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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산꾼의 산중산담 山中山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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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간, 정맥, 기맥, 지맥 기타 스크랩 대간 11구간 17차 : 용문산 구간 - 새해 첫 대간길 따뜻한 겨울 중화지구로 들다
초보산꾼 추천 0 조회 53 15.01.13 09:1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3450온누리 산악회  백두대간 17차 11구간 :  추풍령에서 큰재까지

 

언제 : 을미년(14년) 하늘연달  아흐레 쇠날 밤  ~  열흘 흙날 (무박2일) 
누구랑 : 대간5기 산우님들         

어딜 :  추풍령 ~ 금산 ~ 사기점고개 ~ 작점고개 ~ 갈현 ~ 용문산 ~ 국수봉 ~ 큰재

                           19.67 km (바다사랑 대장님 공지내용)

                                                     (산행시간은 사진속에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잡으려 해도 세월은 나뭇가지를 잠시 흔들다 지나간 바람처럼 감촉만 남긴다

눈깜빡이는 사이에 지나갈 일들은 하루 하루 지는 해가 삼켜버리고

잔설처럼 남아 있을 것 같은 끈적끈적한 일들도 봄이오면 눈녹듯 사라지는게 삶의 이치이다

거기에 너와 나 그리고 우리, 얽히고설킨 사연들을 정리하라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해가 지고

이 세상에서 가장 밝은 얼굴로 숨길 것 없는 새세상이 되어 다시 태어나는 새 해

작년 한 해 숨기고픈 사연들을 안고 있는 백두대간팀이기에 지는 해가 반가웠고

다시 떠오르는 새해에게 희망을 걸어 보게될 첫 산행을 위해 오랜만에 대간길을 떠나 본다

 

대간11구간 17차 등로

 

주자료 :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09225

 

추풍령에 도착하여 이정석 앞에서 봉두산타와 앞으로가 기대되는 봉두산타1님, 대간에 듬직한 자원이 되시길...

추풍령(秋風嶺) : 

명색이 백두대간의 고개지만 추풍령은 그리 높지않은 탓에 가다보면 어느 틈에 그만 평지처럼 슬그머니 재릉 넘는다.

구름도 자고 넘는 바람도 쉬어 넘는 고개는 흘러간 유행가 가사에나 있다.  지금은 옛고개 자체가 없다

 `신증동국여지승람`금산군편에 `경상도와 충청도가 갈리는 곳에있어 일본의 사신과 우리나라의 사신이 청주를 경유할 때는

반드시 이 곳을 지나감으로 관에서 접대하는 번거로움이 상주와 맞먹는 실로 왕래의 요충`이라 한다.

부산과 한양을 연결하는 일반적인 고개길은 아니었던 듯.

 

추풍령의 시비

 

 

구름도 자고 넘고 바람도 쉬어 넘는다는 秋風嶺고개,  나는 몰랐네.. 대간길을 걷기전에는..

그 노래가사가 진실인줄 알았고 얼마나 높으면 구름도 넘지 못하고 바람마저 쉬어야만 넘다니

우리도 어지간한 고개정도는 쉬지 않고 뒷동산 오르 듯 넘고 떠 넘었는데...

그래서 진실을 숨긴채 부르는 노래가 얼마나 위험한지 그래서 과거 독재정권들이 그랬구나??

 

추풍령의 시설물들

 

옛날 옛적 이야기를 꺼내들면 큰형님 문경새재에 가려 명함도 내밀지 못했던 추풍령고개

하지만 세상은 변해 고속도로가 뚫리고 철도가 놓이면서 일거에 문경새재를 물리치고 영남대로의 맏형역활을 자처하더니

이제는 추풍령고개가 무서워 넘지 못해 샛길이었던 궤방령에 최고속열차가 다니면서 갑자기 또 조용해지고

유일하게 통행금지 시절에도 통행금지가 없었던 경북쪽 추풍령고개의 노랫소리가 그저 지나가는 바람에 들릴뿐

 

