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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와 게임이론
자오융 지음
▣ 저자 자오융
매니지먼트 분야 박사이자 수석엔지니어이다. 중국 화넝그룹 기술경제연구원 전략연구실 부주임을 역임하고, 중국 수전엔지니어링 컨설팅 회사와 동력경제연구센터, 칭화 대학 등에서 근무한 바 있다. 8년간 공학을 전공하고, 5년간 매니지먼트를 공부하고 엔지니어와 대학 교수로 활동하고 있지만, 전통문화와 게임이론에 관심이 많아 저술활동을 함께하고 있다.
▣ 역자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를 졸업한 후 국제회의 통역사의 꿈을 안고 동 대학 통번역대학원 한중과에 진학했다. 그러나 신속함과 긴장감이 요구되는 통역보다는 글을 곰삭혀 빚어내야 하는 번역에 더 큰 매력을 느껴 출판 번역가의 길에 들어섰다. 중국어 학습서 『쉽게 쓰는 나의 중국어 일기장』을 출간했으며, 옮긴 책으로 『디테일의 힘』, 『삼국지 처세학』, 『역경』, 『저우언라이 평전』, 『사마천』(상, 하) 외 다수가 있다.
▣ Short Summary
게임이론이란 여러 명의 이성적인 주체(경기자)가 서로 영향을 미치고 상호 작용을 가하면서 어떤 전략을 결정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게임은 경기자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전략 결정의 과정이기 때문에 경기자는 자신의 전략만을 고려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반드시 자신의 전략과 다른 경기자의 전략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 책은 엄격한 게임이론의 원리를 통해 중국 최고의 고전인 『삼국지』 속 삼국의 역사와 인물들을 새롭게 해독했다. 게임이론의 시각에서 삼국을 평가하고, 이야기 뒤편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도리 밖의 도리를 발견했으며, 이를 통해 인생의 지혜와 전략의 비결을 도출해냈다. 사실 게임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위, 촉, 오 삼국의 전쟁은 기업들이 경쟁하고 협력하며 이합집산을 반복하는 한바탕 게임이자, 변화무쌍하고 절묘한 지략이 난무하고 굴곡과 부침이 심한 영웅호걸들의 인생 희비극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책은 대중성과 전문성을 모두 갖추고 있으며, 흥미롭게 읽으면서 기업관리의 지혜를 터득할 수 있고, 삼국의 역사와 게임이론을 이해하기 위한 입문서로 사용할 수도 있다.
▣ 차례
게임이론에 대한 기본 지식
제1장 유비ㆍ관우ㆍ장비의 도원결의 | ‘비우비 기업’의 출범
제2장 황건군과 싸워 능력을 선보이다 | 관군의 편에 서서 ‘큰 돼지’에게 의지하다
제3장 대장군의 체제 개혁이 실패하다 | 소장파, 환관 세력을 제거하다
제4장 격문을 보내 제후들을 불러 모으다 | 초점균형을 찾아 구심점으로 삼다
제5장 동탁, 블루오션전략을 수립하다 | 동맹군, 죄수의 딜레마에 빠지다
제6장 치킨게임이 반복되다 | 외부세력에 의해 균형 구도에 변화가 생기다
제7장 조조, 아버지의 복수를 다짐하다 | 유비, 뜨거운 감자를 받아들다
제8장 유비, 굽히고 나아가기를 자유자재로 하다 | 조조, 잇달아 계략을 쓰다
제9장 원문 밖에서 화극을 쏘아 원술을 물리치다 | 소패에서 말을 빼앗아 옛정을 저버리다
제10장 핵심역량을 빼앗기다 | 전위와 여포의 죽음
제11장 유비, 뒤뜰에서 채소를 가꾸다 | 조조, 매실주를 마시며 영웅을 논하다
제12장 조조, 안팎으로 이름을 떨치다 | 원소, 자식을 핑계로 절호의 기회를 놓치다
제13장 장료, 토산에 올라 관우를 설득하다 | 관우, 하비를 버리고 투항하다
제14장 세 인걸이 고성에 다시 모이다 | 두 영웅이 관도에서 다시 붙다
제15
제16장 원소의 후계자 결정을 둘러싸고 내분이 일다 | 곽가, 하북 평정의 계책을 올리다
제17장 유표, 형주에 앉아 원대한 뜻을 품지 못하다 | 신야에 주둔한 현덕, 새로운 근심이 생기다
제18장 서서를 영입해 기업에 생기가 돌다 | 제갈량을 얻은 유비, 정식 궤도에 진입하다
제19장 유비, 불타는 신야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다 | 조조, 형주를 빼앗다
