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 조선족자치주의 수도인 연길시에는 연변대학·연변 사범학교를 비롯한 정규교육기관은 물론 연길시 종업원대학과 예술·사범·위생·재무·체육 분야의 전문학교가 있고 중학교와 소학교도 많이 있다. 특히 연길시를 중심으로 연변지역에서 출판되는 각종 교과서는 동북 3성을 위시한 각지의 재중동포 교육기관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그밖에 잡지를 비롯한 각종 간행물도 전국 가지에 배포되고 있다. 또한 사회과학분야와 자연과학분야의 여러 연구기관도 설치·운영되고 있는 바 연변대학내에는 조선문제연구소를 비롯하여 조선어문학연구소, 동북아경제연구소 등이 있으며 연변 사회과학원내에는 조선어문연구소, 민족교육연구소, 문화예술연구소 등이 있다. 그밖에 인문과학분야에는 연변역사역구소, 연변언어연구소, 연변교육연구소 등이 있으며 예술분야에는 연변문학예술연구소가 있고 자연과학 분야에는 농업과학연구소,임업연구소, 축산연구소, 농업기계연구소 등이 있다 연변 소재 과학기술연구소에 근무하는 전문인력은 2만여명을 상회하는데 이들 가운데 20% 정도는 연변대학, 연변의학원, 연변농학원 등의 교수이며 나머지는 연구소의연구원이거나 사업체의 기술자이다.
배움의 요람 백산실험학교
연길백산실험학교는 12년제학교로서 주,시교육위원회의 비준을 거쳐 소학부와 중학부(초,고중)가 설치되여 있다. 우리 학교는 사립기숙제학교로서 동북사범대학 교육과학원과 성교육위원회민족교육연구소의 실험기지이고 또한 중회합작학교이다. 3돐을 맞게 되는 학교의 부지면적은 45000평방메터,건축면적은 18000평방메터이데 100여대의 컴퓨터로 무장된 2개의 조작련습실,아담하게 꾸며진 기숙사와 식당,1000여명 학생들을 용납할수 있는 3개의 자학교실, 한번에 100여명이 샤워할수 있는 고급목욕탕,400여명학생들이 동시에 영화를 관람할수 있는 시청각 설비가 빈틈없이 갖추어진 종합무예홀 등이 정비되뎌 있는가 하면 별도의 시청각 전문 교실 1개와 현대화된 교학감독설비와 텔레비가 교실마다 이어져있으며 피아노 4대 전자풍금38대 및 각종 관현악악기들이 즐비하게 하려저 있어 학생들의 기량을 마음껏 펴보이게 하고있다. 또한 학교에는 최고급 대형뻐스들을 망라한 통학용뻐스등 11대의 차가 마련되여 있어 주말이면 본시 학생들은 물론,타현,시 학생들도 자기집까지 바래다주고있다. 모아산국가삼림공원에 자리잡고있는 백산학교는 시구역과 동떨어져있어 공기가 맑고 록음이 우거졌을뿐만아니라 소음이 없어 한결 조용하고 우아한 학습환경을 더 해주고있으며 철통같은 보안으로 사회불량배들의 출입을 단호히 막아버리고있다. 전주와 길림 등지에서 특급 또는 우수교원들을 초빙하여 왔고 교학 제1선에서 10여년간 근무하던 중, 청년교사들이 교학의 중임을 메고 정열을 몰붓고있다. 국가교육위원회에서 제정한 학과목 외 1학년부터 영어,컴퓨터, 서예 과목이 더 설취된 특색있는 학교로서 1998년에 진행된 전주중학생수학경색에서 백산학교초중 1학년팀은 집체 1등,개인 1,2등의 영예를 지니게 되였으며 전국청소년아동서예촬영경색에서 집체우수상,18명학생들이 1,2,3,등의 영예를 지니게 되였으며 1998년 전성 성학콩클에서 진송철 등 학생들은 1등의 영예를 안아왔다. 1999년에 진행된 전주 단체1등의 자랑찬 성과를 거두었고 1등 3명,2등 9명,3등 5명이 입상하였다.또 전주 소학생 컴퓨터조작경연에서도 3등 4명이 입상되였으며 전국 소학생영어지식기능경색에서 1등 2명,2등 2명이 입상되였고 집체우수상을 받았다. 학교를 꾸린지 불과 3년도 안되지만 우리는 창조교육모식을 락실하면서 특색화운영에서 커다란 성적을 따내고있으므로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희망과 자부심을 e활保羚駭?지난성적에 만족을 느끼지 않는 백산실험학교는 <<세계에서의 중국인,중국의 사명을 지닌 세계인>>이라는 양성목표를 내세우고 국내외와의 합작의 길을 넓힌다는 취지에서 북경,호북,길림,등지 및 카나다,한국,일본 등 나라의 학교들과 합작관계를 맺고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초중을 졸업한후 자신의 의향에 따라 다른 고급중학교에로의 진학도 허용되고 합작학교나 중등전문학교에로의 진학의 기회도 마련해준다. 본 학교의 고중졸업생들은 국내 각 대학진출의 꿈을 실현할수 있게 되는것은 물론 본 학교의 특이한 우세로 합작중등전문학교의 진학과 외국류학(한국,카나다)등 알선의 기회도 얻게 된다. 배움의 요람 백산기슭의 한송이 꽃은 학교의 표지와 같이 우리 민족교육연구의 실험을 성공적으로 진행할것이며 학교를 교육현대화의 시범학교,교육개혁의 실험학교, 민족교육의 일류학교로 건설할 것이다.