국악의 우리소리와 감,포도가 함께하는 조형물 아랑탑

 

한자를  모르면 세상살이가 고달팠던 옛날 과거보러 가는 사람에게는 秋風落葉이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래서 과거시험의 완결판 榜자를 쓰고 있고 거기에 패를 걸을 수 있는 괘掛자까지 쓰고 있는 괘방령으로 고고 go go

추풍령의 관원을 피해 쌍놈이나 장사치들이 드나들 던 괘방령에 양반의 채면도 아랑곳 하지 않고 넘었던 것이다

아니꼬면 출세하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일단 붙고 보자, 이때부터 생긴 잘 못된 교육환경일까?

 

방향으로 대간길은 시작되고

 

아픔의 현장엔 접근금지 이정표가  정상을 대신하고 있어 깊은 상처가 어둠속에서 말없는 정적만이 흐르고 있었다

 

한국전쟁이후 개발독재가 전국을 강타하고 새마을 운동으로 대변되는 대국민운동에 토를 달고 싶지는 않지만

개발에 따르는 후폭풍을 우리는 지금 반쪽을 잃어버린 채 처참한 모습으로  어둠속이라 더욱 슬프게 보이는 금산을 지나고 있다

경부선 철도용으로 쓰기 위해 시작한 골재채취가 고속철도로 이어지면서 멈추질 않고 있다

중요한 것은 개발이익금은 소수가 가져가고 피해는 주민의 몫이고 개발이 끝나면 복구가 이뤄지지 않는다는데 있다

 

금산 안내판

 

더구나 보이는 부분은 자연 그대로 놓아 두고 보이지 않는 부분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새마을 운동 당시 돈을 보조하면서까지 고속도로 옆에 있는 마을들은 의무적으로 기와집으로 바꾸고 색칠도 하고

좀 멀리 떨어저 있는 마을들은? 글쎄 내 기억으로는 알아서 했던 것 같고

고속도로를 지나면서 보이는 부분만 신경썼던 옛 기억이 오늘 이 금산을 지나면서 생각난다.

 

준.희님의 들기산이라 되어 있는 505봉

 

이번 야간산행의 사진 작품은 실패작, 보기 힘들어도 이해하시길

 

임도도 지나고

사기점고개 :

조선초까지 부곡이 있던 곳으로, 신라부터 있던 특수행정구역(``부곡`)으로 관에서 쓰던 물품을 생산하던 곳이었다고 한다.

조선전기부터 중기까지의 사금파리가 지금도 가끔나온다고 하는데...  대간3기 때도... 역시 이번 5기 때도 우린 볼 수 가 없었다

사기점고개는 조금 더 진행하면 소로인 사거리가 나오는데 사진을 올릴 수 없어 임도로 대신한다

 

난함산 통신중계탑 관리도로인 듯한 포장도로를 만나고 - 조금 진행하면 난함산 갈림봉인데 역시 사진 상태가 좋지 않다.  ㅋㅋ

 

처음 만나는 도로에서 계속 치고 올라가면 난함산 갈림봉(갈기봉)을 만나는데 계속 직진하면 난함산 방향이고 작점고개는 좌틀래야 한다

 

갈기봉과 卵含山 난함산 갈림길:

백두대간과 난함산을 이어놓은 의미의(?)의 대간 분수봉의 갈기봉인듯 하다

卯含山이라고도 불리워지고 있는 알을 품고있는 형상의 산 卵含山을 일제시대때 현대식으로 바꾼답시고 

卵의 가운데 점을 빼고 `토끼 묘卯`자를 써서 묘함산이 되었다 한다

 

다시 포장도로를 계속 따라 내려온다

 

다시 작점고개로 가기 위해 산속으로 진입지점

 