제20장 강하에 머문 유비, 잠시 평온함을 찾다 | 제갈량, 시상으로 가서 동맹을 권하다
제21장 제갈량, 칠성단을 세워 연막을 치다 | 주유, 삼강구를 불태우다
제22
제23장 손권, 누이동생을 시집보내 동맹을 공고히 하다 | 유비, 탄식하며 은근히 주유를 헐뜯다
제24장 조조, 마침내 서량의 큰 근심을 제거하다 | 마등과 한수를 어찌 도원삼걸에 비하리
제25장 유비, 약한 불로 개구리를 익히다 | 유장, 얼떨결에 익주를 양보하다
제26장 한중 정벌을 중도에서 그만두다 | 합비에서 아무런 수확 없이 돌아오다
제27장 일부러 술에 취해 적을 밖으로 유인하다 | 장비, 상대의 계략을 역이용하여 공격하다
제28장 황충, 손쉽게 승리를 얻다 | 조조, 지분을 회수해 퇴군하다
제29장 막중한 임무를 잊고 동오의 심기를 건드리다 | 위기를 얕보았다가 형주를 잃다
제30장 미방, 궁지에 몰리자 배신하다 | 관우, 자만심에 사로 잡혀 번번이 잘못을 저지르다
제31장 유비, 충신을 하옥시키고 동오 정벌을 고집하다 | 촉군, 이성을 잃고 북쪽에서 패하다
제32장 유비의 죽음으로 융중전략이 중단되다 | 조비, 동오 공격에서 참담한 패배를 맛보다
제33장 제갈량, 남만을 평정하며 군대를 훈련시키다 | 사마의, 관직을 박탈당하다
제34장 제갈량, 가정을 잃고 마속을 베다 | 조진, 사마의에게 공을 빼앗겨 분노하다
제35장 제갈량, 또다시 기산으로 나가다 | 사마의,
제36장 제갈량, 세 번째로 기산에 나아가다 | 사마의, 처음으로 대도독이 되다
제37장 세 번 화난 조진, 사마의와 승부를 겨루다 | 제갈량, 네 번째로 기산으로 나가다
제38장 장합, 목문도에서 죽다 | 제갈량, 오장원에서 지다
제39장 사마의, 거짓으로 병을 핑계 삼아 조상을 속이다 | 진무제, 천하를 통일하다
게임이론에 대한 기본 지식
게임이론이란 여러 명의 이성적인 주체(경기자)가 서로 영향을 미치고 상호 작용을 가하면서 어떤 전략을 결정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게임은 경기자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전략 결정의 과정이기 때문에 경기자는 자신의 전략만을 고려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반드시 자신의 전략과 다른 경기자의 전략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경제학에서는 공급곡선과 수요곡선이 서로 교차되는 지점에서 균형이 이루어지지만 게임이론에서는 모든 경기자에게 가장 우월한 전략이 바로 균형이 되며 이것은 전략의 모든 조합 가운데 하나가 될 수도 있고 여러 개가 될 수도 있다. 각 경기자들은 다른 경기자들이 모두 자신에게 가장 우월한 전략을 선택하는 상황에서 자신에게 가장 우월한 전략을 선택해야 하는데 모든 경기자에게 가장 우월한 전략의 조합이 바로 균형이며 각 경기자들은 이러한 균형 상태를 깨뜨리려 하지 않는데. 이것을 내쉬균형(노벨경제학 수상자 존 내쉬가 최초로 제기)이라고 한다.
게임이론의 유명한 사례 중 하나인 죄수의 딜레마를 통해 게임이론을 살펴보자. 한 도시에서 범죄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범죄현장에서 발견한 작은 단서를 토대로 두 명의 용의자를 체포했다. 지금까지 밝혀진 증거만으로는 이들 두 명의 범죄 사실을 입증할 수 없지만, 또 다른 용의자를 찾아낼 수도 없는 상황이다. 경찰은 이들 두 명을 유치장에 각각 격리시켜 수감시킨 후 개별적으로 심문하기로 했다. 심문을 시작하기 전, 경찰은 두 사람 모두에게 자백하면 석방하겠지만, 자백하지 않으면 엄격하게 법에 따라 처벌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뒤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조건을 내걸었다.
첫째, 만약 둘 중 한 명이라도 순순히 범행을 자백한다면 두 사람 모두 혐의가 인정되지만, 자백한 사람은 죄를 사면해 석방하고, 자백하지 않은 사람은 최대 10년의 징역형에 처한다. 둘째, 만약 두 사람 모두 자백한다면 두 사람 모두 혐의가 인정되지만, 범행을 자백한 정상을 참작해 두 사람 모두 5년 징역형을 4년 징역형으로 감면받을 수 있다. 물론 경찰이 바라지 않는 또 하나의 경우의 수가 있다. 바로 두 사람 모두 자백을 거부하고, 더 이상의 증거도 발견되지 않아 혐의 사실을 입증할 수 없는 경우이다. 이렇게 되면 용의자 두 명을 모두 풀어주어야 한다.
