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모던 재즈 이전
(pre-modern jazz)
3 초기 제즈(Early Jazz)
4 스윙(Swing
5 듀크 엘링튼(Duke Ellington)
6 카운트베이시 악단(The Count Basie Bands)
본장부터는 재즈의 스타일 그 자체를 다루려고 한다. 우선 캄보 재즈의 탄생을
촉진하고 그 기원이 된 음악에 대해서 서술한다. 루이 암스트롱 . 시드니 베세
(SidneyBechet)-빅스 바이더벡 거기에 뉴올리언스, 시카고, 뉴욕 등에서 재즈 초
창기 무렵의 사람들로 우리들이 레코드를 통해 알고 있는 막강한 솔로 주자들은
전부 소개하고 있다. 스윙 시대에 관해서는 각 빅 밴드 및 스윙 시대의 거장 듀크
엘링튼과 카운트 베이시에 대해 세 장으로 나누어 이야기한다. 콜맨 호킨스나 레
스터 영 그리고 아트 테이텀도 언급했다. 그 외 두드러진 활약을 했던 솔로 주자나
밴드 리더의 업적에 대해서도 간단히 소개했다. 엘링튼의 장에서는 작품과 즉흥
연주가 그의 밴드에서 어떻게 어우러지는지 밝히도록 노력했다. 베이시의 장에서
는 그의 밴드의 리듬 섹션이 어떻게 하여 모던 재즈의 스윙감 형성을 육성했는지
에 관해 이야긴한다. 또 베이시가 하는 콤핑(comping)이라는 용어에 대한 설명과
모던 재즈의 임프로비제이션에 다양한 길을 개척했던 베이시 밴드의 솔로 주자들,
그 중에서도 레스터 영에 대해 자세히 다루고 있다.
3 초기 재즈 (Early Jazz)
1930년대 중기까지의 캄보 재즈
,흑인 재즈에 힘입은 바가 컸던 이들 뮤지션이 반드시 인종적
편견을 갖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시카고 출신 중에서 흑
인 스타일을 많이 체득했다고 일컬어졌던 어떤 사람은 매우 소
박한 인종적 편견을 주입받고 자랐지만 흑인에 대해 은혜를 느
끼고 있다는 것을 표명하였다 이것은 이례적인 일로서, 시카
고 뮤지션의 대부분은 백인 사회의 통념에 따르고 있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CharleS Edward Smith-
재즈는 수 세기에 걸쳐 형성되어 왔던 몇 가지 음악적 문화가 서서히 융합한 결
과로서 만들어진 음악이다. 그렇게 섞여 어우러진 것이 처음으로 재즈로 인정된
것은 20세기 초 무렵이었다. 그러나 그 음악은 1920년대 후반에서 30년대 초반까지
는 '재즈적인 의미'에서 스윙하는 음악은 아니었다. 세기가 바뀌는 시점헤서 뉴을 1
리언스는 항구였고 아프리카 노예, 유럽 사람, 세계 각지에서 온 선원들 등에 의해
여러 가지 잡다한 음악 문화가 들어와 있었다. 그리고 아프리카와 유럽의 음악이
서로 영향을 주면서 혼합되어 후에 재즈를 형성하는 이상적인 장소가 되었다. 재
즈는 수많은 음악 스타일의 복합체로서 시작되어 새로운 여러 가지 영향을 흡수하
면서 점차 변화해 갔다. 1940년대에는 20세기 클래식 음악, 1960년대에는 인도 음
악, 1970년대에는 록과 팝 뮤직으로부터 여러 가지 에센스를 받아 들였다. 토착 아
프리카 음악은 리듬적으로 초기 재즈보다도 더욱 복잡하다. 디지 길레스피나 찰리
파커에 의해 창시된 모던 재즈(Modern jazz)가 출현하기까지 아프리카 음악에 비
교될 만한 리듬의 복잡성이 재즈에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재즈에 관한 글을 쓰는 사람들은 때때로 재즈의 리듬과 임프로제이션은 아프리
카 음악에 뿌리를 둔 것이고, 재즈의 하모니는 유럽 음악에서 발전했다고 서술하
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인 상황은 훨씬 복잡하다. 모던 재즈 이전의 재즈는 리듬적
으로는 파플러 음악과 같은 것으로 아프리카 음악이 갖는 복잡함과는 거리가 있었
다. 재즈의 리듬이 전부 아프리카가 그 뿌리라고는 말할 수 없으며 재즈의 하모니
-초기 재으 뮤지션 (Early Jazz Musicians)
TNmpa
Buddy Bolden
Freddie KePpard
Joe'King"Olivar
Louis Arms(rong
Wingy MenOne
Red Niche)S
Bix Beiderbed e
Tommy Ladnier
Henry 'Rad"Allan
Joe Smith
Bubber MilaY
Charlie Teagardsn
Jabbo르mith
Nide LaRocCa
Paul Maras
George MitChell
Sidnay DePBris
Musasv Spanier
Phil NapoleOn
Wild Bill Devidson
utt CareY
Kid Ory
J.C.Hi를ginbotham
Miff Mole
Ja렬 TeagaIdan
Fred RobinSOn
Cha ie GreBn
Jimmy Her-ison
Charlie Inri8
Joe'TrideYSam' Nsnton
George Brunis
@II Rank
Tommy Do-say
Gleno Mil)e-
Wilbur DepBris
Eddie Edwards
Honors Dut-ay
Jelly RdlMort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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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s Wa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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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e Venu끓
Johnny Dodds
Sidney Bechet
Jimmie Noons
Fran Teschamacher
Benny GoodmBn
Atbert NichdaB
Barney B쑹ard
Omer Simeon
Atphor PM뗀
Mea Meurow
Jimmy Strong
글idney A odin
Damell Howerd
LBon Rappoto
Bwrter Baitey
Don Red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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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vd Towns
Cdemen Hawlrins
Jimmy Dorrr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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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mp Ev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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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rry Shiel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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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kie TNmbaUBT
Edmond H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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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ge Lew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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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s Foster
Weflman Breud
John Lindsay
Fate MsraMe
Jelfy Roll Morton
Wiftis 'Tha Lion"Sm존h
Fats Waller
Lil Hsnlin ArmstrOn글
Pete Johnson
Clarence WilliamS
Albert Ammons
Gripple CfarencaLoften
CawCow DavanPOrt
Elmer Schoaba
Pinetop Sm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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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k Signofel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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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mmy BI1
Henry Rsgas
초기 재즈 49
ouitrr. I)mio
LonrtirtJohnson
Johnny StCyr
ElmarSnow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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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dia Con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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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a JackLaine
Paul BarbBtin
tuay Sing-e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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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rew Hi-sire
ChaunceyMoreho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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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c Batton
RaveaudUC
Tony Sbsrb-
전체 또한 유럽이 그 기원이라고도 말할 수 없다. 임프로비제이션의 개념이 아프
리카 음악의 영향으로 만들어졌다거나, 반대로 유럽 음악의 흐름 위에서 만들어졌
다고 일방적으로 단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재즈가 탄생한 시기에 유럽 고전 음
악은 점차 즉흥 연주를 하지 않게 되었지만, 뉴올리언스 재즈가 처음 녹음되기 한
백 년쯤 이전에는 클래식 음악에서도 즉흥 연주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
다. 재즈의 녹음이 이루어지기 훨씬 전부터 재즈의 발전은 시작되고 있었기 때문
에, 어떠한 식으로 째즈가 탄생했는가를 누구도 명확하게 단언할 수 있는 근거를
갖지 못한다.
1917년 이전에는 재즈의 녹음이나 재즈에 관해 씌여진 것은 아주 조금밖에 없었
으며 어떻게 형태를 이루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자료도 찾을 수 없다. 가장 초창기
에 레코딩된 것과 1917년 이전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놓고
생각해 보아도 약간의 실마리나 정경 묘사풍의 막연한 증거 정도밖에 찾아낼 수
없는 실정이다. 재즈의 기원으로서 여러 가지 아프리카 음악, 유럽의 클래식 및 대
중 음악, 영국, 프랑스, 스페인, 아일랜드, 이탈리아 등 각국의 민요, 거리에서 물
건을 팔기 위해 떠드는 소리, 농촌이나 도시의 노동자가 노동의 아픔을 덜어 보기
위해 부르는 노래 등을 생각할 수 있다. 이 많은 음악이 블루스(Blues),랙타임
(rag time」, 행진곡, 파플러 음악과 마찬가지로 재즈의 형성에 공헌했다.
블루스는 원래 아프로 아메리칸 종교 음악과 노동가의 한 부분에서 파생한 노래
를 주로 한 음악이다. 그것은 재즈에 중대한 영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긴 생명을 갖는 대중 음악- 리듬 앤드 블루스(rhythm & blues),로큰롤(roC
and ro씬 등의 중요한 뿌리가 되고 있다. 블루스에 있어서 아프로 아메리칸의 가
창법은 정말로 중요한 요소이지만, 그것은 또 재즈의 관악기 연주자가 쓰는 매우
독특한 음의 인토네이션 변화의 기원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아프로 아메리
칸 가창법의 우수한 특징은 광범위하게 미치는 인토네이션과 풍부한 톤 컬러(음의
색채감)을 들 수 있다. 서아프리카의 가창법은 재즈의 블루 노트(Blue note)의 기
원이 될 가능성이 있다. 서아프리카의 노래는 7음계가 아니고 5음계인 경우가 많
기 때문에 그러한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결국 아프리카 출신의 아메리카 흑인들이
그러한 5음계의 음정을 7음계 음악에 도입한 것은 아닐까. 이것은 단순한 추측이
지만, 만약 여러분이 서부 및 중앙 아프리카의 노래를 담은 녹음을 듣게 되면 그
멜로디 경향이 재즈적인 의미에서의 블루스에 매우 가깝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랙타임은 처음에는 피아노용의 씌여진 음악으로서 등장했으므로 '재즈적인 의미
에서 스윙'하는 음악은 아니었다. 그러나 피아노에 의한 랙타임 음악은 초기 재즈
캄보 레코딩에 멜로디와 하모니를 제공했다. 스코트 조플린(Scott Joplin)의
(MpleLeilr Rag)이 그 좋은 예이다. 극도로 싱커페이션된 랙타임 피아노를 신중
히 들어 보면 초기 재즈의 리드미컬한 싱커페이션은 랙타임을 통해 얻어진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도 사실 많다. 랙타임은 아프리카와 유럽 양쪽의
전통에서 발생했다고 본다(랙타임의 싱커페이션은 폴리리드믹◎olyrhythmi핏한 아
프리카의 드러밍에 일부 뿌리박고 있다). 스코트 조플린이 연주한 (The
EnterteIn)는 영화 The Sting 의 백 그라운드 음악으로 사용되어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이 '세기의 전환'을 가져온 미리 씌여진 피아노 음악은 매우 많은 사람
들의 주목을 받았고 또 초기 재즈 캄보에 보다 일반적인 이야기의 실마리를 주었
다.
행진곡 - 테마 음악은 힘차고 규칙적인 비트와 작곡상의 형식적인 부분을 초기
재즈 캄보에 제공했기 때문에 많은 초기 재즈 작품이 행진곡과 매우 비슷하다. 예
를 들면 (The Chant), (Steamboat Stomp), (D eland Jazz Band One Step), (High
Society)등의 유명한 곡들이 있다. 또 행진곡은 초기 재즈 캄보의 악기 편성과 드
러밍에 적지 않게 영향을 주고 있다, 브라스 밴드는 재즈가 탄생할 무렵에 역사적
인 전환기의 뉴올리언스에서 커다란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루이 암스트롱 등 뒤
의 거장들을 포함한 초기 재즈 뮤지션이 가두 퍼레이드나 장례식 행진 때에 쓰여
진 밴드에서 활약했던 것은 너무나도 유명한 사실이다.
초기 재즈는 또 유럽의 댄스 음악과 매우 유사한 면을 많이 갖고 있었다. 쿼드릴
(Quardril) 이라는 댄스를 위해 만들어진 프랑스 음악에서 추출된 형식뿐만 아니
라 멜로디까지 초기 재즈에는 담겨 있다. 뉴을리언스의 음악 문화에 유럽 음악은
정말로 상당한 역할을 담당했으며, 이처럼 유럽 댄스 음악의 요소는 재즈의 발전
과정에 부드럽게 흡수되어 갔다,
재즈 임프로비제이션은 그 기본적인 형태를 파플러 음악에서 얻고 있다. 초기
재즈 뮤지션은 파플러 노래의 몇 절을 조금 '치장해서 고치는' 식으로 임프로비제
이션을 하기 시작했다. 그 '치장해서 고치기: '장식하여 바꾸기'가 결국 최종적으
로는 곡 그 자체보다도 더 귀중한 것이 되었다. 한 연주에 있어서 원곡(original
tune)의 분위기와 코드 진행만 남는 경우가 종종 있다. 현재 임프로비제이션이라
고 부르는 것을 초기 재즈 뮤지션들은 (messing, around,embellishlng,,jaSING,
jazzing UP)'등으로 불렀다. 재즈는 뉴올리언스에서 큰 발전을 이루었지만 그 뉴
올리언스의 재즈 뮤지션이 시카고나 뉴욕에 와서야 겨우 레코딩이 시작되었다. 때
로는 그 음악의 창시자들이 레코딩하는 적도 있지만 많은 경우 녹음하는 지역에
먼저 도착한 사람이 레코딩을 했으며, 물론 그 사람들은 창시자가 아니다.
최초로 재즈를 레코딩했다고 일반적으로 인식되어 있는 것은 트럼펫 주자 닉 라
로카(Nick LaRocca)가 이끄는 오리지널 딕시랜드 재즈 밴드(oDJB)라는 백인 밴
드였다. 그들은 (Dweland One Step), (LlveIy Stable Blues), (Os◎ch WallS등의
곡을 1917년에 레코딩했다. 오리지널 딕시랜드 재즈 밴드는 그다지 임프로비제이
션은 많이 하지 않았고 대부분이 전에 연습했던 것처럼 들린다. oDJB가 나이트
클럽에서 연주할 때는 스튜디오에서의 녹음과는 달리 상당 부분에 임프로비제이션
을 했던 것 같다. 그것은 다분히 이런 의도에서 나온 것은 아닐까. 즉 레코딩된 음
은 오랫동안 몇 번이나 되풀이하여 들을 것이라는 의식이 앞서서 그것을 위해 뮤
지션은 미리 주의 깊게 준비한 것만을 녹음하겠다는 ,,,,,,
조 '킹' 올리버(Joe'King' Oliver 1885--1938)-뉴올리언스의 재즈에-
가장 유력한 밴드는 트럼펫 주자 조 '킹' 올리버가 이끌던 흑인 밴드였다. 그는 뉴
올리언스의 여러 밴드에서 활동하다가 1918년 시카고로 옮겨 와 거기의 몇 개 밴드
에서 활동한 뒤 자신의 밴드를 갖게 되었다. 그의 크리을 재즈 밴드(Creole Jazz
Band)는 뉴올리언스의 올스타(all-star)를 모아 놓은 밴드로 당시 최고의 흑인 연주
인들을 갖고 있었다. 재즈 뮤지션의 반 수 이상이 흑인이고 재즈에 강력한 혁신-
이룩한 사람들의 대부분이 흑인이다. 그렇다고 백인에는 강력한 연주인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코넷의 빅스 바이더벡, 트롬본의 미프 몰(Miff Mole)-잭 티가든
(Jack Teagarden)-카이 윈딩(Kai Winding),피아노의 알 혜이그(A1 Haig)-조-
쉬어링(George Shearing),클라리넷의 베니 굿맨 -아티 쇼(Ar e Shaw)버디 디프
랑코(Buddy DeFranco)i테너 색소폰의 스탄 겟츠는 백인이다. 그러나 진실로 혁
신적이고후세 재즈에 영향을주었던 백인 플레이어는몇 명 안되며 피아노의 레
니 트리스타노와 빌 에반스, 알토 색소폰의 리 코니츠(Lee Konilz),베이스의 스코
트 라파로(Scott LaFaro)등을 꼽을 수 있다.
1920년대에 뉴올리언스의 흑인 거장 뮤지션이 레코딩을 했던 장소는 대개 시카
고였다. 보통 뉴올리언스 재즈로서 알려져 있는 것은 1923년부터 1930년대 초에 시
카고에서 레코딩되었던 것으로1900년부터 1920년 사이에 뉴올리언스에서 연주되
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 시기에 레코딩된 것은 없기 때문에 실제로 듣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들 뮤지션은 뉴올리언스에서 태어나 뉴올리언스에서 배우고 훈련을
쌓았다, 그러나 시카고에 와서 레코딩을 할 때는 이미 젊었을 때와는 다른 연주,
즉 뉴을리언스에서 했던 것과는 틀린 연주를 했을 것이다. 초기 레코드나 인터뷰
의 기록 등에서 보면 최초의 재즈 형태는 전체 멤버가 일제히 집단으로 임프로비
제이션(eOIle코veimplov프at쏘짖을 한다는 점에 가장 중점을 두고 있었다. 이들 초
기 밴드에서는 모든 플레이어가 다른 플레이어를 보완하는 듯한 프레이즈를 동시
에 만들어 내기 위해 최대의 노력을 기울였다.
특별한 악기가 리드를 하는 일이 없도록 연주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많은 재즈
애호가에 있어서 초기의 재즈(딕시랜드 재즈라고 불리운다)의 최대의 매력은, 여
러 대의 관악기의 멜로디 라인이 다른 멜로디 라인을 방해하지 않고 동시에 활기
가 넘쳐 흐르는 연주를 하는 것에 있지 알을까. 이 상호 보완적인 임프로비제이션
기법은 1920년대 이전의 청중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후에는 점차 각
역할의 분담이 이루어져 클라리넷이 -트럼펫의 리드에 대하여 'multi-noted고gutes
라고 하는 많은 음을 사용하는 방법으로 '장식꾸미기 -를 한다. 트롬본은 그것보다
도 단순하게 코드를 잘 알 수 있도록 저음부의 하모니와 저음의 움직임을 만들고
있다.
시카고의 흑인 뮤지션(대부분 뉴올리언스에서 흘러 들어온 플레이어)은 집단으
로 임프로비제이션에 접근하는 방법보다 집단 연주에 솔로를 내세우는 스타일을
좋아하는 경향을 나타냈다. 솔로를 드라마틱하게 임프로바이즈하는 경우에는 다른
플레이어의 프레이즈와 잘 융합하는 집단 즉흥 연주와는 감각이 틀린 기교를 필요
로 했다. 집단 즉흥 연주에서 들을 수 있는 섬세하고 균형 잡힌 인터플레이는 초기
재즈의 기본적인 성격을 형성하고 있었지만 시카고 시대에 있어서 뉴올리언스 플
레이어들은 어느 정도 그 성격을 잃어 갔다. 후에 딕시랜드를 연주하기 시작한 뮤
지션들 은 집단적인 즉흥 연주를 성공시키는 데 이 특수한 기법을 다시 부활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고, 그것을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어야 했다.
젤리 롤 모튼(JeIly Roll Morton 1890--1941)-초기의 재즈에 있어서 또
한 사람의 거장은 젤리 롤 모튼이다. 그는 뉴올리언스에서 피아니스트로 활약하고
있었지만 후에 시카고로 옮겨 와 모튼즈 레드 핫 페퍼즈[MoIton'sRed보ot Pe틸
Hilaire)(ds).키드오리(tb)-조지 미첼(Georg pers,앤드류 힐레어(Andrew
Mitchell)(tp).존 린제이(John Lindsay)(b)-쟈니 센시어(Johnny St Cyr)(bjo)'오
겔리 롤 모튼(p)l라는 캄보를 만들고 일련의 레코딩을 했다.
모튼이 만든 레코드는 정밀하게 편집되고 섬세하게 다듬어져 있다는 표현이 지
나치지 않을 정도로 잘 만들어졌다. 그는 초기 뉴올리언스 스타일의 가장 지적인
작 . 편곡가이다((Wolverile Blues), (Milenburg Joys), (Wild Man Blues)). 그의
대표곡의 하나 (King Porter Stomp)는 스윙 시대가 되어도 플레처 핸더슨(Fletcher
Hendelson)이나 베니 굿맨의 빅 밴드 등이 잘 연주했던 것으로 매우 유명한 곡이
다. 킹 올리버나 루이 암스트롱의 레코딩에서의 멤버 중 몇 명은 젤리 를 모튼의
멤버였다. 트롬본의 키드 오리, 클라리넷의 쟈니 도즈, 드러머 베이비 도즈
(Warren'Baby' Dodds),거기에 밴조와 기타의 쟈니 센시어 등이 그렇다. 모튼이
리더인 시대에는 이들 플레이어는 킹 올리버나 다른 리더의 시대와는 다른 음을
내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 모튼의 작품은 단순한 편곡과 많은 임프로비제이션으로
연주되는 것이 아니라 면밀하게 작곡된 것이었다. 트럼펫 주자인 조지 미첼도 모
튼의 레코딩에서 지적인 솔로를 펼쳐 보인다. 미첼은 초기 트럼펫 주자 가운데 아
주 뛰어난 트럼펫 주자의 한 사람으로 1919년 켄터키의 루이빌에서 시카고로 왔다.
1926년에 레코딩된 모튼의 작곡 기법상 가장 모험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 (The
Chant>와 (Black Bottom Stomp)(rKing of New Orleans JazzJ)의 솔로 주자는 조지
미첼이었다.
시카고「Chicago)와 뉴올리언스(New Orleans)
1920년대의 시카고는 팔발한 재즈의 중심지였다. 시카고에서 그 당시 활동턴던
뮤지션들은 세 가지 분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뉴올리언스에서 온 흑인 뮤
지션으로 그들은 연주와 레코딩을 일정하게 계속하고 있었다. 또 하나는 똑같이
뉴올리언스에서 이주한 뮤지션이지만 뉴올리언스 리듬 킹즈(New Orleans Rhythm
Kilgsi FIiar's Society Orchestra)와 같은 백인 뮤지션들이다. 이 두 그룹은 제3의
그룹인 자기가 살고 있는 시카고 출신의 젊은 백인 뮤지션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영향을 받은 젊은 백인 뮤지션들은 시카고 스타일cChicago style),또는 시카고파
(Chicagoschoo꾸라고 불리우는 재즈를 발전시켰다. 그들의 음악은 뉴올리언스 스
타일을 기본으로 하고 있었지만 그 사운드는 릴랙스한 면에서 부족한 듯이 보였
다.
이들 뮤지션들(지미 맥파틀랜드(Jinmy McPartland), 프랭크 테슈메이커(Flank
Teschemacher), 버드 프리맨(Bud FIeeman)l은 같은 시카고의 오스틴 하이 스쿨
(AustinHIgh Schoo 에 다니고 있었으므로 오스틴 하이 갱싼ustm High Gang)이
뉴올리엔스와 시카고의 재즈 뮤지션
JQe 'Kins' Olhrer
Bun Jo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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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stin Hi9h Sch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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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불리웠으며, 실제는 웨인 하이 스쿨(Wayne High Schoo◎의 데이브 터프
(Dave TO-도 포함되어 있었다. 오스틴 하이 갱과 더불어 시카고의 백인 재즈
뮤지션에는 먹시 스패니어(M Spanier)-진 크루파(cene Krupa)-에디 콘든
(EddieCondon)-떼즈 메즈로우(Mezz M ,조 설리반(Joe Sullivan),그리
고 시카고 태생으로 1920년대에 뉴올리언스 리듬 킹즈를 이끌던 저명한 밴드 리더
이자 드러머인 벤 폴락(Ben Pollack)이 있다.
최종적으로 시카고의 뮤지션과 뉴을리언스에서 이주한 뮤지션은 뉴욕의 뮤지션
과 합류해 버린다. 1920년대 후반에는 번영을 누리던 시카고 재즈 신(seen)에 가새
하여 뉴욕에서도 강력한 재즈 신이 번성하며 발전해 갔다. 뉴욕의 초기 캄보 재즈
의 중심적인 플레이어로서는 트럼궷 주자인 레드 니콜스(Red Nichols),트롬본의
미프 몰, 그리고 바이올린의 조 베누티(Joe Venuti)가 있다. 1930년대에는 시카고
파 대부분이 뉴욕으로 이주하게 된다. 시카고 스타일의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다
음 재즈 시대, 즉 스윙 시대에 위세를 떨칠 존재로 성장해 갔다. 베니 굿맨과 진
크루파는 시카고에서 딕시랜드를 연주하면서 자신들의 음악 생활을 시작한다.
