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영도태종대 (釜山影島太宗臺) 안내
개설
면적은 53만 2390평이고, 1972년 6월 26일 부산기념물 제28호로 지정되었다가 2005년 11월 1일 국가 지정 문화재 명승 제17호로 지정되었다. 영도의 남단 일대로 최고봉은 높이 250m이고, 산 전역이 수십 년 된 울창한 송림으로 싸여 있으며, 바다에 면한 돌출부는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졌다. 절벽에 부딪히는 우뢰와 같은 파도 소리는 이곳의 경치를 돋보이게 하여 마치 해금강(海金剛)에 온 것 같다.
명칭 유래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태종무열왕(김춘추)이 전국을 순회하던 중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였다고 하여 태종대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또한 조선 태종도 이곳에서 유람하였다고 전하여지며, 한발이 있을 때 동래부사가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낸 곳으로도 유명하다.
망부석에는 옛날 왜인에게 끌려간 남편을 이곳에 나와 기다리던 여인이 기다리다 지쳐 끝내 화석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하여진다.
형성 및 변천
해안단구란 과거 해수면 근처에서 파도의 침식작용으로 형성된 해식절벽이나 평평하게 깎인 계단모양의 지형이 지반이 융기하거나 해수면이 낮아지면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태종대 해안단구의 특징은 이렇게 파도에 침식된 계단꼴의 바위들이 해안곳곳에서 발견되는 융기 파식대의 형태로 존재한다는 점이다. 태종대의 파식대의 단구애(절벽)가 수직에 가깝다. 그 이유는 이 지역의 기반암이 전체적으로 육지 쪽으로 기울어 있을 뿐만 아니라 수직방향으로 금(절리)이 가 있기 때문이다. 태종대에서 동삼동까지만 분포하는 이곳의 퇴적암 암반은 약 1억년부터 8천만년 전 사이(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된 것이다.
현황
푸른 바다가 바라보이는 이곳 중턱에 폭 10m 총 연장 6.4㎞의 순환 관광도로 4.3㎞, 오솔길 2.1㎞가 있다.
북쪽에는 영도와 방파제로 연결된 한국해양대학교가 있는 아치섬(朝島)이 보이고, 그 너머로 부산의 상징인 오륙도(五六島)가 보인다. 동남쪽으로는 멀리 일본의 대마도(對馬島)가 시야에 들어오는데, 여기서 대마도와의 거리는 56㎞밖에 되지 않는다.
바닷가의 깎아 세운 듯한 벼랑 위에는 흰 등대가 있고, 그 밑으로 신선대(神仙臺)라 부르는 기암이 있으며, 오른쪽으로 망부석(望夫石)이 있다.
4.3km에 이르는 태종대 일주 관광도로 중간에 관광객을 위한 작은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으며, 산책소로도 건설되어 있다. 여기에서 남서쪽으로 300m쯤 내려가면 인공 해수풀장인 곤포(昆布)의 집에 이른다. 이 이름은 이 일대 바다가 미역밭인 데에서 유래하였는데, 이것은 부산시의 임해 관광지 개발계획에 발맞추어 만들어졌다.
태종대는 영도대교에서 9.1㎞의 영도의 최남단 해안가에 있는 곳으로 태종산(250m) 기슭에 있는 유원지다.
이 영도는 북동쪽은 완만하지만 남서쪽은 급경사로 절벽 지역이다. 남해 바다의 파도로 해식애(海蝕崖)가 되어 높이가 거의 100m의 수직 절벽을 이루어 그 해안은 기암괴석으로 밀려오는 파도에 하얗게 부서지는 경관은 둥둥 떠 있는 배들과 더불어 절경을 자랑한다.
태종대도 예전에는 군부대가 있어 민간인의 출입금지 지역이다가 1972년 6월 26일 부산기념물 제28호로 지정되면서 새로 단장하여 개방된 유원지다.
