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5일 화요일
사랑하는 6학년 2반 친구들에게!
여러분과 선생님이 한 반이 된지 두 달이 넘어 세 달이 다 되어 갑니다. 4학년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여러분을 처음 봤을 때 키도 크고, 덩치도 커서 굉장히 놀랐습니다. 이야기를 나눠보면 여전히 놀고 싶고, 장난치고 싶고, 잡담 나누고 싶은 어린이의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얼마 전 어린이날을 앞두고 마지막 ‘어린이 날’이라며 5월 5일을 악착같이 손꼽아 기다리는 모습을 보며 여러분이 아직은 ‘아이’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지난 두 달여간 선생님과 좋았던 기억도 있지만 분명히 서운했던 기억도 많이 있을 겁니다. 수업 준비를 못해서 선생님께 혼난 일, 수업 시간에 잡담을 하다 꾸중을 들은 일, 선생님이 자꾸 체육 수업을 빼 먹어 짜증이 난 일까지 선생님께 섭섭함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세심하게 하나하나 챙겨주지 못하는 점 항상 미안합니다.
선생님 입장에서는 여러분들에게 원성을 듣더라도 선생님의 도리를 다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자신의 이기심 때문에 친구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거나, 귀찮고 어려운 일이 하기 싫어서 공동체 정신을 깨는 일을 선생님이 잠자코 바라볼 수는 없었습니다. 선생님을 이해해주면 고맙겠습니다. 선생님께 혼이 나고 토라져 있는 여러분에게 선생님도 눈치를 살피며 화해할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는 비밀을 이제야 말합니다.
선생님도 선생님(대현이)의 초등학교 6학년 학창시절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돌이켜 보면 대현이는 담임선생님이 싫어하는 학생이었을 것 같습니다. 자꾸 떠들고, 선생님 말씀 안 듣는 까불이였기 때문입니다. 한 번은 대현이가 교탁 앞 맨 앞자리에 앉아 있을 때 일입니다. 반 전체가 뭔가 잘못을 하여 담임선생님께 훈계를 듣고 있었습니다. 아주 무겁고 심각한 분위기여서 누구 하나 숨소리도 제대로 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눈치 없는 대현이가 선생님의 말꼬리를 잡고 우스갯소리를 하였습니다. 한 마디로 분위기 파악 못하고 설쳤던 겁니다.
그때는 출석부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학교 왔는지를 확인하고 기록하는 작은 책입니다. 그 출석부로 머리를 호되게 맞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담임선생님은 무척 화가 났습니다.
선생님이 되고 보니 그때 그 선생님께 정말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왜 그렇게 나댔을까, 왜 진지할 때와 즐거워야 할 때를 구분하지 못 했을까, 뭘 해도 말을 안 듣는 대현이가 얼마나 미웠을까, 뭐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제야 그때 선생님을 좀 이해하게 된 겁니다.
여러분은 찾아뵙고, 감사의 말과 편지를 전할 선생님이 있나요? 학창시절 이맘때가 되면 부모님이 여쭤보셨습니다.
“스승의 날에 찾아 뵐 선생님이 있니?”
“아니요! 다 별로였어요. 다들 나를 안 예뻐했어요.”
난 재수 없게 거지같은 선생님들만 만나서 존경할 스승이 없다고 속으로 말했습니다. 어릴 때 TV에서 연예인이 생각나는 사람을 찾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을 찾았습니다. 저는 그것을 보며 저 선생님은 분명히 특정 학생만 예뻐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고는 TV를 다른 곳으로 돌려 버렸습니다. 공부도 썩 잘하지 못했고, 선생님들 말씀에 따박따박 말대꾸나 하고, 선생님을 잘 따르지도 않는 학생을 사랑하는 선생님이 없던 것은 당연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스승이라는 단어 자체를 싫어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이 되고나서는 스승이라는 존재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스승이 내게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스승은 선물이 아니라 내가 가꾸어 가는 나무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기억나는 제자가 한 명 있습니다. 지금은 고등학교 2학년이니 여러분 보다 5살 더 많습니다. 처음 6학년 담임을 맡았을 때 그 친구는 우리 학교 짱이었습니다. 곱게 생긴 외모에 검은 뿔테를 쓰고 사시사철 반바지를 입고 다녔습니다. 이 친구와의 사연은 날을 새도 다 말하지 못할 만큼 많습니다. 담배 피다 걸린 일, 편의점에서 마이쮸를 훔치다 경찰이 연락 온 일, 후배를 괴롭혀 학폭이 열릴 뻔 한 일까지 온갖 문제는 다 일으키는 녀석이었습니다.
