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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

칼빈의 성경 권위에 대한 신학적 근거

시작하는 말1)

칼빈의 성경관에 대한 연구는 기존 연구 자료의 “지나친 풍 요”(embarras de richesse) 때문에 오히려 어려움을 겪을 뿐 아니 라 독창적인 새로운 주장을 하는 것은 더 어려운 과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빈의 성경에 대한 높은 이해를 다시 천착(穿鑿)하려는 것 은 성경관은 오늘도 모든 신학의 분수령과 시금석으로서 여전히 현 대신학의 살아있는 논쟁점(living issue)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칼빈 의 성경관은 칼빈의 신학을 연구함에 있어 오늘도 칼빈 학자들 사이 에 가장 현격하고도 상반적인 견해 차이가 들어나는 주제들 중에 하 나이기 때문이다.2)

바우커(Herman Bauke)가 말한 바대로 성경에 대한 칼빈의 신학 적 사고방식에 나타나는 “상반적 복합체”(complexio oppositorum) 의 특성 때문에 파커(T. H. L. Parker)는 칼빈의 성경관을 확정하는 것은 “그의 모든 신학에 있어 가장 난해한 문제”이라고 하였다.3)

그러나 칼빈의 성경관을 둘러싼 신학적 논쟁의 대부분이 칼빈 자신으로부 터 연유한 것이라기보다는 성경 비평가들이 자신들의 현대 비평적 사 고와 방법을 정당화하기 위한 신학적 전거(典據)를 칼빈에게서 찾아 내려고 하는 시대착오적인 기획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4)

이러한 의도적인 신학적 기획에 의한 역사적 왜곡은 결국 칼빈의 성경관에 대한 전혀 다른 해석을 불러왔다. 칼빈과 함께 성경 권위에 대한 동일한 신학적 근거를 말하지만 성경 권위에 대한 이해에 있어 서는 서로 상반적인 결론에 도달한다. 다시 말하면, 역사비평가들은 성경 권위의 근거로서 성경의 신적 기원을 말하지만 성경 기록 자체 의 문자적 영감과 완전 무오는 부인한다. 또한 성경 권위의 근거로서 성경의 신적 교리를 말하지만 성경의 형식과 내용을 구분하여 성경의 형식적 권위는 부인한다. 본 논문은 성경 권위에 대한 이러한 해석상 의 차이를 기독교 강요와 성경주석 등에 나타난 칼빈 자신의 주장을 따라 석명(釋明)하고 올바른 성경의 권위를 재천명하기 위해 칼빈이 주장하는 성경 권위의 신학적 근거를 현대 성경관 논쟁의 문맥 속에 서 재확인하려고 한다.5)

1. 성경의 신적 기원

칼빈에게 있어 성경의 권위는 먼저 성경 그 자체의 신적 기원에 근거해 있다. 칼빈은 성경의 권위가 교회의 결정이나 인간의 논증에 달 려있지 않다는 것을 밝히면서 “마치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이 들려오는 것처럼 성경을 하늘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생각할 때 에만 비로소 그 성경은 신자들에게서 완전한 권위를 얻게 된다”고 말 한다.6) 그리고 칼빈은 디모데후서 3장 16절 주석에서 성경은 신적 영 감에 의한 하나님의 입의 말씀이기에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과 동일한 경외를 성경에 표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성경의 권위를 지지하기 위해서 그는 성경이 하나님에 의해 영감(inspiratam) 되었다고 선언한다. 이는 만일 성경이 그렇다면 사람들이 경외함으로 그 성경 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두말 할 나위 없기 때문이다....율법과 선지서들은 인간 의 뜻과 의향을 따라 전달되어진 가르침(doctrinam)이 아니라 성령이 구술하여 받아쓰게 한(dictatam) 것이다....모세와 선지자들은 신적인 충동(Dei impulsu) 에 의해 말했으므로 사실상 말하신 것은 바로 여호와의 입이었다(os Domini loquutum esse)고 담대하게 두려움 없이 증거했다....우리는 우리가 하나님께 표해야 하는 것과 똑같은 경외를 성경에 표해야 한다. 왜냐하면 성경은 오직 그 분에게서만 나왔으며, 그리고 그것에 그 어떤 인간적인 것도 썩여있지 않 기 때문이다(nec quicquam humani habet admixtum).7)

