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 건물주들은 최근 직접 점포를 차리는 경우가 늘고 있다.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부동산 경기의 지표라 할 수 있는 상가시장이 꽁꽁 얼어붙고 있으면서 점포들이 평균 20~30%의 매출 하락을 겪는 것은 물론, 폐업 점포가 속출하면서 임대료와 권리금이 큰 폭으로 떨어지면서 이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부동산정보업체인 부동산114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올 3분기 서울지역 상가의 임대료와 권리금은 전분기보다 평당 각각 0.7%, 2.86%씩 떨어졌다. 특히 서울 신촌의 이화여대 앞과 영등포 및 남대문 상권의 경우 월평균 임대료가 3개월 전 대비 최고 33.9% 하락했고, 권리금도 최고 20% 가량 빠졌다.
이로인해 자기 자본보다 대출에 의존해 상가를 소유하고 있는 건물주 입장에서는 자금 압박으로 발을 동동 구르는 상황. 상황이 이렇게 되자 권리금을 낮춰 세입자를 찾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이 직접 상가 창업에 나서고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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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방 월평점 이진(23)씨 |
# 창업 사례1.
대전에서 3층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이부남(55)씨는 계약 만기로 지하1층 호프레스토랑이 나간 후 세입자를 찾기 못해 밤잠을 설칠 정도였다. 실평수 35평의 점포로,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100만원에 내놓았으나 3개월 동안 세입자가 나타나지 않아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 90만원으로 낮춰서 내놨으나 반응이 없었다. 지하층이라 기피하는데다 기존 점포를 그대로 쓸 수 있게 호프집을 할 사람을 알아봤으나 불황이라 모두 술집을 꺼려 하는 탓이었다.
5개월 동안 점포를 비워둔 상태에서 고민 중인 이씨에게 딸 이진(23)씨가 창업을 하겠다고 나섰다. 이진씨는 지인이 서울에 취업 자리를 알선해줬으나 너무 멀어 망설이고 있었고 평소 30대에는 창업을 하리라 생각하고 있던 차였다. 다이어트와 피부 관리에 관심이 있었던 이진씨는 지난 7월 셀프다이어트방인 ‘아방’을 오픈했다.
셀프다이어트방은 하이테크 기기를 사용해 고객들이 스스로 체지방을 체크하고 다이어트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점주의 손이 많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 최대 장점이었다. 경험이 없어 불안했던 이씨는 자신에게 안성맞춤이다 싶었다. 종업원 수를 줄일 수 있어 인건비도 절감되고 따라서 마진율도 높았다.
이씨는 현재 월매출은 1200만원 선이고 이중 순수익은 600만원 조금 넘는다고 했다. 하루 다녀가는 회원 수는 30명 정도다. 아파트를 낀 상가 지역에 입점해 있어 주 고객층은 대부분 30~40대 주부들이다. 창업비용은 1억2000만원이 들어갔다.
#창업사례 2
대구시 수성구에 사는 정문걸(39)씨도 작년 3월 주상복합건물 1층 43평의 점포를 분양받은 뒤 8개월이나 세입자를 기다렸다. 대구의 강남이라 할 수 있는 대구은행 본점 사거리 근처에 위치한 이곳은 보증금과 월세가 높아 오히려 세입자들에게 외면을 받았다. 보증금 2억원에 월세 300만원으로 내놨다가 계속 보증금을 내리면서 나중에는 1억원에 300만원까지 낮췄지만 들어오려는 사람이 없었다.
건축업에 종사하던 정씨는 수주도 점점 줄어들고 있던 터라 차라리 창업을 하기로 결심했다. 상가 주인이 창업하면 월세를 낼 필요가 없는데다, 이곳은 상권이 좋아 아이템만 잘 고른다면 승산이 있어 보였다. 사무지구가 결합된 주거밀집지구인 이곳은 주변에 아파트 단지 3000가구를 끼고 있어 치킨점 창업이 무난하다고 생각했다. 경쟁점이 10군데에 달했지만 뉴올리언스풍 고급 치킨 ‘맘스터치’를 선택, 질로 승부하기로 했다.
정씨가 보기에 맘스터치는 매일 냉장닭을 배송하며 72시간이 지나면 닭을 폐기하기 때문에 다른 치킨점보다 신선도가 월등하다. 또 모이스처 캡처링 기법을 사용, 식어도 치킨이 수분을 그대로 유지해 바삭바삭한 맛이 오래 간다.