반대로 좋았던 추억도 있습니다. 함께 축구 대회에 나가 말도 안 되는 슛으로 골을 넣고 껴안은 일, 함께 야구장에 가서 치킨을 먹은 일, 시답지 않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친구처럼 낄낄대던 일까지 즐거운 기억도 많이 있습니다. 이 친구가 스승의 날이면 꼭 찾아와서 안부를 묻고 자신의 소식을 전합니다. 1년 내내 연락 한 번 없다가 딱 한 번 연락을 합니다. 바로 스승의 날입니다.
제가 이 친구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이제 아무것도 없습니다. 인자한 표정으로 찾아와줘서 고맙다고 말하며, 항상 ‘참 되거라 바르거라’라고 잔소리를 할 뿐입니다. 돌아가는 제자를 보면 아련한 마음이 들며 지금 애들에게 더 잘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정도입니다. 선생님은 아직도 찾아 뵐 스승이 딱히 없습니다. 반면에 이 친구는 매년 나를 찾아오며 스승의 날을 자신만의 기념일로 잘 가꾸어 가고 있었습니다. 제자가 부러웠습니다.
선생님이은 별로 훌륭하지도 않으며, 이 친구를 유독 사랑했던 것도 아닙니다. 혼을 더 냈지, 칭찬을 더 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이 친구는 부족한 나를 스승이라고 불러줍니다. 자신의 인생에 스승이라는 나무를 한 그루 키워나가고 있는 겁니다. 앞으로 대학을 가고, 취업을 하면서 어른이 될 때까지 자신이 힘이 들 때, 마음 둘 곳이 없을 때 나를 떠올릴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스승의 날입니다. 앞으로 공부를 하다가 마음이 울쩍 할 때, 부모님에게도 친구에게도 털어 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있을 때, 속 시원하게 말할 수 있는 스승을 찾아봅시다. 여러분 모두가 마음 한 켠에 스승이라는 나무를 심었으면 좋겠습니다. 유치원 선생님, 학원 선생님, 태권도 관장님, 학습지 선생님까지 누구든 그 나무가 될 수 있습니다. 그 나무에게 전화 한 통, 카톡 하나 보내며 나무를 길러보기를 바랍니다.
첫댓글 스승님의 소중함을 스승님이 되어서야 실감하는 게 인간사인가 봅니다. 스승의 날, 누군가의 제자였으면서 누군가의 스승인 입장에서 글을 써내려간 대현님의 마음이 오롯이 느껴집니다. 대현님은 스승과 제자의 경계인일지도 모릅니다. 양쪽을 다 바라볼 수 있는 지점에 서 있으니까요. 이 글엔 3명의 제자가 등장합니다. 사랑하는 6학년 2반 친구들, 어린 날의 대현,기억나는 제자. 세 사람에 대한 다양한 감정이 씨줄과 날줄로 엮여 스승과 제자의 관계, 그 의미를 밝혀줍니다. 그리고 스승은 제자 자신이 키우는 나무라는 깨우침을 들려줍니다.
이 글을 이렇게 고쳐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세 명의 제자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6학년 2반 친구들, 어린 날의 대현, 기억나는 제자에게 각각 한 통의 편지를 보내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더 깊은 마음이 표현될 듯합니다. 세 통의 다른 편지가 따로 또 같이 어울려내는 메시지는 더 웅숭깊을 듯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