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술종교(呪術宗敎)적 신앙(信仰)
세계(世界)각국의 민간신앙(民間信仰)에는 교단(敎團)이나 교리상(敎理上)의 조직이 없이 일반민중에 의하여 채용된 주술종교(呪術宗敎)적 신앙(信仰)이 있다.
주술을 지칭하는 magic이란 말은 페르샤의 사제 자가 행하는 행위를 영국인들이 호칭하면서 쓰이기 시작한 말이다. 주술(呪術)은 한 마디로 인간이 초인적(超人的)인 힘을 조작(造作)하여 어떤 목적(目的)을 달성하기 위한 기술(技術)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주술(呪術)은 방어(防禦)주술과 대항(對抗)주술로 구분할 수 있다.
방어주술(防禦呪術)이란 재해를 미연에 방지하고 행복을 초래케 하기 위한 주술이다.
전염병이 유행할 때 개를 잡아 그 피를 벽에 뿌려 병귀(病鬼)의 침입을 방지한다든가, 동지(冬至)에 팥죽을 쑤어 문이나 벽에 뿌림으로써 잡귀의 내침을 방지하고자 하였던 일들은 모두가 방어주술(防禦呪術)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대항주술(對抗呪術)이란 재해가 발생하였을 때 그것에 대항하여 그 재해의 원인을 제거하기 위한 주술이다.
병자(病者)가 발생하였을 때 무당(巫堂)을 초치(招致)하여 굿을 한다든가 무당이 굿을 하면서 신도(神刀)로 잡귀를 치는 시늉을 하여 그 잡귀가 물러가도록 하는 행위(行爲) 등은 대항주술에 속하는 것들이다. 그러면 이러한 주술은 어떠한 원리로부터 발생하는 것일까?
(Frazer)는 주술의 원리를 유감과 전염으로 규정하고 유감주술, 전염주술이란 말을 썼다.
유감주술이란 유사한 것은 유사한 것을 발생시키고 또 결과는 원인과 유사하다는 원리에 의한 주술(呪術)을 말한다. 이를 유사의 법칙 또는 모방주술이라고도 한다.
가뭄이 심할 때 도우의 한 방법으로 물을 길어다 키로 쳐서 비가 오는 흉내를 낸다든가! 병에 물을 넣고 그 병의 주둥이를 솔잎으로 막아 대문 곁에 거꾸로 매어달아 물이 한 방울씩 떨어지게 하여 비가 오는 시늉을 내는 일들이 곧 유감주술이라 할 수 있다.
즉 물을 키로 부쳐 비가 내리는 것을 상징하거나 병의 물방울이 떨어지게 하여 비가 오는 것을 상징케 함으로 그와 유사한 결과인 비를 오게 하기 위한 수단이다.
또 과수(果樹)를 심어 첫 수확이 있을 때 비록 얼마 안 되는 수확일지라도 큰 그릇에 담아 온 가족이 모여 무거운 시늉을 하며 들어 옮기는 일도 역시 앞으로 그렇게 많은 결실(結實)이 있기를 기원하는 유감주술의 일종이다.
이러한 유감주술은 특히 농경의례(農耕儀禮)에 널리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전염주술(傳染呪術)이란 한 번 접촉한 사실이 있는 것은 실질적인 접촉이 단절(斷絶)된 뒤에도 시간(時間)과 공간(空間)을 초월(超越)하여 상호 작용을 계속한다는 원리(原理)에 의한 주술이다.
이를 접촉의 법칙이라고도 한다. 이는 어떤 부분의 것이 그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사람의 털이나 손톱, 발톱 등은 그 사람의 육신과 분리된 뒤에도 그 사람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믿는 것이다. 죽이려고 하는 상대방 인물의 화상(畵像)을 그려 벽에 붙여 놓고 활로 쏘는 체하여 그 화상이 모두 찢겨지면 여기저기 감추어 둔다든가 무당을 시켜 많은 신당(神堂)을 배설하고 각색 비단으로 흉악(凶惡)한 귀신의 상을 만들어 앉히고 저주하려고 하는 인물의 생년월일시(生年月日時)를 써 망하기를 빌기도 하였다.