불황에도 고품질·고가격으로 승부해 고객들을 사로잡은 정씨는 현재 월 3000만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고 했다. 여기서 재료비, 인건비, 공과금, 잡비 등을 제한 순수익은 1000만원 정도다고 했다. 창업비용은 6000만원 가량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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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림동 '또순이순대' 부천 상동점 김경묵(48)씨 |
#창업사례 3
경기도 부천시 상동에서 9층 근린상가 건물의 33평 1층 점포를 갖고 있던 김경묵(48)씨는 세입자의 요구로 가게를 세 놓게 됐다. 반찬 가게를 하던 세입자가 작년 10월부터 매출이 떨어지면서 계약기간 2년을 채우지 못 하고 나가게 해달라고 부탁한 것.
상동 신시가지가 생긴 지 2년이 지났으나 기대심리에 비해 상권이 빨리 형성되지 않자 ‘상동 가면 망한다’는 말이 떠돌 정도로 세를 주기 힘들었다. 김씨는 점포를 놀리느니 과감히 창업을 해서 수익을 내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이전에 아내와 함께 분식점을 한 경험을 살려 아이템은 요식업 쪽으로 알아봤다. 최종 결정은 철판순대볶음. 삼겹살과 순대국밥도 고려해봤지만 삽겹살은 너무 경쟁이 치열했고 순대국밥은 젊은 층을 끌어들이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지난 7월 세입자를 내보내면서 8월에 바로 ‘신림동또순이순대’를 오픈한 김씨는 월평균 4000만원, 순수익 1500만원 정도의 매출액을 올리고 있다고 했다. 주변에 경쟁 업소가 없는데다 순대나 곱창 특유의 냄새가 안 나도록 신경을 쓴 것이 성공 비결이다. 재고 관리를 철저히 해 식자재가 하루 이상 가지 않도록 하고, 끓이는 데 재료를 아끼지 않아 풍부한 맛을 낸다. 또 낮에도 항상 불을 켜 놔 밝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30평 매장 창업비용은 7000만원이 들었다.
#창업사례 4
서울 목동 로데오거리에서 4층 건물을 갖고 있는 김계옥(52)씨 역시 세입자를 기다리다가 직접 창업에 나선 사례다. 1,2층 옷가게를 하던 세입자가 올 들어 매출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1층으로 점포를 축소했다. 2층을 내놓았으나 목동이 보증금이 비싼 편이라 쉽게 세입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김씨는 로데오거리가 옷가게는 많은데 비해 먹을거리가 별로 없다는 것에 주목, 과감히 음식점 창업에 도전했다. 2층이었지만 코너에 있어 잘 보인다고 판단한 김씨는 계약 기간이 끝나가던 3층 호프집까지 인수, 2개층에 걸쳐 음식점을 차렸다.
김씨가 선택한 것은 베트남쌀국수 ‘호아빈’. 베트남 모자와 목각인형 등의 소품으로 이국적 느낌을 주는 깔끔한 인테리어와 웰빙푸드라는 점이 트렌드에 민감한 20~30대에게 어필할 것 같았고, 가격도 저렴했다. 주변 음식점을 조사한 결과 김밥전문점, 순대점, 고깃집 등이 주를 이뤄 확실한 차별성을 이룰 수 있다고 판단했다. 김씨의 예상대로 현재 주 고객층의 70%가 20~30대다.
“칼로리가 낮고 소화도 잘 되니까 여성 고객들이 친구끼리, 연인끼리 많이 와요. 월남쌈은 메뉴 중 제일 비싸지만 신선한 유기농 야채를 썼다는 점 때문에 쌀국수 다음으로 인기가 높아요.”
육수나 생야채 등 다른 음식에 비해 손이 많이 가서 힘들지만 김씨는 고객이 몰리는 걸 보면 힘이 솟는다. 김씨는 현재 월매출 4000만원을 올리고 있으며 이중 순수익은 1000만원 정도라고 했다. 50평 매장 창업비용은 1억5000만원이 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상가주인이 자기 점포에서 창업, 성공한 케이스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지만 누구나 채택할 수 있는 방안이 아닌 것도 사실이다.
