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중국 국가주석이 누구죠? 한국인, 중국 얼마나 알고 있나 국민 10명 중 1명만이 정답 맞혀 … 호감 있으나 지식은 초보 수준
3. 세계는 지금 ‘차이나 코드’ 학습 열풍 “중국의 부상 막을 길 없다”… 글로벌 기업 총수들 자녀에게 중국어 교습
4. 월급 4000위안으로 차 굴리며 생활 한국 돈 48만원밖에 안 되지만 부수입 짭짤하고 복리후생 제도 든든
5. 산시성의 ‘고양이 귀’ 요리 뭘로 만들었을까 아는 만큼 즐기는 중국 음식 음식 이름에 재료…제조법 들어 있어…이름 모호하면 '정체'묻는 게 좋아
6. 깔끔하게 취하고 살며시 깨는 名酒들 펀주 · 마오타이주 · 우량예 · 주구이 등 애주가들 찬사
7. 신데렐라인가, 옛 영광의 부활인가 19세기 중엽까지 절대 강국으로 존재 … 2015년엔 미국 제치고 중국의 세기로
8. 중국의 위협, 또 다른 기회다
9. ‘마오쩌둥의 초상’이 세계를 바꾼다 1조 달러 넘는 외환보유액 발판 … 미국 견제 뿌리쳐야
10. 졸업하려면 ‘코피 나게’ 공부해야 대학 입학 쉽지만 졸업은 10%선… 학비는 중국 학생의 10배
11. 할리우드의 거센 공격을 방어하라 서민의 삶 감싸던 5세대 감독, 이젠 블록버스터로 승부 … 6세대는 중국 현실 날카롭게 비판
12. 소더비 경매 흔드는 ‘大陸의 붓’ 국제 미술계 주류로 급부상 … 현대 작가 작품도 20억원 가까이에 팔려
13. 연구자 늘었지만 수준은 ‘기초 단계’ 너도나도 중요성 강조하나 투자엔 인색 … 어설픈 총론 수준 머물러
14. [부동산 투자] 베이징 아파트값 3년 새 두 배로 2008년 올림픽 앞두고 고공행진 … 전통가옥 사라지고 주상복합 들어서
무섭게 성장하는 중국 그들 알아야 미래가 보인다 유상철<scyou@joongang.co.kr> | 제6호 | 20070423 입력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 주룽지(朱鎔基) 총리를 만났다. 주 총리는 “오랜 수감생활을 어떻게 이겨냈는가”라고 물었다. “심심해 파리를 잡기도 했다. 그러나 파리를 꽉 잡으면 죽어버리니 재미가 없다. 그래서 죽지 않을 정도로 잡았다가 풀어주고 다시 잡는다”고 김 대통령은 말했다. 주 총리의 호기심이 발동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가”라고 묻자 김 대통령은 “한국에 오면 보여주겠다”고 했다. 주는 파안대소했다. 중국 경제의 사령탑을 한국으로 부르는 김 대통령의 수가 절묘했기 때문이다. 주룽지는 2000년 한국을 방문, 삼성화재에 중국 내 영업허가권을 선사했다.
7년 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한국을 찾았다.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분당으로 직행했다. SK텔레콤 테스트 센터에서 중국 3세대 이동통신기술을 시험하며 정보통신부 장관 격인 왕쉬둥(王旭東) 부장에게 “SK와 친구가 되라”고 말했다. SK의 중국사업에 청신호가 켜지는 순간이었다.
중국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먹고사는 문제인 경제에 집중돼 있다. 92년 수교 당시 63억 달러였던 양국 교역액이 지난해 1180억 달러로 치솟았다. 양국을 오간 이도 지난해 732만 명이나 됐다. 원 총리는 중국에 투자한 한국 기업이 3만 개라고 했지만, 주중 한국대사관은 4만 개로 추정한다. 2012년 양국은 교역액 2000억 달러 돌파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우리의 대(對)중국 경제교류에서 조금씩 불안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대중 무역흑자는 210억 달러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는 1년 전보다 9.9% 줄어든 수치다. 대중 무역흑자가 5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세로 돌아섰다. 지난해 말부터 중국에서 야반도주하는 한국 기업 수도 늘고 있다. 중국의 투자환경이 바뀐 게 주요 이유다. 임금이 오르고, 법제가 강화되면서 적당히 사업하는 방식이 한계에 봉착한 것이다. 중국은 지난 6일엔 가공무역 금지품목을 지난해보다 186개 늘어난 990개로 확정ㆍ발표했다. 이에 따라 싼 중국 노동력을 이용해 일회용 젓가락을 가공한 뒤 이를 한국으로 가져오는 일은 불가능해졌다. 지난달 내ㆍ외자 법인세율이 단일화되는 등 외자가 누리던 특혜도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13억 인구, 연 10% 이상 성장하는 중국은 아직도 꿈의 시장이다. 결국 달라진 중국 환경에 적응하는 게 급선무다. 그 첫 발짝은 중국 알기다. 올해 수교 15주년이 됐지만 중국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아직도 걸음마 단계다. 조사 결과 중국의 국가주석이 누구인지를 아는 한국인은 10%를 밑돌았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다. 영원한 이웃 중국을 지금부터라도 차근차근 연구하자.
중국 국가주석이 누구죠? 한국인, 중국 얼마나 알고 있나 국민 10명 중 1명만이 정답 맞혀 … 호감 있으나 지식은 초보 수준 신창운 | 제6호 | 20070423 입력
역사적ㆍ지리적 이유 때문인지 호감도가 높은 편이다. 경제적ㆍ문화적 교류도 활발하다. 그러나 중국에 대한 우리 국민의 지식은 초보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다. 중앙SUNDAY가 지난 11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다. 중국 국가주석 이름을 알고 있다고 답한 사람은 18.2%, 이들 중 후진타오(胡錦濤)라고 정확하게 말한 사람은 절반이 못 됐다. 10명 중 1명 정도만 알고 있다는 이야기다. 젊은 층의 중국에 대한 지식이 더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가주석 이름을 알고 있다는 응답은 40~50대가 20~30대보다 높았다. 중국에 대한 생각이나 느낌도 막연한 게 많았다. 중국 하면 제일 먼저 무엇이 떠오르느냐는 연상 단어 질문에 ‘크다/넓다’ > ‘만리장성’ > ‘인구가 많다’ > ‘중국어’ 순으로 답이 이어졌다.
중국에 대한 인식을 미국ㆍ일본과 비교한 결과도 흥미롭다. 자녀 유학과 언어 습득 등에서 여전히 미국을 선호했다. 3개국 중 미국 유학은 72.1%, 영어 습득은 67.4%에 달했다. 일본은 여행 측면에서 중국보다 선호도가 조금 나았으며, 중국은 호감도 측면에서 일본보다 좋은 점수를 받았다. 자녀 유학도 일본보다는 중국 선호가 높았다.
중국의 경제성장 지속이나 대북 관계 등 중국을 바라보는 우리 국민의 심정은 복잡한 것 같다. 중국이 경제성장은 계속하겠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라고 봤다. 또 중국이 앞으로는 더 이상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제공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다. 중국이 북한에 대한 영향력은 있지만 남북한 통일은 바라지 않는 것으로 봤다.
전화로 실시한 이번 조사의 최대 허용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8%포인트다
세계는 지금 ‘차이나 코드’ 학습 열풍 “중국의 부상 막을 길 없다”… 글로벌 기업 총수들 자녀에게 중국어 교습 유상철<scyou@joongang.co.kr> | 제6호 | 20070424 입력
양회(兩會)라고 불리는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정협회의는 매년 3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개최된다. 이 양회에 참석한 대표들 머리 위로 빛나는 별이, 떠오르는 중국의 앞날을 마치 환하게 비춰주는 듯하다. [신화통신=연합뉴스]
명품 브랜드 구치 그룹 회장인 로버트 폴렛, 연매출 50억 달러를 자랑하는 존스 어패럴의 최고경영자 피터 보너파르트, 세계적 헤지펀드 투자자인 짐 로저스. 이들에겐 공통점이 하나 있다. 자녀에게 중국어를 가르친다는 것이다. 로저스는 가구와 전자제품에 중국어 이름표까지 붙였다. 세 살짜리 딸의 중국어 공부를 위해서다. 뉴욕의 아시아소사이어티는 2015년까지 미국 고등학생 중 5%에 해당하는 75만 명이 중국어를 배우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보너파F??말처럼 “중국어 능력이 비즈니스 경쟁력 확보의 관건”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유행하는 건 중국어만이 아니다. 중국 미술이 미국 경매장을 달구고 있다. 지난달 21일 뉴욕 요크가의 소더비 경매장. ‘아시아 현대미술 경매’에 나온 작품 311점 중 중국 것이 90% 이상을 차지했다. 그중 장샤오강(張曉剛)의 ‘핏줄: 세 명의 동무’는 210만 달러에 낙찰됐다. 소더비가 판 중국 현대미술 작품은 2004년 300만 달러에서 지난해엔 7000만 달러로 폭증했다. 중국 미술이 빠지면 경매가 안 된다는 말이 나온다.