1930년대의 몇 몇 스윙 빅 밴드는 딕시랜드 스타일을 오케스트라화하려는 시도
를 했다. 가수 밥 크로스비(Bob Crosby)밴드도 그러한 빅 밴드였다. 그의 빅 밴
드는 때에 따라 작은 편성의 밥캣츠(Bobcats)라는 이름으로 연주를 하는데 그 맴버
중 몇 명은 벤 폴락 그룹에서 연주했었다(밥캣츠에는 베이스의 밥 해가트(Bob
Hapgart)와 트럼펫 주자인 양크 로우슨(Yank Lawson)이 있었는데, 1970년대에 테
너 색소폰에 버드프리맨, 트럼펫에 빌리 버터빌드(B기y Butterfield),그외 몇 사
람과 합쳐져 월드 그레이티스트 재즈 밴드(World's Greatest Jazz Band)를 결성했
다. 1970년대를 통해 이 그룹은 시카고 스타일의 베테랑들을 모은 가장 세련된 밴
드였다, 그들의 스타일은 밥캣츠와 오케스트라화된 딕시랜드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1933년부터 1935년 사이에는 스윙 시대의 유명 인물인 트롬본의 토미 도
시와, 클라리넷과 알토 색소폰의 지미 도시(Jinmy Dorsey)도 빅 밴드 형식의 딕시
랜드를 연주했다, 그들 도시 형제는 스윌 밴드의 리더로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원
래 스타일은 딕시랜드 스타일이었다.
초기의 재즈는 정확히 일반화된 명칭이 없이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운다. 재
즈 학자나 뮤지션에 있어서 어떤 명칭은 그 자체 명확한 의미를 갖고 있음에도 불
구하고 일반 사람에 있어서는 정말로 애매한 이야기일 뿐이며, 시카고 재즈나 뉴
올리언스 재즈라는 명칭이 그렇다. 그러나 랙타임, 것 버켓◎ t btltket),배럴하우
스간aT Iho se),딕시랜드, 클래식 재즈, 그리고 트래디셕널 재즈◎raditional
fat꾸 등은 그렇지 않파. 이러한 용어는 솔로 피아노 스타일이나 캄보 재즈에 적용
되고 백인, 흑인의 구별 없이 뉴올리엔스나 시카고의 베태랑들과 그리고 베태랑
은 아니지만 오래된 음악을 리바이벌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만든 음악을 나타내는
경향이 있다.뉴올리엔스는 여러가지의 형식을 갖고 뉴올리엔스나 시카고에 국한
하지않고 지리적으로도 여러 장소에 나타났다. 1920년대 중반까지 로스엔젤리스,
뉴욕, 샌프란시스코, 그리고 유럽의 여러 곳, 그 외 실로 많은 장소에서 한결같이
뉴올리엔스의 뮤지션이 연주하고 있었다. 악보나 음성적인 기록이 없으므로 뉴올
리엔스의 뮤지션이 도착하기 이전 거기에 재즈가 존재하고있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재즈가 뉴올리엔스만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발생했을지도 모른다는 가
능성을 무조건 부정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서아프리카 노예의 문화와 유럽 문화
의 융합은 아메리카의 어느 마을에서도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솔로 주자(Soloist)의 탄생
기억해 두어야 할 또 하나의 사항은 재즈는 어떠한 악기에 의해서도 연주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소리는 당연히 쓰기 좋은 악기로 재즈의 발전에 의심
할 것도 없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다. 뉴올리엔스의 가두 퍼레이드나 장례식,
행진할 때 사용되는 악기가 재즈에 있어서 전형적인 악기인가 하면 결코 그렇지는
않다. 바이올린, 기타, 피아노, 밴조 등도 전부 재즈 임프로비제이션의 도구로서
사용되어 왔다(밴조 그 자체는 아프리카가 기원인 악기로 생각된다).
피아니스트(Pianist)
재즈 피아노의 스타일은 1920년대에 앞서 뉴을리언스 이외의 지역에서도 발전하
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다. 사실 1920년대의 강력한 피아니스트 중 몇
명은 이스트 코스트긴ast Coas늣 출신이었고 그들 대부분이 무반주의 솔로 피아노
를 연주하고 있었다. 초창기 재즈 피아노는 재즈 밴드 스타일과는 별도로 발전해
왔을지도 모른다. 초기 재즈 피아노의 스타일은 아마도 랙타임에서 발전했을 것이
다. 랙타임을 연주하는 데에는 악보를 읽는다거나 외어야 할 필요가 거의 없었다.
한번 그 스타일을 몸에 익히면 오리지널 랙을 임프로바이즈하거나 미리 씌여진 곡
을 조금 장식하여 고쳐 치는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생긴다. 랙타임 피아노에 그 뿌
리를 두고 있는 매우 힘 있는 스타일에 스트라이드 스타일(stnde styl늑이라는 것이
있는데, 오른손의 활동적인 연주와 함께 왼손은 낮은 베이스 노트와 중음역의 코
드를 서로 번갈아 치는, 마치 큰 걸음으로 당당히 활보하는 느낌으로 치는 스타일
이다-정확히 말하면 스트라이드 피아노치 왼손은 각 소절의 제1박과 제3박에 베이
스 노트간ass not린를 치고 제2박과 제4박에 중음역 코드(m펴-range chor린를 넣는
다3.양손의 움직임이 함께 되어 바로 멋있게 드라이브하는 리듬 섹션을 갖
는 작은 오케스트라를 생각하게 하는 음악을 만들어냈다. 이 스타일은 그 음을 써
서 기록하는 것이 곤란하기 때문에 피아니스트에게 상당히 어려운 것이다(제임스
P.존슨(James Pri Johnson)의 (Carolina Shout)l.
패츠 월러(Fats Waller 1904--1943)-스트라이드 피아노가 탄생시킨 유멱
한 인물은 뉴욕 출생의 패츠 월러이다. 월러는 파플러 엔터테이너로서 평가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재즈에 대한 공헌도가 과소 평가되고 있지만, 뛰어난 테크닉구
뒹기는 듯한 스윙 스타일로 명랑하고 즐거운 연주를 많이 남겼다. 월러의 스타?
은 피아니스트이자 밴드 리더인 카운트 베이시의 연주에도 남아 있다. 월러는 1:
백곡이 넘는 작품을 샜는데 그 가운데 (Ail't Mlsbehavin'), (Honeysuckle Ro뗄-
(s4ueeZe Me), (Titterbug Waltz)등은 특히 유명하다.
랙타임, 스트라이드 스타일 외에 재즈 피아노 스타일로서 부기 우기
z oogl릿가 있다. 부기 우기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왼손으로 각 비트를 더욱 세분
화한다는 점인데, 원래 한 소절에 4비트인 것을 각 소절에 8박자로 만든다. 만약
여러분이 부기 우기의 레코드를 들으면 곧 "아, 이것은 부기 우기다"라고 알 수 있
다, 왜냐하면 부기 우기는 너무나 여러 번 반복되어 잘 알려진 재즈 피아노 스타일
이 되었기 때문이다. 피아니스트인 파인톱 스미스(Piletop Smith)는 실제로 그의
한 작품에 (Boogie Woogi쏜라고 제목을 붙였으며, 후에 이 곡은 편곡되어 토미 도
시의 스윙 빅 밴드가 연구하여 유명해졌다. 선구직인 부기 우기 피아니스트로는
피트 존슨(Pete Johnson)-앨버트 아몬즈(Albert Ammons),카우 카우 다벤포트
(CowCow Davenport),그리고 미드 럭스 루이스(Meade Lux Lewis)((Honky
TonkTrain Blues))가 있다.
부기 우기는 한 소절에 8박자를 갖는 또 다른 스타일인 홍키 통크건on ton◎
와 공통되는 부분이 있다. 홍키 통크와 부기 우기는 때에 따라 같은 의미로 쓰일
때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전혀 다른 스타일을 가리킬 때도 있다. 초기 로큰를
의 기타나 피아노 연주 기법에서 단순히 되풀이되는 기술적으로도 매우 쉬운 기법
을 홍키 통크라고 하는 경우도 있음에 주의하자(1960년대부터 70년대 사이에 레코
딩된 많은 작품에서 가사나 제목에 홍키 통크 또는 부기 우기라는 단어가 들어 있
는데 그것은 여기에서 말하는 의미와는 다른 것이다).
코넷「Cornet), 트럼펫(Trumpet) 주자
재즈의 초창기 시대에 코넷은 트럼펫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쓰이던 악기였다. 트
럼펫과 코넷의 톤과 음역은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이 두 악기를 분간해서 듣지 못
하는 감상자가 많다. 모양도 이 두 악기를 혼동턴게 만드는 요인이나 악기의 길이
는 확실히 틀리다. 코넷의 튜브는 관 그 자체의 길이가 트럼펫과 같지만 외견상 짧
고 뚱뚱하고 작다. 재즈에 사용된 오래된 어떤 코넷은 특히 작고 뚱뚱하다. 트럼펫
과 코넷의 기본적인 차이를 확실히 구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코넷의 관의
내측은 원추형(con핏에 가깝고 트럼펫은 원기등(cylinde깃에 가깜다. 트럼펫의 관의
내부 직경을 기술적인 용어로 보어(Bore)라고 하는데, 코넷은 기본적으로 원추 보
어(coniCal bor늑를 가지고 있고, 트럼펫은 원주 보어(cylindrical bor팃를 가지고
있다, 이 두 악기는 거의 같은 방법으로 연주하지만 마우스피스(mouthpiec릿는 조
금 다르다. 그리고 코넷의 음색은 부드럽고 트럼펫의 음색은 보다 화려하다고 할
수 있겠다.
-트럼펫과 코넷의 도해
냇 애덜리(Nat Adderley)와 태드 존스를 제외한 대부분의 모던 플레이어들은 코
넷이 아닌 트럼펫을 사용한다. 1927년 이전에는 거의 모든 재즈 트럼펫 주자가 코
넷을 쓰고 있었으나 1926년 이후 트럼펫을 쓰는 사람이 나타나면서 1930년대부터
40년대 전반에 이 두 악기간에 교대가 일어났다. 모든 밴드는 소위 트럼궷 섹션을
갖게 되었지만 적어도 두 유명한 밴드, 듀크 엘링튼 밴드와 플레처 헨더슨 밴드의
트럼펫 섹션에는 종종 코넷 주자의 수가 트럼펫 주자보다 우세했다. 필자는 이 두
악기에 대한 문제를 그다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코넷 주자를 대개 트럼펫
주자로 분류하고 싶다. 그 이유로는,
1)대부분의 감상자는 그 소리의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2)어느 특정 세션에서 연주자가 어떤 것을 사용했는지 레코딩 데이터로서는 알
수가 없다.
3)음악 생활을 통해 처음부터 끝까지 코넷만을 사용했다고 확신할 수 있는 연주
자는 빅스 바이더벡밖에 없다.
4)트럼펫이 고유의 음색을 갖고 있고 코넷 또한 고유의 음색을 갖고 있지만, 재
즈에 있어서 트럼펫 음역의 폭은 이 두 악기 고유의 음색을 구별하는 한계보다도
훨씬 넓은 폭을 가지고 있다.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 1900--1971)-루이 암스트롱이 1960년대
에 (Hello Dolly)로 유명해지게 되었을 때 그를 단순한 보통의 뮤지션이라고 생
각하던 사람은 없었지만 정말로 그는 재즈 역사상 1920년대 대혁신의 중심 인물이
었다. 그의 트럼펫에 대한 기량은 이미 다른 어떤 재즈 트럼펫 주자보다도 뛰어났
다. 암스트롱은 특유의 따뜻함과 정확성으로, 1920년대의 사람들이 눈을 크게 뜨고
노려만 보던 높은 음역에서 임프로비제이션을 전개했는데, 높은 음을 지속시키는
방법은 그의 가장 성공적인 드라마틱한 발명이었다,
암스트롱은 멜로디 라인(선율)을 극히 자연스럽게 들리도록 만들었다. 그의 작
품은 계산하며 만들어진 것처럼은 들리지 않지만 실은 구석구석까지 치밀한 배려
를 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흐르면서 살짝 가락의 고저가 있는 기분의 '선율'을 불
며 앞을 생각해 낼 수 있는 아티스트였다. 그는 곡의 선율로부터 자유롭게 떠나 있
으면서도 그 곡의 코드 진행에 딱 맞는 새로운 선율을 임프로바이즈했다. 1927년의
(Hotter than That), 1928년의 (West End Blue쏘는 그가 틀림없는 명인 거장임을 입
증하고 있다. 그러나 암스트롱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다른 곳에 있다. 그는 재즈의
스윙감으로서 만인이 인정하는 감각으로 연주한 최초의 뮤지션이다. 암스트롱 이
전의 대부분의 재즈 뮤지션은 열광적으로 연주하고는 있었지만 리듬적으로는 딱딱
하게 경직되어 있었다. 물론 행진곡이나 교향곡에 비하면 결코 엄격한 것만은 아
니지만 암스트롱의 음악과 비교하면 딱딱한 느낌을 면하기 어렵다. 그는 너무 엄
격한 연주를 풀어 놓고, 들뜬 느낌과 8분 음표로 스윙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루이 암스트롱의 초기 연주는 킹 올리버 , 클라렌스 월리엄스(Clarence
Williams)-플레처 헨더슨 등 수많은 밴드에 솔로로 레코드에 수록되어 있다. 그러
나 그의 작품 중에서 연주 여행을 위해 구성된 그룹이 아닌, 레코딩을 위해 특별
편성된 캄보에 의해 연주된 작품들이 그의 고전적 작품이 되었다. 그들 레코드에
는 핫 파이브(Hot Fivej나 핫 세븐(Hot Seven)이라는 그룹명이 붙여져 있다. 핫
파이브나 그외 그룹의 멤버는 때에 따라 변하기도 하지만 악기 편성은 대체로 언
제나 같았다. 트럼펫, 트롬본, 클라리넷, 피아노, 그리고 밴조나 기타였으며 대개
드럼은 없었다. 핫 세븐의 경우에는 핫 파이브의 편성에 기타, 밴조, 혹은 튜바와
드럼을 첨가시켰다. 이들의 초기 녹음 시 연주하던 뮤지션은 피아니스트에 릴 하
딘(Li-Hardm,암스트롱의 두번째 아내로 킹 올리버 밴드의 피아니스트).얼 하인
즈, 뉴올리언스 시대의 동료인 트롬본의 키드 오리, 클라리넷의 쟈니 도즈, 기타
의 로니 존슨(Lon e Johnson),기타와 밴조의 쟈니 센시어, 드러머에는 쟈니 도즈
의 동생 베이비 도즈와 주티 싱글튼(Zuny Singleton)등이다.
멜로디와 리듬의 혁신을 이룸으로써 암스트롱은 트럼펫 주자뿐 아니라 모든 악
기의 다음 세대 뮤지션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암스트롱의 피아니스트 얼
하인즈는 암스트롱과 만나기 이전에 벌써 트럼펫 연주와 같은 오른손 주법을 완성
시키고 있었으나 암스트롱의 영향을 받고 더욱 발전시켰다, 얼 하인즈의 임프로비
제이션은 암스트롱과 마찬가지로 스윙하는 것이다. 또 얼 하인즈는 암스트롱에 의
해 일반화되어 유명해진 더블 타임 주법(실제 하는 템포보다 배의 속도를 의식하
여 임프로바이즈한다)을 잘 사용했으며 스트라이드 주법과 호른 주법을 결합시켰
다. 1940년대의 모던 재즈 피아노는 상당 부분이 얼 하인즈가 개척했던 테크닉의
영향을 받고 있다((Weather Bird), (Tight Like This)). 재즈 피아노는 랙타임이나
스트라이드 주법과 같은, 말하자면 오케스트라적인 원맨 밴드 스타일에서 관악기
◎OT짓적인 유려한 오른손 라인과 싱커페이션된 왼쪽 코드를 탐당하는 왼손의 주
법으로 점차 변화해갔다(왼손으로 10도 음을 치는 스타일이라면 1930년대에 두각
을 나타낸 테디 윌슨(Teddy Wilson)이 떠오르지만 얼 하인즈는 1920년대의 레코딩
에 이미 이 테크닉을 사용하고 있다).
헨리 '레드' 알렌(Henry 'Red' Alien 1908--1967)-알렌은 초기 재즈에
있어서 하모니적으로 가장 앞선 트럼펫 주자였다. 그는 암스트롱과 같이 자연스럼
게 스윙하지는 않았지만 하모니면에서는 보다 야심적이었다. 암스트롱보다도 여덟
살 정도 나이가 어렸음에도 불구하고 시카고에서는 킹 올리버, 뉴욕에서는 플레처
헨더슨과 연수했다. 암스트롱의 최전성기가 1920년 후반이라고하면 알렌의 음
막적인 전성기는 1930년대 중반이었다고 할 수 있다. 또 그는 초기 재즈와 모던 재
즈의 과도기적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알렌의 트럼펫은 어둡고 무거운 음색을 갖고 있었고 악기의 저음역을 잘 사용혔
다. 그는 1920년대의 뮤지션으로서는 뛰어난 테크닉을 갖고 있었고 임프로비제이
션 스타일은 색소폰 스타일에 매우 가까웠다. 이 스타일은 또 한 사람의 중요한 계
즈 트럼펫 주자 로이 엘드리지(Roy Eldndge)와 상통한다. 알렌은 스윙하는 것보
다 하모니적으로 고도인 것을 중요시하여 스윙은 했지만 타이밍을 취하는 방법이
일정하지 않았다. 암스트롱의 이전 스타일과 같이 비트 전에 타서 연주해 보거나
때로는 암스트롱류로 비트 뒤에 타서 연주했다. 그는 더블 타임 주법에 여러 가지
새로운 연구를 가하여 사용했지만 더블 타임을 하지 않을 때에도 그의 프레이즈는
더블 타임을 기본으로 하는 것처럼 들렸다.
알렌은 몇 가지 점에서 모던 재즈를 선취하고 있었다. 그는 긴장과 완 화
를 동시에 표현해 보였다. 그는 코드 체인지에 관해 한층 앞선 지식을 갖
고 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멜로디 라인은 모던은 아니었다. 그는 코드
를 각기 분리해 다루어서 이것이 그의 프레이즈가 매끈하게 흐르는 것을 저해했던
것이다. 알렌의 걸작은 1935년에 레코딩한 (Body and Soul)인데 거기에서 알랜은
재즈 연주가로서의 자신의 특색을 남김없이 펼쳐 보였다. 그는 당시의 트럼펫 주
자로서는 매우 어렵다고 생각되는 '더블 타임 솔로'를 전혀 무리없이 거뜬히 연주
해 보였다.
자보 스미스(Jabbo Smith 1908-- ) -자보 스미스 또한 초기 재즈로부
터 스윙 시대에 걸쳐 활약한 혁신적인 트럼펫 주자이다. 그는 뛰어난 기량과 밝고
섬세한 음색, 빠른 비브라토를 사용했으며, 두들기는 듯한 음을 냈고 그 멜로디 라
인을 고음역에서 구성하는 것을 좋아했다. 또한 그는 초기 트럼펫 주자로서는 누
구보다도 높은 음을 낼 수 있었다. 그가 시작하여 발전시킨 화려하고 세련된 스타일
일은 높은 음역의 음을 사용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1938년에 녹음했던 (Rhythl
in Spai$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그는 복잡한 코드 체인지를 잘 다루었고 색소폰
처럼 긴 멜로디를 불며 임프로비제이션 했다. 이러한 사실로 보면 자보 스미스는
로이 엘드리지의 선각자라고 생각된다.
빅스 바이더벡(Bix Beiderbecke 1903--1931)-아이오와 출신의 백인 트
럼펫 주자이며 작곡가, 밴드 리더인 빅스 바이더벡은 뉴올리언스파라고도 시카고
파라고도 확실히 분류할 수 없다. 그는 암스트롱과 함께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
대에 걸쳐 트럼펫 주자로서 지도적인 위치에 있었다. 바이더벡은 암스트롱에 조금
도 뒤지지 않는 창조성과 독창성을 갖고 있었지만 악기를 마음대로 힘차게 불어대는
테크니컬한 숙련도면에서는 암스트롱이 조금 뛰어났고 사운드는 보다 차가왔
다. 그는 암스트롱보다도 더 가벼운 음을, 즉 금속성이 아닌 보다 부드러운 음을
좋아했으며 리듬도 수수한 편이었다. 처음에 그는 옛날 재즈 플레이어가 많이 보
여주었던 완전한 형태의 '재즈 스윙감'을 갖고 있지 않았지만 얼마 후 암스트롱에
뒤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스윙하게 된다.
바이더벡은 색소폰 주자 프랭키 트럼바우어와 팀을 이루고 고전이라고 할 수 있
는 레코딩 세션을 했다, 1927년의 (sing, '◎e Blue죠와 (A Good Man Is Hard to
Fild) ('Bur Belderbecke StoIy Vo1.2J)는 초기의 재즈 중에서도 릴랙스하여 선율이
아름답고 부드러운 연주의 전형으로 뛰어난 작품이다. 트럼바우어의 악기는 C-멜
로디 색소폰(C-meIody saxophon꾸이 있었는데 그 길이는 거의 알토와 테너의 중
간이
어서 밝고 가벼운 음을 낼 수 있다. 트럼바우어는 초기의 재즈에서는 드물게
느린
비브라토를 사용한 매우 정확하고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하는 솔로 주자였다.
테너
색소폰 주자이자 모던 재즈 창시자의 한 사람인 레스터 영은 그의 가볍고 차
가운
테너 색소폰 사운드는 C-멜로디 색소폰 주자인 트럼바우어의 연주를 모델로
하여
만들어졌다고 한다. 트럼바우어와 마찬가지로 영 자신도 동시대 뮤지션보다
느린
비의라토를 사용하고 있었다.
바이더벡은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였다. (In the Dark), (Candlelights),
(Flashe죠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In a Mist)라는 작품은 많은 재즈 편곡자에
의해 오케스트라화된 매우 흥미깊은 작품으로 1927년 그 자신의 피아노 솔로는 특
히 뛰어나다('Bix Beiderbecke Story Vo1.3_1). 이 작품은 전체 톤 모드( hole tone
mod 가 두드러지고 프랑스 인상파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Claude Debussy)와 모
리스 라벨이 재즈에 미친 사운드의 영향이 드러나 보인다.
바비 하켓(Bobby Hackett 1915--1976)-바비 하켓은 암스트롱이나 바이
더벡의 최전성기가 지난 지 10년 정도 되어 나타난 트럼펫 주자이다. 그렇지만 그
는 초기 트럼펫 주자들과 연주상으로 공통점이 많다는 점에서 초기 재즈에 들어가
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하켓은 1930년대부터 70년대까지 여러 가지 형태의 재즈
와 관련을 맺었다, 그는 바이더벡과 마찬가지로 우아함과 지성을 느끼게 하지만
보다 따뜻하고 기술적으로도 바이더벡을 능가하였다. 그의 연주는 듣는 사람에게'
부드러움과 온화한 편안함을 주었는데, 이 점에서 그에 필적하는 연주자는 전무하
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켓은 극 전체 코드를 고려에 넣고 신중하게 멜로디 라인을 만들어 갔다. 하나
의 코드 진행중에 있는 주요한 음은 전부 주의깊게 선율 가운데로 짜들어 갔다. 글
렌 밀러 악단의 (String of Pearl극에서 하켓이 불었던 유명한 솔로는 코드를 구성
하는 각 음을 무리없는 멜로디 라인으로 만들어낸 훌륭한 모델이다. 그의 솔로는
종종 그 곡의 편곡으로서 악보에 씌여진 형태로 출판될 정도이다. 솔로 부분이 곡
하나의 완성된 부분이 되어 버려 다른 트럼펫 주자도 자기 자신의 솔로를 하켓이
연주했던 대로 불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그의 트럼펫은 어느 시기의 어떠한 스
타일과도 조화되는 스타일이어서 딕시랜드 그룹 및 스윙 시대의 각각 성격이 다른
밴드에 들어가 연주했고 1950년대와 ①년대의 이지 리스닝이나 무드 음악, 혹은 소
프트 음악 분야에서 다수의 레코드를 남기고 있다. 그들 녹음에서는 달콤한 현악
기를 백그라운드에 놓고 그는 부드러운 트럼펫 연주를 전개했으며, 그 연주는 맛
이 깊은 시종 일관된 태도를 지속한다.
트롬본 주자(Trornbonist)
앙상블 임프로비제이션(특히 딕시랜드 재즈의 집단적 즉흥 연주)에서의 트롬본
은 하모니의 최저음을 맡아 음과 음 사이를 필 인 한다. 캄보에서는 클라리
넷과 트럼펫이 중음역과 고음역을 담당하고 트롬본이 저음역의 사운드를 맡는다.
초기◎ 트롬본 주자는 솔로를 할 때 재즈 트럼펫의 개념을 받아들이고 있었시만
트롬본의 독특한 특징인 슬라이드시켜 음을 올리든지 내리든지 하는 방법, 즉 글
리산도(glis-ando,매끄럽고 급속하게 음계를 연주하는 것」 효과를 크게 활용했다.
그러나 복잡한 음의 라인은 별로 만들어내지 않았다.
