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3章 공포! 지옥갱의 저주!(恐怖! 地獄坑의 詛呪!) 혁사린은 문이 닫힌 만서각 칠십이 개의 서방을 하나하나 둘러보고 있었다. 낮에는 활짝 개방되어 있는 만서각 서방들이지만 이경이 넘어서는 순간 폐장(閉場)을 한다. 그 시간 이후부터는 강호일류고수들과 비견해도 손색이 없는 호장무사들이 순라를 돈다. 잠도 오지 않고 머리 속엔 천뢰수라결을 개조할 궁리 뿐인 혁사린은 서방안을 둘러보며 참고될만한 서적을 착고있었다. 그는 삼십오번 째의 서방 안에 있었다. [...] 혁사린은 수많은 책을 응시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돌연 그는 두 눈에서 야릇한 광채를 발산시켰다. (이상하다? 어째서 책의 순서가 바뀌어 있을까? 그리고 저 책은 없던 것인데...?)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책(冊)! 푸른 표지에 제법 두툼한 책 하나가 눈앞 서가에 꽂혀있었다. 얼핏 보아선 다른 책들과 같아보였지만 결코 만서각 내의 책이 아니었다. 혁사린은 새로 꽃혀 있는 책을 꺼냈다. <명인록(名人錄).> 혁사린은 천천히 주위를 둘러본 뒤 빠르게 책장을 넘겼다. 파라락... 그냥 넘기는 듯 했으나 그는 한자 한자 빠짐없이 읽고 있었다. 어느 한순간, (응?) 혁사린은 무엇을 보았던지 책장 넘기기를 그쳤다. (전혀 다른 내용이다. 이것은 누구에겐가 무슨 내용을 알리는 암호(暗號)가 분명하다.) <....드디어 난 그곳을 발견했다! 하지만 너무도 무섭다. 세인들은 그 곳의 가공할 무서움을 모를 것이다. 아무도 살아돌아오지 못했다. 오직 나 혼자만이 살아 이 글을 남긴다. 난 몹시 두렵다. 내게 찾아오는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장차 대륙에 불어닥칠 무서운 혈겁에 두려움을 느낀다. 이 글을 십칠호(十七號)가 무사히 보길 바랄 뿐이다. 보는 즉시 와라. 내 목숨이 경각에 달해 있다. 동쪽 이십 리 자씨탑(慈氏塔). 기다리겠다!> [...] 혁사린은 얼핏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자씨탑? 이 글을 남긴 사람이 그곳에 있다는 뜻인가? 필적으로 보아 몇 시진 전에 남긴 것이다. 또한 거의 죽음상태에 이르러 있다. 그렇다면...) 혁사린은 강한 호기심에 이끌렸다. (가 보자!) 그의 두 눈에서 강렬한 광채가 폭사되어 나왔다. * * * -자씨탑(慈氏塔)! 악양루(岳陽樓)에서 동쪽으로 바라보면 회색빛으로 빛나는 칠층(七層) 탑(塔)이 하나 보인다. 칠층 팔각으로 이뤄진 이 탑은 악양은 물론 호남성(湖南省)에서 가장 오래된 탑으로 당(唐)나라 현종(玄宗) 때 지어진 탑이다. 그 옛날 동정호(洞庭湖)에는 사람을 괴롭히는 귀신이 살고 있어 그 부근 수 백리 사람들은 무서워서 살아갈 수 가 없었다. 사람들은 대책 끝에 당나라 건국 공신인 위지공(尉遲恭)이 사용한 무기 모양을 본딴 탑을 건립하여 귀신들을 퇴치하기로 하였다. 이때 동정호 물귀신에게 가족들이 모두 희생을 당하고 혼자 살아남은 자씨(慈氏) 미망인은 탑을 건립한다는 말을 듣고 전 재산을 공사비로 내놓았음은 물론 식사 등을 제공하며 온갖 정성을 다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자씨 미망인은 탑이 완공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죽는다. 사람들은 그녀의 정성을 기념하여 탑이름을 자씨탑(慈氏塔)이라 지었다. 휘이잉...! 마지막 꽃샘 추위는 흩날리는 진눈깨비를 동반한 채 살을 살을 에일 것만 같은 한파(寒波)를 가져왔다. 한데, 그때였다. 스슥... 돌연 눈보다 흰 백의를 입은 서생이 마치 환상인 듯 나타났다. 그는 만서각을 떠나온 혁사린이었다. 혁사린은 십여 리 밖에 우뚝 서 있는 자씨탑을 응시했다. (저곳이다.) 혁사린은 미끄러지 듯 신형을 움직였다. 그런데 괴이하게도 눈 위에는 전혀 발자국이 없었다. 