첫 번째 심문이 끝나고 유치장으로 돌아간 두 명의 용의자는 자백할 것이냐, 자백하지 않을 것이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하기 시작한다. 두 가지 중 반드시 하나는 선택해야 한다. 이 게임은 다음과 같은 공식으로 나타낼 수 있다.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 ‘비우비 기업’의 출범
동한 영제가 즉위한 후 천재지변이 잇따라 발생하고 조정에서는 10명의 환관(십상시)들이 권력을 장악하고 조정을 쥐락펴락했다. 민생이 도탄에 빠진 상황에서 황건군의 난까지 일어났다. 유주태수 유언이 황건군 진압을 위해 의병을 모집한다는 방을 붙인 것을 계기로 도원결의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28년간 허송세월하며 이렇다 할 포부도 이루지 못한 유비는 의병을 모집한다는 방을 보고 긴 한숨을 내 쉰다. 그런데 이 한숨이 장비의 관심을 끌게 될 줄이야. 장비는 조상 대대로 탁군에 살면서 넓은 농지를 갖고 있었고 천하의 호걸들과 왕래하기를 좋아하는 인물이었다.
한쪽은 한나라 왕실의 종친으로 대업을 이루겠다는 포부는 있었으나 그럴 능력이 없었고, 다른 한쪽은 다년간 농사를 지어 제법 돈을 모은 후 기업의 발전방향을 바꿔보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이런 두 사람이 만나자마자 의기투합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여기에 또 나타난 것이 위풍당당한 관우였다. 정치적 지위도, 경제적 기반도 전무한 관우가 유비와 장비의 동업 제의를 흔쾌히 받아들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동업 기업의 관례에 따라 이들 세 명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을 따서 이 기업을 ‘비우비 기업’이라고 부르기로 하겠다.
이 게임에서는 장비가 협력을 선택하든, 결별을 선택하든 유비에게는 언제나 협력이 결별보다 우월하다. 게임이론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표현하면 협력이 바로 유비의 우월전략이다. 유비가 협력을 선택하는 경우 장비가 협력을 선택했을 경우 얻을 수 있는 보수는 ‘+’ 이지만, 결별을 선택했을 때 얻을 수 있는 보수는 ‘-’이므로 장비도 협력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유비와 장비 모두에게 가장 우월한 전략을 도출할 수 있다. 게임이론에서 모든 경기자에게 가장 우월한 전략으로 구성된 전략의 조합을 내쉬균형이라고 한다. 여기서 내쉬균형은 <협력, 협력>이다. 게임이론에서는 당사자 간의 합의가 내쉬균형을 이루어야만 이 합의가 자발적으로 이행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유비, 관우, 장비가 한마음 한뜻으로 단결하기로 한 이 맹세를 철저히 지킨 것은 게임의 내쉬균형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어떤 문제를 분석하거나 현상을 해석할 때 게임이론이 다른 이론과 다른 점이다.
격문을 보내 제후들을 불러 모으다
중평 6년 영제가 붕어하자 십상시들이 황제의 장인인 대장군 하진에게 입궐 조서를 내렸다. 그를 죽여 후환을 없애고 황자 협을 황제로 옹립하려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이때 사예교위 원소가 관군 5천을 이끌고 하진을 호위해 궁궐로 들어가서 태자 변을 황제로 옹립했다. 원소는 하진에게 “기세를 몰아 환관을 제거해야 한다”고 건의했지만 하진은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하진이 원대한 뜻을 품지 못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자 원소가 다른 계략을 내놓았다. “사방의 영웅들을 불러 모아 군대를 이끌고 도읍으로 가서 환관들을 모조리 베어 죽이게 하십시오.” 원소는 자기 손으로 황제를 옹립하고 환관들을 숙청해 큰 공을 세우겠다는 야심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대장군 하진이 원소의 이 편법에 동조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그것 참 묘책이로다.” 하진은 곧장 각 지방으로 격문을 내려 지방 군벌들에게 환관 토벌에 나설 것을 호소했다.
이 사건을 게임이론에 적용하여 분석해보자. 새로운 경기자를 끌어들여 게임 판도를 변화시킴으로써 자신에게 유리한 내쉬균형을 이끌어내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게임전략이다. 하지만 ‘새로운 경기자들이 게임의 판도와 내쉬균형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라는 문제는 하진이나 원소가 대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본다면 원소의 계략과 이를 받아들인 하진의 행동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커다란 모험을 감행한 것이자, 관리 개선의 원칙을 벗어난 실수였다.
