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一日) / 박태원
직업과 아내를 갖지 않은 스물여섯 살의 '구보'는 정오에 집을 나와 광교, 종로를 걸으며 귀도 잘 들리지 않고 시력에도 문제가 있다는 신체적 불안감을 느낀다. 무작정 동대문행 전차를 타고는 전차 안에서 전에 선을 본 여자를 발견한다. 일부러 모른 체하고 있다가 그녀가 전차에서 내리고 난 뒤에 후회한다.
혼자 다방에 앉아 차를 마시면서 자기에게 여행비만 있으면 행복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고독을 피하려고 경성역 삼등 대합실로 가지만, 오히려 온정을 찾을 수 없는 냉정한 눈길들에 슬픔을 느끼고, 우연히 만난 중학 시절 열등생이 예쁜 여자와 동행인 것을 보고 물질에 약한 여자의 허영심을 생각한다.
다시 다방에서 만난, 시인이며 사회부 기자인 친구가 돈 때문에 매일 살인 강도와 방화 범인의 기사를 써야 한다는 사실을 애달파하고, 즐겁게 차를 마시는 연인들을 바라보면서 질투와 고독을 동시에 느낀다.
다방을 나온 '구보'는 동경에서 있었던 옛사랑을 추억하며 자신의 용기 없는 약한 기질로 인해 여자를 불행하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을 느끼고, 또 전보를 배달하는 자동차가 지나가는 것을 보며 오랜 벗에게서 한 장의 편지를 받고 싶다는 생각에 젖는다.
그리고 여급이 있는 종로 술집에서 친구와 술을 마시며 세상 사람들을 모두 정신 병자로 간주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하고, 하얀 소복을 입은 아낙이 카페 창 옆에 붙은 '여급 대모집'에 대하여 물어 오던 일을 생각하고 가난에서 오는 불행에 대하여 생각한다.
새벽 두 시의 종로 네거리, '구보'는 제 자신의 행복보다 어머니의 행복을 생각하고 이제는 어머니가 권하는 대로 결혼을 하여 생활도 갖고 창작도 하리라 다짐하며 집으로 향한다.
■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내용 정리
* 갈래 : 중편소설, 심리소설, 세태소설
* 배경 : 시간 - 1930년대 어느 하루
공간 - 서울 거리 현실적 공간(서울에서의 하루)
의식의 공간(첫사랑을 시작한 어린 소년기-동경 유학시절)
* 의의 : 박태원이 자신의 창작 방법론으로 제시한 고현학
(modemologe : 현대적 일상 생활의 풍속을 면밀히 조사 탐구하는 행위)을 적용시킨 작품
* 시점 :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
* 성격 : 세태소설, 산책자문학(시인 김광균과 횡적 축을 이룸)
* 주제 : 1930년대 무기력한 문학인의 눈에 비친 일상사
* 구성 : 단순 구성, 1일 동안의 여로(旅路) 형식, 인과성이 미약
이 작품은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이라는 일반적인 소설의 구성 방식을 따르지 않고 있다. 다만, 외출해서 '전차 안→다방→거리→경성역 대합실→다방→거리→술집' 그리고 귀가까지의 작중화자의 관찰과 심리가 서술되고 있을 뿐이다.
* 출전 : <조선중앙일보>(1934)
■ 등장인물
* 구보 : 소설가. 외출에서 귀가까지의 관찰의 주체.신체적 불안감을 느끼고 있으며 결혼을
하지 못했다
* 어머니 : 구보의 어머니. 아들의 늦은 귀가와 결혼을 염려한다.
■ 이해와 감상 1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표제가 시사하는 바처럼, 실직한 인텔리 소설가가 도시에서의 무료한 일상을 보내며 그것들을 '고현학(考現學)'의 방식으로 제시하고 있는 소설이다. 이 소설이 식민지 지식인 사회의 말기적 현상의 하나로 취급되는 원인은 바로 이 고현학의 방식에서 연유한다. 어떠한 현실에 대해서도 장담하거나 단정 짓지 않으며 결론은 항상 유보된다. 이미 모든 현실 속의 문제에 대하여 신념을 잃어버린 사회의 허무적 냄새가 깊이 배어 있는 것이다.