분명 그는 눈을 밟으며 걷고 있었다. 답설무흔(踏雪無痕)! 눈을 밟으며 걷는 듯 하지만 몸을 깃털처럼 가볍게 한 후 땅위에 떠 걷듯 날아가는 상승신법(上昇身法)! 혁사린은 이미 이같은 경지에 이른 것이었다. 그는 자씨탑 앞에 이른 뒤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휘이잉... 한파가 그의 전신을 할퀴고 지나갔다. 혁사린은 곧 자씨탑 안으로 들어갔다. 자씨탑 안은 칠흑같은 어두웠다. 혁사린은 안력을 돋우어 사방을 응시했다. 일층 전면에는 동정호의 귀신을 퇴치하고 일대를 수호하기 위해 마련된 당나라 개국 공신이자 무장인 위지공(魏志工)의 입상(立像)이 우뚝 세워져 있었다. 단상에 있는 위지공상이 고작일 뿐 그 밖에는 별다른 것이 눈에 띄지 않았다. (이상한 걸?) 혁사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가 무엇이 생각났는지 그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아! 그렇구나.) 그는 천천히 위지공상으로 다가갔다. [...] 그는 조심스럽게 위지공상을 살피다가 문득 입가에 실날같은 미소를 머금었다. (감쪽같군. 위지공상의 두 눈 미간에 교묘하게 기관을 설치하다니...) 혁사린은 재빨리 위지공상의 미간을 두 번 가볍게 눌렀다. 찰나, 꽈르릉! 위지공상이 뒤로 석 자 가량 올라가며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작은 구멍을 형성했다. 그 밑으로 썩은 곰팡이 냄새가 물씬 풍기고 있었다. 혁사린은 잠시 주저하다가 천천히 구멍으로 들어갔다. [아...] 그의 입에서 탄성이 새어나왔다. 세 사람이 겨우 누울 수 있는 공간에 한 사람이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온통 피투성이에 거의 해골만 남아있다시피 한 괴인! [누....누구냐?] 괴인은 힘없이 물었다. 혁사린은 약간 경계를 하며 입을 열었다. [당신이 남긴 글을 보고 온 사람이오.] [그럼...? 허나 넌 무혼(無魂)이 아니다.] (무혼...) 혁사린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할 수 없군. 이것도 인연인가? 네 이름은 무엇이냐?] [혁사린이오.] [혁사린이라! 흐흐 좋다! 너는 행운아다 혁사린.] [행운아요?] [흐흐흐! 그렇다. 그러나 어쩌면 천하에서 가장 무서운 곳에 들어가야 할 운명일지도 모르지.] 혁사린은 침착을 유지하며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크흐흐! 노부를 강호 친구들이 잔혈마존(殘血魔尊)이라고 부르지.] (잔혈마존!) 혁사린은 내심 크게 경악했다. -잔혈마존(殘血魔尊)! 그는 사파의 대명사와도 같은 존재였다. 그의 손속의 잔인 악랄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으며 무공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잔혈마존은 괴이하게 웃었다. [무혼 대신 네가 왔으니 다행이랄까? 노부의 생명은 이제 반시진 밖에 남지 않았다. 너는 그동안 천하에서 가장 무서운 얘기를 들어야 한다.] [...?] 혁사린은 말을 하는 도중에도 공포에 몸을 떠는 잔혈마존의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대관절 무엇이 잔혈마존을 저토록 공포에 질리게 했단 말인가?) 잔혈마존은 점차 흐릿해지는 시선을 억지로 치켜뜨고 있었다. 그 순간, 혁사린은 오른쪽 손바닥을 잔혈마존의 명문혈에 부착시켰다. [너... 무서운 공력을 지니고 있구나.] 잔혈마존의 두 눈에서 경악의 빛이 흘러나왔다. 혁사린은 담담히 웃을 뿐이었다. 이윽고 잔혈마존은 심신이 아주 편안해지는 듯 두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 [그곳은 무림사상 가장 무서운 곳이다. 또한 엄청난 마기가 숨쉬고 있는 곳이다.] 