중국은 21세기의 화두다. 그 원동력은 고속 성장 중인 중국의 경제력이다. 자난해 중국 교역액은 1조7607억 달러로 미국ㆍ독일에 이어 3위. 그러나 보시라이(薄熙來) 상무부장은 올해는 적어도 수출에선 세계 1위, 교역액은 독일을 누르고 2위가 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그런 중국의 힘은 곳곳에서 나타난다. 지난해 12월 21일. 상하이 바오산(寶山) 강철은 처음 아시아 대표로 나서 브라질의 철광석 공급업체와 2007년 철광석 가격을 협의ㆍ결정했다. 그동안 아시아를 대표한 일본의 신일본제철을 누르고 업계 대표가 됐다.
동남아는 이 같은 ‘파워 시프트(Power Shift)’에 따라 재빨리 중국 쪽으로 줄을 서고 있다. 지난 1월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3(한ㆍ중ㆍ일) 정상회의가 열린 필리핀 세부.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도착한 공항에서 회의장까지 거리 곳곳에 그의 초상화가 나붙었다.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은 “중국이란 빅 브러더(Big Brother)가 있어 기쁘다”고 했다. 동남아를 품에 안는 중화경제권 건설이 멀지 않은 듯하다.
중국의 부상은 정치적으로도 뚜렷하다.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은밀히 힘을 기른다는 ‘도광양회(韜光養晦)’ 정책에서 벗어나 ‘대국 책임론’을 주장하고 있다. 북핵 해결을 위한 6자회담 주선은 그런 맥락이다. 독일 황제 빌헬름 2세가 황색인종 억압론인 ‘황화론(黃禍論)’을 들먹인 것은 1895년 청일전쟁 말기. 일본을 염두에 뒀다. 중국의 부상을 우려하는 ‘중국 위협론’이 나온 것은 1990년이다. 일본 학자가 처음 제기했고, 미국 매스컴이 이를 확대ㆍ전파했다. 2008년 8월 8일 오후 8시 개막될 베이징 올림픽은 중국의 부상을 천하에 알리는 자리가 될 것이다.
중국의 부상은 어디까지 지속될까. 중국이 밝힌 그림은 21세기 중엽까지다. 덩샤오핑(鄧小平)은 ‘세 걸음(三步走)’ 전략을 밝혔다. 1990년까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온포(溫飽)’, 2000년까지 문화생활도 즐기는 ‘소강(小康)’, 21세기 중엽까지 중등 선진국인 ‘대동(大同)’ 사회를 건설한다는 것이다. 장쩌민(江澤民)은 ‘새로운 세 걸음’ 전략을 말했다. 2010년 1인당 소득 2000달러,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이 되는 2021년엔 3000달러, 중국 건국 100주년이 되는 2049년엔 5000달러 수준에 올라선다는 것이다.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의 성장전략은 세 가지가 축이다. 첫째는 조화사회. 먼저 부자가 되는 선부론(先富論)에서 다 함께 부자가 되는 공동부유론이 골자다. 둘째는 자주혁신. 기술 도입에서 기술 개발로 바꾸자는 것이다. 셋째는 인재 강국. 중국을 제품 공장이 아닌 인재 공장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지난 3일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중국의 부상은 불가피하다. 그것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것도, 해야 할 것도 없다”고 말했다. 우리가 할 일은 당분간 ‘중국의 흐름’을 타는 것 외엔 없을 것 같다.
월급 4000위안으로 차 굴리며 생활 한국 돈 48만원밖에 안 되지만 부수입 짭짤하고 복리후생 제도 든든 장세정<zhang@joongang.co.kr> | 제6호 | 20070424 입력
지난해 중국 주재원으로 발령나 올해로 베이징(北京) 생활 2년차인 A씨는 친분이 생긴 중국 공무원 B씨와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 고량주가 몇 잔 돌면서 분위기가 달아오르자 월급이 화제에 올랐다. A씨는 대화 도중 B씨의 월급이 불과 4000위안(元) 정도란 얘기를 듣고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속으로 가만히 한국 돈으로 환산해보니 고작 48만원에 불과했다. 올해 15년 정도 근무한 중견 공무원의 월급치고는 황당할 정도로 적어 보였다.
베이징의 집값도 만만찮게 올랐는데 이 정도 수입으로 3인가족이 제대로 중산층 수준의 생활을 누릴 수 있을까 싶었다. 중국 경제가 고속 성장한다고 떠들더니 중국인들의 소득 수준이 별것 아니라는 생각도 내심 들었다. 그러나 B씨는 현재의 생활에 큰 불만이 없다. 월급 명세서에 찍힌 돈은 4000위안이지만 각종 수당과 복리후생 제도가 든든하게 뒷받침해주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홍콩의 한 신문은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과 원자바오(溫家寶) 국무?총리의 봉급이 기본급과 직무수당 등을 합해 한 달에 3000위안(약 36만원)가량 된다고 보도했다. 대졸 신입사원의 평균 월급이 1000∼2000위안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중국을 이끄는 지도자의 월급치고는 터무니없이 적은 액수다. 두 사람보다 직급이 한참 낮은 천즈리(陳至立) 국무위원이 최근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政協) 위원들과 토론을 하던 중 “내 월급은 1만 위안쯤 된다”고 이례적으로 공개했다. 사실이라면 국가주석보다 3배 이상 많다는 얘기가 된다.
중국인의 월급 또는 한 달 수입은 외국인들이 선뜻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다. 마치 양파껍질처럼 불투명하다. 도대체 중국의 중산층은 한 달에 얼마를 버는 것일까. 중국의 대표적인 중산층으로 분류할 수 있는 왕모(45) 교수의 월급 명세서를 들여다보자. 그는 언론학을 연구한 경력이 20년가량 된다. 가족으론 아내(44)와 딸(13)이 있다. 그는 주변 사람들이 “자네 월급 얼마 받나”라고 물으면 “5000위안쯤 된다”고 건성으로 대답한다. 대학에서 매달 발급하는 월급 명세서에 기록된 대로 1300위안의 기본급, 3700위안의 직무수당을 합쳐 대충 말한 것이다. 하지만 왕 교수가 월급 명세서에 찍힌 대로 매달 5000위안만 아내에게 가져다준다면, 아내에게 자주 바가지를 긁힐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이치다.
그러나 왕 교수가 받는 돈을 ‘월급’이 아니라 ‘수입’이란 개념으로 범위를 넓혀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는 매주 한 차례 정도 강의를 하고 강의비 명목으로 매월 1000위안을 따로 받는다. 학생들에게 과제를 내주고 시험을 보게 하면 출제비로 500위안이 또 들어온다. 인터넷 강의를 해서 별도로 300위안을 더 벌기도 한다. 대학원생 논문 지도비 또한 월 300위안이다. 베이징 근교에서 열리는 세미나에 참석하면 500위안의 세미나비가 따라온다. 대략 한 달에 한 번 정도 외부 강연 요청이 들어오는데 많게는 3000위안의 강사료를 받는다. 이런 부수입들을 합치면 월급보다 많을 때가 많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얘기다. 그의 아내는 “오늘은 또 무슨 명목의 수당을 받아왔느냐”며 즐거운 비명을 지르게 마련이다.
자, 그렇다면 이번엔 왕씨 가족의 씀씀이를 살펴보자. 120㎡짜리 아파트의 한 달 관리비가 200위안이다. 부식비와 수도료, 전기요금 등으로 2000위안가량이 나간다. 배기량 1600cc짜리 자동차의 기름값을 비롯해 전체 교통비로 800위안을 쓴다. 휴대전화 등 통신비가 300위안 정도다. 딸아이에게 피아노와 영어를 가르치는데, 이 사교육비가 500위안 정도 든다. 한 달에 한 번 근교로 가족이 나들이를 갈 때마다 300위안 정도를 지출한다. 매주 한 번씩 하는 외식비를 합치면 한 달에 600위안가량 된다. 여기에 기타 잡비 등을 감안해도 월 5000∼6000위안이면 3인가족 생활비로는 족하다. 결국 1만1200위안가량을 벌어서 5000∼6000위안가량 흑자를 보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렇다면 중국에서 생활하는 한국인 3인가족이 5000위안 정도로 한 달을 보낼 수 있을까. 한마디로 어림없다. 특히 한국에서 누리던 생활 수준을 유지하려면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이른바 ‘외국인 프리미엄’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중국의 중산층이 사는 지역에 30평형대 아파트를 구하면 월세가 5000∼1만 위안은 된다. 중국인들이 먹는 값싼 음식을 매일 먹을 수 없으니, 가끔 한국식당을 가는데 제대로 맛을 내는 식당의 음식 가격은 서울과 별반 차이가 없다. 한국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왕징(望京)의 삼부자(三富者)와 서라벌, 인근의 애강산(愛江山)과 블루레이크, 대사관 밀집지역에 위치한 오죽헌(烏竹軒) 등 인기있는 한국식당들은 서울과 가격이 엇비슷하다.