도시의 일상적 현실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있는 그의 정신적 배경에는 현대의 일상사에 대한 낯설음이 담겨 있다. 현대의 일상사가 그에게 기록될 가치가 없다고 여겨졌다면 그는 '노트 한 권과 단장(短長)'을 들고 서을 거리를 활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상적 현실에 대한 낮설음은 소설 창작의 과정이 허구가 아니라 현실로 도입되는 한 과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현실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글로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소설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소설 창작의 과정을 다시 소설 속에 도입다는 "소설 속의 소설 쓰는 행위"를 독자에게 보여 준다. 독자는 허구를 창작하는 과정에 대한 이해를 통해 작가와 그 작품의 관계 그리고 사회 현실의 의미를 글을 쓰는 당사자와 함께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박태원의 창작방법은 이러한 당대의 현실 속에서의 소재 취하기를 통해 일상과의 좀더 면밀한 길트기를 시도하고 있다. 그의 작가의식이 잘 드러나는 작품으로 이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一日>이라는 작품이 꼽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이 작품에서 소설가로서의 그의 맨얼굴을 보여준다. 반대로 박태원이라는 작가는 자신의 맨얼굴을 독자에게 노출함으로서 소설 속의 '구보라는 소설가' 뒤편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추어 버린다.
얼굴을 노출함으로서 "작가 자신이 직접 소설 속에 뛰어들어 거리를 활보한다"는 적극적인 작업은 현실 속의 박태원을 소설가로서의 '구보'로 한정짓는 행위에 해당한다. 살아있는 자연인으로서의 박태원이 아닌 소설가 '구보'의 등장은 작가의 직업적 의식이 소설 속에 그대로 담겨지는 효과를 자아낸다. 지식인으로서의 작가에 대한 새로운 의미 부여의 기초작업으로서 이 소설의 의미를 규정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소설사에서 지식인 소설가의 창작행위에 대한 새로운 검토작업을 그대로 글로 옮긴 작품인 만큼 '소설의 소설 그 자체 양식'에 대한 문제 제기로서 이 소설은 실험적이라고 하겠다. 박태원의 또 다른 문제작인 장편 「천변풍경」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소설에서 보여지는 작가의 면밀한 관찰력의 힘 때문이다. 이 작품은 「천변풍경」의 탄생을 예고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 이해와 감상 2
민족 항일기에 문학을 하는 지식인의 무기력한 자의식을 형상화한 작품인데, 이상(李箱)이 삽화를 그리기도 했다.
이 소설은 박태원의 생활을 반영한 그의 자전적(自傳的) 소설로, 발표된 직후 새로운 형식의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주인공인 '구보'가 집을 나서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까지(집→천변길→종로 네거리→화신상회→전차 안→조선은행 앞→다방→거리→경성역→조선은행 앞→다방→거리→다방→거리→식당→거리→다방→거리→술집→카페→종로 네거리→집) 하루 동안, 길거리에서 만나게 된 여러 가지 일들 속에서 반응하고 있는 '구보'의 의식 세계가 주요 내용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련의 행위들은 특별한 의미도 갖지 못하고 뚜렷한 필연적 연관성도 없다. 다만 그러한 풍물이나 사람을 접하면서 구보가 나타내 보이는 반응과 생각을 두서 없이 나열하고 있다.
구보는 목적 없이 외출해 거리를 배회하면서 속물주의, 타협주의, 패배주의 등 타락한 도시의 일상적 모습을 발견한다. 이러한 우울함과 생기 없는 일상들은 당시 아무런 희망도 목적도 가질 수 없었던 도시적 삶의 분위기를 재현하고 있다. 이것은 일제 시대라는 당시의 상황과 연결시켜 보았을 때 우리 나라의 전반적인 패배 의식을 표현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분위기보다 중요한 것은 이를 대하는 구보의 태도이다. 구보는 자신의 몸이 나빠졌다고 생각하고, 전차에서 맛선 본 여자에게 말을 걸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동경 시절 용기 없었던 자신을 발견한다. 이는 구보 자신이 현실적으로 무기력하고 패배 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인간임을 보여준다. 이것은 1930년대 어두운 시절에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고 무기력했던 식민지 지식인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특히 이 소설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의식의 흐름'이나 '몽타주 기법'과 같은 실험적인 소설 기법이다. 구보가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는 것은 시간적인 순서에 의해 서술되고 있지만 중간 중간에 회상을 하는 부분이 끼어 있으며, 그가 떠올리는 생각들은 어떤 필연성보다는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에 따르고 있다. 어떤 매개 없이 연상되는 것들이 조각조각 이어질 뿐인데, 이러한 몽타주 기법은 모더니즘의 특징이기도 하며 인물의 심리를 드러내는 적절한 방법이기도 하다.
