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4월 명상원측의 제의를 받고 다시 명상원에 복귀한 뒤의 두 달여간의 일지이다.
4월 3일 목요일
밤이 되어 배낭을 메고 한적한 양동역에 내리다.
안 선생이 백색 코란도를 몰고 코샤와 함께 마중을 나오다.
성 선생, 안 선생, 코샤 등과 외등이 밝혀진 식당 연탄난로 앞에 모여 밤늦게 얘기하다.
제국주의 전쟁. 세금에 대한 논의, 기타 성과 억압,
새로운 가족 구조, 결혼제도... 오만 가지 얘기와 식견들이 피력되다.
전자공학 분야의 우수 두뇌이자 사주 명리학, 명상에도 일가견이 있는 성 선생,
공포의(?) 국세청 세무 전문가 안 선생, 잘난 척은 혼자 다하는 잉모빠,
찍은 남자는 반드시 목표 달성하되 제아무리 노련한 남자들의 작업 수작은
가시 돋친 독설로 일거에 격퇴시키는 화려한 경력의 젊은 산야신 코샤,
넷이 모였으니 그럴 만도 할 일.
얘기는 점입가경으로 무르익어 가는데
윤 원장 밤 늦게 자주색 코란도와 함께 돌아오다.
황송하게도(?) 부인이 잘 단장해준 원장 침소에 들어가 오래된 과실주를 몇 잔 나누며 단 둘이 얘기를 나누다.
다시 식당 쪽으로 내려 가던 잉모빠.
한 나무 앞에서 미모의 여자 유령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잠시 밖에 나왔다가 그 모습을 보게 된 코샤, 겁에 질리다.
정말 귀신이었어?
응, 예쁘더라. 잠깐 인사하고 가려는데 자꾸 못 가게 하대.
무슨 얘길 한 거야?
응, 나보러 진실해지래.
흥, 평소에 얼마나 진실치 못했으면.
쩝.
한껏 호기심이 동한 코샤 좌우간 오늘밤은 무서워서 잠자기가 어려울 것 같다고.
아직까지도 노총각 독신인 성 선생은 왈.
어쨌든 여복은 타고 난 것 같군요. 귀신이 걸려도 예쁜 여자 귀신이 걸리고.
그런가요? 깔깔.
언젠가 코샤 언니 니르비가 하이쿠 시집를 읽으며 편지를 쓰곤 했던
개울가 소나무의 늙은 할미 정령도 보았는데 왠지 힘들어 하고 있더라고.
별은 총총, 바람은 순하고도 맑은 향기 가득한데 명상원엔 무슨 시름이 있는가?
4월 4일 금요일
오전부터 주말 예약 문의 전화.
가족 단위 전화가 많다.
명상 진행자에 대한 문의가 있기도.
답: 명상을 사랑하는 사람. 명상을 통해 과거의 자신으로는 절대 돌아갈 수 없는 사람.
더더 많이 사랑하고 행복해 하는 사람.
기타 - 5년에서 10년 이상 명상을 해온 사람으로서 명상 센터 경험자들 및 각 분야의 전 문가들로 이루어진 명상원 이너 클럽 멤버들.
전화벨 소리 이외에는 절간처럼 고적한 명상원 비쉬람, 불시에 한줄기 바람처럼 모습을 나타내다. 한동안 어떤 존재감도 느껴지지 않던 야미니는 건물 밖 차 안에 혼자 앉아 있다. 검은 선글라스에 멋진 캐쥬얼 차림, 인사.
코샤가 명상홀에서 혼자 춤추고 있다니까 야미니 차에서 내려 당장 달려가다.
문을 여는 순간 갑자기 끼야악! 코샤의 비명 소리.
야미니 덩달아 대경실색하여 아무 소리없이 되돌아오다.
나중에 코샤가 하는 말: 어젯밤 귀신 얘기 때문에 마악 그 모습을 떠올리며 오싹한 기분에 젖어 있었거든. 근데 바로 그 순간 상상 속의 귀신과 거의 같은(흑발에 검고 커다란 눈)
사람이 갑자기 나타난 거야.