혁사린은 지극히 차분하게 물었다. [대관절 그곳이 어디기에 그러시오?] [후후후! 어디냐고? 그곳은 바로 지옥갱(地獄坑)이다.] [지옥갱!] 혁사린의 안면 근육이 파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지옥갱(地獄坑)> 천 년 전, 지상에서 가장 마기(魔氣)가 왕성한 지점에 천연적인 동굴(洞窟)이 형성되었다. 지하 일만장의 길고 깊은 어둠의 무저갱(無低坑), 실로 불가사의할 정도로 깊은 지하에 생겨난 천연마동굴(天然魔洞窟)이 바로 지옥갱이다. 지옥갱에는 전율을 느끼게 하는 전설(傳說)이 있다. -지옥갱의 마기가 지상으로 뻗어나오는 그 날, 천하는 광겁(狂劫)에 휩싸이고 말 것이다. 전설을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 지옥갱이 생긴 그 후 이백 년이 지났을 때 천하를 집어삼킬 대마기가 지하 일만 장을 뚫고 포효를 토했다. 그리고 천하무림은 온통 피의 회오리 속에 갇혀버렸다. 백 년동안 몰아부친 엄청난 대혈겁(大血劫)이었다. 지옥갱의 마기는 백년 동안 무림을 완전히 통일(統一)시켰다. 그러나, 천하통일을 이룬 뒤 일 년 후에 어쩌된 일인지 지옥갱의 마기가 서서히 사그라 들더니 끝내 지옥갱의 마기는 다시 지하 일만 장 밑에 고개를 파묻었고 세인들은 대공포에서 차츰 헤어났다. 지옥갱의 마기가 사그러든 것은 지금까지도 신비와 의문 속에 가려져 있다. (그 저주받은 지옥갱이 다시 세상에 나타났단 말인가?) 혁사린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잔혈마존은 힘없이 말했다. [전설에 의하면 지옥갱을 찾는 사람은 천하제일고수가 된다고 했다. 노부 역시 그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그럼 잔혈마존이 지옥갱을 찾았단 말인가?) [노부를 포함한 십칠인(十七人)의 동지들은 수십년동안 지옥갱을 찾아 헤매었고.... 드디어 지옥갱을 발견해 그 안에 비장된 수많은 마공과 사술을 발견했다. 그러나...그곳은 실로 악마의 분화구였다.] 그의 안면이 공포의 빛을 떠올렸다. 잔혈마존은 전신을 파르르 떨었다. [지옥갱! 그 가공할 마기가 다시 솟구치고 있다. 과거의 지옥갱의 마인들... 그들이 다시 부활(復活)하고 있다. 천 년 전보다 더욱 무서운 마기를 안고...] 혁사린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체 무엇 때문에 소생을 행운아라고 했소?] 잔혈마존의 입술이 간신히 떨어졌다. [우리는 또 다른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우연이었다.지옥갱 안에 천하의 모든 마기(魔氣)를 막을 수 있는 천고에 다시 없을 무상비급(無上秘級)이 숨겨져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을 얻는다면...우욱...] 잔혈마존은 잇따라 검붉은 선혈을 울컥울컥 토해냈다. [헉헉! 지옥갱에....가서 그 비급을 찾아라. 지옥갱의...마기가 싹트기 전에.... 그 비급을...! 그곳의...위치는....!] 잔혈마존의 음성이 점차 낮아졌다. [뭐라구요? 잘 안들립니다!] 혁사린은 급히 귀를 그의 입에다 갖다댔다. 그러나, [그곳...의...위치는 바로...!] 툭! 채 말을 잇지 못하고 잔혈마존의 고개가 힘없이 옆으로 떨어졌다. 일대마두 잔혈마존의 최후였다. 십칠인의 동료와 함께 지옥갱에 들어가 엄청난 것을 목격하고 동료들의 죽음을 뒤로 한채 강호로 나온 잔혈마존, 그 역시 싸늘한 시체로 변해 황천길에 오르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강호에 불어닥칠 어마어마한 대혈겁의 징조를 한 사람에게 알리고 죽음으로써 훗날 일대협웅(一代俠雄)의 탄생(誕生)을 세상에 안겨주게 되었으니... [지옥갱...] 혁사린의 두 눈에서 한 줄기 광채가 뿜어지고 있었다. (들어가보자! 지옥갱의 마인들도 모른다는 그 비급을 반드시 찾아보고 말겠다!) 이 순간 혁사린의 주먹은 절로 꽈악 쥐어지고 있었다. 