그러나 빌헬름 노이저(Wilhelm H. Neuser)는 칼빈이 디모데후서 3장 16절 주석에서 영감을 성경의 기록된 본문이 아닌 성경의 기자 들에게만 적용하였다고 주장하였다. 다시 말하면, 성경 기록 그 자체 가 영감된 것이 아니고 성경 기자와 성경의 가르침(doctrinam)만 영감되었다는 것이다.8) 그러나 칼빈은 위의 주석에서 분명히 “성경이 하나님에 의해 영감되었다”고 함으로 성경 기록 자체의 영감을 말하 고, 영감의 결과인 그들의 말과 글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사 실을 강조한다. 기록된 율법과 선지서 그 자체가 바로 성령 하나님 이 구술하여 받아쓰게 하신 하나님의 입의 말씀과 동일하다는 것이 다.9) 그래서 칼빈은 십계명을 강해할 때에도 “지금 하나님께서 자신 의 말로 말씀하시는 것을 들읍시다”(Nunc Deum ipsum audiamus loquentem suis verbis)라는 제안으로 성경을 하나님의 입의 말씀 과 동일시한다.10)

칼빈이 디모데후서 3장 16절과 베드로후서 1장 21절의 주석에 서 사용한 말을 그대로 인용하여 표현하자면, 선지자들과 사도들 은 “자신의 생각으로(ex suo sensu), 인간적인 충동으로(humano impulsu), 자의로(sponte sua), 그리고 자신의 임의로(arbitrio suo) 말하지 않고 다만 하늘의 지시인 것만(quae coelitus mandata fuerant)을 진술했다.”11) 따라서 인간 기자의 다양성은 성경의 유일 하고 책임 있는 권위인 한 분 성령 하나님의 통일성 앞에서 사라진다. 사실상 칼빈에게 있어서 성령 하나님은 성경의 제1저자가 아니라 “한 분 뿐인 유일한 저자”이시다.12)

칼빈은 자주 성령의 지시에 근거를 두면서 “율법과 선지서들은...성 령이 구술하여 받아쓰게 한 것이다(dictatam)”고13) 말한다. 또한 사 도들을 “성령의 정확한 그리고 확실한 필기자”(Certi et authentici Spirtus sancti amanuenses)14) 또는 “필경사”(Penmen)15)로 부르기도 한다. 문제는 이러한 칼빈의 언급들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칼빈 이 기계적 영감설을 주장한다고 비난하는 것이다.16) 그러나 칼빈은 “ 성경이 인간의 사역을 통하여”(hominum ministerio) 우리에게 흘 러왔다고 말함으로써17) 성경 기자들이 성경을 기록함에 있어 자신들 의 개성을 가지고서 능동적으로 활동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정하고 있다.18) 칼빈은 베드로후서 1장 20절의 주석에서도 성경기자들이 자 신들의 생각을 완전히 비워버린 상태에 있는 것처럼 비인격화되었다 고 생각지 않았다.

그 거룩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감동 받은 대로 말했다....베드로 는 그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빼앗겼기 때문이 아니라...감히 자기 자신의 어떤 것도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감동되었다고 말한다.19)

칼빈은 에스겔 12:4-6을 주석하면서 선지자가 자기 백성들의 문 화적 관습과 수준에 적응함으로써 명확한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때로 는 “조야한 문체”를 사용한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20)그러나 선지자 들이 그처럼 “거칠고 조야한 경향을 가진 문체”를 사용하였을지라도 그들의 글 속에는 항상 “성령의 위엄”이 분명히 들어나 있음을 강조한다.21)

또한 칼빈은 시편 88편 5절의 주석에서 인간 기자의 인격의 중 요성을 잘 인지하고 있으며, 성령 하나님께서 에스라인 헤만이 절망 중에 부르짖는 “명백히 거칠고 부적절한” 언급들을 사용한 것은 절망 에 처한 자들을 격려하여 하나님께로 나아오게 하는 기도문을 제공하 시기 위함으로 이해한다.22) 이러한 사실들은 칼빈이 기계적 영감설이 아닌 유기적 영감설을 지지한 것을 잘 보여준다.23)