삼원포진조선족중심학교
85년이란 긴긴 세월, 민족의 얼을 지켜, 명맥을 이어 영광에 찬 력사의 로정을 걸어온 류하현 삼원포진조선족중심학교가 10월 10일 건교 85돐을 맞이하였다. 이날 이 학교에서는 성대한 모임을 가지고 이 뜻깊은 명절을 열렬히 경축하였다. 류하현 교육국, 민위, 삼원포진 당위와 정부의 해당지도자들과 통화시, 류하현, 삼원포조선족학교들의 책임자, 리퇴직한 전임 교장과 교원, 학부모와 학생 300여명이 경축활동에 참가하여 축하를 표시하였다. 삼원포는 1910년 조선이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된후 조선의 애국지사들과 난민들이 가장 일찍 발을 붙이고 가장 많이 집결되여 살면서 반일독립운동을 벌렸던 유서깊은 고장이다. 삼원포조선족중심소학교와 삼원포조선족중학교의 전신은 바로 1914년 10월 10일 이 고장에 창설되였던 은 양 학교이다. 당시 이 학교는 삼원포기독교회의 방기전, 안동식 장로와 리호림, 김세택 영수 등의 적극적인 주선아래 삼원포 추가가에 설립, 초창기 교장은 방기전장로, 당시 학생 370명에 교원 20명이였다. 당시 은양학교는 남만일대의 조선족사회에서 매우 큰 영향력을 가지고있었는데 페교전의 학생수는800여 명에까지 달하였다. 1920년 9월 25일, 즉 일제의 경신년대토벌시 이 학교는 배일교육을 했다는 죄명으로 강제로 페교되였고 교장 방기전장로는 일제의 군도에 몸이 네동강이 나 수국하였다. 1922년 12월 7일, 은양학교를 뒤이어 삼원포에 동명학교가 설립되였는데 한경회목사가 교장으로, 원 은 양학교의 일부 교원과 조선 숭실학교에서 초빙된 청년교원들이 학교 교장으로 있었다. 동명학교는 당시 조선인들 학교에서 사용해야 했던 조선총독부에서 편찬한 노화교재를 쓰지 않고 자체로 교재를 편찬하고 사용하면서 학생들에게 애국애족, 항일구국의 사상을 수립시켰는데 남만일대에서 영향 력이 가장 컸던 학교의 하나였다.] 몇년이 안되여 일본경찰들이 전신무장하고 들이닥쳐 사생들을 훈계하고 책걸상, 교과서, 교구, 악기 등 을 운동장 한가운데 모아놓고 몽땅 불살라버리고 얼마 안되여 한경희교장도 일제에게 붙들려 옥고를 치 르는 등...온갖 역경과 시련을 수없이 겪어야 했지만 이 지역 조선족들은 다시 동명학교를 회복하고 꾸 려왔는데 1991년도에 교명을 삼원포조선족중심학교로 고쳤다. 이 학교에는 교원 16명에 학생이 130여명, 교원대오자질이 높고 교수설비가 구전하며 명실이 부합되는 삼원포지역 조선족중심학교로 발전하였다. 이날의 경축대회에서 리정호교장이 중심 발언을 하였고 삼원포진정부의 책임일군, 형제학교대표, 래빈대 표, 학생대표 등이 축하의 발언을 하였다. 뒤이어 있은 학생들의 서예표연, 회화표연, 교원들의 서예표현, 학생들의 문예프로출연은 대회참가자들에 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장백조선족자치현제2실험소학교
장백조선족자치현제2실험소학교 새 교수청사 입주경축대회가 10월 30일 이 학교 운동장에서 성대히 소집 되였다. 장백조선족자치현정부 장명커부현장을 비롯하여 현인대, 현정협, 현위 조직부, 선전부 판공실, 현교육위 원회 주요지도일군들과 현성 여러 학교, 여러 부문의 지도일군들 그리고 이 학교 전체 학부모들과 전체 교직원, 학생들이 이날 경축모임에 참가하였다. 제2실험소학교 리춘섭교장이 대회에서 80여년의 휘황한 력사를 갖고있는 이 학교의 지난날을 돌이키며 자신심으로 벅찬 앞날을 그려보았다. 1918년, 헐망한 귀틀집에 2명의 교원으로 설립된 제2실험소학교 (전시 제1정몽학교)는 파란많은 곡절을 겪으며 오늘에는 18개 학급에 720명의 학생, 51명의 교원대오를 갖춘, 산재지구에서 규모가 비교적 큰 민족학교로 발전하였다. 상급의 전문자금하달과 사회각계의 물심량면의 대폭적인 지지로 오늘에는 건평이 3723평방메터, 투자가 320여만원되는 현대적교수청사가 덩실하게 일떠서게 되였다. 리춘섭교장은 연설에서 새 교수청사의 건설을 지지해준 상급지도부와 시회각계, 그리고 이 학교의 발전 을 시종여일하게 관심해주고 떠밀어준 겨레들과 리퇴직교원들에게 충심으로 되는 감사를 드렸다. 현정부 부현장 장명커, 현교육국 국장 양홰무 등 지도일군들이 제2실험소학교에서 새 교수청사에 입주하 게 된데 대해 열렬한 축하를 표시하고나서 이날을 기점으로 민족교육사업에서 더 휘황한 성적을 이룩할 것을 기원했다. 학부모대표로 현위선진부 방철범부부장이 연설했다. 그는 오늘 자기 자식들이 궁궐같은 교사에서 행복하게 공부할수 있게 된데 대해 더없는 기쁨을 느낀다며 전체 사생들의 노력으로 학교를 <<학생이 사랑하고 학부모가 안심하고 시회가 만족해하는>>성내일류학교 로 부상시킬것을 희망했다. 민족복차림을 한 백산로년협회 로인들의 장고춤과 전교 학생들의 집체무 등 정채로운 문예공연으로 경축 대회의 막이 서서히 내리였다.
장춘시 록원구조선족소학교
일전 장춘시 록원구조선족소학교에서는 장춘세무전과학교 강당에서 <<'99예술교육성과회보공연>>을 가졌다. 이 학교에서는 최근 몇년간 예술교육을 자질교육의 중요한 내용의 하나로 간주하고 틀어쥐였다. 선후하여 2만여원을 투자해 각종 악기를 비롯한 예술기재를 갖춘 동시에 전문일군을 배치하여 악기,무용, 성악, 서예 등 여러면의 인재들을 적극 양성하였다. 하여 학생들의 업여과외활동을 풍부히 하였을뿐만아니라 여러가지 특장을 소유한<<꼬마인재>>들을 수태 육성해냈다. 이날 록원구조선족소학교의 <<꽃봉오리예술단>>은 <<농악무>>,<<전자풍금독주>>,<<무술출현>>등 14개 종 목을 공연, 그중에서도 특히 교원들과 학생들이 함께 등장하여 진행한 서예출연이 인기를 끌어 관람자들 의 우뢰와 같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1992년도에 건립된 <<꽃봉오리예술단>>은 선후로 제3,4차 전국조선족예술절에서 특등상, 등상의 영예를 안아왔고 성, 시, 지구 등 예술절에서도 수차 1등의 영예를 따냈었다. 1997년 5월에는 한국 서울 양친구청과 양친구국제교류회의 초청으로 서울 양친민속축제에서 4차례나 방문공연하였으며 한국 KBS방송국예술무대까지 등장한 일이 있다. 성교육학원, 성교육위원회, 시민위, 록원구정부, 록원구교육국 등 32개 단위의 해당 령도와 지도일군들이 이날 공연을 관람, 모두 록원구조선족소학교의 이 몇년간의 예술교육성과에 대해 충분히 긍정하였다.