★ 독백과 나레이션의 뒤엉킴
이 작품은 제목에 드러난 것과 같이 소설가인 구보가 하룻동안 겪게 된 일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술한 소설이다. 이 작품은 일종의 단상(斷想)들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서사적 구조가 중심을 이루지 않고 여러 가지 계기들에 의해 떠오르는 생각들을 신변 잡기와 같이 서술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은 내면 묘사에 치중하고 있다. 내면의 흐름은 대체로 자유 연상에 의해 전개되고 있으며, 그것은 나레이션과 구보의 독백이 뒤엉킨 채 서술되고 있어서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만연체 문장은 박태원의 특징적 문체인데, 자칫 느슨해지기 쉬운 문장을 쉼표의 휴지를 이용해 서술의 속도감을 부여하고 있다. 이 쉼표의 기능은 이 밖에도 장면의 전환, 새로운 사건으로의 이행을 꾀하고 있다.
★ 시점 선택의 실험성 - 1인칭 시점의 3인칭화
이 작품은 서술자가 '구보'라는 주인공을 초점화하고 있어 외형적으로는 전지적 시점을 차용하고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이라 할 수 있다. 전지적 시점으로 소설적 상황을 그리려고 했다면, 서술자가 직접 그것을 그리면 된다. 따라서 추측을 나타내는 서술어를 쓸 필요가 없다. 서술자가 말하고 있는 형식을 사용하고는 있어도 그것은 구보에 이해 여과된 것이다. 구보가 주인공이고 구보의 눈에 투영된 세계를 그리고 있으므로 자연히 추측을 나타내는 서술어를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구보'를 '나'로 바꾸어 읽어도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데서도 그 점은 확인할 수 있다.
★ 고현학(考現學)으로서의 소설 쓰기
구보는 무직의 인텔리이며 소설가다. 그는 무료하게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 무료함은 현실 취재라고 하는 소설가로서의 일상과 연계되어 있다. 고현학은 현대적 일상 생활의 풍속을 면밀히 탐구하는 태도를 말한다. 구보는 고현학적 태도로 현실을 취재하며 이곳 저곳을 옮아 다닌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고현학의 대상이 자신이라는 점이다. 소설가 구보는 자신의 삶을 취재하는 소설을 쓰는 셈이고, 작가인 박태원은 구보라는 가공의 인물을 통해 소설가로서의 삶을 대상으로 한 자전 소설을 쓰고 있는 셈이 된다.
■ 작품분석
▶ 작가의 실제 생활을 반영한 자전적인 소설로 발표 직후 새로운 형식의 소설이란 평가를 받기도 했다. 목적없이 집을 나선 '구보'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도중에 우연히 부딪히게 되는 단편적인 여러 사실들, 그리고 그에 의해 촉발되는 두서 없는 생각들의 연속인 이 소설에서 1930년대 나약한 지식인의 일상사를 엿볼 수 있다.
▶ 이 작품은 작품 전체의 처음 부분으로 주인공이 놓인 처지가 잘 나타나 있고, 앞으로의 내용 전개에 대한 은밀한 암시가 주어져 있다. 먼저 주인공은 26세의 장가를 못 간, 그리고 일정한 직업이 없는 인물로 그려져 있다. 한마디로 그는 현실적으로 무능한 룸펜 인텔리에 해당한다. 이러한 그를 기다리면서 안타깝게 지켜보는 어머니의 모습이 이 장면에서 잘 나타나 있다. 사실 어머니의 바램으로 나타나고 있는 일상적인 '행복'과 지식인의 무료한 일상은 이 작품의 중요한 내용 구조를 이루는 것이다. 이러한 면을 볼 때, 이 장면은 앞으로 전개될 내용에 대해 그 나름의 암시를 보여주는 셈이다.
▶ 이 작품은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이라는 일반적인 소설의 구성 방식을 따르지 않고 있다. 다만, 외출해서 전차 안 → 다방 → 경성역 대합실 → 다방 → 거리 → 술집 그리고 귀가까지의 작중 화자의 관찰과 심리가 서술되고 있을 뿐이다.