원래 이 게임의 경기자는 하진을 중심으로 하는 사대부 연합과 환관 집단이었다. 이 경우 내쉬균형은 하진이 십상시를 주살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는 매우 쉬운 일이기도 했다. 당시 십상시가 하태후를 조종해 하진으로 하여금 환관 토벌에 나서지 못하도록 저지하기는 했지만, 하진은 여전히 유리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조조나 원소로 하여금 정병 1천 명을 이끌고 환관들을 숙청토록 했다면 천하 평정은 시간 문제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하진은 원소의 편법을 따랐으니 그의 아둔함에 탄식할 따름이다. 결국 하진은 동탁을 도읍으로 불러들임으로써 십상시에게 자기 목숨을 잃은 것은 물론이요, 조정의 파탄을 더욱 가속화 시키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동탁, 블루오션전략을 수립하다
삼국연의에 따르면 원소, 손견, 조조 등이 이끄는 반동탁 동맹군의 병력 수는 28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거대한 대군이 압박해 오자 동탁은 우선 장수 화웅을 급히 내보내 적을 맞도록 한 후, 20만 대군을 두 갈래로 나누어 그중 5만은 이각과 곽사에게 주어 사수관을 지키도록 하고, 나머지 15만은 직접 지휘해 이유, 여포 등과 함께 호뢰관으로 향했다. 호뢰관은 낙양에서 50리 밖에 떨어지지 않은 요충지였다. 군마가 호뢰관에 도착하자 동탁은 여포에게 3만 군사를 주어 수비하도록 하였다. 동탁의 군사가 병력면에서는 열세였지만 전진 기지는 사나운 화웅이 맡고, 후방에는 용맹한 여포가 버티고 있는데다 지략이 풍부한 이유가 보좌하고 있었다. 반면 동맹군은 병력에서는 우위였으나 사기 충만한 장수가 없었다.(당시 관우, 장비는 아직 직함이 없는 무명 장수에 불과) 그러므로 동탁군과 동맹군의 군사력은 비등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전투는 게임이론에서 치킨 게임에 해당되는 사례이다. 이 게임의 경기자는 실력이 막상막하인 두 마리의 닭과 같다. 두 닭이 외나무다리에서 만났다고 할 때 각자 전진과 후퇴를 선택할 수 있다. 두 마리 모두 전진을 선택한다면 힘이 거의 대등하기 때문에 두 마리 모두 큰 상처를 입어 승부를 가리기 힘들다. 어쩌면 어느 한쪽이 죽어야 싸움이 끝날 수도 있다. 이 경우 양쪽이 얻는 보수는 모두 -3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한쪽이 전진하고 다른 한쪽이 후퇴를 선택한다면 전진하는 쪽은 아무 노력 없이 승리하게 된다. 이 경우 얻는 보수를 +2라고 하자. 후퇴를 선택한 닭도 비록 패하기는 했지만 죽기 살기로 싸우다 몸이 망가지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에 보수를 0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만약 두 마리 모두 후퇴를 택한다면 양쪽 모두 얻는 것은 없기 때문에 보수는 0이 된다. 따라서 치킨 게임에서는 우위를 선점해야만 승리의 축배를 들 수 있고, 우위를 선점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싸움을 포기하고 물러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물론 후퇴를 선택하기 위해서는 더 큰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점은 후퇴 역시 우위를 선점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는 점이다. 전진하기로 한다면 더 용맹한 쪽이 승리할 것이고, 후퇴란 더 넓은 세상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고, 그 기회에서 우위를 선점하기 위한 일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들이 발견하지 못하는 기회를 발견했다면 현재의 교착 상태를 포기하고 물러나는 것이 전략적으로 현명한 행동이다. 이것이 바로 레드오션을 초월해 블루오션을 창조하는 전략이다.
이제 호뢰관의 상황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동탁의 선봉장 화웅이 동맹군의 관우에게 목숨을 잃자 동탁은 일당백의 용맹을 자랑하는 여포를 내보내 동맹군측의 장수들을 모두 패퇴시켰다. 사기가 크게 떨어진 동맹군측에서는 이제 누구도 감히 여포에게 대적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유비와 관우, 장비 세 영웅이 힘을 함해 여포를 꺾었다. 그러자 동탁 진영은 전의를 상실했고 동탁은 이각을 사신으로 보내 손견에게 화친을 청했지만 손견은 매몰차게 거절해버렸다. 동탁은 딜레마에 빠졌다. 전진할 것인가, 후퇴할 것인가? 마침내 동탁은 이각의 건의를 받아들여 과감하게 철수를 결정했다. 갑작스런 동탁의 철수에 원소와 조조 등 반동탁 연합의 제후들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탁의 이 후퇴는 사실 고도의 전략적 수단이었다. 동탁이 치킨게임을 포기하고 물러나자 싸울 상대를 잃은 18로 제후들은 우왕좌왕했다. ‘우리가 승리한 걸까?’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전리품도 없고 전쟁의 목적도 달성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패배한 것일까 그렇지도 않은 듯했다. 일세를 풍미하던 동탁과 여포를 물리친 것은 사실이니 말이다. 게임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동탁이 장안으로 퇴각함으로써 낙양의 게임 판도에 근본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동맹군과 동탁사이의 치킨게임에서 18로 제후 사이의 게임으로 변화된 것이다.