중국인들이 가는 이발소는 10∼15위안이면 된다. 그러나 촌티 안 나게 한국식으로 제대로 깎으려면 적어도 50위안 이상은 줘야 한다. 중국인들이 1위안을 내고 버스 탈 때, 기본요금 10위안짜리 택시를 타야 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이래저래 지출이 만만찮다. 1990년대 한국인들 사이에선 3000위안이면 왕징에서 한 달 버티며 사업구상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던 것이 2000년대 초엔 5000위안으로 올라갔다. 최근엔 이것도 안 된다. 자영업을 하는 한국인 L씨는 “요즘엔 1만 위안 정도는 있어야 그럭저럭 중국에서 버틸 수 있다”고 말했다.
산시성의 ‘고양이 귀’ 요리 뭘로 만들었을까 아는 만큼 즐기는 중국 음식 음식 이름에 재료…제조법 들어 있어…이름 모호하면 '정체'묻는 게 좋아 신계숙 | 제6호 | 20070424 입력
여행은 아는 만큼 본다고 했다. 요리 역시 아는 만큼 즐길 수 있다. 비행기와 책상, 잠수함 빼고 다 먹는다는 중국 요리는 특히 그렇다. 중국 요리에는 어떤 매력이 있는 것일까.
우선 중국 요리는 참 친절하다. 요리 이름만 봐도 어떤 재료를 어떻게 썰어서, 또 어떻게 만들었는지 드러난다. ‘투더우 차오러우 (土荳片炒肉片)’을 보자. 감자(土荳)를 얇게 썰고(片), 돼지고기(肉) 또한 얇게 썰어(片) 볶았다(炒)는 뜻이다. 다음은 ‘궁바오지딩(宮保鷄丁)’. 궁바오(宮保)는 관직 이름이다. 지(鷄)는 닭, 딩(丁)은 주사위처럼 정육면체로 썬다는 뜻이다. 궁바오라는 직책을 담당하던 사람이 즐겨 먹던 닭고기 요리다. 요리 이름에 관직이 들어 있는 것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깐소새우의 정확한 이름은 ‘간사오샤런(干燒蝦仁)’이다. 양념을 넣고 국물이 없게(干) 졸인(燒) 새우(蝦仁)라는 뜻이다.
중국 요리는 낙천적이다. ‘취안자푸(全家福)’는 전복과 해삼 등이 들어간 비싼 요리다. 가난한 사람들이 부잣집에서 버린 음식을 주워 먹으면서, 그래도 우리집 식구들 모두 복받을 것이라고 희망을 갖던 요리다. 우리도 즐겨 먹는 닭발은 중국에서 ‘펑좌(鳳爪)’, 즉 봉황발로 대접받는다. 곰발, 낙타발, 거위발, 오리발 등은 음식점에서 모두 제 이름표를 달고 나온다. 그러나 닭발만큼은 봉황발이라고 부른다. “내 비록 돈이 없어 곰발은 못 먹어도 봉황발은 먹는다”는 밉지 않은 허세가 묻어난다.
산시(山西)성에는 ‘마오얼둬(猫耳朶)’라는 고양이 귀 요리가 있다. 고양이 한 마리에 귀는 두 개밖에 없는데 도대체 몇 마리의 고양이가 귀를 뜯기는 아픔을 겪었을까? 그러나 실제 그 요리는 진짜 고양이 귀로 만든 게 아니고, 밀가루를 반죽해서 고양이 귀처럼 만들었을 뿐이다. 중국에서 요리를 시킬 때 이름이 모호한 것은 종업원에게 그 요리의 정체를 묻는 게 좋다. ‘훠옌산샤쉐(火焰山下雪: 화염산에 눈 내리다)’라는 요리를 주문했더니 토마토에 설탕을 뿌려 나왔다.
중국 요리는 또 감각적이다. 눈으로 보는 색깔, 코로 맡는 냄새까지 모두 묘사한다. 생선의 하얀 속살은 백옥(白玉) 같다고 하고, 두부는 여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풋배추나 시금치가 주는 색은 비취(翡翠)로 비유한다. 검은색은 보통 후추 등 짙은 색 조미료를 표시한다. 한편 중국인들이 즐기는 ‘샹차이(香菜)’는 우리나라에서 ‘고수’라고 부르는 채소다. 이름을 보면 채소에서 은은한 향이 날 듯하지만 ‘특이한 향’이 나기 때문에 친해질 때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남방 지역에서 즐겨 먹는 퀴퀴한 냄새가 나는 두부 ‘처우더우푸(臭豆腐)’. 그 냄새를 맡자면 앞에다 ‘악’자 하나를 더 붙여서 악취두부라고 해야 맞을 듯하다. 그래도 중국인들은 “냄새는 고약하지만 먹으면 먹을수록 향이 난다”며 좋아한다.
중국 요리에는 이야기가 있다. ‘훙사오러우(紅燒肉)’는 삼겹살에 간장을 넣어 붉은빛이 나게 조린 요리다. 마오쩌둥(毛澤東)은 머리가 텅 빈 것처럼 느껴질 때 주방장에게 “나 머리 좀 채우게 훙사오러우 한 그릇 해달라”고 했다 한다. 중국의 현대 작가 위화(余華)가 쓴 ‘허삼관 매혈기’의 주인공 허삼관은 피를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 집안 형편이 어려우니 세 아들은 매일 옥수수 죽으로 끼니를 때운다. 어느 날 아이들이 밥을 먹고 싶다고 하자 아빠는 밥은 있다고 치고 말로만 훙사오러우를 만들어 주겠다고 한다. “비계와 살이 반반씩 붙은 삼겹살을 손가락 굵기로 썰어서 끓는 물 속에 넣고 간장 오향 황주를 넣고 푹 곤단다. 두 시간 정도 고아 물이 졸았으니 뚜껑을 열어보자. 정말 맛있겠지.” 아이들은 요리 이야기만 듣고도 침을 꿀꺽 삼킨다. 훙사오러우는 먹으면 힘이 날 것 같은, 그러나 쉽게 먹을 수는 없는 요리였다.
깔끔하게 취하고 살며시 깨는 名酒들 펀주 · 마오타이주 · 우량예 · 주구이 등 애주가들 찬사 신계숙 배화여대 교수 | 제6호 | 20070424 입력
중국 식당 술 차림표
중국의 한 식당에서 술 차림표를 펼쳤다.
중국의 대표적 명주 우량예(五梁液)가 그 종류만 11가지가 쓰여 있다.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이럴 때 어떻게 골라야 하나? 중국의 술은 숙성기간이 길수록, 알코올 도수(度數)가 높을수록, 양이 많을수록 값이 비싸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된다. 숙성기간은 병에 쓰인 표시를 통해 알 수 있다. 도수는 기온이 20도인 곳에서 술 100㎖당 주정 농도(알코올 함량)가 50%면 50짜리 고량주가 된다. 50가 넘으면 도수가 높은 ‘가오두주(高度酒)’라고 하고, 40 이하면 도수가 낮은 ‘디두주(低度酒)’라고 하여 ‘바이주(白酒)’ 중에서는 순한 술로 친다.
자, 그러면 실례로 6번을 보자. ‘五梁液 君臨天下52 (2斤裝) ¥1588’이라고 쓰여 있다. ‘두근장(2斤裝)’은 무엇일까. 술의 용량 표시다. 우리는 술의 단위를 모두 ㎖로 표기하지만, 중국은 ‘근(斤)’을 단위로 쓴다. 반근(半斤)은 250㎖, 한 근(1斤)이면 500㎖이니, 두근장(2斤裝)은 1ℓ다.
