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시터] - 한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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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가 나를 죽였다.
아빠가 나를 먹고 있다.
여동생이 테이블 아래서
뼈를 주워 비단으로 싸서,
노간주 나무아래 묻었다......"
< 그림 동화 '노간주 나무이야기' 중에서... >
"좋아, J 아파트 504동 305호 랬지?"
나는 지역 광고지를 들고 있는 손에 힘을 주었다. 올해로 대학 3학년, 정
확히 말해서는 휴학생이기는 하지만 용돈 정도는 내 힘으로 마련해야 할 거 같아
서였다. 다음 학기에 복학인데 변변한 옷가지 하나 제대로 없기에 말이었다.
솔직히 지금까지 내 손으로 돈이란 걸 벌어본 적이 없었다. 그리 넉넉하지 않은
집안이지만 그래도 학생은 공부만 잘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을 가지신 부모님을 둔
덕택이었다. 하지만, 막내 남동생마저 대학생이 되어버려 그런 호강에 겨운
소리는 이제 집어넣어야 했다. 맞벌이까지 하시는 대도 사립 대학 등록금 대기는
빠듯했으니 했다.
[ ... 20대 초반, 아이 돌봐 주실 분. 학생 환영.... ]
그때 난 커피 전문점에서 3시간 째 차 한잔으로 종업원의 눈치 속에서도 꿋꿋이
버티고 있었다. 아까부터 괜히 내 주위 테이블을 행주질하며 못마땅한 시선으로
나를 힐끔거리는 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오전부터 일거리를 찾아 지역 광고지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뒤적거리다 이 광고를 본 순간 손에 든 볼펜으로 마구 동
그라미를 그렸다. 한 시간에 5000원이나 준다니.... 그리고 아이 돌보는 것은 식
당이나 백화점에서 종일 서서 일하는 것보다 수월할 것이다.
다른 사람이 이 좋은 자리를 낚아챘을 까 조바심을 내며 나는 거기 적힌 연락처
로 전화를 걸어보았다.
[ 띠리리링.... 찰칵.... ]
"여보세요?"
수화기 저편에서 나지막하지만 듣기 좋은 중저음의 남자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조금 긴장해 목이 막힌 듯 하면서도 얼른 대답했다.
"저.... 광고지보고 전화 드렸습니다만...."
"네, 아이를 돌봐주시겠어요?"
남자의 목소리는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좋은 예감이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
게도 그와 엇비슷하게 불쾌한 적대감(敵對感) 같은 것이 등줄기를 훑고 지나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그 감정은 지금 생각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 당시에는
그저 일자리가 생긴다는 것에 감지덕지 할 따름이었다. 남자에게서 그 곳 위치를
받아 적은 나는 얼른 그 지겨운 커피 전문점을 뛰쳐나왔다.
"휘유, 이거 장난 아닌데....?"
한 숨이 절로 나올 만큼 멋들어지게 잘 지어진 중대형 맨션 아파트였다. 연예인
누구누구들도 산다고 해서 방송에도 여러 번 나왔던 그 곳이었다. 겉으로 보기
에도 수려한 나무들로 둘러싸여 마치 정원 한 가운데 놓여진 저택 같았다.
나는 조금은 얼이 빠진 듯 어리 버리한 표정을 짓고 헤매다가 수상한 사람으로
오인한 수위 아저씨한테 걸려 관리실로 잡혀 들어가고 말았다.
"에이 참, 정말 아르바이트 하러왔다고요. 504동 305호에 확인해 보세요."
수위 아저씨는 열심히 설명하는 내 말은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인상을 구긴
채 인터폰을 들었다.
"네, 여기 관리실인데 어떤 여자가 댁을 찾아 왔네요?"
인터폰 너머로 아까 들었던 것과 같은 중저음의 남자 음성이 웅웅거리며 울렸
다. 내용은 똑똑히 들리지 않았지만, 아마 들여보내라고 했는 지 수위 아저씨는
그제야 인상을 펴며 나를 그 동 앞까지 데려다 주었다.