워필드(B. B. Warfield)는 칼빈이 말한 성령의 구술에 의한 “받아 쓰기”(dictante)는 영감의 방식이 아니고 영감의 결과를 표현한 것임 을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말(dictante)은 비유적이다....칼빈이 의도하는 바는 영감의 방식이 받아 쓰기였다는 것이 아니라, 영감의 결과가 마치 성경이 받아쓰기에 의한 것처럼 즉 모든 인간적인 혼합물이 없는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의 산물이라는 것을 주 장하려는 것이다. “받아쓰기”란 말은 분명히 그 당시에 영감의 방식보다는 오 히려 그 결과를 표현하는데 통용된 말이다.24)

칼빈은 “받아쓰기”(dictante)라는 말을 통하여 전 성경이 신적 영 감의 최종적 산물로서 마치 모든 단어가 즉시 받아 쓰인 것과 똑같은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인간의 그 어떤 것도 성경에 섞여 있지 않다는 점을 다만 부각하려하였을 뿐이다.

빌헬름 노이저는 여기서도 칼빈이 말한 “받아쓰기”라는 용어는 성 경을 기록한 단어의 영감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된 것은 아니고 다 만 그 단어의 중요성을 나타내고 인간 기자의 책임을 경감시키기 위해 사용되었을 뿐이라고 하였다.25) 그러나 칼빈은 “바룩이 예레미야 의 구전(구술)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을 두루마리 책에 기록하니라”(렘36:4)는 말씀을 주석하면서 “하나님이 그의 영 을 통해 선지자의 마음과 혀를 지배하시고 인도하셨다”라고 설명하 였다.26) 즉 성령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의 사상과 마찬가지로 그의 입 의 말(단어)까지도 지도하셨다는 것이다.

따라서 칼빈은 성령께서 성 경이 기록될 때 인간 저자의 말(단어)의 선택까지 인도하셨기 때문에 기록된 성경은 바로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 그 자체이라는 분명한 확 신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상 빌헬름 노이저도 칼빈이 언급한 대부분 의 “받아쓰기”(dictante)는 “성령께서 성경 기자들이 말하고 기록해 야할 어법(wortlaut) 또는 의미(inhalt)까지 확정하고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27) 물론 칼빈이 예레미야 36장 4절의 주석에서 “받아쓰기” 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기록된 성경의 신적 기원에 대해서 말하려 고 하였을 뿐이지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성경 기자에게 알리시는 성경의 영감 방식에 대해 말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 다만 예레미야가 바룩에게 구술하여 받아쓰게 한 두루마리 책은 하나님의 말씀과 완전 히 일치하며 절대적으로 신뢰할 만 하다는 기록된 성경 자체의 신적 기원을 강조하려고 하였을 뿐이다.

칼빈이 비록 직접 우리에게 체계적인 영감이론을 제공하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그가 사용한 용어들은 지극히 높은 수준의 영감을 의미 하고 있으며, 사실상 유기적 영감설과 더불어 축자적 영감설의 견해 를분명히지지한것으로볼수있다.28) 그러한성경의영감에대한 신학적 확신에 의해 칼빈은 한걸음 더 나아가 성경의 정확무오성까지 지지한 것으로 볼 수 있다.29) 칼빈은 인간적인 것이 성경에 섞이지 않 았다는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성경이 모든 인간적인 과오에서 벗어나 있다고 확고하게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계속해서 성경은 “확실하고 정확무오한 기록”30)이요, “확실하고 오류가 없는 규칙”31)이며, “그의 거룩한 진리의 정확무오한 규칙”32)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때로는 칼빈이 난해 구절들에 대한 성경 주석에서 성경의 불 일치와 오류를 지적하는 듯한 언급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칼빈 학자들은 그러한 모호한 지적들을 칼빈이 축자영감과 성경 무오성을 결코 주장하지 않았다는 증거로 제시한다.33) 칼빈이 성경의 오류를 인정하였다는 많은 성경구절들 중에서 지속적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 는 것은 마태복음 27장 9절과 사도행전 7장 14-16절이다.

