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변하면서 생신이나 생일의 풍속도나 문화가 많이 변하고 있다
3세대 50여년 동안 회갑 가족 모임 변천사를 한눈에 볼수 있다.
해몽 할머니 회갑1965년 10월(음력)
할아버지 할머니 자손이 번창하여 일가를 이루고~~
앞줄에 있는 손자들이 장성하여 회갑을 맞으니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작은 할머니 집안어르신들 안동할아버지 네산 할아버지~~
어머니 회갑 1986년 2월 -4남 4녀의 8남매 왼쪽 끝 미소년 같던 신랑은 구랑이 되었고~~
어머니 고희연 1995년 2월
조촐한 가족 모임중
올해(2008년 6월) 큰 오빠(박창현)가 환갑을 맞았다 아직 청년같은 큰오빠가 환갑을 맞아 ~~
요즘 세상이 변해 환갑을 찾는 사람이 드물지만 그냥 보내기 서운하여 형제들과 조촐한
가족 모임을 갖었다.
8남매와 가족들 큰언니의 두 사위도 참석했다. 둘째 정석오빠 큰 딸은
사법고시에 패스해서 "가문의 영광"이 되었다.
큰 오빠는 "나보다 먼저 간 사람이 없어 고맙고 요즘 세대에 변수도 많은데
다 들 열심히 잘 살아주어서 고맙다"는 덕담을 했다.
8남매 커플들~~뒷줄 오른쪽 끝에서 두번째는 막내 여동생 경희 남편으로(제낭)
동쪽 갈계교회 최장노님 손자 최기주(현 국세청 근무) 한 동네서 어린시절 커 온
모습을 지켜본 사이다.+
큰 오빠집 정원에서 케익에 불도 켜고~~
큰오빠는 "경상대 영문과 교수"로 정년을 앞두고 있다.
야심한 밤인데도 편 먹기 바둑은 끝나지 않고~~오빠들과 서울에서 자취를 하면서
동냥 공부를 하던시절 바둑을 두거나 고연전(연고전)을 하면 오빠들은 서로 자기편을
들어 달라고 나를 회유하고 나는 "아무나 이겨라" 하고 응원을 했던 기억이 새롭다.
태현이의 말에 경청하고 있는 형님들~~~창현, 정석,원석,태현
이건 내가 오랫동안 너희들이랑 먹을 라고 꼬불쳐 놓은 발렌타인 00년산 ~~
큰 오빠는 형제는 자주 만나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이런 큰 오빠의 생각이 우리 형제들의 우애를 다지는 원동력이 아닌다 싶다.
옛사진이 참으로 귀중하게 느낌이 옵니다
박순희 수필가로 등단하다
2004년 등단식이 있었던 세종문화 회관에서 만학도님 1남2녀와 함께 다복한 모습입니다. |
![]() |
부군(완주 구이 우체국장님)과 함께. |
![]() 만학도님 (언니)세종문화회관 등단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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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희의 회갑기념 수필집-꽃으로 말한다.
요즘 우리사회는 고령화가 사회 이슈가 되었고 나이 육십이면 청춘에 속하고 회갑에 의미를 두지 않지만 우리 어릴적
하나씨, 할매의 회갑은 상 노인에 속했던 것으로 기억이 되는데 요즘은 회갑을 맞은 사람들도 모두 다 청년들이니
회갑연을 하는 축들도 없는것 같다. 어릴적 부터 문학소녀를 꿈꾸며 틈틈이 습작을 하고 늦깍이로 대학 공부를 하며
남들은 갱년기 우울증을 앓을 때 국문학과 한문으로 자신을 무장하며 글을 쓰던 언니가 회갑 기념으로 수필집을 냈다.
항상 긍정적이며 자신을 갈고 가다듬는데 많이 노력하는 언니를 보면서 내 자신을 돌아보고 채근질 하며 또 오늘 그
자리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언니가 자랑스럽다.
생활속에서 틈틈이 쓴 글이 "수필집 꽃으로 말한다"로 태어났다.
만학도님(존경하는 언니)항상 도전하고 정신을 기름지게 하기 위해 바쁜 ~~그리고 요즘은 또 다른 시도~~
문화센터 한문 선생님으로 초등학교 방과후 한문 선생님으로 하루 하루를 알차게 보내시느라 여념이 없다.
