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려움! 여름 내 흔적이 없던 가려움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귓속 가려움은 면봉으로 건드리면 진물을 내보내고, 발가락 사이 가려움은 손을 대면 끝없이 더 강해져 갑니다. 오랜 세월 치료의 노력 없이 겪어온 습진의 증세입니다.
잠재된 것의 위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름 내내 없어진듯 흔적이 없다가 이렇게 찬바람과 더불어 다시 나타나는 것을 보면, 그간 잠재해 있다가 조건이 조성되니 다시 일어난다고 표현할 것입니다.
잠재된 것은 몸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의 영역에 잠재된 것도 있습니다. 열심히 공부할 때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가 잠시라도 방심하기만 하면 언제 그랬느냐며 나타나는 것들입니다. 아마도 상(想)[saññā-내적인 경향]이라고도, 잠재성향[anusaya]이라고도 하는 그것일 것입니다.
존재에 대한 오해의 상(想)[상락아정(常樂我淨)], 그 위에 겹쳐지는 욕계에 대응하는 상(想)[욕상(慾想)]-색계에 대응하는 상(想)[색상(色想)]-무색계에 대응하는 상(想)[무색상(無色想)]은 번뇌(煩惱)[루(漏)]라고도 하는 것인데, 탐진치를 일으켜 괴로움을 만듭니다. 잘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http://cafe.naver.com/happybupdang/5192에서 상(想)과 잠재성향[anusaya]의 연관성을 알아보았는데, 상(想)이 곧 잠재성향인 것으로 이해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hiri[히리]와 ottappa[옷땁빠]란 단어가 있습니다. hiri는 지켜야 할 바를 어김에 대한 스스로의 책망이고, ottappa는 지켜야 할 바를 어겼을 때 남에 의해 비난 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 http://cafe.naver.com/happybupdang/901
이 두 가지는 세상을 보호하는 힘이라고 설해지는데, 방심하기만 하면 나타나는 잠재된 것들에 대한 대응력이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자책 경(A4:121)(http://cafe.naver.com/happybupdang/1710)>은 '자책에 대한 두려움, 남의 책망에 대한 두려움, 형벌에 대한 두려움, 악처에 대한 두려움'을 설하는데 hiri와 ottappa의 의미를 잘 나타내 준다고 하겠습니다. 저는 이 경전에 의지해 사형제도에 대한 질문에 답한 바 있는데 http://cafe.naver.com/happybupdang/1727의 답글입니다.
가려움에는 두 가지 대응방법이 있습니다. 가려움에 sati하여 손대지 않음을 통해 사라지게 하는 방법과 치료를 통해 가려움을 뿌리뽑는 방법입니다.
잠재된 것들에 대한 대응방법 또한 두 가지일 것입니다. 잠재된 것들이 일어났을 때 sati하고, hiri와 ottappa의 도움을 받아 행위로 연결되지 못하고 사라지게 하는 방법과 사마타-위빳사나의 수행을 통해 잠재된 것들의 뿌리를 뽑아버리는 방법입니다[병든 상(想)의 치유 = 번뇌의 소멸].
저는 지금 습진약을 발랐습니다. 이젠 더 이상 방치하지 않고 치료를 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념처 수행을 통해 sati를 힘있게 하여 잠재된 것들의 일어남에 대응하고, 그 위에서 사마타-위빳사나 수행으로 나아가 잠재된 것들의 뿌리를 뽑아낼 것입니다.
해피[解彼 & happy]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