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화폐(지폐)단위중 가장 큰 100원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인물사진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 속의 인물들을 알아보자.
중국에서 100원짜리 지폐가 나온 것이 1980년이다.
이때의 100원가치는 당시 물가에 비추어 볼때, 그 가치는 우리나라의 10만원권 자기앞 수표보다 더 높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현재 인민폐 100원은 우리나라의 1만 3천원 정도에 해당하며, 물가상승으로 인해 그 가치는 상당히 하락하였다. 그래도 여전히 100원이 중국의 가장 고액권으로 위조지폐의 대상이 되고 있다.인민폐100원권은 중국에서 가장 많이 위조하는 고액권이고 상점에서도 지폐 감별기에 꼭 확인을 하고나서 받는다.
이 100元원 지폐에는 네명의 인물이 그려져 있는데 중국인들에게 가장 존경을 받는 인물이라 한다. 그 중요도가 우에서 좌로 배치된 순서인 모택동, 주은래, 유소기, 주덕 순서라하였다.
마오쩌똥(毛澤東) 주석 - 중국 건국후 초대주석을 맡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곳 사람들은 그를 毛主席 이라 칭한다- 이야 다른 설명이 필요없는 新 중국건국 최고공헌자이다. 참고로 중국 관영통신사인 신화사 (新華社)나 국영서점인 신화(新華)서점 등에서 쓰인 新華라는 단어는 中國을 나타내는 華자와 공산 혁명후 새로 건국된 新중국을 나타내는 新자를 써서 新中國을 뜻한다.
중국현대사 사전에는 그가 문화대혁명으로 중국을 건국이래 최대의 좌절과 손실의 시기에 몰아넣는 과오를 범했다고 비판을 가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 그를 소개하는 첫머리에는 중국 최고의 마르크스 혁명가, 전략가, 이론가이며 중국 공산당 및 중국 인민해방군 그리고 新中國의 主要한 창조자로 소개 되어있다.
작년만 하여도 毛주석 탄생 100주년이라하여 여러가지 행사가 많았고 특히 북경 TAXI 기사들이 차에 부적처럼 모주석의 사진을 걸고다니는 것이 해외토픽란에 자주 소개됐던 기억이 났다. 하지만 지금 모주석의 사진을 걸고다니는 북경 TAXI 기사들은 극히 드물지만 天津에서는 아직 많이 볼수있었다.
저우언라이(周恩來) 는 아마도 중국 국민들에게 가장 존경을 받는 前 中國 지도자일 것이다. 일본 유학 후 天津에서 5.4 운동에 참가했으며 혁명가, 인민해방군 창시자, 정치가 이전에 서방에는 외교관으로서 더 알려져있다. 1955년의 반둥회의에서는 120여개의 국가와 수교하는 기반을 마련하였으며, 1972년 1월에는 미국 닉슨대통령과 양국 국교 정상화를 위해 회담을 하였고 같은해 9월에는 일본 수상 다나까와 역시 中日국교 정상화 회담을 하였다. 그의 소개한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私心없이 혁명을 수행해 온 혁명가로서 中國 인민과 세계 인민의 존경을 한몸에 받는 인물"이라고 써있다.
리우사오치(劉少奇)는 1898년에서 1969년까지 활동한 중국 공산당의 주요 領導人인 중의 한 명이다. 참고로 [링 따오 런] 이라 발음되는 이 영도인이라는 말은 이론적으로 계급이 없어야하는 공산주의 사회에서, 초법적 계급을 가지고있는 극소수의 고위 지도층을 표현하는 단어이다. 아마도 가장 계급주의 색채가 적게나는 지극히 중국스러운 단어어서 자주 쓰지않나 싶다. 이곳의 일반회사에서 領導人이라하면 곧 사장과 부사장을 나타낸다.
역시 1919년의 5.4 운동에 참가한 유소기는 1921년에 舊소련 모스코바 동방대학에서 학습후 1934년 대장정 중에는 군단장을 맡았으며 중국건국 직후에는 중국을 움직이는 행정기구 중의 하나인 정치협상회의 전국위원회 상무위원과 중앙인민정부 부주석을 역임하였다. 1965년에는 중국주석과 국방위원회 주석까지 올랐으나 문화혁명중에는 강청과 임표등의 반혁명집단의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주더(朱德) 역시 중국 건국의 주요 영도인(領導人)중의 한명이다. 그는 독일에서 유학했으며 군장성을 거치고 중국 건국후 군사위원회 부주석등 국가요직을 거친후 1976년에 사망하였다. 그는 군사 혁명활동외에도 중국 경제건설의 공헌자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