아침! 혁사린은 황금대야와 함께 앉아있었다. 황금대야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입을 열었다. [너의 결심이 그렇다면 이 할아비가 만류할 수가 없구나.하지만 네가 하고자 하는 일은 죽음이 따르는 것이다. 그런데도 자신이 있느냐?] 혁사린의 입에서 한 가닥 미소가 어렸다. [소손은 할아버지의 손자입니다.] 그 말에 황금대야는 흐뭇한 웃음을 발했다. [허허헛! 그렇지. 너는 천하제일의 신비인인 이 할아비의 손자이지.] 한차례 너털웃음 발한 황금대야는 돌연 낯빛을 굳혔다. [가라! 그리고 반드시 이룩해라. 성공하지 못하면 돌아오지 마라!] [예...] 혁사린 역시 비장한 결의를 보였다. 황금대야는 차분하게 말했다. [린아, 떠나기 전에 너에게 아직 전수하지 않은 비예를 전해주마.] 일순 혁사린은 뜻모를 미소를 지었다. [혹시 천강십팔해(天 十八解)를 말씀하시는 게 아닙니까?] [네가 어떻게 그것을...?] 황금대야가 채 놀라기도 전에 혁사린은 천천히 일어났다.그는 방바닥에 의연히 선 채 좌우 양손을 허공에 그었다. 파...츠...츳! 순간 정녕 불가사의할 정도로 엄청난 강기(剛氣)가 마치 장강의 물줄기처럼 뻗어나가는 것이 아닌가? 여기에 사람이 격중된다면 그 즉시 형체도 남지 않고 피곤죽이 될 정도로 막강한 위력이었다. 내공이 주입되지 않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방 안 기물들이 가볍게 진동했다. 혁사린은 연거푸 십여초를 전개했다. 그 광경을 바라보는 황금대야의 두 눈엔 놀람의 빛이 가득 어려 있었다. (저녀석 이미 그것마저 익히고 있다니...! 슬쩍 비추기만 하면 그것을 참조로 터득해 내니 과연 내 손자다.) 황금대야는 그의 대견스런 모습에 흐뭇해 있었다. 이윽고 혁사린은 천강십팔해를 모두 전개해 보인 후 자리에 앉았다. [할아버지, 어떻습니까?] 황금대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훔쳐배운 재주치고는 괜찮다.] [훔쳐배우다니요? 전에 할아버지께서 연무관에서 연공하시는 것을 보고 그대로 배운건데요.] 황금대야는 혁사린의 이마를 가볍게 쥐어박았다. [이녀석아! 그게 훔쳐 배운거지 다른 것이 훔쳐배운 것이냐?] 혁사린은 이마를 문지르며 씨익 웃었다. 황금대야는 품 속에서 이상하게 생긴 물건을 꺼냈다. 뒤이어 그는 밀봉된 서찰을 꺼내 탁자 위에 놓았다. [...?] 혁사린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두 가지 물건을 응시했다. <제마령(制魔令).> 마를 금제시키는 영패란 뜻인가? 그 크기는 손바닥만했으며 마치 여인들의 노리개를 방불케 할 정도로 섬세하고 정교했다. 황금대야는 제마령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강호에 나가면 이것이 필요할 때가 있을 것이다. 제마령에 대한 상세한 것은 서찰에 적혀 있다. 이곳을 떠난 뒤에 읽어보도록 해라.] [예...] 황금대야는 빙그레 웃었다. [곱게 기른 너를 강호에 보내자니 섭섭하구나.] 혁사린은 괴이하게 웃었다. [후후훗! 소자는 할아버지의 지겨운 잔소리를 더이상 듣지 않아 그렇게 기쁠 수가 없습니다.] [뭐라고!] 황금대야는 짐짓 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얼굴을 굳히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린아! 지옥갱은 무림 사상 가장 무서운 마세(魔勢)였다. 이제 또 다시 그것이 고개를 쳐든다면... 무림은 그야말로...] 여기서 말을 끊은 황금대야는 잠시 숨을 고른 후 다시 입을 열었다. [말을 하지 않아도 네가 더 잘 알 것이다. 너는 이 할아버지의 손자라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아니된다. 너는 모든면에서 뛰어난 인물이니까!] [...!] 혁사린은 두 주먹을 가볍게 쥐었다. (그렇다. 나는 혁가의 위대한 혈통(血統)이다. 