하여튼 코샤는 심장이 목구멍까지 튀어나올 뻔했고 야미니는 속절없이 간 떨어질 뻔 했다는 이야기. 그래도 명상을 하면서 자긴 안의 공포를 많이 해소했다는 코샤의 변명 아닌 변명
달마홀에서 함께 쿤달리니 명상을 하다. 보일러 가동을 잊어먹은 탓에 바닥이 차가워 약간의 후유증.
수피야와 우르자 명상원에 오기 위해 8시 반 경 서울에서 뭉쳤다고.
오늘 또 산야신 친목회 한번 열리려나 하지만 11시가 넘어서도 도착하지 못하다.
연휴 차량들로 지독한 고속도로 정체중.
그 사이 윤원장과 프라티마 오다.
저녁도 거르고 기아에 허덕이는 프라티마를 위해 라면 두 개를 끊이다.
명상원에 오는 내내 한시도 쉬지 않고 윤 원장에게 많은 얘기를 쏟아 넣은 프라티마
두 주걱 이상의 밥을 곁들이며 왕성한 식욕을 불태우다.
자정이 넘어도, 새벽 1시가 넘어도 우르자와 수피야 도착하지 않다.
그 사이 프라티마는 코샤와 줄기차게 알콩달콩 이야기 삼매.
1시 25분쯤 마침내 수피야와 우르자, 명상원에 들어오다.
실신 일보 직전이었다는 두 사람을 데리고 각자 숙소로 돌아가다.
4월 5일 토요일
식목일 연휴 첫날. 날씨가 무척 좋다.
날씨값만 해도 명상원 요금의 몇 배.
윤원장, 카페 아줌마 등과 아침 회의.
윤금선 선생이 모처럼 명상원에 오시다.
평생 살 작정으로 왔었지만 사정상 서울로 짐을 옮기셔야 되겠다고.
이삿짐 운반을 도와드리다가 벌에 쐬이다.
윤 원장도 귓가에 몇 방.
하두 쏘여서 그런지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
아침 회의 계속.
점심 식사후 비쉬람과 얘기.
명상원 단골 강릉 박 주현씨 오다.
누구보다 명상원을 잘 알고 있는 듯한 익숙한 태도에 까페 아줌마
주현씨의 정체를 두고 한 동안 아리송.
가족 단위 손님들이 몇 식구 오다.
남편분들은 대부분 명상에는 문외한, 아내 따라 얘들 데리고 왔다가
상당히 만족해하는 모습들.
여자분들이 명상 음악 추천을 원하길래
도이터의 레이키 음악을 들려줬더니 한번에 오케이.
프라사드의 음악은 좀 어렵다하시고 사로다는 대환영, 카페 안에 혼자 앉아 있던
박 주현씨도 즉석에서 주문. 하지만 아쉽게도 품절.
윤원장 어쩐일인지 오랜만에 싱글벙글.
저녁 무렵 일가족 또 도착. 덩그런 식당에서 오붓하게 식사.
우르자, 자기 차로 수피야, 코샤, 프라티마를 태우고 양동으로 나들이.
길을 모르는 우르자 어제에 이어 오늘도 운전하느라 고생 엄청.
쿤달리니 시간 끝나고 홀에 혼자 누어 일대 사이코 드라마를 시작,
마구 울더니(대략 자기 울음의 40%까진 울었다고)
웃음 명상 하겠다며 부랴부랴 달마홀로.
같은 시간 첨탑에 불이 켜진 피라미드홀에서는 주현 아저씨의 나다브라마 명상이...
어둠에 잠긴 산중, 휘황하고도 고요한 불빛, 유현한 명상 음악 소리, 숲 속에 울려 퍼지는 웃음 명상 소리.... 그 사이로 간간히 들려오는 산새들의 지저귐. 흐르는 물소리..
오랜만에 명상원 옛분위기가 피어오르다.
별을 보며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을 나서는 부부,
두 손을 잡고 저편으로 사라져가는 어둠 속 연인들의 모습...
밤 12시경 초로의 부부가 오다.
황토방 숙소에 벌레가 있다며 명상원을 나가다.
누군가, 나는 그게 좋아 왔는데.
4월 6일 일요일
피라밋 홀에서 다이나믹 명상이 진행되고
30분 늦게 달마홀에서 열린 좌선 시간엔 아무도 들어오지 않다.
오전엔 이 수정 선생의 지도로 요가 시간이 열리다.
