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전, 술 자리에서 김모 선생님께서
"대사는 거짓말이야, 임마!"라는 말을 했습니다.
"대사는 진실해야 하고, 정곡을 찔러야 한다"는 식견없는 저의
말에 날아온 대답이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는
말이 이 드라마의 제재가 되었군요.
각설하고---
처음, 드라마 작법으로 인물을 소개하는 독특한 구성이 눈에 띕니다.
진섭, 미란, 성민, 다혜가 소개되지요.
약간 미란이 튄 느낌은 있지만.
역시 작가는 항상 새로운 구성과 새로운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대사는 거짓말이다'
두 번째, 세 번째의 씨퀀스를 거치면서...
새로운 사건이 벌어지고,
작가가 발뒤꿈치에 눌러두고 감추었던 이야기들이
하나둘 밝혀가기 시작합니다.
'순결한 그녀'가 사실 '사악한 그녀'였다는 상황의 아이러니가
잘 표현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깊게 살펴보아야 할 이야기의 고리가 있습니다.
영화, <케이프 피어>의 에드워드 뉴턴은 다중 인격자로서,
자기의 살인 범죄를 스스로 알고 있었는데도, 끝끝내 감춥니다.
결국 자신의 무죄를 변론해서 승소한 변호사 리처드 기어와
단독 면담 때,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범죄자임을 스스로 밝히는 실수를 합니다.
리처드 기어는 섬약하고 섬세한 연기자에게 뒷통수를 한 방 먹은 거죠.
진실하다고 철썩 같이 믿은 상대가 거짓이었다는 것이 드러났을 때,
우리는 대체로 두 가지의 반응을 합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동정론, 아니면 상종해서는 안 될 인간.
뉴턴이 범죄자임을 아는 순간 - 그 반전이 터지는 순간!
우리는 아! 저 놀라운 놈! 어찌 저렇게 치밀할 수가.
그러면 이제까지 저 범죄자를 위해 헌신적으로 애쓴 변호사는?
바보됐네. 아잉....무서워!
뉴턴이 고개를 숙이고 쿡쿡 웃는 악마적 웃음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렇다면,
<순결한 그녀>로 와 봅시다.
신데렐라의 꿈을 이루기 위해 드라마적으로 치밀하게 사전 작업하고, 필요하면 거짓된 행동도 서슴지 않은 여자가 바로 '순결한 그녀'입니다.
그런 여자였음을 다른 누가 아닌, 남편이 알게 되는 겁니다.
이제까지 여자들과 다른 인생을 걸고 싶을 만큼 순진하다고 믿었던
내 아내가 그런 깜찍한 짓을 하다니?
날 얻기 위해 벌인 철저한 연극?
그러면 저 여자는 나의 또 다른 걸 얻기 위해서,
철저하게 또 나를 이용할 수도 있겠구나.
이런 생각이 진섭에게 드는 건 당연하겠죠.
서로 너무 사랑해서 이제는 잊혀진다고요?
아이라는 보험에 들었다고요?
요즘 세상에 그게 통한다고 생각해요?
말도 안 되는 소리죠.
전 이 드라마에서 바로 위와 같은 중추적 이야기가 빠졌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순결한 그녀가 범죄자는 아니잖아요. "그녀는 평소 짝사랑 하던 남자를 얻기 위해 극적인 사기를 친 거다!"라는 평범한 복선이라도 가지고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아니면..깨끗이 튀어야죠.
이렇게 끝나면 사기극밖에 더 되냐구요.
"너 같으면 그런 여자랑 살겠니?"
그 여자를 버리든가, 그 여자의 이중적 모습을 이해하든가,
이 극의 주체는 진섭이므로.
어떻게든 그 사악한 그녀가 혹은 진실로 순결한 그녀가
so what?
so how?
의 상황에서
진섭을 그렇게해서라도 잡을 수밖에 없는
필연적 사건을 만들어 주어야,
'대사는 거짓말이다'라는 이 철학적 명언이 살 것 같습니다.
표피적이 아니라, 진실된 인간의 모습을.....
잡아내야겠죠.
어쨌든 <순결한 처녀>는
가볍게 한꺼풀만 벗겨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아쉽고,
저 깊이 숨어있는 지하수가 아직 터져올라오지 않아.
발단부와 전개부만 있고,
위기와 클라이막스는 없는,
그런 드라마가 된 것 같습니다.
작가 정신, 주제...작가의 인생관,
뭐 이런 거창한 얘기, 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작가가 되려는 사람들, 혹은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
가슴에서 절대 놓아서는 안 될 것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내 이야기의 바닥은 어디인가를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건져올려야 할 겁니다.
그래야 비로소, 먼길을 돌아온 연어처럼
내게 작품이 안기겠죠.
첫댓글 참이슬님! <케이프 피어>가 아니라, <프라이멀 피어>인뎅...--;; 흐~~ <케이프 피어>에서는 '로버트 드니로'가 나쁜 넘으로 나옵니당~~~ ^^a
마조요..ㅠ.ㅠ...알고 있었는뎅...바꾸지 못했어용--이름도 잘못 써서...'에드워드 노튼'...죄송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