동아외국어 학교
본교는 외향성 전문인재를 양성하는종합성외국어학교이다. 환경이 우아하고 관리가 엄격하며 강사, 교수들로 교수진을 무었다. 설비가 선진적이고 현대화시청각교수 수단으로 학생들의 회화, 청력, 습작, 사교등 종합기능을 키워 외 자기업소들의 수요에 만족되는 인재수송을 담보한다. 본교는 이미 성교육 위원회로부터 '특색이 있는 외국어 학교'로 인정받았고 시, 현 정부로부터 '치안평 안선진단위'로 인정받았으며 100여개 인재교류중심의 정보망에 가입하였다. 이미 2000여명의 졸업생을 심수, 상해, 북경, 청도 등 도시에 추천해보냈는데 각계 인사들의 호평을 받 고있다. 본학기 계속 제17기 일어, 영어, 컴퓨터 전업반 학원을 모집한다.
전업과 학제;
1, 일어, 영어 전업반-2년 (4학기)전일제, 매주 6일 학습(미국, 영국, 일본에서 원판 록화, 록음 테프를 인입하여 사용함). 기초부터 배우며 졸업후 외국어전과졸업생 수준에 도달하여 외자기업소 여러 부문의 업(무역, 공공관계조수, 가이드, 번역 )에 종사할수 있다.
2, 컴퓨터전업반- 1년(2학기), 매인 한대의 596컴퓨터로 학습한다.
대우;
1, 장학금제도 실시.
2, 일자리를 책임지고 알선하며 출국류학기회를 마련해준다.
3, 국가승인을 받는 중등전문학교졸업증과 번역공작증을 발급, 성적이 우수한자는 외국어능력인정서와 대 학교전과졸업증, 계산기등급증을 발급한다.
훈춘시 영안중심소학교
훈춘시 영안중심소학교는 원래 이름없는 농촌학교였다. 그러던것이 학교지도부에서 학교관리를 잘 틀어쥔 결가 불과 몇년사이에 면모가 일신되여 향,진학교들가 운데서 이름난 선진학교로 부상하였다. 교원대오건설을 학교의 여러가지 관리사업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고리로 된다. 교원은 학교교육의 주체로서 전체 교원들의 자질정도여하는 학교교육의 성패를 결정한다. 이 학교지도부에서는 교원대오건설을 학교관리에서의 선차적임무로 삼고 교원들의 정치사상도덕자질과 실무자질을 높이는데 모를 박았다. 정치사상도덕자질을 높이는데 있어서 제도건설과 정치사상사업을 결합시키는 방법으로 교원들의 행위를 규범화하고 교원들을 엄격히 관리함과 동시에 그들의 자각성, 적극성을 더한층 높이였다. 제도에 의한 행위의 규범화와 정치사상사업에 의한 자각성의 발현은 서로 련계되고 서로 보충되는것이다. 학교의 모든 관리사업은 다 교수질을 높이는것을 최고목표로 하며 교수질의 제고는 근본적으로는 교원들 의 실무자질에 달려있다. 영안중심소학교지도부에서는 교원들의 실무자질과 교육교수자질제고에 진력해왔다. 다른 한편 전반 교원들의 자질양성에 충분한 중시를 돌리였다. 여러가지 경로로 교원들에게 교육교수자질제고에 필요한 조건들을 마련해주었다. 첫단계에서 해놓은 제일 큰 일이 새 교수청사를 지은것이다. 두번째 단계에서는 <<세우는것도 중요하지만 관리가 따라가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학교의 환경관리에 큰 힘을 넣었다. 여러가지 방법으로 자금난을 해결해가고있기에 이 학교는 학교경비가 충족하지 않은 정황에서도 정상적 으로 운영되여가고있다. 이 학교에는 학생이 300명이 채되지 않는데 그중에는 가정경제상황이 몹시 어려운 학생도 적지 않다. 학교에서는 학생들한테서 마구 수금하는것을 엄금한다고 단연히 선포하고 그 규정을 엄격히 집행하였다. 이 학교는 국가교육위원회 시청각교수설비배비일류학교, 주, 시 문명학교, 주중심학교시범교, 성우수교원 양성소, 주9년제의무교육보급사업선진학교 등 칭호를 지니였다. 훈춘시영안중심소학교, 오래동안 잠자코있던 이 학교가 오늘 이렇듯 찬연한 빛을 뿌리게 된것은 훌륭한 학교관리가 낳은 보람이라 해야 할 것이다.