릴랙스 타임 때 한 참가자의 요청으로 댄스에 너무 강한 불이 당겨져
에너지 필드 조성에 약간의 차질이 생기다.
경험이 풍부한 이 선생조차 자신의 실수를 책망할 정도니 명상 진행이란
절대 쉬운 일은 아니다.
차를 갖고 오신 분들 서둘러 돌아가다.
카페에서 열릴 예정이던 나눔의 시간이 열리지 않다.
야미니가 수박을 사들고 다시 찾아오다.
좀 늦게 까페에 가보니 수박을 담은 접시만 놓여 있을 뿐 야미니 보이지 않다.
사라질 때까지 한 번도 얼굴을 보지 못하다.
저녁 무렵 비 기운을 실은 강한 바람이 불다.
저녁 막차로 돌아가는 수피아를 배웅할 겸
몇 사람과 함께 양동역으로 가다.
명상원에 돌아와 보니 연중무휴의 농담으로 26만평 명상 별장을 왁자지껄한 웃음으로 채우던 비쉬람, 말없이 가버린 것을 알게 되다.
남아 있던 사람들은 티마와 우르자가 산 과일을 앞에 놓고 식당에서 늦게까지 담소하다.
한 남녀가 팽팽한 공방전을 벌이는 통에 가벼운 곡차 한 잔이 기어이 이차 심화코스(?)로 이어지다.
문제가 불거지는 것은 현재의 어떤 일 때문이 아니라 잔뜩 실은 과거 혹은 외로워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긴 해도
하여튼 남녀 간의 설전을 리얼 타임으로 지켜보는 것은 제법 재미있기도 하고 쉽사리 결론이 나지 않는다. 새벽 여명이 동터올 무렵에야 폭풍 일보 직전의 먹구름이 대긍정(어떤 내용인지는 둘만의 일이지만)으로 일단락되었다는 후문.
주무시는 줄 알았던 카페 아줌마가 과자 접시를 선물하곤 숙소로 돌아가다.
좀 외로우셨던 모양.
4월 7일 월요일
프라티마, 우르자 새벽에 떠나가다.
안 선생, 명상원에 돌아오다.
카페 아줌마와 윤 과장 휴가차 서울로 가다.
윤 원장 점심 식사후 외출하다.
코샤, 피라미드 홀에서 홀로 쿤달리니 명상을 하다.
저녁 무렵 비가 내리기 시작하다.
명상원 인물열전 시작하다.
코샤, 통화중.
약간의 오해로 인해 의사 소통에 어려움이 있다.
코샤, 잉모빠에게 잠시 지버리쉬, 평정을 되찾고 지인에게 전화.
밤, 윤 원장은 돌아오지 않고 ...
명상원 시설을 더 좋게 만든다고 또 어디서 한참 얘기중인가 보다.
4월 8일 화요일
계속 내리는 비.
멀리 연못 너머 산골은 구두약을 칠해 버린 듯 흑백 사진 풍경
오전 윤 원장과 회의.
정강주 선생과 요가 캠프 문제 협의 하다.
니케타나 캠프가 겹쳐 인원이 많아도 걱정.
예상 시나리오를 놓고 나시브, 스미타 등과 통화를 하다.
점심으로 뚝배기에 비빔밥이 나오다.
윤 원장 서울로. 한 주 두 번은 가족과 만나기로 했다고.
잠시 연못가 흔들 그네에 앉아 상념에 잠겨보다.
비밀 하우스 안에 들렸더니 식당 아주머니가 저녁 찬거리를 뜯고 있다.
“내가 있는 동안엔 이렇게 약도 안 치고 길러 먹어 좋은데....”
말벗이 없어 적적하신 모양. 멀리 산 언덕에서 괭이질을 하고 있는 아저씨는
일할 때나 진지를 드실 때나 늘 말이 없다.
아직 어설픈 홈 페이지. 마부바와 통화.
목소리가 생기에 차 있다. 원래 이런 데요. 좋은 일이다.
저녁 무렵 무렵 한 교회에서 하기 청년 수련반 문제로 오시다.
평일엔 정말 조용하네요.
고즈녁한 담묵빛 명상원 정경을 모두 둘러본 뒤 주말을 기약하고 돌아가시다.