키드 오리(Kid Ory 1886--1973)-키드 오리는 가장 먼저 주목할 만한 뉴
올리언스 재즈 트롬본 주자이다. 몇 개의 초기 재즈 캄보에서 그의 허스키하고 개
성적인 음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는 딱딱하고 찢어지는 듯한 음과 춤격
적인 어택을 갖고 있었으며, 그의 연주에는 몹시 거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는 또
한 작곡가이자 밴드 리더였다, 그의 작품 (Muskat Ramble)i후에 (Muskrat
Rambl윽로 고쳐짐)은 재즈의 스탠더드가 되었다(루이 암스트롱과의 (Stuttin '
With omeBarbecu쏜를 들어 보자-
미프 몰(Miff Mole 1898--1961)-미프 몰은 뉴욕 출신이다. 그와 잭 티가
든은 초기 재즈치 선두적인 백인 트롬본 주자였다. 그의 음색은 투명하며 연주는
억제가 잘 이루어져 있었고, 악기에 대한 기량은 초기 재즈 트롬본 주자로서는 최
고라고 할 수 있다. 멜로디나 리듬면에서 몰의 생각은 종종 함께 레코딩을 했던 빅
스 바이더벡이나 레드 니콜스와 유사했다.
잭 티가든(Jack Teagarden 1905--1964)-텍사스 출신의 잭 티가든은 매
끄럽고 풍만한 음을 내는 데 주의를 기울인 결과, 모던 재즈 이전의 트롬본 주자와
는 비할 데 없는 아름다운 음색을 만들어냈다(콜롬비아에서 특별 제작한 rKing of
the BluesTlombone_l ). 그가 연주하는 프레이즈는 기술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지적이고 충분히 릴랙스했다. 티가든의 독특한 필링과 잘 구성된 프레이즈는 모던
재즈의 트롬본 주자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의 스타일은 재즈 트롬본의 역사상 트
럼펫의 암스트롱에 필적하는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그의 활동 기간은 길었고, 풍
부한 결실을 낳으며 1920년대부터 그가 죽는 1964년까지 계속되었다.
J. C.히긴보탐(J. C. Higginbotham 1906--1973)-J c. 히긴보탐은 조지아
출신의 트롬본 주자로 미프 몰보다 몇 년 어리지만 보다 크고 단단한 무거운 느낌
의 음색을 갖고 있었다. 그는 대담하고 드라이브 걸린긴ard-dviving)연주를 했으
며, 암스트롱과 같은 트럼펫식의 솔로를 전개하기도 했다. 그의 연주에서는 하나
의 프레이즈는 한번밖에 쓰지 않는 것처럼 들리며 이 점에서 그는 특별한 센스를
갖고 있었다. 창조적인 의미에서의 그의 음악의 최전성기는 1929년이었으나 그의
음악 생활은 그가 죽는 1973년까지 계속되었다.
클라리넷 주자(Clam'ne톤t)
초기 재즈에서는 색소폰보다 클라리넷이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었다(이 현상은
1940년대 모던 재즈의 등장과 동시에 급격하게 변화했다. 현재는 클라리넷이 있는
모던 재즈 캄보가 매우 드물지만 당시는 클라리넷 없는 캄보는 거의 생각할 수 없
을 정도였다.). 클라리넷은 트럼펫이 주선율을 부는 데 반해 대위법적인 멜로디
(countermerodr,를 부는 역할을 갖고 있었다. 클라리넷과 트럼펫의 솔로를 비교하
면 일반적으로 극적 효과라는 점에서 클라리넷이 뒤떨어진다. 그러나
시대가 흐름에 따라 클라리넷의 연주 개념이 변화하여 1930년대 후반의 초기 연주
자나 스윙 시대 연주자에 있어서는 매우 드라마틱하고 균형 잡힌 솔로를 하는 사
람이 상당수 출연하게 된다.
쟈니 도즈(Johnny Dodds 1892--1940)-쟈니 도즈는 뉴올리언스에서 시
카고로 이주한 지도적인 클라리넷 주자이다, 시카고에서는 킹 올리버와 암스트롱,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젤리 롤 모튼 등과 많은 레코딩을 했다. 도즈와 키드 오
리는 암스트롱보다 나이가 많았으므로 뉴올리언스에서는 암스트롱이 사이드맨으로
고용되었지만 시카고 시대에는 암스트롱이 큰 명성을 얻고 있었으므로 리더와 사
이드맨의 역할이 역전되었다. 도즈는 윤곽이 명료한 음색과 매우 빠른 비브라토를
갖고 있었다(조 올리버와의 (Dippermouth Blues),루이 암스트롱과의 (Struttin
With SomeBarbecu쓰를 들어 보자),
지미 눈(JIimmie Noone 1895--1944j-지미 눈은 쟈니 도즈에 비하면 보
다 세련된 연주가였고 클라리넷을 다루는 기량도 훨씬 뛰어났다. 지미 눈을 뉴을
리언스 최고의 클라리넷 주자라고 평가하는 사람도 많다. 그는 어둡고 따뜻한, 등
그런 음색을 갖고 있었으며 스타카토를 잘 사용하여 템포가 빠른 연주를 했는데
그것은 샘 솟는 재능과 활력을 갖춘 멜로디 라인을 형성하는 근본이 되고 있다 시
카고의 선두적인 백인 클라리넷 주자였던 프랭크 테슈메이커와 베니 굿맨은 지미
눈을 매우 존경했다. 피아니스트 얼 하인즈와 함께 지미 눈은 19뽀년에 일련의 뛰
어난 레코딩을 했다.
Teschemacher 1906--1932)-프랭크 테슈메이커(Frank- 프랭크 태슈 매
이커는 시카고의 백인 클라리넷 주자 사이에 리더격인 연주자였다. 그의 테크닉은
매우 뛰어났고 지미 눈에 비해 훨씬 느슨하게 스윙했으며 음색은 조금 가볍고 비
브라토는 느렸다. 1930년대에 명성을 날리던 솔로 주자이자 밴드 리더였던 테슈매
이커나 베니 굿맨이 가장 영향을 받았던 사람은 지미 눈이었다.
시드니 베세(Sidney Bechet 1897--1959)-뉴올리언스의 클라리넷 및 소
프라노 색소폰 주자 시드니 베세는 초기 재즈에서 가장 높게 평가할 만한 뮤지션
중의 한 사람이다. 암스트롱과 함께 그는 가장 빨리 재즈의 스윙감을 충분히 펼치
며 연주했던 즉흥 연주자의 한 사람이다. 그는 암스트롱과 마찬가지로 '더블 타
임'으로 연주했고 드라마틱한 솔로를 창조했다(암스트롱과의 (Cake Walkin'
Babies FromHome)). 그는 풍부한 음량과 따뜻한 음색을 갖추었고 비브라토는 빠
르며 폭넓은 것이었으며, 스케일 큰 상상력과 풍부한 실력을 갖추고 연주하던 매
우 정력적이고 하드 드라이겡한 즉흥 연주자였다. 1959년 그는 오랜 기간 연주 활
동을 해왔던 프랑스에서 세상을 떠났다(그외 베세의 (SUmmeT lme), (Blue
Honzo군을 들어 보자).
소프라노 색소폰 주자로서의 베세는 스윙의 알토 색소폰과 소프라노 색소폰을
부는 쟈니 호지스(Johnny Hedges)에 영향을 주었고 호지스는 또 다른 플레이어들
에게 영향을 준다. 호지스는 약 40년간 듀크 엘링튼 악단의 솔로 주자로서 인기를
끌었다. 1940년대 이전의 쟈니 호지스 연주에는 '더블 타이밍 '은 물론 샘솟는 듯한
정서적인 선율에서 확실히 베세의 영향이 받아들여져 있었다. 호지스의 '더블 타
이밍'의 좋은 예로서는 듀크 엘링튼 악단의 1940년 레코딩 (In a Melloton쏜의 솔로
를 들으면 좋을 것이다. 두 사람의 소프라노 색소폰 스타일을 비교하기 위해서는
베세가 1938년 레코딩한 (Really◎e Blue◎와 같은 해 호지스의 (Teep's Blues),그
리고 1941년 베세의 (When It's Sleepy Time Down Southj와 1938년 호지스의
mptv BaIroom blue◎를 들어 보자. 호지스는 후에 열광적이었던 부분이 점점 엷
어지고 원숙미가 늘어가지만 매끄러운 음과 풍부한 표현력 등은 베세로부터 밴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이어 받았다. 1960년대 모던 재즈 색소폰의 존 콜
트레인에 의해 소프라노 색소폰은 재즈 연주에 다시 사용되었고, 콜트레인은
(Blue to Baches)라는 곡도 썼다.
리듬 섹션(Rhythm Section)의 발전
대부분의 초기 재즈 캄보에서는 트럼펫, 클라리넷, 트롬본, 때로 색소폰이 더해
져 프론트 라인(front line 을 형성한다. 그리고 리듬 색션은 기타, 밴조, 튜바, 베
이스 색소폰, 베이스, 피아노, 그리고 드럼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모든 밴드
가 이 악기를 전부 갖추고 동시에 연주했던 것은 아니고 대부분 몇가지씩 조합하
여 사용했다. 초기 재즈 캄보에서는 베이스가 생략되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고 드
럼이 없는 레코딩도 많았다. 어떤 그룹은 베이스 대신에 튜바를 쓰기도했으나(그
결과 많은 튜바 주자가 베이스를치게 되었다-또 어떤 그룹은 베이스 색소폰을
썼다. 기타와 밴조는 둘 중에 어느 하나만 사용하는 그룹도 있었지만 많은 경우 한
밴드에서 두 악기가 공존했으며, 결국 한 뮤지션이 기타와 밴조를 번갈아 연주했
다. 피아노, 밴조, 기타의 세 악기는 모두 사용하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피아노가
없는 녹음도 적지 않으며 밴조, 기타가 피아노 역할을 하는 연주도 많다.
밴조와 기타는 각 소절에 모두 4비트를 치고, 튜바, 베이스 색소폰, 베이스는 보
통 4비트의 제1박과 제3박만을 친다. 이것은 그 악기들이 각 소절마다 2비트만을
연주하는 것으로 '투 비트(t o-bea칫 리듬 스타일'이라고 한다(루이 암스트롱의
(PotatOHead Blues),젤리 롤 모튼의 (I3lack Bottom Stomp)와 (Dead Man
Blues),트럼바우어와 바이더벡의 (A Good Man Is Hard to Find)). 피아니스트는
기타나 밴조와 같은 코드를 치거나 때로는 장식음을 치는 역할을 맡는다. 많은 그
룹에서 프론트 라인(즉 밴드 스탠드 앞쪽에 서는 멤버로 관악기를 주로 하는 멜로
디 담당자들이라는 의미)이 멜로디를 연주하고 있는 동안 카운터멜로디를 창조했
다. 콤핑의 개념이 발생했던 것은 1930년대 후반 이후이다.
드럼(Drums)-초기의 재즈는 녹음 기술의 미발달로 인해 재즈 드럼을 레
코드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전기 녹음이 아닌 기계적인 녹음이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레코드점 앞에 개가 귀를 기울여 자기 주인의 소리
를 듣고 있는 모습이 있는데("His Master's Voice"),빅터(Victo옷 레코드 라벨로
알려진 그림이자 레코드의 대명사적인 도안이다. 이것과 같은 형태의 관 앞에 바
늘이 붙어 있고 그 바늘로 원통이나 원반 위에 음의 모양을 새겨가는,,,,,,. 이것이
기계적인 녹음으로 베이스 드럼을 강하게 치거나 조금 큰 음을 내면 표면에 구멍
을 내고 있는 바늘(녹음용 장비)이 곧 떨어져 버린다. 그러므로 많은 레코딩은 보
통 연주에서 드럼을 뺀 형태로 이루어졌다. 오래된 레코드를 듣고 있으면 때때로
'우드 블록(letood blee◎'과 같은 기묘한 음이 들려오는 경우도 있다. 루이 암스트
롱이 1928년에 녹음했던 (West End Blue죠에는 드럼 대신에 이 빈약한 대용품이
사용되고 있다(베이비 도즈와 올리버즈 크리을 재즈 밴드(Oliver's Creole Jazz
Band)의 (Dlppermouth Blues),토니 스바바로(Tony Sbarbaro)와 oDJB의
(Mgie), (Home Aga Blues)l. 1960년대가 되기까지 재즈 드러머는 자신의 음을
정확하게 녹음한다거나 복제, 재생하는 방법과 수단을 찾을 수 없었다.
우리들은 초기 재즈 드러머가 어떠한 음을 내고 있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며,
단지 어떤 악기를 사용했는지만을 알 뿐이다. 초기의 드러머는 하이 해트를 사용
하지 않았고 대신에 푸트 페달로 조작하는 플로어 심벌Cfloor cymbal)을 사용했다.
이러한 것은 현재 우리에게 친숙한 하이 해트의 '칙(chie◎' 사운드는 당시 존재하
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초기 드러머는 지금과 같이 베이스 드럼을 사용했
지만 1960년 중반 무렵부터 일반적이 된 현재의 베이스 드럼 크기의 2--3배나 큰
브라스 밴드용 베이스 드럼을 쓰고 있었다. 스탠드 위에 스네어 드럼을 놓고 세트
위에 심벌을 올려 놓는 것은 각자의 기호이다. 우드 블록이나 카우벨(co be 은
베이스 드럼에 붙어 있었다.
클라리넷 주자 쟈니 도즈의 동생인 뉴올리언스의 드러머 워렌 '베이비' 도즈는
'라이드 리듬(ide rhythm)'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는데, 그는 스네어 드럼으로 라
이드 리듬을 연주했다. 라이드 리듬은 후에 하이 해트로 연주하게 된다(일반적으
로 친,칙,친,칙으로 표현되는 리듬). 1950년대부터 60년대에 걸쳐 최종적으로
이 리듬이 타임 키핑(tlme eepin잃의 기본적인 리듬이 되어 드러머가 이 리듬을 라
이드 심벌로 쳐내는 방법이 정착되었다. 아더 '주티' 싱글튼은 뉴올리언스파 드러
머의 또 다른 기수로 드럼을 와이어 브러쉬( ire brus◎로 치기 시작한 최초의 드
러머이다[(St. James Infirmary), (Tight Like Thls)('The Louis Armstrong Storj
vol. 3_r)1.
브러쉬는 스틱을 완전히 대신하지는 않았지만 보다 가볍고 부드러운 소리와 드
럼 헤드나 심벌 위를 어루만지면 끊어지지 않게 연속된 음을 만들어내는 새로운
테크닉을 드럼에 가져왔다((skip◎e Gutter), (No, Papa, No,)). 주티는 또 각 소
절 전체 박자를 베이스 드럼으로 쳐내는 새로운 주법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많은 드러머들은 기본적으로 제1박과 제3박을 베이스 드럼으로 치고 있었다. 싱글
튼은 조지 웨틀링(George Wettling)과 시드니 캐틀렛(Sidney Catlett)에 영향을 주
었다. 캐틀렛은 재즈 드럼이 초기 재즈로부터 모던 재즈에 바로 옮겨가려고 할 때
그 기본적인 개념이 현대화하는 계기를 가져온 과도기의 중요한 재즈 드러머이다.
기타-Guitar)-대부분의 기타 주자는 타임 키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
하거나 겨우 코드 솔로를 연주할 정도였다. 그 솔로도 아직 앰플리파이어를 사용
하기 이전 시대의 일이므로 알아듣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그러나 뉴올리언스파
기타리스트 로니 존슨은 앰플리파이어도 없이 흥미깊은 솔철를 몇 곡 남기고 있는
데, 그것은 단순한 코드 솔로가 아닌 관악기를 부는 듯한 솔로였다(루이 암스트롱
과의 (Hotter◎an That),듀크 엘링튼과의 (The Mooche)),
로니 존슨과 같은 시기에 행동텨던 또 하나의 기타리스트는 에디 랭(edie
Lan )이었다. 그의 테크닉은 매우 뛰어났고 라인은 존슨보다도 훨씬 명료했다.
i(sin 1n' the Blue도의 섬세한 즉흥 연주를 들어 보자). 존슨과 랭의 연주는 실내
악(dasS cal chamber m n꾸과 비슷했으며 역사적으로 존슨보다는 랭이 많은 영향
을 미쳤다.
4 스윙 (Swing)
1930년대 초기 -- 40년대 말기
'관점과 방식은 변할지 모르지만 재즈에 있어서 스윙이 갖는
중요성은 변할 수 없습니다. 이 그윔의 느낌이 없으면 재즈는
사라지고 말죠. 재즈는 이해하기보다는 느끼는 음악이어야 합
니다. 인생을 살면서 이런 음악을 놓치면 바로 삶에 대한 최고
의 것 가운데 하나를 잃는 셈이죠..
-ArtBlakey
노트 괘턴(r ing eighth-note patteT운의 채용, 스트링 베이스나 하
이 해트 심벌의 도입, 그리고 보다 자유롭고 매끄러운 리듬감의 발전과 함께 재즈
는 점점 스윙하게 되었다. 물론 급속히 이루어진 변화는 아니고 1920년대 후반에서
1940년대에 걸쳐 서서히 일어났다. 이 시대부터 재즈는 스윙 음악(jazz music) 이
라고 부르는 시대를 맞는다. 이 시기에는 10인 이상의 멤버에서 이루어지는 연주
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빅 밴드 시대(big band er)라고도 부른다.
예전의 빅 밴드 음악에는 임프로비제이션이 없는 경우가 많았고 미리 색여진
악보를 연주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임프로비제이션을 주된 기술로 하는 음악가
들에게도 많은 일자리가 제공되었기 때문에 재즈에 있어서는 때우 좋은 시대였다.
몇 개의 밴드, 특히 카운트 베이시 밴드는 임프로비제이션에 중점을 두고 있었지
만 다른 대부분의 밴드는 임프로비제이션에 그다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 대부분은 무드 음악과 같은 ,달콤함'을 상품으로 하는 밴드로서 가
이 롬바도 -로렌스 웩크 등이 유명하며, 스윙 밴드로서 알려진 글렌 밀러 악단도
일단 이 분류에 들어간다, 스윙 시대에 선두에 선 밴드에는 플레처 헨더슨 . 듀크
엘링튼 , 폴 화이트맨 등의 악단, 그 후에 디지 길레스피 . 제랄드 윌슨(Gerald
Wilson) .스탄 켄튼 ' 태드 존스-멜 루이스 악단이 있지만 이들 악기 편성의 음악
이 화려한 인기를 얻은 것은 이 시기 이외에는 없었다.
재즈는 역사상에 나타난 이래 댄스를 위한 음악으로서의 성격을 항상 갖고 있었
으며 스윙 시대만큼 그러한 성격이 강조된 시대는 없었다. 그 후의 시대에는 재즈
그룹이 음악을 감상하는 목적으로 모이는 청중을 위해 연주하는 것은 매우 보통의
스윙(Swing) 스타일 뮤지션
Eddie DurtrBm
Benny Car-BT
Sy Oliver
Don Redman
Duke Elfinaton
Bilhl StrayhOm
Eddie SeutBr
틸똔II HudsOn
Budd John80n
Edgar Sampeon
Jimmy MUndv
Deans KinCaide
JoJon
Sid Catlen
Chide Webb
Gene KrupB
Sonny GreBT
Cozy Cole
Louis BellsOn
Buddy Rich
토ave Tough
Jimmy Cr8wford
Ban ThigplBn
LawrenceBTOwn
Dicjn/ Wel S
TrummyYOU티끈
Jimmy Ha-risen
Benny MdrtOn
텐c Dicken9On
Joe "TrickYSam" Manton
Bill Harris
J.C.Higginbothem
Jack JennaY
Tommy DOrsey
xophonI)
ColemanHawkins
Johnny HOdges
BennyCartBr
Willie Sm◎h
Chu Barry
Harschel튼Van8
Dick Wilson
Ben Webst-
Laster Ywng
Georgia AUId
Don Byas
Russell PIOcope
Illinois Jac-IUBt
Hilton JeffBTSOn
Tab Smith
Flip PhillipS
Pete Brown
톱uster르m-th
Tex Beneke
Jerry JeromB
은oomie RiChman
Vido MussO
Emia Cace-BS
Earl Bostic
Joe ThemaS
Budd JohnSOn
Jimmy Do「say
TNmpa
Roy Eldridge
Cootie Wil- ams
틉unny Eer-gan
Harry Jam8S
므uck ClaytOn
Charlie ShaVe
Frankie New on
Henly 'Red"Alien
Oran띤잔Lips" Page
Harry 'SwBets" Edison
Rex Stews--
Harold "Shorty" Baker
JonahJonBS
TahJordan
Jabbo Smith
Herman AUtray
Clarinet
Banny GoOdman
Artie ShaW
Barney Bigard
Woody He「man
Buster Bailey
Jimmy Hamilton
Gu곯 I
Django Reinhardt
Charlie Ch「istian
Eddie DurhBm
Oscar MoorB
Irving AshbY
Al Casay
Piano
Art Tatum
Teddy Wilson
므i ly Kyle
Mary Lou W-Iliams
Milt Buckner
Count Basie
Duke EllingtOn
Nat Cole
Erroll Game「
Clyde Hart
Johnny Gua「nien'
Jay McShann
Mel Powell
Jess Stacy
Baos
WalterPage
Jimmy Blanton
John Kirby
Israel Crosby
Wellman Braud
Lionel HamptOn
Red Norvo
Adrian Rollini
Tvree Glenn
Duke Ellington
Count Basie
므ennie Moten
므enny Carter
Chick Webb
Andy Kirk
Jay McShann
Cab Calloway
Tommy DorseY
Banny Goodman
Jimmy DorseY
Glenn Miller
Charlie Barnet
Boyd Raeburn
Woody Herman
Stan Kenton
Gene Krupa
Artie Shaw
Fletcher HendeTSOn
Lional HamptOn
Bunny Berigan
Harry Jamesl
Earl Hines
Billy Eckstine
일이 되어 버렸지만 당시는 그러한 것이 아주 드물게 밖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러나 1938년에 베니 굿맨은 카네기 홀에서 콘서트를 열었고('Camegie Hall Jazz
Conce ),1943년 이후 듀크 엘링튼은 매년 정기 콘서트를 열게 되었다.
1930년대부터 40년대에 걸쳐 재즈 뮤지션으로서 이름을 날린 사람들이라면 대부
분이 빅 밴드의 리더이던가 리더는 아니더라도 빅 밴드에서 활약한 사람들이다.
1950년대 및 ③년대 사이는 재즈 캄보의 전성기였지만 이 시기에도 빅 밴드의 인기
는 그 이상이었다. 1950년대, ⑥년대에 걸쳐 록 밴드는 파플러 음악의 중심적 역할
을 맡았지만 1930년대 후반에는 빅 밴드가 대중 음악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
다. 재즈의 역사에서 이 스윙 시대라는 것은 재즈가 대중적 인기의 중심이 된 드문
시기였다. 카운트 베이시가 데카(oece띳에서 취입한 (One O'Clock Jump)의 판에
는 백만 매가 넘었으며, 듀크 엘링튼의 (Mood Indig꼬도 상당한 매수를 팔았다.
1950년대 및 60년대 록 밴드의 주역할은 댄스를 위한 음악을 제공하는 것으로 1930
년대의 스윙 밴드의 역할과 같은 것이었다. 대부분의 밴드는 한 사람 또는 두 사람
의 가수를 전속으로 갖고 있었으며, 가사의 내용과 가수의 외모, 그리고 훌륭한 무
대 등이 빅 밴드 주위에 많은 청중을 끌어 모았다. 스윙 시대의 재즈가 대중적 인
인기를 얻었던 것은 팬의 '눈'과 '발'에 끌리는 매력이 있었기 때문으로 반드시 음
악적인 이유만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 두자.
스윙 밴드의 악기 편성(Instmcmentation)
빅 밴드는 세 개의 섹션 즉 브라스 섹션견rass section),색소폰 섹션(saxophone
section),리듬 섹션(rhythm section)으로 분류되고 그들 악기를 연주하는 10인에서
그 이상의 뮤지션에 의해 형성된다, 브라스 섹션은 트럼펫과 트롬본으로 나누어지
며, 색소폰은 트럼펫이나 트롬본과 마찬가지로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지만 음악 분
야에서는 목관 악기( ood in민로 분류된다. 그 이유는 색소폰은 본래 클라리넷이
나 오보에와 같이 나무로 만들어진 악기에서 발달하여 왔기 때문이고 옛날부터 목
관 악기와 같은 연주를 했기 때문이다. 또 대부분의 색소폰 주자는 클라리넷도 분
다. 색소폰과 클라리넷은 마우스 피스에 리드tree민를 사용하므로 '리드 섹션(reed
section) '이라고도 하는데, 이 명칭은 후에 색소폰 주자들이 플루트 등의 리드 없는
악기를 사용하게 된 후에도 계속 쓰이고 있다. 알토 색소폰과 테너 색소폰은 색소
폰 중에서도 가장 잘 쓰이는 악기이다. 1930년대 후반이 되면 대부분의 밴드는 바
리톤 색소폰을 쓰게된다.그러나 소프라노 색소폰이나 베이스 클라리넷은 잘 쓰
이지 않았다.