또 화상을 그려 걸고 궁녀(宮女)로 하여금 매일 활을 세 번씩 쏘게 한 뒤 종이가 모두 해어지면 비단으로 바꾸어 저주하려고 하는 인물의 시체(屍體)라 가정하여 못가에 묻어 버리는 등의 저주(詛呪)의 방법도 있었다. 이러한 주술(呪術)을 흑 주술 이라고도 하는 데, 해치려고 하는 사람의 허수아비를 만들고 그 허수아비 속에 해치려고 하는 사람의 머리카락이나 손톱을 넣어 죽은 시늉을 함으로써 상대방을 정말 죽게 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주술은 모두가 전염주술의 원리를 이용한 것들이다.
Malinowski는 주술의 기능은 미지, 위험(危險)의 요소가 명확하여 공포, 험 악, 분노, 의기저상의 상황에 평정과 정신적 안정성을 유지하려고 하는 데 있다고 하였다.
아울러 그는 주술의 본질을 형성하는 3요소로서 제문, 의례, 시행자를 들었다.
주술이 불측의 사태를 예방 내지는 대항하는 적극적 기술인데 비하여, 불측의 사태에 계신하는 소극적 대응책을 금기(禁忌)라 할 수 있다.
금기는 불길한 사태를 초래하기 쉬운 행위를 피하여 금지하는 습속인 taboo의 역어다.
그 불길한 사태를 초래하기 쉬운 요소는 예조나 점복에 의하여 추측된 것이다.
taboo는 원래 폴리네시아 원주민의 언어로부터 따온 학술용어(學術用語)이다. 금기는 초자연적 관념을 배경으로 한, 비일 상과 일상, 성과 속, 정과 부정의 두 영역으로 구분한다.
그리고 비일 상, 성, 정을 경계하고 멀리하는 일면과, 두려움을 기피하는 일면 등 앙면 성을 지닌다. 그리고 이것을 범하면 초자연적인 제재가 따른다고 믿는 개인적 감각을 포함한 사회적 습속의 총칭으로도 쓰인다.
금기는 신성한 것에 대하여 몸을 경계하는 경우와, 부정에 대하여 그것을 기하는 경우의 양면성(兩面性)을 지닌다. 신성한 것에 대한 기는 말하자면 적극적인 것으로서, 사람이 원래 가지고 있는 죄 예를 제거하기 위하여 계이나 불을 한다.
부정에 대한 기(忌)는 부정에 접근하지 않으려는 소극적인 것으로서 부정의 대표적인 것은 사(死)와 출혈(出血)이다. 이 중 사의 부정을 기하는 것을 상기라 할 수 있으며, 출혈의 기중 최대의 것은 출산으로 이를 산기라 할 수 있다.
산기 이외에도 월경이나 상처로 인한 출혈 등도 크게 기한다.
이러한 금기는 각종 제의, 특히 당제(堂祭)와 같은 집단제의에서 철저히 준수되어 오고 있다.
이때의 금기는 속(俗)으로 부터 이탈하여 해탈에 이르는 길이 된다.
생활의 실상(實相)을 신성(神聖)과 세속(世俗)으로 구분하여, 상대되는 양면을 대조하면서 일상(日常)의 행위를 규제하는 태도는 어느 민족에게나 있어 왔던 일이다. 제전(祭典)은 인간생활에 있어서 가장 신성한 일로 일상의 세속생활로부터 돌연히 진입(進入)할 수는 없는 일이다.
즉 세속으로부터 신성(神聖)으로 전화하는 데는 일정한 준비가 필요하다.
그 준비가 곧 금기(禁忌)이다. 이를 제의에서는 제계라고도 하며 그것은 신(神)을 맞이하기 위하여 청정한 상태에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금기(禁忌)가 최고조에 달한 때가 곧 제전이다.
구습이 잘 지켜지는 지역일수록 금기는 엄격히 준수된다.
그러나 경제 및 사회생활의 복잡화에 따라 제의집단 전체가 장기간의 금기생활을 할 수 없게 됨에 따라 제의집단의 대표자를 선정하여 그로 하여금 금기생활을 대행하게 하는 형식이 나타났다. 고대사회(古代社會)에서는 직업적인 사 제자가 있어 그에게 제반 금기(禁忌)를 맡기고 다른 집단(集團)원들은 다만 제전에 참석하는 정도의 형식(形式)도 있었다.
