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경기도의 산- 불암산(508m)
한전 연수원 들머리~삼육대 갈림길~학도암 갈림길~헬기장~정상~덕릉고개…약7km 3시간 정도
한양 동쪽을 감싸고 역사를 지켜온 굳센 성이여!
글․사진 이수인 충암중학교 교사
풍수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사람이 보더라도 서울은 참으로 잘 선정된 수도이다. 방어를 위한 지형적 고려가 곳곳에서 느껴지기 때문이다. 방어를 위한 첫 번째 고려는 당연히 대궐을 둘러싼 도성 성곽일 터이다. 북악산-낙산-남산-인왕산 등을 둥글게 연결하는 석벽이 600여 년 전 한양 천도 당시에 이미 만들어졌었다. 그러나 이 도성은 지금 도심 안으로 흡수된 형세라, 그 모습이 분명하지 않다. 대신 동쪽 외곽 아차산에서 시작되어 불암산-수락산-사패산-도봉산-북한산 등으로 이어지는 강력한 두 번째 방호벽은 아직도 그 위세가 뚜렷하고도 강력하다.
불암산은 이렇게 수도 서울을 동쪽에서 감싸고 있는 천연 성벽 중 하나인데, 안으로 중랑천 주변에 형성된 너른 마들평야를 호위하는 한편, 밖으로 예봉산에서 천마산으로 이어지는 세 번째 방호선의 안쪽으로 구리 등 남양주 일대의 평지를 조망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 그 마들평야는 이미 엄청나게 넓은 아파트촌으로 변해버렸고, 불암산 동쪽의 너른 평야도 새로운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기 위해서 가뭇없이 바둑판같은 밍밍한 모습으로 다듬어지고 있다.) 따라서 불암산은 서울과 경기도를 가르는 경계를 이루어, 정상부를 기준으로 서쪽은 서울시 노원구가 되고, 동쪽은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이 된다.
불암산은 수락산의 산세에 의해 약간 압도되는 면이 있다. 수락산과 불암산은 그 크기 내지 면적에서 대략 3배 이상의 차이가 나고, 높이에서도 130m 정도 차이가 난다. 두 산은 덕릉고개에 의해서 분리되는데, 그러나 그 분리란 단지 차가 오가는 교통도로에 의해서 경계가 나누어지는 것뿐이다. 반면에 사람들은 두 산을 이어서 장거리 종주 산행을 즐기고 있으며, 또 고개 정상부에 인위적인 동물 이동로를 세우기도 했다. 특히 불암산-수락산-사패산-도봉산-북한산으로 이어지는 5산 종주는, 이제 수도권 산꾼들에게 고수의 자격 인증 같은 관행으로 굳어졌다.
불암산이란 이름은 아주 오래 전부터 쓰였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이라는 조선시대 문헌에 수락산 등과 함께 분명하게 이름이 보인다. 당시 이 산이 속해있던 지방은 양주목(楊州牧)이었으며, 그때에도 불암사(佛岩寺)는 유명했다.
“불암”이라는 산 이름은 애초 이 산 정상부의 모양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정상부의 모습이 마치 “송낙”이라는 모자를 쓴 스님의 모습과 닮아 보인다고 해서 그렇게 불렸다는 것이다. 배꽃이 활짝 피는 봄날 양주시 별내면 불암동 쪽에서 이 산을 올려다보면 1년 중 가장 멋진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과연 오늘날에도 이 산 정상부에서 불승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여하튼 이 산 이름에 부처 불 자(佛)가 들어간 때문인지, 이 산 안에는 10여 곳 이상의 불교 관련 건물이 들어서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편 이 산 이름으로 천보산(天寶山)이나 필암산(筆岩山)이 쓰였다는 기록이 전해오기도 한다. 예컨대 불암사의 일주문에는 “불암산 불암사”가 아니라 “천보산 불암사”라는 현판이 붙어있고, 또 불암사에서 좀 더 산 속으로 들어가 있는 절 하나와, 산 서쪽 당고개역 쪽에서 산 정상 쪽으로 오르는 등산로 옆에 있는 작은 절은 각각 “천보사”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불암산은 정상부에 오를수록 거대한 암반이 많고, 아래로 내려오면서 조금씩 흙이 많아진다. 그래서 산이 수분을 오래 간직할 조건이 못된다. 따라서 산 속에 있는 꽤 근사한 폭포들조차도, 폭포다운 모습은 고작 이틀에서 사흘 정도를 보여주는데 그치고 만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런 암산인데도 유독 골짜기 골짜기마다 어쩌면 그렇게 약수터가 많이 있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일일이 살펴보니 과연 수량이 넉넉하거나 음용에 적합한 곳은 손꼽을 정도 밖에는 안 된다. 어쩌면 이렇게 물이 귀한 산이기에, 역설적으로 약수터가 많은 것은 아닐까 추측되기도 한다.