금도금 장식이 화려하게 입혀진 문은 보통의 아파트 철문과는 달리 우아하고 고
풍스럽기까지 했다. 3층이라서 걸어 올라온 나는 그 문 앞에서 또 주눅이 들어
잠시 망설이다가 초인종을 눌렀다.
[ 딩동, 딩동-- ]
[ 삑--- ]
기계 음이 요란하게 울려 퍼진 다음 누구냐고 한 마디 물어보지도 않고, 문이
열렸다. 나는 열린 문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넓은 거실이 한 눈에 들어 왔
는 데 집안은 조명이 아주 약해서 어렴풋이 윤곽만 보일 정도였다. 전체적으로
화이트 톤으로 이루어진 그 거실은 한 벽이 커다란 텔레비전으로 되어 있고, 검
은 소파가 길게 자리잡고 있었다. 그 소파에 한 소년이 연두 빛 형광(螢光) 요요
를 가지고 놀고 있는 게 눈에 띄었다.
[ 드르륵, 드르륵-- ]
그 요요는 마치 소년의 수족인양 자유 자재로 움직이는 것이 매우 신기했다.
'저 소년이 내가 돌볼 아이인가 보구나.'
약한 조명 때문에 정확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약간 마르고 팔, 다리가 길어 보이
는 그 소년은 매우 영리해 보였다. 그제야 조금 마음이 놓인 나는 얼른 집안으로
발을 막 들어놓으려 할 때였다.
"누...구....?"
"아악--!"
바로 내 고개 밑에서 가냘픈 목소리가 들려오자, 나는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섰
다. 그 소리를 낸 것은 작은 여자 아이였다. 한 다섯 살 정도 되었을 까? 엷은
연보라색 레이스가 달린 원피스를 입고 머리에도 연보라색 리본을 매고 있었다.
곱슬곱슬하게 웨이브 진 머리는 허리까지 내려와서 마치 커다란 인형을 보고 있
는 거 같았다.
"......"
그 아이는 내가 소리를 지르자 되려 놀랐는 지 겁먹은 듯 그렇지 않아도 커다란
눈망울을 더욱 크게 뜨고 나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 때 내 비명 소리에 집 안
쪽에 있는 방문을 열고 한 남자가 다가왔다.
"아, 아까 전화하신 분이죠? 베이비 시터 일을 하시겠다는...."
남자는 그 중저음의 목소리로 내가 말을 걸며 손을 내밀었다. 그 때까지도 조금
놀라 있던 나는 그제야 정신을 추스르며 그가 내민 손을 잡았다.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안으로 들어오시죠. 어라, 우리 은지가 왜 여기 있어?"
남자는 그때까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던 그 여자아이를 번쩍 들어 품에 안으며
말했다. 그런데.... 내가 잘못 본 것일지는 몰라도, 그가 은지를 안았을 때 그
아이의 표정은 묘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것은 마치, 굉장히 두려워 하는 것
앞에 서 피하지도 숨지도 못한 채 꼼짝없이 잡혀야 하는 힘없는 짐승의 표정처럼
보였다. 하지만 하도 그 아이를 어르는 남자의 태도가 부드럽고 다정해서 나는
곧 그 생각을 버렸다.
"학생이시라고요?"
그는 금새 내 앞에 주스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아까 보았던 그 검은 가죽 소
파로 안내되어 그와 이른바 '면접(面接)' 이라는 걸 보게 된 것이다. 나는 그제
서야 그를 꼼꼼히 관찰할 수 있었다. 그는 키가 크고 나이는 20대 후반? 아니,
적어도 30대 초반을 넘지 않은 듯 했다. 약간 말라 보이는 체격에 검은머리를 뒤
로 넘겼으며 가무잡잡한 얼굴은 조각처럼 잘 생긴 남자였다. 특히 날이 잘 선 콧
날과 쌍꺼풀 없이 깊은 눈은 왠지 모르게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할 정도였다. 말
투도 어딘가 모르게 부드럽고 정다웠다.