▶ 이 작품의 '산책'이라는 배회의 형식은 '관찰'과 '의식의 흐름'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장치이다. 관찰되고 있는 것은 당시 경성의 여러 풍물, 경성역을 중심으로 한 지게꾼, 유랑민, 시골 노파, 바세도우씨병에 걸린 노동자 등 암울한 풍경과, 다른 한편으로 종로통의 카페를 중심으로 한 휘황한 모습을 보여 주면서 근대화의 양면성을 드러내 주고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내면 의식의 흐름이다. 그것은 여러 풍경에서 발견되고 있는, 그러나 자신에게는 결여된 '일상적인 행복'과 지식인의 '고독'이 두 축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산책자 문학은 시 분야에서 김광균의 도시에서의 소외와 우울감으로 나타난다. (김광균, 외인촌, 추일서정, 와사등 등)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
이 기법은 감각 지각이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인 사고, 기억, 연상 등과 뒤섞이게 되는 등장 인물의 끊임없는 의식의 흐름을 표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인물의 무한한 사고를 통해서 의식과 무의식의 연속적인 흐름을 제시하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비문법적인 언어의 흐름을 하나로 묶는 결속체는 논리적 관계를 나타내는 문법의 틀보다는 병치(倂置)에 의해 작동하는 연상적 논리이다. 정신작용을 재현하는 의식의 흐름은 그 성공이 주의 깊은 선별 과정에 좌우됨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이고 억제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초현실주의의 '자동기술법'과 연관성이 많다.
우리 시의 경우 장경린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의식의 흐름을 활용한 시로 널리 평가받고 있다. 이 시는 의식의 흐름을 시간 단위별로 기술(記述)하고 있는데 이 때의 시간은 일상의 시간이 아니라 의식 속의 흘러가는 시간인 것이다.
■ 참고자료
시인 구보씨의 일일(一日)·1 / 오규원
- 구보(久甫)씨(氏)가 당신에게 보내는 사신(私信) 또는 희망 만들며 살기 -
1
가을. 하고도가을어느날.
길을가다가자리를잘못잡아지상(地上)에서반짝이는별,그런별몇개로반짝이는황국(黃菊)이나야국(野菊)을만나면가을동안가을이게두었다가그다음국(菊)을다시별로불러별이되게하고몇개는내주머니에늘넣고다니리라.
내주머니가작기는하지만그곳도우주이니별이뜰자리야있습지요.딴은주머니가낡아서몇군데구멍이있는데혹지나다니는길에무슨모양을하고떨어져있거든눈꼽이며그곳이나비누로좀닦아서어디든두고안부나그렇게만전해주시기를.
2
오해하고싶더라도제발오해말아요
시인도시(詩)먹지않고밥먹고살아요
시인도시(詩)입지않고옷입고살아요
시인도돈벌기위해일도하고출근도하고돈없으면라면먹어요
오해하고싶더라도제발오해말아요
오해하고싶으면제발오해해줘요
시인도밥만먹고는못살아요
시인도마누라만으로는못살아요
구경만하고는만족못해요
그러니까시인도무슨짓을해야지요
무슨짓을하긴하는데그게좀그래요
정치는정치가들이더좋아하고
사기는사기꾼들이더좋아하고
밀수는밀수업자들이더잘하고
작당은꾼들이더잘하고
시인은시를더좋아하니까
시에미치지요밥만먹고못사니까
밥안먹고못사는이야기에미쳤지요
그래요미쳤지요허지만시인도
밥먹고살아요돈벌기위해일도하고
출근해요출근하지못하면정말곤란해요
순사가검문하면주민등록증보여야해요
순사가검문해도번호가없는시(詩)는그러니까
위법이지요위법이니까그게좀그래요
위법은또하나의법(法)이니유쾌해요그게그래요
거리를가다가혹시(詩)가있거든눈꼽이며
그곳이나비누로닦아주고안부나
그렇게만전해줘요그게그렇다구요
■ 핵심 정리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 율격 : 내재율
․ 표현 : 어법의 파괴, 언어의 기지, 난해한 기법
․ 제재 : 시인의 삶.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 주제 : 생활인으로서의 시인의 삶
․ 출전 : <가끔은 주목받은 생(生)이고 싶다>(1987)
■ 이해와 감상
이 시는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란 제목을 차용하여 시인의 삶을 시화한 작품이다.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구보씨는 소설가로서 현실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고독한 예술가로서의 삶을 사는 인물이다. 그래서 그는 생활인으로서는 무능하게 비쳐진다. 그러나 이 시에서 시인은 예술가로서 고독하거나 고상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시인도 생활인이란 것을 강조하고 있다.