(1), 기풍주술(祈豊呪術)
기풍주술이란 그 해의 농작이 풍년이 되도록 하기 위하여 주력을 인간의 뜻대로 유도하기 위한 기술이라 할 수 있다. 풍흉은 물론 모든 자연(自然)의 우너리나 인간만사가 보이지 않는 주력에 의하여 지배되는 것으로 믿었던 고대(古代)인들은, 그 주력(主力)을 이용하여 만사를 인간의 의지대로 성사시킬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농경민족에게 있어서 농작의 풍흉(豊凶)은 곧 집단의 생존(生存)과 직결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때문에 한 해가 가고 다음 해가 돌아오면 무엇보다도 농경에 대한 관심이 우선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기풍(祈豊)을 유도하기 위한 각종 기풍주술(祈豊呪術)이 성행하게 되었다. 기풍주술의 예를 몇 가지 들어 보겠다.
입춘일(立春日)이 되면 함경도(咸鏡道)에서는 나무로 만든 소를 관청(官廳)으로부터 민가(民家)의 마을까지 끌고 다니는 풍속(風俗)이 있었다.
입춘은 봄의 시작이다. 봄이 시작되면 곧 농사를 시작해야 한다.
이 때 관청으로부터 목우(木牛)를 끌고 민가로 내려오는 풍속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닌다.
우리나라의 농경(農耕)과 소는 절대적인 관계를 지니고 있다.
즉 소는 곧 농경을 상징할 이만큼 농사에 있어서 빼어 놓을 수 없는 존재다.
그러므로 입춘(立春)날 관청(官廳)으로부터 목우를 이끌고 민가로 내려온 것은, 첫째 관(官)의 권농(勸農), 중농(重農), 시책(施策)을 드러내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둘째는 소(丑)에 대한 감사의 표시와 또 한 해 동안 인간을 위하여 열심히 일해 줄 것을 기원(祈願)하는 의미(意味)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세 째는 백성(百姓)들로 하여금 소의 고마움을 재인식하고 소를 더욱 보살펴 튼튼히 사육(飼育)하게 하기 위한 뜻이 들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조선(祖先)조의 궁중에서는 정월 상해일, 상자일(上亥日, 上子日)에 나이가 젊고 지위가 낮은 환관(宦官) 수백 명이 횃불을 땅 위로 이리저리 내저으면서(돼지를 불살라라, 쥐를 불살라라)하며 돌아다니는 풍속이 있었다.
또 곡식의 씨를 태워 주머니에 넣어 재신(宰臣)과 근시(近侍)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상은 불로써 해수(害獸)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주술적 의식(儀式)이라 할 수 있다.
돼지(산 돼지)와 쥐는 밭을 파헤치고 농작물을 짓밟고 흩어 먹으며 곡물의 피해를 가져다주는 해수들이다. 그래서 정월(正月) 상자일(上子日)에 콩을 볶으며 (쥐 주둥이 지진다. 쥐 주둥이 지진다.)라는 주문(呪文)을 외워 그 해 쥐의 피해(避害)를 방어(防禦)하려고 하기도 하였다.
불은 무엇이든지 태워 없애는 강한 힘이 있어 어느 동물이든 가장 무서워하는 대상중의 하나다.
그러므로 이러한 불을 이용하여 해수(害獸)를 쫓아내는 시늉을 함으로써 해수의 피해를 방지하려 하였으니 이러한 주술을 방어주술(防禦呪術)이라 할 수 있다.
곡식의 씨를 태워 주머니에 넣어 재신(宰臣)과 시신(侍臣) 에게 나누어 준 것은 풍년을 기원하는 뜻이다. 씨를 태움은 그 씨의 재생(再生)과 번식(繁殖)을 의미한다.
한 알의 곡식이 땅 속에 묻혀 썩음으로써 더 많은 낟알을 얻을 수 있듯이, 곡식은 재생과 번식을 위해서는 일단 소멸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곡식의 씨를 태운 뜻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 태운 씨를 주머니에 넣는 것은 주머니가 재화를 담는 곧 복의 상징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시골에서는 보름 전날 짚을 묶어 깃대 모양으로 만드는데, 그 안에 벼, 기장, 피, 조의 이삭을 집어넣어 싸고 목화를 그 장대 위에 매단다. 그
리고 그것을 집 곁에 세우고 새끼를 늘어뜨려 고정시킨다. 이것을 화적(禾積)이라 한다.