마태복음 27장 9절에서 마태는 스가랴 11장 3절을 인용하면서 그 구절을 예레미야에게 돌리고 있다. 이것에 대해 칼빈은 “나는 예레 미야의 이름이 어떻게 여기에 끼어들게 되었는지(obrepserit, crept in) 알지 못하며, 이 문제에 대해 많은 언급을 하지 않겠다(nec anxie laboro)”고 말한다.34) 칼빈이 “obrepserit”라는 용어를 항상 신뢰할 수 없는 본문의 끼어들기를 통상적으로 표현할 때 사용했기 때문에 여기서 사실상 칼빈은 마태가 기록한 원본의 오류를 생각한 것이 아 니고 오히려 사본가의 오류를 지적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35

사도행전 7장 14-16절에서 누가는 야곱이 이집트로 갈 때 수행한 70명을 출애굽기의 기록과는 달리 스데반의 설교에서 75명으로 언 급한바 있다. 이것에 대해 칼빈은 누가가 아닌 필사자들의 임의적인 판단에 의해 그 숫자가 끼어들어 왔을 가능성을 말하면서 “그러므로 나는 이 차이가 그 책을 기록한 필사자(librariorum)의 오류로부터 발생하였다고 생각한다”고 하였다.36)사도행전 7장 16절에서 야곱( 창3:19)의 이름 대신에 아브라함의 이름이 끼어들게 된 것은 구전을 더 의존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추정하여 말한다. 그러나 칼빈은 연이 어 “나는 이 문제에 대해 그 어떤 것도 확정적으로 단언할 수 없다” 는 것을 솔직히 밝히고 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이름이 사용된 것 은 “분명한 오류”(erratam palam)이기 때문에 그 잘못을 반드시 “수 정”(corrigendus)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잘못의 수정을 주장한 것은 원본의 무오를 전제한 말로서 실상 칼빈이 말한 그 “분명한 오류”는 바로 사본의 오류를 지칭하고 있음이 분명하다.37)

그리고 칼빈은 동일 문맥에서 “숫자가 바뀌게 된 한 단어에 고민하거나 신경을 쓰기보 다는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끌어가시는 그 기적에 대하여 깊이 생 각하는 것이 훨씬 더 적합하다”고 말한다. 이 말은 원본의 무오에 대 한 신뢰를 포기하는 언급이 아니라 오히려 원본의 무오에 대한 신뢰 에 기초하여 그 말씀을 통해 성령께서 주시는 신적 교훈을 붙들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한 것이다.

이처럼 칼빈은 성경 본문이 모순되어 보이거나 부정확해 보일 때에 칼빈은 그것을 무지한 사본가가 저지른 본문 전달의 과오로 보았 다.38) 그는 가끔 사실에 대한 당황스러운 의문을 제기하는 주석의 모 호성 또는 개방성을 들어내기도 하지만 결코 어떤 상상의 나래를 펼 침으로서 영감 된 기자가 기록한 원본에 오류가 있다고 턱없이 주장 하지 않는다.39) 이러한 칼빈의 태도는 주어진 원본은 성령 하나님의 신적인 작품으로서 그 원문은 인간적인 오류에서 벗어난 정확무오한 진리라는 확신에 근거해 있다. 그래서 칼빈은 어디에서도 영감을 받 은 성경 기자들이 오류를 범했다는 것을 인정하려하지 않는다. 왜냐 하면 그들에게 오류가 있다고 하는 것은 꼭 같은 잘못이 성령 하나님 에게 있다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40)

위에서 살펴온 바대로 성경의 권위는 결코 인간의 어떤 논증이나 교 회의 필요에 의해 옹립되어 지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신적 영감에 의 해 본래부터 객관적인 신적 권위를 가진다. 그래서 칼빈은 실로 성경 은 “자증적”(autopiston)이어서,41)“희고 검은 물체가 그 색깔을 보 여 주듯이 달고 쓴 것이 그 맛을 내듯이 성경은 그 자체의 진리에 대 한 분명한 증거를 완전히 보여준다”42)고 주장한 것이다. 물론 그처럼 성경의 자증적 권위에 대한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성경을 하나 님의 말씀으로 확신하게 되는 것은 성령의 내적 증거에 의해서 이다. 혹자는 이러한 성령의 사역에 비추어서 칼빈에게 있어 성경의 권위 는 성경 자체(per se)에 근거해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통하여 말 씀하시는 성령의 내적 증거에 근거해 있다고 주장한다.43)

성경의 권위의 기초를 기록된 성경 그 자체에 두지 않을 때 자연히 다른 근거를 찾게 되고 결국 성령의 증거에서 찾게 된다. 그러나 성령의 내적 증 거는 성경의 권위를 부여하지는 않고 다만 우리에게 내적 증거 자체 보다 앞서 있었던 성경의 신적인 실체를 확인시켜 줄뿐이다.44) 칼빈 이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인(印)친다는 것에 대해 말할 때,45) 그 인침 의 기본적 기능은 단지 본래 이전부터 진리인 것을 확인하는 것에 있 다. 따라서 성경에 권위를 부여하는 것은 성경 그 자체의 신적 영감 과 신적 저작성이지 성령의 내적 증거가 아니라는 것이다. 칼빈이 호 소하는 마지막 법정은 항상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성경 그 자체이다.

