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분 | 서적 | 소설 동의보감 | 토진주류씨족보 | |
년도 | 1999년 | 1762년 | 2005년 | |
조 부 | 이름 | 유술이 | 유지(柳池) | 유지(柳池) |
직업 | 안마하는 의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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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 이름 | 유흥삼 | 유응성(柳應星) | 유응성(柳應星) |
직업 | 유가고약 판매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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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운ㆍ유의태 | 이름 | 유의태 | 유운(柳霣) | 유운ㆍ유의태 |
직업 | 의사 |
| 허준 스승 | |
배우자 | 성씨 | 오 씨 | 실 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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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들 | 이름 | 유도지 | 후 무 | 후 무 |
직업 | 혜민서 봉사 |
그런데 2005년 족보에는 류의태의 생몰년도가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동의보감촌 가묘 묘비문에는 류의태가 1516년에 태어나서 1580년에 세상을 떠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1762년 토진주류씨족보에 류의태의 생몰연도가 누락했을까?
필자와 거창유씨 문중의 문제 제기로 ‘류의태’가 또 다른 의미에서 논란이 되기 시작하자 언론에서도 ‘류의태’의 실존 여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2009년 12월 19일 조선일보에 관련 기사가 실렸다. 조선일보에서 “산청군청과 진주류씨는 기록에 없던 류의태를 복원했으며, 류의태 일대기와 존영(尊影)을 만들었고, 동의보감촌에 류의태 동상을 건립하였으며, 2005년 진주유씨족보에 류의태를 등재하였다.”라고 기사화되었다. 그리고 진주유씨 종친 류보형이 “류의태가 드라마에 등장하여 문헌에 없어도 설화나 상황적 요인으로 볼 때 진주유씨 조상으로 판단되어 진주유씨족보에 등재하였다.”라고 말했다.
아래는 신문기사의 전문이다.
드라마가 인기를 끌자 산청군과 진주류씨는 기록에 없던 류의태를 복원했다. 류의태 일대기와 영정(影幀)을 만들었으며 동상 건립에도 힘을 보탰다. 진주류씨 대종회는 족보에 없던 류의태를 2005년 새로 포함하기도 했다.
진주류씨 종친 류보형(84)씨는 “드라마가 나오고 ‘류의태 선생이 우리 조상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와 조사했다”며 “이렇다 할 문헌은 없어도 설화나 상황적 요인을 볼 때 우리 조상이라는 판단이 들어 족보에 올렸다”고 했다. 그는 그동안 족보에 오르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간혹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경우도 많다.”며 “기록이 없다고 조상이 아니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지 않으냐”고 했다. 「조선일보」 2009년 12월 19일 기사.
그동안 토진주유씨족보에 없던 ‘류의태’라는 인물이 2005년에 간행된 토진주유씨족보에 유운의 또 다른 이름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우연의 일치일까? 유운은 아들이 없었다. 그의 대에서 족보는 끝나고 있다. 유운을 ‘류의태’로 둔갑시키기에 그지없이 좋은 조건이 아닐까? 이렇게 위험한 추측을 해보기도 했다.
2015년 5월 03일 연합뉴스에서 산청군청의 역사 왜곡 기사가 나왔다. 연합뉴스 기사 내용 일부이다.
'서자는 족보에 등재되지 않는다'를 가묘 비문에 등재하고, 지역 향토사학자들에게 '선비의 고장 산청의 명소와 이야기' 집필을 권유한 것을 사례로 들었다.
산청군이 유의태 선생을 '산청을 빛낸 인물'로 선정해 한의학박물관과 산청박물관에 전시하고 홍보물도 만들었다고 전했다.
"(산청군이) 유이태는 거창유씨이고, 유의태는 진주유씨 조상으로 다른 사람이다"라며 억지 주장을 펴기도 했다고 밝혔다.
산청군이 가상 인물이 실존하는 것처럼 만들려고 '선비의 고장 산청의 명소와 이야기', '동의보감·산청 허준과 류의태 이야기' 등 설화 책을 간행했다고 그는 덧붙였다.
이에 따라 유 박사는 동상과 약수터 등 유적지를 철거하거나 철저한 고증을 거쳐 유적지 명칭에 있는 유의태를 유이태로 변경해 달라고 산청군에 요구했다.
만약 산청군에서 수용하지 않으면 감사원, 국민권익위원회, 교육부,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재청, 경남도에 역사 왜곡과 관련한 민원을 낼 예정이라고 유 박사는 밝혔다.
이런 주장에 대해 산청군은 난감해하고 있다.
관광개발 등 업무를 담당하는 '동의보감촌' 관리사업소의 한 관계자는 "지방자치단체에서 관광지를 개발할 때 실존 인물의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삼지는 않으며 상당수가 허구도 포함돼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유의태 선생 역시 소설 속 주인공일 뿐이며 드라마와 소설 덕에 우리 산청이 전국에 알려지는 계기가 돼 관광 상품으로 개발했다"라며 "소설과 현실을 명확하게 구분해 줬으면 좋겠다."라고 제안했다.
특히 "유의태 선생을 기반으로 관광개발사업을 추진하면서 수 백억원의 예산이 들어 철거할 수 없는 상태이다"라며 "유이태 선생의 후손들과 해결방안에 머리를 맞대겠다."라고 말했다.
유이태 후손들은 '동의보감촌'을 없애라는 것이 아니고, 유이태에서 파생된 허구의 인물 유의태의 동상 이름 변경과 가묘, 묘비, 기념비를 철거하는 요구이었다. 그러나 산청군청은 “후손들과 해결을 위한 대화는커녕 전화 통화 없었다.”라고 유이태기념사업회에서 말했다.
유운을 ‘류의태’로 둔갑시킨 추측은 추측일 뿐, 사실을 확인해 보기로 했다. 나는 2005년 족보에 ‘류의태’가 등재한 경위를 들어보기 위하여 진주류씨 가문 두 분을 만났었고, 한 분에게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