이것도 풍년을 기원하는 기풍주술(祈豊呪術)의 한 가지다.
장대(長竿)의 특징은 길고 높은 데 있다. 풍작(豊作)이 되려면 우선 작물(作物)이 잘 자라야 하는데, 작물이 잘 자란다는 것은 그 키가 크게 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화적(禾積)의 근본(根本)의도는 벼를 비롯한 기장, 피, 조 그리고 목화 등 중요한 작물이 장대처럼 높이 자라 풍작을 유도하기 위한 모방주술(模倣呪術)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모방주술과 유사한 습속으로 다음과 같은 주술행위를 들 수 있다.
상원일(上元日)에 산간지방(山間地方)에서는 가지를 많이 친 나무를 외양간 뒤에 세우고 곡식의 이삭과 목화를 걸어 둔다. 그리고 아이들이 새벽에 일어나 이 나무를 싸고돌면서 노래를 부르며 기도(祈禱)하다 해가 뜨면 그만둔다.
상원 날에 과일나무의 가지 친 곳에 돌을 끼워 두면 과일이 많이 열린다고 하며 이를 가수(嫁樹)라 한다. 이는 성교(性交)로써 생산(生産)과 번식(繁殖)을 촉진케 하기 위한 모방주술의 일종(一種)이라 할 수 있다. 가지 친 곳에 돌을 끼우는 것은 곧 두 가지의 교접(交接)을 의미한다.
교접은 성교(性交)를 의미하며 성교는 생산과 번식을 뜻한다. 그러므로 과일나무의 가지 친 곳에 돌을 끼워 과일이 많이 열리기를 기원하는 의식은 모방주술 적 기풍행위라 할 수 있다.
농부들에게는 풍년(豊年)이 곧 복을 받는 일이지만 도시인들에게는 관운(官運)이 융성하여 높은 관직에 오르고 사업이 번창하여 많은 재화를 모으는 것이 곧 복을 받는 일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복을 기원하는 주술(呪術)행위도 많았다.
정월 보름 꼭두새벽에 종각(鐘閣) 네거리의 흙을 파다가 집 네 귀퉁이에 뿌리거나 부뚜막에 바르는 습속이 있었다. 종각 네거리는 가장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곳이다.
많은 사람은 곧 많은 재화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밟고 다닌 그 곳의 흙을 파오는 것은 곧 많은 재화를 집안으로 들여오는 것으로 상징될 수 있다. 설날부터 문을 닫았던 시전이 처음 문을 열 때는 반드시 모충일(毛蟲日)을 택하되 주로 인일(寅日)을 택하여 문을 여는 습속이 있었다.
이는 금수(禽獸)의 털이 번성하듯이 사업이 번창하기를 기원하는 뜻이 있다. 이처럼 풍성하고 번창한 실제적 사실을 원인으로 하여, 미래의 어떤 일이 풍성하고 번창하기를 기원하는 의식이나 행위들은 모두가 유감주술적(類感呪術的) 원리에 의한 기풍의식이라 할 수 있다.
(2), 제액(災厄), 구병주술(除厄․救病呪術)
고대인들은 모든 발병의 원인이 잡귀 특히 역귀의 침입에 의한 것이라 믿었다.
그러므로 병에 걸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잡귀(雜鬼)가 침범하지 못하도록 예방하여야 하며, 일단 병에 걸리며 침범한 잡귀를 퇴치(退治)시킴으로써 병이 치유되는 것으로 믿었다.
여기에서 발병의 원인이 되는 액을 미리 예방하고 병에 걸리면 그 액을 물리치기 위한 각종 주술이 성행하게 되었다.
원일(元日) 궁중에서는 붉은 도포와 까만 사모를 쓴 상을 그려 궁전의 겹 대문에 붙이기도 하고 또 종규(鍾馗)중국에서 마귀(疫鬼)를 쫓는 신(神)의 귀신 잡는 상을 그려 붙이기도 하며, 또 귀신의 머리를 그려 문설주에 붙이기도 하여 액과 나쁜 병을 물리친다.