훈춘시제5소학교
훈춘시제5소학교에서 개방식교육을 진행하여 학생들의 주동발전을 촉진하고 있다. 1991년에 설립된 이 학교에서는 부단히 자질교육의 경로와 방법을 탐색하면서 학생들의 잠재력을 발굴하 고 그들의 자각적으고 주동적인 학습능력을 양성하여 학생들에게 종시발전의 능력을 키워주기 위해 적극 적이고 대담하게 교육교수방법을 개혁하였다. 1994년 이 학교에서는 고금중외의 학생주동발전교육의 리론을 학습하고 한국, 일본, 미국 등 나라의 개 방교육방식을 빌고 우리 나라의 국정과 학교의 실제와 결부하여 우선 교수령역에서 개방식교수실험반을 개설, 개방식교수를 진행하면서 경험을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개방교육이란 학습자의 학습속도에서 개인차이를 존중하고 내재적 흥미에 의해 자률적으로 학습해나가도 록하기 위하여 교육과정, 학습집단을 유연하게 운영하는 총체적 자률화 교육이다. 그들은 우선 40명의 학생들을 모집하여 실험반을 꾸렸다. 실험반을 세가지가 없는 실험 즉 시험이 없는 실험을 했다. 그렇다고 결코 앉아 노는것은 아니였다. 그저 전통의 학급교수제도를 깨뜨리는것이였다. 그들은 분조교수를 기본형식으로 교원의 조직지도하에서 학생들은 소조를 단위로 학습, 교원은 단위시간 내의 학습내요에 목표를 알려주고 학습방법과 사유방법을 암시, 학생들은 자습을 진행, 교원은 순회지도 하고 의문점을 해답해주고 매조의 성원들은 서로 마주앉아 서로 토론도 할수 있게 했다. 즉 학습에서의 개인차이를 존중하고 내재적 흥미에 의해 자률적으로 학습하게 하는것이였다. 그런데 이는 학부모들의 불리해를 받았다. 학부모들은 숙제도 내주지 않는 학교를 믿을 수 없다며 자식들을 다른 학교에 전학시켰다. 게다가 새로운 교수방법이여서인지 상급주관부문의 긍정도 당분간은 받지 못하였다. 하여 실험반은 절반의 학생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학교지도부에서는 곤난을 박차고 원래의 실험반 학생외에 다른 학급에서 학생들을 선택하여 다시 실험반을 구성, 결연히 이 과제를 밀고나갔다. 1998년 연변주교육학원의 지도부에서 우선 이 학교의 개방식교수방법을 긍정하였다. 그때로부터 이 학교의 개방식교육은 전면적인 심화를 가져왔다. 동시에 부단히 개방식교육의 령여과 차원을 확대, 교수로부터 점차 더육,로동,행위습관 등 면에까지 확 대, 지금은 이 학교의 80%의 학급에서 전 과목 개방식교수거나 부분과목의 개방식교수를 진행하고 있다. 이 학교에서는 개방식교수의 좋은 점을 6가지로 귀납했다. 령활한 교수방법을 운용하기에 학생들의 흥취와 지능을 격발시켜 활기차고 화애롭고 느슨한 분위기속에서 학습, 정신압력이 없이 주동적으로 학습할수 있다. 분조교수를 기본형식으로 하고있기에 학생들의 주관능동성을 양성할수 있고 중하등생들에게 더 많은 자아 표현, 자아단련의 기회를 줄수 있다. 교원은 탐색의 길만 가르쳐주기에 학생들은 시종 교수의 전반 과정에 참가하기에 점차 사유방법과 학습 방법을 장악하여 이후의 발전에 기초를 마련해준다. 개방식교육은 학생들의 지식획득과정을 중시하고 형성규률을 탐색하게 하기에 학생들의 사유 방식과 능 력이 부단히 제고된다. 부동한 정도의 학목표를 채용하였기에 학습목표에 도달한 학생들은 시간과 장소의 제한을 받지 않고 흥취에 따라 지식획득을 자아선택, 개성과 특장이 매우 잘 발휘된다. 교수질이 대면적의 제고를 가져온다. 지금 이 학교에서 졸업한 학생들은 중학교에 가 이미 개방교육의 웃점을 빛내고 있어 교원들은 만족스러 운 웃음, 그러나 개방교육을 현유의 교육리념과 모순이 많아 진보속도가 늦고 중학교에 올라가면 다시 낡은 교육모식이 이어지기에 학생들의 적응이 어려워질가 우려도 하고 있다.
연길외국어중학
연길회국어중학은 길림성에서 제일 큰 사립외국어학교 로서 소학교졸업생과 초급중학교조업생(조선족,한족)을 모집대상으로 하는 6년제 기숙식 중하교이다. 학교는 4만평방메터의 교정과 1만 2천평방메터의 건축면적을 갖고있다. 작년에 새로지은 교수청사, 기숙사,식당은 1천 3백명의 학생을 용납할수 있는데 그 독특한 건축풍겨으로 참신한 모습을 자랑한다. 지금 연길외국어중학은 135명의 교직원(그중 특급교원6명,고급교원21명,중급교원23명,초급교원22명),관리일군과 4개학년(고중 1개학년,초중3개학년)에 21개학급, 900명 학생을 갖고있다. 올해 9월 새학기에 들어서면 학생수가 무려 1200명에 달하게 될것이다. 연길외국어중학은 국립초급중학교 및 고급중하교와 마찬가지로 나라에서 제정한 중학교교수요강에 따라 각 학과목을 설치하였다. 그중 영어과와 일어과에 대해서는 교학시수와 교재를 증가하고 미국인교수를 청해 강의하며 영어교원대오를 증가하는외 작은 규모로 상학하는 등 방법으로 강화교수를 진행한다. 이하교는 국제적수요에 근거하여 문화과성적도 우수하고영어 (일어),조선어 한어에도 능숙하며 계산기도 사용할줄 아는 전문인재를 배양하는데 총적목표를 두고있다. 그리고 조선족학급과 한족학급으로 나누어 각각 조선어와 한어로 수업을 조직한다.졸업시험에 합격되면 길림성교육위워회와 본 학교에서 동시에 졸업증을 발급한다. 학비는 1년에 주숙비를 포함하여 7500원이다. 연길외국어중학은 연길공원과 연집강사이 길을 따라 곧게 올라가다가 외환로에서 북쪽으로 500메터되는 곳에 자리잡고있는데 25선공공뻐스를 타면 곧장 학교문앞까지 도착할수 있다. 이학교는 산을 의지하고 강을 끼고있어 조용하고 청신하며 교통이 편리하다. 그야말로 학습과 생활의 리상적인 장소이다.