"네, 하지만 지금은 휴학생이니 아무 때나 필요하실 때 아이를 돌봐 드릴 수 있
습니다."
나는 한 마디 한 마디를 강조하듯 말했다. 이제는 솔직히 돈보다는 그를 가까이
서 보고 싶다는 우스운 감정까지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
거리며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이 아이를 돌봐 주시면 됩니다. 사실 우리 은지는 자폐증 증세가 있
어 여러 번 베이비 시터를 갈아왔습니다. 그러니 신경을 써서 돌봐 주셨으면 좋
겠네요. 보수는 아까 보신 광고보다 더 드릴 수도 있고요."
아이는 바닥에 주저앉아 어딘 가를 하염없이 주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저 예쁜
애가 자폐증이라고? 나는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한 가지 의
문점이 들었다.
"저 아이만 돌봐주면 되는 거예요? 그럼 아까 여기 있던 그 남자 아이는요?"
"네?"
".......!!"
그 말에 남자는 비명처럼 되물었고, 다른 곳을 바라보던 아이는 단번에 나를 뚫
어져라 쳐다보았다.
"나, 남자아이라뇨?"
"저기... 아까 여기 왔을 때 소파에서 웬 남자아이가 노는 것이 보였는데....
아, 어두워서 이 아이와 헷갈린 거 일지도 모르겠네요."
그 둘의 반응이 기묘해서 나는 스스로 그렇게 얼버무렸다. 그러자 순간 창백했
던 남자의 표정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네, 그럼 내일부터 좀 부탁드립니다. 오전 10시까지 오시면 됩니다."
예전부터 할머니는 내가 기(氣)가 약하기 때문에 조심하지 않으면 몹쓸 것을 본
다고 말씀하시곤 하셨다. 그래서 나는 내가 본 소년은 잘못 본 것이려니 그렇게
생각하고 넘어갔다.
그 날부터 나는 열쇠까지 받아 그 집을 매일같이 드나들게 되었다. 보름이 지나
자, 그는 아이를 완전히 내가 맡긴 듯 했다. 솔직히 그 면접 이후 그와 길게 말
해 본 적 없었고, 아이를 내게 넘기자 마자 그는 어딘 가로 나가버리곤 했다. 그
아이를 돌보는 일은 생각보다 쉬어서 물끄러미 어딘 가를 바라보는 것을 방해하
지 않기만 하면 됐다. 그 것을 방해하면 아이는 입에 거품을 물 정도로 경기(驚
氣)를 일으켰다. 그리고 때가 되면 그 남자가 정해준 시리얼을 우유에 말아 주는
것, 그 것이 나의 할 일 전부였던 것이다. 점점 일이 무료해진 나는 아이에게 과
자를 사 주겠다고 말하고는 잠시 바람을 쐬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휴우, 세상에 쉬운 일이 없구나...."
"이봐, 학생."
그 때 누군가 내 어깨를 툭툭 쳤다. 나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그 때 나를
잡았던 그 수위 아저씨였다. 이제는 낯이 익어 내가 인사할 때마다 껄껄 웃을 정
도가 되었다.
"아, 아저씨. 놀랐잖아요."
"어때? 일은 할 만해?"
내가 투정 어린 말투로 말하자 아저씨는 놀리듯 되물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거
리자 아저씨는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그 집 아기가 되게 이상하다고 들었는 데. 아이 돌봐주러 온 사람들을
막 물어뜯고 괴롭혀서 여럿 갈렸어. 아마도 그 의붓아버지가 못되게 굴어서 아
이도 이상해 진 게 아닌가 했...."
아저씨는 못 할 말을 했다는 듯이 얼른 말을 얼버무리려 했다. 하지만 이미 나
는 들을 만큼 들은참 이었다.
