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향정(披香亭)>
최치원의 흔적을 만난다. 태인현감 시절 세웠다고 전해지는 피향정(披香亭), 정자 이름에 대한 해설은 구구하다. 향을 나누든지, 향을 입든지, 어쨌든 여러 사람이 향을 나누어 향유한다는 것이다. 나누면 더 커지는 향, 누군가가 입어도 주위에 진동시킬 향, 연지가 하나밖에 남지 않았고, 바로 앞이 도로가 되어 향이 얼마나 멀리 갈지 알 수 없으나, 전통의 향과 마음의 향이 전해오고 퍼지는 것만은 막지 못할 거 같다. 호남제일정 피향정을 만난다.
문화재 지정 : 보물 제289호
소재지 : 전라북도 정읍시 태인면 태산로 2951 (태창리)
방문일 : 2021.12.26.
1. 돌아보기
연못을 안고 우뚝하면서도 위압감이 없이 서 있는 커다란 정자가 마을을 온통 감싸고 있다. 6.25후에는 면사무소로도 사용되었다 하나 이후 여러차례 주변정리와 보수를 거쳐 지금은 깔끔하게 정리된 모습을 갖고 있다. 보통 정자보다 규모가 제법 커서 정자 자체도 큰 구경거리가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피향정과 연지 주변의 경치는 남도 지방에서 으뜸이었다 하니 ‘湖南第一亭(호남제일정)’ 편액의 이름값을 했던 셈이다.
* 소개
정면 5칸, 측면 4칸의 겹처마 팔작지붕건물. 신라 헌안왕(857∼860) 때 최치원(崔致遠)이 태인현감(泰仁縣監)으로 재임 중 세웠다고 전하나 정확한 초창연대는 알 수 없다.
피향이란, 향국(香國)을 둘로 나누었다는 의미로, 본래 이 누정의 상하에는 상연지제(上蓮池堤)와 하연지제(下蓮池堤)의 두 연지(蓮池)가 있어 여름에는 연꽃이 만발하여 향기가 누정의 주위에 가득차므로, 이를 뜻하여 피향정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는 주변이 많이 변형되어 옛 정취는 사라지고, 마치 평지 위에 누정이 건립된 것처럼 보인다. 《증보문헌비고》에 의하면, 광해군 때 현감 이지굉(李志宏)이 중건하고, 현종 때 박숭고(朴崇古)가 확장 중건하였으며, 1716년(숙종 42) 현감 유근(柳近)이 전라감사와 호조에 교섭하여 정부의 보조로 재목을 변산(邊山)에서 베어다가 현재의 규모로 건물을 세웠다고 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조)
신라시대 최치원이 태산군수로 재임 중 이곳 연지 가를 소요하며 풍월을 읊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정자의 창건 연대는 분명하지 않다. 피향정의 披香은 연꽃 향기를 '입는다', '걸친다'의 의미이다. 연꽃은 향기를 흩날리고 사람은 그 향기를 입으니 연과 사람, 즉 물아가 일체가 된다는 의미다. (<전북문화 찾아가기> 351면 참조) 단순히 향기를 모두가 나눈다고 볼 수도 있다. 향기야말로 나눌수록 커지지 않겠는다. 향기를 전하는 연꽃이나 향기를 나누어 흠향하는 중생이나 모두 향기를 공유하지 않겠는가.
정자 내부에는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써놓은 시가 걸려 있다. 임억령, 김상헌, 김윤식 등이 찾아 쓴 시가 전한다.
천장은 연등천장[椽背天障:서까래가 드러난 천장]이 주류를 이루나 양쪽 협간(夾間) 사이에는 귀틀을 짜 우물천장을 가설하였다. 창호는 가설되지 않아 사방이 모두 트이게 되어 있다.
피향정 옆으로는 현감 관찰사 등의 선정비, 영세불망비 등 여러 비석을 모아 놓았다.
피향정 앞 하연지와 함벽루. 함벽루 앞 공간에서는 각종 행사가 벌어진다. 피향정문화축제를 비롯한 각종 국악공연 등이 벌어지는 문화공간이다.
함벽루(涵碧樓). 푸르름에 젖는 누각이다. 피향정이 연꽃의 향을 나누는 정자이니, 이곳은 젖을 함, 푸를 벽, 연잎의 푸르름에 젖어본다 하여 짝을 이루는 이름을 지은 것이 아닌지 풀이해본다. 상연지는 사라지고 하연지만 남았는데, 하연지의 연꽃은 꽃과 잎을 제대로 누려보자는 의도도 배인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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