나는 천하에서 가장 뛰어난 인간이 되어야 한다.) 굳은 결의로 가득찬 그의 전신에서 신비의 기류가 서서히 피어오르고 있었다. 황금대야는 느릿하게 말했다. [이 할아비와 이별(離別)의 술이나 한 잔 나누도록 하자꾸나.] 혁사린은 낯빛을 고쳤다. [물론입니다.] [인석아 오늘만큼은 이 할아비에게 양보해라. 항상 네녀석이 이겼으니...] 무슨 말인가? 사실 그들 조손은 항시 술내기를 했다. 그리고 항상 먼저 취하는 쪽은 황금대야였다. 혁사린의 주량은 그야말로 끝이 없을 정도였다. 주선(酒仙)이라 할지라도 그를 능가하지는 못할 것이다. 혁사린은 웃었다. [하하핫! 사실 소손이 져주려고 해도 취하지를 않으니 어찌합니까?] [이놈! 말이 많구나.] 그들은 정답게 악양제일의 주루인 취선루(醉仙樓)로 향했다. 진눈깨비는 새벽이 되자 소담스러운 눈송이로 변했다. 이 해 겨울의 마지막 눈이 오고 있었다. 온대지가 하얗게 변색된 모습은 정녕 대자연(大自然)의 신비경을 피부로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새벽의 백설은 더욱 아름다웠다. 서경루(書經樓)- 만서각의 중심부이며 혁사린의 거처였다. 서경루 주위도 온통 백설로 가득했다. 천라만상(天羅萬象)이 눈 속에 묻혀 깊이 잠든 고요와 정적만이 흐르고 있는 시각이었다. 한데 늦은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서경루의 한 곳에서는 아직도 은은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불빛이 새어나오는 곳은 혁사린의 서재(書齋)였다. 서재안은 엄청난 분량의 고서(古書)들이 수십 개의 서가(書架)에 진열되어 있었다. [....] 혁사린은 하얗게 부셔지는 빙설천지(氷雪天地)를 창가에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황금대야와의 술자리를 파한 듯 그의 얼굴에는 불그스레한 술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언뜻 혁사린의 눈빛 속에 회상의 잔영이 어려들었다. (할아버지...) 혁사린은 품속에서 황금대야가 준 서찰을 꺼냈다. <린아! 너에게 조심하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 그 이유는 네가 네 자신을 충분히 자재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제마령(制魔令)! 그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제마령은 당금 무림을 주도하는 정사이십성(正邪二十星)을 부를 수 있는 영패(令牌)다.> [...!] 혁사린은 전신을 부르르 떨며 품속에서 제마령을 꺼냈다. 동시 그의 뇌리로 당금 강호 무림을 좌지우지하는 이십명의 절정고수들 이름이 스쳐 지나갔다. 그들 이십 명의 고수들 가운데 다섯 명의 백도무림인을 환우오성(環宇五聖)이라 했다. -걸왕(乞王) 궁신(窮神)! 개방( 幇)의 대조종(大祖宗)이며 천하유일(天下唯一)의 신투술(神偸術)을 보유하고 있다. 자칭 개방이 낳은 무영무적신투(無影無敵神偸)라 한다. 또한 위인됨이 해학(諧謔)과 풍자(諷刺)를 좋아하는 낙천거사(落拓居士)였다. -유성(儒聖) 백의신유(白衣神儒) 설우민(雪宇民)! 천하제일의 학문(學文)을 지니고 있는 대석학(大碩學)이다. 그가 모르는 것은 천하도 모른다고 타인들이 입이 부르틀 정도로 말을 할 정도면 그가 지닌 학문의 도(度)가 어느 정도인지 더 이상 설명치 않아도 될 것이다. -옥면향불(玉面香佛)! 천하에 가장 괴이한 중(僧)이다. 그는 소림사(少林寺)에서 가장 배분이 높은 큰스님이지만 당금 나이는 약관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분명 소림사에 적(籍)을 두고 있지만 사찰에 기거하지도 않으며 염불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처없이 강호를 주유하며 더욱 가관인 것은 여인을 지극히 좋아하여 스스로 법호에 향(香)이라는 자(字)가 붙였다. 