색소폰 섹션은 세 사람, 혹은 다섯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색소폰 주자는 색
소폰 이외의 악기도 잘 분다. 몇 사람은 클라리넷을 알토, 또는 바리톤 색소폰 대
신에 바꾸어 갖도록 지시된다. 결국 알토 색소폰이 두 사람, 테너 색소폰이 두 사
람, 바리톤 색소폰이 한 사람이 되어 하나의 섹션을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색소
폰 섹션의 리더인 알토 색소폰 주자가 한가운데 앉고 테너 색소폰과 바리톤이 양
가에 나누어지는 형태를 취한다. 트럼펫 섹션은 두 사람 내지 다섯 사람으로 이루
어진다. 1930년대 후반부터 40년대 전반에 걸쳐서는 세 사람이 표준이 되며 섹션의
리더가 한가운데 앉는다. 트롬본 섹션은 한 사람에서 다섯 사람으로 2--3인이 표
준이며, 이 경우도 리더가 중심에 앉는다.
리듬 섹션은 보통 피아노, 기타, 베이스, 드럼으로 형성된다. 카운트 베이시 악
단에는 리듬 기타가 1970년대까지도 여전히 남아 있었찌만 다른 악단에서는 1940년
대 후반에 사라져 갔다. 기타 이전에는 밴조가 쓰이고 있었지만 1930년대에는 모슬
을 감추었다. 스트링 베이스가 쓰이기 이전에는 튜바가 사용되고 있었지만 30년대
중반 무렵에는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 기타와 스트링 베이스가 그 지위를 확립하
기 이전은 기타리스트가 밴조를 친다거나, 베이스 주자가 튜바(브라스 베이스라고,
도 불렀다)와 스트링 베이스(베이스 바이올린이라고도 했다)를 교대로 연주하기도
했다. 리듬 섹션의 피아니스트는 코드나 장식음 뿐만 아니라 때로는 멜로디를 치
기도 했다.
미리 씌여진 편곡은 작은 밴드에서 연주하는 한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지만 빅
밴드가 성장해감에 따라 그러한 악보의 용도는 증대했다. 밴드가 커짐에 따라 완
성도 높은 임프로비제이션을 하는 것이 어렵게 되었다, 많은 빅 백드는 악보 없이
도 호평을 얻고는 있어도, 결국 편리하다는 점과 곡의 수가 많은 점을 생각하면 악
보를 사용하는 쪽이 좋기 때문에 편곡 기법 등을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새로
가입한 멤버는 악보가 있는 경우에는 기억해서 연주를 매일 구사하는 악단보다도
훨씬 빨리 그 악단에 익숙해진다는 이점이 있다.
편곡에 이용되는 작품상의 기법은 대부분 극히 단순한 것이었다. 멜로디가 일치
(unlso온하거나 하모니로 연주된 후 임프로비제이션이 계속되고 배경에는 리듬 색
션과 다른 앙상블 멤버를 위해 씌여진 부분이 따라온다. 멜로디와 반주되는 부분
은 밴드의 한 섹션에서 다른 섹션으로 건너가며, 결국 색소폰 섹션이 A섹션을 불
면 브라스 파트가 브릿지를 맡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팝 곡에는 멜로디에 이것이
테마로 하여 바리에이션을 준 편곡이 많은데 그 중에는 솔로 임프로비제이션을 옮
겨 쓴 것과 다르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것이 왜 많다. 그것들은 밴드의 한 섹선이
침묵을 지키고 있거나 반주를 하는 동안에 다른 한 쪽에 다리의 역할을 한다. 이러
한 식으로 할당된 부분이 서로 건네 주는, 즉 건너오거나 되돌려 던져 주는 느낌은
마치 한 섹션이 다른 섹션에 질문을 던지고 다른 쪽이 거기에 답하는 것처럼 들린
다. 이와 같은 수법은 세계 어느 음악 분야에도 볼 수 있는 것으로 (ca닌 and
response: 'question and ans er',또는antiphonal'스타일 등으로 불린다.
단순하고 짧게 되풀이되어 쓰이는 프레이즈를 '리프「웃긴'라고 부르는데 몇 몇
빅 밴드에서는 그들 스타일의 기본적인 요소로 사용된다. 종종 다른 리프가 밴드
의 각 섹션에 주어져 서로 번갈아 연주될 때도 있다. 서로 주고 받으며 연주되는
부분은 타이밍이 잘 맞으면 쾌적한 스윙감을 만들어끌어 좋은 임프로비제이션의
모티브가 될 수 있다. 때로는 전곡이 리프로 구성된 것도 있었는데 우디 허맨의
(Woodehopper's Ball)과 카운트 베이시의 (One O'Clock Jump),◎umpln at◎e
Woodsld쓿는 그러한 기법의 대표적인 예로 잘 알려져 있다(그 외에도 베이시의
(Taxi War Dance), (Doggin' Around)를 들어 보자).
스윙 밴드의 거장들(andlead rs)
훌륭한 스윙 밴드의 리더들을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은 이름을 떠올릴 수 있다.
플레처 헨더슨-카운트 베이시 -듀크 엘링튼-지미 블랜튼(Jimmy Blanton)-베니
굿맨-칙 웨브(Chick Webb)-캡 캘로웨이(Cab Calloway)-앤디 커크(Andy EGrk)
등이다. 그러나 이 장 이후에서는 특히 듀크 엘링튼과 그 아래에 있던 뮤지션들
즉, 쟈니 호지스,쿠티 윌리엄스(Cootie Williams),벤 웰스터,렉스 스튜어트
(Rex Ste'wart),그리고 카운트 베이시와 그 아래 있던 뮤지션들 오란 '핫 립스' 페
이지(Oran'Hot Lips' Page),벅 클레이튼(Buck Clayton),해리 '스위트' 에디슨
(퍼arry'Sweets' Edison),딕키 웰스(Dicky Wells),레스터 영,허셜 에반스
(HerschelEvans i등을 다루기로 한다.
플레처 헨더슨(Fletcher Henderson 1897--1952)-플레처 헨더슨과 듀크
엘링튼의 밴드는 초기 재즈와 스윙 시대에 재즈의 다리 역할을 했다. 두 밴드는 모
두 1920년대 초기에 만들어져 1930년대 후반에는 규모뿐만 아니라 음악적인 의미에
서도 보다 세련되어져 갔다. 초기 재즈부터 스윙 시대에 걸친 즉흥 연주자들의 대
부분은 헨더슨 악단에서 연주한 경험을 갖고 있었으며, 올스타를 모은다는 의미에
서 1940년대부터 60년대에 걸쳐 트럼펫 주자 마일즈 데이비스가 편성한 캄보와 비
교할 수 있다. 색소폰 주자이자 편곡자인 돈 레드맨(Don Redman)과 베니 카터,
피아니스트이며 편곡자인 헨더슨은 빅 밴드 편곡의 기본이 되는 여러 가지 기법을
만들어냈다(헨더슨과 콜맨 호킨스의 (The stampede)). 그의 스타일은 듀크 엘링튼
과 함께 빅 밴드 재즈의 커다란 하나의 흐름을 형성했다.
헨더슨의 편곡에 있어서 브라스와 색소폰은 대항 관계에 있다. 또 그는 '블록 보
이싱건lock vo굻ng) 기법을 완성시켰다. 블록 보이싱은 일련의 코드의 최고음을
멜로디에 배당하여 병행적으로 진행시키는 기법으로(바꾸어 말하면 다른 악기에
동일 코드의 다른 음을 맡기어 리듬에 관해서는 밴드 전체가 동일하게 연주하는
방법-이 수법으로 연주하면 사운드에 한층 두터운 맛이 난다. 헨더슨에 대한 평
가는 그의 편곡 (King Porter Stomp), (Blue Skies), (Down South Camp Meeting)
(Sometimes I'm Happy), (Tapanese Sandman), (Wrappln' It틴P),그리고 (When)
BuddahSmile쏘 등을 베니 굿맨의 빅 밴드에서 연주하여 더욱 높아졌다,
지미 런스포드(Jimmie Lunceford 1902--1947)-지미 런스포드는 자신
의 악기를 갖지 않았지만 가장 세련된 빅 밴드를 이끌고 있었다. 그는 임프로비제
이션보다 앙상블 쪽에 더욱 비중을 두었고, 플레처 헨더슨과 카운트 베이시는 임
프로비제이션을 보다 중시했다. 런스포드의 최대의 강점은 그의 밴드를 위해 편곡
을 써 주는 많은 편곡자를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월 허드슨(Will Hudson)-에디
휠콕스(Eddie Wilcox)-제랄드 월슨-사이 올리버(sy Oliver)등의 편곡자가 좋은
빅 밴드 편곡을 제공했다. 월 허드슨의 ◎azznocracy)와 (White Heat)(rWillie
Bryantand Jimmie Lunceford and Their OrchestrasJ),그리고 사이 을리버의
(swingin' 긴ptown)등은 이 밴드의 정밀한 앙상블 연주가 발휘되는 매력적인 작품
이며, 사이 올리버는 후에 트롬본 주자인 토미 도시 밴드에 뛰어난 여러 개의 편곡
을 제공한다. 또 런스포드 밴드는 스윙기의 가장 우수한 드러머인 지미 크로포드
(JinmyCrawford)를 갖고 있었다.
그외에도 많은 솔로 주자가 런스포드 악단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그중에서 리드
알토 색소폰의 월리 스미스(Willie Srmth)가 있다. 그는 쟈니 호지스나 베니 카터
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명알토 색소폰 주자이며 재즈 클라리넷에서도 신경지를 개
척했다. 트럼펫의 폴 웹스터(Paul Webster)-에디 톰킨스(Eddie Thompkins) 토
마스 스티븐슨(Thomas Stevenson)등도 크고 맑은 음색과 확고한 주관으로 뛰어난
솔로를 불었다. 런스포드의 트롬본 섹션의 리더였던 트러미 영(Trummy Young)도
평범한 솔로 주자는 아니었고 색소폰 주자 조 토마스(Joe Thomas)도 마찬가지이
다. 런스포드 밴드 연주의 특징은 트럼펫이 높은 음을 많이 쓰는 점◎igh trumpet
styl릿이다. 이 스타일은 빅 밴드의 사운드를 고조시키기 위한 수단으로서 눈깜짝
할 사이에 일반적인 방법이 되어 버렸다(엘링튼 밴드의 캣 앤더슨(Cat Anderson)
찰리 바넷과 스탄 켄튼의 밴드에 재적했던 메이나드 퍼거슨의 연주에 이 특징이
강하게 나타나 있다3. 19so년대의 빅 밴드 트럼펫 주자는 고음역을 내는 능력에 있
어 초기의 재즈 트럼펫 주자의 손이 닿지 못하는 수준에 오르게 되었다.
베니 굿맨(Benny Goodman 1909--1986) 클라리넷 주자인 베니 굿맨은
스윙 시대에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던 재즈 빅 밴드를 이끌었다(Carnegie
Hall JazZConcertJ ). 그의 밴드는 테크닉적으로 강렬한 인상을 주며, 또한 잘 스윙
하는 리더의 클라리넷 연주를 상품으로 했다(rThe Complete Benny Goodman Vol
11935J), 그는 또 스윙 시대의 유능한 게다가 혁신적인 플레이어를 채용, 스몰 캄
보 연주에서 특히 사람들에게 널리 어필되었다((sody and Soul), (I Found a new
Baby>,. 기타의 찰리 크리스찬(Charlie Christian)((Blues Sequence From Breakfast
Feud) ),피아노의 테디 윌슨((sody and Soul))은 그렇게 하여 각광을 받아 유명해
졌다,
굿맨을 크게 돋보이게 만든 플레이어에 테너 색소폰의 비도 무소(Vido M
트럼펫의 쿠티 월리엄스-버니 베리건(Bunny Berigan)-해리 제임스, 비브라하프
의 라이오넬 햄프튼(Lionel Hampton)((When Lights Are Low))등이 있는데 이들
은 그 후 자기 밴드를 이끌고 이름을 날린 사람들이었다. 굿맨은 또 드러머인 진
크루파를 솔로 주자로 발탁했는데 이것은 그때까지 단순한 타임 키퍼로서의 좁은
역할에서 드러머를 해방시키는 계기가 되었다((Rockil' Chair)). 크루파는 그 후
우상이 되어 많은 모방자가 나타나지만 리듬 섹션 플레이어로서 볼 경우에는 같은
시대의 드러머 조 존스(Jo Jones)나 시드니 캐틀렛과 비교하여 그다지 앞서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크루파의 리듬 섹션은 굿맨 악단 사운드에 강력한 파워
를 발휘했다. 굿맨 악단은 음악적으로 충분히 소화하여 리허설을 반복, 잘 스윙하
는 밴드였지만 카운트 베이시 악단이 갖고 있는 여유있고 릴랙스한 스윙감은 결여
되어 있었으며, '긴장감'의 면에서는 앤디 커크 악단보다 딱딱했다.
칙 웨브(Chick Webb 1909--1939)-드러머인 칙 웨브도 좋은 빅 밴드를
이끌고 있었다. 트롬본의 지미 해리슨(Jimmy Hanison),트럼펫의 태프트 조단
(Tatt Jo,dan),색소폰의 베니 카터와 힐튼 제퍼슨(Hilton Jefferson)은 모두 칙 웨브
에 발탁된 사람들이다. 그의 밴드의 보물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색소폰 주자이
자 작 편곡자인 에드가 샘프슨(Edgar Sampson)이다 (Stompin' at the Savoy),
(Don'tBe That Way), (Lullaby고 만lythm)등의 곡은 에드가 샘프슨의 작품이며,
모두 베니 굿맨에 의해 녹음되었다.
캡 캘로웨이(Cab Calloway 1907---가수 캡 캘로웨이의 밴드는 매
우 활발한 활동을 했던 밴드의 하나였다. 그의 그룹은 '핫껀ot)'한 밴드로 알려져
있었지만 엘링튼 밴드가 잘 사용한 물결치는 듯한 브라스 파트, 훌쩍거리며 우는
듯한 색소폰 파트의 스타일에 크게 영향을 받고 있었다. 비브라하프와 트롬본 주
자였던 타이리 글렌(Tyree Glenn)은 후에 듀크 엘링튼 밴드에 참가하지만 당초는
이 밴드의 일원이었다. 캘로웨이 악단의 리듬 섹션은 훌륭했다. 베이스 주자 밀트
힌튼(Mi-t Hilton)이나 드러머 코지 콜(Cozy Cole)이 재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트럼펫 조나 존스(Jonah Jones)나 디지 길레스피도 모두 캘로뛔이 악단에서 연주했
었다. 길레스피도 편곡을 제공하여 강렬하고 뛰어난 솔로를 연주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그가 커다란 역할을 담당하는 모던 재즈 탄생의 예고였다.
앤디 커크(Andy Kirk 1898---카운트 베이시 악단의 '릴랙스하면서
기분좋게 스윙하는 리듬 스타일'에 견줄 수 있는 밴드는 그다지 많이 존재하지는
않았지만 앤디 커크 악단은 그 적은 밴드의 하나였다. 커크의 악단은 베이스 밴드
정도로는 여러 가지 면에서 앞서 있지 않았고 우아함도 없었지만, 거드름 피우지
안는 분위기와 단순하고 매우 효과적인 편곡에 의한 연주는 베이시 밴드를 방불케
하였다. 이 밴드는 네 사람의 일급 솔로 주자를 갖고 있었다. 피아니스트 메리 루
윌리엄스(Mary Lou Williams),테너 색소폰의 딕 월슨(Dick Wilson),트럼펫의 해
를드 '쇼티' 베이커(Harold'shorty' Baker)와 하워드 매기(Howard McChee)이다.
'쇼티' 베이커는 가끔 듀크 엘링튼 밴드에도 참가했으며, 하워드 매기는 후에 모
던 재즈의 선두적 트럼펫 주자의 한사람으로 유명하게 된다. 작-편곡가겸 피아
니스트인 메리 루 월리엄스는 커크 악단의 작품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었으며, 후
에 하워드 매기와 마찬가지로 모던 재즈의 요소를 받아들여 하나의 스타일을 창출
했다. 그녀의 솔로는 지성이 바탕이 되어 부드럽고 유연성 있는 스윙감을 갖고 있
었다. 테너 색소폰의 딕 월슨은 힘차고 건장한 스윙 스타일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콜맨 호킨스 스타일과 아주 유사하지만 호킨스가 음악적인 아이디어를 대단히 풍
부하게 갖고 있었음에 비해 그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 딕 윌슨은 '스욉한다'는 점
에서 호킨스보다 릴랙스하고 여유있게 보였으며, 두 사람 모두 빠르고 세밀한 비
브라토를 쓰고 있었다. 딕 월슨은 허셜 에반스나 츄 베리(Chu Beny)보다 거친 음
질이 특징이었다.
글렌 밀러(Glenn Miller 1904--1944)-글렌 밀러 악단은 스윙 시대의 다
른 밴드와 마찬가지로 잘 스윙하고 거기에 지적인 솔로를 하는 즉흥 연주자가 많
이 재적하고 있었다. 밀러의 밴드는 아름다운 앙상블과 가수나 보컬 그룹의 반주
에 중점을 두었지만 테너 색소폰의 텍스 베네키(Tex Beneke),코넷의 바비 하켓
등은 매번 훌륭한 즉흥 연주를 해서 화제가 되었다. (strilg of Pear닐의 유명한 솔
로 부분을 하켓이 연주하고 있다는 것은 앞에서 말한 그대로이다.
토미도시(Tommy Dorsey 1905--1956)-토미 도시는 그때까지 없었던
매끈하고 맑은 음을 내는 트롬본 기법을 고안했다, 그◎ 고음부의 취법은 후에 명
트롬본 주자로 불리우는 사람들의 좋은 모델이 되었다. 어비 그린(Urbie Green)-
사이 젠트너(Si Zentner).칼폰타나(Carl Fontana)-빌 워트라스(Bill Watrous)등
이 도시의 뒤를 쫓아 두각을 나타낸 사람들이다. 그가 편성한 빅 밴드에는 테너 색
소폰의 부미 리치맨(Roomie Rlchman),트럼펫의 찰리 세이버스(Charlie
Shavers ). 사이 올리버 등 유명한 플레이어가 있었다. 사이 올리버는 토미 도시 밴
드비 수많은 편곡을 제공했다. (Easy Does It), (We'll Get It), (Opus I)은 모두
올리버의 작품이다. 도시는 또한 루이 벨슨(Lo us Bellson)버디 리치 -데이브 터
프와 같은 강력한 드러머의 리듬 섹션을 포함하고 있었다(rTh s Is Tommy Dorsey
Vol. 1, 2」, rThe Best of Tommy DorseyJ).
아티 쇼(Artie Shaw 1910---아티 쇼는 매우 혁신적인 생각을 갖고
있던 밴드였다. 보통 밴드의 악기 편성에 현악 4중주단(바이올린2,비올라1,첼로
1)을 첨가했으며, 그라머시 파이브(Gramercy 5,전화 교환에서 나온 명칭으로 실
제에는 Ci인 편성이었다)라는 캄보를 이끌었다. 아티 쇼는 자신의 밴드에서 연주하
는 곡의 일부를 작곡했으며, 특히 현악기를 위한 작품은 1936년에 있어서 혁신적인
것이었다. 또 그는 훌륭한 사이드맨이 많았는데 트럼펫의 '찻 립스' 페이지 -로이
엘드리지, 테너 색소폰의 조지 올드(Georgl Auld),피아니스트 쟈니 가니에리
(JohnnyGuarmen),도도 마마로사(Dodo Marmarosa)가 모두 그렇다. 아티 쇼의 인
기는 대단하여 1940년에 레코딩한 (Flenesi)는 거의 400만 매 이상이 팔리는 기록을
세웠다. 아티 쇼 자신은 완벽한 클라리넷 주자였으며 그의 음은 베니 굿맨에 비교
하면 보다 크고 매끄러웠고, 그의 솔로는 의욕적이고 모험적인 멜로디 라인이었
다. 그러나 그의 진보적인 기술에도 불구하고 멋있게 스윙한다는 점에서는 굿맨을
따르지 못했다('The Complete Artie Shaw Vol. ii, rThis Is Artie Show ).
스윙 트럼펫 주자(Swing Trumpeter)
로이 엘드리지(Roy Eldridge 1911---트럼펫의 로이 엘드리지는 스
윙 시대의 가장 진보적인 즉흥 연주자로 그는 종종 스윙과 모던 재즈를 연결하는
인물로 평가된다. 엘드리지는 매우 공격적인 스타일과 전례가 없는 트럼펫 테크닉
을 갖고 있었으며, 상상력 풍부한 음의 선택과 색소폰을 연상시키는 멜로디 라인
은 재즈 트럼펫 역사상 루이 암스트롱의 스타일에서 디지 길레스피에 의한 모던
어프로치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의 진보적인 화성에 판한 개념, 그리고 템포
를 취하는 방식과 매우 독특한 기법을 확실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1937년에 피아노
의 테디 월슨, 테너 색소폰의 츄 베리와 함께 녹음한 (Blues in C-Sharp Minor)
Critics'Choice_l)를 들어 보면 좋을 것이다. 디지 길레스피가 캡 캘로웨이
밴드에서 연주한 작품은 로이 엘드리지의 영향 을 강렬하게 받고 있음을 보여 준다
로이 엘드리지는 음질이나 음량, 비브라토를 창조적으로 변화시켰다. 때로는 맑
고 따뜻하게, 때로는 섬세하고 예민하게 다양한 변화를 준다. 그의 트럼펫의 고음
부는 압도적인 폭을 갖고 있었으며, 고음부의 불기 시작하는 부분과 싱커페이션
부분에는 이윽고 새로 출현하는 모던 재즈의 음악적 변화를 암시하는 리듬감이 느
껴진다(베니 카터와의 (I Can't Believe That You're in Love With Me)). 그는 여
러 빅 밴드에서 인기있는 솔로 주자로 두드러지게 되었다(플레처 헨더슨 악단, 진
크루파 악단, 아티 쇼 악단). 1941년 진 쿠루파의 빅 밴드에서 레코딩한 (After
You'veGone)( rDrummm' ManJ)에서의 찬란한 연주는 한번 들을 만하다(그외
rThe Early YearsJ). 그가 창조적인 음악 활동을 한 것은 1936년부터 1941년에 걸쳐
서 였지만 1980년대를 통해 계속 연주 활동을 하였다.
찰리 세이버스(Charlie Shavers 1917--1971)-찰리 세이버스 또한 뛰어
난 기량의 소지자로 스윙 시대의 화려한 트럼펫 주자였다. 그는 섬세한 음과 빠른
비브라토가 특징으로, 리듬적으로는 벅 클레이튼이나 '핫 립스' 페이지와 같은 느
긋하게 여유가 있는 취주법은 아니었다. 세이버스는 환은 음으로 단계적인 프레이
즈를 불거나, 보다 자극적인 효과를 내기 위해 갑자기 고음부로 이동턴는 임프로
비제이션을 했다. 1940년대 중반부터 후반에 걸쳐 토미 도시 악단에 재적했던 무
렵, 그는 이미 색소폰적인 프레이즈와 고음끌 사용하여 모던 재즈적 경향을 나타
내는 트럼펫 연주를 하고 있었다.
프랭키 뉴튼(Frankie Newton 1906--1954)-스윙기에는 우수한 트럼펫
주자가 많이 출현했다. 그 중에는 독창적인 즉흥 연주자임에도 불구하고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도 왜 있는데 프랭키 뉴튼도 그중 한 사람이다(rswing on
52nd St-eet_l 'TNnpet Holiday ), 그의 스타일의 중요한 특징은 음색을 자유 자재
로 변화시키는 것으로 뮤트를 여러 가지로 변화시켜 부착하거나, 비브라토 속도를
변화시켜 음색상 여러 효과를 내는 것을 좋아했다. 해리 '스위트' 에디슨도 뛰어
난 트럼펫 주자이다. 그는 뮤트를 여러 가지 사용하여 음의 변화를 주었지만 거기
에 대한 정열은 뉴튼 쪽이 훨씬 컸다. 뉴튼의 연주는 짧은 프레이즈와 동일음을 반
복하여 사용하는 특색이 있었으며, 그 점에서 길게 깊이 있는 멜로디 라인을 연주
하는 로이 엘드리지와는 상당히 틀리다. 뉴튼은 테크닉면을 초월하여 순간적으로
로이 엘드리지에 필적하는 음악적 아이디어가 번뜩일 때가 있지만, 엘드리지 정도
의 큰 음을 내지 못했고 음악적 아이디어도 지속시키지 못했다.