"아저씨, 그래서요?"
"아, 아냐."
"에이, 그러지 말고요. 의붓아버지 랬죠? 어쩐지 아이에 비해서 되게 젊더라 했
어요."
내가 은근히 말에 동조하는 분위기를 만들자 아저씨는 금새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 학생이 제대로 봤구먼. 원래 그 놈 얼굴만 반질반질하게 생겼지, 돈 한
푼 없는 알거지였는데, 그 집 사모님이 눈에 뭐가 씌었는 지 사업하던 남편이
물려준 유산으로 남매 데리고 조용히 살다가 갑자기 어디서 굴러먹던 개뼈다귀
인지도 모르는 그 연하의 놈팽이랑 재혼하지 않았겠어?"
"남매요? 여자아이밖에 없잖아요."
"그게.... 6개월 전인가? 남자아이가 식중독으로 죽고 나자, 사모님도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떴지. 그 덕에 저 놈이 저 집이랑 재산을 모두 차지했고...."
"우움....."
아저씨의 말을 듣고 그 집으로 돌아온 나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 남자가 그
런 사기꾼이었단 말인가? 하지만 그의 얼굴은 너무나도 고상하고 그런 짓과는 거
리가 먼 사람 같아 보였다.
내가 검은 가죽 소파에 벌렁 드러누워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 데 누군가 위에서
내 얼굴을 내려다보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은지인 줄 알았던 나는 눈이 마주치자
이상하게 눈동자가 붉게 물들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일어나려 해도
내 몸은 마치 얼어붙은 생선 마냥 소파에 달라붙어서 조금도 움직여지지 않았다.
"으으으....."
[ 드르륵, 드르륵.... ]
그 붉은 눈동자는 재미있다는 듯이 킥킥대며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그 눈동자의 주인공이 은지가 아니라 맨 처음 이 곳에 봤던 그 소년임을 깨
달았다. 여전히 소년의 손에는 그 형광 연두 빛의 요요가 들려 있었다.
"너, 너는....."
'헤헤헤....'
그 소년의 웃음소리가 명랑하게 울려 퍼졌다. 그 순간 아까 들었던 아저씨의 말
이 떠올랐다.
'그게.... 6개월 전인가? 남자아이가 식중독으로 죽고 나자, 사모님도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떴지......'
"그, 그럼.... 이 애는 귀신....? 끄으으...."
나는 그 순간 정신을 잃고 말았다.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내 옆에는 은지가 앉아 있었다. 그런데 늘 다른 곳만
주시하던 그 아이가 나를 유심히 쳐다보는 것이었다.
"아, 은지야. 미안해. 배고프지?"
아까 와는 달리 몸을 일으킬 수 있게 된 나는 남자아이를 본 건 몸이 허해 진
탓이 아닐까, 아르바이트 비 타면 보약이라도 한 첩 지어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은지에게 말을 걸었다. 물론 아무 대답도 없을 걸 알면서 말이다.
"아뇨, 됐어요."
"뭐? 지금 은지 뭐라고 했니?"
은지의 입에서 또렷한 말이 튀어나오자 나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되물었다. 아이
는 내 말에 고개를 가로젓더니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 시리얼을 줄 거면 됐다고요. 근데 언니, 우리 오빠가 보여요?"
"너희 오빠?"
"그래요, 우리 오빠는 아직 이 집을 떠나지 않고 있어요. 나를 지켜준다고 했거
든요. 그런데.... 언니 눈에는 우리 오빠가 보이나 보네요?"
내가 몸이 허 해진 것이 아닌 모양이구나, 정말 세상에 귀신이 있나 하는 온갖
생각이 내 머리 속을 휘저었다. 그러자 은지는 발딱 일어나더니 내 앞에 서서 말
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얼른 이 집을 떠나요. 그 남자한테 휘말리지 말고요. 그
사람한테 걸리면 언니도 죽어요."