연길외국어중학 리사회
회장 강규희 (연변주정협위원,길림대학겸직교수,원주단위부서기,길림교현위 부서기)
교장: 최승묵(특급교원, 원 연변1중교장)
부교장:왕사제(고급교원,원 연변2중서기)
김복순(고급교원, 원 연길시교육위원회 부 주임)
강립봉(원 돈화시 실험중학교장)
훈춘시특수교육학교
훈춘시 특수교육학교에서는 <<특수교육>>에 모박고 장애학생자질제고에 진력하고 있다. 장애학생자질제고를 위해 교원자질제고를 우선적으로 틀어쥐였다. 학교설립시 변변한 교사며 교수시설이 갖추어지지 못하엿고 학교간판마저 없었으며 민용층집을 세맡고 있었다. 1997년 7월에 한국에서 복지사업에 종사하고있는 박청수녀사가 이 학교에 찾아가 후원과 협찬의 의향을 내비쳤다. 이어 새 교사 건설문제가 시정부의 의사일정에 올라 시정부에서는 무상으로 근 1만평방메터에 달하는 부지를 떼주었고 박청수녀사와 성교육행정부문에서 도합 자금 80만원을 협찬, 후원하여 1998년 8월에 건평이 1000평방메터에 달하는 현대화한 2층교사가 사용에 교부되였다. 교원다수가 보통학교에서 교수교양사업에 종사하던 교원들이기에 변화된 특수교육환경에 적응하지 못하였다. 상술한 실정에서 학교지도부에서는 횡적련합으로 교원자질제고의 샛길을 선택하였다. 1998년 6월에 한국 포항명도 특수학교와 자매결연을 맺고 3명 교원을 1개월간 연수를 보냈다. 또 작년 2월에는 한국 서울교남특수학교와 자매결연을 맺고 4명 교원을 보내여 1개월간 연수받게 하였다. 그리고 연길시 장애자련합회에서 조직한 특수교육강습반, 연변롱아학교, 장춘시 육재장애인양성학교, 성롱아학교 등에 교원들을 보내여 강습받게 하였다. 이렇듯 횡적련합과 교수교양실천을 병진하여 교원자질제고를 틀어쥐여 교원들이 빠른 시일내에 변화된 특수교육환경에 적응하여 자기의 장끼를 발휘할수 있게 하였다.여러 가지 층차, 형식으로 특수교육을 진행하여 교수교양질을 높이였다. 장애학생가운데 청력장애, 정신장애, 지력장애가 있는가 하면 장애학생년령구조가 6살부터 17살까지이며 한족, 조선족을 망라한 다민족인데서 전통적인 교수교양방법을 채용할수 없었다. 이리하여 우선 지력층차에 따라 7개 학급을 편성했고 어문, 수학과외에도 학생실정에 맞는 10개 과목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다층차, 다형식의 2부, 3부 복식제를 실시하였고 교수방법을 다양화하여 실물, 교수도구, 현대화한 교수수단과 형상교수법을 인입하였으며 장애어린이들로 하여금 놀이속에서 쾌락속에서 배우는 쾌락교수법을 일반화하였다. 대담히 전통적인 40분간 수업시간제도를 페지하고 년령구조, 지력층차에 따라 부동한 수업시간제도를 실시하였다. 또 특수교육특점에 맞게 생활자립능력, 사회적응능력을 양성하기 위해 컴퓨터, 그림그리기, 서예 등 10개 과외활동소조를 조직하고 교원지도를 강화하였다. 또 로동교양을 위해 교정에다 면적이 3무되는 남새기지와 과수원을 건설하였고 간단한 근공검학활동도 조직하였다. 특수교육은 알찬 성괄르 이룩하였다. 지금 이 특수교육학교는 교원이 원래의 8명으로부터 15명으로, 학생은 원래의 24명으로부터 89명으로 늘어났다. 워낙 수자를 셀수도, 쓸수도 없던 11명 장애학생은 지금 보통소학교 1학년수준에 도달하였고 청력장애학생 17명은 지금 수화를 할수 있게 되었고 자기 언어표달을 할수 있게 되었다. 또 청력장애학생을은 입말훈련, 청력훈련을 통해 능히 자기의 의사를 표달할수 있게 되었다. 이 학교 학생들이 그린 미술작품과 서예작품가운데서 길림성아동미술, 서예경연에 작품 18폭을 보냈고 9명 학생은 컴퓨터를 다룰수 있으며 3명학생은 반도체라지오를 조립할수 있게 되었다. 또 학생들의 소제작, 뜨개 등 작품은 시교원연수학교에서 주최한 작품전시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고 근공검학활동가운데서 제작한 걸레 2000개가 전 시 중소학교에 공급되었다.
연길시 6.1유치원
개구쟁이들의 천국 유아교육의 요람
6.1국제 아동절 60 돌을 앞두고 우리는 1951년에 개원하여 선후로 전국아동교육선진단위(1960년), 길림성문명단위(1986년), 길림성시범유치원(1987년), 길림성 유아교육최우수단위(1993년), 길림성 1급 서류 관리단위(1999년)로 수차 명명, 평의받은 연길시 6.1유치원을 찾았다. 흑송, 백송이 소담히 자란 정원뜨락의 분수늪에서는 금붕어, 잉어가 유유히 꼬리치고 오른편에는 금모래 반짝이는 사장(沙場)놀이터와 머루넝쿨이 뻗어오르는 고풍의 덕대, 왼편에는 푸르른 잔디밭놀이터, 정문우의 삼각형, 옥상우의 원형구조물, 세모꼴, 네모꼴,동그라미식으로 된 조형과 구조물은 독특한 풍격으로 눈길을 끌고있었다. 인간의 성장과 발달은 개체와 환경간의 상호 작용의 결과로 이루어진다. 유아시기에는 주변의 환경에 대해 끊임없는 흥미와 호기심을 갖고 탐색과 반응으로 익혀가기에 유치원의 물리적시설과 환경이 유아들의 생활과 행동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 유치원의 임직원들은 물리적환경구조의 공간구성을 위해 고심을 바쳐왔다.