피해자들인데 그런 사회적 분위기나 집안의 분위기를 늘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희생하면서 오늘이 있기까지
부단히 노력한 결과여서 더욱 값진것 같네요. 우리 아랫 세대는 여자들이 더 우수한 인자를 갖고 있는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인생은 공평한 것인가?~
망각했던 나 자신을 많이 되새겨 볼 것 같은 느낌입니다.
소녀시절 부터 문학에 항상 목 말라했고 글 쓰기에 부단히 노력했던 언니를 보면서 자신을 채찍했던 좋은
롤 모델이였고 제 인생의 진정한 멘토이신 언니께 많은 존경과 사랑을 보냅니다.
형성되고 있습니다 .보람을 느끼기도 하고 더 완성도 높은 글쓰려고 노력하렵니다.그리고 겸손한 마음 향기로운
삶으로 자신을 다독입니다.예스24 또는인터파크에들어가서 제목치면나옵니다
만학도님(언니)는 유교적인 가풍과 남자 형제들이 많고 장유유서가 분명했던 집안 분위기 때문인지 항상 겸손과 양보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는 삶을 실천하며 살았다.
남자 형제들은 초등학교만 졸업하면 도회지로 유학을 갔지만 고향에 남아 면사무소(보건직 공무원을
하면서-그것도 본인이 정보를 얻고 스스로 찾아서 얻은 직업이다)- 다니면서 부모님을 도왔고 그리고 항상배움에 목말라 하며 늦깍이로 공부를 하며 까다로운 시어머니를 모시고(사돈 어른은 늦게 공부하는 언니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며 판사를 할랑가 모르것소?)열심히 삶을 살고 자기 분야를
개척해가는 삶을 실천했다
=올 봄 회갑 기념으로 책을 출간한다면서 메일로 "아버지의 연인들"이란 꼭지의 글을 보내왔다.
책으로 출간되면 그 부분을 읽고 상처 받을 두 동생을 위해 많이도 고민을 한 것 같았다.
우리 가정사 이야기이고 대부분 알고 있는 내용이며 두 동생들을 배려해서 많은 부분을 절제한
보편적인 내용이여서 책에 넣어도 될 내용인것 같다고 전했는데도 불구하고 결국 그 내용은
편집과정에서 빼버렸다.(창작마당 참고)
그 처럼 상대방을 먼저 배려하고 양보하는 미덕이 생활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2009년 12월 4일 육군 대령으로 진급해서 ~~연대장 취임식에 참석한 가족들~~
첫댓글 가족사진 잘봤어요 저는 아무도 모르겠어요 집안인데!!! 세월의 사진들~~조기 위에 안동 할아버지면 우리 할아버지 사진 아닌가요~~
그래~~집안의 어르신들이였고 제사 지내고 다음날 아침은 제사 떡을 이고 가까운 곳은 우리들이 심부름을 다녔고 먼 친척집들은 아지매들이 다녔지 "하나씨 할매 아재 아지매~제사밥 잡수시로 오시래요"~~심바람 잘한다고 칭찬하는 바람에 찬바람 눈내린(겨울에 제사가 유독 많았지) 고삿길도 잘도 누비고 다녔던 60년 대말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얘기지~~아침이슬 이랑 근호랑 어렸을 때 내가 참 많이 예뻐했는데~~함께 늙어가네~~
유 보영
이사진과오빠창현이를보니 창현이친구가 참휼륭해 항상존경해 물론동생들 다휼륭하지만.........
엣날어머님과 집앞논에서 아버님안게실때 보영아 하시면서 이말씀저말씀생각하니 눈시울이붉어지네 .......
오빠 친구분들을 보면 항상 오라버니를 뵙는 느낍입니다. 아버님과 저희 아버지는 갑장으로 오랜 죽마고우로 지내셨는데 저희 아버지는 자식들 가르치시느라 고생만 하시고 효도 할려고 하니 아버지는 이미 이 세상에 계시지 않으니 살아 계실때 효도하라는 말이 가슴 절절히 새겨집니다. 감사합니다. 따님 결혼 축하드리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