이 불암산에는 이런 전설도 있다. 원래 이 불암산은 금강산에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조선이 개국할 무렵 남산이 될 만한 멋진 산을 구한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고, 그래서 발길을 재촉하여 서울로 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산이 서울에 거의 다 왔을 때, 벌써 서울 남산이 결정되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되었고, 그래서 이 산은 그만 맥이 풀려 지금 이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는 것이다.
산길
불암산 등산로는 노원구에서 정한 체계에 따라 1부터 10까지의 숫자로 표시된다. 그리고 거기에 남양주 쪽에서 오르는 3개의 등산로가 추가 된다. 그러나 실상 이 13개의 코스는 간선처럼 존재하고, 그보다 훨씬 많은 지선들이 거미줄처럼 그 사이를 연결하고 있다. 또 올라온 등산로로 되돌아 내려갈지 아니면 다른 수많은 갈래로 연결해 나갈지에 따라서, 훨씬 다양하고 복잡한 코스 설정이 가능하다.
제1등산로는 덕릉고개를 들머리로 삼는 길이다. 정상까지 약 1시간 10분 정도 걸리는 느슨한 오르막길이다. 제2등산로는 상계3,4동 주민센터에서 돌산약수터를 경유해 정상 능선 길로 오른 다음, 석장봉을 지나 정상까지 오르는 코스다. 1등산로와 정상에 이르는 거리는 비슷하지만, 초반 정상능선까지의 오르막이 심해서 시간이 더 걸린다. 제3등산로는 불암현대아파트나 덕암초등학교에서 출발해서 경수사와 천보사를 거치고 폭포약수터를 지나서 정상으로 오르는 코스다. 역시 가파른 구간이 많은지라 시간이 대략 1시간 정도 걸린다.
제4등산로와 제5등산로는 재현고등학교 옆을 지나서 불암산관리사무소를 들머리로 삼는다. 그러나 제4등산로가 정암능선길로 청암약수터를 지나 돌다방쉼터를 경유해 석장봉과 정상 사이의 쥐바위로 이어가는 반면에, 제5등산로는 불암계곡을 따라서 정암사를 지나고 불암체육회 운동시설을 경유한 다음 깔딱고개를 거쳐 정상으로 오른다. 중간에 서로 코스를 엇바꾸어 오를 수도 있다. 제6등산로는 노원자동차학원을 옆으로 끼고 쌍봉탑과 천병약수터를 지나 정상능선인 헬기장이나 양지초소 갈림길로 이어지는 코스다. 헬기장은 옛날 성터인 돌무더기가 300m 정도 남아 있어서 둘레를 에워싸고 있는 420m 높이의 봉우리이다.
조금 남쪽에 일명 “중계동 냉장고”라 불리는 바위 조망처가 있다. “영신바위”를 포함하는 남쪽 슬랩과,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또 하나의 슬랩이 형성되어 있는 곳이다. 골짜기 사이로 아득히 남산까지 이어지는 벌판에 이따금 녹지가 보이고, 그 사이 중간 중간으로 끝없는 아파트 숲이 펼쳐 이어진다.
제7등산로는 영신여고를 지나 노원교회를 거쳐 학도암(鶴到庵)을 경유하는 코스다. 학도암에서 얼마쯤 올라가면 몇 년 전에 한성대 OB 팀에서 개척한 학도암 암장이 나온다. 5.10a에서 5.10b 수준의 짭잘한 루트가 10여개 이상 개척되어 있다.
한편 학도암 아래쪽 중계동의 넓적바위에서 상계동 덕암초등학교를 횡으로 연결하는 “횡단형 건강산책로”가 눈길을 확 끌어당긴다. 이 산책로는 길이가 2Km에 불과하지만 고저 차가 크지 않고 주변 경치와 잘 어울린 쾌적한 산책로로 조성되어 있다. 때문에 산 정상을 향해 오르는 외지 등산객보다 더 많은 숫자의 지역주민들의 애용하고 있다.
제8등산로는 하계약수터 주변을 시작으로 청록약수터를 끼고 배수지 갈림길과 삼육대 갈림길을 경유하며 정상으로 이어가는 코스다. 제9등산로는 화랑대역에서 내린 다음 20분 정도 걸어서 한전교육원과 효성아파트 사이로 들어가는 코스다. 제8등산로와 함께 정상까지 5.3Km 정도 떨어진 가장 완전한 종주코스라고 할 수 있다. 제10등산로는 삼육대학교 안에서 출발해서 정상으로 오르는 코스다.
