다. 무엇을 심든지, 어떻게 심을지 자신이 없으면 꼭 묻자. 일부러 찾아가서 묻고 전화로 묻고, 지나가는 이를 쫓아가서 물어도 좋다.
묻지 않으면 선배들처럼 무우씨를 평두둑에 흩어 뿌리고 참깨를 익기 전에 베어 한 톨도 못건질 수도 있다. 또 물어도 아주 구체적으로 묻는 것이 좋다. 콩을 심을 때는 덮는 흙의 두께까지 상세히 알아야 하고, 고추의 곁순을 따줄 때 왜 방아다리 아래의 잎사귀까지 훑어내리면 안되는지 물을 수 있어야 한다. 좀 더 욕심을 부리자면 잠깐이라도 시범을 요청하는 것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고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농촌에 내려가는 많은 분들이 마을분들과의 관계를 염려하는데 아직까지 자주 물어서 관계가 힘들어졌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어르신들은 백이면 백, 무언가 물으면 다 좋아하신다. 오히려 묻지 않고, 찾아가지 않아서 섭섭해 하시고 문제가 생긴다. 때로는 원할한 소통을 위해 알면서도 묻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 귀농 일년차이다. 몰라서 여쭙고 한 수 가르침을 요청할 때에 기분 나빠할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귀농 1~2년차는 대학의 교양과목처럼...
첫해부터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한 작목을 선택한 경우가 아니라면 한 두 해는 가능한 많은 작물과 접해보는 것은 어떨까? 마치 대학에서 신입생들에게 전공을 가리지 않고 교양과목을 배우게 하는 것처럼 개별 작물의 특성도 익히고 흙과 친해질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방법은 철에따라 작물을 이것 저것 심어보는 것이다. 주곡인 벼농사를 기본으로 하고 채소류는 되도록 시장에 가지 않고 자급한다는 마음으로 키우면 될 것이다.
밭이 얼마 안되는 농가는 벼농사에 변화를 주면 된다. 조금 번거롭더라도 주력 품종외에 유색미나 찰벼 등을 더해볼 것을 권하고 싶다. 논배미가 하나 이상 되어야 하고 못자리 관리도 신경써야 하지만 새내기 시절에는 그저 경험이 자산이다. 논이나 밭이나 소량 다품종 재배가 단작보다 힘이 더 들고 바쁜 건 사실이다. 그래도 귀농 초기에 시도해볼만한 일이다. 요컨대 농촌의 분위기를 익히는 기간이니 만큼 흙과 작물을 연구하는 자세로 만난다면 자연스레 마음과 눈길이 가는 무언가를 발견할 것이다. 그것이 작물이든 축산이든 가공과 유통 쪽이든간에 말이다.
한 해의 농사설계도, 영농계획
평생 농사를 지어온 농촌 어르신들이 영농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지극히 드문 일이다. 수십여년간 반복해온 일이기에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습관처럼 절기에 따라 작물을 부치고 가꿔낸다. 그러나 텃밭 경험조차 없는 새내기 농부로서는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 일이다. 무슨 땅에 어떤 작물이 잘 되는 지 알 수도 없고, 우수(雨水)전후에 해야 할 일이 논을 갈아야 하는지 밭을 갈아야 하는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초행길에 목적지까지의 길 안내가 필요하듯이 농사 첫해의 영농설계는 초보 농군에게 네비게이션의 역할을 톡톡히 해준다.
우여곡절 끝에 충청남도 홍성에 안착한 이충남․오은혜 씨 부부도 입춘경에 옆동네 귀농 선배의 도움을 받아 어렵사리 한 해의 농사를 설계하는 영농계획을 세웠다. 이들 부부는 논 2,400평에는 익음 때가 다른 세가지 품종을 벼를 심고, 밭 1,000평에는 30여가지의 작물을 시기별로 이어 부치기로 했다. 이충남․오은혜 씨 부부가 사나흘간 고심한 결과를 살짝 들여다보자.
❒논(2,400평중)
▶길 너머 논 900평,집앞 논 600평-조생종 운광벼-녹비작물(자운영 또는 헤어리베치)
▶다랭이논 세 배미 600평-중생종 설향찰벼-녹비작물(자운영 또는 헤어리베치)
▶300평 쪽논-극조생 흑벼-녹비작물(자운영 또는 헤어리베치)
* 볍씨 구입 계획
흑미 40kg(장길섭 씨), 운광 80kg(이장님) 설향찰 10kg (이기선 씨)
❒밭(1,000평중)
▶감나무밭 : 완두-참깨-김장거리(무우,배추 등)
▶대나무밭 : 고구마(윗쪽)고추(아랫쪽)-냉이(고추 심었던 곳만)
▶텃밭(반찬거리) :각종 부식거리와 감자-들깨-마늘․양파
▶산밭 :율무, 콩, 옥수수, 수수, 결명자-보리
부부 노동력으로 적당한 규모의 농지에 한 해의 농사 순서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어 첫해 계획치고는 무난한 편이라고 본다. 벼농사 뒤에 녹비작물을 심어 거름으로 활용하는 방안은 돋보이는 생각으로, 주변의 권유 때문이었을 것으로 본다. 영농계획이라고 해서 거창하게 세울 것은 없다. 이렇게 간단히 정리해서 영농일지, 거실 또는 안방의 달력 옆, 바깥 화장실 벽 등에 붙여두고 이따금 계획대로 되어가나 확인하면 그만이다.
한 두 해 농사를 지어보면 토질이나 물사정, 일조량의 차이에 따라 적합한 작물을 찾아낼 수 있게 될 것이다. 일례로 토질에 민감한 고구마는 거름기가 적은 황토밭이나 개간한 산밭에 자리잡을 가능성이 크다. 거름기의 많고 적음에 따라 맛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 주인이나 경작자에게 어느 곳에 무슨 작물이 잘 되는지 묻고 기록했다가 영농계획을 세울 때 참고하면 토질에 맞는 작목 선택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
영농일지(기)를 꼭 써야 하는 까닭
새내기 농부중에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영농일지를 쓰는 이들이 꽤 된다. 박두진 시인이 ‘시인과 농부를 겸할 수는 없을까’라고 읊은 것처럼 전원의 품에 안기면 우리 안의 감성이 자연스럽게무언가를 기록하도록 이끌어서 일 것이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저녁 늦게까지 졸음을 참아가며 쓴 영농일기를 책으로 펴내 귀농초의 불안한 가계에 보탬이 되어도 의미있는 일이다. 거기에 더하여 숨겨진 가치가 있으니 다음해 순조로운 농사준비와 친환경 인증을 받으려면 영농기록은 필수 조건이다.
요즘에는 인증기관별로 다양한 영농일지가 나와 있지만 예전에는 구하기가 어려워 다이어리나 가계부 한 귀퉁이에 적곤 했다. 내용도 간단하게 ‘무우씨 파종(ㅎ종묘 OO무 1봉지)’, ‘참깨 베기’, ‘흑벼논 물떼기’란 식으로 적었다. 그래도 인증제도 시행전에 친환경 농산물 표시 사용 신고를 할 때 증빙자료로 제 몫을 톡톡히 했다. 국립기관인 농산물품질관리원에서 일정기간의 영농기록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농사 2년차에는 전해에 쓴 영농일지가 큰 도움이 된다. 우리 부부는 아예 품목별로 파종시기나 중요한 농작업 일정표를 크게 한 장의 표로 만들어 외부 화장실 벽면에 붙여놓고 일을 볼 때마다(?) 수시로 점검했다. 덕분에 시기를 놓치지 않고 작물을 부칠 수 있어서 농사에 대한 불안감도 사라지고 자신감도 생겼다. 새로운 작물이 아니면 주변에 더 이상 묻지 않아도 되고 미리미리 준비를 할 수 있어 영농에 차질이 생기지 않게 되었다. 덧붙여, 같은 땅의 수확량과 소득이 작년과 비교해서 얼마나 늘거나 주는지 비교할 수 있어 농사짓는 재미가 더해졌다. 이렇듯 영농기록이 차곡차곡 쌓이면 농사짓는 즐거움도 늘고 농가살림을 꾸려가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된다.
❒영농일지 기록 예
1998.9.21
► 흑벼 전량 도정
- 도정처 : 금평 정미소 - 수 율 : 78% - 수 량 : 1,080kg
► 아버지, 할머니 상경
► 아이들 소풍(청양 칠갑산 자연 휴양림)
► 배추밭 풀매기
2000.10.9
►구정리논 수확(697,697-1,697-2)
- 품종 : 일미벼, 왕찰
- 콤바인 고장으로 수확하는데 오래 걸림(예취날, 짚절단 커터, 조이스틱 교환)
- 찰벼는 조금 일찍 벴음. 내년에는 1주일쯤 뒤로...
2003. 4.7
► 감자 2차 비닐 뚫기 작업(1차 뚫어준 것을 더 크게 함)
► 생강밭 패화석 뿌리기(덜 뿌린 곳 골고루) : 36포(20kg 들이)
► 하우스 완두콩 물주기(스프링클러)
► 볍씨 열탕소독 및 BMW+목초액 혼합액에 12시간 가량 담그기
2005.1.14
► 유기축산 교육 이수
- 장소 : 농업기술센터 - 시간 : 오전 10시~12시
- 강사 : 일본 대학교수(만다 마사하루) -통역 : 홍순명 선생님
- 내용 : 식품위기, 유기축산 일반론, 사례발표, 질의응답
► 풋콩 작목반 모임
- 장소: 풀무생협 - 안건 : 05년 생산계획, 새 작목반원 영입의 건
► 생강작목반 모임
- 장소 : 우리집 - 안건 : 생강 가공, 05년 작부체계, 재배면적 논의
2005. 8.9
► 278-6번지 생강(국산) 50% 정도 노랑병 번짐- 뽑아내고 들깨 옮겨심기
* 계속되는 집중호우로 땅이 습해 노랑병이 심하게 발생.