원문 밖에서 화극을 쏘아 원술을 물리치다
원술이 군사 수만 명을 이끌고 유비가 있는 소패로 진격하자, 군량과 군사가 적었던 유비는 의형제를 맺었던 서주의 여포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이에 여포는 곧장 지원군을 보냈는데 이는 뜻밖의 행동이었다. 사실 여포가 유비를 도운 것은 의형제에 대한 정에서 나온 것이라기보다 소패를 구함으로써 서주를 지키고 원술의 전략을 방어하기 위함이었다. 여포는 우선 유비와 원술의 대장군 기령을 청하여 연회를 베풀고는 원문 밖에 방천화극을 꽂아두게 하고 이렇게 제안했다. “내가 여기서 화살 한 대를 쏘아 화극의 끝에 달린 곁가지를 맞춘다면 양군은 군사를 거두고, 만약 맞추지 못하면 각자 군영으로 돌아가 전투 준비를 하시오. 내 말을 따르지 않는 자가 있으면 힘을 합하여 치겠소.” 여포의 이 계책은 세 가지 전략적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첫째, 원술의 대장군 기령에게 “나 여포에겐 적토마 말고도 방천화극이라는 무적의 무기가 있다. 원술 네 놈은 방천화극이 두렵지 않은 게냐?”라고 무언의 과시를 할 수 있다. 둘째, 유비에게 자신의 이런 행동이 유비를 위한 것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알리는 효과가 있다. 자신이 보호해 주지 않았다면 이미 원술에게 짓밟혔을 것이니 소패나 지키며 숨죽이고 있으라는 압력이 담겨 있다. 셋째, 자신과 원술, 유비가 반목하지 않고 잘 지내는 것을 원하고 있음을 알릴 수 있다. 여포의 개입으로 분쟁은 평정되었지만, 원술은 이 결과에 노발대발하며 군대를 일으켜 몸소 유비와 여포를 토벌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자 기령이 계책을 내놓았다. “여포에게 혼기가 찬 여식이 하나 있으니 혼담을 넣으십시오. 여포가 주공과 사돈을 맺는다면 분명 유비를 죽일 것입니다.” 이에 원술은 즉시 한윤에게 예물을 갖춰 주고 서주로 가서 혼담을 넣도록 했다.
여포와 원술이 사돈을 맺는 것은 유비를 겨냥한 일이었다. 따라서 이 동맹은 게임이론에서 말하는 공약이며 각종 경로를 통해 이 사건을 널리 알려 동맹이 게임에 참가한 모든 경기자들의 공통지식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여포는 예물과 꽃수레를 준비한 후 한윤과 딸을 호송토록 하고 한밤중에 북과 피리를 울리며 성 밖까지 배웅했다. 그러자 진규가 유비에게 큰 위험이 닥칠 것을 직감하고는 여포를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원술이 장군께 혼인을 청해온 이유는 장군의 따님을 인질로 삼은 후에 유비를 쳐서 소패를 차지하려는 속셈으로 그런 것입니다. 소패를 빼앗기면 서주 땅 역시 위태롭게 됩니다. 더구나 원술은 황제가 되려는 야심까지 품고 있다 하니 이는 반역행위이기도 합니다. 만약 그가 반역하면 장군 또한 역적의 일가친척이 되는 셈인데 천하에 누가 장군을 용서하겠습니까.” 진규의 이 복잡한 게임분석이 여포의 마음을 움직였다. 여포는 급히 군사를 시켜 한윤과 딸을 도로 데려왔고, 이로써 원술과 여포의 전략적 동맹은 결렬되고 말았다.
장료, 토산에 올라 관우를 설득하다
관우가 유비, 장비와 뿔뿔이 흩어지고 서주와 패주도 모두 잃은 채 죽기를 다해 하비성을 지키고 있을 때의 일이다. 조조가 관우의 무예를 아껴 그를 자기 휘하로 들이고 싶어하자 정욱이 계책을 내놓았다. “거짓으로 싸움에 진 척 도주하여 그를 유인하신 후, 정예병을 시켜 그가 돌아갈 길을 끊는다면 아마 그를 설득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정욱의 계책은 두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단계는 관우로 하여금 진퇴양난에 빠지게 하는 것이고, 둘째 단계는 설득을 통해 관우의 투항이라는 최종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게임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이 전술은 적이 옴짝달싹하지 못하도록 압박하여 게임의 판도를 바꿈으로써 자신에게 유리한 내쉬균형을 도출해 내는 것이었다.
이튿날 하우돈이 선봉이 되어 군사 5천을 이끌고 관우가 지키고 있는 하비성 앞에 가서 싸움을 돋우었다. 하우돈이 성벽 아래서 욕설을 퍼부어대자 참지 못한 관우가 3천 군마를 이끌고 성을 나와 하우돈과 맞붙었다. 하우돈은 10여 합을 싸우더니 말머리를 돌려 달아났다. 관운장이 뒤를 쫓아가자 하우돈은 싸우는 척 하면서 계속 도주했다. 이때 관우는 유비, 장비와 뿔뿔이 흩어진 상태였기 때문에 죽기를 다해 하비성을 지키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가장 큰 임무이자 우월 전략이었다. 그런데 하우돈의 욕설에 자기도 모르게 이성을 잃고 정욱이 놓은 함정에 걸려든 것이다. 하우돈을 쫓던 관우는 조조군의 기습을 받아 작은 토산 산등성이에서 포위되었다.