태종대에서는 아침 9시 30분부터 “다누비” 열차를 운행하고 있다.
다누비란 공모에 의하여 채택된 이름으로 아름다운 태종대 곳곳을 다 누비고 다닌다는 뜻이 담긴 멋진 이름이다.
열차는 태종대 입구를 해안 쪽으로 출발하여 원점 회귀하고 있는데 그 정류 장은 태종대 5경인 태종사, 영도등대, 전망대, 구명사, 태원자갈마당 5개 소다.
산은 절을 품고, 절은 세상을 품는다는 말처럼 나를 태종대에서 제일 먼저 품어 준 것은 석가의 사리를 봉안한 도량인 태종사(太宗寺)였다.
여기서 사리(舍利)라 함은 부처님을 화장하고 남은 유골 중 구슬 같은 것으로 2,500년 동안이나 스리랑카에서 모셔 오다가 그 인정서와 함께 한국의 도성 큰스님께 전달하여 태종사에 모신 부처님의 진신 사리였다. 따라서 태종사에서 특별한 볼거리는 그 사리를 모신 당우였다.
태종사에서 조금 지나니 바다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등대가 바다를 배경으로 하여 해안가에 멋있게 서 있다. 한국의 최초의 등대는 1903년 6월1일 팔미도의 해발 71m 위에 세운인천 팔미도 등대다.
영도등대는 우리나라에서 10번째로 1906년 12월에 건립된 등대인데 2004년 8월 최신 시설로 지금처럼 새롭게 단장하여 무역항 부산항을 찾아오는 국내외 선박들에게 바다의 길안내를 하여 주고 있다.
다른 등대처럼 식별이 쉽게 높은 굴뚝 모양에다가 흰빛으로 형상표지를 하였고, 밤에는 광파표지 프리즘렌즈 동명기를 이용하여 8초마다 3번씩 50만 광촉의 빛을 발사하여 24마일(38km) 떨어진 바다에서도 잘 보이도록 하였다.
안개 끼고 비나 눈 오는 날과 같이 시야가 흐릴 때에는 전기혼을 이용하여 매 45초마다 5초 동안 소리를 5마일(8km)까지 들리도록 음파표지를 하고 있다.
영도등대는 태종대유원지에 가서는 꼭 보아야 할 해운대 경치의 가장 중요한 명승지가 모여 있는 곳이다. 영도등대에 딸린 부속시설은 물론 부산을 대표하는 바닷가 암석 지대의 절경과 부산을 상징하는 오륙도도 그렇지만 태종대라는 두 개의 대(臺)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등대 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해기사 명예의 전당' 조형물들이 있고 등대 부속물로 전망대,
바다와 바다 갤러리, 해양도서실, 정보 이용실, 해양영상관, 자연사 전시실 등 해양문화공간시설물이 각종 볼거리를 제공해 준다.
등대보다 더 볼거리는 등대에서 계단 따라 해안 쪽으로 내려가면 오른쪽으로 바다에서 100m 이상 솟아 있는 두 개의 대(臺)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이곳을 신선대라고도 하였는데 옛날 삼국을 통일한 태종무열왕[김춘추]이 수려한 자연 경관에 반해서 이곳에서 활을 쏘며 즐겼다는 속전(俗傳: 東萊府誌 所載)에 따라 현재는 이 두 대를 태종대(太宗臺)라 하였다는 곳이다.
금강산의 총석정처럼 바다에서 쭉 뻗어 올라가다가 중간이 뚝 잘린 모습인데 그 위가 생각보다 크고 넓었다. 이 두 대가 오리지널 태종대인 것이다.
앞에 있는 대는 우리가 직접 밟아 볼 수 있는 운동장처럼 평평하고 7m 정도의 바다 사이를 두고 있는 건너의 대(臺)를 옛날에 신선들이 놀던 곳이라 하여 신선대(神仙臺)라 하고 그 중간쯤에 바다를 향하여 애절한 모습으로 우뚝 선 바위가 있다.
