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
김영희
야고는 억새의 발밑에서 자라는 꽃이다. 섬세하고 가냘픈 꽃은 수줍은 듯 고개 떨구고 있다. 야고는 혼자서는 영양분을 만들지 못하고 억새의 뿌리에 의존해 살아간다. 작고 여리기만 해서 혼자 당당히 설 수 없는 까닭인가. 음지에서 수심 가득히 숨죽이며 살아가야만 하는 꽃을 보니 야고의 삶이 애처롭다.
가을을 느끼고 싶어 수목원을 찾았다. 테크로 만든 계단을 오르니 억새가 무리 지어 피어 있었다. 고개를 빼고 방문객을 반갑게 맞이하는 억새의 감촉을 만끽하며 가을이 성큼 다가와 있음을 실감한다.
친구는 억새가 있는 곳에 야고가 있다며 보기 힘든 꽃이라며 주변을 살핀다. 언뜻 보면 찾기 어려워 억새의 줄기 아랫부분을 손으로 헤치며 찾는다. 이리저리 조심스럽게 살피더니 “야고다.”라고 외친다. 눈높이를 낮추어 다가가니 억새의 발밑에서 소담스럽게 야고가 피어있다. 야고는 갈색 줄기에 흰색과 연분홍색이 섞인 꽃이다.
사람들은 수북이 물오른 억새를 바라보며 걸어갈 뿐 야고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야고는 억새의 밑동에서 눈여겨 살펴야 할 만큼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았다. 야고를 보며 어린 시절 한 집에 살았던 아지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는 자그마한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를 지닌 여인이었다. 피부가 하얗고 이목구비가 뚜렷해 어린 내가 봐도 고왔다. 나는 초등학교에서 돌아오면 엄마가 집에 안 계실 때가 더러 있었다. 그럴 때면 그녀 방에서 놀았다. 방 한 칸에 단출한 세간살이는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가뭄에 콩 나듯 오는 남자를 기약 없이 기다리는 신세였다. 아이가 없던 그녀는 라디오를 켜놓고 자수를 놓으며 허전함을 달랬다. 시장에 가면 언니처럼 내 손을 잡고 화덕에서 갓 구운 풀빵을 사주곤 했었다.
얌전하고 정숙해 보이는 그녀가 정상적인 가정을 이루지 않은 게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 집 마루를 지나 맨 안쪽에 위치한 그녀의 부엌문은 항상 열려있었다. 하지만 그 남자가 오면 문은 철옹성처럼 닫혔다. 하루는 눈치 없이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런 기척이 없더니 한참을 지나 남자가 대문을 나서자 함석 문이 조용히 열렸다.
그녀는 남자가 올 시기가 지났다고 생각하면 수심 가득한 얼굴에 웃음기를 거두었다. 내색은 안했지만 오매불망 남자를 기다린 것이었다. 사연 많은 심정을 대변하듯 고개 숙인 모습을 보는 내 마음도 때로는 슬펐다.
새벽녘 배가 아프다며 그녀가 엄마를 불렀다. 엄마는 비몽사몽간에 놀라 방으로 뛰어갔다. 아픈 배를 움켜쥐고 땀을 바짝바짝 흘리며 방안을 데구르 굴렀다. 얼굴은 하얀 백지장이 되어 헤매는 그녀를 부축해 병원을 찾았다. 급성 맹장염이었다.
수술을 위해 보호자의 동의서가 필요해 엄마가 물었다. 어린 시절부터 고아로 자라 보호자가 되어 줄 사람이 없었다. 남자에게 연락하자고 했지만 그녀는 거절했다. 엄마가 보호자가 되었고 수술은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평소 엄마가 인품이 괜찮은데 중간에 다리를 놓아볼까 라고 운을 떼면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수술 후 퇴원하고 빈방에 홀로 누워있으니 설움과 외로움이 깊어진 까닭일까? 세상의 거친 파도에 혼자 살 자신이 없어서일까? 심경의 변화가 찾아왔다. 하루는 엄마에게 가정이 안정된 사람이 있으면 소개해 달라는 운을 넌지시 뗐다.
기력을 회복한 얼굴에는 기대감과 함께 톤이 바뀌었다. 그녀의 눈빛과 홍조 띤 미소에는 드러내고 싶지 않은 심정이 속살처럼 박혀있었다. 지금까지의 삶은 주눅 든 듯 조심스럽게 내디디며 움츠러든 삶이었다. 한 오라기의 햇빛조차도 과분한 듯 안으로 디밀리듯 살았다. 오래도록 그림자처럼 살아온 삶은 성품 탓도 있었지만 떳떳하지 못한 처지가 자리매김한 탓이었다.
어느 날 그녀는 낯설고 눈 선 도시로 거처를 옮기기 위해 떠난다고 했다. 떠나기 전날 묵연히 생각에 잠겨 있다가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안아주었다. 살던 방에서 지나간 시간이 떠오르는지 눈에는 찐득한 눈물이 배어 있었다.
떠나던 날, 세 여자는 헤어지는 게 섭섭해 부둥켜안고 울었다. 울다 엄마가 화들짝 놀라 그녀를 어서 가라고 채근했다. “여기는 생각지 말고 가서 잘 살아.”를 주문처럼 반복해 되뇌었다. 그녀는 평소처럼 월남치마에 수수한 티셔츠를 걸친 드러내지 않는 모습이었지만 여전히 예뻤다.
야고를 한 번 더 살피기 위해 쪼그려 앉아 눈을 맞춘다. 그늘진 곳에서 숨죽인 듯 감추어진 꽃을 보고 있으니 소름이 돋는다. 억새를 들추어야만 햇살 한 줌들이며 위로받는 삶이라니. 구석진 응달 억새의 밑동에서 애를 쓰고 피어있는 야고가 안쓰러워 억새를 헤집고 있다. 가을 햇살이 오래도록 머물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