보통 사람들은 시인이 돈이나, 명예, 권력, 건강 등과 같은 세속적인 일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고상하고 예술적 가치만 추구하는 사람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시에서 시인은 시인도 일반 사람과 똑같은 생활인이란 것을 애써 강조한다. 즉, 시인도 일반 생활인이며,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사람과 관계를 맺지 않고는 살 수 없다고 한다.
■ 학습 활동
1.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과 위의 시에서 현실을 바라보는 태도상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에는 비속한 현실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예술가로서의 고독을 자처하고 있다. 하지만 오규원의 시 <시인 구보 씨의 일일 1>에는 시인도 보통 사람과 똑같이 일상적인 삶을 산다는 것을 강조하며, 절박한 현실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것은 박태원의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예술가의 고독과 은밀한 욕망의 문제를 정면으로 부인하고, 사회적 존재로서의 예술가의 위치와 현실을 다루고 있다는 데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2. 다른 작가의 작품 내용이나 제목을 빌려씀으로써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무엇인지 말해 보자.
⇒ 다른 사람의 작품 내용이나 제목을 빌려 쓰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그 작가에 대한 존경심에서 그 스타일을 모방하고자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해당 작품을 풍자하고 비판하기 위한 목적이다. 이를 패러디라고 하는데, 원작과는 차이를 지닌 모방으로서 원작을 생산적으로 재기능화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패러디는 전대나 당대의 지배적인 신념 체계에 내포된 허위 의식이나 억압된 측면들을 폭로하려는 의도가 깊게 드러난다. 따라서 기존의 가치나 형식이 희화적으로 묘사되어 조롱되거나 우스꽝스럽게 재현되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기존의 관습들에 대한 반성적 사고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 수능형 문제 (2004년 3학년 3월 도학력모의고사)
[15~19]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구보는, 약간 자신이 있는 듯싶은 걸음걸이로 전차 선로를 두 번 횡단하여 화신상회 앞으로 간다. 그리고 저도 모를 사이에 그의 발은 백화점 안으로 들어서기조차 하였다. 젊은 내외가, 너댓 살 되어 보이는 아이를 데리고 그곳에 가 승강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그들은 식당으로 가서 그들의 오찬을 즐길 것이다. 흘낏 구보를 본 그들 내외의 눈에는 자기네들의 행복을 자랑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엿보였는지도 모른다. 구보는, 그들을 업신여겨 볼까 하다가, 문득 생각을 고쳐, 그들을 축복하여 주려 하였다. 사실, 4, 5년 이상을 같이 살아왔으면서도, 오히려 새로운 기쁨을 가져 이렇게 거리로 나온 젊은 부부는 구보에게 좀 다른 의미로서의 부러움을 느끼게 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분명히 가정을 가졌고, 그리고 그들은 그곳에서 당연히 그들의 행복을 찾을게다.
승강기가 내려와 서고, 문이 열려지고, 닫혀지고, 그리고 젊은 내외는 수남이나 복동이와 더불어 구보의 시야를 벗어났다.
㉮ 구보는 다시 밖으로 나오며, 자기는 어디 가 행복을 찾을까 생각한다. 발 가는 대로, 그는 어느 틈엔가 안전지대에 가 서서, 자기의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한 손의 단장과 또 한 손의 공책과-물론 구보는 거기에서 행복을 찾을 수는 없다.
안전지대 위에, 사람들은 서서 전차를 기다린다. 그들에게, 행복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히 갈 곳만은 가지고 있었다.
전차가 왔다. 사람들은 내리고 또 탔다. 구보는 잠깐 머엉하니 그곳에 서 있었다. 그러나 자기와 더불어 그곳에 있던 온갖 사람들이 모두 저 차에 오르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저 혼자 그곳에 남아 있는 것에 외로움과 애달픔을 맛본다.