버니 베리건(Bunny Berigan 1908--1942)-스윙기에 최고로 유명했던 트
럼펫 주자로 버니 베리건이 있다. 1937년 (I Can't Get Started)의 솔로는 매우 많은
사람들에 게 사랑을 받았고, 토미 도시 악단에서 레코딩한 (Man쓱의 임프로비제이
션은 악보에 옮겨져 많은 밴드의 편곡으로도 쓰였다. 베리건은 매우 기량이 좋은
트럼펫 주자로 매우 투명한 음색과 상큼한 연주로 저음역에서도 고음역에서도 음
질이 변화되지 않고 긴장감 있는 음으로 멋진 플레이를 전개했다. 그의 플레이는
여유가 넘쳐 흐르고 자신이 가득 차 있어서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쉽게 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베리건 솔로의 기본적인 개념은 확실히 루이 암스트롱의 기법을
답습하고 있다
스윙 색소폰 주자(Swing Saxophonist)
콜맨 호킨스(Coleman Hawkins 1904--1969) 콜맨 호킨스는 색소폰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가 1920년대의 재즈 신에 등장하기 전에는 색소폰이 라는 악기는 희귀하고
새로운 악기라는 인식 정도밖에 없었다. 거기에 호킨스가 깊이 있는 허스키한 음을
이 악기에서 끌어냄으로써 색소폰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으며, 그 이후에는
재즈의 가장 인기있는 악기의 하나가 되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테너 색소폰이야
말로 재즈의 특징이라고 할 정도다. 호킨스는 그 자신이 악기에 익숙해 있을 뿐
아니라 코드 진행에 관해 앞선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의 멜로디
라인은 한 곡의 화음이 복잡한 구조를 전부 반영해 내고 있다, 그의 1939년 작품
(Btdy and Soul)에서 볼 수 있는 복잡한 코드 체인지는 스스로 이해 한 후 그것을
분해하고 거기에 들어있는 맛을 내어 그 자신의 즉흥 라인을 재구성
한 것이다. 1940년대, 50)년대의 모던 재즈 플레이어는 하모니와 코드 진행에 대해
고도의 지식을 갖고 있었지만 호킨스와 같이 1920년대나 30년대에 그와 같은 지적
이해도를 보이는 솔로를 전개한다는 사실은 대단히 예외적인 일이었다.
1923년부터 1934년까지 호킨스는 플레처 헨더슨 악단의 중요한 솔로 주자로서 활
약했고 그 후로는 대체로 작은 그룹에서 연주했다. 그는 스윔 시대에 속하는 뮤지
션이면서 1940년대 모던 재즈 세션에서도 활약하여 존경을 받았다. 모던 재즈의 솔
로 주자로서는 조금 부드럽고 유동적인 스윙감이 결여된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지
만, 어려운 코드 진행에 대한 깊은 이해와 기량을 갖고 있어서 보다 새로운 재즈
스타일에 아주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그의 곧 넘쳐 흐를 것 같은 에너지는 수
년간 막힘이 없이 중도에 끊이지 않고 계속 솟구쳐 나왔다. 호킨스는 재즈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변하지 않고 밀도 짙은 연주를 계속한 위대한 색소폰 솔로 주자로
그와동세대의 스윙기 플레이어, 예를들면 츄베리,벤 웰스터 ,돈바이어스(Don
Byas)-딕 월슨-허셜 에반스 등에게 영향을 주었을 뿐 아니라 모던 재즈의 색소
폰 주자인 소니 롤린스나 존 콜트레인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그의 영향력은 1950년
대 이후에는 그다지 크지는 않았지만 연주자로서는 변함없이 왕성한 활동력을 보
였고, 1969년 타계하기까지 정력적으로 연주 활동을 계속했다.
츄 베리(Chu Berry 1910--1941)-츄 베리 또한 위대한 색소폰 주자였다.
클맨 호킨스의 영향을 받았고 호킨스와 마찬가지로 플레처 헨더슨의 밴드에서 연
주한 적도 있었다. 그는 호킨스에 비해 훨씬 부드럽고 균형 잡힌 톤을 갖고 있었으
며 호킨스에 비해 보다 우아하게 스윙했고, 그 멜로디 라인은 훨씬 간결했다. 츄
베리는 캡 캘로웨이의 빅 밴드에서의 임프로비제이션으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
게 되었다.
돈 바이어스(Don Byas 1912--1972)-돈 바이어스는 레스터 영과 마찬가
지로 진보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던 스윙 시대의 테너 색소폰 주자이다, 그는 1910
년대 후반의 모던 재즈 시대에도 다른 색소폰 주자와 어깨를 견주며 활발한 활동
을 했다. 바이어스는 호킨스가 먼저 취했던 화성의 진보적인 부분을 받아들이고,
아트 테이텀의 복잡한 피아노 스타일을 가미하여 자기 스타일을 창조해냈다. 바이
어스는 불과 같은 정열, 뛰어난 테크닉과 하모니에 대한 지적인 해석, 그리고 맬로
디를 만드는 데 있어 대담성이라는 중요한 자질이 갖추어져 있었다, 그는 '더블 타
임'으로 연주하거나 각 코드의 모든 음을 사용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더욱 중요한
것은 그가 한 곡에 대해 새로운 코드를 덧붙여서 그 새로운 코드와 오리지널 코드
의 양쪽을 사용해 임프로비제이션을 한 것이다. 그의 풍부한 멜로디 라인은 1950년
대의 모던 재즈 색소폰 주자에 필적한다.
바이어스는 호킨스보다 훨씬 느긋하게 스윙했지만 1940년대 후반의 모던 재즈
플레이어나 레스터 영만큼 아주 여유있는 것은 아니었다. 바이어스의 스타일을 스
윙에 렇어야 할지 모던 스타일에 넣어야 할지를 확실히 분류하는 것은 굉장히 어
렵다. 사실 그의 최고의 솔로 연주 중 몇 개는 트럼펫 주자 디지 길레스피의 모던
재즈 캄보와 함께 1940년대 중반에 레코딩한 것이다. 스윙기에 녹음된 가장 경이적
인 작품 가운데 두 곡을 꼽으면 1945년에 바이어스가 베이스 주자 슬램 스튜어XMDHK
함께 연주한 (IndianaS와 (I Got RhythnS을 들 수 있는데 이 곡들은 그의 음악적
창조력이 최고로 발휘되고 있던 시기에 만들어졌다. 바이어스의 스타일은 모던 테
너 색소폰 주자들에게 영향을 주어 럭키 톰슨(Lucky Thompson)이나 베니 골슨 등
의 스타일의 원형이 되었다. 바이어스는 그후 수 십년간활동턴다가1972년 타계
했다.
베니 카터(Benny Carter 1907--)- 베니 카터는 월리 스미스나 자니
호지스와 함께 스윙 시대의 최첨단을 걷던 알토 색소폰 주자이다. 카터는 호지스
와 같이 풍부하고 깊은 맛이 있는, 그러면서 완벽하게 조절된 톤을 갖고 있었으나
((I Can't Believe That You'le In Love With Me))리듬 스타일에서는 두 사람이
다른 스타일을 취했다. 카터는 박자를 정확히 레가토의 8분 음표로 나누었으나 호
지스는 더욱 자연스러운 리듬감을 갖고 있어 실제 연주에 있어서 박자에 대한 각
음의 배치도 명확하지 않았다. 두 사람의 연주에는 풍부하고 호화로운 느낌이 있
는데 카터의 경우 그것은 구성적으로 일목 요연한 것이지만 호지스의 경우는 두드
러지지 않고 매우 미묘하다. 호지스는 악센트를 놀라울만한 독창적인 수법으로 사
용함으로써 초기 재즈 플레이어와 스윙기 플레이어에 비해 훨씬 앞서 있었다. 그
의 악센트 스타일은 비범하고 독창적이었으나 극히 여유 있고 자연스럽게 들렸다.
호지스도 카터도 모두 경쾌하게 스윙했으며 카터의 지적이고 풍부한 하모니 감각
의 솔로는 모던 재즈 알토 색소폰 스타일의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카터는 동시에
훌륭한 트럼펫 주자이자 클라리넷 주자이며 또 일류 편곡자였다. 그는 그 자신의
밴드는 물론이고 여러 좋은 밴드에 편곡을 제공했다. 플레처 헨더슨 악단 -맥키니
스 카튼 피커즈(McKinney's Cotton Pickers)-베니 굿맨 악단-칙 웨브 악단, 그리
고 19②년대 카운트 베이시 악단에 편곡을 해 주었다('Kansas City S ute , (The
LegendJ ).
일리노이 자켓(Illionis Jacquet 1922---스윙 시대의 끝 무렵(1940
년대 초기) 테너 색소폰 주자 일리노이 자켓이 훌륭한 고음 주법을 갗고 등장했다.
한때는 '이런 것은 음악이 아니다. '라고 일부 감상자가 생각하던 고음 주법이 1960
년대1970년대의 많은 선두적인 색소폰 주자, 특히 앨버트 아일러나 존 콜트레인
에 있어서는 그야말로 중요한 기법이 되었다. 아일러나 콜트레인은 이 기법을 자
신들의 솔로에 더욱 이론적으로 빈틈없이 짜 넣었다. 자켓은 허셜 에반스나 딕 윌
슨과 같은 무겁고 어두운 음으로 자기 음악을 만들고 있지만, 때로는 레스터 영풍
의 리듬이나 멜로디를 만들 때도 있었다. 그는 때때로 모던 재즈의 흐름에 속하는
플레이어로 분류되지만 사실은 스윙 말기의 스타일로 분류하는 것이 적당할 것이
다.
스윙 피아니스트긴wing.Pianist)
아트 테이텀(Art Tatum 1910N1956)-아트 테이텀은 재즈 역사상 가장 커
다란 존경을 받고 있는 피아니스트 중 한 사람이다((Willow Weep for Mej, (Too
Marvelous For Words)). 1940년대 이후에 출연한 모던 피아니스트, 특히 매우 빠
르고 독창성이 풍부한 어떤 피아니스트와 비교하더라도 그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힘과 능숙한 테크닉에서 테이텀은 정말로 위대한 존재이다. 그의 스타일은 스트라
이드 피아노 주법의 요소와 관악기적인 솔로 라인을 결합시킨 것이다. 테이텀의
연주는 매우 화려하며 속도가 빠른 일련의 음이 길게 계속되면서 때로는 서로 중
복되며 흘러 간다. 그는 모던 재즈의 발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인물로 팝 곡에
자연스럽게 코드를 첨가하거나 바꾸어 연주하기도 했다(결국 팝을 재즈의 소재로
했다).
빠른 음의 라인과 코드를 덧붙여 가는 테이텀의 방식은 스윙에서 모던 재즈로
옮겨 가는 과도기에 특출했던 또 한 사람의 스윙 시대 플레이어인 테너 색소폰 주
자 돈 바이어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테이텀은 또한 혁신적인 모던 재즈
피아니스트인 버드 파웰과 레니 트리스타노에게 영향을 주었다. 이 두 사람 모두
1950년대 이후 수많은 피아니스트에게 영향을 주었는데 특히 오스카 피터슨은 테
이텀과 파웰 두 사람에게서 테크닉을 얻었다. 피터슨은 테이텀과 종종 비교되는데
그것은 사운드가 비슷하기 때문이 아니라, 테이텀의 큰 특징인 강렬한 속도와 힘
에 피터슨이 다른 누구보다도 가깝게 접근했기 때문이다.
피터슨도 그렇지만 테이텀은 밴드를 주체로 활약한 피아니스트는 아니고 반주
없이 독주자로서 그리고 피아노, 기타, 베이스 캄보의 리더로서 열주가 이루어졌
다. 테이텀과 많은 레코딩을 함께 했던 베이스 주자 슬램 스튜어트는 테이텀의 멜
로디의 복잡한 비약과 발전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유능한 반주자이자 우수한 타
임 키퍼이며, 또한 독창적인 솔로 주자였다. 솔로를 할 때 그는 종종 활로 현을 타
면서 그 멜로디와 동일하게 혹은 옥타브에서 동시에 허밍했다. 목소리와 베이스의
조화는 거친 감촉과 일종의 독특한 음색을 자아냈다(돈 바이어스와의 (I Got
Rhythm) ), 그는 유머스럽게 음에서 음으로 미끄러져 갔지만 스윙하는 관악기 주자
에 지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멜로디 센스를 항상 펼쳐 보였다.
테디 윌슨(Teddy Wilson 1912--1986)-아트 테이텀을 제외하면 테디 윌
슨이 다분히 스윙 시대의 가장 혁신적인 피아니스트일 것이다. 그는 또한 모던 재
즈의 발전에도 큰 공헌을 했다. 사실 그의 보다 가벼운 멜로디 라인은 모던 피아니
스트 알 헤이그-행크 존스(Hank Jones)-토미 플라나간(Tommv Flan뿔ani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는 아트 테이텀보다도 크다고 할 수 있다. 윌슨
은 파플러 음악의 피아니스트처럼 화려하고 달콤하게 연주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굳이 관악기적인 라인을 창조하여 연주했다. --리고 얼 하인즈적인 최상의 음악성
을 갖추고 세련되게 마무리했다. 윌슨의 1936년 작품 (Blues In C-sharp Minor)
('Teddy Wilson and His AU StarsJ)는 정확한 터치와 지성적인 피아노 스타일의 뛰
어난 앙상블이다. 윌슨 연주의 전체적인 느낌은 초기 재즈나 스윙기의 무거운 분
위기가 부드러워지고, 모던 재즈 피아노의 솔로 주법이나 콤핑 주법이 갖는 간결
한 유려함에 길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던 사운드라고 할 수 있다.
윌슨은 베니 굿맨의 스몰 캄보의 중요한 솔로 주자였으며 또한 자신의 밴드도
가지고 있었다((sody and Soul)). 아트 테이텀도 그러했지만 윌슨은 보통 칵테일
라운지에서 연주한는 피아니스트로 종종 착각되어 칵테일 피아니스트의 분류◎ 간
주되는 수가 있는데, 그것은 그의 연주 스타일이 어느 정도 유려하면서도 상쾌함
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트 테이텀이나 윌슨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칵테일
피아니스트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 자신은 칵테일 피아니스트는
아니었다. 1930년대와 40년대의 윌슨과 테이텀의 레코드를 들으면 곧 알 수 있듯이
충실한 멜로디, 다양한 내용, 스윙감, 그리고 세련됨은, 중복되는 부분은 있으나
그들을 추종하는 많은 피아니스트가 도저히 미치지 못할 정도로 뛰어났다.
냇 '킹' 콜(Nat'King' Cole 1917--1965)-스윙기부터 모던 재즈의 과도
기에 중요한 인물에 냇 콜과 에를 가너(Erroll Garner)가 있지만 1940년대 초엽의
그들 연주에는 확실히 얼 하인즈의 테크닉의 영향이 엿보인다. 모던 재즈 이전의
음은 화려하게 펼쳐지지만, 아무래도 경쾌함은 부족한 스타일이 많았다. 그러나
냇 콜은 그런 스타일과는 확실히 다른 경쾌한 플레이를 들려 주었다. 그는 관악기
적인껀ornlik끗 멜로디 라인을 대폭적으로 받아들였으며, 그와 같은 방식을 취했던
피아니스트 중에서도 가장 빨리 자신의 스타일을 확립한 피아니스트로 후에 콤핑
이라고 알려지게 되는 스타일을 확립했다('Tno DaysJ). 콤핑은 반주의 한 스타일
로 코드를 간결하게 안에서부터 터져나오는 싱커페이션으로 연주하는 것이다. 오
스카피터슨,빌 에반스-호레이스 실버 등의 피아니스트는 자신들이 음악을 처음
시작할 무렵에 냇 콜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
고 있는 이상으로 각 방면에 파플러 가수가 되고부터 사람들은 그의 피아노 스타
일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게 되었지만 파플러 가수가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스
타일을 무시해 버리는 것은 좋지 않다.
에를 가너(Erroll Garner 1923--1977)-에를 가너는 재즈 피아노 역사상
매우 특별한 인물이다. 그를 스윙 시대에 넣어야 할지, 혹은 모던 재즈 뮤지션으로
분류해야 할지는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사실 그는 모던 재즈가 일어날 때 많은 청
중을 모았고 또한 모던 재즈를 탄생시킨 색소폰 주자 찰리 파커와 레코딩까지 했
다. 가너의 오른손 옥타브 주법과 리듬에 대한 개념에는 분명히 얼 하인즈의 영향
이 느껴진다. 그러나 가너는 더욱 독특한 다른 면이 있는데 왼손은 리듬 기타가 하
는 것처럼 각 박자에 한 코드를 치지만 그 코드는 약간 늦게 치는 기분으로 연주된
다. 가너의 피아노는 어떤 경우에는 한층 풍부하여 꼭 오케스트라 같아서 재즈라
기보다 20세기 클래식, 즉 프랑스 인상파의 클로드 드뷔시나 모리스 라벨의 음악
과 비슷하다.
밀트 버크너(Milt Buckner 1915--1977)-밀트 버크너는 블록 코드견lock
chor민의 사용, 또는 록 핸드 스타일낀ocked-hands styl릿로 비록 멜로디 라인의 혁
신적인 창조자로서 두드러지지는 않았지만, 1940년대 피아니스트에 영향을 주었
다. 이 스타일은 피아니스트가 코드를 병행해 쳐 가는 것으로 멜로디의 각 음에 대
해 하나의 코드를 대치해 가는 것이다. 이 주법은 한쪽 손으로 단음 멜로디를 치고
다른 손으로 필요에 맞게 코드를 치는 스타일과는 대칭적인 주법이다(라이오넬 햄
프튼의 'Steppm' Out Vol.l ).
록 핸드 스타일에서 피아니스트는 양손이 마치 붙어버린 것처럼 모든 손가락으
로 동시에 피아노 건반을 두들긴다. 1940년대 후반에서 50년대 초반 사이에 레니
트리스타노 조지 쉬어링 아마드자말(Ahmad Jamal)-오스카피터슨과그 외 피
아니스트들, 그리고 레드 갈란드(Red Garland)와 빌 에반스가 1950년대 후반에 이
테크닉을 사용했다. 1960년대에는 댁코이 타이너를 포함한 수많은 피아니스트가
블록 코딩 주법을 사용했다. 각각의 피아니스트의 특징은 이 블록 코딩 테크닉에
따라, 특히 각 음의 배치 방식에 따라 정해졌다. 제임스 P-존슨-윌리 '더 라이
온' 스미스- the Lion' Smith)등 초기 피아니스트는 스트라이드 스타일
(stridestyl릿의 형성에 공헌했다. 얼 하인즈는 관악기적인 멜로디 라인 연주 스타
일의 선구자였으며, 미드 럭스 루이스 -파인톱 스미스 카우 카우 다벤포트 등은
부기 우기를 가장 먼저 도입한 사람이다. 아트 테이텀은 한 곡에 대해 다른 코드를
붙이는 주법을 전개했다. 그리고 밀트 버크너는 록 핸드 스타일을 생각해내어 모
던 재즈 피아니스트가 사용하는 기법의 종류를 확장시킨 것이다.
스윙 기타리스트(Swzng Guitarist)
찰리 크리스찬(Charlie Christian 1916--1942) 스윙기가 전개됨에 따라
기타의 지위는 리듬 섹션에서 단순히 박자를 맞추는 역할뿐 아니라 그 이상의 것
으로 생각되기 시작했다. 그러한 인식의 변화에 공헌한 인물로 찰리 크리스찬과
장고 라인하르트(Django Reinhardt)가 있다. 찰리 크리스찬은 그때까지 거의 미개
척 세계였던 전기 기타 분야를 개발시켰다, 그의 스윙하는 긴 멜로디 라인은 모던
재즈 기타리스트들의 모델이 되었으며, 그의 프레이즈에는 흐르는 듯한 스윙감과
테너 색소폰 주자인 레스터 영과 같은 신선함이 들어 있다('Solo Flight-The
GeluuSof Charlie ChnstianJ). 찰리 크리스찬은 베니 굿맨의 캄보 및 빅 밴드에서
눈에 띄는 활동을 했는데((Blues Sequence From Breakfast Feud)i,그의 작품에서
입수 가능한 것으로는 모던 재즈 트럼펫 주자 디지 길레스피와 피아니스트 셀로니
어스 몽크(TheloIllous Monk)와의 잼 세션의 아마추어 레코딩이 몇 개 있다. 크리
스찬은 1942년 27세로 세상을 떠났지만 불과 3년 동안 다른 플레이어에 지대한 영
향을 주고 있다.
장고 라인하르트(Django Reinhardt 1910--1953)-장고 라인하르트는 벨
기에의 집시 기타리스트였다. 그가 모던 재즈 기타에 미친 영향력은 찰리 크리스
찬에 결코 뒤지지 않을 정도로 컸다. 라인하르트는 미국을 단 한번 방문했고 프랑
스를 기본으로 대개 유럽에서 연주했지만, 그의 레코드는 미국에서도 입수가 가능
했다. 라인하르트 이전의 대부분의 재즈 기타리스트도 솔로를 하기는 했지만 그것
은 짧게 코드화된 솔로(chorded sol잇였고 피아노나 관악기의 솔로와 비교하면 극
히 간소했다. 라인하르트의 기타에 대한 테크닉은 피아노의 거장 아트 테이텀에
필적할 만한 것이다. 사실 두 사람 모두 속도가 빠르고 화려한, 게다가 말끔하게
정리된 라인을 치는 것을 좋아했다. 라인하르트 연주의 특징은 매우 특징적인 비
브라토로 장식되어 있는 것으로 그는 집시 음악의 분방한 맛과 활기 있는 재즈를
결합시켰다('Panslan Swingr). 그의 연주는 어떤 경우 그 멜로디 라인에 있어서
대작곡가의 지성을 보일 때가 있으나, 또 어느 경우에는 단순히 화려한 장식 악구
(연주에 의해 덧붙여지는 화려한 장식적 프레이즈)의 연속일 때도 있다. 위대한
모던 재즈 알토 색소폰 주자인 찰리 파커와 마찬가지로 라인하르트는 때때로 인생
그 자체를 초월한 음악을 만들어냈다.
라인하르트가 미국의 뮤지션에까지 끼친 영향은 그때까지의 전형적인 패턴을 완
전히 역전시킨 것이었다. 즉 원래 미국의 예술인 재즈는 미국으로 수입되는 것이
아니고 단지 수출만 되고 있었다. 물론 1920년대 이후 유럽에 훌륭한 재즈 뮤지션
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바이올린의 스테판 그라펠리(Stephane
Grappelli).장 룩 폰티(Jean Luc Ponty)-퍼아노의 벤크트 할베르크(Bengt
Hallberg ).마샬 소랄(Martial Solal),베이스의 닐스 혜닝 오스테드 페텔슨
(Niels-딘en lsted Pedersen),트롬본의 앨버트 맨겔돌프(Albert Mangelsdorff),
테너 색소폰의 터비 헤이즈(Tubby보ayes), 로니 스코트(Ronnie Scott)등). 그러
나 미국의 플레이어에 영향을 준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보다 정확하게 말하
면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에 걸쳐 유럽의 뮤지션, 예를 들면 오스트리아의 피아
니스트 겸 작곡가인 조 자비눌(Joe Zawinul)이나 체코의 베이스 주자 미로슬라프
비터우스(Miroslav Vitous)를 포함하여 몇 사람이 미국에 건너가 모던 재즈의 전개
에 커다란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라인하르트의 스타일을 어디에 분류해야 할지
는 어려운 문제이며, 그의 음악의 특징은 도저히 평범한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다
고 생각한다. 찰리 크리스찬의 활동기에 겹쳐 견주어 보면 라인하르트는 크리스찬
의 활동 및 그 이전, 즉 스윙기에 속하는 것으로 보여지나 그는 1940년대 후반부터
50년대 초기에 걸처 모던 재즈 정신에 뛰어들고 있었다.
5 듀크 엘링튼(Duke Ellington)
1899.4.29 - 1974.5.24
-나는 현대 감각을 표현하거나 미래 지향적인 일을 바라고 있
지 않지만, 과거의 자작에 언제까지나 집착하고 있을 기
분도 없다. 어떤 시기를 상징한 나의 스타일로 다른 시기에 연
주한다는 것은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자기 혼자 높은 산에 올
라가 다른 인간들을 내려다 보겠다는 등의 야심도 전혀 없다.
그와 동시에 미치광이 같은 음을 내건, 바보의 비웃음 같은 음
을 내건, 신을 찬양하는 노래를 쓰건 간에 그것은 나 자신의 권
리이며, 이 권리를 침해당하는 것 또한 좋아하지 않는다. 청중
에 대한 표현과 전달의 자유야말로 다른 모든 미국의 아티스트
와 함께 내가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권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
Duke Elllngton-
듀크 엘링튼은 재즈 역사상 가장 걸출했던 인물로 수많은 재즈 뮤지션과 재즈
저널리스트가 공통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는 단순히 밴드 리더이자 피아니스트가
아니며 재즈 역사상 가장 창조적이고 가장 많은 작품을 남긴 작, 편곡가이다. 그
는 천여 곡 이상의 곡을 썼지만 거기에 편곡하고 또 재편곡했던 것을 고려하면 훨
씬 많은 천오백 이상의 작-편곡수가세어진다. 그가작,편곡으로 두각을 나타낸
것은 1920년 이전으로 그것은 타계하는 1974년까지 쉴틈없이 계속되었다. 1970년대
후반까지 레코드 회사가 재수록한 과거의 앨범을 넣지 않아도 150매 이상의 앨범
이 발매되어 있다.