아직도 어둠속에 참새소리가 서서히 여명을 깨울 듯한 분위기속의 작점고개에서 대간 정이총무님과 신임 라곤 대장님 - 많은 활동 기대됩니다

작점雀店고개 340m. 능치재, 성황뎅이고개, 여덟마지기고개라는 별칭도 있다

작점고개, 고개 너머 서쪽(영동군) 마을인 작점리에서 딴 것이며,

여덟마지기고개란, 충북 사람들이 이 고개를 넘어 여덟 마지기 농사를 지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고갯마루 근처에 성황당이 있는 고개라 하여 성황뎅이 고개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러나 정작 고갯마루 약간 아래 김천시쪽 정자에는 '능치쉼터'라는 현판이 달려 있다. 고갯마루 아래 능치마을의 이름을 딴 것이다.
대간 종주 자료에 대부분 작점고개라 적혀 있는 것은, 초창기 대간 종주 취재팀들이 고개 너머 서쪽(영동군) 마을인 작점리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다.

 

작점고개 이정석앞에서 이제 낙동의 여전사 이미지를 벗고 대간팀의 꽃이 되어 있는 다라실님 오랜만에 반가웠습니다

 

작점리 마을은 충북 최남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금으로부터 300여 년 전부터 유씨가 자리 잡은 마을로

이 마을의 유래는 200여 년 전 전국에 제일가는 유기 생산 공장이 작점리 전 지역과 김천시 봉산면 태화동 일대까지

공장이 분포되어 있어 유기점포 판매상인도 많이 있었다고 한다.

새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 새''자의 ''과 유기점포가 많아 ''자를 따서 작점이라 마을 이름이 지어졌다고 하는데

사기점상점이 많으면 사람도 참새처럼 많이 모여들 것인데 그래서  雀店고개인가? 그래서 장수하는 마을인가 보다.

 

김천시 어모면 방향으로 능치쉼터 정자가 있는데 역시 사진이...

 

이 능치쉼터를 보면 영동 쪽의 작점마을이 김천 쪽의 능치마을보다 가깝긴 하나

이 고개를 살뜰히 보살피는 곳은 이 정자를 세울정도로 마음을 가진 김천쪽인 것 같다

능치의 능은 곰을 뜻한다고 하니 우리가 흔히 듣는 '곰치'라는 뜻이다.

능치리의 자연마을인  능점()이 도자기점이 있어 지어진 이름이고 보면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칠리 없지

 

삼각점이 있는 무좌골산 : 북동쪽 기슭에 파란, 붉은 지붕의 도치량마을이, 왼쪽에 추풍령저수지가 위치한다

 

여명은 그래도 밝아오고

 

조그만 소로인 칡이 많아 갈현이라 부르는 곳에서 식후경

 

바다사랑 대장님 덕분에 따뜻한 아침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용문산에 가까워지면서 아무리 산이 낮은 중화지구라지만 700이 넘어가니 정상은 설원을 이루고 있었다

 

사실 눈길을 걷는 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물론 아이젠 등 겨울 기본 장비를 갖추고 산행하기 때문에 안전한 산행을 할 수 있기는 하지만

세상사 그렇듯 언제나 장비를 갖출 수는 없고 때론 엉금엉금 기면서 그래도 걸어야 하기에 걷는 경우도 있다

아무렇지도 않게 힘들이지 않고 걸었던 길인데도 눈길이 되고서야 그간 걸었던 길이 얼마나 고마운 건지 이제야 깨닫는 것이다

 

용문산 직전봉 오르는 길

 

눈이 쌓인 길을 오르려면 더욱 무거워지는 걸음에 조심에 조심을 더하며 넘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지만 

때론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넘어지기 일쑤인 것이 겨울 눈길이며 세상사는 게 다 그렇다

그러다 보면 넘어지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생각을 하게 되고 지혜를 발휘하면서 지금까지 살아 왔고 

또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신중에 신중을 기하지만 또 다시 세상은 눈길로 덮는다

