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도해수욕장은
1913년 부산지역에서는 처음으로 개장한 해수욕장이다.
얼마전까지 '우리나라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었었으나
1906년 조성된 인천 만석동 '묘도해수욕장'이 확인되면서
그 수식어가 바뀌게 되었다.
1964년, 420m 길이 해상 케이블카와 구름다리를 설치하는 등
송도유원지는 최고의 관광지로 각광을 받기도 했었다.
앞바다 오염과 태풍, 백사장 면적 감소 등으로
점차 외면당하며 한동안 침체기를 겪는다.
2000년 부터 대대적인 연안정비작업을 하며
해안과 떨어진 해면 물 속과 물 위에 구조물을 설치하는 등 노력끝에
다시 희고 고운 백사장이 조성되며 활기를 찾고있다.
지역침체에 따른적자와 노후화 등으로
1988년 운영을 중단하였던 케이블카는
태풍으로 2002년 철거당한다.
민간기업의 투자로 2016년 복원사업이 진행되어
1.62km 바다위를 투명유리가 바닥에 깔린 캐빈을 타고
이동하는 짜릿한 경험을 즐길수 있다.
물론 일반캐빈도 있어 누구나 즐길수 있으며
공사 착공 1년 2개월 만인 오는 21일 정식 개장 예정이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일행에게 양해를 구하고 길을 찾는다.
바로 앞으로 이어지는 '갈맷길'을 따라
부산의 숨은 보물이라는 '암남공원'으로 향한다.
나무에 묶인 빨강, 파랑 리본이
'갈맷길'에 제대로 들어섰슴을 알려준다.
송도해상케이블카가 시운전 중
바다 위 하늘에 선과 점으로 걸려있다.
앞바다에 배들이 정박하고 있다.
해안을 따라 연결된 갈맷길이
나무계단과 목책으로 이어지며 강하게 유혹한다.
걸음을 재촉하고 싶지만
돌아가야할 시간은 더 강한 힘으로 욕망을 붙잡는다.
얼마가지 못해 산 위로 오르는 갈래길이 나타난다.
한껏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산을 통과하는 도로에 올라
출발했던 해안에서 반대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바로 송정해수욕장 방향이다.
해수욕장으로 향하는 방파제로 올라서니
바깥에 둘러쌓은 테트라포트에 위인들을 그려놓은 그림이 볼만하다.
길게 해수욕장을 사진으로 담아보았다.
해수욕장 고운 모래가 하얗게 펼쳐져있다.
성급한 사람들은 최대한 노출시켜
햇볕에 몸을 맡기고 있다.
부산 출신으로 심금을 울리는 노래를 부르며
한 시절을 주름잡았던 '현인광장'을 조성해 놓았다.
2005년, 송도바다축제의 하나로 시작된 '현인가요제'는
지금까지도 성황리에 개최되며
매년 8월 또 다른 볼거리로 자리잡았다.
왼쪽으로 송도해수욕장 간판이다.
왔던 길을 돌아다 본다.
긴 백사장이 펼쳐져있고 아파트가 늘어서 있다
또 다른 명물인 '송도구름산책로', 일명 스카이워크다.
바다위에 돌아 거북섬과 이어져
이전에 있던 구름다리를 보수하여 연결해 놓았다.
그 길이가 365미터라 '행운의 자리'라는 동판을 만들어
바닥에 붙여놓았다.
구름다리산책로 바닥 중간 부분에
밑이 보이도록 쇠로 만든 그레이팅을 설치해
그 위를 걷는 사람들에게 짜릿함을 느끼게 한다.
일부 구간에는 투명 강화유리를 설치해 놓았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피해 걷는것을 보면
나처럼 일부러 걷는 사람들에게는 재미있다.
송도해수욕장 바로 앞 해상에
'무지개를 몰고 온 돌고래'를 형상화한 조형물인
고래조형등대를 설치해 놓았다.
'송도'라는 지명을 얻을 정도로 소나무가 자생하던 거북섬이
지금은 민둥섬이 되어버렸다.
그 거북섬에는 효심깊은 어부와
바다를 지키던 용왕의 딸 사이 안타까운 사랑이 전설로 남아있다.
'효성이 지극한 어부가 어느 날 바다에 나갔다가
풍랑을 만나 근처 용굴에 피신을 하게 되었다.
그 곳에서 상처를 입고 쓰러져 있는 여인을 발견하고
온갖 약초를 구해 지극정성으로 치료해주었다.
그 여인은 어부들에게 악행을 일삼는
바다괴물과 싸우던 용왕의 딸이었다.
공주는 생명의 은인인 어부와 사랑에 빠져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어부와 혼인하고 싶었던 공주는
온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 용굴에서 정성을 다해 천일기도를 했다.