저녁 특별 메뉴는 버섯 튀김. 처음 먹어 보는데 맛이 괜찮다.
안 선생이 코샤에게 녹차 셋트 한 박스 선물.
20일 연차 휴가를 냈는데 서울 돌아가기 싫다고.
특별 휴가도 다 써버릴까 어쩔까 고민.
팔자 좋은 사람처럼 얘긴 해도 고밀도 회로처럼 윙윙대는 도시생활의 진동 속엔
이렇다할 추억거리도 없다는 듯.
티백치곤 맛이 괜찮은 녹차 한 잔을 들고
이제 겨우 비어 있는 사무실의 밤 시간 속으로.
이런저런 작업. 난롯가에서 휴식.
명상계에 춘추전국시대 오려나.
성선생. 무슨 얘기입니까?
명상원, 명상 학원들이 많이 들어선대서요.
안 국성 씨의 격려 전화.
코샤, 주말 명상 캠프는 어떻게 하지?
나름대로 명상원 알리기에 분주.
밤 늦게 성 선생은 컴퓨터 앞에 앉아 있고.
까페 아줌마와 윤과장 10시 너머 도착.
평소답지 않게 약간 풀이 죽은 아줌마 갑자기 술을 한 잔 사겠다고.
본인은 정작 드시지 않다.
이래저래 성 선생과 새벽 두 시 반.
변칙적으로 살았던 과거지사들이 그래도 재미있다.
아, 그렇군.
많은 일들이 있었고 아무 일도 없었다.
또?
4월 9일 수요일
오전, 주말 명상 캠프 계획.
5월 니케타나 캠프 계획으로 나시브 등과 통화.
결론이 나지 않다.
윤 과장 덜컹거리는 화물차를 몰고 잔디를 사러 가다.
윤 원장,
堂犬三年에 弄風月하고 명상원 3년에 포크레인이 두려우랴.
위태위태한 솜씨로 손수 포크레인을 운전하며 진입로 냇가 보수 정지 작업.
잠시 서울로 떠나는 코샤.
어제 예약한 손님 둘 있는데 오면 오빠가 알아서 잘 해줘.
땅딸막한 키에 맘 좋게 보이는 오빠1과 블랙 캐쥬얼 차림에
머리를 묵은 역시 선해 보이는 오빠 2가 오후에 도착.
경관이 좋은 방이면 좋겠다길래, 여기가 좋아요.
아침에 커튼을 젖히면 저기 숲과 산책로가 보이고 햇살이 가득차고,..
맘에 들어하다.
보고 싶은 데가 있거나 돌아다니고 싶으면 맘대로 하세요. 예예.
저넉 식사 때가 되어도 짐을 푼 두 사람 숙소에서 나오지 않다.
혹 부적절한 관계? 전혀 아니다.
땅거미가 지고 어둠이 밀려와도 문을 활짝 열어 놓은 채
과자 봉지를 늘어 놓고 벌렁 편하게 드러누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두런두런 얘기하는 모습이 우리 친구 아니가”
순도 100프로 젊은 날의 우정이 돈독해 보여 보기가 좋다. 윤 원장과 게시판 운영 원칙 및 향후 명상원 운영 방향에 대해 토론.
모든 글들에 대해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하기로 합의.
윤 원장, 낮에 찾아온 건축업자, 컨설팅 회사 직원과 까페에서
장시간 회의. 난로를 철거한 탓에 지금쯤은 꽤 추울텐데..
얼마후 다들 덜덜 몸을 떨며 난로가 있는 식당으로 내려오더니
함께 몇 대의 차에 분승해 양동으로 직행.
그 손님 중의 어느 분과 문막으로 당구를 치러 갈 예정이라며
이제나저제나 기다리고 있던 성 선생만 뭐 쫓던 뭐 신세.
남은 시간을 까페 아줌마에게 인터넷 사용법을 가르치며 할 수없이(?)
보람찬 하루.
윤 원장 밤에 돌아오다. 둘 뿐의 늦은 사무실.
오쇼 산야신들에 대한 견해 차이에 대해 서로의 입장 조율.
기타 미묘한 사안들에 대해서도 많은 얘기.
4월 10일 목요일
새벽 안개가 자욱하다.