2. 성경의 신적 교리

칼빈에게 있어 성경의 권위는 앞서 논한 바대로 성경 그 자체에 근 거해 있을 뿐 아니라 동시에 성경의 신적 교리(doctrina)에도 근거해 있다.46) 즉 성경의 권위는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 계시하셨고 지금 성 경이라는 형식으로 우리를 구원하는 믿음에 대해서 말하는 성경의 중 심 메시지에 기초해있다는 것이다. 칼빈은 “하늘의 교리”(coelestis doctrinae)가 하나님의 영원한 지혜이시며 여태껏 주어졌던 모든 계 시의 중보자이신 그의 아들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어졌다고 한다.

내가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유일한 지혜요, 빛이요, 진리이신 그 아들로 말미암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신 적이 없다 는 것이다. 이 원천에서 아담,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다른 사람들 이 하늘의 교리(coelestis doctrinae)에서 얻은 모든 것을 마신 것이다. 이 같은 원천에서 모든 선지자들도 그들이 말한 모든 하늘의 신탁을 길어 내었다.47)...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가 드디어 육신으로 나타났을 때 그 지혜는 인간의 생각 으로 하늘 아버지께 대해서 이해할 수 있고 숙고해야 할 모든 것을 성심으로 우리에게 선포했다. 그러므로 지금은 의의 태양이신 그리스도가 비친 이후, 전 에는 희미한 빛만 있었는데, 우리는 한낮의 여느 때의 찬란함같이 신적 진리 (divinae veritatis)의 완전한 광채를 지니고 있다.48)

“하늘의 교리”와 “신적 진리”가 원래는 계시의 원천과 하나님의 지 혜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개인적으로 주어졌으나 이제는 성경의 형태로 우리 모두에게 주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경은 교리(doctrina)로서의 그 특성을 따라 항상 구속자이신 예수 그리스 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이제 그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언약 적 관계는 모든 믿는 자들에게 하나의 실체가 되어 있다고 한다.49) 그 래서 칼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간략하게 말하자면, 이것이야말로 바로 우리가 전 성경에서 찾아야만 하는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분 안에 간직되어 있고 그 분으로 말미암아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지는 무한한 보고를 참으로 알아야 한다. 만일 누군가 율법서와 선지서들을 철저하게 조사해야만 한다면, 그는 우리를 이끌어 그분께로 데려갈 수 없는 단 한마디의 말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50)

우리는 그 속에서 그리스도를 찾으려는 목적을 갖고 성경을 읽어야 한다. 만 일 우리가 그 목적을 외면한다면 우리가 아무리 많은 수고를 하고 우리의 연 구를 위해 아무리 많은 시간을 드린다 할지라도, 우리는 결코 참된 지식에 도 달하지 못할 것이다.51)

사실 칼빈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는 전 성경의 지향 목표(scopus)이 며 총체(summa)이다. 여러 문맥에서 루터와 마찬가지로 칼빈도 성 경의 그리스도 중심적 성격을 강하게 강조했다 그래서 그는 만일 성 경 말씀이 그리스도와 분리되어 있다면 그것은 단지 죽은 문자 뭉치 에 지나지 않는다고 까지 말한다.