 

비교적 ?은 헬기장이 있는 용문산 정상

 

여기에서 우리들은 또 다른 삶의 지혜가 살아나오는 기쁨이 있어 또 다시 눈길이 돼도 걱정 없지만

하지만 그만큼 쓰지 않아도 될 힘을 쓰는 것이고 눈길 걷는 것이나 가시밭길 인생이나 뭐가 다를까?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나의 것 인양 그렇게 세상을 살아 왔기에

그렇게 익숙했던 길도 익숙한 만큼 경솔해질 수 있음을 눈길은 우리에게 경고해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삼각점이 있는 용문산에서 단체사진 - 잡스님 작품 , 사진 고맙습니다

龍門山(熊耳山) 710m.

1800년 무렵 박생이란 유생이 산세를 보고 용문산(龍門山)이라 했다는 설이 있으나 확실치 않다.
1940
년경 나운몽 목사가 입산하여 근처에 기도원(애향숙愛鄕塾)을 세운 뒤, 일명 용문산 운동을 전개해 나갔던 곳이다.

하나님은 그를 찾는 자는 누구나 다 용납하고 만나 준다’는 뜻으로 ‘용(龍)’자를 용서하다는 의미의 ‘용(容)’자를 써서 容門山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초창기 애향숙은 신앙적인 목적보다 일제하의 설움에서 오는 계몽운동의 일환으로서 출발하였다가

이후 애향숙이 재건되는 과정에서 기도원 운동으로 면모를 바꾼 것이라 한다.  한국 최초의 기도원이란다

산경표에 `熊耳山 功名高縣西南五十里`로 나와 있는 산이다

 

바람의 세기가 만든 雪洲(눈톱)가 정상을 지키고 있다

 

눈은 1년이라는 세월 속에서 겨울이라는 한정된 계절에 맞춰 내린다

인생도 계절처럼 그렇게 또 다시 똑 같은 모습으로 돌아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인간은 눈길에 감춰진 삶의 흔적들을 영원히 지울 수 없기에 지우게 없는 인생인 것이며

그러기에 인간의 머리카락에 찾아온 백발이 곧 삶의 흔적이며 무게라고들 얘기 하는 것이다 

 

용문산에 바라본 하늘은 청명하기만 한데...  설전과 청천晴天의 조화?

 

그래서 겨울에 내리는 눈은 한 가지 색으로만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삶의 무게를 알기 때문에...

그런데 중요한 것은 단색으로 그린 그림인데도 우리는 겨울만 되면 설경을 찾아 길을 나선다.

우리가 너무 익숙해서 빠저나오지 못하고 있음을 경계하며 새로운 마음다짐을 주기때문에

복잡하게 살아온 삶에게 단순한 진리가 때론 모두를 감동시킬 수 있음을 깨우치고 있는 것이다 

 

웅북리(상웅)갈림길도 지나고

 

 

웅북리(중웅 : 곰산(웅이산) 뒤에 있는 마을)과 용문산 기도원 갈림길도 지나고 -

 

중요한 임무를 띠고 있는 국수봉 직전봉 - 김천,영동, 상주가 만나는 곳으로 내가 보기에는 이곳을 중화지구의 시작으로 봐야 할 듯

 

국수봉 바로 앞봉(영동과 상주경계봉)에서 시작돼 속리산 직전 형재봉까지의 중화지구대

상주의 화북,화서,화동,화남지역(옛 화령현)과 상주의 모동,모서면지역(옛 중머현)등 상주목 이 두 지역을 합쳐

중화지구대라 불리워진 백두대간 서쪽 충북땅으로 깊숙히 침범한 지역을 말한다.

백두대간 분수령를 경계로 도계나 군계를 나누던 관습은 적어도 이곳에선 면계역활조차 제대로 못하는 분수령이기도 하다.