또 여러 관가(官家)와 척리(戚里)의 문짝에도 모두 이것들을 붙이고 여염집에서도 모두 이를 본뜬다. 위에서 보면 세 가지 상(像)이 등장한다.
하나는 붉은 도포와 까만 사모를 쓴 상이고, 둘째는 종규(鍾馗)가 귀신 잡는 상이며, 세 째는 귀신(鬼神)의 머리다. 이러한 상들은 한마디로 잡귀(雜鬼)들이 두려워하는 상들이다. 이러한 상을 그려 겹 대문이나 문설주에 붙임으로써 잡귀의 침범을 방지하고자 하였으니, 이는 잡귀로 하여금 공포를 느껴 그 곳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일종의 경압법(驚壓法)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화상(畵像)뿐만 아니라 문자나 부호(符號)로써 잡귀의 침입(侵入)을 방지하기도 하였다.
입춘에 관상감(觀象監)에서는 주사로 벽사 문을 써서 대궐 안으로 올린다.
그러면 대궐 안에서는 그것을 문설주에 붙인다.
단오(端午)에도 관상감에서는 주사로써 천중절(天中節)의 붉은 부적(符籍)을 박아 대궐 안으로 올린다. 그러면 대궐 안에서는 그것을 문설주에 붙여 불길한 재액(災厄)을 막게 한다.
사대부의 집에서도 그것을 붙인다. 이상의 몇 가지 예(例) 가운데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는 공통점은 붉은 색이 이용되었다는 사실이다. 붉음은 곧 적(赤)이니 적은 곧 양이며 양은 음을 구축(驅逐)하는 주력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이처럼 붉은 색으로 상이나 부적을 그리고 문자를 써서 재액(災厄)의 잡귀가 침범하지 못하도록 하는 습속이 발생하였을 것이다.
항간에서는 벽 위에 닭과 호랑이의 그림을 붙여 액이 물러가기를 빈다. 닭과 호랑이가 지니는 민속(民俗)적 의미에 대하여서는 전장(前章)에서 이미 언급한 바 있으므로 여기에서는 더 이상의 설명을 생략하거니와 닭에게는 귀신(鬼神)을 쫓는 주력이 있고 호랑이는 백수(百獸)의 왕으로서 잡귀(雜鬼)가 감히 접근할 수 없는 외포(畏怖)의 동물로 인식되었다.
남녀가 일 년간 빗질할 때 빠진 머리카락을 모아 빗 상자 속에 넣었다가 반드시 설날 황혼(黃昏)을 기다려 문 밖에서 태움으로써 나쁜 병을 물리친다.
귀의 접근을 방지하고 침입한 귀를 퇴치(退治)하는 방법 중에는 사귀가 혐기(嫌忌)하는 냄새나 색 또는 동작으로써 귀가 스스로 접근을 피하고 스스로 물러나게 하는 방법도 있다.
이를 오감법(五感法)이라고도 하는 바, 머리카락을 태워 귀의 침입(侵入)을 방지하고자 했던 것은 그 냄새로써 사귀(邪鬼)를 쫓기 위한 방법이었다.
시골에서 집안에 환자가 발생하면 고추를 태워 동티의 유무를 확인하고 침범한 병귀(病鬼)를 퇴치하려고 하는 치유법이 있다. 고추는 매운 식물로 그것을 태우면 그 냄새가 몹시 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집 안에 동티가 나면 고추를 태워도 그 냄새가 전혀 맵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동티의 유무를 확인하고 그 냄새로써 병귀를 퇴치하려고 하였으니 이는 오감법에 의한 사귀의 퇴치법이라 할 수 있다.
어린이로서 봄을 타 살빛이 검어지고 야위어 마르면 정월 보름날 백 집의 밥을 빌어다가, 절구를 타고 개와 마주 앉아 개에게 한 숟갈 먹이고 자기도 한 숟갈 먹으면 다시는 그런 병을 앓지 않는다.