그러므로 그 문자는 죽은 것이요, 그리고 그리스도의 은총으로부터 끊어져 마음에 아무런 감동도 없이 단지 귓전만을 울리는 여호와의 율법은 그 독자 들을 죽인다. 그러나 만일 그 문자가 성령을 통하여 우리의 마음에 참으로 새 겨진다면, 만일 그 문자가 그리스도를 드러낸다면, 그것은 “영혼을 소성케 하 고...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는” 생명의 말씀이 될 것이다.52)

이러한 맥락에서 칼빈은 “만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대면하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가 구원받은 사실을 알게 될 리가 없다” 고 주장한 것이다.53) 칼빈이 위에서 확실하게 말한 바대로 우리가 성 령의 인침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은혜에 이르고 나서야 비로소 성경 은 우리 각자에게 생명의 말씀으로 그 능력을 나타낸다. 따라서 “그리 스도를 떠나서는 하나님의 구원의 지식이 우리 속에 서지 않는다.”54)

그러나 어떤 학자들은 이러한 칼빈의 진술들로부터 성경 권위에 대 한 자신들의 그리스도 중심적인 해석과 기능적인 성경 권위관을 지지하기 위한 기반을 열심히 찾으려고 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리는 오 직 그리스도뿐이시라는 사실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기록된 하나 님의 말씀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 자신과 대면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강 조한다. 따라서 빌헬름 니젤(Wilhelm Niesel)은 칼빈이 성경과 성육 한 말씀인 그리스도 사이에 어떤 차이를 끌어내고 하나님의 진리를 기록된 성경 자체가 아닌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돌렸다고 주장한다.

칼빈이 어쩌다 성경의 신적 영감에 대해 말할지라도, 그런 말을 결코 성경 자체가 하나님의 진리와 동일하다는 의미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정말 그래서 는 안 된다. 하나님의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이다...문자적 영감에 대한 교훈은 성경숭배를 낳게 되고, 성경이 증거하는 바대로 하나님 말씀의 유일한 성육신 이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간과한다.55)

그러나 칼빈에게는 기록된 말씀(the written Word)으로서의 성경 과 성육한 말씀(the incarnated Word)으로서의 그리스도 사이에 조 금도 상반됨이 없다.56)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영과 더불어” 사도들은 “그 분이 자기들에게 지시하신 모든 것”57)을 기록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들의 글은 하나님의 신탁이라고 생각해야만 하기” 때문이었다.58)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리스도의 입술이나 하늘에서 바로 들려오는 그 리스도의 말씀을 들을 수 없지 않는가? 이 질문에 대해 칼빈은 “하늘 로부터 주어지는 매일의 응답이 없기 때문에, 성경이야 말로 하나님 께서 기쁨으로 자신의 진리를 영원토록 기억하게 해 오신 유일한 기 록이다”라고 답한다.59)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고 하셨던 오늘날 계시 의 유일한 양식은 성경에 나타난 기록의 양식이다. 더욱이 칼빈에게 는 성경이 단순한 기록문이 아니라 “특별한 선물”이며, “거기서 하 나님은 교회를 가르치시기 위해...자신의 가장 거룩한 입술을 여신 다.”60) 달리 말해서 성경의 기록된 말씀 안에서 그리고 그것을 통하 여 하나님은 친히 그 거룩한 입을 여시고 따라서 이 말씀은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으로 들려질 수 있다는 것이다(ac si vivae ipsae Dei voces).61) 그러므로 오늘날 기록된 말씀으로서의 성경은 성육한 말 씀과 동일한 그리스도와 대면하는 유일한 매개체이다.62) 오늘날 우 리가 육신의 날들에 나타나신 대로 하나님의 아들과의 정확한 만남 을 이루기 위해서는 성경은 반드시 정확무오한 계시적 말씀의 양식 을 필요로 한다.

또한 어떤 일부 학자들은 성경의 그리스도 중심성이 성경의 무오성 을 신앙적인 내용이나 그리스도 중심적인 내용에만 국한시키려는 자 신들의 입장을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63) 그러나 성경의 그리스도 중심성은 기록된 말씀을 검열하여 흠잡기 위한 축소원리가 아니다. 칼빈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를 지향하는 것(Scopus Christus)은 성경 의 형식과 내용을 구분하고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취사선택의 원 리가 아니라 계시역사의 원리이다.”64) 따라서 현대 비평가들이 칼빈 은 기록된 말씀의 무오를 주장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그들의 어 떤 성경 외적인 전제들에 의한 결론일 뿐이다.