피아니스트(Pianzst)로서의 역할
듀크 엘링튼의 피아니스트로서의 재능은 그의 위대한 전재능의 극히 작은 부분
이었지만, 그것은 제임스 P.존슨이나 월리 '더 라이온' 스미스가 사용하던 두들겨
대는 스트라이드 주법◎ercussrve stride styl릿을 도입한 화려하고 독특한 연주였
다. 반주자로서의 그는 편곡 악보 중의 주요한 프레이즈를 눈에 띄도록 프론트 라
인에 끌어내거나, 그의 사이드맨의 솔로를 부상시키기 위해 수수한 연주를 하기도
했다. 엘링튼의 피아노 연주는 생명력(vitarity)과 상상력(Imagination)이 넘쳐 흐
르고 있었다.
작곡가(Compose)로서의 역할
엘링튼은 많은 곡을 작곡했다. 그 곡들은 쉬운 멜로디에 가사가 있는 곡으로 매
우 유행했던 파플러 송이다. 예를 들면 (satil Doll), (Sophisticated L , (I'm
Beginni tosee the Light), (Solitude), (Mood Indigo), (Don't Get Around Much
AnymoIi쏜 등이며 기타 수백 곡의 3분짜리 기악곡이 있는데 (Concerto for Cootie),
(In a MellotOne), (Black and Tan Fantasy)등이 그것이다. 그가 이와 같은 짧은
파플러 송이나 3분짜리 곡을 쓴 이유는 78회전 레코드의 한 면에 수록될 수 있는
시간이 약 3분간이었기 때문이다. 1950년대 초반까지는 78회전 레코드가 녹음의 주
류를 이루었던 것이다. 물론 그는 긴 작품도 썼으며((Creole Rhapsody),
(Rermniscilnin Tempo), (HarlemS, (New Wol a' Comin')),미국 흑인의 역사
에 대응하는 50분짜리 대작 (Black, Brdwn and Belg쏜도 썼다.
또 엘링튼이 작곡하고 그의 밴드가 연주한 영화 음악이 몇 곡 있다. Pans
Bluesa, PAnatomy of a Murdeu, phalt Jungl , rAssault on a QueeI , hange
of Min◎ 등이다. 엘링튼의 작품에는 실제 인물을 묘사한 것도 있다. (Bojangles)
(유명한 흑인 탭 댄서인 빌 로빈슨(Bill Robmson)l, 01 Portr t of Bert Williams)
(유명한 흑인 희극 배우), (Portrait of Ella Fitzgerald), (The Shepherd Who
Watches Ove, ◎e Nipht Flock)[존 젠슬(John Gensel)], (Portrait of◎e Lion)(윌리
'더 라이온' 스미스, 위대한 스트라이드 피아노 주자) 등의 곡이다. 또 어떤 작품
에서는 한 '장소'나 '감정'을 묘사하고 있다((Warm Valley), (Transbluency),
(Harlem AirShaft등). 엘링튼은 또한 전체 연주 시간이 11분 30초인 (Perfume
Sui클를 작곡했는데 이 곡은 판매되는 여러 가지 상표의 향수를 묘사한 것이 아닌
향수를 뿌린 여성이 그 향수의 종류에 따라 풍기는 분위기를 묘사한 조곡이다. 그
는 또 계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소네트의 감동을 한 매의 앨범에 담은
'Such SweetThundelJ를 발표하기도 했다.
재즈 뮤지션이라면 누구라도 일생에 적어도 한번은 듀크 엘링튼의 작품을 연주
한다. 엘링튼이 재즈 뮤지션으로부터 어느 정도 존경을 받고 있는지는 그의 작품
이 다른 뮤지션에게 준 영향이나 그의 작품이 연주되는 횟수를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셀로니어스 몽크-맥코이 타이너 , 케니 버렐(Kenny Burrell).오스카 피터
슨' 앙드레 프레빈(An◎e Previn)-치코 해밀튼(Chlco Hamilton). 데이브 브루벡
(Dave BntbeCk)은 모두 엘링튼의 작품으로 앨범을 만들었다. 또 작. 편곡가인 클
레어 피셔(C1are Fischer)와 트럼펫 주자인 디지 길레스피가 엘링튼의 곡으로 공동
앨범을 만들었다. 보컬 그룹 램버트, 헨드릭스 -로스(Lambert, Hendncks and
Ross)도 엘링튼의 유명한 녹음에서 임프로비제이션 부분을 인용하여 멜로디에 가
사를 붙이고 편곡, 한 매의 앨범을 만들었다.
엘링튼의 영향력은 실로 광범위하여 1960년대의 전위 테너 색소폰 주자인 아치
-프(ArchieShepp)조차 자신의 레코드에 엘링튼의 (In a Sentimental Mood),'
(Come SundaY), (Prelude to a Kiss), (Sophisticated Lady)등의 곡을 수록하고 있
다, 엘링튼에게 곡을 바쳤던 재즈 뮤지션도 수없이 많다. 찰스 밍거스의 (Duke 's
Choice>, (OPen Letter to Duk쏜와, 마일즈 -스의 (He Loved Him M ,
데이브 브루벡의 (The Duke)(이 곡은 1950년대에 그 자신이 녹음하고 1957년에는
마일즈 데이비스와 길 에반스에 의해 녹음되었다) 등의 작품이 잘 알려져 있다.
편곡 스타일(Arranging Style)
각 플레이어의 독특한 개성적인 사운드를 잘 이끌어내는 것도 명편곡자 엘링튼
의 위대한 능력 중 하나이다. 보통 편곡자는 편곡할 때 리드 트럼펫, 세컨드 트럼
펫, 서드 트럼펫의 형태로 막연히 각 악기 파트를 쓰고 있지만 엘링튼의 경우는
'캣 앤더슨 파트: '쿠티 윌리엄스 파트: '렉스 스튜어트 파트-와 같은 특정 플레
이어에 적합하도록 각 파트를 써 갔다. 그는 이 방법을 더욱 발전시켜 플레이어의
임프로비제이션 부분에서 반주의 앙상블을 그 플레이어의 개성과 잘 맞도록 아주
면밀하게 생각해서 썼으며, 그 결과로 만들어진 사운드는 매우 효과적이었다. 또
사이드맨의 솔로도 열심히 생각하고 마음을 쏟아 만들어져, 어느 부분이 편곡이고
어느 부분이 임프로비제이션인지 구별이 잘 가지 않을 정도로 완전한 것이 되었
다.
엘링튼은 소위 빅 밴드를 이끌고 있었다. 대개 빅 밴드는 10인에서 그 이상의 플
레이어로 구성되어 브라스 섹션(트럼펫, 트롬본 포함-색소폰 섹션, 리듬 섹션으
로 성립된다. 1940년 엘링튼 밴드의 색소폰 섹션은 알토 둘, 테너 둘, 바리톤 색소
폰 한 대의 구성이었으나 그 이전의 엘링튼 밴드는 색소폰 셋, 트럼펫은 하나나
둘, 트롬본도 하나나 두 대의 소편성이었다. 대부분의 색소폰 주자는 클라리넷을
불 수 있었고 바리톤 색소폰 주자는 베이스 클라리넷을 불기도 했다, 엘링튼 밴드
의 리듬 섹션은 그의 피아노 그리고 베이스, 드럼으로 이루어졌고 1947년까지는 리
듬 기타도 들어 있었다. 엘링튼을 포함한 대부분의 편곡자는 곡의 일부에 한 섹션
과 다른 섹션의 사운드가 맞붙는 부분을 쓰지만(예를 들면 색소폰 섹션과 브라스
섹션) 엘링튼은 때때로 밴드의 여러 섹션에서 쁩은 악기들로 구성되어 연주하는
부분도 곡에 삽입하였다. 이것을 -교질(scoring) dcross section씨라고 부른다.
1940년 작품 (Concerto for Cooti쏜에서 엘링튼은 관악 파트와 동일하게 피치카토
베이스 음표를 썼다, 같은 해의 CTck로e Bear>에서는 베이스 주자 지미 블랜튼이
피치카토 베이스로, 때로는 솔로로, 때로는 관악기 파트와 동일하게 연주하였다.
-보이싱 어크로스 섹션'은 1930년대와 40년대의 빅 밴드에서는 거의 생각할 수 없
는 것이어서, 베이스는 원래 리듬 섹션의 부분으로 관악 파트와 조화를 이루어 연
주하는 것은 거의 드문 일이었다. 1930년의 (Mood Indig꼬에서 엘링튼은 베이스
클라리넷과 뮤트 트럼펫, 뮤트 트롬본을 조합하여 보이싱(volnng,악보에 음표를
적는 것」을 했고 또 1950년대 후반에는 클라리넷(지미 해밀튼(Jimmy Hamilton)l
테너 색소폰(폴 곤잘베스-플루겔흔(클락 테리(Clark Terry)l의 구성에 대한 보이
싱으로 그때까지 듣지 못했던 훌륭한 사운드를 창출했다['Cosmle Scene_l,
(Newport Up)(rElli ton at Newport_l), (Idiom'59)(rFestiva Session_l)l, 때로는
편곡에 -가사 없는 보컬(r ordless vocal, mstrumentalized voice)'을 넣어 또 다른
독특한 음색을 창출, 자신의 편곡 세계를 보다 다채롭게 했다. 1927년 (Creole
Love C래>('This Is Duke Ellin양onJ), 1946년 (Transbluency), 1947년 (On aTur-
quoise Cloud-, 그리고 1968년 (Too Good to Titl쏜에서 이 '가사 없는 보컬'을 사
용하고 있다.
초기 엘링튼 밴드의 가장 중요한 활동의 하나는 뉴욕의 카튼 클럽에서의 연주였
다. 그 곳에서의 무대쇼는 jungle sounds'가 흥미거리였다. 이 '정글 사운드'를 만
들기 위해 엘링튼은 트럼펫 주자 바버 밀레이와(Bubber Miley)와 트롬본 주자 조
-트리키 샘' 낸튼(Joe'Tricky Sam' Nanton)과 합께 그로을 사운드◎rozol so n연
를 사용했다. 이 그로을 스타일은 뮤트를 사용하여 보통 부는 방법과는 다른 방법
으로 사운드를 창출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뮤트는 배관공의 플런저
◎lumbers p1tmger,흡인용 고무컵」 뮤트인데, 그로을 스타일에서는 이 뮤트를 관
악기의 벌어진 입 부분에 붙여 놓은 채로 두는 것이 아니고, 입에 덮어 씌운 후 연
주 중에 열었다 닫았다 한다. 때로는 벌어진 입 부분에 다른 뮤트를 부착하는 경우
도 있는데 이러한 방법에 의해 일종의 낮은 진동음이 생긴다. 밀레이와 찬튼은 이
방법으로 마치 사람의 소리와 같은 효과를 만들어냈다.
정글 사운드를 구성했던 또 하나는 클라리넷으로, 보통과는 다른 보이싱에 의해
그 효과를 냈다. 때로는 색소폰 섹션의 모든 멤버가 같이 클라리넷을 불기도 했다.
그 때 엘링튼은 각 플레이어에게 음을 할당해 주고 그 음은 결합하여 독특한 하모
니와 울부짖는 격렬한 감정의 효과를 나타냈다. 클라리넷에 의한 이러한 테크닉은
각 섹션에 걸친 보이싱의 독특한 방법과, 그로을 스타일의 사용과 함께 그의 지적
인 빅 밴드 편곡 스타일에 더욱 폭을 넓혀 주었다, 보이싱을 각 섹션에 걸쳐서 구
성하는 방법은 빅 밴드 편곡에 있어서 가장 잘 알려진 엘링튼의 테크닉이지만 그
는 또한 색소폰 섹션과 브라스 섹션이 맞붙어 연주하는 전통적인 빅 밴드 방식에
서도 독창적인 악보를 썼다, 1940년의 작품 (Cottontai◎의 제6코러스에서 그는 브
라스와 색소폰에 '질의 응답'을 시키고 있다. 그리고 사비(savv낀 부분에서 브라스
가 한창 연주할 때 색소폰은 침묵하며, 최후의 A섹션에서는 브라스와 색소폰이 함
께 멜로디를 연주한다. 편곡 전체를 바라볼 때 스윙 시대 빅 밴드의 전형적인 테크
닉이 사용되고 있지만 그것이 엘링튼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맛을 내며 연출되
었다.
다음은 (CottOntail)의 전개를 해설한 것이다.
(제1코러스)
A' 리듬 섹션을 수반하여 색소폰 섹션과 트럼펫 섹션이 멜로디를 연주한다.
A색소폰 섹션과 트럼펫 섹션에 의한 멜로디가 되풀이되고 트롬본 섹션 파트는
반주에 첨 가된다.
B. 색소폰 섹션이 음악적인 질문을 던지면 뮤트 트럼펫(쿠티 윌리엄스)가 거기
에 답한다.
[4소절의 간주)
이 부분은 리듬 섹션을 수반한 색소폰 섹션과 브라스 섹션의 짧은 대화로 구성
된다.
(제2코러스)
A-A테너 색소폰 솔로(벤 웰스터)가 임프로비제이션을 하고 리듬 섹션이 반주
한다.
B테너 색소폰이 브라스 섹션과 잠시 이야기한다.
A브라스가 떨어져 나가고 테너 색소폰은 리듬 섹션을 수반하며 계속 임프로비
제이션을 한다.
(제3코러스)
A-A' 테너 색소폰이 리듬 섹션을 수반하고 임프로비제이션을 계속한다.
B. 브라스가 돌아와 다시 색소폰과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A:브라스가 사라지고 테너 색소폰이 리듬 섹션을 수반한 임프로비제이션을 매
듭짓는다.
제4코러스)
A-A:리듬 섹션을 수반하며 브라스가 단독으로 연주한다.
B. 바리톤 색소폰 솔로(해리 카니(Hany Camey)l가 리듬 섹션을 수반하고 임프
로비제이션한다.
A피아노가 솔로로 임프로비제이션한다. 리듬 기타, 베이스, 드럼이 반주한다.
제5코러스)
A-A-B-A :색소폰 섹션이 리듬 섹션을 수반하고 전체 코러스를 연주한다.
(제6코러스)
A-A :브라스 섹션이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말을 걸고 색소폰 섹션이 웅답한다.
리듬 섹션은 반주한다.
B브라스 섹션의 음이 점점 커져 우위에 서고 리듬 섹션도 활발하게 움직인다.
A색소폰과 트럼펫은 리듬 섹션을 수반하고 멜로디의 종결로 향해 연주한다.
트롬본은 침묵한다.
엘링튼 악단은 여러 가지 방면으로 재즈에 있어서 독자적인 관용 기법을 창출했
다. 그의 악단이 막 레코딩을 시작했을 무렵에는 초기 재즈의 특징을 짙게 보이고
있었지만 시대가 흐름에 따라 스윙이나 모던 재즈의 요소가 나타나게 되었다. 그
러나 엘링튼 악단의 발전이 재즈의 변화를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지는 않았고 빅
밴드의 역사가 엘링튼 악단의 역사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재즈의 역사에 있어서
도 빅 밴드의 역사에 있어서도 엘링튼 악단은 실로 독특한 존재인 것이다. 1940년
대에는 엘링튼의 편곡이 찰리 바넷 -우디 허맨의 각 밴드에 영향을 주었으며, 허
맨의 밴드가 엘링튼의 사이드맨들과 레코딩할 때도 있었다. 길 에반스는 클로드
손힐(ClaudeThomhill)과 마일즈 데이비스의 레코딩에 엘링튼의 기법을 사용하여
편곡을 했다. 1950년대, 그리고 60년대를 통해 엘링튼의 영향은 찰스 밍거스 -선
라-조지 러셀(George Russell)-플레어 피션-랄로시프린의 작-편곡에서 엿보이
며, 또한 엘링튼의 피아노 스타일이 모던 재즈 피아니스트인 셀로니어스 몽크와
세실 테일러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도 확실하다.
사이드맨(Sidemen)
듀크 엘링튼 악단은 빅 밴드로서는 가장 빨리 만들어진 밴드의 하나이다. 엘링
튼과 플레처 헨더슨, 그리고 돈 레드맨은 빅 밴드 재즈의 탄생에 크게 기여했다고
일반적으로 생각되고 있다. 엘링튼은 빅 밴드 재즈의 관용 기법◎rg band펴iom)
을 만들어내는 데 커다란 역할을 담당한 것뿐만 아니라 재즈 역사상 가장 오랫동
안 지속되고 안정된 밴드의 리더였다. 1923년 밴드 결성 이후 밴드를 해산한 적은
한 번도 없었으며, 또 많은 플레이어가 그의 곁에서 20년,30년 활약을 계속했다.
드러머 소니 그리어(Sonny Greer)는 1919년부터 1951년까지 엘링튼 악단에 재적했
으며, 바리톤 색소폰 주자 해리 카니는 1927년부터 엘링튼이 세상을 뜨는 1974년까
지 활동을 함께 했다. 카니도 엘링튼 사후 약 5개월 후 세상을 떠났다. 엘링튼 악
단의 대부분의 멤버는 그들 자신 강렬하고 독자적인 스타일을 갖고 있었으며 그와
같은 이유로 엘링튼 악단은 올스타 밴드라고도 한다. 엘링튼 악단의 솔로 주자들
은 모두 음악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제각기 자기 페이스대로 연주하면 자연히 거
기에 깊은 맛이 생긴다. 또 그들의 임프로비제이션을 들으면 음악적으로 충분히
닦여진 구성이 이루어져 있음을 느끼게 되며, 이러한 임프로비제이션이 편곡 부분
에 어우러져 전체가 즉흥 연주 없이 미리 처여진 작품처럼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클라리넷 주자(Clarinetist)
바니 비가드(Barney Bigard 1906--1980)-클라리넷 주자인 바니 비가드
와 그의 계승자 지미 해밀튼에 대해 어떤 사람은 베니 굿맨이나 기타 스윙 시대의
중요한 클라리넷 주자들만큼 뛰어난 독창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비가드와 해
밀튼은 클라리넷을 자유 자재로 능숙하게 불어대는 테크닉 위에 독자적인 스타일
을 발전시켰으며 비가드는 엘링튼의 작품에 포용력을 가져다 주었다. 앙상블 사운
드를 가로질러 그의 길고 강렬한 레가토 라인◎gate lin릿이 달려간다. 1940년 작
품 (ra◎ ◎eBear)나 (Harlem A Shaft)를 들으면 엘링튼 악단에 있어서 그의 존
재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36년 엘링튼이 그를 위해 만든 작품 (Clarinet
Lament)에서의 그의 임프로비제이션도 훌륭하다. 그의 클라리넷 스타일은 원래 뉴
올리언스 스타일을 스윙 시대에 맞게 어느 정도 변화시킨 것이다.
지미 해밀튼(Jimmy Hamilton 1917---지미 해밀튼은 비가드 정도
로 열광적인 스타일은 아니지만 독창적인 임프로바이저이다. 그의 사운드는 스윙
시대의 다른 많은 플레이어와 비교해 보아도 매우 아름답게 다듬어져 있고 실로
경쾌하다. 해밀튼의 플레이는 정확하고 상큼하여 모던 재즈의 요소인 시원하고 공
중에 떠있는 느낌의 음질이었다. 그의 연주에 대해서는 1955년에 엘링튼 악단이 레
코딩했던 베들레헴낀ethlehem)의 일련의 작품들과 1956년과 1958년의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Ne2e,ort ]azz Festiva긋의 앨범(rNewport 1958, Elli n at Newpo ),
그리고 1959년 엘링튼의 rFestival Session_r을 들어 보기 바란다.
러셀 프로코프(Russell Procope 1908--1981)-클라리넷 주자인 러셀 프
로코프는 해밀튼이 밴드를 떠나기까지는 눈에 띄지 않았으나, 빠른 비브라토의 두
터운 음과 정열적으로 부는 스타일을 갖고 있었다. 엘링튼 악단에 들어가기 전 그
는 존 커비(John Kirby)의 섹스텟에서 알토 색소폰을 불고 있었다. 커비와 연주하
던 무렵은 스윙 시대의 스타일로 불었지만 엘링튼 악단에서는 뉴올리언스 시대의
클라리넷 스타일에 훨씬 가깜게 접근했다. 그의 비브라토는 매우 빨라서 시드니
베세와 아주 비슷했다.
트럼펫 주자(Tmcmpete)
바버 밀레이(Bubber Miley 1903--1932)-바버 밀레이는 초기의 뛰어난
재즈 트럼펫 주자인 토미 라드니어(Tommy Ladnier)-루이 암스트롱-자보 스미
스. 헨리 '레드' 알렌 . 빅스 바이더벡 등과 나란히 놓을 수 있는 트럼펫 주자이
다. 그의 고무 플런저 뮤트 주법은 1927년에 레코딩되었던 (East St Louis Toodle-
O류나 (Creo-e Love Call)에서 들을 수 있는데 사람의 소리와 매우 비슷해 감정에
호소하는 음이나 재미있는 음을 만들어내어 커다란 효과를 거두었다.
쿠티 윌리엄스(Cootie Williams 1910--1985)-밀레이의 후계자인 쿠티
윌리엄스는 '플런저 뮤트' 주법을 이어받았다. 뮤트를 사용하지 않은 연주에서 그
는 따뜻하고 서정적인 악상을 갖는 솔로를 불었다. 그의 음은 크고 암스트롱 스타
일과 같은 인토네이션을 갖고 있었다. 그는 1923년부터 1940년까지 엘링튼 악단에
재적했고 일시 떠났다가 1962년에 다시 돌아와서 엘링튼이 죽을 때까지 멤버로 활
약했다. 엘링튼은 1936년에 (Echoes of Harlem), 1940년에 (Concerto for Cooti쓰를
윌리엄스를 위해 샜으며, (Concerto for Cooti쓸는 후에 가사를 붙여 고쳐 씌여져
(Do Nothin''til You Hear from M쏜로 유명한 곡이 되었다. 쿠티가 1962년에 엘링
튼 악단에 돌아왔을 때 엘링튼은 전혀 새로운 곡인 (New Concerto for Cooti쓸를
쌨다.
렉스 스튜어트(Rex출ewart 1907--1967)-렉스 스튜어트는 1934년부터
1944년까지 엘링튼 악단에서 코넷을 불었다. 그의 유머러스한 솔로와 화려한 음은
엘링튼 악단에서도 특히 뛰어난 연주였다. 렉스는 코넷의 밸브를 절반만 눌러 독
특한 음을 만들었는데, 이것을 닸alf valve',또는 'cocked valve'라고 부른다. 엘
링튼은 (BoyMeets Hem)이라는 작품을 스튜어트를 위해 쌨다. 그는 또 (Morning
Glory)와 1940년 작품 (Portra t of Bert William죠의 연주에서도 뛰어났다. 1941년
(Take◎e'A' Train)에서는 스튜어트가 임프로비제이션을 하고 있지만 후에 이 곡
을 다른 밴드가 연주하는 경우 그의 임프로비제이션을 그대로 모방하여 연주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전반에 걸친 연주에서는 쿠티 윌리엄
스도 스튜어트의 임프로비제이션을 그대로 사용했다[(Take the'A' TrauS(rIn a
MellotoneJ )의 제1솔로는 스튜어트이고 제2솔로는 레이 난스(Ray Nance)였다).
레이 난스(Ray Nance 1913--1976)-레이 난스는 재즈에서는 매우 드물
게 개성적인 바이올린 주자이다. 엘링튼 악단의 (Black, Brown and Beig쏜나
(LonesomeLullaby), (C-Jam Blues), (Mr. Gentle and Mr. Cool)에서의 그의 솔
로를 들어 보자. 그는 또한 바이올린 외에 실로 로맨틱하고 따뜻한 음을 가진 코넷
을 불었다. (Take◎e'A' Tr꼬굿에서는 그가 제2솔로를 불고 있지만 이것도 다른
플레이어에 모방되었으며, 쿠티 윌리엄스는 렉스 스튜어트의 솔로와 마찬가지로
그의 연주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캣 앤더슨(Cat Anderson 1916--1981)-캣 앤더슨은 하늘까지 도달할 것
같은 높은 음을 내는 뛰어난 빅 밴드 트럼펫 주자이다, 그의 음은 너무 높아 오직
개만 들을 수 있다고 농담을 할 정도다. 그의 대표곡으로는 1945년 엘링튼 악단의
(Perfume Suit쏜의 (Coloratura), 1955년의 (La Virgen de la씬acarena),-1리고
(Summertim쏜 등이 있다.