정욱의 첫 번째 계책이 성공하자 다음에는 장료가 관우를 설득하기 위해 나섰다. 일찍이 장료는 관우 덕분에 목숨을 구한 적이 있는 사람이다. 관우와 나란히 앉은 장료는 관우에게 각종 전략 조합 하에서 지불해야 하는 대가에 초점을 맞추었다. 장료의 분석에 따르면 이 게임은 조조와 관우의 대결이었다. 조조는 싸울 것이냐, 투항시킬 것이냐, 이 둘 중 하나를 택할 수 있고, 관우는 죽기로 싸울 것이냐, 투항할 것이냐, 이 둘 중 하나를 택할 수 있다.
장료가 말했다. “형님이 여기서 싸우다 전사하신다면 유사군(유비)과의 맹세를 저버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첫 번째 죄입니다. 다음으로 유사군(유비)께서는 가솔들을 모두 형님께 맡기셨습니다. 형님께서 싸우다 죽는다면 유사군의 두 부인은 의지할 곳이 없게 됩니다. 이것이 두 번째 죄입니다. 형님께서 유사군을 도와 쓰러져가는 한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지 않고, 헛되이 불구덩이에 뛰어들어 필부의 용기만 보이려 하는 것이 세 번째 죄입니다.” 장료가 말을 이었다. “지금 헛되이 죽는 것보다 조공에게 투항하여 유사군의 소식을 알아본 뒤 어디 계신지 알게 되면 바로 찾아가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현덕공의 두 부인을 보호할 수 있고, 도원의 맹세를 저버리지 않을 수 있으며, 몸을 남겨 두어 나중에 크게 쓰는 길이 될 것입니다.” 장료가 주장한 세 가지 죄와 세 가지 방책은 아직 이성을 회복하지 못한 관우가 게임 분석을 통해 <투항시킴, 투항함>이라는 내쉬균형을 찾아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러므로 관우는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투항을 선택했다.
제갈량을 얻은 유비, 정식궤도에 진입하다
삼고초려를 통해 유비가 자신이 온 까닭을 설명하자, 제갈량도 단도직입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융중대다. 공명이 말했다. “조조는 이미 백만 대군을 거느리고 있는데다가 천자를 끼고 제후를 호령하고 있으니 그와는 더불어 싸우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또 손권은 강동에 웅거하여 삼대를 이어오고 있는데 지세가 험고하고 백성들이 따르니 손권에게 도움을 입을지언정 그를 도모하고자 해서는 안 됩니다. 형주로 말하면 북으로 한수와 면수가 둘러쳐져 남해의 이로움을 모조리 취할 수 있고 동으로는 오회와 맞닿고 서로는 파, 촉과 통했으니, 실로 군사를 길러 움직여볼 만합니다. 또한 익주는 지세가 험하여 지키기 쉽고 비옥한 들이 천 리에 뻗어 있어 물산이 넉넉한 곳입니다. 그러니 형주와 익주를 차지하고 그 험한 지세에 기대어 지키시며, 서쪽의 오랑캐와 화친하고, 밖으로는 손권과 동맹을 맺고 안으로는 나라를 잘 다스리면서 천하에 변란이 있기를 기다리심이 어떠하십니까?”
제갈량은 당시의 전략적 환경을 개괄하고, 유비가 대업을 성취하기 위해 반드시 맞서야 하는 최대 적수, 즉 조조와 손권을 언급했다. 그들의 실력을 비교함으로써 이 둘에게 각기 다른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조조는 최대 강적이나 그가 천자라는 ‘킹카드’를 쥐고 있기 때문에 더불어 싸우기 어렵고, 손권은 강동에서 터를 잡고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으니 도움을 입을지언정 도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 뒤에 나오는 형주와 익주를 얻으라는 제안도 유비의 심중을 정확히 읽어낸 것이었다. 일면식도 없었던 제갈량이 자신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니! 유비는 왜 이제야 제갈량을 만나게 되었을까 탄식했다.
이처럼 제갈량은 유비에게 완벽한 전략을 수립해 주었다. 그의 전략은 우선 형주와 익주를 얻고, 이웃나라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어 전략적 동맹을 수립하고, 내부 단결과 경제적 번영을 통해 실력을 기른 다음, 마지막으로 군대를 둘로 나누어 중원을 공격한다는 시나리오였다. 이 전략은 당시의 전략적 환경과 ‘비우비’ 기업이 처한 전략적 포지셔닝을 완벽하게 결합시킨 것이었다. 이때부터 유비는 제갈량을 스승으로 대하면서 천하의 일을 함께 논했다. 이로써 ‘비우비’ 기업은 대표자 유비, 실질 경영자 제갈량이라는 경영구도를 확실히 수립하고, 관우나 장비같은 여러 인재들이 각자의 직분을 충실히 이행함으로써 정식 궤도에 진입하게 되었다.