우량예
중국의 북방에서는 산시(山西)성의 펀주(汾酒)가 술맛 좋기로 유명하다. 남방에서는 구이저우(貴州)성의 마오타이주(茅台酒), 쓰촨(四川)성의 우량예, 수이징팡(水晶坊), 젠난춘(劒南春)이 명성이 자자하고, 후난(湖南)성의 주구이(酒鬼)도 사랑을 받는다. 한국에서 중국 술을 고를 땐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싼값에 독한 바이주를 찾는다면 56짜리 얼궈터우주(二鍋頭酒)가 딱이다. 여럿이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는 술은 산둥(山東)성에서 나온 쿵푸자주(孔府家酒), 베이징 사람들이 즐기는 징주(京酒)가 좋을 듯하다. 마오타이와 우량예, 주구이, 수이징팡은 꽤나 고급 술이다. 대만에서 나오는 진먼가오량(金門高粱)은 58짜리로 깔끔하게 취했다가 살며시 깨 애주가들의 찬사가 끊이지 않는다.
이번엔 술 마실 때의 에티켓을 살펴보자. 술 권할 때는 두 손으로 술잔을 들고 상대방의 눈을 보며 술을 권한다. 이때 한잔 올린다는 뜻의 “워징니(我敬 )” 중국어 한마디 하면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진다. 술을 마시기 전 한 번에 다 마시려면 “간베이(干杯)”라고 하고, 조금만 마시고 싶으면 “쑤이이(隨意)”라고 한다. 술을 못 마시면 찻잔을 들어 “이차다이주(以茶代酒)”라고 하면 된다. “차로 술을 대신할게요”라는 뜻으로 상대방도 이해한다.
술잔이 비어 종업원이 술을 따라 줄 때는 두 번째 손가락과 세 번째 손가락을 살짝 구부려서 잔 앞의 테이블을 가볍게 두 번 친다. 손가락으로 ‘고맙습니다’라고 표시하는 것이다. 여기엔 사연이 깃들어 있다. 하루는 민정 시찰에 나선 청(淸)의 건륭(乾隆) 황제가 신하를 데리고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게 됐다. 식사 중 황제가 신하에게 술을 따라 주었다. 신하는 당장 무릎이라도 꿇고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이곳에 황제가 있다는 걸 다른 사람에게 알릴 수 없었다. 기지를 발휘한 신하는 무릎 꿇고 절하듯, 두 손가락을 굽혀 테이블을 두드려 감사를 표했는데 이후 모든 사람이 따라 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타이밍이다. 술 따르기 전에 테이블을 두드리면 ‘술을 따르지 마세요’라는 뜻이니 술을 다 따랐을 때 두드리자.
중국인들이 술자리에서 간베이를 외치면서 하는 말이 있다. “간칭선 이커우먼, 간칭첸 톈이톈(感情深一口悶, 感情淺添一添).” 날 좋아하면 간베이 하고, 나에 대한 감정이 그저 그렇다면 술잔에 입술만 대라는 말이다. 이 상황에서 술잔에 입술만 댈 자 그 누구인가. 연회를 마치고 일어서려는데 잔에 술이 조금 남아있다. 귀한 술인데 아깝다. 이럴 때 누군가 이렇게 소리친다. “먼첸칭(門前請)”. 남은 술을 마셔버리자는 뜻이다.
신데렐라인가, 옛 영광의 부활인가 19세기 중엽까지 절대 강국으로 존재 … 2015년엔 미국 제치고 중국의 세기로 강남규 | 제6호 | 20070424 입력
‘동아(東亞)의 병자에서 21세기 경제패권 국가로.’
유장한 역사의 흐름에서 찰나에 지나지 않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중국은 절대 빈곤에서 절대 강자로 ‘갑작스레’ 변신 중인 나라로 비쳐질 수 있다. 사실 30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엔 늘 ‘빈곤’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이미지 또한 ‘죽의 장막’ 등 폐쇄적인 게 많았다. 이런 부정적 이미지는 중국이 국내총생산(GDP) 측면에서 2조6000억 달러(2006년 기준)로 미국ㆍ일본ㆍ독일에 이어 세계 4위에 오른 현재에도 우리의 의식 한켠에 남아있다. 중국을 가난과 연결지어 온 사람에게 중국의 경제적 부상은 ‘신데렐라의 탄생’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의 오랜 역사는 다른 사실을 일러준다. 영국 셰필드 대학 불평등연구소(SASI)가 지난해 하반기 발표한 ‘경제력 지도 추이’를 보면, 중국경제의 부상은 결코 ‘어느 날 갑자기’ 식의 신데렐라 탄생은 아니다. 화려했던 옛 영광을 조금씩 조금씩 부활 또는 복원해 나가는 것에 가깝다.
<기원후 1년> 중국ㆍ인도가 양대 패권국
청동기 시대에서 철기 시대로 이행하던 이 시기, SASI가 추정한 세계 1인당 GDP는 445달러다. 이를 바탕으로 지도를 그린 결과 중국이 세계 최대 부국이었고, 인도가 2위로 나타났다. 현재 세계를 호령하는 미국은 겨우 자취만을 확인할 수 있다. 가장 빈곤한 지역은 남미였다. 이 지역 1인당 GDP는 당시 평균치에도 못 미치는 400달러였다.
<1500년> 중국 패권의 지속
경제력 지도
서구의 기준으로 ‘지리상의 대발견’ 시대로 불리는 이 시기 세계의 부는 여전히 중국과 인도에 집중돼 있다. 150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이 흘뗍嗤? 세계의 경제력 질서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13세기 원나라를 여행했던 마르코 폴로의 눈에 중국이 ‘황금제국’으로 비쳤던 게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는 시기다.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은 임진왜란으로 불리는 동북아 국제대전이 발생하기 100년 전쯤인 이 시기 일본의 경제력이 AD 1년보다 상당히 커진 것으로 표현됐다는 것이다.
<1900년> 중국의 패권적 지위를 박탈한 산업혁명
1840년대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1860년대 미국과 프랑스, 1870년대 독일 등지로 번지면서 세계의 경제지형을 혁명적으로 바꿔놓았다. 식민지 쟁탈전이 벌어졌고, 서구인에게 ‘잠자는 사자’로 비쳤던 중국은 아편전쟁 등을 거치면서 ‘잠자는 돼지’로까지 조롱받기 시작했다. 1900년 영국과 프랑스, 독일, 미국의 면적은 급격히 팽창했다. 반면 인도와 중국의 면적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한편 메이지 유신을 단행한 일본은 과거보다 더 크게 보인다.
<1960년> 왜소증에 걸린 중국
마오쩌둥이 사회주의 강국 건설을 부르짖으며 벌인 1950년대 말의 대약진 운동은 실패로 끝났다. 기아사태가 발생했다. 굶어 죽은 사람만 수천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반면 일본은 한국전쟁을 계기로 재기에 성공, 전후 복구 수준을 뛰어넘어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구가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세계의 정치ㆍ경제ㆍ문화의 중심이 됐다. 모든 게 잘나가던 이른바 ‘고-고(Go-Go) 시대’였다.
<1990년> 개혁·개방 초기, 중국은 아직…
중국이 1900년을 전후해 들어갔던 깊은 동면에서 깨어나 활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중국 경제를 주목한 사람은 일부 전문가 그룹에 불과했다. 새뮤얼 헌팅턴은 93년 『문명의 충돌』이라는 책에서 중국이 미국을 위협하는 나라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90년부터 일기 시작한 중국위협론이 서서히 불거지는 시기였다.
<2002년>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떠오르고
중국의 경상수지가 역사상 처음으로 3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이해의 흑자는 무려 350억 달러에 달했다. 세계 경제가 IT 거품 후유증에서 탈출하기 시작하자 중국경제는 다시 한번 두 자리 수 이상 커지기 시작했다. 10년 넘게 꾸준하게 추진해온 개혁개방 정책이 1990년 이후 본격적으로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셈이다. 정치ㆍ경제ㆍ역사 전문가가 아닌 세계의 일반 시민들도 이젠 중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주목하기 시작했다.
<2015년> 중국, 마침내 경제패권 회복?
미국의 시대가 끝나고 중국의 세기가 시작된다. 셰필드 대학 불평등연구소는 중국이 19세기 중엽 이전의 지위를 회복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골드먼삭스 등 세계적 금융회사들도 이 즈음부터 중국의 세기가 열릴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2등 국가로 전락한다. 독일과 일본 경제력은 2002년보다 위축된다. 한편, 한국의 경제력은 호주보다 커질 전망이다.