 

이제 김천과의 만남도 끝을 알리고 상주와 영동의 도 경계가 앞에 보이는 국수봉까지만 이어진다. 그리고 대간길은 바로 상주속으로...

 

1,000m 이상의 산이 없어 사람들이 드나들기도 쉬워 마을을 이루고 살아가기 좋은 조건으로 인해

중화지역이 경상도 땅으로 뿌리를 ?은 것은 아마도 신라와 백제 마지막 국경에서 비롯된 전통인 듯 하다.

낮은 산줄기로 이어지는 그 두 곳은 싸움의 결과에 따라 쉴새없이 국경이 바뀔 조건을 갖추고 있었기에

명색이 백두대간이 천연의 국경역활을 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남원의 팔랑치 일대가 비록 백두대간의 동쪽이지만 전라도 땅으로 굳어진 연유도 비슷하다

 

오늘의 마지막 봉 국수봉 - 보통 국수봉을 중화지구의 시작으로 본다 : 이제 대간길은 상주속으로, 도경계는 좌측으로...

 

첨단시대인 근래에도 비슷한 싸움이 있었다. 문장대 용화온천 개발을 둘러싸고 충북과 경북이 서로 팽팽하게 맞섰던 사건이다.

용화는 바로 화북면이니 경상도 땅이지만 백두대간을 넘어 온 탓에 그 물은 달래강을 거쳐 남한강으로 흘러가는 한강 수계이다.

돈벌이는 경상도가 하지만 수질 오염의 대가는 고스란히 충북의 몫이다.

백두대간을 경계로 따르지 않았던 탓에 일어난 분쟁이다. 산자분수령의 중요성이기도 하다.

엄연한 백두대간길을 단지 낮다는 이유로 도계를 바꾸는 바람에 지금도 분쟁의 씨앗을 안고 있는 형국이다

 

국수봉에서 공성면 영오리 방향으로 조금 가면 큰재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확실이 보인다 - 사진을 소개하는 사연을 담구간에 만납니다

 

백두대간 전 구간 중에서 고도가 가장 낮은 곳이지만

그렇지만 농사터로 따진다면 고원지대로 당도높은 과수농업이 발달해 있다.

표고가 낮으면서도 기온 차가 3~5도 나는 고원지대의 특성으로 인해 포도, , 사과 등의 과일을 많이 재배하고 있다.

중화지구의 시작점에 대한 명확한 구분을 하기 어려운데 상주의 시작점으로 보면 국수봉이 아니라 국수봉직전봉이라 생각된다

 

국수봉에서의 단체사진 - 잡스님 작품

국수봉 763m.

국수봉은 웅산(熊山), 용문산(龍文山), 웅이산(熊耳算) 또는 곰산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정상은 충북과 경북의 경계이고 아울러 낙동, 금강의 분수령이므로 국수(?水)라 한 듯하고 웅신당(일명 용문당)이라는 대가 있어 천제와 기우제를 지내기도 하였다.

전해내려 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중국의 웅이산과 같이 시초(蓍草)가 난다고 하여 웅이산이라고 하며, 상주의 젖줄인 남천(이천)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국수는 ?水(움켜쥘 국)와 菊水(국화 국)가 혼용되어 쓰이고 있으나, 낙동강과 금강의 분수령으로 물을 쥐고 있는 형국이므로 의미상 국수(?水)가 맞는 것으로 보인다

 

 

삼각점이 있는 683.5봉

 

다방면에서 활동중이신 푸르나 총무님 - 그간 수고했습니다 :  날머리인 큰재로 이어지는 도로가 보이기 시작한다

 

국수봉까지 와는 달리 하산길은 곳곳이 얼어 있어 진행에 어려움을 준다 : 큰재가 가까운 듯 과일밭이 보이기 시작한다

 

신곡리 이정석과 백두대간 생태교육관이 있는 큰재

큰재(우하재) 해발 300m   경북 상주시 공성면 우하리 소재

영동군 모동면에서 상주시 공성면으로 넘어가는 2차선 아스팔트 고갯길

공성면의 3번 국도와 모동면의 977번 지방도로를 연결하는 920번 지방도로가 백두대간의 주능선을 가로지르는 곳이다.