한 마디 한 마디 오래 전부터 준비한 말처럼 천천히 하지만 똑똑히 그 애는 내
게 그런 말을 했다. 하지만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은지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그만둘 수 없었다. 좋은 보수를 받을
수 있는 곳이니.... 게다가 그 집안 일에 대한 알 수 없는 호기심까지 발동을 했
던 것이다. 여전히 그 남자는 아침마다 아이를 내게 맡기고는 당부의 말을 잊지
않고 했다.
"우유랑 이 시리얼 외에는 아무 것도 먹이면 안 돼요. 어차피 냉장고에는 내가
먹는 생수 외에는 없지만 말이에요."
그리고는 내게 그 매력적인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어디론가 나가버리는 것이었
다. 은지는 그 날 이후 내게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점점 그 시
리얼을 먹지 않으려 했다. 나는 아이가 여위는 게 안타까워서 어떻게든 한 입이
라도 더 먹이려고 애를 썼으나 소용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날도 다른 날과 다름없이 은지와 옥신각신 하고 있을 때였
다.
"은지야, 이거 맛있어. 자, 한 입만 먹어 봐."
아이는 말 없이 도리질만 칠 뿐이었다.
"이게 얼마나 맛있다고...."
나는 그 아이를 먹이기 위해 내가 한 입 시범으로 입에 넣었을 때였다. 입 안
가득 기묘하고 불쾌한 느낌이 감돌았다.
그리고 그 때 내 눈에 갑자기 또 그 검은 가죽 소파 위의 남자아이가 보였다.
남자아이는 입에서 이상한 거품을 계속 내 뱉으며 소파 위에 구겨진 옷처럼 널브
러져 있었는 데 그 손에는 늘 들고 다니는 그 형광 연두 빛의 요요가 들려 있었
다. 또 그 앞에는 그 남자가 우두커니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가 남자아이의 눈동자가 허옇게 뒤집혀서 흰자위만 보일 때가 되자, 남자는 싱글
벙글 웃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괜찮아, 아무 걱정하지마. 니 옆에는 내가 있잖니?'
그리고 그 장면은 연기처럼 희미해졌다가 다시 또렷해졌다. 그 것은 침대에 누
워 있는 중년의 여인 옆에 그 남자가 앉아 있는 것이었다. 그 여인은 식은 땀을
흘리며 괴로워하는 데 그 남자는 여전히 키득거리며 그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또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여보. 아무 걱정 안 해도 돼. 당신 옆에는 내가 있잖아?'
"퉤--!"
난 입 안에 든 시리얼을 토해내고 말았다. 얼른 욕실에 가서 걸레를 가져다가
그 것을 치우고 있을 때 어느 샌가 그 남자가 돌아와 있었다. 그는 바닥에 앉아
있는 은지를 안아 올리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표정은 어딘 가 모르게 잔뜩
굳어 있었다.
"그 동안 고마웠습니다. 이제 내일부터는 나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뭘 잘못 한 건지...."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바닥에 흐트러진 시리얼을 한번 힐끔 바라보더니 품 안에
서 하얀 봉투를 꺼내 내밀었다.
"일 하신 날짜보다 넉넉하게 계산했습니다."
단호하고 냉정한 목소리였다.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 하고 머뭇거리다
가 소파에서 가방을 챙겨 들었다. 그 때 은지가 갑자기 내 쪽으로 팔을 내밀며
바동거리기 시작했다.
"언니.... 언니...."
그러자 그 남자는 아이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다정하게 말했다.
"괜찮아, 아무 걱정하지마. 니 옆에는 내가 있잖니?"
그러자 아이의 얼굴은 하얗다 못 해 파랗게 질려 버렸다. 그는 나에게 얼른 나
가라는 손짓을 했는 데 그 때 은지는 온 몸의 모든 힘을 짜내어 커다랗게 외쳤
다.
"오빠, 오빠-- 이 아저씨가 날 죽일 거야, 날 죽일 거라고....! 언니 살려줘요
--!"