불암산의 동쪽에서 오르는 3개 코스는 모두 불암사를 기점으로 한다. 첫째는 불암사에서 천보사를 거쳐 헬기장 근처 주능선으로 오르는 것이고, 둘째는 불암사에서 깔딱고개로 바로 오르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는 석천암 방향으로 슬랩을 타고 오르는 것이다. 대개 사람들은 이렇게 슬랩을 타고 정상쪽으로 바로 오르는 것을 좋아한다. 슬랩의 각도가 완만해서 웬만큼 산을 타는 사람들에게는 큰 부담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쉽다고 하더라도 최소한의 암벽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스스로 조심하는 것이 좋겠다. 계단을 이용해 안전하게 오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교통
일단 지하철을 이용한 접근이 유리하다. 지하철 6호선 화랑대역에서 내려서 20분 정도 걸으면 한전교육원과 효성아파트 사이로 난 제9등산로를 탈 수 있다. 4호선 상계역에서 내려서 역시 약 20분 정도씩 걸으면 청암능선길을 지나가는 제4등산로나, 불암산관리사무소와 정암사 등을 지나는 제5등산로, 그리고 양지초소와 쌍봉탑과 천병약수터를 잇는 제6등산로, 그리고 학도암으로 이어지는 제7등산로를 탈 수 있다. 또 4호선 당고개역에서 내려서 15분 정도 걸은 다음 제3등산로인 경수사 코스로 이을 수도 있고, 20분 정도 걸어서 돌산약수터를 경유하는 2등산로나, 덕릉고개를 들머리로 하는 1등산로를 탈 수도 있다. 또 4호선 중계역이나 하계역에서 내려서 하계약수터 쪽으로 접근하여 8번 등산로를 탈 수도 있다. 지하철 1호선 석계역이나 6호선 화랑대역에서 내려 1156번 버스나 108번, 202번 버스를 타고 가다가 삼육대학교에서 내려 10등산로를 탈 수도 있으며, 불암동 종점까지 가서 불암사 코스를 타도 된다.
주변 볼거리
불암사
불암산의 동쪽 산록인 별내면 화접리에 있는데, 조계종 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다. 불암사는 세조 때 왕실의 4대 원찰의 하나가 되었는데, 서쪽의 진관사(津寬寺), 남쪽의 삼막사(三幕寺), 북쪽의 승가사(僧伽寺)와 함께 동쪽을 대표하는 명사찰로 꼽혔다. “봉선사 본말사지” ‘불암사’ 조에는 지증대사(智證大師)가 신라시대에 창건하고 불암사로 명명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 초에는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중건하였으며, 고려 말 조선 초에는 무학대사(無學大師)가 폐허화된 것을 중창했다고 한다. 불암사에는 전체 34종 588판의 목판 간행이 유명하다.
동구릉(태강릉/덕릉)
동구릉은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조의 왕릉을 대표하는 곳으로, 가까운 구리시 인창동에 있다. 동구릉에는 1대 태조의 건원릉을 중심으로, 5대 문종과 현덕왕후의 무덤인 현릉 등 모두 9개의 무덤이 있다.
이곳에 비해 태릉과 강릉은 불암산 남쪽 끝자락인 공릉동 313번지 인근에 위치해 있어서 훨씬 가까운데, 태릉에는 제11대 중종의 두 번째 부인인 문정왕후 윤씨가 묻혀있고, 강릉에는 제13대 명종과 그의 부인인 인순왕후 심씨가 묻혀있다.
덕릉고개 너머 덕송리에는 덕릉이 있는데, 이 덕릉은 조선의 제14대 왕 선조의 아버지인 덕흥대원군의 무덤이다. 그는 중종 임금의 일곱째 아들로 태어나 임금에 오르지 못하고 죽었고, 나중에 그의 셋째 아들인 하성군이 선조로 즉위하면서 대원군 신분이 된 것이다. 따라서 그의 무덤은 원래 능이 아니었다가, 나중에 아들 선조의 권도에 의해 능으로 불리게 되었다.
육군사관학교
우리나라 육군 간부를 양성하는 정통의 특수목적 대학교로, 불암산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월요일과 중요 공휴일을 제외한 매일 10시, 2시, 3시 등 3차례씩 학교를 개방하고 있다. 1주일 전 예약이 필수이며, 예약을 하면 육군사관학교의 교육시설 및 화랑의식, 기념관이나 박물관 등을 견학할 수 있다. 전화예약은 02-2197-6123으로 하면 된다.
한글 고비
인근 하계동 산12번지 2호에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한글 비석 중 하나다.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7호인 이 비석은 조선 중종 때의 문인인 묵재 이문건이 부모의 합장묘 앞에 세운 비석인데, “이것은 신령스러운 비석이다. 이를 범하는 사람은 재화를 입으리라.” 는 내용의 한글 30자를 새긴 것이다. 비 뒷면에 새겨진 연대 표기로 훈민정음 창제 이래 한글로 새겨진 현존 최고의 금석문임을 일게 되었다. 1996년에는 이문건의 문집인 “묵재일기” 속지에서 그동안 이름만 전하던 조선 초기 창작소설 ‘설공찬전’이 발견되어 학계의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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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마운틴 2009년 12월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