클락 테리(Clark Terry 1920-- )-클락 테리는 1951년부터 1959년까지
엘링튼 악단에서 활동턺 트럼펫 주자이다. 아마도 엘링튼의 모든 브라스 솔로 주
자들 가운데 가장 천부적인 테크닉을 가진 테리는 악기를 매우 능숙하게 다루었고
쉽게 알아볼 수 있는 화려하고 쾌활하게 스윙하는 스타일을 갖고 있었다. 그는 또
한 플루겔혼을 일반에게 친숙한 악기로 만들었다. 이 플루겔혼은 코넷을 한바퀴
돌리고 좀 크게 만든 악기로 트럼펫이나 코넷과 같이 불지만 음색이 한층 둥근 것
이 특징이다. 플루겔흔을 불 때 대개는 그 등근 음색보다는 무거운 쪽이 귀에 들어
오지만 테리는 등글게, 그리고 가볍게 불어 어렵지 않게 이 문제를 해결한다. 그의
훌륭한 연주로는 콜롬비아에서 발매된 'Ellington at NewportJ, rNewport 1958J,
'Festival SeSslonJ, rCosrme S ne 등 엘링튼 악단에서의 임프로비제이션과, 그
자신이 트롬본의 밥 브룩마이어(Bob Brookmeyer)와 메인스트림(Mainstream)에서
취입한 일련의 앨범을 권한다.
색소폰 주자(Saxophonist)
쟈니 호지스(Johnny Hedges 1906--1970)-엘링튼의 사이드맨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사람은 리드 알토 색소폰의 쟈니 호지스일 것이다. 그의 리드 알토
는 색소폰 세션의 최고 음부를 맡고 편곡 악보에 씌여진 색소폰 파트를 연주할 때
타이밍이나 해석에 있어서 다른 색소폰을 리드한다(쟈니 호지스 외에 오토 하드윅
(Otto Hard Cke)과 러셀 프로코프도 몇 개의 곡에서 리드 색소폰을 맡고 있었다).
그의 솔로와 색소폰 섹션을 리드해 가는 스타일이 1928년부터 1970년(1951년-1955
년 제외하고)까지의 엘링튼 사운드의 핵심이었다. 호지스가 부는 알토 색소폰의
음색은 매우 깊은 맛이 풍기어 녹음을 듣는 사람들에게 종종 테너 색소폰으로 오
인하는 착카을 일으키기까지 했다. 그는 한 음에서 다른 음으로 옮겨갈 때 매우 매
끄럽게 미끄러지는 뛰어난 테크닉을 갖고 있어서 그의 악기에 마치 트롬본과 같이
슬라이드가 붙어 있는 것처럼 느낄 정도였다. 이 테크닉을 클래식에서는 포르타멘
토◎OTtamef2t잇라고 하지만 재즈 뮤지션은 보통 스미어링(smearing)이라고 부른
다. 호지스는 이 주법을 발라드 연주에 잘 사용했으며, 엘링튼은 호지스의 스타일
에 잘 맞는 수많은 곡을 썼다[(Passion Flower)('Jive at FiveJ1.
호지스의 스타일에는 타이밍에 대해 특별히 예민한 감각이 필요했다. 그는 음을
미묘하게 변화시키는 데 명수였고 또한 그의 싱커페이션의 타이밍도 실로 뛰어났
다. 1942년 이전의 호지스는 특히 시드니 베세의 영향을 받아 화려한 더블 타이밍
의 연주를 종종 했지만 1940년 중반 이후에는 템포에 상관하지 않고 차분하게 '뒤'
에 타는 경향을 보이게 되었다. 호지스는 엘링튼의 대부분의 앨범에서 연주하고
있었으며 연주에 있어서 되고, 안 되고의 차이가 없는 일관된 연주를 했기 때문에
레코딩에서 들을 수 있는 호지스의 연주는 대부분 뛰어난 것이었다. 호지스는 많
은 알토 색소폰 주자와 테너 색소폰 주자에게 영향을 주었다. 탭 스미스(Tab
Smith )-루이 조단(Louis Jordan)-얼 보스틱(Earl Bos c)-쟈니 보스웰(Johnny
Bothwell )-월리 스미스-바비 플래터(Bobby Plater)-찰리 바넷,우디 허맨,벤
웹스터 -에디 빈슨(Eddie Vinson)-존콜트레인-얀가바렉(Jan Garbarek)등은 많
은 영향을 받았다(존 콜트레인의 (Theme for Erme)(rSoultraneJ)1.
해리 카니(Harry Carney 1910--1974)-해리 카니는 그에게 영향을 주었
던 콜맨 호킨스가 재즈 테너 색소폰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보통
재즈 바리톤 색소폰의 아버지라고 불리운다. 엘링튼 악단의 색소폰 섹션에 있어서
그의 앙상블 플레이는 베이스와 같이 밴드의 사운드에 단단한 기반을 다지면서 쟈
니 호지스의 알토와 경합을 한다. 카니의 풍부하고 거대한 음에 대적할 수 있는 플
레이어는 없었다. 그는 클라리넷과 베이스 클라리넷을 불었는데 그 어느 것도 카
니의 기량으로 연주하면 엘링튼 악단의 앙상블에 강하고 두터운 하모니가 만들어
졌다. 카니의 연주에 의해 영감을 받았던 엘링튼은 때에 따라 바리톤 색소폰이 리
드하는 악보를 깼다. 기본적으로는 앙상블을 맡는 것이 그의 역할이지만 솔로의
기량이 뛰어나서 때때로 두드러지는 연주를 하게 되었다. (Serious Serenade),
(FrurtratiolS,그리고 (Chromatic Love Aff 등에서 그의 솔로를 들을 수 있다.
벤 웹스터(Ben Webster 1909--1973)-벤 웰스터와 그가 엘링튼 악단을
떠나고 7년 후에 그의 자리를 메우는 폴 곤잘베스는 콜맨 호킨스의 영향을 받고 자
란 매우 우수한 테너 색소폰의 발라드 플레이어이다. 웰스터는 엘링튼 악단에서의
tll코딩 (AllToo Soon)(1940), (Tust A-Se◎n' and A-Roclun')(l941), (I Don t
Know WhatKmd of Blues I've Got)(1941), (Chelsea Bridge)(1941)등에서 솔로를
하고 있다. 그는 음을 길게 늘일 때 독특한 비브라토를 사용했는데, 거칠고 삐걱거
리는 음은 그의 독특한 특징이다. 이러한 사운드는 1941년의 (Raincheck)나 1942년
의 (MailsteamS, 1941년의 (slue SeIg쓱에서 들을 수 있다. 피아니스트 아트 테이
텀과 1956년에 버브(verm릿에서 출반된 발라드 앨범은 엘링튼 악단 이외에서 레코
딩된 웰스터의 레코드로는 뛰어난 것이지만1939년부터 1943년에 걸쳐 엘링튼 악
단에서 레코딩한 것이 그의 최고의 연주일 것이다. 그는 모던의 찰리 벤츄라
(Charlie Ventura)-에디 '락조우' 데이비스(Eddie'Lockjaw' Davis)-아치 계프에
영향을 주었고 1973년에 세상을 떠났다.
폴 곤잘베스(Paul Gonsalves 1920--1974)-폴 곤잘베스의 음악 활동은
왱스터의 제자로서 시작되었지만 그 후 독자적인 독특한 스타일을 형성해 나갔다.
미디엄(medi-m)템포와 업(u◎ 템포의 연주에서 그의 유려하고 개성적인 스타일
의 일면이 잘 드러났으며, (Days of Wine and Rose료의 연주에서 그 독특한 발라
드 스타일을 들을 수 있다. 그의 음은 모가 나지 않은 부드러운 퍼짐성을 갖고 있
었으나 부드러운 톤에도 불구하고 그의 연주에는 거의 존 콜트레인과 같은 긴박감
이 있었다. 또 그는 음의 선택이 매우 특이하여 그들 음을 매끄럽게 부는 그의 테
크닉은 더욱 대단하다. 1950년 엘링튼 악단의 앨범 'Hi-Fi Ellington Uptown_l에 들
어 있는 (Take the'A' Train)과 'Ellington at NewportJ, 'Newport 1958_1, rCosrme
SceneJ, 'FeStival SessionJ등에서의 그의 솔로를 들어 보자. 곤잘베스는 1951년부
터 1974년에 죽기까지 엘링튼 악단에서 활약했다. 엘링튼의 죽음은 곤잘베스의 사
망 열홀 후였다.
트롬본 주자(Trobonist)
조 '트리키 샘' 낸튼(Joe'Tricky Sam' Nanton 1904--1946)-트롬본
주자인 조 '트리키 샘' 낸튼은 그로을 스타일(gro l styl팃의 대가였다. 그는 배관
공의 플런저◎Irrmber's plunge읏 타입의 뮤트를 써서 변칙적으로 연주, 사람과 비
슷한 소리로 마치 말을 하는 것처럼 트롬본을 불었다. 1926년부터 사망하는 1946년
까지 그는 1940년의 (Ko-K꼬나 (Harlem Air Shaft)에서의 연주처럼 재미있게 변한
음과 소리를 엘링튼의 편곡의 재료로 제공했다.
퀸틴 '버터' 잭슨(Quentin'Butter' Jackson 1909--1976)-오하이오의
스프링필드에서 태어난 퀸틴 '버터' 잭슨은 낸튼이 생각해낸 그로을 스타일을 이
어받아 1948년부터 1959년까지 엘링튼 악단에서 활약한 후1970년대의 모던 빅 밴
드 태드 존스-멜 루이스 악단에 이 주법을 도입했으며, 카운트 베이시 악단에서
는 알 그레이(A1 Grey)가 이 주법으로 연주했다.
로렌스 브라운(Lawrence Brown 1907---캔자스 출신의 로렌스 브
라운은 아주 세련되고 크고 일관된 사운드로 스윙 시대를 대표하는 트롬본 주자의
한 사람이다. 그의 톤은 엘링튼 악단의 트롬본 섹션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엘링튼
은 브라운을 빛내기 위해 (slue Cellophan쓸과 (Golden Cress)를 썼다,
베이스 주자(Bassist)
지미 블랜튼(Jimmy Blanton 1918--1942)-엘링튼 악단에서는 주니어 래
글린(JuniorR씽1i1),오스카페티포드(Oscar Pettiford)-지미 블랜튼등 뛰어난베
이스 주자가 각각의 시대에 활약했다. 이 가운데에서도 특히 블랜튼은 엘링튼 악
단에 재적하고 있던 2년 동안 놀라을 정도의 성장을 보여 베이스 연주에 있어서 그
때까지의 전통적인 생각을 깨뜨렸다. 그는 베이스가 단순히 타임 키핑만을 위한
악기가 아니고 긴장되는 솔로 플레이나 앙상블의 상호 플레이도 할 수 있음을 보
여 주었다. 엘링튼은 때때로 블랜튼의 베이스를 관악 파트처럼 편곡하여 블랜튼의
가능성을 최대한 이끌어냈는데 물론 블랜튼은 엘링튼 악단의 리듬 섹션의 강력한
구성 멤버였다, 1940년에 레코딩된 (rack◎eBear)나 (Concerto for Cooti쓰에서 그
는 멜로디를 쳤고, 같은 해의 (Sepia Panorama)에서는 솔로를 맡고 있다, 또 엘링
튼과 블랜튼은 (Pitter Panther PatteI)(rJive at Five_r)나 (Mr. J. B. Blues)등 몇
개의 듀엣 녹음에서 음악적인 대화를 남기고 있다, 블랜튼은 1942년 25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작곡자(Composision)
엘링튼 악단이 레코딩한 모든 작품에 전적으로 엘링튼의 음악적인 아이디어가
표현되어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많은 작품이 그의 사이드맨에 의해 작곡되거나
혹은 그와 사이드맨과의 공동 작업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바버 밀레이는
(Black andTan Fantasy)와 (East St. Lo us Toodle-Go),바니 비가드는 (Mood
Indigo>,오토 하드윅은 (Sophisticated Lady)의 작곡에 연관되어 있으며 바리톤 색
소폰의 해리 카니는 (Ro디un' m Rhythm)을 공동으로 만들었고 밸브 트롬본 주자
인 환 티졸(Juan Tizol)은 (Caravan), (Bakiff), (Conga Brav쿄 등의 곡을 썼다
((Perdid꼬는 보통 엘링튼의 작품으로 알고 있지만 이것도 환 티졸이 쓴 것이다).
빌리 스트레이혼(Billy Strayhorn 1915--1967)-1939년부터 1967년까지 엘
링튼은 빌리 스트레이혼이라는 피아니스트겸 작 -편곡가인 훌륭한 파트너를 얻어
창조적인 작업을 했다. 이 두 사람은 수많은 곡을 공동 작곡하였는데 스타일이 너
무 비슷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감상자는 누가 어느 부분을 맡고 있는지를 구별하기
힘들었으며, 공동 작품이 아닌 스트레이혼 혼자 쓴 곡도 많았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곡은 영원한 스탠더드 넘버로 엘런튼 악단의 테마로 쓰여진 (Take◎e,A'
Twn)( 'Great Times ! )이다. 스트레이혼은 발라드가 가장 뛰어났으며 (Chelsea
Bridg쏜와 (Lush Lif쏜 등 뛰어난 작품이 많다((Lush Lif긋는 수많은 아티스트가
자주 연주하는 작품이다. 냇 킹 콜이나 존 콜트레인도 레코딩했고 콜트레인은 가
수 쟈니 하트맨과의 레코딩도 있다. ). 엘링튼과 구별이 잘 안된다고 자주 이야기
되지만 스트레이혼의 편곡은 잘 들으면 엘링튼과눈 확실히 다른 점이 꽤 있다,
1941년 취입한 (Take◎e'A' Train)(32소절의 A-A-B-A형식)을 예로 들어 보
자.
(피아노의 도입 4소절)
(제1코러스)
A-A. 색소폰 섹션이 동일하게 멜로디를 분다(키는 C). 뮤트 트럼펫과 트롬본이
하모니를 이루면서 교대로 답한다. 리듬 섹션이 반주하고 드러머는 스네어 드럼에
와이어 브러쉬를 쓴다.
B색소폰은 멜로디를 계속하고 이번에는 트롬본만이 응한다.
A-색소폰 섹션이 멜로디를 마치고 트럼펫과 트롬본이 새로운 라인을 불어 응한
다. 이 섹션의 마지막에 피아노가 끼어든다.
(제2코러스)
A-A-B-A' 렉스 스튜어트가 뮤트 트럼펫으로 임프로비제이션한다. 하모니를 이
루면서 색소폰이 서로 대화를 한다. 색소폰은 되풀이되지 않도록 음의 라인을 변
화하면서 제각기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린다. 리듬 섹션은 제1코러스와 같다.
[4소절의 간주)
이 간주는 4박자는 아닌 3박자 각 소절에서 트럼펫의 질문에 색소폰이 답한다.
베이스는 각 소절의 첫 박자만 친다. 기타는 침묵, 드럼은 심벌로 싱커페이션을 친
다. 이 왈츠 섹션이 끝날 때 밴드의 키는 C에서 Eb으로 바뀐다.
[1소절 삽입 4박자로 돌아온다)
[제3코러스)
A최초의 4소절은 레이 난스 트럼펫의 임프로비제이션, 거기에 이어 하모니를
이룬 멜로디를 색소폰이 불기 시작한다. 다음 4소절은 난스가 솔로를 계속하고 색
소폰이 받쳐주는 코드로 반주한다. 드러머 소니 그리어는 스네어 드럼을 스틱으로
치고 있다.
A최초 4소절은 색소폰이 하모니를 이루며 전과 같이 불지만, 난스는 거기에
대해 새로운 임프로비제이션으로 답한다. 다음 4소절은 난스가 임프로비제이션을
계속한다, 색소폰은 받쳐주는 코드 반주로 되돌아온다.
B' 최초 4소절은 난스의 임프로비제이션이 계속되고 색소폰은 독립하여 테마를
분다. 트롬본은 트롬본만의 하모니로 다른 테마를 불며 색소폰이 짧게 웅한다. 다
음 2소절은 난스가 계속하고 트롬본 섹션이 코드로 반주한다. 다음 2소절은 팡파
레가 된다. 각 섹션의 각각의 악기가 각 음을 맡는다. 리듬 섹션은 타임 키핑을 하
지 않지만 심벌만은 팡파레를 맞추어 주기 위해 친다.
A리듬 섹션이 타임 키핑을 다시 시작하며 색소폰과 일치하여 원래 A섹션이
연주된다. 그러나 키는 C대신에 Eb이다. 브라스가 색소폰에 들어가 하모니를 만
들면서 오픈과 뮤트를 교대로 바꾸며 분다.
[마무리)
A' 전의 8소절과 같지만 음을 억제하여 부드럽게 연주된다.
A전과 같다. 피아노가 색소폰의 음에 응한다. 마지막으로 색소폰이 곡의 결말
을 짓는다.
다채로운 엘링튼 악단(초ngton Ban긴
엘링튼 악단의 레퍼터리를 다른 빅 밴드와 비교해 보면 매우 다양하다. 하나의
편곡에 여러 테마가 있거나 각각의 테마에 다른 리듬 형태를 사용한다. 또한 반주
하는 음의 구성이나 악기 편성의 조합에도 풍부한.아이디어가 넘쳐 있다. 곡의 형
태도 매우 다양하여 엘링튼 악단의 수많은 레퍼터리를 형태별로 나누면 제각기 훌
륭한 곡집이 될 것이다.
여기에서 몇 개의 카테고리로 분류해 보자.
1)인상파적인 것 .스윙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오케스트라의 음의 색채나 음영을
강조한 것. LP시대 이전의 작품으로는 (Transbluency)와 (On a Turquoise Cloud)
등이고 LP작품은 'Anatomy of a Murder 와 'Pans Blues 의 곡들.
2)로맨틱한 발라드'LP시대 이전의 작품으로는 (Daydream), (Prelude to a
Kiss>, (Sophisticated Lady)등이고, LP작품으로는 'Ellm양onIndigos_r와 「◎ the
Bal Masque 등.
3)미국의 정취가풍기는 것LP시대 이전에는 (Caravan), (Flarmng Sword),
(sakifO등. LP작품은'Latin American SuiteJ, rTogo Brava Suite_r등.
4)콘서트 지향적인 곳'보통의 레퍼터리만큼 임프로비제이션이 많지 않고 곡이
길다. LP이전의 곡으로는 (Rermniscing in Tempo), (Black, Brown and Beige),
(Deep Southsite)등. LP작품은 'such Sweet ThunderJ, 'Suite Thursday_r, 'A
DleamIsaWOman 등.
5)콘체르토 : 이 형태의 작품에서 엘링튼은 자신의 사이드맨의 각각의 스타일을
소개한다. LP이전의 작품에 (Clarinet Lament)(Barney Bigard), (Echoes of
Harlem) (Cootie Williams), (Boy Meets Hom)(Rex Stewart)등이 있고 LP작품에
는 (Cop-out-(Paul Gonsalves), (Lonesome Lullaby)(Ray Nance)등이 있다.
s)3분짜리 작품 걸작집 : 엘링튼은 3분 정도의 작품에 내용이 풍부한 음악을 만
드는 데 발군의 능력을 갖고 있었다. 특히 LP시대 이전에는 3분짜리의 훌륭한 작
품이 많았다. 엘링튼의 78회전 레코드는 풍부한 음악의 창고이며 그 중의 대부분
이 LP로 재발매되어 현재도 입수가 가능하다.
엘링튼의 방대한 레코딩 중에는 수많은 걸작이 있지만 그 대부분을 여기에서 상
세히 소개할 수 없었다. 우선 떠오르는 것만으로도 1940년의 (Harlem Air Shaft),
1941년 스트레이혼이 만든 (Ra check), 1939년 (The Sergeant Was Shy),그리고
1941년의 (IDon't Know What Kind of뫼ues I've Got)등이 있는데 아주 적은 예
에 불과하다. 여러분이 엘링튼의 위대함을 알기 위해서는 아마 많은 레코드를 듣
고 그의 세계에 접촉해 보는 것이 제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훌륭한 작품군에
덧붙여 실제로는 대부분 연주되지 않았지만 엘링튼은 몇 개의 오페라의 발레곡,
그리고 쇼를 위한 음악을 열 작품 정도 썼다. 일반적으로 엘링튼의 음악적인 창조
의 최전성기는 엘링튼 악단에 벤 웰스터,쟈니 호지스,바니 비가드.지미 블랜
튼-'트리키 샘' 낸튼-해리 카니-쿠티 윌리엄스, 그리고 렉스 스튜어트가재적
하고 있던 1939년에서 1941년까지로 간주된다. 또한 엘링튼 악단으로서는 클락 테
리 -지미 해밀튼-폴 곤잘베스 해리 카니 쟈니 호지스 등이 활약했던 1956년에
서 1959년에 걸친 시기가 가장 활기에 넘쳐 있었다, 악단의 멤버가 바뀌면 거기에
따라 악단의 사운드도 변하는데 엘링튼 악단은 5년에서 10년 간격으로 악단의 사
운드가 변화했다. 따라서 엘링튼 악단을 초기 재즈, 스윙 재즈, 모던 재즈라는 고
정된 카테고리에 맞추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다. 엘링튼 악단은 항상 독특한 존
재였던 것이다.
6 카운트 베이시 악단
The Count Basie Bands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은 과거에 있어서의 어잇한 사건이다
그러나 역사의 기술은 완결할 수 없는 작업이다. 새로운 시대
와 함께 새로운 시점에서 다시 바라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A History ofJazzd, i # -
일반적으로 '스윙의 왕(King of Sz ing)'이라고 하면 베니 굿맨을 생각하지만 재
즈 뮤지션들은 '스윙의 왕'이라는 타이틀은 카운트 베이시에게 가야 한다는 데 의
견을 같이 한다. '훌륭하게 스윙하는 밴드'로는 플레처 헨더슨 , 듀크 엘링튼 , 지
미 런스포드-우디 허맨 등의 밴드를들수 있지만, 카운트베이시 악단은 이들밴
드와 비교해도 현저하게 극히 자연스럽게 스윙하고 있다. 1950년부터 1951년에 걸
쳐 카운트 베이시는 그룹을 캄보의 규모에까지 축소해야 했지만, 그 시기를 제외
하면 1937년 이래 줄곧 빅 밴드를 이끌어 왔다, 그의 밴드에는 어느 시기에도 그
시대를 대표하는 플레이어가 반드시 몇 사람인가는 재적하고 있었다.
피아니스트로서의 베이시(Basie the.Pianist)
베이시는 패츠 월러의 영향을 받은 스트라이드 주법의 피아니스트로, 자신의 밴
드를 이끌던 탁월한 솔로 주자였다. 그러나 1950년대, 60년대, 70년대로 시대가 흐
름에 따라 피아니스트로서의 활약이 적어져서 감상자가 그의 피아노를 듣게 되는
것은 콘서트에선도 레코드에서도 곡의 도입이나 마무리, 전조(쳔쳔) 부분 등에서
드라마틱하게 칠 때뿐이었다. 간결하고 치밀한 사운드는 베이시를 보증하는 스타
일이 되었다. 그는 실제 솔로를 할 때 조용한 베이스와 드럼에 덧붙여 프레디 그린
(Freddie Green)의 기타가 한 소절 4박자를 가볍게 치는 동안 실로 정교하게 간격
뜰 두면서 피아노의 멜로디를 만들어 갔다. 베이시의 피아노 터치는 재즈 피아니
스트 중에서도 특히 독특한 것이었으며 매우 경쾌하고 그러나 극히 정확했다. 또
한 음의 선택도 드러머만큼 훌륭한 타이밍의 감각과 함께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
베이시의 피아노는 통상 그의 밴드 연주의 무드나 템포를 결정하는 역할을 하였
다.
베이시 악단의 리듬 섹션(Rhythm Section)
베이시는 부드럽고 릴랙스한 분위기에서 일정하게 스윙하는 훌륭한 리듬 섹션을
이끌던 재즈 역사상 최초의 밴드 리더이다. 1930년대 후반부터 1940년대 전반에 걸
쳐 활약했던 이 유명한 리듬섹션은 베이시(p)-프레디 그린(g)-월터 페이지
(Waiter Fage-, 조 존스(ds)로 구성되어 있다.
다음은 베이시의 리듬 섹션의 특징이다.
1)뛰어난 템포 감각(excellent sense of tempo).
2)정력적이고 긴장된 어프로치를 피하고 확실한 타임 키핑을 한다tab펀ty to
keep time).
3)조용하고 여유있는 연주로 듣는 사람에게 편한 느낌을 준다◎rriet, relaxed
plaring)
4)비트의 강세는 거의 균등하고 2박째와 4박째에 약간 강조한다(fairly even
amorrnt of stress on all four beats).
5)강렬함보다도 경쾌함을 중요시했다(emphasis on b oyancy rather than
mtensity).
베이스 주자 월터 페이지(Waiter Page 1900--1957)의 역할.
1)유연한 워킹 베이스(s떫 le wal ing bass).
-강력한 톤(jtrong tone),생생하고 분명한 사운드(articulated soun민. 이 점에
있어서 지금은 존재감이 엷어진 모던 재즈 이전의 많은 베이스 주자와는 분명히
획을 긋고 있다.