둘의 사랑을 시기한 바다괴물이 기도를 방해하자
어부는 마을사람들과 바다로 나가 괴물을 물리치지만
깊은 상처를 입고 죽고 만다.
공주 또한 온전한 사람이 되지 못하고 반인반용이 되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용왕은 어부를 거북바위로 만들고
인용과 이곳에서 영원히 함께 있게 하였다.
또한 거북섬을 찾는 사람들에게 장수복과 재물복을 주고
사랑하는 남녀가 함께오면 그 사랑을 이루게 해주었다.'
구름산책로와 다리사이 볼품없는 섬이 거북섬이다.
어부와 반인반용(인용)의 형상을 세워놓아
안타까운 전설과 섬을 찾은 사람들에게
이야깃거리와 장수와 재물복을 나누어주고 있다.
인용이 아무리봐도 인어 형상이다.
모터보트가 바다위에
찰라의 궤적을 만들고 있다.
남항대교가 바다위로 높이 걸쳐있다
본격적인 운행을 앞둔 케이블카가
인근 주민과 노인들을 태우고 시범운행하고 있다.
구름산책로 끝 전망대다.
제자리에서 출발했다면
저 곳까지 365미터를 걸은 셈이다.
구름산책로를 지나며
일행에게 따로 복귀한다는 연락을 하고
남항대교 보도로 올라서는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길게 이어진 다리 끝에
영도 봉래산이 늘어져있다.
다리 중간에 서서
남항쪽을 파노라마로 담았다.
대교를 내려서는 엘리베이터가
터널 앞에 수직으로 서있다.
남항방파제가 시작되는 곳에서
걸어온 길을 돌아본다.
곧게 뻗은 길 위로 남항대교와 봉래산이 보인다.
내일 다시 찾을 예정인 갈맷길 표지가 반갑다.
남항 내안 오른쪽 유리건물이
선박에 필요한 소모품, 면세품, 기자재 등 물품을 공급하는
'국제선용품유통센터'이다.
영도다리 조금 못미친 곳에
'굳세어라 금순아' 노래비와 현인의 동상이 있다.
일제강점기, 부산항과 배후 도시 건설을 위하여
영도를 연결하는 국내 최초의 연륙, 도개교를 1934년 완공하여 개통한다.
일부구간의 상판을 기계식으로 들어올려
큰 기선도 드나들 수 있는 도개장치를 설치하였다.
당시 다리이름을 '부산대교'로 명명하였으나
시민들은 '영도다리'라고 불렀다.
영도의 인구증가와 통행량이 급증하며
1966년 도개가 중단된다.
1982년 개항 100주년을 맞아 부산대교가 준공되면서
명칭이 '영도대교'로 바뀌게 된다.
2003년에는 안전 진단 검사에서 철거 논란을 겪는 등
우여곡절을 겪으며 2013년 영도대교가 복원 개통된다.
당시에는 매일 한 차례씩 12시에 도개하였으나
2015년 9월 부터 낮 2시로 변경된다.
영도다리에서 맞는 2시는 특별하다.
아무리 바쁜 사람도, 노선버스도
다른 곳으로 돌아가지 않는 한 15분 가량 홀린듯 붙들리게 된다.
그런 이색적인 풍경까지도
나에겐 훌륭한 볼거리였다.
다리 중간에 차량통행을 제한하는 장치가 내려오고
교량에 설치된 스피커로 '굳세어라 금순아'가 흘러나오며
서서히 다리 상판부가 들어올려진다.
상판부가 전부 올라가고
기다리던 기선의 뱃고동소리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면
다시 천천히 내려와 육지와 영도, 두 섬을 잇는다.
차단막 뒤로 차량과 오토바이가 늘어서 있고
보도에서, 차량에서 내려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다.
다리밑 해안도로에도 구경꾼들이 제법 많다.
한국전쟁 발발 당시 영도다리의 유명세가 어떠했는지
팔도 각지에서 떠넌 피난민들의 재회장소가 영도다리였다.
'너는 영도다리에서 주워왔다.'
어린 시절 어른들께 한 번 쯤은 들어보았던 말이다.
우리 세대의 또 다른 어머니,
영도다리를 오십여 년이 지나서야 만났다.
첫댓글 좋은글과 사진 감사합니다,
상세한 설명과 이해를 돕는 사진
정성이 듬뿍 들어있어 가만 앉아 부산투어 하기에 송구한 마음마저 듭니다.
영도, 하니까 다리와 함께 한 정치인이 떠 올라 착잡하네요.^^
모두 가보고 싶은 곳
몇군데 밖에 못가봤네요.
부산에서 살고 있는 나보다도 설명이 더 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