투자할 자금이 없거나 현재 묶인 직장이 있어 대책없이 상가를 놀리며 임차인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거나 가격파괴를 해 헐값에 임차인을 찾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10평 안팎의 상가 주인들은 상당수가 노후 대책을 위해 점포를 분양받은 직장인들이다. 직장인 조모(40)씨는 노후대책을 위해 빚까지 얻어 신도시 아파트에 2억5000만원대의 상가를 분양받았으나 입주한지 2년이 넘도록 입주자가 없어 비워놓고 있다. 1년 전부터 매물로 내놨지만 입주조차 하지 않는 상가를 매입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조씨는 맞벌이라 자신이 창업할 엄두도 못 내고 경기가 나아져 매입할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임차인을 기다리고 있다. 실제로 조씨가 입주한 아파트에는 5개의 빈 점포가 있는데 대부분 아동복가게, 침구점 등 창업을 했다가 매출이 시원찮아 점포를 정리하고 문을 닫으면서 비어버린 사례다.
역시 직장생활을 하는 박모(42)씨는 분당의 한 건물 지하에 상가를 분양받았다. 분양가는 1억5000만원대. 박씨는 분양받은 후 1년 6개월동안 점포를 놀리고 있다. 투자비가 적어 구석자리로 분양을 받았는데 그게 화근이었다. 경기가 나빠지자 구석자리 점포는 임대가 나가지 않았던 것. 하는 수 없이 아내에게 부업을 시켰지만 2000만원을 들여 소규모로 시작한 분식집은 사업 경험 부족과 열악한 입지 조건 때문에 6개월만에 실패, 추가로 2000만원이 넘는 손실을 봤다. 결국 박씨는 분양자금 중 대출을 받은 7000만원에 대한 이자만 매달 내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빈 점포가 늘어나면서 공동 창업도 늘어나고 있다. 상가주인과 임차인이 공동으로 투자를 해서 이익을 나눠갖는 방식이다. 임차인은 투자비를 줄여서 좋고, 상가 주인은 일단 빈 점포를 보며 속앓이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게 장점이다.
체인본사들도 불황으로 소액 창업자가 늘어나면서 이렇게 공동투자가 가능한 빈 점포를 적극적으로 찾아나서 창업자들에게 연결해주고 있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일세 점포도 빈 점포를 활용하는 방법으로 인기다. 서울의 한 시장통 앞에서 주방용품 할인가게를 하는 성모(47)씨의 경우 보증금 3000만원, 월세 80만원인 빈 점포를 3개월간 계약을 맺고 들어갔다. 월세를 내지 않는 대신 일세로 하루 2만원 가량 계산해 월 60만원 정도를 주는 조건.
인테리어를 전혀 하지 않고 상품만 구비해 판매를 하는데 성씨는 임차인이 나타날 경우 언제든지 점포를 비워준다는 조건을 수용한 대신 월세를 저렴하게 할인받았다.
하지만 이렇게 단기 임대나 공동투자가 가능한 상가는 그나마 입지가 괜찮은 곳에 해당된다. 입지가 나쁜 상가는 아예 이런 수요조차 없어 경기가 나아질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고 있어야 할 형편이다.
한국창업전략연구소(www.changupok.com) 이경희 소장은 “점포주가 직접 창업을 할 경우 주의해야 할 점이 많다”고 말했다. 우선, 임차인이 나타나지 않는 상가는 나름대로 결점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전문가의 조언을 받지 않고 섣불리 창업을 했다가는 잘못된 업종 선정으로 곱배기로 손해를 볼 수 있다는 것.
창업에 따른 각오 없이 부업이라는 생각으로 대충 창업하는 경우도 결과는 비슷하다. 입지가 나쁜 점포라면 새로운 임차인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배달업이나 소호형 사업자에게 저렴하게라도 점포를 주는 게 낫다. 장기 불황이 예상되는 만큼 제값 받으려고 기다리다가 상당기간 재산상의 손실을 감수해야 할 경우도 있다. 실제로 인근 점포보다 저렴한 임차료 덕분에 입주자를 찾는 데 성공한 사례가 적지 않다.
적극적으로 상권을 분석한 다음 점포에 가장 잘 맞는 업종을 선정해서 관련 프랜차이즈 본사에 연락을 하거나 전문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