역사의 진행에는 늘 ‘그러나’가 있다고 했다. 수많은 전문가가 21세기를 중국의 세기라고 하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그러나’ 경제패권이 바뀌는 시기에는 곧잘 위기(Crisis)가 발생하곤 했다. 이를 딛고 일어선 나라야말로 진정한 글로벌 패자가 됐다. 영국은 1840년대 위기를 딛고 산업혁명에 성공해 스페인과 프랑스에서 경제 패권을 넘겨 받았다. 미국은 1929~33년의 대공황을 극복하고 영국으로부터 패권을 이양받았다. 그런가 하면 일본은 ‘욱일승천 1980년대’ 이후 찾아온 1990년대 초반의 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중국의 비상을 지켜보고 있다. 과연 중국이 지금부터 2015년 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 중국담당 에디터인 제임스 킨지가 지난해 펴낸 책 『중국이 세계를 뒤흔든다』를 통해 예언한 것처럼 중국은 현 글로벌 경제질서를 뒤흔들 수 있을까. 시간만이 답을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경제력 지도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SASI는 구매력(1990년 달러가치 기준)을 바탕으로 산출한 시대별 국내총생산(GDP)과 역사학자들이 시대별로 추정한 인구를 반영해 1인당 GDP를 산출했다. 이 지도에 등장하는 나라는 현재 존재하며 또 주목받는 국가들이다. 이들 국가가 시대별로 어떤 경제력을 가졌는지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그런 까닭에 AD 1년 지중해의 패권 국가이던 로마제국은 당시 상당한 경제력을 자랑했음에도 이 지도에는 표시되지 않았다.
중국의 위협, 또 다른 기회다 유희문 | 제6호 | 20070424 입력
중국 경제가 연평균 10% 이상 고속 성장하며 한국에 위협을 주고 있다.
중국의 성장 특색은 5개 지역경제권을 전략적으로 육성해 이를 경제성장의 축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장강(長江ㆍ상하이) 경제권에선 민간기업의 기술집약 산업과 서비스업을, 화남(華南ㆍ광저우) 경제권은 외자기업의 수출주도형 산업을, 환발해(環渤海ㆍ톈진) 경제권은 국영기업의 자본집약 산업과 금융을 집중 육성한다. 동북(東北·선양) 경제권은 장치산업과 부품산업을, 중부(中部ㆍ시안-청두) 경제권은 하이테크 및 노동집약 산업을 동시에 키워 내륙경제를 활성화한다는 계획이다.
한국에 대한 중국 성장의 위협은 크게 두 가지 측면이다. 첫째는 중국의 첨단산업 육성과 산업구조 고도화에 있다. 중국의 연구개발(R&D) 투자가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의 1.41%로 미국에 이어 2위란 점은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또 산업 클러스터화를 통해 수입대체와 수출 고도화 정책을 편다. 원부자재의 현지조달이 강화되는 추세다. 한국의 대중 수출은 중간재 중심(80%)인데, 한국으로부터의 원부자재 조달은 2005년 44.8%에서 지난해 37.8%로 떨어졌다.
둘째는 해외시장에서의 경합이다. 한국 5대 주요 산업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2000년 2.7%에서 2004년 3.2%로 는 데 비해 중국은 4.0%에서 7.5%로 성장했다. 해외에서의 경합이 거세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중국 외자기업의 수출입 비중은 전체의 55%를 차지하며, 이 중 첨단산업의 수출 비중은 80%에 달해 수출 시장에서 외자기업과의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이기도 하다. 중국 5대 지역 경제권과의 전략적 분업화를 추구하고, 최종 소비재 시장을 공략할 필요가 있다. 2020년 중국의 도시화율이 60%에 달하면 도시 잠재소비 인구는 8억 명에 달할 전망이다. 또 중국을 우리의 제2 내수시장으로 만드는 데 힘써야 한다. 한국에 인접한 칭다오(靑島), 다롄(大連), 톈진(天津), 상하이(上海) 등 4대 도시 경제권은 한ㆍ중 간 2시간 이내의 경제공동체로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마오쩌둥의 초상’이 세계를 바꾼다 1조 달러 넘는 외환보유액 발판 … 미국 견제 뿌리쳐야 강남규 | 제6호 | 20070424 입력
<가상장면> 2020년 어느 날 미국 CNN 뉴스
“중국 인민은행이 금리인하를 단행했습니다. 기준금리를 4.5%에서 4%로 0.5%포인트 내렸습니다. 중국 등 세계 경제가 침체양상을 보인 데 따른 것입니다. 이날 금리인하로 세계 금융중심인 상하이ㆍ홍콩뿐 아니라 뉴욕ㆍ런던 주가가 오르고, 미국ㆍ유럽이 금리변경 움직임을….”
새로운 경제ㆍ금융 질서가 싹트고 있다. 중국 경제의 힘에 기대 세계가 살아가는 그런 질서 말이다. 실제 그날이 오면, 세계 상거래 절반 이상이 마오쩌둥(毛澤東)의 초상이 새겨진 위안(元)화로 결제될 것이다. 당연히 글로벌 경제 뉴스의 중심은 베이징ㆍ상하이ㆍ홍콩이 된다. 가상장면이 현실이 되는 것이다.
이는 “과거 원제국 화폐인 교초(交金少) 위력의 부활과 비슷하다”고 영국 정경대학(LSE)의 팰커스 교수는 말한다. 원이 정복전쟁으로 축적한 금ㆍ은ㆍ소금을 바탕으로 발행한 교초는 ‘그 시절의 달러’였다. 600여 년이 흐른 지금 옛 제국의 영화가 되살아나는 조짐이다. 과거엔 경제력의 원천이 무력으로 조달한 금ㆍ은이었지만, 지금은 산업을 바탕으로 한 무역흑자라는 게 다를 뿐이다.
중국의 무역흑자는 지난해 1775억 달러. 올 1월엔 159억 달러, 2월 237억 달러. 이대로라면 올해는 2000억 달러를 가뿐히 넘을 태세다. 달러 가치가 과거와 달라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미국 경제가 한창이던 1920년대 무역흑자 규모는 연간 5억~30억 달러 선이었다. ‘지는 태양’ 영국은 “양키가 세계 이윤을 아이스크림 핥아먹듯 한다”고 아우성을 쳤다. 80년대 일본 무역흑자는 연간 500억~830억 달러. 이때 미국에선 “일본이 미국을 사들인다”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러나 중국의 외환보유액이 브라질의 국내총생산(7960억 달러)보다 많은 1조700억 달러에 이른 요즘 미국에선 “중국이 세계를 바꾼다”는 말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실제로 중국이 세계를 바꾸고 있다고 한다. 중국이 가장 먼저 손댄 곳은 아프리카. 원유 개발과 도로 확충에 자금을 쏟고 있다. 남미도 중국 자본의 영향력 아래로 들어가고 있다. 미국 질서에 대한 반항아 차베스가 이끄는 베네수엘라 원유를 중국이 대거 사준다. 이 때문에 미국이 원유금수 조치를 내리더라도 앞으론 효과가 없을 전망이다. 변방만 노리는 게 아니다. 중국은 서구체제의 핵심인 글로벌 금융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하기 시작했다. 투자공사를 세워 외환보유액 가운데 일부를 세계 금융시장에서 공격적으로 운용한다. 중국이 외환보유액 10%만 풀어 한국 국채 매집에 나서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혼란은 불을 보듯 뻔하다.
중국이 부드럽게 움직여도 세계의 자산가격은 급변할 수 있다. 중국이 금을 매입 또는 매도하면 한국·일본의 중앙은행뿐 아니라 각종 펀드가 무리 지어 따라가게 마련이다. 독야청청하다 수익을 놓치거나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시장 속성인 ‘떼거지(Herding) 현상’이 중국을 중심으로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중국이 내적으론 취약한 금융시스템을, 외적으론 미국의 견제를 극복하면서 세계 경제의 패권국가로 부상할 수 있을지, 세계적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졸업하려면 ‘코피 나게’ 공부해야 대학 입학 쉽지만 졸업은 10%선… 학비는 중국 학생의 10배 진세근 | 제6호 | 20070424 입력
‘가느냐 마느냐.’ 중국 유학을 염두에 두고 한번쯤 고민했을 주제다. 중국 유학길에 오르는 학생은 한 해 평균 5000명, 갈까 말까 망설이는 ‘잠재 유학생’도 2000명 정도 된다.
중국 유학을 생각할 때 주목할 점은 중국의 교육시스템이다. 이걸 분명히 안다면 갈지 말지, 가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이 나온다. 시스템을 알기 위해 우선 현장부터 보자.
사례 1. 지난해 초 중국에 온 중소기업의 조(趙)모 주재원은 부임 초의 악몽을 잊지 못한다. 회사 일 때문이 아니다. 아이 학교를 찾는 일에 한 달가량 시간을 날렸다. “미로가 따로 없더군요. 유학 상담자의 말을 믿고 찾은 학교는 한국 학생들 천지였어요. 중국어 학습에 부적당하다고 생각해 혼자 찾기로 했지요. 이때부터 한 달간의 긴 탐사가 시작됐어요.”