새벽 명상이 시작될 즈음 윤 과장은 부지런히 세탁기를 돌려 자기 빨래 하기 바쁘다.
명상을 끝내고 나오는 시간,
건물 지붕마다 하얀 수증기들이 노천 온천장의 김처럼 무럭무럭 피어오른다.
조금씩조금씩 나무와 숲을 벗겨가며 이제 겨우 산중턱까지 물러선 자욱한 안개.
아직 하늘이 보이기엔 먼데 어디선가 따뜻한 아침 햇살이 천천히 이동해가는 안개 속으로 녹아들고 있다.
아침 식사를 마치기 바쁘게 누군가도 빨래거릴 한 짐 들고 세탁장으로.
홈페이지 게시판 글이 몇 개 증발되어 사태를 파악하느라 잠시 분주.
날이 완전히 풀리고 오후 두 시를 고비로 완연한 봄 빛이 절정에 이른다.
진달래가 활짝 피어 있는 산책로를 걷다보니 붉은 꽃잎이 유난히 커보인다.
오빠 1,2는 산악용 자전거를 꺼내 조심스레 시험 운전, 그 다음엔
우당탕, 탕탕탕 좌로 우로, 고꾸라졌다가 기어올랐다가 내달리기 바쁘다.
윤 원장 냇가 주변에 심어야겠다며 트럭을 몰고 개나리를 사러 나가다.
지난 겨울 명상원에 자원봉사로 있었던 ㅇㅇ양 전화.
인연따라 명상원을 떠났더니 지금은 거쳐거쳐 어느 곳에 와 있다고.
아름답잖아요. 헌데 저희들을 욕 하시나요 하길래
농담삼아 천만에 내가 그 원조인데 했더니 배시시. 하나하나 이름을 들며 모든 분들에게 안부 전해달라고.
성 선생이, 그 아가씬 어떻게 알아요?
알죠. 서울에서 전화했더니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의 아가씨가 전활 받길래
당신은 이쁜가요? 했더니 냉큼 네, 하대요. 그럼 내 갈 때까지 잠자코 기다리게 했는데...
성 선생 싱겁다는 듯 피식.
코샤 돌아오다. 하얀 티가 무척 잘 어울린다. 남자 친구가 사주었다고 자랑.
보태어, 갑자기 아파죽겠는데 남자 친구가 “회사에 늦게 들어가는 게 문제야”
상사한테 욕먹을 것도 각오하고 부랴부랴 약을 사주었는데 먹자마자 싸악 나았다고 또 자랑. 하여간 코샤의 사랑은 감동의 물결의 연속.
저녁 먹고 너른 빨래를 걷어 잠시 방안에 앉아 있다 나오니
안 선생이 파티하자며 유혹. 일을 마치고 까페로 들어가다.
숙소에 든 성 선생을 모셔오고 죽림삼현 어쩌고 하며 이런저런 명상계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우후죽순으로 공개되는데 내내 입이 무거웠던 성 선생이 명상 체험의 미묘한 문제들에 예리한 비판을 제기하며 칼을 휘두르기 시작. 끝장을 보겠다는 듯 100킬로 120, 130.. 입에 침을 튀겨 가며 수위를 마구 높여 가는데
코샤 붉은 색 쇼올을 거치고 슬며시 나타나다.
벽돌집에 날아온 한 송이 붉은 장미랄까,
다들 꽃향기를 상찬하며 잠시 음양 에너지의 조율을 꾀하는 듯 싶더니
성 선생 힘차게 제이의 공습.
시간은 자정을 향해 치닫는데
외출에서 돌아온 윤 원장도 그냥 갈 수 없는지 합석하다.
오건 말건 성 선생 쉴새없이 자기의 논지를 전개,
이 정도면 실컷 했다는 듯 마침내 마무리.
그러자.
“오늘도 많이 늦었네요”
하나둘씩 숙소로.
잠시 앉아 있다가 성 선생과 탁자 위를 치워 놓은 뒤
앞서거니 뒤서거니 각자 숙소로,
오랜 만에 달빛, 달 주위엔 커다랗게 원을 그린 광륜이 곧바로 하늘과 함께 머리 위로 쏟아져내릴 듯.
은은한 정기를 가득 가득 실은 채 온 숲과 강물, 나무들을 빨아들일 듯 한데
한 가운데는 보름달도 아닌 반쪽 달.