환경 제1의 유치원
연길시 6.1유치원의 새 청사는 유아교육발전의 전략에 따라 1995년 10월에 착공해 1997년 11월에 준공되였다. 700여만원을 투입해 4층으로 지은 새 청사는 건축면적이 5400평방메터, 민족특색이 뚜렷한 유아교육의 선두주자로 부상하였다. 실내에 들어서면 복도마다 주단을 펴놓았고 창턱에는 갖가지 화초를 심은 화분통이 놓여있고 유리창에는 조선글과 갖가지 동식물모양의 전지품을 붙여놓았다.층계의 갈림목공간에는 다람쥐, 황가리, 병아리,게사니, 독수리, 비둘기 등 각종 박제품전시장이 만들어져있고 복도천정에는 여러 가지 색깔의 오각별이 붙어있어 동화세계를 연상시킨다. 옥상에는 일광욕, 공기욕, 뽈차기 등을 할수 있는 활동실이 3개 있고 뒤울안에는 동식물장이 있어 대자연의 정취를 체감할수 있다. 1998년에 20여만원을 투입해 원내를 녹화하여 연길시 녹화선진단위로 된 이 유치원에서는 물지적 환경의 심미적분위기로 유아들 상호간의 사랑과 신뢰감을 지니게 하여 향후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하는데 유조하게 하고 있다.
앞서가는 교육프로그램 으뜸의 교사진
이 유치원에는 소소반, 소반, 중반, 대반, 학전반 도합 17개 반급에 530여명의 원아가 있다. 매 반급에 침실, 세면실, 화장실이 곁달려있다. 언어영역, 수(數)영역, 미술영역, 과학영역, 적목영역, 음률영역, 소꿉영역 등이 있으며 수영, 축구, 영어, 미술, 피아노, 전자풍금, 손품금, 컴퓨터 등 반급의 자유선택으로 활동을 마음껏 할수 있는 놀이장이 있고 또 색텔레비, 녹음기, 피아노, 소독기가 갖추어져 있다. 반급은 유아들의 심미특성에 맞게 민들레반, 장미반, 병아리반, 토끼반, 무지개반, 달님반, 해님반 드응로 이름지어 감미롭다. 실내체육활동실에서 자전거를 타고 재롱부리는 세 살짜리 유아, 무대우에서 나풀나풀 춤추는 꼬마무용수...역할놀이, 상상놀이 교양위주임이 한눈에 알렸다. 개학이면 꼭 원아들의 전면건강검사를 하고 사회생활, 언어생활, 건강생활, 표현생활, 탐구생활 등 생활교양을 주로하면서 자유놀이교양으로 사회적응의 발달의식을 키워주며 흥취발휘로 상상력, 창조력, 인내력을 키워준다. 유아교양이 가정과 밀착관계됨을 감안하여 부모참여활동을 다양히 벌린다. 월간행사로 부모회를 가지고 교양원과 부모의 가위손잡기 프로그램을 짜고 <<어머니 참관의 날>>, <<학부모우편함>>등을 조직, 설치했다. 교양원양성에 중시를 돌렸다. 최근 몇 년래 17여만원을 투입하여 공청중앙단학교를 비롯해 성, 주의 각종 양성반에 23명을 보내 연수시켰으며 40여명을 한국, 조선과 국내 유치원에 보내 견학, 고찰하게 하였다. 청년원사 5항전능을, 청년우수원사평의를 하였다. 지금 이 유치원의 79명 교직원중 49명이 대학단과이상 학력을 소지, 30명의 중등전문학교이상 학력자중 19명이 대학통신수업을 받고 있다. 막강한 교사진을 무은 이 유치원은 1997년년에 190만자에 달하는 <<조선족유치원교양활동설계와 지도>>를 자체로 편찬, 출판하였다. 교양원들이 쓴 80여편의 교육과학연구논문이 국가, 성, 주의 우수논문상을 수상, 여러 간행물에 발표되였다.
코기러기 높이 나니 뭇기러기 깃을 친다
선우후락(先憂后樂)하면 이인위경(以人爲境)하는자 많다고 한다. 제6임 원장 허미란은 1992년에 게주봉을 이어받은 연변제1사범학교 졸업생이다. 유아교육에 소신을 둔 그녀는 지식의 깃을 굳혀 중앙당학교 경제관리 및 행정관리통신수업을 5년 반 하였고 1995년에는 한국이화녀자대학에 가 유아교육연수를 받았다. 석사학위도 달수 있었으나 새 청사를 지어 귀국한 그녀는 설계가 탐탁치 않아 아홉 번이나 수정하게 했다. 한국에서 돌아올 때 집의 가정용전기기자재는 하나도 못가져오면서 유치원에서 쓸 교구, 장식품, 유아교육참고서 등을 몇천원어치, 그것도 벌금까지 당하면서 안고온 허원장은 한국의 유아교육은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게발, 유도하는 놀이중심교육이라면서 세 살때 버릇 여든까지 간다며 소학교 기초교육을 하거나 동요, 동시를 외우게 하고 노래와 춤을 배워주는 지식편협, 예술단일의 주입식교육의 고정관념을 깨지 않으면 유아교육의 장래가 암담할 거라고 우려를 표했다. 허원장주위에 똘똘 뭉친 유아교육자들은 알찬 결실을 안아왔다. 허원장은 길림성 최우수보육사업일군, 주, 시 우수원장, 우수당원으로 당선, 3등공을 획득했다. 해마다 주, 시 선진당지부, 모범공회, 선진공청단 총지로, 민족단결모범으로 표창받았고 38명이 시급이상 우수교양원으로, 3명이 3등공을 획득, 14명이 성, 주, 시 교수능수로 되었다. 이 유치원의 유아들은 전국성 문예, 미술, 콩클에서, 수차 우수한 성적을 따냈다. 전국소년아동예술콩클에서 무용 <<고양이경찰>>, <<북춤>>, <<옹달샘>>, <<꽃무지개>>가 각각 창작 1등상, 출연 1등상을 수상, 전국소년아동기악콩클에서 김성 등 20여명 유아들이 1, 2, 3등을 수상, 전국아동서예그림콩클에서 <<나는 지구우에서 산대요>> 등 245폭의 미술작품이 1, 2, 3등상을 받았다. 그중 6폭의 작품이 한국 <<월간유아>>에서 주최한 미술작품전시회에서 입상했다. 일찍 호요방, 양상곤, 박일파, 임가미 등 중앙지도자들이 다녀갔고 유엔교육과학문화고찰단, 유엔아동기금회, 국제적십자회, 조선교육대표단 등 국제기구와 방문단, 미국, 일본, 독일, 오스트랄리아 등 나라와 전국의 50여개 소수민족참관단이 찾은 이 유치원은 유아교육의 요람으로 새로운 창달을 꿈꾸고 있다. <<시대변혁기에 학부모들의 이혼률이 상승하고 노무송출 등 해외나들이가 성행하여 가정의 따사로움이 적어지는데 이는 유아들의 발달과 성장에 불리하다>>고 하는 허미란 원장은 유아교육에 대한 사회적지지와 관심이 요청된다고 진솔하게 터놓았다.