이 사례를 이해하기 위한 정보 한마디. ‘베이징의 초ㆍ초중(중학)ㆍ고중(고교) 가운데 외국인을 대상으로 국제부가 설치된 곳은 60개 정도 된다. 조기 유학생은 국제부에서 중국어 실력을 쌓은 뒤 중국 학생들이 공부하는 현지반으로 배치된다. 국제부가 없는 곳 중 외국인을 받을 수 있는 허가를 받은 학교는 따로 있다. 이곳에 가면 바로 중국 학생과 공부한다. 나머지 학교는 외국인을 받을 수 없다.’
조씨가 처음 찾은 학교는 국제부가 설치된 학교였다. 조씨는 이 학교를 포기하고 외국인을 받을 수 있는 일반 초등학교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거야말로 미로에서 출구 찾기였다. 우선 어느 학교가 외국인을 받을 수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학교마다 일일이 찾아가서 확인해야만 했다. 주변 학부모들에게 물으면 된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웬만한 사이가 아니면 자기 자녀가 다니는 학교를 가르쳐주지 않는다. 한국 학생이 늘면 자녀의 중국어 학습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례 2. 정부 투자기관 베이징 주재원인 황(黃)모씨는 최근 중국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흥얼거리는 노래를 듣고 “무슨 노래냐”고 물었다. 아이는 “국가인 ‘의용군 진행곡’”이라고 답했다. 한번 제대로 불러보라고 하자 아이는 “노예 되기를 원치 않는 인민들이여, 우리의 피와 육체로 새 장성(長城)을 쌓자”고 목청을 높였다. 황씨가 “애국가는 아느냐”고 묻자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이와 관련된 정보 한마디. ‘중국은 초등학교 때부터 국가관을 중시한다. 혁명사 등의 정치 과목이 필수다.’
다음은 학비를 보자. 한마디로 ‘외국인은 봉(鳳)’이라고 보면 된다. 국제반이 있는 중ㆍ고교는 1년 학비가 4만∼5만 위안(약 480만∼600만원). 중국 학생의 10배에 가깝다. 입학할 때는 별도로 거액의 ‘학교 선택비(擇校費)’를 내야 한다.
대학의 경우 ‘입학은 쉽고 졸업은 어렵다’로 요약된다. 베이징(北京)대ㆍ칭화(淸華)대 등 명문대는 외국인끼리 5∼10대1의 경쟁을 거치지만 나머지 대학은 등록금만 내면 무난히 합격한다. 그러나 졸업생은 입학생의 10%를 넘지 않는다.
이제 결론을 내보자.
중국 유학은 중국어 하나를 얻기 위해 나머지를 희생하는 구조다. 따라서 중국 조기 유학을 결심할 경우 중국어를 위해 힘을 기울이되, 나머지는 별도로 보충한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중국 유학은 놀기엔 최고다. 공부를 하든 안 하든, 학교 규칙 지키고 학비 잘 내면 학교는 상관하지 않는다. 그러나 제대로 하려면 시쳇말로 ‘쌍코피 터지게’ 해야 한다. 중국어는 물론 한국어ㆍ영어를 동시에 공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선 수학ㆍ물리·화학 등 우리말로도 어려운 과목을 중국어로 공부해야 한다.
베이징 서쪽 하이뎬(海澱)구의 외고에 다니는 김모군의 일과를 보자. 오전 7시30분부터 8시간의 정규수업, 방과 후 숙제 및 보충학습, 그리고 각 과목 과외 등으로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밤 12시를 넘기기 일쑤다. 김군처럼 할 자신이 있는 사람은 중국으로 떠나라. 단, 가기 전에 마지막 한마디. 유학원 말만 믿지 말고 인터넷ㆍ친구ㆍ책ㆍ지인(知人) 등을 통해 중국 교육기관에 관한 정보를 최대한 수집하라. 실패를 줄이는 핵심적인 필요조건이다.
재중 학부모가 권하는 조기유학 10계명
①사전조사를 철저하게 하라. 학교 확인은 직접 가서 하라. ②본인의 자발적 의지가 핵심이다. 이게 없으면 보내지 마라. ③다른 학부모 말을 경전처럼 명심하라. ④대도시만 고집하지 마라. 지방 소도시가 짭짤할 수 있다. ⑤혼자 보낼 경우 수시로 체크하라. 하숙집만 믿다간 낭패 당한다. ⑥유학원 말만 믿지 마라. ⑦부회뇌동은 금물. 유학이 자신에게 정말 필요한지 철저히 따져라. ⑧입학은 쉽다. 그러나 졸업장이 없으면 만사휴의다. ⑨촌지는 금물. 자칫하면 공안에 잡혀갈 수 있다. ⑩중국어는 오래 걸린다. 유학 계획을 길게 잡아라.
할리우드의 거센 공격을 방어하라 서민의 삶 감싸던 5세대 감독, 이젠 블록버스터로 승부 … 6세대는 중국 현실 날카롭게 비판 임대근 한국외국어대 교수 | 제6호 | 20070424 입력
5세대 영화감독의 대표주자 장이머우 감독이 세 번째로 만든 중국형 블록버스터 39황후花39. 궁리와 저우룬파 등이 주연했다.
먼저 퀴즈 하나. 다음 중 장이머우 감독이 속한 세대는? ① 3세대 ② 4세대 ③ 5세대 ④ 6세대
장이머우 감독
중국영화에 관심 있는 독자에겐 어렵지 않은 문제다. 정답은 ‘5세대’. 장이머우는 근년 ‘영웅’(2003), ‘연인’(2004), ‘황후花’(2007) 등 중국형 블록버스터를 잇따라 들고 나와 흥행에 돌풍을 일으켰다. 이젠 2008 베이징올림픽 개막식 총감독까지 맡았다. 5세대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그의 영화 이력은 중국 문화권력의 핵심으로 진입한 지 오래다.
장이머우, 그리고 천카이거와 텐좡좡 등은 어떻게 5세대라는 이름을 얻었을까? 세대론은 중국영화의 역사를 구분하는 가장 대중적인 방식이다. 흥미로운 점은 각각의 세대에 붙은 이름이 그 순서대로 정해진 게 아니란 것이다. 1세대란 이름이 있고 나서 2세대가 생기고, 다시 3세대가 생겨난 게 아니다. 5세대라는 이름이 가장 먼저 생겼다.
내 서랍속의 동화
중국의 영화교육기관을 대표하는 베이징영화대학은 문화대혁명 기간 강제 폐교됐다가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신입생을 받아들였다. 천카이거ㆍ텐좡좡ㆍ장이머우 등이 모두 동급생이었다. 장은 동기들보다도 나이가 한참 많았다. 대학 규정에 따르면 22세 이하만 입학할 수 있었는데 장은 26세였다. 시험 볼 자격조차 없던 장은 문화부장관 황전(黃鎭)에게 탄원했고, 문화부 특별 지시로 입학을 허락받았다. 이들은 졸업 이후 오랫동안 공백 상태였던 중국영화사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천카이거가 감독을 맡고 장이머우가 촬영한 ‘황토지’(1983)가 유럽의 여러 영화제에 알려지면서 이들은 새 이름을 얻게 됐다.
그렇다면 왜 하필 5세대라는 이름을 붙여준 것일까? 설이 분분하지만 이들이 베이징영화대학 제5회 졸업생이었기에 5세대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게 가장 유력하다. 뜬금없이 5세대가 등장하자 ‘역사’를 중시하는 이들이 거꾸로 된 셈법으로 4세대, 3세대, 2세대, 1세대라는 명칭을 보완했다. 이처럼 ‘세대론’ 자체는 중국영화를 이해하는 데 한계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영화 100년 역사를 ‘세대론’에 의해 두루뭉술하게 나눌 수 있다.