3)다른 파트와의 조화갼alann'ng).
기타리스트 프레디 그린(Fleddie Green 1911-1987)의 역할.
1)어쿠스틱 기타에 의한 파삭파삭한 4박자( forrr stro es to the measure on
unamplifiedguita ).
2)드럼과 호흡이 맞는 연주(close coordination rerith drtrms).
드러머 조 존스(Jo Jones 1911-19◎)의 역할.
1)정확하지만 딱딱하지 않은 연주◎rense playing, brrt not stiff precrnon)와 자
신이 넘치는 여유있으면서도 정확한 연주.
2)스윙 시대의 드러머 진 크루파와는 달리 존스의 연주는 훤씬 부드럽고(much
엇◎읏 조용하다. 때로는 베이스 드럼을 전혀 사용하지 않을 때도 있다.
3)하이 해트에 와이어 브러쉬를 조용히 사용하고, 하이 해트의 개폐로 라이드
리듬을 친다◎triet rrse of 2 2re brrrshes on high-hat).
4)스네어 드럼이나 크래쉬 심벌에 위한 '필 인'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다.
베이시의 연주 도중에 싱커페이션의 탄력 넘치는 피아노 주법은 콤핑(comping)
으로 알려진 모던 재즈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1936년 작품 (Shoe Shine Boy)에
칼 스미스(Carl Smtth)의 트럼렛 솔로 사이에서 작게 들려 오는 피아노 소리에 매
우 주의해 들어 보자. 여러분은 몇 년 후에 모던 재즈 피아니스트들에 의해 도입되
는 베이시의 콤핑 스타일을 들을 것이다. 이 칼 스미스에 대한 그의 반주가 모던
재즈 콤핑 주법의 초기 레코딩 실례 중 하나이다. 1940년대에는 많은 훌륭한 재즈
피아니스트라도 콤핑 주법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19M)년대나 30년대의 스타일로 연
주했으며, 결국 스트라이드 스타일로 리듬 기타와 마찬가지로 각 박자에 코드로
치거나 또는 카운터멜로디와 장식음을 치는 스타일이 대부분이었다. 지난 시대의
콤핑의 예는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1928년 11월 30일에 녹음된 듀크 엘링튼 악단의
(The Mooch쓰가 있다. 주의깊게 들으면 쟈니 호지스의 알토 색소폰의 첫번째 코
러스 부근에 반주되는 엘링튼의 콤핑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1920년대로서는 매우
놀랄 만한 일이다. 그 당시 엘링튼을 포함한 대부분의 피아니스트가 싱커페이션으
로 코드를 순간적으로 짧게 치는 연주는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편곡(Arrangements)
1930년대 후반에 베이시 악단의 편곡에서 많이 보였던 것은 단순한 프레이즈의
되풀이이다. 그 리프(운킨는 12소절의 블루스 코드 진행이나 (Honeysuckle Rose),
(I Got RhythmS, (Shoe Shine Boy), (Lady Be Good)등 팝의 코드 진행에 따라
연주되었다. 리프는 앙상블 연주와 함께 솔로 임프로비제이션의 배경 음악으로 효
과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미리 악보에 버여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연주 중에
누군가가 생각해낸 것을 다른 플레이어가 잘 듣고 외워 자연적으로 만들어졌다.
이러한 형태의 편곡은 혜드 어레인지먼트껀ead arrangement짓로 불려지는데 1930
년대 캔자스시의 많은 악단(예를 들면제이 맥 샨(Jay McShann)이나 베니 모튼
(Bennie Moten)등의 밴드-에 자주 사용되는 스타일이었다. 많은 리프 작품이 처
음에는 밴드의 멤버에 단순히 번호로 불리우고 있었지만 후에 정확하게 이름이 붙
여지고 작곡자의 명예를 갖게 되었다. 베이시도 이와 같은 식으로 (One O'Clock
Jump)와 (rUmpm at초e Woodside)(rThe Best of Count BasieJ)의 작곡자로 불리
운다.
베이시 악단은 무엇보다도 우선 스윙하는 것과 단순한 것을 중요시했다. 1950년
대나 ①년대에 어니 월킨스(Erme Wilkins)-퀸시 존스(Qilcy Jones)닐 헤프티
(Neal Hefti),베니 카터 등의 작,편곡가가 악보를 담당할 때조차도 베이시 악단
을 위해서 단순하고 생각하기 쉬운 리프를 쓴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1930년대
후반부터 40년대 전반에 걸쳐 베이시 악단은 캄보보다도 한층 규모가 큰 편성으로
화려한 편곡보다도 스윙하는 솔로 쪽을 중요시했다. 이것은 고도로 세련되고 또한
정교하게 편곡된 지미 런스포드 악단이나, 임프로비제이션과 편곡 부분이 뛰61나
게 돋보이는 엘링튼 악단과 비교하여 눈에 띄게 다르다. 베이시 밴드는 기본적으
로는 솔로를 위한 밴드이고, 런스포드 악단과 같은 밴드는 편곡자를 위한 밴드라
고 할 수 있다. 1950년대에 들어서면 베이시 악단은 점차 캄보 스타일에서 벗어나
고 이 경향은 60년대, 70년대로 이어졌다. 훌륭하게 스윙하는 연주에서는 솔로의
기회가 적어지고 짧아졌으며, 레코딩에서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부분에 가끔 솔
로를 하는 정도로 변해갔다. 베이시 악단은 고도로 세련되어져서 그 결과 20년 전
의 런스포드 악단과 같은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베이시 악단은 앙상블 사운드의
본보기가 되어 앙상블에 중점이 모아지게 되었어도 악단에는 변함없이 많은 우수
한 솔로 주자가 있었다.
1930-40년대의 사이드맨(Sidemen)
1930년대 및 4O년대에 있어서 이름 있는 트럼펫 주자나 색소폰 주자의 대부분은
카운트 베이시 악단에서 연주한 경험을 갖고 있었으며 이 점에서 그의 밴드는 플
레처 헨더슨 악단과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다. 플레처 헨더슨은 1920년대와 30년대
에 최고의 솔로 주자들을 모았었다.
레스터 영(Lester Young 1909--1959)-1930년대부터 40년대에 걸쳐 베이
시 악단에 재적했던 가장 주목할 만한 솔로 주자는 테너 색소폰 주자 레스터 영이
다. 그는 매우 뛰어나서 '프레스(Pres)'또는 '프레즈(Fret) '라는 별명으로 불리우
는데 이것은 '테너 색소폰의 대통령'이라는 의미를 함축한 말이다, 영은 그보다
이전에 활약했던 어떤 즉흥 연주자보다도 신선한 아이디어로 정확하고 길고 매끄
럽게 스윙하는 음의 라인을 연주했다. 그는 모던 색소폰의 음색, 비브라토, 리듬,
프레이징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영은 콜맨 호킨스로 대표되는 무거운 톤과
빠른 비브라토, 그리고 장식음이 많은 스타일과는 전혀 다른 맑은 스타일이었다.
영의 가벼운 음질긴g◎ tone),여유있는 비브라토(slo vibrate),쾌활한 프레이
즈갈떫ing, bUoyant phras핏는 스탄 겟츠 -주트 심즈(Zoot Sims), 브류 무어(Brew
Moore)-허비 스튜어드(Helbie Steward)-알렌 이거(Alien Eager)등을 포함하여
시대나 세대를 초월한 테너 색소폰 플레이어의 표본이 되었으며, 데이브 펠(Dave
Pell )-리치 카뮤커(Richie Kamuca)-밥쿠퍼(Bop Cooper),빌 퍼킨스(Bill
Perkins )등 1950년대 웨스트 코스트 테너 색소폰 주자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주었
다. 영은 음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음악에 대한 생각에 있어서도 많은 플레이어에
영향을 주었다. 영을 신봉하는 플레이어는 그의 솔로를 한 음도 빼뜨리지 않고 주
의 깊게 모방했기 때문에, 그들의 연주를 듣고 있으면 종종 레스터 영의 유명한 프
레이즈가 완전히 그대로 나오곤 했다. 영은 또 워델 그레이(Wardell Gray), 덱스터
고든,진 아몬즈(cene Ammons)-소니 스티트 등 보다 어두운 음색을 가진 색소
폰 주자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그의 영향은 테너 색소폰 주자뿐 아니라 모던 재즈
발전에 가장 큰 공헌을 하는 알토 색소폰 주자 찰리 파커에까지 나타난다.
영의 플레이는 콜맨 호킨스와 같이 복잡하지는 않지만 그 멜로디에 담긴 음악적
아이디어는 정말 뛰어났다. 그가 베이시의 피아노 반주로 솔로를 하고 있는 1939년
의 (Taxi WarDance)와 (Tive at Fiv쓱에서의 임프로비제이션을 꼭 들어 보기 바란
다. 호킨스가 복잡한 코드 체인지를 하고 빈번하게 장식음을 넣는데 비해 영은 스
탠더드 팝의 코드 진행에 새로운 부가 코드를 넣어 차갑고 극히 간결한 방법으로
연주한다. 그러나 때로는 많은 음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1939년에 베이시의
사이드맨과 캄보를 이루어 레코딩한 (Lester Leaps In)의 솔로에서도 대부분은 8분
음표로 이루어져 많은 음이 사용되고 있지만 각 음의 연결은 분명하다.
영은 호킨스와 같이 각 프레이즈마다 아이디어를 추가해 가지 않고 어느 중심이
되는 멜로디 소재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는 사려 깊게 자기를 억제하는 재
능을 갖고 있었으며 솔로를 잘 조절하였기 때문에 씌여진 편곡 부분과 솔로 부분
이 훌륭하게 균형을 이루었다. 또 영은 음악을 이야기처럼 만들어 들려 주는 특이
한 재능을 갖고 있었다. 그는 1938년의 (I Want a Little Girl)과 (p질= ◎e Devil)
에서 클라리넷 솔로를 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의 자기 억제가 잘 된 연주의 좋은 예
이다. 영의 경쾌하고 꾸밈 없는 클라리넷의 음은 1930년대에 있어서는 매우 특이한
것이었다. 1939년의 (Pound Cak쏜와 (Ham'n' E또◎에서 빅 밴드의 테너 색소폰
솔로는 그의 멜로디에 대한 재능과 절묘한 템포를 들을 수 있는 대표적인 예가 된
다[(Ham= E모◎에서 영은 세컨드 테너 솔로를 맡고 버디 테이트(Buddy Tate)
는 퍼스트를 맡고 있는데 그의 스타일은 영과는 확실히 다르다).
레스터 영이 그 음악상의 발상에 있어서 보다 진보된 높은 수준에 있다는 것은
코드 진행 가운데 되풀이되는 부분이나 브릿지 부분에서 매우 부드럽게 스윙하고
프레이즈를 만들어 가는 것을 들으면 명확해진다. 2소절부터 4소절 연속의 코드
진행을 기본으로 멜로디를 구성하던 모던 시대 이전의 플레이어의 프레이징에 영
은 훨씬 앞서 있었다. 그는 신선한 아이디어로 자유로운 느낌의 긴 멜로디 라인을
즉흥적으로 만들었다. 영의 솔로에는 얽매이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영의 또
하나의 뛰어난 발상은 코드 체인지에 대해 직접 코드의 구성음을 사용하는 연주
대신에 코드를 배경읖으로 써서 연주를 구성해 가는 것이다. 기본이 되는 하모니
에 얽매이지 않고 독립된 멜로디를 형성하는 것은 재즈 역사에 등장하는 수많은
임프로바이저에 공통되는 것으로 레스터 영은 그 선구자였다.
영의 연주는 1930년대 후반에 있어서 그 최전성기를 맞았지만 그의 첫 레코딩이
야말로 그의 음악 경력에 있어 최고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940년대 베
이시 곁을 떠난 이후 그의 톤은 어두워지고 비브라토는 빨라지고 게다가 리듬의
정확성도 희미해져 갔다. 그의 많은 팬들은 그의 음악의 결정적인 쇠퇴가 1944년부
터 시작했다고 하지만 이미 그 이전에 이러한 경향은 나타나고 있었다. 그가 세상
을 떠나는 1959년까지 그의 연주는 점점 빛을 잃어갔으나 듣기에 참을 수 없는 연
주를 했던 적은 결코 없었고 그는 항상 지적이고 잘 스윙했다, 사실 그의 이야기를
(storytelling-늑를 하는 임프로비제이션은 말년이 되면서 더욱 원숙미를 더해 갔
다. 그러나 1940년 이후는 의식적인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초기 솔로에서의 활력이
나 신선함은 들을 수 없게 되었다.
허셜 에반스(Herschel Evans 1909--1939)-콜맨 호킨스 계열의 테너 색
소폰 스타일의 한 중요한 지류를 대표하는 뮤지션에 허셜 에반스를 들 수 있다. 그
러나 그는 호킨스보다도 훨씬 매끄럽고 우아한 연주를 했던 플레이어로, 솔로 임
프로비제이션에서도 호킨스가 좋아했던 복잡한 어프로치는 하지 않았다. 에반스는
빠른 비브라토와 다른 어느 스윙 테너 플레이어보다 깊고 어두운 톤을 갖고 있었
으며 그 톤은 호킨스보다도 어두웠다. 그의 음색이 어두운 것은 그가 색소폰의 낮
은 음역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의 멜로디 라인은 호킨스만큼 길지도 않고 또 장
식음으로 꾸미지도 않았지만 반대로 레스터 영과 칼이 간결함을 추구한 것도 아니
었다. 그는 벤 웰스터나 호킨스와 마찬가지로 발라드 계통의 연주에 뛰어났다. 그
가 베이시 악단에서 1938년에 레코딩했던 (Blue and Sentimental)은 많은 플레이어
가 모방했다. 그의 영향은 버디 테이트 일리노이 자켓 . 아이크 큐벡(Ike
Quebec)-아넷 코브(Amett Cobb)등의 연주에서 들을 수 있다. 에반스는 1936년부
터 그가 눈을 감는 1939년까지 베이시와 함께 연주했다.
오란 '핫 림스' 페이지(Oran'Hot Lips' Page 1908--1954)-트럼펫 주
자 오란 '핫 립스' 페이지는 극적이고 아름다운 멜로디를 만들었고 또한 사비를 취
하는 방법에도 뛰어난 감각을 갖고 있었다. 그의 음은 크고 두터운 맛이 있었고 고
음부의 음도 매력적이었다. 페이지는 브라스 같은 오픈 혼(open-horn)의 음, 뮤트
를 사용한 그로을 스타일의 음 등 어떤 것이나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처음에는
루이 암스트롱의 영향을 받았지만 암스트롱보다는 멜로디 라인이 약간 길었다. 또
로이 엘드리지와 비교해 보면 그다지 리듬적으로나 멜로디적으로 진보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는 두 개의 캔자스시 밴드에서 활약한 경험을 갖고 있다. 하나는 월터
페이지의 'B-ue Devils'이고 또 하나는 베니 모튼의 밴드이다. 결국 이 두 밴드의
멤버는 후에 카운트 베이시 악단에 들어 가게 되었지만 페이지는 카운트 베이시
곁에서 1935년부터 1936년까지 연주했다.
벅 클레이튼(Buck Cia반on 1911---페이지의 뒤를 이어 벅 클레이
튼이 1937년부터 1943년까지 베이시와 활동을 했다. 클레이튼은 스윙 시대의 가장
뛰어났던 트럼펫 주자의 한 사람이자 베이시와 함에 연주했던 트럼펫 주자로서는
1950년대에 들어서기까지 최고의 트럼펫 주자였다. 초기의 베이시 악단의 트럼펫
주자 중에는 그만큼 지적인 연주를 했던 사람은 없었다. 세련되고 온화한 톤과 트
럼펫의 전 영역에 걸천 여유있고 우아하게 연주할 수 있는 테크닉은 굉장한 것이
었다. 1930년대 초기 무렵에 그가 암스트롱의 솔로를 몽땅 외워버렸던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벅 클레이튼이 주로 영향을 받았던 사람은 루이 암스트롱이었다. 클레
이튼은 점 뮤트(C mU'팃도 종종 사용했는데 뮤트를 사용한 그의 톤은 다른 예를
찾지 못할 정도의 폭과 길이를 갖고 있었다. 1938년의 (I Want a Little GirUol]에서
곡의 처음 부분에 그의 섬세한 감각의 컵 뮤트 연주와 끝 부분의 화려한 오픈 혼
사운드를 들어 보자. 그리고 같은 1938년의 (Good Momin' Blues>에서의 뮤트 연
주도 들어 보자. 클레이튼은 컨디션이 좋아지거나 슬럼프에 빠지거나 하는 등의
주기를 타지 않는 매우 견실한 플레이어였다. 그는 그의 뛰어난 테크닉을 유지하
여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활발한 활동을 계속했다.
해리 -스위트-에디슨(Harry 'Sweets' Edison 1915---베이시 악
단 초기에 재적했던 트럼펫 주자로 주목할 만한 사람으로 해리 에디슨이 있다, 그
는 엘드리지와 같은 강렬한 트럼펫 스타일이 아닌 보다 단순한 스타일로 밝고 감
미로운 분위기의 프레이즈를 좋아하여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레가토로 불었다. 또
컵 뮤트보다도 메틀 뮤트 쪽을 좋아했는데 그 뮤트 트럼펫으로 실로 풍부한 연주
를 했다. 그는 베이시 악단에 1937년부터 1950년까지 재적했고 그 후도 자기 스타
일을 발전시켜 가면서 1970년대까지 뛰어난 트럼펫 주자로 차속 활동을 했다.
딕키 웰즈(Dicky Wells 1909--1985)-1930년대 후반에 베이시 악단에서
가장 표현력이 풍부한 트롬본 주자라면 테네시 출신의 딕키 웰즈일 것이다. 그는
항상 놀라을 정도로 선율이 아름다웠으며, 명쾌하고 유머에 넘쳐 있었다('The
Complete Co1lection of Count Basie Orchestra On Decca(1937-1939)J),
1930년대의 캔자스 시티 스타일 뮤지션과 출생지
Count Basie(NeWJersey)
pianist-bandleadeT
GusJohnson(Texas)
drummer
WalterPaga(Mi-swri)
bassist-bandleadBT
Coleman HawkinslMissouri)
saxophonist
Laster Young(Mississi pi)
saxophonisl
므uck Clayton(KBnsas)
trumpeter
Andy Kirk(KentUckv)
bandleader-saxOphonist
Ban We er(M-ssouri)
saxophonist
Henchel Evens-Texas)
saxophonist
Eddie Durham(Teras)
딜uitarist-arrangar-trombonist
Buster들mithrraxes
saxophonist
pianist-bandleadBr
Mary Loll Williams(Georgia)
pianist-composer-arranger
&Iddy Tate(Texas)-
saxophonist
Pete Johnson(Missouri)
pianist
Charlie Parker(MissMlri)
saxophonistcomposer
캔자스 시티 파이브(Kansas City Five)
Jay McShann(OMahom리
pianist-bandleadBr
Budd Johnson(lTBra되
saxophonist-composer
Hot Lips Page(Teras)
trumpeter
Jo Jones(ll inoiS-
drummer
Jassa읖tonelKanSE뢰
pianist-arrange--bandleader
George Lee(MiSsouri)
saxophonist-piBnist-bandleader
캔자스 시티 파이브(Kansas city five)
베이시 악단 멤버들로 구성된 캄보가 몇 매의 레코드를 녹음했다. 이들 캄보는
-캔자스 시티 파이브: 혹은 '캔자스 시티 식스' 등 그 구성 멤버의 수에 의해 여
러 가지로 이름이 붙여졌는데, 여기에는 베이시의 리듬 섹션 전원과 레스터 영 -
벅 클레이튼 , 딕키 웰즈 등이 참가하였다. 1939년에 그들이 녹음한 (Dickie's
DleanS과 (Lester Leaps IrS은 루이 암스트롱의 '찻 파이브'와 '찻 세븐'의 레코딩
이나, 마일즈 데이비스의 'Stearmn'J, rCook 'J, 'Work 'J, TRelaxm' 등 일련
의 프레스티지 앨범과 같이 역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캄보 클래식이 되었다. 이
들 캄보 가운데 드러머 조 존스와 트럼펫 주자 칼 스미스가 참가하는 것이 있는데
이 그룹은 'Jones-Srmth, Inc'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다. 1936년에 이 그룹이 레코
딩했던 (sheeshile Boy)와 (Lady Be Good)은 재즈의 걸작으로, 레스터 영 -스
미스, 그리고 베이시 등은 이 훌륭한 연주에서 개성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1950--70년대의 사이드맨(Sidemen)
1940년대 이후 베이시의 리듬 섹션은 스윙 스타일 그대로(기하의 프레디 그린은
1937년 베이시 악단에 처음 참가한 이래 똑같은 스타일로 연주를 계속했다) 남아
있었지만 솔로 주자의 대부분은 50년대, 60년대, 그리고 70년대에 있어 모던 스타
일이었다. 1950년대 및 60년대에 베이시 악단은 태드 존스와 조 뉴먼(Joe Newman)
두 사람의 독창적인 트럼펫 주자가 제각기 특색 있는 모던한 스타일의 연주를 하
였다 특히 존스는 디지 길레스피 이후 가장 독창적인 트럼펫 주자로서 많은 사람
들에 인정받고 있다. 1950년대 초반 찰스 밍거스 그룹에서의 연주 등은 테크닉으로
나 음악적으로나 실로 뛰어났다. 그의 라인은 보통과는 틀린 인터벌(interva구로 불
어서 예상을 뛰어 넘는 의외성으로 가득차 있었다. 게다가 그 인터벌은 트럼펫이
라는 악기에 있어서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어서 특이할 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 매우 곤란한 점도 있었다. 1966년부터 존스는 태드-멜 쌍두 밴드의 공
동 리더를 하여 그 자신이 연주하는 일은 적어졌다. 그는 베이시 악단 시절에도 편
곡을 제공하곤 했지만 자기 밴드를 갖게 된 후부터는 더욱 작 편곡에 힘을 기울
이게 되었다.
베이시 악단의 색소폰 섹션은 특히 뛰어난 플레이어가 모여 있었다. 1950년대,
60년대에도 이 경향은 계속되어 워델 그레이 ,프랭크 포스터(Frank Foster)-에디
'락조우' 데이비스-빌리 미첼(Billy Mitchell)-에릭 딕슨(Eric D그on)등 강력한
멤버가 있었다. 1950년대와 60년대에 베이시 악단의 두 사람의 색소폰 주자 프랭쳐
웨스(FrankWess)와 에릭 딕슨은 또한 플루트도 불었으며, 그들은 재즈 플루트 주
자의 리더적인 존재였다. 이 두 사람은 베이시 악단에는 참가하지 않았던 동시대
의 플루트 주자(샘 모스트(Sam Most), 허비 맨(Herble Mann)등)보다 확실히 뛰
어났다. 1950년대와 60년대 색소폰 섹션의 트레이드 마크는 마샬 로얄(Marshall
Royal)의 리드 알토 색소폰 스타일이다. 그는 임프로비이제이션을 하는 솔로 주자
라기보다도 앙상블 플레이어라고 할 수 있으며, 베이시 악단의 향기 좋고 확실한
사운드를 받쳐 주고 있었다. 베이시 악단의 리드 알토로서의 로얄은 메이나드 퍼
거슨이 스탄 겟츠 악단의 리드 트럼펫 주자로서 맡고 있던 역할을 그대로 색소폰
섹션에서 하고 있었다. 듀크 엘링튼의 리드 알토 주자인 쟈니 호지스가 죽은 해에
마샬 로얄도 베이시 악단을 탈퇴한다, 이 두 사람은 제각기 악단의 스타일을 결정
할 만큼 중요한 존재였다.
베이시 악단은 부드럽게 연주를 하면서 반면 잘 스윙하는, 사실상 유일한 빅 밴
드라는 평가를 거의 20년간이나 계속 갖고 있었다. 이 악단은 재즈 연주에서 보통
기대되는 미묘한 드라이브의 감각을 잃지 않고 정확성과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으
며, 또 확실한 연주이면서도 결코 기계적으로 하지 않았다. 1950년대 후반 및 60년
대 초반에 닐 혜프티 , 베니 카터 ,퀸시 존스 등이 베이시를 위해 수많은 곡을 썼
는데 그들은 대담하게 음의 강약을 사용하는 이 밴드의 특징을 크게 부각시켰다.
예민하게 큰 음을 내고 있다고 생각하면 금새 유연하고 작은 음으로 변한다거나
반대로 돌연 포르테로 나가거나 하여 음량의 변화가 급격한 것에도 불구하고 이화
감 없이 실로 자연스럽게 연주하기 때문에 청중들은 마법에 걸린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1970년대에 카운트 베이시 악단의 사운드는 새◎운 편곡이 수없이 이루어
짐에도 불구하고 그 편곡은 예전 스타일로 씌여 있어 50년대, 60년대의 사운드와
거의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50년대에 재적하고 있던 강력한 솔로 주자를 70년대에
는 얻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