커다란 원. 가운데 손톱만한 눈 부신 반달. 그 옆에 보석처럼 박힌 별 하나.
4월 11일 금요일
또 비가 내리다.
몸살 기운이 있어 늦잠을 자고 일어나니
운무에 가린 풍경은 그저 조용한데 새소리조차 들려오지 않다.
윤 원장과 느지막이 점심을 먹고 있는데 오빠1, 2 식탁 앞에 와서
그만 떠난다고 정중히 작별 인사를 하다. 밥을 먹다 말고 함께 일어나
손님들을 배웅하다.
식당 앞 화물차 뒷칸엔 몇 짐 개나리 다발들이 모로 누워 비를 맞고 있다.
“저건 얼마치예요?” “37만원”
성 선생의 인터넷 개인지도는 어느덧 사주 상담으로 바뀌어 있다.
피시방 컴퓨터 화면에 뜬 자신들의 사주 명식을 놓고 까페 아줌마, 코샤, 성 선생과 한창 질의 응답 중. 성 선생, 상담발이 받았는지 사무실로 찾아와 누구 사주도 봐주겠다고.
그러시지요. 대신 이따가.
나중에 난롯가로 가보니, 성 선생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간의 경험으로 명상하는 사람들 사주가 다들 보통이 넘는단다.
이번에도 역시 뚜껑을 열어보니- 어이쿠 이건 내 실력으론 안 되겠는데요.
하여간 이런 사주로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 있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우뚱.
달마홀로 명상하러 들어간 코샤
늦도록 나오지 않다.
산책을 하고 난롯가로 돌아오니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하는 여자 산야신이 한 분 와 있?
그럼 그냥 아가씨라고 부를까요?
좋다나(아가씨보단 나이가 좀 들어보이지만)
저녁 무렵 삼일 전에 통화한 안 국성씨가 간간이 뿌리는 비를 맞으며 판대역에 내리다.
명상원을 다시 찾은 건 근 1년만의 일이라고.
그냥 들어갈 수 없다며 파티 재료들을 이것저것 사들고
함께 명상원에 들어오다.
밤이 찾아들고
따뜻한 난롯가에선 안국성씨 주최 만찬 시작.
아가씨 난디타, 코샤, 윤 원장, 성 선생 속속들이 모여들고
어쩐 일인지 내둥 말이 없는 잉모빠.
명상원 초기 단골 손님이었던 안국성씨 화려한 옛시절을 회고하며 분위기를 잡다가 과거 명상원 일지에 대해 입이 마르도록 찬사를 바친다.
“엣날엔 이런 얘기들이라도 아주 맛깔스럽게 써서 그걸 읽노라면 나도 거기 가서 끼고 싶다, 이런 맘이 절로 들었다니까요.”
줄곧 사태를 관망하던 잉모빠, 대화에 가세하기 시작.
오만가지 비하인드 스토리들이 꼬리를 물고 줄줄이 공개되는데
난디따, 그런 내용은 이런 자리에서 말하기엔 좀 심하지 않나요?
잉모빠 특유의 궤변으로 얼버무리고 코샤도 그럭저럭 동의.
하여간 듣는이의 머리가 띵할 정도로 복잡다단, 높은 수준의 이해력이 요구되는데 이런저런 설과 의문이 꼬리를 물고 하면서 어찌나 핍진감 있게 전개되었던지 시간이 후딱후딱 지나가다.
잠시 휴식시간. 한쪽 구석에서 심상찮은 눈빛을 빛내고 있던 성 선생,
4강 상대는 마침내 가려졌다는 듯 천천히 작전 개시, 잉모빠와 나름대로 전문적인 얘기에 열을 올리기 시작.
코샤 , 난디따 마침내 하품을 하며 저희들끼리 얘기를 주고 받는데
성 선생, 해병대식으로 주의를 집중시키며 열변에 열변.
정지 신호건 대응 사격이건 일체 무시하고 자기 주장을 끝까지 밀고 간다.