이는 일상으로부터 비일 상의 세계에 돌입함으로써 일상의 역귀(疫鬼)를 제거하려고 하는 구병주술(救病呪術)이라 할 수 있다. 백 집의 밥을 얻어 오는 것도 비일상적이며 절구를 타고 앉아 밥을 먹는 것도, 또 개와 마주 앉아 개에게 한 숟갈을 먹이고 자기도 한 숟갈을 먹이고 자기도 한 숟갈을 먹는 것도 모두 비일상적 행동이다.
병귀(病鬼)는 일상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 병귀를 제거하려면 그 일상을 탈출함으로써 가능하다는 사고가 이러한 구병주술(救病呪術)을 발생케 하였을 것이다. 단오(端午)날 남녀 어린이들이 창포탕(菖蒲湯)을 만들어 세수를 하고 홍색(紅色)과 녹색(綠色)의 새 옷을 입는다.
또 창포의 뿌리를 깎아 비녀를 만들되 수(壽)나 복(福)자를 새기고 끝에 연지를 발라 두루 머리에 꽂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재액을 물리친다. 이것을 단오장이라 한다.
창포 탕으로 세수를 하여 액을 면하려고 한 것은 창포를 주초로 인정한 때문이다.
식물 중에는 쑥, 마늘, 도지(桃枝) 등과 같이 예로부터 주력이 깃들여 있다고 믿어 온 것들이 있는 바, 창포 역시 여기에 속하는 식물(植物)이었다. 이 때문에 창포 탕으로 세수를 하고 창포뿌리로 비녀를 만들어 꽂음으로써 액귀(厄鬼)의 침범(侵犯)을 방어하려고 하였다.
대궐 안에서는 제석 전날에 대포를 쏘는데 이를 연종포(年終砲)라 한다.
화전(火箭)을 쏘고 징과 북을 울리는 것은 대나의 역질귀신(疫疾鬼神)을 쫓는 행사(行祀)의 남은 제도다. 또 제석과 설날에 폭죽을 터뜨리는 것은 귀신을 놀라게 하는 제도다.
이는 소리로써 귀신을 양퇴(穰退)케 하기 위한 주술이다.
즉 크고 무서운 소리가 나게 함으로써 주위의 귀신이 놀라 달아나게 하기 위한 제액주술(除厄呪術)의 일종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고대(古代)인들은 다양한 방법(方法)을 동원하여 액(厄)을 쫓고 병을 고치려 하였다.
한국 민속에서 귀신(鬼神)을 퇴치(退治)하는 방법으로 사용되는 것은 대적법, 복종법, 의타법, 기교법 등이다. 대적법은 질병의 원인(원인인 귀신에 정면으로 대항하여 그것을 격퇴하는 것이다.
환자의 신체에 고통을 주면 귀신이 고통을 참을 수 없어 나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환자(患者)를 온돌방에 가두어 놓고 2, 3일간 연속 송경(誦經)을 한 뒤 뽕나무 가지나 복숭아나무 가지로 때리면 낫는다고 한다.
경압법은 소리를 질러 귀신을 놀라게 하고 위협함으로 환자에게서 떨어져 나가게 하는 것이다.
복종 법은 귀신을 달래거나 무엇을 바쳐 귀신의 재화로 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요즘으로 말하면 퇴마의식과 같은 것이다.
◈ 화기법; 불로 공격한다. 현제 무당이 사용 중,
◈ 구타법; 환자를 구타하면 신체에 잠입했던 귀신이 도망간다.
기독교 기도원에서 성행하고 있는 방법이다.
◈ 경압법; 환자를 놀라게 하면 귀신이 놀라서 도망간다.
일반인들이 딸국질 신을 물리 칠 때 지금도 사용 중이다.
◈ 자상법; 신체일부에 상처를내어 도망하게하는 방법과 사람의 그림을 그려놓고 병이 난 그 신체의 부분을 칼로 찌른다.
◈ 봉박법; 환자의 신체를 대신해서 명태나 종이 등을 따라서 병이 나가게 하는 법, 무속에서 현제 사용하고 있다.
◈ 곡물법; 곡물을 사용하여 퇴치한다.
◈ 공손법; 귀신에게 공손히 대하여 존경의 뜻을 표해서 감동을 일으켜서 하는 퇴치 법, 현제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다.