지금은 산림청에서 세운 <백두대간숲생태원>이 세워져 있다.

상주 공성면 于下里는 봉우리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란다

 

상주로 이동 하루의 피로를 풀어줄 뒤풀이 장소

 

굴밥과 굴전으로 이렇게 하루를 건배로 정리한다

 

지금까지 5기에 걸쳐 진행되어 온 3450온누리 산악회의 백두대간의 역사가 말해 주 듯

그간의 경험에 의해 겨울철 안전과 눈폭탄을 피해 잠시 숨겨두었던 중화지구를

새 해 첫 산행으로 무난한 진행으로 하루를 마감한다 

 

추풍령의 어제와 오늘, 또 알 수 없는 미래의 추풍령이 가져야 했떤 세월의 무상함 만큼이나

추풍에 맥없는 몸부림이 되어 말이 씨앗이 되어 추풍령에 묻어야만 했던 대간팀의 낙엽

봄에 씨앗의 잉태를 위한 나무의 숙명과 같은 과정을 낙엽이 주는 말없는 가르침을 알기에

참고 견디며 내일을 다짐하며 잠시 떠났던 추풍령에 다시 되돌아 왔음에도

혹시 낙엽속에 남아 있을 대간팀의 추풍의 허상을 잊으라는 듯

추풍령을 지나 용문산 국수봉에 남겨져 있는 설원이 마지막 사력을 다해 덮어 주고 있었다

겨울은 우리에게 시련도 주고 아픔도 주지만 모든 것을 덮을 수 있는 힘도 주고 있다

자연도 또 인간에게도, 그리고 우리 대간팀에게도 똑 같은 인고의 과정을 주고 있는 것이리라

인생에 지우개가 없듯이 대간팀에도 지우개가 있을 리 없다

그래서 위기를 잘 극복하고 오뚜기 처럼 바로 일어섰던 대간팀의 오늘이 자랑스럽고

모든 산우님들이 마음의 문을 열기에는 겨울이 주는 계절적 한계와 함께

대간팀에 그간 남아 있는 자화상도 이번 기회에 눈녹듯 사라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혹여 지금으로 만족하려는 분위기는 때론 독이 될 수 있음을...

 

누에,쌀,곶감이 만들어내는 삼백의 고장이며 신라의 두번? 도시

경상도의 尙이 상주고, 낙동강의 동? 방향이 바로 상주이다

새 해 첫 산행지로 대간 중화지구인 상주땅에 들어 더욱 의미를 더 한 것 같다

조선인재의 절반이 영남에 있고 영남 인재의 반은 백대명산팀이 가야할 선산(구미)과 상주에 있다고 할 만큼

상주가 주는 무게가 대간팀에게 그대로 전해 졌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고

지금보다 더 발전된 대간팀이 되기 위해서는 상주와 같은 새로운 인재가 함께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도 전해 봅니다

두 구간 더 남은 중화지구에서 맘꺽 기지개를 펴고 진부령까지 날아 갈 수  있는  힘을 비축하여

이제 남은 것은 명산밖에 없는 대간길에 탄탄대로를 펼칠 수 있는 기회로 삼았으면 합니다

 

바다사랑 대장님 어려울 때 아무런 준비도 없는 상태에서 한 해를 무사히 넘기고

이렇게 새 해 첫산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애쓰심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대장님과 뜻을 합쳐 지금까지 잘 이끌어 주신 정이총무님 고맙습니다

대간길에서 보여준 대간 산우님들의  열정이 지금까지 들리는 듯하여

다시 시작한 대간길에서 이 초보산꾼도 행복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고생했습니다

 

 

                      초보산꾼     도    덕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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