국산에 비해 중국산이 적게 발생(전면적의 2% 정도)
► 초등학교 운동장 풀뽑기-선생님과 학부모님들, 주형로 위원장님
* 간식 준비해 제공(영양떡)
친환경 인증을 받기위한 영농일지 작성요령은 육하원칙을 기본으로 각 인증기관에서 요구하는 기준에 맞추면 된다. 공통적인 큰 원칙은 구체적인 기록이다. 고추에 진딧물이 발생해서 친환경 제제로 방제했으면, 어느 필지에, 무슨 미생물 제제를, 몇배로 희석했는지 상세히 적어야 한다. 작물의 생태, 병충해 발생현황, 영농기술 적용사례, 이후의 관찰일지 등이 인증기관에서 주시하는 항목들이다.
어느 마을에나 농사명장(農事明匠)은 있다
농사를 똑소리나게 짓기 위한 쉬운 방법의 하나는 그런 누군가를 닮아가는 것이다. 일부러 먼데 가지 않아도 어느 마을에나 모델이 될만한 농가는 있게 마련이다. 누구네 집 숟가락 수가 몇 개인지 훤히 아는 농촌의 특성상 농사 베테랑들은 정평이 나 있다. ‘모는 완희 아빠가 자로 잰 듯이 똑바로 잘 심고, 로터리는 쌍둥이 아빠가 치면 두둑에 흙밥 하나 없고...’ 모두가 짓는 농사이건만 농사명장이 따로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비결은 간단하다. 이런 분들과 어떻게 하든지 연결 고리를 만들어 보고 배움의 기회를 만든다. “일년간 제 농사스승으로 모실테니 가르쳐 주십시오!”라며 시작해도 좋고 기회가 되면 품앗이도 괜찮은 방법이다.
못자리 준비 하나만 해도 볍씨를 어떻게 다루는 지, 어디서 싹을 틔우는 지, 물은 얼마만큼 주는 지, 며칠 재웠다가 논으로 나가는 지, 못자리는 어떤 방법으로 하는 지 세심히 관찰하며 그대로 따라하면 된다. 물론 매 작업마다 왜(why?)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때마다 마을 최고의 농사비법을 전수받을 수 있다. 재미있는 공통점은 베테랑 농부들은 한결같이 부지런해서 작물이 무언가를 필요로 할 때 반드시 그 필요를 채워준다는 점이다. 즉, 물이 필요할 때 물을 주고 김매기를 해야 할 때는 김을 매준다. 귀찮거나 힘이 들어서 미루는 법이 거의 없다. 사람에게 농사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작물의 성장에 따라 사람이 맞춰가는 맞춤농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농업이 종합예술이라면 작물과 완벽하게 호흡을 맞춰가는 이 땅의 농사명장들은 진정한 흙의 예술가임에 틀림이 없다.
비용과 시간을 확 줄이는 영농 노하우 10
①파종기를 적극 활용하자
작목별로 일정한 면적 이상이 되면 파종기를 사용하는 것이 유리하다. 씨앗을 손으로 심으면 파종간격, 깊이, 씨앗수, 흙을 덮는 양이 심을 때마다 달라서 싹이 트는 정도나 비율이 천차만별이된다. 파종기를 사용하면 이같은 문제가 해결될 뿐 아니라 시간도 몇분의 일만 투입하면 된다. 교체형 파종기는 파종롤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당근, 참깨와 같이 작은 씨앗부터 보리, 콩 등 큰 씨앗까지 모두 가능하다. 어떤 제품은 비닐 위에 파종하는 것도 가능하다. 가격대는 특정 작목 전용과 범용, 크기와 구조에 따라 여러 가지가 나와 있으니 자신에게 맞는 기종을 추천받거나 선택한다.
②거름은 가능한 직접 확보한다
농사의 맨 첫단계는 양질의 유기질 거름을 논밭에 넣는 것이다. 그러나 상품화된 거름은 뿌리기는 쉽지만 아무래도 가격 부담이 크다. 농업의 수익률 자체가 낮은데다 거름까지 돈을 주고 사서 쓰면 남는 게 별로 없다. 직접 짐승을 키워 거름을 만들어 쓰면 제일 좋지만 차선책은 구해서 쓰는 것이다. 이충남‧ 오은혜 씨 부부가 사는 지역처럼 축산 농가가 많은 곳은 상대적으로 거름을 구하기가 쉬운 편이다. 이들 축산 농가를 자세히 살펴보면 인근 일반 농가와 공생관계에 있다. 축산 농가는 넘쳐나는 거름을 주고 일반 농가로부터 볏짚이나 노동력을 제공받는다.
대규모 축산 농가 일수록 거름은 남아도는 데 일손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틈틈이 엔실리지(ensilage)나 조사료 작업을 도와주고 축분을 얻어올 수도 있다. 어떤 형태로든 축산 농가와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며 살아가는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이충남 씨도 선배 귀농인들과 함께 유정란을 생산하는 보령의 야마기시 계사에서 닭똥을 퍼와 밭에 필요한 거름중 절반 정도를 해결하려 한다. 나머지는 인근 축산농가의 엔실리지 작업을 도와주고 얻기로 했다. 올 해 이충남 씨는 논에 웃거름으로 쓸 유박 25포 가량을 구입하려 했지만 그것도 충청남도에서 지원하는 비료지원 사업으로 해결이 될 것 같다.
짓고 있는 논이 사질토양이면 자운영이나 헤어리베치 따위의 녹비작물을 심는 것도 한 방법이다. 콩과식물이라 스스로 거름을 만들어낸다. 벼를 베기 전에 씨앗을 뿌려 놓고 수확후에 배수로를 내어주면 이듬해 봄에 퇴비 내는 수고를 덜 수 있고 땅심도 좋아진다. 이듬해 늦은 봄에는 나물로 먹을 수도 있고 논 전체가 온통 붉거나 보랏빛으로 물든 풍경을 가슴에 담을 수 있는 것도 농부의 행복이다.
③인건비를 줄이는 풀관리 노하우
예로부터 농부됨을 가늠할 때 상․중․하 세 단계로 나눴다고 한다. 그중 상농(上農)은 풀이 나기 전에 논밭을 매고, 풀이 나면 매는 것은 중농(中農)이며, 하농(下農)은 풀을 보고서도 매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대다수 귀농인들은 어디에 해당될까? 농가마다 차이가 크게 나겠지만 아마도 중농과 하농 사이가 아닐까 한다. 풀을 잡을 마음은 있으되 시간과 일손이 딸려 하농에 가까워진 경험이 있을 것이다. 혹시 제초제를 사용할 수 없는 조건의 농가라면 작물의 한살이에 따라 다음의 방법을 눈여겨 보자.
경운기나 관리기 등 농기계가 있다면 씨앗을 뿌리기 전에 이따금 로우터리 작업을 하는 것만으로 풀을 잡을 수 있다. 이 때는 풀이 죽을 정도로만 얕게 한다. 깊이 갈이가 필요한 뿌리 작물을 심을 때는 거름을 뿌리고 갈아 엎는다. 논은 남들보다 일찍 물을 채워 풀이 싹트도록 유도한 뒤에 로우터리 작업을 한다. 우렁이 농법보다 제초효과가 떨어지는 오리농법이나 손김을 매는 농가와 궁합이 잘 맞는다.
2단계는 적절한 제초용 농기구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간 풀을 잡는 대표 농기구는 호미였다. 하지만 호미는 유용한 제초 도구지만 쪼그리고 앉아서 허리를 구부려야 하고 효율이 높은 편도 아니다. 호미대신 서서 풀을 매는 농기구를 활용하면 피로감도 덜하고 작업도 빠르다. 이랑용과 고랑용, 바퀴부착용 등 농가의 작물에 맞는 것을 선택하면 시간과 비용 절감이 가능하겠다.
❒제초용 농기구들(사진과 간단한 설명)
- 딸깍이 : 이랑과 이랑 사이에 난 어린 풀을 맬 때
- 긁쟁이 : 포기와 포기 사이에 난 풀을 맬 때
- 풀밀어 : 이랑, 고랑 겸용으로 바퀴가 달려 있어 사용자의 피로감이 덜하다
- 중경제초기 : 벼의 포기 사이 잡초를 매는 소형 동력제초기. 한 번에 2~5줄을 맬 수 있다
풀을 억제하는 효과적인 방법은 멀칭기법을 응용하는 것이다. 기존의 비닐멀칭이나 사료포대 활용법에서 한 단계 나아가 고랑 전체를 고랑폭의 포장재로 덮는 방법이 있다. 포장재 가게에 알맞은 크기로 주문하면 롤형태로 절단해준다. 생강을 예로 들어보자. 두둑에 짚을 덮기 전 고랑에 포장을 깔고 흙을 살짝 뿌려준 다음 짚을 덮으면 가을까지 고랑매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같은 방법으로 고추 고랑에는 보온덮개를 덮는다. 낡은 보온덮개를 절반으로 타개어 고랑 길이의 반만 덮은 후 풀이 올라오는 정도에 따라 앞 뒤로 이동을 반복한다. 농민들중에는 검정 비닐이나 부직포로 고추 고랑 전체를 덮어주기도 한다. 이 때는 가장자리의 풀이 밀고 올라오지 않도록 고정핀이나 흙으로 눌러준다.
❒사진-비닐,부직포, 고정 핀
④나만의 농기구를 만들자
농촌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필요한 것을 스스로 만들어 쓰는 재미다. 농가마다 독특한 재주들이 있어 나만의 연장이나 농기구를 만들어 쓰는 데 널리 보급되었으면 하는 작품(?)들도 적지 않다. 폐냉장고의 컴프레서를 이용해 소형 공기압축기(air coppressor)를 만들고 여분의 전동기에 연삭 숫돌을 달아 예취기 날을 가는 것은 이제 고전적 활용법에 속한다.
22mm 파이프와 하우스 패드 조각, 활대용 강선과 전기 드릴만 있으면 몇 년을 써도 튼튼한 갈퀴를 만들 수 있고, 추억어린 족답형 탈곡기는 V벨트와 모터만 있으면 전동 탈곡기로 화려하게 변신한다. 수동 풍구 또한 용량에 맞는 모터와 스위치, 벨트만 달면 몇십만원의 구입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요컨대 필요에 따라 하나하나 만들어 가는 재미는 새 제품에 비길 바가 아니다. 고무래, 지게, 삼태기, 씨오쟁이 등등 예전에는 그렇게들 만들어 썼다.
