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주검을 앞에 놓고 부검을 시작할 때면 기도를 드린다고 했다. ‘다신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보기 흉하지 않게 해드리고, 좋은 곳에 가시길 바란다’고.어느 날 TV에서 유명 연예인과 이야길 주고받는 Y 교수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죽음을 연구하는 교육자, 즉 법의학자로 ‘삶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빛도 없는 카메오’라고 자기소개를 했다.
그는 매주 두 번씩 부검을 하는데 많은 사람이 기피하는 직업이지만 본인은 직업적으로 보람 있는 일이라고 했다. 다만 ‘마음 아픈 사연이 없었으면 하고, 힘든 인생을 사신 분들이 밝은 얼굴로 그곳에 있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가장 마음 아팠던 기억은, 불길에서 네 살 된 아들을 구하고 세상을 떠난 엄마를 부검하는데 눈가에 눈물이 말라붙은 자국을 보았을 때였다
고 한다. 어린 아들을 두고 세상을 떠나야 하는 엄마의 애달픈 순간이었으리라. 그의 인상은 온화하고, 밝고, 평온한 모습이었다. 그는 카메오지만 그래도 뭔가를 끄집어내어 알리고자 하는 역할을 하면서 고인이 조금이라도 편히 눈감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했다.
또 다른 흉부외과 의사는 환자를 수술하면 퇴근도 안 하고 수술 환자의 상태를 살피며 힘든 시간을 보내지만 사람을 살리기 위한 삶이라서 보람이 있다고 밝게 웃으며 말했다. 다만 뒤를 이을 지원자가 거의 없어 난감하다고 올해 들어 몇 개월째 종식되지 않는 코로나19 때문에 우리의 일상생활도 양상이 바뀌어 외출하려면 얼굴을 반쯤 가리는 마스크를 쓰고 나가고, 반가운 사람을 만나도 멀찌감치 서서 눈웃음을 주고받는 것으로 마음을 보여주고, 학생들은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받는 등 이런 풍경들이 낯설고 생경하다.
전 세계가 긴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선에서 묵묵히 치료에 전념하여 우리의 일상생활이 조금씩 가능하도록 한 의료인들의 희생과 봉사에 대해서 감히 무슨 말로 감사함을 표현할 수 있을까. 특별히 우리나라 의료진의 실력과 방역 대책은 많은 나라에서 주목하고 있는 실정이라니 참 자랑스럽다.
내 친구는 요즘 방영되었던 의사들의 일상을 그린 드라마를 보고 의사들이 정말 존경스럽고, 고맙다고 했다. 각자에게 맡겨진 환자의 회복을 위해서 밤잠을 못 자면서 살피고 개인적인 삶보다는 의사로서의 책임 있는 삶이 우선시 되어 환자와의 소통과 치료, 동기들 간의 사랑과 우정이 잘 그려졌던 드라마였다.
요즘 기피하는 극한 직업의 하나로 택배 물류를 차에 옮겨 싣고 주문자에게 배달하는 업종이 있다. 추운 겨울이나 무더운 여름날에도 그들은 무거운 짐을 들고 달린다. 요즘은 사시사철 생산되는 농수산물도 한 몫을 더해 힘듦을 가중시킨다.
우리는 편안히 앉아 받으면서 때론 물 한 병, 음료수 하나로 고마움을 표현해보지만 뭔가 아쉽다.
아주 어렸을 적 기억이 난다. 당시엔 재래식 화장실이 어느 정도 차면 그것을 돈 받고 처리해주는 분들이 있었다. 기다란 막대기 양쪽 끝에 긴 갈고리를 만들어 통을 매단 것에 직접 오물을 퍼 담고, 막대기를 어깨에 메고 좁은 길을 게걸음으로 조심조심 걸어가는 것을 보았고, 그것을 우리는 똥장군이라고 불렀다. 아저씨가 출렁대는 통을 붙잡고 지나가는 동안 친구들과 나는 손으로 코를 싸매 쥐고 한쪽으로 비켜 서 있곤 했다. 또한 수도시설이 안 되어 있던 그 시절은 집에 우물이 없는 높은 지대의 주택엔 물통을 막대기에 매달아 물을 퍼 날라주던 사람도 있었다. 시절이 좋아져서 이젠 까마득한 옛 얘기가 되어 요즘의 아이들은 그 당시 상황을 상상도 못 하리라. 예나 지금이나 그런 일을 누군가 해주지 않았다면 우리의 실생활은 엉망이었을 것이다. 곳곳에서 위험과 불편을 감수하고, 내 삶을 양보하고, 자신의 맡은 업무를 묵묵히 실행하는 힘든 직업의 종사자들은 이 사회의 꼭 필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이분들의 복지가 증진되고, 인간 존엄을 헤치는 행위는 당연히 사라져야 하며 서로의 본분을 존중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 삶의 다양한 형태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본인이 살아가는 삶에 보람을 가지고 만족하며 즐겁게 살아가기를 또한 바란다.결국 어느 분야에서도 어려운 일이건, 쉬운 일이건, 힘들건, 편하건, 너도, 나도 어딘가에서 무엇으로 꼭 필요한 존재들이다.
초등학교 3학년인 손녀는 ‘미래의 나’를 ‘퇴근하는 남편을 위해 저녁을 준비하고, 아기와 놀아주다가 재우고, 밤중에 병원에서 콜이 오면 달려 나가는 의사’로 그렸다.하하. 지금의 꿈대로 꼭 모든 역할을 감당할 수 있기를……
사진 신정자 편집인 ㅣ 글 신정호 편집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