그러나 불문의 무공은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가공할 고수이며 악(惡)을 그 누구보다 싫어해 만인을 위해 한 명의 악인이라도 더 죽이는 살계(殺戒)를 주저치 않는다. -천음도성(天音道聖) 천락자(天樂子)! 천하에 못다루는 악기(樂器)가 없다는 무당대사숙(武當大師叔)이 바로 천음도성이다. 또한 음(音)을 이용하여 인명을 살상하기도 하고, 죽음의 기로에 선 사람도 살리기도 하는 기인이다. -동정기협(洞庭奇俠) 어우동(漁雨東)! 오십년 전까지만 해도 백도제일인으로 추앙받던 대협웅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은거한 기인으로서 그의 낚싯대(竿)는 가히 천하를 낚아올릴 수가 있다고 한다. 낚싯대를 이용한 조구간법(釣鉤竿法)은 그 누구도 따르지 못한다. 백도인들은 마가 득세하면 언젠가는 승천하는 용(龍)처럼 다시금 그가 출현할 것이라 믿고 있다. 이들 다섯 명의 백도인들을 세상에서 일컫어 환우오성( 宇五聖)이라 했고, 그리고 비록 백도에 몸을 담고 있지는 않지만 의협심(義俠心)이 남다른 다섯 명의 기인(奇人)들을 세상은 신주오기(神州五奇)라 칭한다. -폭풍야(暴風爺)! 천하제일(天下第一)의 경공비술(輕功秘術)과 추적술(追跡術)을 지니고 있다. 그는 자신이 추적하고자 한 인물은 지금까지 한번도 놓친 적이 없다. -치매옹(癡* 멨! 천하에서 가장 재수없는 위인이다. 항상 노인네마냥 느리고 덜떨어진 행동을 하는 인물이라 그가 출현하고 개입하는 일에는 되는 일이 없다. 완전히 성사된 일도 그가 나타나면 희한하게도 깨져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엔 망녕든 노인 같지만 그의 지기(智機)와 처세술(處世術) 등이 천하 으뜸이라는 것을 세인들은 이 알고 있었다. -백수천왕(百獸天王)! 백수(百獸)를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는 비술을 소유하고 있다. 그는 강호에 출현할 때는 항시 다른 동물들을 동반한다. 어떤 때는 전설로만 들을 수 있는 백봉천학(白鳳天鶴)을 타고 나타나기도 했으며, 어느 때는 하늘이 까맣도록 메뚜기며, 벌떼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선풍마륜(旋風魔輪) 독고인(獨孤仁)! 한마디로 말해 신출귀몰(神出鬼沒)한 기인고수이다. 천하제일의 륜법(輪法)을 지니고 있으며 머리만 드러내고 꼬리를 감춘 신룡처럼 그 행적이 항상 신비롭다. -항아선희(姮娥善嬉) 주진희(朱珍稀)! 천하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다. 그녀가 있음에 천하의 모든 아름다움이 존재한다고 한다. 그녀가 있음에 모든 아름다움이 빛을 잃는다고도 했다. 진정 놀라운 것은 그녀가 황궁(皇宮)의 금지옥엽(金枝玉葉)인 공주라는 신분이었다. 환우오성과 신주오기, 실로 상상할 수도 없는 절대적인 인물들이 실질적으로 백도무림을 이끌고 있다. 이에 반해 사마외도(邪魔外道)라 불리우는 흑도모림에도 열 명의 초절정고수들이 있다. 그들 가운데 세력을 이끌고 있는 오인(五人)을 마종오패(魔宗五覇)라 부른다. -귀령단문도(鬼靈斷門刀) 궁사(弓死)! 천하제일의 도법(刀法) 명인(名人)이다. 도의 귀신(鬼神),도에 미친자(刀狂)라고 불리운다. 그가 이끄는 귀령도벌(鬼靈刀閥)은 천하제일도문으로 그 이름을 떨친다. -사존(邪尊) 염화웅(廉火雄)! 사도대종사(邪道大宗師)이며 사존궁(邪尊宮)을 세운 인물이다. 하지만 피와 죽음을 즐기는 살인마왕이 아닌 강호사에 유일무이(唯一無二)의 절대사존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진정한 흑도인이다. 그 누구보다도 무림을 사랑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으나 그가 걷는 길이 사도이기에 백도무림인들은 그를 경원시 한다. 달리 사중협(邪中俠)이라 칭해지기도 한다. 