❒D.I.Y 농기구 제작법
▶집초용 갈퀴
- 용 도 : 말린 볏짚을 긁어 모을 때 낫보다 작업속도가 빠르며 튼튼하여 반영구적이다
- 준비물 : 고속절단기, 하우스 패드, 활대용 강선, 전기 드릴, 직결나사
① 활대용 강선을 갈퀴살 길이만큼 고속절단기로 잘라 구부린다
② 22mm 파이프를 잘라 손잡이(갈퀴대)를 만든다
③ 패드를 잘라 칼퀴살이 통과될 곳에 드릴로 구멍을 뚫는다
④ 갈퀴살을 패드 구멍에 통과시키고 직결나사로 손잡이에 고정시킨다
▶고추 구멍뚫기용 연장
- 용 도 : 비닐을 씌운 두둑에 일정한 간격으로 구멍을 낸다. 고추나 기타 작물을 일정한 간격으로 심을 수 있어 최적의 생육조건을 마련한다.
- 준 비 물 : 삽자루, 굵은 철사, 낫, 가는 통나무, 펜치
① 준비된 삽자루의 끝을 더 뾰족하게 깎는다
② 가는 통나무의 끝을 깎아 팽이처럼 만든다
③ 삽자루 둘레에 홈을 내어 굵은 철사로 고정하고 끝을 ㄱ자로 구부린다
④ ㄱ자로 구부러진 끝에 팽이 모양의 작은 나무를 고정한다
실전 밭농사, A에서 Z까지
-대표작물인 고추의 한살이를 중심으로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농부가 해야 할 고추농사의 모든 것을 알아본다-
농기구 준비는 이렇게
날이 풀리면 밭에 작물을 부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농기구와 거름 준비가 그것이다. 텃밭농사냐 전업농이냐에 따라 농기구의 종류와 수가 달라지겠지만 공통적으로 준비해야 할 것은 낫, 삽, 호미, 쇠스랑, 골타기, 구멍삽, 갈퀴 등이다. 쇠스랑은 발이 세 개에서 다섯 개까지 있는 전통 쇠스랑과 흙을 평평히 고를 때 사용하는 쇠스랑이 다르다. 뒤에 것을 농부들은 흔히 열두 발 쇠스랑이라고 부른다. 발고무래나 레이크(rake ;갈퀴)도 같은 말이다.
낫도 왜낫과 조선낫이 다르다. 흔히 볼 수 있는 일자 낫은 왜낫으로, 날이 얇아 벼나 풀 등 부드러운 수목을 벨 때 쓴다. 날이 두껍고 황새목처럼 구부러진 조선낫은 날이 튼튼해서 나뭇가지를 치거나 껍질을 벗길 때 사용한다. 호미는 허리가 가늘면서 뾰족한 것과 이등변 삼각형이면서 평평한 것 두 가지다. 전자는 잡초를 뽑거나 작물을 심고 캘 때, 후자는 잡초가 난 땅바닥을 긁으면서 풀을 맬 때 사용한다. 잡초가 어릴수록 효과가 크며 날이 무디어지면 그라인더에 날을 세워 사용한다.
크지 않은 텃밭을 가꾸는 데는 낫과 삽, 호미, 골타기, 일륜차, 열두 발 쇠스랑이면 충분하다. 전업농가에선 괭이(곡괭이), 도리깨, 각삽, 지게, 모종삽, 담배삽, 고무래, 풍구, 체, 포크, 거름삽, 북주기 등이 더 필요하다. 농가별로 주력작물에 따라 전용 농기구를 따로 준비하는 데, 이를테면 도라지 전용 호미나 전용 포크이다. 알기 쉽게 나누어보면
▶땅을 팔 때 ---삽, 쇠스랑, 포크, 호미, 괭이, 구멍삽, 골타기
▶흙을 고를 때--쇠스랑(열두 발 쇠스랑), 고무래
▶흙을 긁어 북을 줄때--호미, 북주기
▶풀을 맬 때(제초)--호미, 골타기
▶모종을 옮길 때--호미, 모종삽, 담배삽
▶무언가를 옮길 때--일륜차(밀차),지게
▶특용작물(도라지)--전용 호미(발이 두 개로 길다), 전용 포크(휘어지지 않도록 발이 두껍고 튼튼하다)
농기구를 고르는 요령
밭농사용 농기구는 일반 철물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가격도 몇천원대 이하여서 부담스러운 편은 아니지만 작물이나 사용 빈도에 따라 적합한 연장을 갖추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포크는 퇴비를 치울 때와 생강, 마늘을 거둘 때는 쓰임새가 완전히 달라진다. 퇴비를 치울 때는 문제없던 포크가 삽을 대신해 사용할 때는 포크의 발이 부러지거나 휘기 일쑤다. 밭의 흙이 질흙일 경우에는 더욱 감당하기가 어려워진다. 이런 경우에는 보다 튼튼한 포크를 써야 한다. 경험상 대장간에서 전통 방식으로 두드려 만든 농기구가 시판 제품보다 튼튼한 것들이 많다. 포크, 쇠스랑, 도라지 호미 등 주로 힘을 많이 쓰는 농기구에서 비슷한 문제가 발생한다.
삽 하나를 고르더라도 쓰이는 곳에 따라 재질과 모양이 다르다. 오리망을 치거나 시멘트 몰탈을 비빌 때는 각삽이 더 편리하고 축사를 치울 때 쓰는 거름삽도 철, 알루미늄, 플라스틱 등 삽의 크기와 재질이 다양하다. 따라서 농기구를 살 때는 가게 주인에게 어디에 쓸 것인지를 설명하고 추천을 받는다. 구입하기 전에 이웃 농가를 방문해 제조 회사명과 실물을 미리 봐두는 것도 지혜로운 방법이다.
❒다양한 종류의 삽(사진-스펙)
왕겨용삽---왕겨를 푸기 알맞도록 넓고 깊다
플라스틱 거름삽---완전히 발효된 가벼운 거름을 펼 때 사용한다
쇠삽--축사 바닥을 긁거나 무거운 퇴비 등을 치울 때 쓴다
알루미늄-쇠삽과 같은 용도이나 가볍고 삽날이 조금 넓다
농기구가 해결되었으면 다음은 거름이다. 화학비료는 농협 등에서 바로 구할 수 있으나 유기질 비료는 주변에서 조금씩 사기가 쉽지 않다. 퇴비는 첫농사이니 준비된 것이 없을 테고 아마도 사든가 얻는가 해야 할 것이다. 농사를 잘 모르는 상황에서 유기질 거름 구입은 신중해야 한다. 시판 퇴비중에는 함량이 떨어지거나 중금속이 들어있는 불량제품도 있고, 표시사항도 없는 마대에 담긴 것들도 있다. 이런 것들은 값이 싸더라도 구입하지 말아야 한다. 자칫 산업폐기물이나 쓰레기를 원료로 한 것인지도 알 수 없다.
간혹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농협에서 만들거나 유명기업의 제품은 일단 안심이다. 정기적으로 품질검사를 받기 때문이다. 먼저 심을 작물별로 필요한 거름량을 파악한 다음 조금 여유있게 구입한다. 남는 양은 작물에 거름기가 떨어질 때 웃거름으로 쓴다. 다음 작물에 넣을 거름까지 미리 구입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포대 퇴비라 할지라도 미발효 상태인 것이 적지않아 보관하는 중에 발효가 진행된다. 밭에 퇴비를 넣고 바로 작물을 부칠 때에는 완숙퇴비를 넣어야 가스 장애 가 생기지 않는다. 특히 심자마자 비닐을 씌우는 작물에 미발효 퇴비를 넣으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작물을 심기 전까지 최소 몇 달간의 여유가 있으면 퇴비를 직접 만들어 보자. 퇴비는 지구상에 있는 거의 모든 유기물이 재료가 되지만, 보통 농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을 버무려 만든다. 주로 짐승의 똥에 왕겨나 짚, 쌀겨 등 농사 부산물과 낙엽, 톱밥, 우드칩 따위를 섞어 일정기간 발효과정을 거친다.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인분, 부엌의 생쓰레기, 버섯배지, 산야초, 폐버섯목 등도 훌륭한 원료들이다.
발효는 미생물의 힘을 빌리는 것이기에 수분이 적당해야 한다. 물기가 너무 적거나 많아도 발효가 잘 되지 않는다. 퇴비장은 빗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비가림 시설을 하거나 덮어 준다. 주기적으로 농기구나 장비를 이용해 뒤집어 주면 발효기간이 크게 단축된다. 질 좋은 퇴비는 원료의 악취 대신 잘 띄운 메주처럼 특유의 향취가 있고 전체적으로 곰팡이류가 하얗게 덮고 있다.
요즘 쉽게 볼 수 있는 생태화장실의 기본 원리, 즉 사람의 똥(질소질 재료)에 왕겨(탄소질 재료) 를 켜켜이 뿌리는 과정은 퇴비를 만드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 때 똥과 왕겨의 비율과 수분 함량, 그리고 혼합된 재료 깊숙이까지 산소가 얼마나 공급되느냐에 따라 발효시간이 결정된다. 결과적으로 좋은 퇴비를 얻기 위해서는 양분과 수분, 온도, 산소 등 미생물이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최적의 조건을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 뒤집어 보면 우리 사람이 사는 조건과 비슷하다.
작목에 맞춰 밭 정하기
밭이 하나가 아니고 여러 필지인 경우 각각의 토질을 파악해 맞는 작물을 정한다. 어떤 땅에 무슨 작물이 잘 되는 지는 농사를 지어본 이가 제일 잘 안다. 여기는 마늘이 잘되고, 저기는 도라지가 잘 되고…. 연작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먼저 심은 작물을 알아두는 게 좋다. 하여간 경험과 자신이 없으면 뭐든지 묻는 게 상책이다. 만약 묻지도 않고 알지도 못해서 질흙에 감자나 무를 심어놓으면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수확은 보잘 게 없다. 나아가 전년도에 고추를 심은 자리에 고구마를 심어놓고 수확전에 도시의 지인(知人)들에게 미리 주문을 받을 수도 있다. 예상되는 결과는? 아마도 이태째부터는 고구마 팔기가 어려워질 것이다.