육도하반의 뿌리깊은 나무
--사립동명중학교를 찾아서
대지에 봄기운이 넘치고 신록이 짙어가는 5월말 기자는 유도하반에 터를 잡고 뿌리깊은 나무마냥 서서히 기상을 떠쳐가고 있는 사립동명중학교를 찾았다. 용정시 관신향 승지촌--우리 민족의 우수한 대표자의 한사람인 주덕해 동지가 나서 자란 고장, 우리 민족의 사상 제일 처음 세워진 배움의 요람인 동명학교부근에 터를 잡고 1998년 6월 10이레 설립된 이 학교는 정규적인 기숙제사립중학교이다.
<<사립>>이여도 당의 교육방침대로
동명중학교의 창립인이며 교장인 전성찬선생은 대학시절 림업을 전공하였고 사회에 진출해서는 대외무역사업에 장기간 몸담그고 있었지만 교육개혁괌 족자질제고가 절실한 현시점에서 단호하게 업종을 바꾸었다. 그는 시장경제정립과 더불어 교육도 다종경로로 꾸려나가는 것을 제창하는데 고무되여 사립학교창립에 떨쳐나섰다. 당의 교육방침을 기본지도방침으로 하고 있는데서 비록 <<사립>>이란 성격을 띠고있지만 학생양성취지는 명확하다. <<개척정신이 강하고 독립사고능력을 갖추고 경쟁의식과 창조의식을 굳건하게 갖춘 덕, 지, 체, 미, 로가 겸비한 사회주의 신형의 미래지향적인재를 양성한다.>> <<학습에서의 자각, 생활에서의 자리, 행동에서의 자률, 문제해결에서의 자강을 제창한다.>> 상기한 양성취지에 걸맞는 환경마련에도 모박고 있다. 매연의 오염과 소음의 공해에서 멀리 벗어나 산좋고 물맑은 아늑한 지역에 터를 잡았지만 학생관리가 엄격하고 학생보호조치가 구전하며 생활습관에 대한 요구도 엄격하다. 엄격한 요구와 과학적 관리는 그 결실을 맺었다. 지난해말 용정시 교육위원회에서는 시안의 초중 2학년급을 상대로 수학, 영어, 한어, 조선어문 이 네 개 학과목에 대해 추췀시험을 치렀다. 38개소 중소학교 학생이 참가한 이번 시험에서 이 학교는 평균점수 수학 80.2점, 조선어문 81점, 한어 69.7점, 을 따내 3개 학과가 시적으로 단연 1등을 따내고 영어는 75.7점으로 3등을 하였다.
물을줄 아는 학생이 되라
<<주동발전을 고무하며 학습흥취를 불러일으켜 자기절로 진보하는 능력을 소유.>> <<학습방법을 알려주어 배움의 효과성제고.>> 동명중학교는 학생들이 단순한 <<책벌레>>가 되는 것을 반대하고 있으며 주입식교육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자기절로 머리를 써가며 독립사고능력을 높이는데 알심을 돌리고 있다. 1학년 어문교원 김태국은 학생들이 교과서에만 매달리지 않고 틈만 있으면 폭넓은 과외독서를 하도록 제창하고 있다. 그리고 시기에 따라 실력검사를 하고 있다. <<물을줄 아는 학생>> 이는 일전에 학생들에게 내준 조선어문 실력검사시제이다. <<연변일보>>에 실린 <<사색의 여물목>>에서 장정일 선생이 쓴 문장을 선택한 것이다. 학생들이 먼저 이 문장을 며칠간에 걸쳐 반복하여 읽어보게 한후 문제, 표기된 단어의 뜻, 표기된 부분의 문장성분, 중점단락에 대한 이해, 문장의 주제 등 물음에 해답하게 하였다. 뒤에는 느낌이나 감수를 쓰게 하여 조선어문과에 대한 종합실력을 검증하였다. <<이처럼 학생들이 <무엇때문에?><어째서?>하는 의문을 가지고 과외독서를 하도록 이끄니 학습효과 아주 좋았다>>고 김태국선생은 경험총화를 하였다. 이 학교는 독립사고능력이 강한 학생, 독특한 기능을 소유한 학생, 종합적자질이 높은 학생, 단항목이라도 출중한 학생들에 대한 표창과 장려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매학기 평균성적(95점이상)으로 학년 1등을 한 학생은 학잡비를 면제해주고 있다. 매 학기 평균성적이 3등안에 들면 200원-400원의 장학금을 지급하였는데 학기마다 학생들에게 지급되는 장학금은 2만여원에 달한다. 학기마다 주과경쟁도 펼쳐 3등안에 든 학생은 장려를 받았다.