그러므로 칼빈에게 있어서 “성경 속의 말씀”과 그 말씀을 증거 하는 “성경의 말씀” 사이에 혹은 그리스도의 권위(성경의 구원적 기능) 와 성경의 권위(성경의 형식) 사이에 어떤 차이점을 찾으려는 것은 잘 못된 시도이다. 사실 그러한 구별은 현대적 사고방식에 아주 걸맞을 것이지만 칼빈에게서 성경에 대한 현대 비평적 사고를 위한 어떤 기 초를 찾는 것은 헛된 기획심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칼빈은 17세기 의 루터파 신학자들이 성경을 평가하기 위하여 사용한 그 기준 즉 성 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할 때만 권위가 있다는 기준은 전혀 알지 못하였다.65) 비록 칼빈이 성경의 그리스도 중심적인 견해를 주장했다 하더라도 그는 계시를 엄격하게 개인적인 것으로 강조하여 그리스도 와의 개별적인 인격적 만남의 영역에만 중점을 두는 신정통주의의 선 지자는 아니었다. 물론 칼빈이 성경의 기독론적 해석을 매우 강조하 여 주장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칼빈 자신은 비평가들이 인위적으 로 성경의 모든 본문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를 찾아내어서 그것으 로 심지어는 “정경 속의 정경”(the canon within the canon)을 확 증 하는 열쇠로 삼을 뿐 아니라 또한 그것을 성경해석의 유일한 원리 로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엄중히 경고하고 있다.66)

하나님은 기록된 성경이 자기에 대한 자신의 증거가 되게 할 의도 를 가지고서 그 성경에서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계시하시고 그를 통하 여 우리를 은혜의 영생으로 인도하신다.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이 보 내신 성령께서는 기록된 말씀을 증거하고 해석하신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 칼빈에게 있어서 성경의 형식까지도 하나님 자신에게서 나 왔다. 그리고 성경은 하나님이 주신 형식에 의해서 하나님이 주신 기 능을 정확히 성취할 수 있다. 칼빈에게는 성경이 이루어진 그 형식과 내용은 항상 함께 하나님의 권위 있는 말씀을 구성하고 있다. 칼빈은 결코 성경의 실질적인 요소를 형식적인 요소와 분리하여 그리스도를 중심한 구원의 내용만 권위가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맺는 말

칼빈은 먼저 성경 그 자체의 신적 기원에 근거하여 성경의 신적 권위를 주장하였다. 그에게 있어 성경의 권위는 성경이 신적 영감과 신적 저작에 의한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객관적 사실에 근거 해있다. 그리고 칼빈은 성경의 총체적 지향목표인 그리스도를 통해 성경에 계시되어 있는 하나님의 구원의 지식 곧 성경의 신적 교리에 근거하여 성경의 신적 권위를 주장하였다. 따라서 그는 성경 그 자체 의 문자적 형식뿐 아니라 성경의 그리스도를 중심한 구원적 내용까지 모두 신적 영감에 의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신적 권위를 가진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 점에 있어 칼빈은 성경의 형식과 내용을 엄격 히 구분하여 성경의 내용적 권위만을 인정하고 성경의 형식적 권위 를 부정할 수 있는 그 어떤 신학적 전거도 우리에게 제공하지 않았다.

현대 비평가들은 칼빈과 동일한 성경 권위의 신학적 근거를 말하 지만 사실상 칼빈과 상이한 성경 권위관을 주장하고 있다. 그들의 성 경의 형식적 권위에 대한 부정은 성경 자체의 요구이거나 칼빈의 입 장이라기보다는 칼빈에게서 자신들의 비평적 사고를 위한 신학적 전 거를 찾기 위한 의도적인 기획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칼빈에 대한 이러한 시대착오적인 역사적 왜곡을 극복하고 칼빈의 신학 아래 하나 되는 신학적 일치와 교회 연합의 문을 열어가기 위해서 우리는 다시 성경비평 이전 시대의 칼빈의 순수한 성경적 성경관으로 돌아 가야 한다.

칼빈의 성경 권위에 대한 신학적 확신은 그 후에 개혁주의 신앙고백서들 속에 잘 반영되어 구체화되었다. 지난날 교회는 수세기 동안 이 성경의 권위를 역사적 신앙으로 고백하고 복종해 왔으며, 또한 그 와 같이 성경의 권위를 높여왔던 교회는 놀라운 부흥의 은혜를 누렸 다. 오늘 우리도 성경의 권위에 있어서 개혁자들과 동일한 견해를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구원과 생활의 정확 무오한 유일의 법칙으로 받아 새롭게 순종함으로서 교회의 새로운 부흥을 기약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이환봉(고신대학교 교수, 조직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