밭을 정하기전 작물의 생리를 아는 것은 이만큼 중요하다. 자, 지금부터 고추를 예로 들어보자. 고추는 거름이 많이 필요한 열매작물이다. 어려운 말로 다비성(多肥性) 작물이라 한다. 동시에 자기 그늘도 싫어할 만큼 빛을 좋아하는 작물로 물이 잘 빠지는 곳에 심어야 병해가 적다. 그렇다면 그늘이 많이 지는 밭이나 질땅, 경사가 거의 없는 평평한 밭은 피하는 게 좋다. 부득이 평지에 심어야 한다면 두둑을 높게 만들어 물빠짐을 좋게 한다.
고추의 생리에 맞는 밭이 정해졌으면 전년도에 심었던 곳을 피해 심을 자리를 정한다. 거름을 뿌릴 면적은 포기 사이를 35~40cm, 두둑 폭을 100cm로 잡으면 된다. 심는 간격과 폭은 지역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다. 농민들은 농촌진흥청의 표준(위 간격)보다 조밀하게 심는 경향이 있다. 거름은 밑거름과 웃거름을 나누어 주며 300평당 퇴비 2톤, 석회 150kg, 질소 19kg, 인산 11.2 kg, 가리 15kg을 밑거름으로 넣는다. 넓지 않은 텃밭은 일륜차로도 가능하지만 일반 농가에서는 퇴비와 석회는 경운기나 퇴비 살포기로, 화학비료는 수작업 또는 동력살분무기로 뿌린다.
퇴비와 비료가 뿌려진 흙은 바로 갈아엎어야 한다. 농기계가 등장할 순서다. 경운기나 관리기, 트랙터중 하나가 한 차례 지나가면 거름과 흙이 뒤섞이고 다시 한 번 지나가면 두둑과 골이 생긴다. 다른 말로 이랑과 고랑이라고도 한다. 두둑은 고추가 심겨질 자리고 골은 빗물이 흐를 자리다. 예전에는 쟁기로 땅을 갈아 뒤엎은 다음 로우터리 작업을 했지만 지금은 땅이 딱딱하거나 쟁기질이 필요한 곳이 아니면 로우터리 작업으로 끝낸다. 두 번째 작업을 흔히 골타기라고 한다.
농기계가 밭을 빠져 나가도 농부들은 바로 무언가를 심지는 않는다. 기계가 드나든 자리는 흙이 몰리거나 쇄토(碎土)가 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삽과 열두 발 쇠스랑으로 다른 두둑과 비슷하게 만들고 나머지 미흡한 부분을 손본다. 이제 비닐을 씌울 일이 남았다. 멀칭용 비닐은 투명, 흑색, 흑색에 가운데만 투명한 배색 세 종류인 데 보통 고추비닐 하면 배색비닐을 가리키다. 간혹 흑색 을 쓰는 농가가 있다. 가운데 투명한 부분에서 자라는 풀 때문이다. 하지만 초기 활착은 배색에 비해 약간 늦어지는 편이다.
멀칭작업은 혼자서 할 수도 있지만 부부나 2인 이상이 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한 사람은 비닐을 잡고 다른 사람은 비닐을 끌고간 다음 삽으로 두둑 하단의 흙을 군데군데 퍼올려 임시로 고정한다. 이어 삽이나 골타기로 고랑의 흙을 퍼올려 비닐을 땅에 고정시킨다. 비닐멀칭은 고추를 심는 날보다 며칠 앞서서 하면 흙의 온도를 높여 고추 뿌리가 빠르게 자리잡는다. 로터리 작업후 흙속의 수분을 유지시켜 고추를 심을 때 물을 적게 줘도 되는 잇점도 있다.
고추를 심는 시기는 지역별로 다르다. 서리피해가 없는 때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이다. 남부는 4월 하순에서 5월 상순, 중부지방은 5월 상순에서 중순사이에 심는다. 심는 순서와 방법은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지만 대략 다음과 같다.
① 팽이끝처럼 깎은 말뚝으로 비닐에 구멍을 낸다
❒심는 간격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한 몇가지 장치가 고안되어 사용되기도 한다.
아래 각각 그림예)
②고추를 넣은 다음 물이 구멍밖으로 흘러내릴 만큼 충분히 준다
③ 북주기로 주변의 흙을 긁어 고추가 쓰러지지 않도록 북을 준다
또는 구멍에 물을 먼저 준다음 고추를 넣고 북을 주기도 한다.
밭에 고추 한 포기를 심기 위해서는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여기에 농가마다 나름의 비법을 더하기도 한다. 막걸리에 효소, 그외 다양한 성분의 액비(液肥)들이 더해진다. 병충해 방지를 위해 전용 농약을 쓰는 농가도 있다. 어떤 농가에선 멀칭 비닐대신 검은색 부직포나 종이 멀칭지로 대신하는 예도 있다. 여럿이 품앗이로 심을라치면 설왕설래, 의견이 분분하다. 이렇게 해야 좋다는 사람, 저렇게 심으면 안된다는 사람 가지각색이다.
십인십색(十人十色), 비슷해 보이지만 농가마다 조금씩 다르다. 누가 무어라고 할 사람도 없다. 농사가 재미있는 이유다. 상추나 쑥갓, 시금치, 아욱 등등 밭에 심는 다른 작물도 저마다 맞는 최적의 조건이 따로 있다. 작물의 요구에 맞춰 필요한 시점에 필요를 채워주는 일, 그것이 농부가 할 일이다.
이제 가꾸는 일만 남았다
어릴적 초등학교에 다닐 때 육림(育林)의 날이란 게 있었다. 11월 초던가 봄에 심어놓은 나무를 돌보고 가꾸자는 취지로 가슴에 제비꼬리 같은 리본을 달았다. 하지만 농사꾼에겐 작물을 심은 뒤에는 하루하루가 육림의 날이다. 초겨울 들어 서리 맞은 고춧대를 뽑아 갈무리 할 때까지 고추에서 눈을 떼지 말아야 한다. 심어 놓은 고추 키가 크면 바람에 약하니 바로 지주를 꽂아 줄을 띄워 주고 아직 작으면 조금 큰 뒤에 버팀목을 세워준다.
고추 지주는 대나무, 철근, 하우스 파이프, 인삼밭 지주 등 어느 것이나 가능하다. 철근과 하우스 파이프는 튼튼하지만 무거운 게 흠이고 대나무는 가볍지만 쉽게 썩는다. 시중에서 취급하는 코팅 파이프류는 가볍고 튼튼해서 직접 준비하기 어려운 농가에 권할만하다. 지주를 세우는 간격은 고추 3~5포기당 하나씩 박는 데 많이 쓸수록 튼튼하게 지지할 수 있다. 직접 장만할 때는 길이가 120cm 이상은 되어야 안심이다. 요즘 고추는 거름이 좋을 경우 100cm 이상 자라는 게 대부분이다. 지주를 땅에 박을 때는 약간 무거운 망치를 쓰는 쓴다. 너무 가벼우면 효율이 나지 않는다. 두둑 양끝단 지주는 힘을 많이 받으므로 더 깊이 튼튼하게 박아야 한다.
고추끈을 매는 방법도 가지가지
고추 포기에 줄을 띄우는 방법도 천차만별이다. 어떤 이는 첫 막대에 줄을 매어 놓고 두둑을 한 바퀴 두른 다음 막대에 감고, 다른 이는 끈을 들고 한 발짝씩 걸어가며 막대에 감는다. 고추끈을 허리에 묶고 일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헌 배낭에 넣어 지고 다니기도 한다. 연습삼아 네가지 방법을 한 번씩 해보고 자신에게 편한 방법을 선택한다.
고추에 줄까지 띄웠으면 일단 초기 작업은 끝난 셈이다. 남은 일은 수형 관리와 제초 대책이다. 거름이 많이 들어간 넓은 고랑의 풀을 일일이 뽑는 건 매우 힘든 일이다. 관행에서는 그라목손 류의 식물 전멸 제초제를 사용한다. 유기농업에서는 부분 로터리 등 물리적 방제나 멀칭 기법을 활용한다. 신문지, 사료포대, 보온덮개, 검정 부직포와 비닐, 볏짚 등 온갖 재료들이 동원된다. 방초망(防草網)이라는 것도 상품화 되어 있다. 어느 것이든 바람 피해가 없도록 고정핀이나 흙으로 경계면을 잘 눌러 놓아야 한다. 풀이 한 번 고개를 들면 잡기가 무척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곁순제거와 병해충 방제법
심어놓은 고추가 뿌리를 잡고 점차 키가 자라면 Y자 모양으로 갈라진 줄기(방아다리) 아래에는 곁순이 돋아난다. 그냥 놔두어도 곁가지에 고추는 달리지만 너무 무성해져서 통풍이 잘 되지 않고 관리가 어려워 어릴 때에 순을 따낸다. 이때 방아다리 아래의 곁순과 잎을 주르륵 훑어내리는 사람도 있는 데 고추의 생육에 지장을 주는 일이다. 그러니 곁순만 조심스럽게 따내자. 곁순은 고추의 한살이중 두 번 이상 제거해 준다. 떼어낸 곁순은 양념을 더해 무치면 훌륭한 반찬거리다.
곁순을 따내는 시기 전후로는 늘 반갑잖은 손님이 찾아온다. 시골 분들이 뜸물이라고 하는 진딧물이다. 주로 잎뒤에 깨알처럼 잔뜩 붙어 즙액을 빨아먹고 사는데 놔두면 바이러스를 옮겨 정상적인 성장을 방해한다. 관행에서는 살충제로 방제하고 유기농가에서는 님오일, 우유, 두유, 가루비누(합성세제가 아닌 비누를 갈아 만든 것)나 인증기관에서 허용한 전용 약제를 쓴다. 대부분 원료에 살충력이 있는 천연지방산이 들어있는 것들이다.
때깔 좋은 건고추를 만들려면...
장마가 지나고 심은지 50여일쯤 되는 7월말부터는 붉은 고추를 수확 할 수 있다. 따는 방법은 꼭지가 휘어진 반대 방향으로 고추를 살짝 들어 올린다. 꼭지가 유독 질긴 품종은 전용 가위를 사용한다. 따낸 고추는 품종에 따라 2~3일(부강은 좀 더 걸린다) 그늘에서 후숙을 거치면 바로 말릴 때보다 때깔이 좋아진다.