"얘가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당신은 얼른 돌아가요!"
남자의 서슬퍼런 목소리에 나는 그 집을 그냥 빠져나오고 말았다.
그 날 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내내 안절부절 못 하고 있었다. 그 아이의 그 마
지막 말이 자꾸만 내 귓가를 때렸기 때문이었다.
'오빠, 오빠-- 이 아저씨가 날 죽일 거야, 날 죽일 거라고....! 언니 살려줘요
--!'
아무 것도 못하고 어찌 할 바를 몰라하던 나는 무심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그 집 열쇠를 돌려주지 않고 그대로 가져온 것을 깨달았다. 좋은 핑계 거리였다.
열쇠를 돌려주러 왔다고 하면서 은지의 상태도 확인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더 이상 그대로 있을 수가 없어 나는 서둘러 그 집으로 향했다.
[ 딩동, 딩동-- ]
벌써 여덟 번이나 눌렀는 데도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나는 안되겠다 싶어 주
머니 속의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늘 그랬듯이 그 집안은 희미한 조명밖에 켜
져 있지 않았다. 그런데.... 거실 바닥에 엎어져 있는 작은 사람 모양의 윤곽이
내 눈에 들어왔다.
"은지야!"
아이는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때 방 안 쪽에서 끔찍한 비명이 새
어 나왔다.
"으아아아아--!!"
나는 얼른 인터폰을 들어 경비실에 연락을 하고는 그 방문을 열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계속 비명 소리만 들려 올 뿐 문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마음이
급해진 내가 부엌에서 칼을 가져다가 문 주위 나무를 도려내어 간신히 손잡이가
보였을 때였다.
'헤헤헤....'
어디선가 들어 본 적 있는 명랑한 웃음소리가 방안에서 새어나왔다. 그리고 그
와 동시에 수위 아저씨가 집 안에 들어섰고 방문은 열렸다.
[ 드르륵, 드르륵-- ]
어두컴컴한 방안에 무언가 길쭉한 것이 아래위로 움직이는 게 보였다. 나는 덜
덜 떨리는 다리를 움직여 그 '것'을 향해 다가갔다.
'이 요요.... 재미있어....'
그 희뿌연 윤곽.... 붉은 눈을 가진 소년이 가지고 놀던 요요 줄이 그 남자의
목에 칭칭 동여매져 창가에 매달려 있었다. 게다가 그의 얼굴은.... 어느 샌가
형광 연두 빛으로 빛나고 있었는 데 눈은 허옇게 뒤집혀 있고, 혀는 턱까지 늘어
뜨려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소년의 손짓에 따라 남자의 몸은 마치 요요처럼 아
래위로 끊임없이 움직였다.
[ 드르륵 드르륵-- ]
* * * * *
....그 사건은 현장에 외부인의 침입이 없었기 때문에 경찰은 그 죽음을 자살
(自殺)로 판정했다. 그리고 그 자살의 이유는 '죄책감' 이라는 게 경찰의 주장이
었다. 재산을 노리고 의붓아들에게 비소(砒素)를 먹였고- 그 아들은 그 검은 가
죽 소파에서 죽었다- 나이 많은 아내에게도 치사량의 약을 주사했으며 남은 딸
마저 시리얼에 약을 타서 먹여 죽였으나 그도 사람이라 양심이 있어 그만 자살한
것이다 라고 결론지은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믿을 수 없다. 정말 믿을 수 없다. 나는 그 죽은 소년
이 엄마와 동생의 복수를 위해 그를 살해(殺害)한 것이라 믿는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동생을 지켜주지 않은 나를 원망하여 오늘밤도 내 방문 앞
에서 그 붉은 눈을 빛내며 소년이 굴리는 저 요요 소리는 도대체 뭐라 설명할 것인
가......!
[ ...드르륵.... 드르륵.... ]
베이비 시터(baby sitter) < THE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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