< 중략 >
구보는 고독을 느끼고, 사람들 있는 곳으로, 약동하는 무리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 생각한다. 그는 눈앞에 경성역을 본다. 그곳에는 마땅히 인생이 있을 게다. 이 낡은 서울의 호흡과 또 감정이 있을 게다. 도회의 소설가는 모름지기 이 도회의 항구와 친하여야 한다. 그러나 물론 그러한 직업 의식은 어떻든 좋았다. 다만 구보는 고독을 삼등 대합실 군중 속에 피할 수 있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오히려 고독은 그곳에 있었다. 구보가 한 옆에 끼여 앉을 수도 없게시리 사람들은 그곳에 빽빽하게 모여 있어도, 그들의 누구에게서도 인간 본연의 온정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네들은 거의 옆의 사람에게 한마디 말을 건네는 일도 없이, 오직 자기네들 사무에 바빴고, 그리고 간혹 말을 건네도, 그것은 자기네가 타고 갈 열차의 시각이나 그러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네들의 동료가 아닌 사람에게 그네들은 변소에 다녀올 동안의 그네들 짐을 부탁하는 일조차 없었다. 남을 결코 믿지 않는 그네들의 눈은 보기에 딱하고 또 가엾었다.
구보는 한구석에 가 서서 그의 앞에 앉아 있는 노파를 본다. 그는 뉘 집에 드난을 살다가 이제 늙고 또 쇠잔한 몸을 이끌어 결코 넉넉하지 못한 어느 시골, 딸네 집이라도 찾아가는지 모른다. 이미 굳어 버린 그의 안면 근육은 어떠한 다행한 일에도 펴질 턱 없고, 그리고 그의 몽롱한 두 눈은 비록 그의 딸의 그지없는 효양(孝養)을 가지고도 감동시킬 수 없을지 모른다. 노파 옆에 앉은 중년의 시골 신사는 그의 시골서 조그만 백화점을 경영하고 있을 게다. 그의 점포에는 마땅히 주단포목도 있고, 일용 잡화도 있고, 또 흔히 쓰이는 약품도 갖추어 있을 게다. 그는 이제 그의 옆에 놓인 물품을 들고 자랑스러이 차에 오를 게다.
구보는 그 시골 신사가 노파와의 사이에 되도록 간격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을 발견하고, 그리고 그를 업신여겼다. 만약 그에게 얕은 지혜와 또 약간의 용기를 주면 그는 삼등 승차권을 주머니 속에 간수하고 일, 이등 대합실에 오만하게 자리잡고 앉을 게다.
문득 구보는 그의 얼굴에서 부종(浮腫)을 발견하고 그의 앞을 떠났다. 신장염. 그뿐 아니라, 구보는 자기 자신의 만성 위확장을 새삼스러이 생각해 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구보가 매점 옆에까지 갔었을 때, 그는 그곳에서도 역시 병자를 보지 않으면 안 되었다. 40여 세의 노동자. 전경부(前頸部)의 광범한 팽륭(澎隆). 돌출한 안구. 또 손의 경미한 진동. 분명한 ‘바세도우씨’병. 그것은 누구에게든 결코 깨끗한 느낌을 주지는 못한다. 그의 좌우에는 좌석이 비어 있어도 사람들은 그곳에 앉으려 들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그에게서 두 칸통 떨어진 곳에 있던 아이 업은 젊은 아낙네가 그의 바스켓 속에서 꺼내다 잘못하여 시멘트 바닥에 떨어뜨린 한 개의 복숭아가, 굴러 병자의 발 앞에까지 왔을 때, 여인은 그것을 쫓아와 집기를 단념하기조차 하였다.
구보는 이 조그만 사건에 문득, 흥미를 느끼고, 그리고 그의 ㉡‘대학노트’를 펴 들었다. 그러나 그가, 문 옆에 기대어 섰는 캡 쓰고 린네르 즈메에리 양복 입은 사나이의, 그 온갖 사람에게 의혹을 갖는 두 눈을 발견하였을 때, 구보는 또 다시 우울 속에 그곳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된다.
-박태원,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1. <보기>처럼 위 글의 작가와 대담을 한다고 할 때, 밑줄 친 부분에 들어갈 말로 가장 적절한 것은?
2. <보기>와 관련지어 위 글에 대한 감상을 말한 것 중, 적절하지 않은 것은? [1점]
3. ㉮에 나타난 ‘구보’의 심정과 유사한 정서를 담고 있는 것은?
4. <보기>는 ㉠에 대해 탐구 학습하면서 알게 된 내용이다. 이를 참고할 때, 밑줄 친 단어 중 띄어쓰기가 잘못된 것은? [1점]
5. <보기>가 ㉡에 적힌 구보의 기록이라고 할 때, 밑줄 친 부분에 들어갈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