태양초를 만들려면 노지보다는 하우스에서 말리는 것이 편하지만 통풍이 잘 되도록 하고 건조 초기에 흰색 부직포를 씌워 희나리가 적게 발생하도록 한다. 전용 건조대를 설치하여 그물위에서 고추를 말리면 뒤집어주는 수고를 덜 수 있다. 자연 건조가 어려운 경우 건조기가 있는 농가에 의뢰하면 수수료를 받고 말려준다. 화력 건조기를 이용할 때도 완전히 건조시키지 말고 꺼내어서 마지막 이틀 정도를 햇볕에 말리면 품질 좋은 건조추를 얻을 수 있다.
고추를 본격적으로 수확하는 7~8월경에는 진딧물에 이어 담배나방 애벌레가 농부의 애를 태운다. 일명 고추벌레로 속을 다 파먹는 녀석이다. 아주 어릴 때 고추에 들어가면 까만 점 정도의 흔적밖에 남지 않아 잡기가 어렵다. 심지어 농약으로 방제를 해도 잘 듣지 않으며 전용약제로 벌레의 활동시간인 아침이나 저녁 무렵에 살포한다. 유기농업에서는 애벌레 보다 나방을 잡아 피해를 줄이는 데 초점을 둔다. 어른 벌레의 포획기를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다.
❒담배나방 포획기를 만드는 방법(사진)
①페트병의 중간 윗 부분을 칼로 잘라 출입구를 만든다.
②막걸리 40%+흑설탕 40% +식초 20% +살충 성분을 섞어 약제를 만든다.
③출입구에 빗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장판 등으로 갓을 만들어 뚜껑 사이에 끼운다.
④고추대 지주에 군데군데 매달아 둔다.
첫해에 고추 농사를 짓다보면 열매의 크기가 점점 작아지고 고추의 세력이 점차 약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거름이 부족해 나타나는 현상으로 웃거름을 주면 해결되는 문제이다. 고추의 웃거름은 심은 뒤 20일경에 주고 다시 25~30일경에 한 번 더 준다. 웃거름은 요소와 염화가리를 섞어서 뿌리에 비료가 닿지 않도록 고추 포기와 포기 사이에 비닐에 구멍을 뚫고 준다. 유기농업에서는 깻묵 액비 등 다양한 성분의 자가 제조 액비를 투여한다.
고추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 노농집약적인 작물이다. 만약 모종을 직접 키워낸다면 2월부터 10월까지 8~9개월 가까이 돌봐야 하고 병충해 방제도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특히 모종을 키우는 수고로움은 갓난 아이를 키우는 과정이나 다름이 없다. 매일매일 더우면 열어 놓고, 추우면 이불을 덮어주고... 그러다가 깜빡 저녁에 문 닫는 것을 잊어 모종을 얼어 죽이는 농가도 심심찮게 생겨난다. 첫해 고추 농사를 제대로 지은 농가는 다른 품목도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하겠다. 그만큼 농부들에게 매운 시집살이를 시키는 애물단지가 고추농사다.
실패에서 성공을 엿본다
문답으로 짚어보는 영농실패 사례기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지만 대개 실패를 하고 나면 후회가 뒤따르고 때로 위축되거나 포기하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귀농‧귀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실패는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늘 농부 가까이 있다. 작년 농사도 그랬고 올해도 몇 번은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실패한 경험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래도 좌절하지 않고 내년 농사를 기약하는 까닭은 성공의 경험이 실패보다 많아서가 아닐까? 자, 여기 선배들의 실수와 실패기를 통해 성공의 열쇠를 찾아보기로 하자.
심기만 하면 풍성히 거둘줄 알았던 감자 농사
시골에 내려와 첫농사를 시작한 98년 3월, 귀농동료들과 함께 이웃동네 주민에게 씨감자를 한 상자 사서 뿌듯한 마음으로 정성스레 심었습니다. 당시 평당 2만원을 주고 산 밭에 질 좋은 거름을 듬뿍 내고 직접 경운기로 갚아엎은 후 쇄토작업을 하였습니다. 이어 두둑을 만들어 감자를 심고 비닐을 씌웠습니다. 여기까지는 모든 게 순조로웠습니다.
하지만 얼마를 기다려도 싹이 나지 않은 곳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고 이미 올라온 싹도 크다가 죽는 일이 잦았습니다. 5월이 지나 수확기가 얼마 남지 않은 6월초까지 우리 감자밭은 다른 분들의 밭처럼 잎으로 무성하게 덮이기는 커녕 죽은 곳이 더 많았고 살아남은 감자의 자람세도 다른 집의 절반도 되지 않았습니다. 중간중간 캐어보니 이미 씨감자가 썩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결국 6월 초순경 결단을 내리고 감자를 캐어보니 총 40kg 쯤 되더군요. 20kg을 심었으니 겨우 두 배 수확을 본 셈입니다. 그때 같이 씨감자를 산 동료는 이후 약 30여배인 600kg을 수확했습니다. 그이는 하우스에 모를 부었고 중간에 밭이 만들어지지 않아 첫 번째 순을 모두 잘라내고 두 번째 순이 났을 때 심었는데도 말입니다. 우리는 왜 실패한 것일까요? 경험해보니 감자처럼 쉬운 품목도 별로 없는 데….
❒주목!
질논을 밭으로 만든 곳에 심었기 때문입니다. 토질이 맞지 않았던 게지요. 점질토가 많아 질은 곳은 감자나 무 등 뿌리 작물이 잘 되지 않습니다. 토양의 특성을 파악해서 적합한 작물을 부치는 것이 좋습니다.
고생만 죽도록 하고 한 뿌리도 먹지 못한 도라지
보통 도라지는 시골에서도 주로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들이 심는 품목입니다. 대개 일년작인 다른 작물과는 달리 도라지는 최소 2년은 키워야하고 그 사이 풀을 매는 일이 다른 작물보다 몇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마음이 진득하지 않고서는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혈기왕성한 젊은 농군들은 제풀에 지치는 작목이지요.
하지만 귀농 둘째해에 넘치는 의욕만으로 도라지씨를 구해 밭에다 뿌렸습니다. 씨가 워낙 작으니 가르쳐 주신대로 모래와 섞은 (增量作業) 다음 나름대로 골고루 잘 뿌렸지요. 하지만 결과는? 제목처럼 풀을 매느라 고생만 죽도록 했습니다. 또 도라지 전체를 모조리 뽑아 다시 심어야 했습니다. 왜냐구요? 도라지의 특성을 모르고 내 생각대로만 농사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싹은 잘 났습니다. 나무랄데 없이요. 김도 열심히 매었지요. 그런데 한 뿌리도 못먹었다니...도대체 우리 도라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주의!
한 두둑에 심어야 할 양을 세 두둑에 흩어 뿌렸기 때문입니다. 도라지는 적당히 촘촘하게 뿌려야 공간 경쟁으로 곧은 뿌리가 발달해 상품성이 좋아집니다. 적은 양으로 널찍하게 뿌렸으니 잡초만 무성하고 뿌리가 사방으로 갈라져 상품성이 떨어진 겁니다.
귀농 2년차, 경험 부족으로 소를 죽이다
귀농후 형편이 되면 소를 키우고자 하는 분들이 많은데 자연스러운 수순입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제가 임대해 살고 있던 집에 외양간이 있어 98년 가을에 80만원을 주고 이웃에서 중송아지한 마리를 사왔습니다. 소를 파신 후 소주인에게 부탁해 코뚜레를 뚫어 옛날식으로 풀도 뜯기고 할 요량이었지요. 처음 길러본 소지만 전 주인이 알려준대로 하니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송아지를 생산하려고 키우는 암소이니만큼 아침 저녁으로 사료 한 바가지씩 주고 중간중간 짚을 주면 됐으니까요. 짚은 전년도에 농사지은 것이 있어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듬해 4월에 발생했습니다. 농사일을 도와주러 오신 아버지께서 소가 이쁘다며 며칠간 푸른 풀을 몇바지게나 베어다 준 뒤부터 당최 소가 먹질 않는 것이었습니다. 소화제도 타서 먹여보고 사료를 쏟아주어 봐도 도통 입을 대지 않더군요.
나중에는 소의 배가 임신한 것처럼 점점 불러오고 이솝의 우화 <황소와 개구리>에서 나오는 소처럼 배가 남산만해졌습니다. 걱정이 되어 이웃의 낙농전문가를 부르기도 하고 수의사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소는 예전의 모습을 회복하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몇개월간 온 정성을 다해 돌보던 누렁이...우리 소는 왜 죽은 걸까요?
❒주의!
가축은 먹이 변화에 민감해서 즉시 바꾸면 탈이 나기 쉽습니다. 새로운 먹이를 줄 때는 조금씩 양을 늘리거나 가축의 생리에 맞게 가공해야 합니다. 생풀을 주는 경우 햇볕에 말려 조금씩 짚과 섞어주면 탈이 나지 않습니다. 위의 소는 아마도 고창증에 걸려 죽은 듯 합니다.
노가리로 심은 수수밭, 초토화되다
농사를 지은지 4년째인가요? 잡곡을 좋아하는 우리 부부는 해마다 수수 농사를 거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몇년간 때가 되면 수수모를 붓고 이밭 저밭의 빈 곳이나 둑에 수수를 심어 수확해왔지요. 그러다가 욕심이 생겨 그해에는 사방에 나눠 심는 것보다 작은 밭 하나에 수수만 심어 거두기로 하고 50여평 되는 밭에 전부 수수를 심었습니다. 그뒤 수수가 잘 자라 개꼬리만한 수수 이삭이 달렸으나 알이 채 여물기도 전에 불어닥친 태풍으로 그해에는 수수를 한 톨도 수확할 수 없었습니다. 특이한 병이 온 것도 아닌데 우리는 왜 실패한 것일까요?
❒ 주의!
수수는 키 큰 작물로 밀식하면 채광과 통풍이 안되어 연약해지고 웃자라게 됩니다. 센 바람에 견디기 어렵지요. 우리 조상들이 콩밭에 드믄드문 심거나 밭둑에 한 줄로 심는 것은 이런 까닭에서입니다. 작물이 튼튼하게 자라기 위해서는 적당한 공간이 확보돼야 합니다.