5세대 감독들은 1980년대 초부터 90년대 중반까지 화려한 색깔과 소리, 중국의 전통과 농촌을 중심으로 한 소재로 영화계를 주름잡았다. 홍콩 무협영화가 시들해지던 시점과 맞물려, 장이머우를 중심으로 한 대륙 영화가 들어와 신선감을 안기기 시작한 게 그 즈음이었다. 그러나 1989년 천안문 사태가 일어난 뒤 베이징 한복판에서 이를 경험한 영화대학 직속 후배들은 자신의 선배들이 오늘의 중국 현실에 침묵하는 모습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장위안 등 젊은 감독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오늘-여기-우리의 삶’을 다루는 영화들을 만들었다. 베이징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고뇌와 슬픔, 좌절을 그린 ‘베이징 녀석들’이 그 시작이었다. 이들은 ‘6세대’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러나 철저한 작가주의와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추구한 이들은 윗세대로부터의 독립도 꾀했다. 6세대라 불리면, 5세대와의 단절 의미도 있지만, 동시에 5세대의 아들임을 인정하는 셈이다. 중국 독립영화의 대표주자 자장커가 6세대라는 이름조차 거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새 세기가 시작된 뒤 장이머우 같은 이들도 더 이상 5세대 같은 이름에 집착하지 않았다. 5세대란 말은 자신들의 고유한 작가정신에 대한 찬사였지만, 중국 내 영화시장은 너무나 형편없었다. 자신이 만드는 영화를 정작 중국인은 보지 않고, 국제적으로만 이름을 얻는 상황에서 새로운 선택이 필요했던 것이다. 장이머우는 적극적으로 정부 시책에 협력하기 시작했고, 인간미 넘치는 농촌의 풋풋한 이야기를 그린 ‘책상서랍 속의 동화’ 이후 상업영화 감독으로 전향했다. 그에게 지금 중요한 것은 중국 영화산업의 파이를 키우는 일이다. 미국과 인도에 이어 세계 영화 생산량 3위임에도 교육ㆍ선전 영화가 여전히 대부분인 중국 영화산업에 대한 자기 연민이기도 하다. 그의 선택은 13억 중국시장을 향해 진격해오는 할리우드의 거센 공격에 맞서 자국 영화를 방어하자는 것이다. 그런 장이머우에게 ‘예술이나 작가’를 논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소더비 경매 흔드는 ‘大陸의 붓’ 국제 미술계 주류로 급부상 … 현대 작가 작품도 20억원 가까이에 팔려 윤재갑 | 제6호 | 20070424 입력
장샤오강 作 <핏줄: 세 명의 동무>“불붙는 그림투자…대박행진” “미국인, 달러 싸 들고 중국미술 앞으로”. 최근 일간지 문화면을 장식한 타이틀들이다. 앞의 것은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미술시장의 폭등을, 후자는 중국 현대미술의 대약진을 다룬 것이다. 나는 이 둘의 내용을 조합해 좀 더 자극적인 타이틀을 달아보았다. “중국미술, 세계자본을 삼키다!” 중국 현대미술의 약진을 설명하기 위해선 우선 세계 미술시장의 유례 없는 호황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 이 둘을 떼놓고선 설명이 제대로 안 되기 때문이다.
웨민쥔 作 우선, 전 세계 미술시장이 유례 없는 황금기를 구가하게 된 배경으로 전후 50여 년 동안 지속된 서구의 미술관 정책을 꼽을 수 있다. 미술시장의 중심이 미술관이고, 전 세계 미술관이 작품 가격을 지속적으로 상승시킨 주범이라고 한다면 많은 미술 전문가들도 의아해한다. 도대체 상업 영역인 미술시장과, 공적인 미술관이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하지만 얘기는 간단하다. 예를 들어 미국에는 수십, 수백 개의 대학미술관, 개인미술관, 시립미술관, 주립미술관, 국립미술관이 있고, 이들의 연간 컬렉션 비용을 합치면 천문학적 수치가 된다. 미술관은 이러한 공공 컬렉션을 통해 미술작품의 가치와 가격을 보증한다. 미술관이 A 작가의 작품을 100원에 구입했다면 미술시장에서의 가격은 120원 정도 되는 것이다. 먼저 미술시장에서 어느 정도 가격이 결정된 다음 미술관이 컬렉션을 통해 그 작품의 가치를 보증하는 경우도 결국 마찬가지다. 이러한 미술계 시스템에 의해 작가ㆍ화랑ㆍ미술관이 작품의 가치와 가격을 안정적으로 보장하고, 개인 컬렉터는 이를 믿고 작품을 구입하게 된다. 이러한 미술관 컬렉션을 통한 작품 가치의 공적·국가적·국제적 인정과 안정을 거쳐 서구의 미술시장은 발전해 왔다. 값비싼 미술 작품을 구입할 수 없는 대중을 위해 국가에서 국민의 세금으로 대신 작품을 구입해 대중을 교육하려던 그 숭고한 미술관 정책이 역설적이게도 가장 안정적인 자산 투자의 온상이자 작품 가격 상승을 부채질하는 주범이 된 것이다.
요즘 세계 미술계의 화두 중 하나는 중국 미술작품 가격이 거품이냐 아니냐에 관한 것이다. 미술관 관계자나 컬렉터 두세 명만 모이면 이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나 또한 많은 질문을 받는다. 특히 유럽과 미국의 미술 관계자 사이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유는 간단하다. 중국 현대미술 작품은 아직 전 세계 미술관에 많이 소장돼 있지 않다. 이 때문에 그 가치나 가격이 국제적으로 안정되거나 보장받지 못한다. 따라서 중국 경제에 문제가 생기면 투자자나 미술관이 큰 손실을 입을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국작가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 가격이 100억원인 것은 거품이 아니지만 같은 나이 또래의 중국 대표작가 작품이 10억원만 돼도 거품이라고 아우성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의 목소리와 달리 중국 현대미술은 날마다 그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왜 그럴까? 1989년부터 잇따라 벌어진 세계사적 변화들(천안문 사태, 동ㆍ서독 통합, 구소련 해체)을 통해 우리가 글로벌리즘이라고 부르는 자본주의의 세계화가 심화되었고, 이러한 정치ㆍ경제적 변화는 중국 현대미술에 전혀 새로운 환경과 기회를 제공했다. 사스키아 사센(Saskia Sassen)이 말한 대로 1989년 이후의 ‘전지구적 도시’들은 정치·경제·문화라는 세 개의 가장 핵심적 권력들이 가장 강력히 합치된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전 지구적 차원에서 진행된 자본주의의 세계화를 통해 중국이라는 강력한 자본의 제국이 탄생했다. 또 이러한 정치ㆍ사회적 변화에 의해 죽의 장막에 가려 있던 베이징이라는 도시가 단숨에 전 지구적 도시로 탈바꿈했다. 바로 이런 전 지구적 문화권력의 재배치에 따라 차이나 아방가르드가 국제 미술계의 주류로 급부상할 수 있었던 것이다. 새로운 자본의 제국과 전 지구적 도시로서의 중국과 베이징을 거부할 수 없다면, 그리고 전 세계 미술관과 소장가들이 일거에 중국 미술품에 대한 컬렉션을 중지하지 않는다면, 중국미술은 세계자본을 삼킬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세계자본이 중국미술을 삼키든지.
연구자 늘었지만 수준은 ‘기초 단계’ 너도나도 중요성 강조하나 투자엔 인색 … 어설픈 총론 수준 머물러 강준영 | 제6호 | 20070424 입력
기존 중국 연구는 냉전시대 사회주의권에 대한 연구 필요성에 의해 대두됐다. 한국의 중국 연구 역시 공산권 연구의 일부로 간주됐다. 그러나 1992년의 한ㆍ중 수교와 개혁ㆍ개방을 주창하는 새로운 중국의 출현은 기존 인식에 변화를 요구했다. 특히 한국의 최대 경제 파트너로 성장한 ‘공룡 중국’의 등장은 실질적인 연구를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중국에 대한 이해가 미래 한국의 생존과 직결될 정도로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한국의 중국 연구에서 가장 큰 변화는 연구자 수가 크게 증가했다는 점이다. 중국 유학이 가능해졌고, 각계의 중국 연구 수요가 비약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둘째는 연구 분야가 확대되고 심도도 깊어졌다는 점이다. 그동안 중국 연구를 주도해온 정치 분야의 경우, 기존의 정치이념 연구에서 정책결정 과정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한반도 관련 문제는 늘 초미의 관심사다. 경제 분야는 중국 시장이 한국 경제의 돌파구로 인식됨에 따라 가장 활발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최근엔 중국 사회변화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면서 사회학적 관점의 연구도 활발하다.
그러나 이런 양적 팽창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중국 연구는 기초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해외 지역연구가 한 나라의 세계전략 추진을 위한 하부구조를 형성한다는 선진국의 경험에 비춰볼 때 특히 그렇다. 우리의 중국 연구는 시기별 이슈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또 체계적인 사실의 발견보다 어설픈 총론 수준의 연구 경향이 짙다. 미국식의 분명한 문제의식과 경험적 분석을 통한 심층적ㆍ논리적 설명을 제시하지 못하고, 일본식의 사실 발견과 체계적 정리에도 실패하고 있다. 이는 결국 그간의 연구 결과가 하나의 지식체계로 축적되지 못함으로써 중국에 대한 우리의 이해 수준을 제고하는 데 기여하지 못했다는 점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앞으로의 중국 연구는 연구 주제와 주체, 그리고 문제의식에 있어 몇 가지 전환이 필요하다.