이 바위가 애달픈 전설을 간직한 망부석이었다.
왜구(倭寇)에게 끌려갔나, 파도가 삼켰는가.
바다에 물어보고, 불러보는 한(恨)이 되어
그 마음 내 낭군 기다리는 망부석으로 서 있다.
-망부석(望夫石)
등대 전망대에서 좌측을 굽어보면 파도가 남해의 푸른 바다를 하얗게 부수고 있고, 눈을 들어 보면 저 멀리 부산의 상징이라는 부산기념물 제22호 오륙도(五六島)가 아득하다.
오륙도는 부산항을 지켜 주는 파수꾼 같은 섬이지만 오육도란 이름자체만도 자못 신비롭고 시적(詩的)이다. 썰물 때 5개, 밀물 때 6개의 섬으로 나누어 진다하여 오륙도라 불리기 때문이다.
이 섬들은 육지에서 가까운 것부터 방패섬(2,166㎡)·솔섬(5,505㎡)·수리섬(5,313㎡)·송곳섬(2,073㎡)·굴섬(9,716㎡)·등대섬(3,416㎡)으로 나누어지는데 그 이름만으로도 재미가 있다.
파도를 방패처럼 막아주니 '방패섬', 소나무가 있어 '솔섬', 갈매기를 잡아먹으려고 독수리가 떠돈다니 '수리섬'. 송곳 같이 뾰족해서 '송곳섬', 큰 굴(窟}이 있어 '굴섬'. 등대가 있어서 '등대섬'인데 이 섬은 밭처럼 평평하다고 해서 '밭섬'이라고도 한다니 말이다.
이 여섯 섬 중 방패섬과 솔섬은 두 섬의 아랫부분이 1m 가량 붙어 있어 썰물일 때는 1개의 섬 '우삭도'가 되고, 밀물일 때는 '방패섬'과 '솔섬' 2개의 섬으로 보인다.
등대섬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무인도로 낚시꾼의 천국으로 어선이 오가는 곳이다.
어디선가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노래가 파도 소리에 섞여 들려오는 것 같다.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
님 떠난 부산항에 갈매기만 슬피 우네.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마다
목메어 불러봐도 말없는 그 사람 ~
아치섬는 영도와 제방으로 연결 되어 한국해양대학교가 있는 섬으로, 부산에서 아침이 가장 먼저 시작되는 섬이라 하여 조도(朝島)라고도 하지만, 동백꽃이 많이 피는 섬이라 해서 동백도라고도 한다.
영도등대를 위로 하여 순환도로에서 조금 내려가니 울창한 숲 사이에 지붕이 원형인 전망대가 나타나더니 그 앞에 바다와 어울리지 않는 모자상이 있다.
여기가 부산에서 악명 높은 자살바위 전망대였다.
전망대에서 아래 바다를 굽어보니 아슬아슬한 수직 절벽인데 그 높이가 해발 168m로 세상에서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생을 비관하여 뛰어내려 자살하는 사람이 많다 해서 속칭 자살바위라 하는 무시무시한 곳이다.
부산시는 이를 제지하기 위해 1973년 전망대를 세우고 뛰어내리기 어렵게 담으로 막아 놓았다. 그리고 그들의 어머니를 한번만이도 생각하고 참으라고 세운 조각이 모자상이었던 것이다.
남항조망지를 뒤로 하고 700m를 다시 내려오니 절 이름치고는 이상한 구명사(救命寺)가 있다.
이 절은 자살바위에서 1m 거리이니 자살바위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절은 구내가 아주 좁아서 종각 속에다가 종은 물론 부처님들까지 가득 모신 것이 특이하다.
그중 주불이 지장보살이다. 지장보살(地藏菩薩)은 사후의 세계를 관할하는 부처님이고 보니 세파에 시달려 육신을 버리려는 가여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설립된 사찰 같아 마음을 숙연케 한다.
부산영도태종대 안내.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