자운영 때문에 한 숨 짓던 귀농 선배 이야기
자운영은 콩과작물로 벼를 수확하기 직전에 논에 심습니다. 콤바인 수확을 위해 마지막으로 물떼기를 한 후 촉촉함이 남아 있을 때 씨앗을 뿌리면 싹이 트고 벼를 수확한 뒤에는 조금씩 자라서 이듬해 5월이면 논에 자운영 꽃이 활짝 피어납니다. 그러면 농부는 그대로 갚아엎어 벼를 키울 거름으로 씁니다. 어렸을 때는 나물로도 먹고 소의 먹이로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논농사를 지으려면, 특히 유기농으로 하려면 무언가 거름이 될만한 것을 논에 내야 하는데 거름내기란 여간 힘든 작업이 아닙니다. 이때 자운영이나 헤어리베치, 호밀 등을 심어 녹비작물로 화학비료나 퇴구비를 대신하는데 경험이 적을 때에는 조심해야 합니다. 뒷그루로 심을 벼의 품종에 따라 거름이 넘치거나 부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족한 경우에는 웃거름을 주면 되나 넘치게 되면 자칫 쓰러짐이나 도열병 등의 피해가 뒤따릅니다.
한 선배의 경우에는 1700여평 흑벼가 쓰러져 수십여명의 예비군이 투입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예비군이 기대대로 열심히 일해 줄까요? 수십여명분의 참과 점심 준비하랴, 낫 준비하랴 바쁘기만 했지 얼마 베지 못하더군요. 나머지는 선배 가족과 저희 동료들의 몫이 되었습니다. 선배 논의 흑벼는 왜 쓰러진 건가요?
❒주의!
수입종중 극조생 흑벼는 볏대가 약한 품종입니다. 녹비만으로도 쓰러질 수 있으니 작물의 거름 요구량보다 넘치지 않게 주의해야 합니다. 만약 생육중에 문제가 보이면 단수(斷水), 물 걸러대기, 이삭이 나오기 전 절단 등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합니다.
고추 500주를 심어 다섯 근도 못건지다!
고추는 대표적인 소득작물로 집집마다 꼭 심는 품목이지만 농가별 생산량 차이가 크게 발생합니다. 예상하는 바와 같이 병충해 때문입니다. 특히 고추의 흑사병이랄 수 있는 탄저병은 고추의 수확량을 좌우하는 무서운 병입니다. 이외에도 역병이나 담배나방 피해, 석회결핍증 등이 농부를 괴롭히는 것들입니다. 제목에서 보시다시피 500주를 심어 다섯 근도 따지못할 경우도 종종 일어날 수 있습니다.
고추는 거름도 많이 필요하고 심고 가꾸는데 노동력도 많이 필요한 작목입니다. 모종도 직접 키우거나 사야 하고 비닐을 씌우고 지주를 박고 유인끈을 매어주고....그러나 탄저병이 오면 이 모든 노력이 거의 허사가 됩니다. 탄저병은 세균성 병이라 확산속도가 매우 빠르고 피해가 광범위하게 나타납니다. 또 한 번 생기면 병균이 3~4년간 땅속에 잠복해있다가 같은 과 작물을 심을 경우 병증이 더욱 심해집니다. 농부를 끈질기게 괴롭히는 탄저병의 공포, 어떻게 하면 피해를 줄일 수 있을까요?
❒ 주의!
가능한 연작을 피하고 적기에 병해를 방제합니다. 유기농에서는 2~3군데 다른 밭에 나눠 심기도 합니다. (위험분산) 물빠짐이 좋은 밭에 심고 빗물이 튀지 않게 고랑에 검은 부직포 등을 깔아줍니다. 하우스에서 재배하면 탄저병 발생이 노지에 비해 현저하게 적어집니다.
논에 가보니 수확할 게 없더라-물달개비의 공포
논에 사는 풀중에 물달개비라는 유명한 잡초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가늘게 올라왔다가 십자로 갈라지고 곧 하트모양의 잎이 펼쳐진 후 좀 더 성장하면 접시크기로 벌어지는 데 심할 경우 바닥의 흙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이 나서 논 전체를 덮어버리는 공포스러운 잡초입니다.
요즘 제초제를 뿌려도 죽지않는 제초제 저항성 잡초가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잡초가 이 물달개비입니다. 유기농에서 논잡초를 잡을 때 깊은 물 관리(深水管理)가 중요합니다만 물을 깊이 대도 효과가 없는 것이 물달개비입니다.
십년전 가을, 물달개비가 극심한 논에서는 낫을 들어도 벨 것이 없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극심했던 경우는 벼의 크기가 50cm 이하여서 콤바인 수확이 불가능할 뿐더러 낱알이 몇 개 달리지 않기 때문에 낫으로 수확해도 인건비를 건지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자주색 어여쁜 꽃이 피는 물달개비 1포기에서 떨어지는 씨앗은 자그마치 1만개...이 노릇을 어찌할까요?
❒ 주의!
물달개비는 대표적인 제초제 저항성 잡초입니다. 벗풀과 비슷하나 자세히 보면 조금 다르게 생겼지요. 관행에서는 성분이 다른 제초제를 교차 살포합니다. 유기재배 논에서는 가능한 어릴 때 잡아야 합니다. 모를 심고 나서 오리, 우렁이를 넣거나 어릴 때에 중경제초기를 사용해 방제합니다.
실패의 지름길, 귀농초 대형 농기계 구입
영농 첫해부터 귀농자금으로 농기계를 구입하였다가 1~2년내 영농을 중단하거나 사전지식 없이 중고 농기계를 구입한 뒤 잦은 고장으로 많은 수리비를 무는 사례도 보았습니다. 엔진오일이 부족한 트랙터를 운전하다 엔진을 망가뜨리거나 콤바인으로 논둑을 넘을 때 비스듬히 진행하다가 전복되는 경우입니다. 수리 비용도 비용이거니와 심각한 부상을 입거나 불구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도 제 영농 규모가 커지니까 농기계가 필요한 건 사실입니다. 과거 귀농 동료가 제 명의로 농기계를 구입한 후 뒤끝이 좋지않게 된 기억이 있어 망설여집니다. 그땐 정말 마음고생 많이 했습니다. 주변의 농민 몇 사람과 상의해보니 어떤 이는 새로 사는 게 좋다하고 다른 이는 중고로 시작하라 합니다. 필요는 하지만 가계에 부담스러운 농기계, 언제 어떻게 구입하면 좋을까요? 참고로 저는 귀농 3년차입니다.
❒ 주의!
트랙터나 콤바인 같은 대형농기계는 고가인데다 조작에 익숙하지 않을 경우 고장이나 사고로 이어져 인적, 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소지가 큰 기계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영농규모와 농업의 지속성 여부를 면밀히 따져봐서 구입에 신중을 기하여야 합니다. 경작농지나 경영규모가 크지 않다면 귀농 3년 이내에는 경운기나 관리기 등의 소형 농기계를 직접 운전하거나 농기계 사용료를 품앗이로 갚는 방법 등도 권장할만합니다. 농기계는 차량과는 달리 동작부위가 많고 논밭 등 험지에서 작업하므로 보다 세밀하고 꼼꼼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행복한 축산, 집짐승 기르기
농촌에서 가축은 집에서 기르는 동물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가축의 힘을 이용한 논‧밭 갈이나 운송은 거의 사라졌지만 농사의 기본 토대인 유기질 거름은 아직 가축에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까닭에서다. 우리 조상들은 농사의 부산물로 가축을 기르고 짐승의 똥오줌을 다시 농사에 활용하는 순환농업을 실천해왔다. 그래서인지 농우는 가족으로까지 생각하고 지성으로 받들기도 했다.
최근 들어 축산은 겸업농에서 점점 전업화, 대형화되고 있어 기술과 경험이 일천한 귀농인이 나서기에는 위험 부담이 크다. 따라서 축산에 꿈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단계적 접근이 필요함을 인식하고, 관심이 가는 집짐승의 생리와 사육기술을 배우는 것이 급선무라고 하겠다. 여러 짐승들중에 사육 빈도가 높은 한우, 닭, 흑염소, 돼지순으로 최소한의 사양관리를 알아보기로 하자.
농부의 오랜 벗-한우와 친해지기
농가에 우사가 있고 벼농사를 짓고 있다면 아마도 소를 길러보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귀농 초기라도 한우에 눈길이 가는 이들은 한 두 마리 소규모로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인근 한우 농가에서 건강한 송아지를 구해 기본 사료외에 볏짚, 풀, 농사 부산물을 최대한 이용해 키워보는 것이다. 그리고 처음 하는 축산인 만큼 비육보다는 송아지를 생산하는 번식우 사육을 권하고 싶다. 암소 기르기가 다소 까다롭기는 하기만 소의 전반적인 생리를 이해하는 데는 더 적합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느 단계의 소를 사는 것이 좋을까? 사람마다 견해가 다르지만 경험상 중송아지로 시작하면 무난할 것 같다. 값은 어릴수록 낮지만 소를 길러본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병에 대한 저항력이 떨어지는 어린 송아지보다는 어느 정도 큰 것이 관리 부담이 적다. 혹시 기회가 된다면 어미소를 사는 것도 괜찮지만 다루기에도 그렇고 짐승을 기르는 맛은 아무래도 송아지가 큰 소보다는 나을 것이다. 축사에 드나들 때마다 조금씩 커가는 송아지를 보노라면 때때로 목부(牧夫)로서의 행복감이 느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때 소와의 교감이 크고 깊은 이라면 장차 축산에 뛰어들어도 좋은 자질을 지녔다고 본다.
소를 기르는 일에는 최소 몇백만원이 들어간다. 그러니 밑소 구입부터 송아지를 다루는 본격적인 사양관리까지 차근차근 배워서 농가의 든든한 자산이 되도록 노력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농사와 마찬가지로 영농일지와 비슷한 축산일지가 필요하다. 사료 구입,예방 접종, 수정, 출산 등 성장 단계에 따라 소에 관한 모든 것을 기록해가면 어느 사이 자신감도 생길 것이다. 송아지를 키워 그 소로부터 비슷한 크기의 송아지를 얻어내면 한우 암소의 기본 생리는 모두 파악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뒤는 다시 반복이며 번식의 효율을 높이는 일만 남은 셈이다.
한우 번식의 기본 모델로 3-3-3-3 방식이 있다. 풀어쓰면 송아지 생산은 세 번 이상으로 하고, 발정이 온 소는 세 번이내의 수정으로 임신시키며, 송아지는 삼개월 이내에 젖을 떼고, 농후사료는 암소의 나이를 불문하고 하루 3kg를 넘지 않는다는 말이다. 번식우 사양관리의 핵심을 집약한 숫자이니 만큼 사육현장에서 적극 활용하도록 하자.