우선 학계의 중국 연구는 학문성에 대한 강조가 지나친 나머지 시의성과 적실성이 문제가 된다. 많은 주제가 지나간 것에 대한 분석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현실적 이슈라 하더라도 늘 한 발씩 늦는다. 이는 연구자 수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개인적 관점에서 연구가 진행되고, 또 재원이나 공동 연구의 장이 부족해 정보의 공유나 유기적 연구 등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경제ㆍ경영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KOTRA나 수출입은행ㆍ무역협회ㆍ대한상공회의소ㆍ중소기업진흥공단 등은 유용한 사실적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나 표피적 상황해석에 치중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국책연구기관인 산업연구원ㆍ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등이 분석적 자료를 내놓고 있으나 기관별로 두세 명에 불과한 전담 인력이 기관의 성격과 관련된 유사 주제를 반복 연구해 제시하는 느낌이다. 통일연구원ㆍ외교안보연구원ㆍ국방연구원 등은 중국의 정치ㆍ외교를 연구하지만 이 역시 소수의 인력이 특정 주제에 대한 연구를 반복하고 있다.
대기업이나 금융권 등에서도 중국 사업과 관련,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지만 미흡한 실정이다. 삼성ㆍLGㆍSK·포스코ㆍ롯데 등이 자체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나 중국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과 비례해 독립적인 중국 연구를 시행하고 있지는 못하다. 한두 명의 중국 연구 전담 인력이 해당 기업이 필요로 하는 분야만 연구해 전체적인 중국 접근은 어렵다. 민간 연구단체의 중국 연구도 태동하고 있다. 그러나 최대 약점인 재원 문제로 인해 상당수가 유명무실한 실정이다. 대표적 민간 연구기관인 세종연구소조차 단 한 명의 중국 전담 인력이 있을 뿐이다. 지방자치단체 중에선 인천발전연구원의 활동이 활발하나 극소수 인력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은 여전히 문제다.
이처럼 우리의 중국 연구는 중국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투자가 아주 적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거대한 중국을 연구하는 데는 일정한 투자가 필요하다. 인적ㆍ물?차원에서 국가적 차원의 적극적인 배려가 필요하다. 중국 전문가가 많이 필요하다는 말은 누구나 다 한다. 그러나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의지는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중요한 것은 중국 연구가 학문적으로는 물론 시장과 기업, 그리고 우리 사회에 확실한 이바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중국이 보이고 있는 정치적 민족주의, 외교적 공세주의, 군사적 확장주의, 그리고 경제적 민족주의는 중국에 대한 우리의 낙관적 시각에 경종을 울리기에 충분하다. 이제는 학계ㆍ경제계ㆍ정부가 혼연일체가 돼 우리의 생존과 직결된 중국 연구에 매진해야 할 시점이다.
[부동산 투자] 베이징 아파트값 3년 새 두 배로 2008년 올림픽 앞두고 고공행진 … 전통가옥 사라지고 주상복합 들어서 장세정<zhang@joongang.co.kr> | 제6호 | 20070503 입력
중국 부동산 투자 열풍이 거세다. 서울에서 열린 한 중국 부동산 투자 설명회에서 참석자들이 중국 전통 복장을 한 도우미로부터 베이징 왕징 지역에 신축될 아파트 단지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중앙포토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곳은 왕징(望京)이다. 이곳 한복판에 위치한 대서양신성(大西洋新城) 단지에서 3년 전 150 ㎡짜리 아파트를 구입했던 한국인 K씨. 분양 당시 ㎡당 7000위안(元, 약 84만원) 하던 이 아파트는 최근 1만4000위안을 호가한다. 불과 3년 사이 두 배로 뛰었다.
이 단지 안에 위치한 천사부동산의 장서우(張壽) 부장은 “총 3000가구 중 30%가량은 한국인이 집주인”이라고 귀띔했다. 장 부장은 “지난해 4월 F2 단지를 분양할 때는 한국인들이 아파트를 사려고 구름처럼 몰려들었다”고 기억했다.
이재(理財)에 발 빠른 한국의 투자자가 중국으로 눈길을 돌린 까닭이다. 한국 정부가 올해부터 해외부동산 취득용 송금 한도를 100만 달러에서 300만 달러로 확대한 게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06년 해외부동산 취득 현황’에 따르면 국내에 거주하는 개인의 해외부동산 취득 신고금액은 5억1400만 달러(1268건)를 넘었다. 전년도 930만 달러(29건)보다 55배 늘었다.
중국에도 양도세가 있지만 아직 한국에 비해 규제가 덜하다. 또 내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중국을 찾는 외국인들의 발걸음이 잦아 향후 몇 년간 부동산 가격이 상승할 것이란 기대감이 한국인의 중국 부동산 투자를 부추기고 있다.
상승 행진 중인 중국 주택시장
중국 국가통계국 발표에 따르면 베이징의 2월 신규 주택 가격은 9.7% 상승했다. 남부 지역인 광저우(廣州)는 9.6% 올랐다. 기존 주택의 경우 베이징이 9.4%, 다롄(大連)이 8.4% 상승했다. 지역과 주택 종류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상승세를 유지했다. 개별 아파트를 보면 부동산 열풍을 실감할 수 있다. 칭화(淸華)ㆍ베이징ㆍ런민(人民)대 등 명문 대학촌 인근에 위치해 교육환경이 빼어난 아파트 화칭자위안(華淸嘉園)의 사례를 보자. 2001년 ㎡당 5000위안이던 이 아파트는 지난해 말 1만2000위안 가까이로 치솟았다. 6년간 누적 상승률은 196%에 달했다. 매년 평균 32%가 뛴 셈이다. 올해도 1만4800위안대를 호가하며 상승행진은 계속되고 있다.
아파트 가격 폭등은 중국의 주거문화를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다. 미로 같은 골목길을 뜻하는 후퉁(胡同)에 빼곡히 들어섰던 사합원(四合院)이란 전통 가옥은 속속 철거되고 있다. 그 자리에 30층 넘는 고층 아파트와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서고 있다.
한국과 다른 부동산제도 많아
중국의 부동산 시장에 손을 대기 전에 한국과 다른 중국의 주택 정책과 법령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토지에 대한 소유권을 인정하느냐가 가장 큰 차이다. 자본주의 체제인 한국과 달리 사회주의를 내세운 중국은 토지에 대한 소유권을 여전히 국가가 쥐고 있다. 중국은 토지의 사용권만을 개인이 소유ㆍ양도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소유권 개념은 없고 사용권만 있다.
중국은 주룽지(朱鎔基) 총리 시절인 1998년 직장에서 주택을 지급하던 복리분방(福利分房)제도 대신, 개인이 빚을 내거나 돈을 모아 집을 사는 방식(화폐분방)으로 주택 정책을 바꿨다.
아파트의 경우 자유로운 거래가 가능한 일반상품주택(商品房), 서민들이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도록 지은 서민주택(經濟適用房)으로 크게 나뉜다. 일반상품주택은 120㎡ 이상 중대형 위주이며 서민주택은 60㎡ 내외가 많다. 최근 중국 정부는 신규 아파트 단지에 90㎡ 이하 소형주택을 70% 이상 의무적으로 짓도록 하고 있어, 서민주택 기준은 90㎡ 이하로 굳어지는 추세다.
중국은 2004년부터 외국인의 주택구입을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서适領쳄?구입하려면 가구당 소득이 월 6000위안을 넘지 않아야 한다. 외국인도 소득과 직업에 따라 중국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도 있다. 담보인정비율(LTV)은 20∼30% 정도 된다. 본국에서 투자원금을 가져올 경우 중국의 외환관리 규정에 따라 5000달러를 넘으면 신고해야 한다.
보유세 부과 움직임도
중국 정부는 최근 들어 투기성 자금 유입을 줄이기 위해 외국인의 주택구입 요건을 강화하는 추세다. 지난해 7월 21일 이후부터 외국인은 1년 이상 거주 증명 사실을 제시해야 실제 거주할 목적으로 집을 구입할 수 있다. 거주가 아닌 단순임대 목적으로 살 경우 부동산 임대업 등록을 하도록 했다.
중국 부동산시장을 낙관하는 사람은 ‘연평균 10%의 경제성장에 따른 탄탄한 주택수요’ ‘위안화 절상으로 중국 자산의 가치상승 효과’ 등을 주목한다. 반면 비관론자는 ‘중국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투기 억제 의지’ ‘지역마다 불투명한 각종 제도 차이’ 등을 들어 신중한 투자를 당부한다. 주중 한국대사관 김경식 국장(건교관)은 “보유 가구수를 제한하고, 140㎡ 이상의 중대형 아파트에는 보유세를 물리려는 움직임도 있다”며 “투자목적으로 부동산을 살 경우 지역마다 다른 각종 제도를 꼼꼼히 살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