제갈량 시상으로 가서 동맹을 권하다
조조가 유비 제거와 형주 탈취를 목적으로 50만 대군을 이끌고 남하를 했을 때의 일이다. 조조의 대군이 들이닥친다는 소식만 듣고 형주가 투항하자 남하의 두 가지 목적은 쉽게 달성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한 가지 우려되는 바가 있었다. 유비가 비록 궁지에 몰려 있지만 동오와 강 하나를 사이에 둔 강하에 머물러 있으니 손권과 손을 잡기라도 하는 날에는 수습하기 어려운 상황이 도출될 수 있었다. 이때 순유가 말했다. “손권에게 글을 보내 강하에서 만나 유비를 함께 사로잡은 후, 형주 땅을 나누어 서로 동맹을 맺어 화친하자고 청하십시오. 손권은 필시 놀랍고 두려워 승상께 달려와 항복을 청할 것입니다.”
손권의 상황은 어떠했을까? 조조의 대군이 눈 깜짝할 사이 형주와 양양을 차지하고 그것도 모자라 언제든 장강 넘어 동오를 넘볼 수 있는 급박한 형세였다. 이때 노숙이 말했다. “형주는 산과 강이 험하여 지키기 좋고 백성들의 생활이 풍족한 곳입니다. 만약 우리가 그곳을 근거지로 삼는다면 제왕이 되기 위한 밑천이 될 것입니다. 지금 유표가 죽고 유비는 조조에게 패했으니 저를 강하로 보내어 조문하게 해주십시오. 유비를 달래고 유표의 옛 장수들을 어루만져 우리와 함께 조조를 깨뜨리도록 설득하겠습니다.” 손권이 기뻐하며 조문의 예를 갖추어 노숙을 강하로 보냈다.
한편 유비는 가장 심각하고 위험한 상황에 직면했다. 서쪽으로는 조조의 백만 대군이 버티고 있고, 동쪽으로는 원대한 지모를 가진 손권이 있는데, 그는 적인지 동지인지 아직 알 수가 없었다. 공명이 말했다. “조조의 세력이 너무 커서 대적하기 어려우니 동오의 손권에게 의지해 도움을 청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남과 북이 서로 대치하게 하고 우리가 그 사이에서 이득을 얻을 수 있다면 그리하지 못할 것도 없지 않습니까?”
손권을 찾아간 제갈양은 다음과 같이 말함으로써 조조-손권-유비의 3각 게임구도를 조조-손권 사이의 게임으로 축소시켰다. “장군께서 오월의 백성을 이끌고 중원의 힘에 맞설 수 있다면 조조와 일찍 왕래를 끊으시고, 그렇지 않다면 무기를 방치하고 북쪽을 섬기는 편이 낫습니다.” 이 말은 손권에게 조조의 80만 대군이 손권을 향한 것이니 싸울 것인지 항복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었다. 또한 제갈량은 유비가 손권과 전략적 동반자가 되어 함께 조조에게 대항할 능력이 있음을 설명하고, 손권과의 동맹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득까지도 미리 예상하였다. “조조의 병사는 멀리서 와서 지쳐 있고, 수전에는 서툽니다. 조조는 싸움에 지면 북쪽으로 돌아갈 것이니, 형주와 동오의 세력이 전보다 커져 발 세 개가 솥을 떠받들 듯 천하를 나누어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갈량의 설명을 들은 손권은 크게 기뻐하며 조조와의 대결을 결정하였다. 이로써 제갈량은 손권으로 하여금 전선으로 군대를 보내도록 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것은 손권이 유비를 대신해 조조에게 맞서는 격이었다. 하지만 이 동맹은 제갈량이 세 치 혀만 가지고 얻어낸 것은 아니었다. 동맹은 유비와 손권의 공통 이익을 전제로 한 최선의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유비의 죽음으로 융중전략이 중단되다
유비와 제갈량이 중도에 이별하게 된 것은 조씨 세력을 멸하고 한나라를 부흥한다는 큰 원칙이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동생(관우, 장비)들의 원한을 갚기 위해 대군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임종을 앞둔 유비는 한나라 부흥의 중임을 자신의 아들인 유선이 아닌 제갈량에게 맡겼다. 얼핏 보면 작은 차이이지만 이것이 서촉 세력의 앞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승상의 재주는 조비보다 열 배는 뛰어나니 반드시 나라를 안정시켜 대사를 이룰 것이오. 만약 내 아들이 도울 만한 그릇이면 도와주지만, 재주가 없다면 승상이 스스로 성도의 주인이 되어 주시오.” 유비의 말에 공명은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고 손발을 떨며 어쩔 줄 모르다가 눈물을 흘리며 바닥에 엎드렸다. “충정을 다 바쳐 죽을 때까지 계속 도울 것입니다.”