한우를 잘 기르려면...
다른 가축도 마찬가지지만 짐승을 기를 때 제일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 소의 생리를 제대로 파악하는 일이다. 평소에 한우 사육 지침서를 마련해 자주 찾아보고 관련 기관의 교육에 참여하다보면 자연스레 선진농가와 교류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다. 궁금한 점은 수시로 묻고 필수적인 사양관리 기술을 배워 농가상황에 맞도록 적용해본다. 일반적으로 수정시기나 젖을 떼는 시기는 주변 농가의 경우 빠르거나 늦어지는 경향이 있으므로 전문(농)가의 의견을 참조한다.
❒초보자가 자주 묻는 한우 기르기 10문 10답
①수정시기는 언제가 좋을까요?
- 약 12~14개월령에 체중은 250kg 이상일 때가 적기입니다.
②송아지 생산주기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 1년에 1마리를 생산하면 됩니다. 시간적으로도 충분합니다.
③암소의 발정주기는 며칠 간격으로 오나요?
- 평균 발정주기는 21일이며 지속시간은 18~21시간 사이입니다.
④발정후 수정적기는 언제입니까?
- 발정이 시작된 후 1~18시간 사이가 수태율이 높습니다.
⑤우사의 밝기에 따라 수태율에 차이가 있습니까?
-네 차이가 큽니다. 밝은 곳은 68.1%, 어두운 곳은 35% 정도입니다.
⑥번식우의 능력은 소의 일생중 어느 시기에 결정되나요?
-육성기가 제일 중요합니다. 소의 생산성은 반추위가 좌우하며,
반추위의 성장시기는 12개월령 이전에 결정됩니다.
⑦송아지는 암소와 수소의 형질중 어느쪽에 더 많은 영향을 받나요?
- 아비보다 어미의 신체충실도, 산차, 사육환경 등이 더욱 중요합니다.
특히 임신우 사양관리는 분만직전이 가장 중요합니다.
⑧어미가 송아지에게 초유를 먹이지 않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 젖소 초유를 구하여 냉동 저장하고 먹이기 전에 따듯하게 데워줍니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대용 초유를 주어도 됩니다. 분만후 늦어도 6시간 이내에 먹이는 것이 좋습니다.
⑨한우 사육시 최적 온도는 몇도인가요?
송아지는 10~25℃, 큰 소는 0~25℃입니다.
⑩그간 짚과 사료만 먹이다가 풀을 먹이려 합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마른 볏짚대신 갑자기 생풀을 주면 탈이 나기 쉽습니다. 적당히 말린 후 조금씩 양을 늘려야 합니다.
백년지객의 꿈-건강한 씨암탉 기르기
농촌에서 제일 부담이 적고 쉽게 기를 수 있는 가축은? 정답은 닭이다. 달걀과 고기를 쉽게 얻을 수 있고 닭똥은 훌륭한 거름이 된다. 주변에 풀어놓을 조건이 되면 사료비도 줄일 수 있다. 음식물 찌꺼기나 싸래기, 청치, 푸성귀 따위도 마다하지 않는다.
어느 농가나 조금만 손보면 닭장으로 쓸 공간은 있다. 첫농사를 시작하는 기념으로 부화장이나 시장에서 중병아리 몇 마리 사서 닭장에 넣어두고 물과 모이만 주면 알아서 큰다. 사료는 성장 단계별로 나뉘어져 있으니 맞는 걸로 구입한다. 집 주변의 풀이 낫으로 베기 좋을 만큼 컸을 때 이따금 베어서 던져 주노라면 어느새 쑥 커버린 닭이 달걀을 꼬박꼬박 낳아주니 기특한 짐승이다. 보통 초란을 얻기까지 6개월 정도 걸린다. 어린 아이가 있는 집은 닭을 키우는 것만큼 재미있는 교육이 또 없다. 스스로 알을 품는 습성이 남아있는 닭을 키우는 맛은 경험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진진한 재미다.
이왕이면 유정란을 만들어보자
가족의 밥상에 올릴 건강한 달걀을 얻고 싶다면 닭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어미닭이 행복해야 건강한 달걀이 나온다. 그럴려면 지금 닭에게서 빼앗은 것들을 하나하나 돌려주었으면 좋겠다. 먼저전과같이 암탉에게 수탉을 돌려주자. 암탉 열마리에 수탉 하나면 자연스럽게 유정란이 생산된다. 암탉과 수탉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풍경은 아이들에게도 더없이 좋은 생활의 테마가 된다. 먹이를 먹는 순서, 암탉을 보호하고 이끄는 수탉의 역할, 암탉 사이의 관계 형성…. 소와 돼지의 관리가 어른들의 일이라면 닭을 키우는 것은 아이들의 몫이 될 수 있다. 먹이를 주고 달걀을 꺼내오는 일도 곧 잘 하게 된다.
❒고정식 닭장과 운동장 연결하기
닭에게 돌려주어야 할 두 번째 선물은 흙이 깔린 운동장이다. 닭은 본능적으로 헤치는 걸 좋아한다. 이름이 닭인 것은 하도 닥닥 긁어서가 아닐까? 아무튼 닭이 살고 싶은 곳은 흙마당이지 케이지나 콘크리트 바닥이 아니다. 고정식 닭장에 뛰놀 수 있는 운동장을 연결하여 키워보면 금세 알 수 있다. 닭은 배가 고플 때와 잠잘 때, 알 낳을 때를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 흙마당에서만 논다. 닭이 닭장안으로 들어갈 때는 먹을 때와 알 낳을 때, 그리고 비가 오거나 잠잘 때 뿐이다.
자연이 빚은 달걀을 얻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닭이 마음껏 헤치며 놀 수 있는 운동장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만일 바닥이 시멘트라면 차선책으로 황토를 10cm 이상 충분히 깔아준다. 그리고 이따금 왕겨를 넣어 바닥이 질지 않게 관리해준다. 운동장의 구조는 골프 연습장처럼 벽과 천정을 그물로 감싸는 형태라야 외적의 침입을 막고 닭이 빠져나가는 것도 방지할 수 있다.
❒이동식 닭장(chicken tractor; 치킨 트랙터)
치킨 트랙터는 닭이 땅을 파헤쳐 뒤집는 습성을 이용해 만든 이동식 닭장이다. 바닥이 없는 공간에 닭을 넣어 기르면 풀을 뜯어먹고 땅을 헤집어 트랙터로 로우터리 작업을 한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낸다. 폭을 좁고 길게 만들면 밭고랑 제초에도 활용할 수 있다. 닭의 똥은 흙에 거름을 공급한다.
자연이 낳은 약초꾼-흑염소 기르기
흑염소는 우리나라의 지형이나 초목에 잘 어울리는 토종 동물로 온순해 보이는 외형과는 달리 강인한 생명력과 야생성이 살아있다. 그래서 너른 초지나 산지만 있으면 사료값이 거의 들지 않을 정도로 자연에 대한 적응력이 강하다. 풀어서 키울 때는 소가 도저히 갈 수 없는 가파른 경사지까지 거침없이 오르내린다. 식물의 잎은 물론 뿌리와 줄기, 나무의 껍질까지 벗겨먹는 식성때문에 울타리가 있는 좁은 방목지내의 나무는 함석을 둘러야 할 정도다. 일반 농가에서는 식용이나 약용으로 몇 마리씩 키우면서 아침에는 내어 매고 저녁에는 우리로 불러 들인다. 낮에는 가끔 염소를 살펴 풀이 많은 곳으로 옮겨주고 말뚝의 고정 여부를 확인한다.
염소 우리는 빈 축사나 헛간 등 비가림 공간을 이용하되 습기를 싫어하는 염소의 생리를 감안하여 가끔 왕겨나 짚을 깔아준다. 우리안에 필요한 것은 먹이통과 물통, 풀시렁이다. 먹이통은 급이중 엎어지지 않도록 조금 묵직한 것이 좋다. 풀시렁과 소금통은 염소가 밟지 않도록 벽면에고정하는 것이 좋다. 염소는 소처럼 반추위를 가진 동물로 일반 사료보다는 거친 조사료 위주로 키우는 것이 경제적이다. 겨울에는 사료외에 시래기, 저장 호박, 마른 낙엽외에 댓잎이나 솔잎 등도 잘 먹는다.
구입은 염소농장이나 가까운 번식 농가에서 하되 어미와 딸린 새끼를 같이 사는 것도 괜찮다. 어미 염소는 생후 2년생이 적당하며 새끼는 4~5개월령이 내병성도 강하고 독립시키는 데도 알맞다. 구입 시기는 풀이 충분히 자랐을 때 하는 것이 먹이 부담을 덜 수 있다. 가축은 서로 의지하며 자랄 수 있도록 한 마리 이상 키우는 것이 좋으며, 직접 교배시킬 때는 암염소 8~9마리에 숫염소 한 마리면 된다. 염소는 새끼를 낳을 때도 사람의 손을 거칠 것이 없다. 임신기간은 152일로 다른 초식동물보다 짧고 일년에 한 번 이상 번식이 가능하다. 새끼는 1~3마리를 주로 1~2월이나 6~7월에 낳는다.
흑염소는 모든 것을 스스로 알아서 하는 동물이다. 다만 더위에 약해 한여름 땡볕에 방치하면 위험하다. 어릴수록 더위에 대한 저항력이 떨어져서 여름에는 그늘에 매어 놓는다. 밖에서 키우기 어려운 장마철이나 겨울에 풀을 줄 때는 습기나 이슬이 마른 뒤에 먹여야 탈이 나지 않는다. 모기가 옮기는 치명적인 질병인 허리마비만 주의하면 염소는 초보 농군에게도 매력적인 가축이다.
상상외로 깨끗한 동물-복돼지 기르기
더럽고 지저분한 곳을 돼지 우리같다고 하지만 사실 돼지는 굉장히 깔끔한 짐승이다. 돼지 우리는 자는 곳과 대소변을 보는 곳이 정확히 구분되어 있으며 돼지에 대한 편견은 전통적인 사육방식에 있다고 보면 된다. 낡고 비좁은 축사에 오물이 쌓이고 먹이는 구정물에 쌀겨 한 바가지를 풀어 기르는 방식이었으니 구유 주변부터 오염이 확산되는 구조인 까닭이다.