사(邪)이면서도 사가 아닌 자가 바로 사존(邪尊)이다. -벽력대제(霹靂大帝) 율궁엽(律宮燁)! 폭약(爆藥)을 제조하고 다루는데 있어 그를 따를 자는 고금(古今)을 통털어 존재하지 않았다. 그 자체가 인간폭뢰(人間爆雷)인 것이다. 그의 가문인 벽력궁(霹靂宮)을 일컫어 천하제일화문(天下第一火門)이라 칭한다. -만황독존(萬荒毒尊)! 독(毒)을 다루는데 있어서 제일인자다. 절대적인 마중지인(魔中之人)이며 여간해서는 손을 쓰지 않는다. 그러나, 일단 격노하여 손을 쓰면 설령 자신의 부모(父母)라 해도 가차없이 죽인다. 강호에 있어 천하제일의 독문(毒門)을 말하라 하면 누구나 사천당문(四川唐門)을 꼽는다. 하지만 그것은 만독림(萬毒林)이 세워지지 않았을 때의 말이며 지금은 너나할 것없이 모두 만독림을 천하제일의 독문이라 칭한다. 특이할 사항은 만황독존은 독공 뿐만 아니라 손목에 항상 차고 다니는 지옥쌍환(地獄雙環)으로 펼치는 쌍겁풍(雙劫風)으로도 유명하다는 것이다. -요미(妖美) 초선아(超鮮娥)! 천하에서 가장 음탕한 요부(妖婦)이다. 그녀의 방중술은 신비하기 이룰 데 없다. 철탑거한이라 해도 이틀을 넘기지 못하고는 양기(陽氣)를 앗긴 채 뼈만 앙상하게 남는다. 색에 관한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일대요녀로 그녀는 천하에 깔린 수만 기녀(妓女)들의 대모(代母)이기도 하다. 세상 사내들에게 황홀한 환락을 안겨주는 환요선(歡妖船)의 선주(船主)다. 가공할 마세를 지닌 이들 마종오패! 그들이 현 흑도무림을 관장하고 있다면 이들과는 달리 바람처럼 강호를 주유하며 홀로 유아독존(唯我獨尊)하는 다섯 명의 독불장군(獨不將軍)들이 있으니...! 이들은 독행오마(獨行五魔)라 한다. -천기사뇌(天機邪腦) 엽소풍(葉蔬風)! 악마의 두되를 지닌 인물로 환우오성 가운데 한 사람인 백의신유와 비견되는 자다. 항상 홀로 주유하며 자신의 악마적 두뇌를 필요로 하는 자에게 그 악마의 힘을 빌려주고 세상을 파멸로 이끌고자 하는 악마의 자식이다. -혈죽맹마(血竹盲魔) 번일악(番一岳)! 천하유일의 죽창지술(竹槍之術)을 지니고 있다. 그는 맹인(盲人)이었으며 또한 백리 밖의 지극히 미세한 인기척도 느낄 수 있는 기이한 귀(耳)를 지니고 있다. -철수무정(鐵手無情) 한백(寒魄)! 천하에서 가장 잔인하며 냉혹한 살인마다. 그는 감정(感情)이 없다. 그리고, 행복(幸福)한 인간을 가장 싫어하며 저주한다. 그는 살인을 하는데 있어 그 이유는 없다. 단지 죽이고 싶어 죽이는 것 뿐이었다. -살수천작(殺手天爵)! 천하제일의 살수(殺手)다. 그는 일단 상대가 죽여달라는 자를 죽인 뒤에 그 대가를 받는다. 실패하면 스스로 물러나며 아무런 대가도 원치 않는다. 하나, 그는 지금껏 대가를 받지 않은 적이 없다. -혈전유성(血電流星)! 천애고아(天涯孤兒)이며 나이는 고작 약관이라고 전해진 인물이다. 유성추(流星錘)를 전개하는데 있어 천하무적이다. 또한 정처없이 떠도는 방랑객(放浪客)이다. 그는 한 곳에서 하루 이상을 머무른 적이 없다. 그가 한곳에 오래 있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그는 천하에서 일어나고 있는 크고 작은 비사를 손바닥 들여다 보듯 훤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여 자신의 뒤가 구린 자가 항상 혈전유성을 죽이고자 하지만 그때마다 피와 죽음이 춤을 추었다. <환우오성(環宇五聖).> <신주오기(神州五奇).> <마종오패(魔宗五覇).> <독행오마(獨行五魔).> 이들 이십 명의 절대고수들을 일컫어 정사이십성(正邪二十星)이라 한다. 그런데 황금대야가 준 제마령이 이들을 부릴 수 있는 영패라니 이게 말이 될 성 싶은가? 하지만 사실이었다. 황금대야의 글은 계속되고 있었다. <제마령을 주루나, 객점, 사람의 왕래가 빈번한 곳에 꽂아두면 사흘 이내에 정사이십성이 출현한다. 우리 황금벌의 힘은 위대하다. 권력과 무력보다 강한 것이 바로 금력이다. 그들 정사이십성이 아무리 강호제일의 절정고수들이라 해도 금력 앞에선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다. 