촉나라는 유비가 한나라 황실의 종친임을 정치적 근간으로 하고 제갈량의 지모를 군사적 근간으로 삼아 세워진 나라였다. 만약 제갈량이 왕이 된다면 두 가지 근간을 모두 잃게 되므로 이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 제갈량이 식은땀을 흘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유비는 죽음을 앞두고 남긴 당부에서 한나라 부흥이라는 목표에 대해서는 단 한 글자도 언급하지 않았다. 융중전략의 수행이 유비의 죽음으로 중단될 위기를 맞이한 셈이다. 유비는 후주 유선이 이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짊어져야 할 책임과 의무를 정확히 제시해 주지 않았고, 이로 인해 유선은 즉위한 후 모든 업무를 제갈량에게 물어서 했다. 그러므로 유선이 제갈량에게 편안히 지내라고 누누이 권한 것을 그의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 유선에게는 한나라 부흥이라는 청사진이 단지 제갈량이 자기 자신을 다잡기 위해 세운 인생 목표 정도로 밖에 인식되지 않았던 것이다.
최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매진하는 과정에서 환경이나 조건에 변화가 생긴다면 마땅히 전략을 적절히 수정해야 한다. 유비 세력의 목표는 형주와 익주를 점령하고 제업을 달성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전략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두 가지 중대 변화가 생겼다. 하나는 형주가 위험에 빠진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유비가 중원을 빼앗기 전에 제위에 올랐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융중대에서 제시한 전략을 조정하는 것이 서촉 세력 앞에 놓인 가장 시급한 과제였다. 하지만 유비가 호정에서 패배하고 백제성으로 퇴각할 때까지 제갈량은 유비에게 전략 수정을 건의하지 않았다. 또한 제갈량은 유선을 보좌하면서 국가의 전략을 개인의 계획으로 강등시키고 본래 유선의 정치적 포부여야 했을 목표를 자신의 개인적인 보은 행위로 축소하고 말았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후주에게 해를 끼친 것이다.
제갈량, 오장원에서 지다
위, 촉, 오 세 나라 중에서 전쟁을 가장 많이 치른 나라는 위와 촉 두 나라였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위나 촉의 세력구도를 집중 분석하고자 한다. 두 나라가 ‘전쟁’과 ‘전쟁하지 않음’이라는 두 가지 전략밖에 선택할 수 없다고 가정하면, 두 나라 사이의 게임은 죄수의 딜레마 게임이 된다. 두 나라가 모두 평화의 깃발을 높이 들고 국내 경제 발전에만 힘을 쏟는다면, 모두 태평성대를 누릴 수 있다. 하지만 혼자 평화정책을 펼친다 해도, 상대가 무력 전략을 펼친다면 나라가 위태로워진다. 그러므로 양국 모두 전쟁이 자신의 우월전략임을 인식하게 되고 <전쟁, 전쟁>이 유일한 내쉬균형이 된다.
하지만 제갈량이 이끄는 촉나라 군대와 사마의가 이끄는 위나라 군대가 기산에서 마주치는 순간 게임의 성질이 변하게 된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게임이 두 군대 사이의 게임으로 구체화되고, 지휘관의 지략과 지휘 능력이 전쟁의 승부를 가리는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양국의 게임이 두 군대 사이의 게임으로 구체화된 후, 다시 두 지휘관 사이의 게임으로 축소가 된 것이다. 전투가 벌어질 때마다 제갈량과 사마의의 대결 구도가 형성되었고 언제나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전세가 형성되었다. 다시 말해 이들 사이의 게임은 치킨 게임의 양상이 되었다. 이 치킨 게임에는 <후퇴, 전진>과 <전진, 후퇴>라는 두 개의 내쉬균형이 있다. 실제로 여섯 차례에 걸친 제갈량과 사마의 간의 전쟁은 선제공격으로 적을 공격해 승리하거나, 자발적인 철수를 통해 전쟁을 피하는 쪽으로 내쉬균형이 유지되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제갈량이 서서히 철수할 때마다 사마의가 “나는 제갈량을 따라갈 수가 없구나!”라고 탄식한 후 곧장 군대를 돌려 낙양으로 돌아갔다는 점이다. 심지어 죽은 제갈량이 살아 있는 사마의를 물리친 일화까지 있을 정도이다. 그렇다면 사마의는 제갈량이 죽은 것을 확인하고서도 왜 기세를 몰아 공격을 계속하지 않고 회군하였을까? 이것은 게임이론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의문이다.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는 사마의가 가슴에 품고 있는 패권 장악에 대한 야심에 있다. 제갈량의 죽음은 촉의 핵심 경쟁력이 급격히 약화됨을 의미했고, 그렇다면 촉은 더 이상 섣불리 중원을 공격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사마의는 잠시 동안 찾아온 이 금쪽같은 시간을 위나라 조정에서 자신의 기반을 탄탄
히 다지는 데 오롯이 쏟아 붓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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