◈ 부적법; 그림이나 글씨 등을 사용함.
◈ 음식법; 환자에게 음식을 먹여 낮게 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방법을 세분(細分)한 촌산지순(村山智順)은 구타법(毆打法), 경압법(驚壓法), 화기법(火氣法), 자상법(刺傷法), 봉박법(封縛法), 공물법(供物法), 공순법(恭順法), 주부법(呪符法), 차력법(借力法) 음식법(飮食法), 고묘법(顧墓法), 오감법(五感法), 접촉(接觸) 및 차단법(遮斷法), 음양법(陰陽法)을 들었다.
(3), 금승, 황토(禁繩, 黃土)의 주술성(呪術性)
금승(禁繩)을 일반적으로 금줄(禁乼)이라 한다.
금줄은 그것을 설치하는 장소에 따라 그 형태(形態)가 조금씩 다르다.
곧 제장(祭場)이나 사제자(司祭者)의 집 같은 신성(神聖)한 곳에 늘이는 것과 출산(出産)시 산기(産忌)의 표시로 늘이는 것의 두 가지 형태(形態)를 찾아볼 수 있다.
신성처(神聖處)에 늘이는 금줄은 짚을 왼새끼를 꼬아 거기에 백지(白紙), 백포(白布), 또는 솔가지나 댓잎 등을 드문드문 끼우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 지역(地域)에 따라서는 그 왼새끼에 방망이라 하여 굵게 왼쪽으로 곤 동아줄 모양의 새끼를 매어달기도 한다.
산기(産忌)의 금줄은 역시 왼 새끼줄에 솔가지나 댓잎을 끼우고 출산(出産)아의 성별(性別)에 따라 남아일 때는 고추를, 여아일 대는 숯을 매어다는 것이 보통이다.
이러한 금줄은 그 곳이 신성한 곳임을 표시하고 부정자의 접근을 차단시키며 잡귀의 침범을 방어하는 등의 기능을 발휘한다. 금줄의 기본재료인 짚은 도작문화의 소산으로서, 짚에는 보이지 않는 주력이 깃들어 있다고 믿어 왔던 것 같다.
그것은 출산 시 산실에 짚을 깔거나 아니면 짚단을 산실 한 귀퉁이에 세워 놓는 산속, 도는 노상 제를 거행할 때 노상에 먼저 짚을 깔고 그 위에 제물을 진설하는 등의 습속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금줄은 어느 종류의 것이나 모두 좌승이어야 한다.
그것은 좌의 신성 관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몽고의 무의에서 보면 무인이 무의에 좌승을 사용하고, 퉁구스족의 무속에서도 역시 좌승이 이용된다고 한다. 이처럼 무의, 무속에 좌승이 이용되는 것은 좌(左)에 대한 신성 관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상징적 이원론에 의하면 세계는 좌수와 우수, 남성과 여성, 성과 속, 선과 악, 백색과 흑색으로 유별된다. 특히 동남아시아에서 부족사회나 민속사회의 이원론적 사회유별원리는 찾아보면 우는 선, 정, 좌(左)는 악, 부정이라는 영적, 종교적 상징이 강조되고 있다.
세속의 승이라면 그것은 우승이 원칙이다.
그런데 세속을 탈피하려면 세속과 반대적, 대조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에서 세속이 아닌 성의 세계를 표현하기 위하여 좌승을 이용하게 되었을 것이다.
금줄에 매어다는 백지나 백포(白布)는 화폐의 상징이라는 설도 있다.
화폐는 무엇이든지 사들일 수 있는 기능을 지니고 있어 그것을 일종의 마력으로 인정하였기 때문에 금줄에 백지나 백포를 끼우게 되었을 것이라는 견해다.
그러나 필자로서는 이와 좀 다른 각도에서 백지, 백포를 해석하고 싶다.
즉 금줄의 백지나 백포가 화폐를 상징하는 것이었다기보다는 오히려 신성한 장소의 표식으로서 이용된 것이라 보고 싶다.
제장의 표시를 강화하기 위하여 백지를 이용했던 것처럼 금줄에 백지나 백포를 매어단 것도 신성한 장소임을 보다 확실히 나타내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제의(祭儀)는 어느 것이든 밤에 거행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므로 캄캄한 밤에 제장에 강림하여야 하는 제신에게는 밤에는 눈에 잘 보이는 제장의 표시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밤에 잘 보이는 색상은 백색이다.