제마령은 작게, 또는 크게 황금벌의 도움을 받은 강호인들을 부릴 수 있는 황금벌의 신물(神物)이다. 이것을 제시하면 황금벌의 도움을 받은 강호인들은 무조건 한 가지 명(命)에 따르도록 약속되어 있다. 강호인들은 은원(恩怨)을 중시하며, 명예(名譽)를 목숨처럼 아낀다. 강호에 나가 그들의 도움이 필요하면 제마령을 사용하라. 이 할애비의 선물이다. 네가 이미 짐작하고 있겠지만 네가 익힌 무공 가운데 황금벌의 무공이 아닌 이십종(二十種)의 무공은 바로 정사이십성의 무공이다. 황금벌은 그 무공들을 사기위해 엄청난 출혈을 해야만 했지만 그 댓가는 흡족하다. 왜냐하면 대륙의 평화와 안녕의 영원한 수호신인 제마신협(制魔神俠)이 탄생되었기 때문이다. 제마신협은 황금벌을 위해 존재하는 수호신이 아닌 정의의 수호신이다. 세상에서 거두어 들인 황금을 다시 세상에 환원하는 사업 가운데 가장 위대한 사업이 제마신협을 만드는 사업이었고 이 할애비는 널 택했다. 린아, 마음껏 나래를 펴라! 이 할애비는 네가 세상의 정의수호신으로 성장하는 것을 지켜볼 것이다. 황금의 힘은 위대하나 진정으로 위대할 때는 바로 황금이 세상을 위해 쓰여질 때다.> 혁사린의 입가에 실소가 번졌다. [풋! 황금의 힘은 위대하다고요? 황금을 이용해 무공을 사 제마신협을 만든 것이 황금벌의 가장 위대한 사업이고...그래서 날 택했다 이 말인가요? 할아버지, 난 황금철인이 아니예요. 난 혁사린이예요. 하지만...] 한순간 혁사린의 두 눈에서 자광(紫光)이 빛났다. [하지만 제마신협이라 했나요? 혁사린은 마음에 들어요. 정의의 수호신이란 그 말이...! 지켜보세요 세상을 파멸로 이끌려 하는 자들, 권력과 무력을 남용하는 자들에게 금력의 힘을, 그 위대한 힘을 보여주겠어요.] 혁사린은 두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혁사린- 그는 더 이상 책벌레가 아니었다. 누에의 탈을 벗어야 비로서 아름다운 나비가 되듯, 깊은 잠에서 깨어난 한 마리 룡(龍)이었다. 잠시 후 혁사린은 할아버지가 남긴 긴 장문의 글 밑부분을 바라보았다. <린아, 옥령(玉零)이를 소홀히 대하지마라. 그 애는 너를 위해 간택된 황금대모(黃金代母)다. 천하에 산재되어 있는 황금벌의 전 조직과 재정을 손바닥 들여다 보듯 훤히 알고 있는 재녀(才女)다. 이 할애비도 그러했고, 죽은 에미도 그러했듯이 차후 황금벌의 여왕은 도옥령 그 아이다. 그 아이를 쭉 지켜본 할아비가 장담한다. 그 아이는 이제껏 탄생되었던 그 어떤 황금대모보다 더 뛰어나다. 더우기 그 아이를 널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 그래야 한 번 밖에 보지 못한 너희들이지만 그 아이는 널 보는 순간 모후로서가 아닌 한 명의 소녀로서 널 사랑하게 된 것이다. 이 말을 하는 이유가 뭔지 아느냐? 바로 네놈이 지닌 도화살(桃花煞) 때문에 걱정되어서 하는 소리다. 넌 너무 잘난 용모를 지니고 있어 강호에 나가 그 얼굴 때문에 필요없는 시비를 일으킬까봐 걱정되어 하는 소리다. 항상 이 점을 조심하길 바란다. 영웅이 삼처사첩(三妻四妾)을 거느리는 것은 흉될 일이 아니지만 여인 때문에 왕왕 세상의 역사가 변했음을 마음에 새겨두어라. 그리고 이녀석아, 이제는 장난치는 버릇을 버려라. 강호에 웃음만 있는 곳이 아니다. 허긴 잔소리를 늘어놓는다고 해서 고쳐질 네놈도 아니니 강호에 나가면 이 할애비의 잔소리가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자연히 알게 될 것이다. 떠나기 앞서 인사올 생각을 갖지 마라. 네놈이 이 편지를 읽을 때면 이미 이 할애비는 이곳을 떠나 있을 것이다. 세상도 구경하고 점포도 살필 겸하여 다닐 예정이니 그리 알아라. 린아, 넌 이 할애비의 자랑스런 손자다. 이 할애비는 네가 대견하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잼 납니다
재미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