지금은 물과 먹이가 구분되어 전처럼 악취가 날 소지가 적다. 통풍이 잘 되는 축사에 톱밥, 왕겨, 깔짚을 제때 갈아주면 바닥이 질척거리지도 않는다. 특히 급수방식이 중요한 데 수도직결식 급수기를 달아주면 바닥에 물을 흘리지 않는다. 요즘은 간편하게 먹이통과 일체형으로 나온 것들도 많이 있다. 톱밥이나 깔짚을 까는 발효식 축사가 아닐 경우 바닥에 기울기를 주면 오수가 고이지 않는다. 우리안의 적정온도는 18~22℃로 일교차가 10℃이상일 때 호흡기 질병이 생기기 쉽다.
초보자에게는 큰 돼지보다 새끼 한 두마리가 적당하다.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큰 돼지사육은 사육관리가 쉽지 않다. 꼬리와 윗턱을 잡으면 무조건 뒤쪽으로 진행하는 후퇴성을 모르면 다칠 우려도 있다. 상대적으로 다루기 어려운 수컷보다는 암컷으로 시작해 새끼때부터 낯을 익혀가며 키운다. 돼지 구입은 인근 번식농가에서 어렵지 않게 할 수 있고 데려온 후에는 예방 접종을 잊지 않는다. 젖을 떼는 시기는 분만후 3~4주로 새끼의 체중은 약 5~6kg정도다. 새끼 돼지의 안정을 위해 사료는 가급적 전에 먹이던 사료를 계속 먹이고 수송후 6시간쯤 지나 사료를 준다.
돼지는 잡식성으로 사람이 먹는 것들을 가리지 않고 먹는다. 음식물 찌꺼기, 과일, 채소, 열매, 감자, 고구마는 물론 소처럼 풀도 먹는다. 풀을 얼마나 잘 먹는지 쇠꼴을 베어주듯 주기적으로 주어도 마다하는 법이 없다. 고기맛도 이런 것들을 거두어 먹인 게 사료로 키운 돼지보다 뛰어나다고 한다. 전문 돼지사육 농가의 경우 소비자의 요구에 맞춰 110kg대에 출하하고 있으나 일반 농가가 이 기준에 맞출 필요는 없다. 사육두수가 늘어나면 사료비도 줄일겸 가까운 식당이나 학교에서 깨끗하게 분리된 잔반(殘飯)을 모으는 일도 고려할만 하다.
만약 고기용이 아닌 번식용으로 기르고 싶으면 주변에서 종부용 수퇘지를 알아봐야 한다. 여의치 않을 경우 인공수정도 가능하다. 어미 돼지의 수명을 늘리고 건강한 새끼를 낳게 하는 방법중 하나는 마음껏 뒹굴 운동장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 점은 돼지나 닭이나 똑 같다. 땅파기 선수인 돼지는 흙속의 미량원소를 먹고 황토 목욕을 하며 땅바닥을 엉망으로 만들지만 어미 돼지의 수명이 획기적으로 늘어난다고 한다. 아무래도 가축들에게 최고의 복지는 운동장인 것 같다.
돼지가 커감에 따라 점검해야 할 것은 축사시설의 견고성 여부다. 저돌적(猪突的)이란 말이 있듯 부실한 축사는 돼지의 몸무게를 감당해내지 못한다. 한 번은 이십년이 족히 넘은 시멘트 블록벽이 돼지의 박치기 공격으로 한 번에 넘어갔다. 우리를 뛰쳐나온 돼지와 허들 경기(?)를 벌이고 싶지 않다면 운동장의 기둥용 파이프와 철망도 흔들리는지 이따금 살펴볼 일이다.
농기계, 애물단지인가 보물단지인가
일본의 농촌을 여행하며 발견한 우리 농촌과의 뚜렷한 차이는 농가 주변이 깔끔하게 정돈되고 밖에서 눈비를 맞는 농기계를 찾아보기 어려운 점이었다. 일부러 보관 창고 밖으로 나온 농기계를 찾으려 주의를 기울여도 도무지 눈에 띄지 않아서 신기한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우리 농촌의 모습은 어떤가? 고급 승용차보다 비싼 대형 농기계를 집옆에 세워두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농기계 최대의 적이 눈비임을 감안할 때, 차량에 비해 작동 부위가 노출된 농기계의 수명이 짧아질 것은 당연한 결과다. 때로 농가부채의 주범으로 꼽히는 농기계지만 없어서는 안 될 농민의 손발이랄 수 있는 농기계의 체계적인 구입과 이용, 관리 노하우를 알아보기로 하자.
기본 농기계는 갖추어야 편안하다
농사를 지으려면 농기계가 필요한 것은 불문가지. 농기계 작업을 모두 위탁할 수는 있지만 만만찮은 비용이 들고 그만큼 내게 돌아오는 소득은 적어진다. 그래서 농사를 짓는데 필요한 필수 농기계는 갖추는 게 바람직하다. 그러면 필수 농기계란 어떤 것들일까? 농민마다 판단이 다르겠지만 보유 비율로 봤을 때 제일 기본이 되는 농기계는 경운기와 예취기다.
농우(農牛)를 대신한 농민의 벗-경운기
경운기는 이름 그대로 논밭을 갈고, 로우터리 작업에 퇴비나 벼 같은 무거운 짐을 실어나르는 데 안성맞춤이다. 또한 농약이나 물을 줄 때, 양수(펌핑), 탈곡, 뿌리작물을 캘 때 등 쓰이지 않는 곳이 없는 만능 기계다. 사륜구동에 차체도 튼튼한 편이라 물논이고 밭이고 산이고 못가는 곳이 없지만 많이 보급된 만큼 사고도 잦다. 농기계 사고의 절반 이상이 경운기 사고일 정도로 잘못 다루면 대단히 위험하다. 특히 무거운 짐을 싣고 언덕길을 내려 갈 때 평상시와는 반대로 조작해야 하는 기계의 특성을 모르면 곧바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중고 경운기를 구입할 때는 반드시 벨트 커버의 유무를 확인한다. 시동을 켜둔 상태에서 커버
가 없으면 운전자나 아이들이 손가락을 다칠 확률이 높다. 또한 트레일러가 아닌 쟁기나 로우터
리를 단 상태에서 경사지를 내려올 때는 후진으로 조심스럽게 내려와야 한다. 연료 게이지가 없
으므로 수시로 유량을 점검하고, 디젤엔진의 특성상 연료(경유)가 떨어졌을 때의 조치방법을
익혀놓아야 응급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 겨울에는 부동액을 넣어두거나 냉각수를 배출시켜 엔진
동파를 예방한다.
부속 작업기는 로우터리와 쟁기이며 그밖에 퇴비 살포기, 전용 양수기, 땅속 작물 수확기 파쇄기,
콩탈곡기, 두둑 형성기 등을 달 수 있고 다양한 응용기계의 동력원으로도 사용된다. 시동은 키
(key)와 크랭크 핸들을 이용한 시동 모두 가능하나 핸들 이용시는 역회전에 의한 부상에 주의해
야 한다.
작지만 못하는 것이 없는 해결사-관리기
관리기는 경운기와는 달리 휘발유를 사용하며 부속 작업기가 30여종에 이를 만큼 다양한 쓰임새를 자랑한다. 경운기와 같이 운반, 갈기, 로우터리외에 두둑 만들기, 비닐피복, 북주기, 예취, 골타기가 가능하고 논보다는 밭농사에 활용되고 있다. 주요 작업중 로터리, 두둑 만들기, 비닐 피복의 작업 빈도가 높다. 몸집이 작아 소형 비닐 하우스 작업에 적합하며 전용 트레일러를 달아 운반용으로도 전환이 가능하다.
중고 구입시에는 엔진음의 정숙성을 살피고 부속 작업기를 꼼꼼히 챙긴다. 작업전에 자주 엔진오일의 양을 살펴 오일 부족으로 인한 엔진 고장에 주의한다. 엔진오일의 순환이 압송(押送) 방식이 아니어서 오일량에 따라 윤활작용이 좌우되므로 주기적으로 살피는 것이 안전하다. 주클러치외에 비상 브레이크 따로 달려있다. 평소에 숙지하였다가 비상시에 활용하면 사고방지에 효과가 크다.
농민을 괴롭히는 잡초는 가라-예취기
휴대용 예취기는 관리기와 같이 휘발유를 동력원으로 칼날을 돌려 풀을 깎는 기계로 2행정(cycle)과 4행정용으로 구분된다. 2행정용은 휘발유에 엔진오일을 20:1~25:1의 비율로 희석해 쓰고, 4행정은 자동차와 같이 엔진오일이 순환하는 구조다. 엔진의 특성상 2행정용은 cc당 출력은 강하나 오일이 연료와 함께 연소되어 배기가스가 독하다. 그에 반해 4행정용은 민감한 편이어서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
예취기는 날카로운 칼날이 있어 안전장구를 갖추고 바른 자세로 시동을 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기본 안전장구는 안면보호대(혹은 보안경)과 무릎보호대, 안전화이며 여름에도 긴옷을 입어야 한다.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안전 시동 순서는 아래와 같다.
❒예취기용 안전장구와 시동순서(사진 혹은 그림)
① 연료콕을 열고 쵸크레버를 완전히 밀어 올린 후 스로틀 레버를 1/3 정도 연다
② 하단 프레임에 발을 올린 다음 왼손으로 작업봉을 잡고 오른손으로 시동 손잡이를 당긴다
③ 왼손으로 작업봉을 잡은 채 어깨끈을 오른쪽 어깨에 건다
④ 작업봉을 오른손으로 바꾸어 잡고 나머지 어깨끈을 왼쪽 어깨에 건다
❒경고!
지면이 고르지 않은 곳에서 작업봉을 땅에 놓고 시동을 걸면 땅에 닿은 칼날 부위가 튀어 오르는 경우가 있다. 반드시 왼손으로 봉을 잡고 로프를 당기는 것이 안전하다. 또한 회전부위에 끈 따위가 감길 때는 시동을 끄고 풀어내야 한다. 스로틀만 줄이고 풀다가는 손가락 절단 등 중상을 입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