알쭌한 교원대오 현대적 교수수단
이 학교는 알쭌한 중고급교원 58명이 10개 학급과 특장전업반 한 개 학ㄱ브을 가르치고 있는데 학생은 도합 357명에 달한다. 5600여평방메터에 달하는 교수청사와 기숙사에 컴퓨터는 60여대에 달한다. 현대적인 페회로 TV감시, 통제망이 교수에 사용되고 있다. 이 학교는 봉페식관리를 엄격하게 실시하고 있는데 모든 행동이 작식표와 엄밀한 일정에 따라 어김없이 행하여지고 있다. 아침에 기상해서부터 저녁에 취침하기가지 모든 것이 교원과 사감들의 배치에 따라 펼쳐지기에 규률적이면서도 활기를 띠고 있다. <<학생들의 성분이 비교적 복잡하지요. 부모가 출국했거나 이혼한 가정의 학생이 63%를 차지합니다. 장사를 하거나 기타 특수업종에 종사하기에 관리하기 어려워 이 학교에 입학시킨 가정도 적지 않습니다. 학생들이 너무나도 느슨한 환경에서 자라나 산만하기에 엄하지 않으면 장래를 망치게 됩니다.>>사감의 말이다. 교수시간을 제외한 모든 관리는 사감이 맡고 있는데 지어는 학생들이 저녁에 발 씻는 것까지 검사하고 나서 치침시키고 있다. 그래서 담배를 피우거나 연애하는 현상을 근본적으로 근절시켰다. 이 과정이 비교적 간고한 것만은 사실이였다. 지난해 가을 담배피우는 것을 방금 다스릴 때만하여도 개별적 학생은 극히 암암리에 담배를 계속 피우기에 발견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적발한 학생을 50원을 장려해 주고 절대적으로 비밀을 지켜주는 조치를 취했다. 과연 효험이 있었는데 13명 학생이 붙잡혔다. 어떤 학생은 세 번까지 붙잡혀 벌금도 적지 않게 하였다. 반복적인 교양을 거쳐 <<골초>>학생들이 굳게 결심하고 금연에 달라붙었다. 한 학생은 하루에 껌을 20개나 십으면서 담배를 끝내 끊고야 말았다. 이 학교는 봉페식관리를 실시하면서 학생들에 대한 관리를 엄하게 하지만 동시에 학교안전과 학생들에 대한 인신안전도 절대적인 담보를 기하고 있다. 외지인원이 함부로 교내에 침입하지 못하게 하였다. 외출했던 학생들이 봉변을 당한 일이 두 번 생겼다. 학교측은 공안부문과 연계하여 제때에 수사한후 호되게 타격하였다. 그리고 사회상에 널리 공개하였다. 공안, 안전 부문과 연계를 맺고 안전책임제도 가차없이 실시되고 있다. 하기에 학부모들은 <<자식을 학교에 완전히 맞겼어도 시름이 놓인다. 그래서 맡은 사업도 잘 돼나가고 있다.>>고 만족해 한다. 이 학교에는 학생들이 자체로 편집, 발행하고 있는 잡지 <<노고지리>>가 있다. 이 잡지는 학교의 정신풍모와 학생들의 생기로 넘치는 학습, 생활을 실감나게 반영하고 있어 갈수록 학생들이 애독하는 길동무로 자리잡고 있다. 학부모들도 이 잡지를 받아보고는 아주 만족해 하고 있다. 한 학부모는 올해의 <<노고지리>>2호에 이런 시를 써 학교에 감사의 마음을 표달했다. 아무도 3류생인 그들을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모두들 기적이라 말하지만 그들은 노력이라고 말합니다. 모두들 우연이라고 말하지만 그들은 땀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의 성공뒤에는 마지막 한걸음까지 최선을 다하는 동명인의 의지와 슬기가 살아있습니다. 보이지 않은 곳에서 땀 흘리는 사람들-- 그들이 있기에 우리의 자식들은 밝아집니다.
연길시제3중학교
심리건강교육으로 공부성적 제고
연길시제3중학교에서는 연변교육학회, 연길현대심리건강자문쎈터와 손잡고 긴장정서해소훈련실험을 통해 학생들읮 서를 안정시키고 자률의식을 높여 좋은 효과를 보고 있다. 이 학교의 2학년 9학급은 원래 전교에서 말썽많은 학급으로 이름났다. 이 학급에는 60명 학생중 35명 학생의 부모가 이혼 혹은 출국한데서 학생들이 부모들과 오래동안 갈라져 있고 또 마음의 상처를 받아 학생들의 심리가 보편적으로 건전하지 못했다. 그들 대부분이 성격이 괴벽하고 과격하고 조폭하여 쉽게 격동되고 심리통제능력이 없어 과당수업시간에 교원들과 충돌이 늘 생겨 말썽이 많았다. 하여 교원들이 학생들과 싱갱이질을 하다보니 과당수어을 마치고 나면 목이 쉬기가 일쑤였다. 지어 학급담임교원이 규률을 감독하지 않으면 상과할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갓 입학하였을 때 일부 학생들은 교원들과 칼을 들고 맞서는 일까지 있었다. 학습성적은 더 운운할 여지가 없었다. 초중입학시험에 수학성적이 20점이하가 18명, 60%로 학생의 공부가 낙제였다. 공부에 취미가 없으니 45분 수업시간을 참지 못해 1, 2개 과당만 참가하고 중도에 도망가거나 오전 4개 과당수업에 진정하기 바빠하는 학생이 20여명이나 되었다. 그러다보니 학습성적은 물론 학급의 과당질서는 말할나위 없고 반학기가 지나 유실에 직면한 학생이 거의 절반인수에 달했다. 이 학교 지도부에서는 연변교육학회, 연길현대심리건강자문쎈터와 손잡고 학생들의 지력과 정감을 상호 발전시키는 긴장정서해소훈련실험을 지난해 6월부터 이 학급에서 진행하였다. 이 훈련은 셈세기, 음악체조, 글쓰기 등 조합적인 방법으로 학생들의 긴장한 정서를 해소시키는데 처음에는 여러 가지 형식으로 수자를 세는 쉬운 방법도 아주 틀리고 체조때에는 동작이 일치하지 못하고 신경심축의 불균형으로 손팔도 바로 펴지 못하던 것이 매일 오후 30분가량 한달간 견지하니 셈도 잘 세고 동작이 일치하고 음악체조도 잘하였다. 한달간의 훈련을 거쳐 학생들의 심리가 비교적 안정되였는데 처음 한 개 과당수업도 참지 못하던 학생이 똑바로 앉아 견지할수 있었고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 시험에서 긴장해하던 정서가 안정되고 짜증나던 일들이 경쾌한 음악속에 해소되였다. 지난해 기말시험때 다른 반급은 7, 8절 시간에 복습하고 이 학급은 공부 못하고 계속 매일 이 훈련을 견지하였는데 기말시험성적이 보편적으로 제고되였다. 2학년 9학급 이혜숙담임교원은 <<처음 이 반급을 맡았을 때는 학생들을 교양해낼 것 같지 못했다>>고 당시 학급정황을 회고하면서 심리긴장정서해소훈련이 아니였더라면 유실생이 적지 않게 났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훈련을 통해 학생들은 정서가 안정되였고 과당수업질서를 잘 지키며 자률의식이 높아져 자각적으로 규률을 준수하고 공부성적이 크게 제고되였고 이 학급은 지금까지 유실생이 한명도 없는 학급으로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