이 때문에 신성 처를 표시하는 금줄에 백지나 백포가 이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천이나 종이가 다만 화폐의 의미만을 갖는다면 그것은 굳이 백포나 백지가 아니라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금줄에 매어다는 종이나 천은 반드시 백색의 것이어야 한다.
금줄에 솔잎을 끼우는 것은 그것이 침엽(針葉)이고 상록(常綠)이기 때문일 것이다.
침엽은 찌르는 것이기 때문에 잡귀를 두렵게 하여 그 잡귀의 접근을 방지할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거기에 녹은 청색계로서 그것은 동방을 의미하는 색상이다. 동방은 광명을 뜻하며 광명은 양으로서 양은 음귀를 축출하는 저력을 지닌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금줄에 매어다는 댓잎은 솔잎과 거의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눈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높은 절조와 검장의 잎에서 주력을 감지하였기 때문
에 댓잎을 금줄에 매어달게 되었을 것이다. 산기의 금줄에 남아를 분만하면 고추를, 여아를 분만하면 숯을 끼우는 것도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고추는 우선 그 모양이 남성의 심 볼과 같고 인간의 남성의 심 볼로부터 무한한 마력을 느껴 왔다. 또 고추의 색은 적색으로서 적은 양이니 곧 벽사의 색상이고 남성을 의미하는 색이다.
그리고 그 맛은 매우 매워서 가히 귀신을 쫓아 낼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고추가 지닌 이러한 위력으로 인하여 병자가 발생하면 고추를 태워 병 귀를 쫓아내려고 하는 주법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숯은 땅 속에서도 썩지 않는 성질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귀가 제일 싫어하는 불을 일으키는 물체다. 또 고래로 숯에는 귀가 빙의하여 있다고 믿어 왔다.
숯의 색상은 흑으로 흑은 음이며 음은 곧 여성을 표시하기도 한다.
따라서 금줄에 숯을 매어다는 것은 귀가 두려워하는 물체, 또는 귀가 빙의(憑依)한 물체를 매어달아서 여타의 잡귀가 침범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면서 음성(陰性)은 곧 여아의 분만을 표시하기도 한다.
제의를 거행하려면 미리 대문 앞 좌우에 황토를 놓는다.
집단제의의 경우에도 제주(祭主) 집 문전이나 제장입구 또는 촌락 입구 등지에 황토를 놓는 것이 전래의 습속이다. 황토는 지상에 뿌리는 예도 있으나 그보다는 입구 좌우의 길 가에 각각 세 무더기씩을 놓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처럼 황토를 놓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고찰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소위 음양사상에서 그 이유를 찾아야 할 것 같다. 황토는 곧 적토다.
오행사상에 의하면 적은 곧 양이다. 이에 반하여 잡귀는 음에 해당한다.
앞에서 거듭 말한 바와 같이 양은 음을 구축할 수 있는 저력이 있다고 믿어 왔다.
따라서 적토를 놓는 것은 양으로써 음을 제압하기 위한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은 마치 팥죽을 쑤어 문이나 벽에 뿌리는 둥지의 습속과 유사한 발상이라 할 수 있다. 둘째는 미리 산신(山神)을 맞이해 들임으로써 다른 잡귀의 접근을 방지하려고 하는 의도에서 제전에 황토를 놓는 습속이 발생하였다고 볼 수 있다. 제전에 놓는 황토는 반드시 산에서 파 온 흙이어야 한다.
이처럼 산의 흙을 파오는 것은 결국 산신을 맞이해 오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황토를 놓을 때는 반드시 좌우에 세 무더기씩을 놓는 것이 원칙이다.
이처럼 세 무더기씩을 놓는 것은 三이 多를 의미하는 수이기 때문일 것이다.
즉, 민속적으로 三은 다, 대의 의미가 있으니, 그것은 여우가 사람으로 변신하기 위해서는 재주를 세 번 넘어야 한다든가, 서낭당을 지날 때 돌을 세 개 얹고 침을 세 번 뱉고 지나가야 한다는 등의 습속에서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