휴우- 이제 끝났나 싶어 코샤가 한숨 쉬며 일방주의 전략의 배경을 물으니
성 선생 하는 말:
이 양반(잉모빠)이 얘길 풀면 끼여들 틈이 없기 때문에 일순간의 방심도 놓치지 않고 밀고 들어가 선제공격으로 기선을 제압한 뒤 줄줄이 굳세게 얘기를 마치고 보는 게 상책이라며 그간의 실전 경험을 공개. 한 바탕 함께 웃은 뒤 그 불타는 전의와 기민성, 노련미를 치하하다.
안 국성씨, 무언가 긴요한 사안이 있는 듯 윤 원장과 함께 거처로 올라가다.
다시 돌아오고 두런두런 인저리 타임 자못 길다.
수피야, 청량리발 막차를 타고 도착하다.
막차를 놓친 우르자는 다른 열차로 원주 역에 내렸다고.
저번처럼 새벽 1시 30분경 도착하다.
이번엔 명상원의 불빛이 모두 꺼져 있다.
식당 난롯가의 외등 하나뿐.
4월 12일 토요일
바람이 제법 차갑다.
안 선생 서울로 돌아가다.
비쉬람, 프라티마, 야미니 도착.
윤 과장 친구들과 그 부인과 아이들 서너 식구 도착.
부산에서 또 어디에서....
바람따라 구름따라 정선에 있던 운파도 안흥 찐방 한 박스 및 기타 등등을 들고
명상원에 도착. 예전의 한 명상 캠프에서 선화 퍼포먼스를 했던 분이라니까
다들 아, 그때 저도 있었어요.
점심. 밥 접시에 디저트로 먹으라며 찐빵을 올려 놓기에 누군가,
“나처럼 적게 먹는 사람은 말야, 찐빵을 디저트라고 내놓은 사람 보면 한대
때려주고 싶더라.”
그렇건 말건 운파, 자 찐빵이요, 찐빵. 맛있는 옛날 찐빵 ~~
이렇게 저렇게 얼마 못가 찐빵 박스가 동이 나다. 먹어보니 맛있긴 맛있다.
비쉬람이 준 스니커 쵸콜릿은 누가 다 먹었을까?
비쉬람이 첨엔 누구한테 줬는지는 모르겠고 어쨌든
우르자가 가지고 있다가 프라티마와 운파에게로 갔는데
운파 것도 역시 프라티마에게로 가다. 질겅질겅 껌을 씹듯 잘도 먹는 프라티마.
저번 주완 달리 얼굴이 활짝 핀 프라티마를 두고 한마디 두 마디씩 축하.
프라티마 널널하게 여유를 부리다가 들꽃을 따러 가다.
저녁 명상, 저녁 식가, 웃음 명상 대신 비파사나 시간, 다들 달마홀로.
나시브와 통화,
탕탕대소하는 나시브의 목소리가 듣기 좋다.
지난 겨울엔 가슴을 움켜쥐며 밤새 통음하더니..
윤 원장, 내친 김에 퇴촌 나시브집으로 가다.
하얀 집 앞에선 환한 조명등을 밝힌 채 윤 과장 친구들과
그 가족들이 밤새도록 떠들썩하다.
조르바 식당 난롯가, 나눔의 시간 패거리들. 코샤 & 수피야 집중 탐구 시간.
코샤, 수피야의 긴 코, 입술, 용모적 특성 따윌 심상하게 언급하며 방어 겸 선수를 치다가 갑자기 <엽기적인 그넘2> 대공개.
“내가 매연 무지 싫어 하거든. 한 번은 차가 지나가서 손으로 코를 가리고 있는데 얘가 요 뾰족한 코를 손안으로 들이대고 훕훕 숨을 들이쉬는 거야.”
수피야 얼굴이 벌개지고, 다들 의자가 자빠져라 웃다.
하여튼 웃음 명상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다들 불꺼진 까페를 아쉬워하며
숙소로 돌아가다.
4월 13일 일요일
다이나믹 명상이 끝나고 코샤 힘이 들었는지 점심때까지 휴식.
우르자와 프라티마 요가 시간 끝나고도 단 둘이 울자 웃자 미니 미스틱 로즈.
여자들은 우는 명상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고 윤 원장 한 마디.
점심이 되기도 전 부산 손님, 인천 손님 사정상 돌아가다.
나시브, 정강주 선생과 통화. 캠프 문제를 조율해 보았지만 여전히 미정.
파라솔에 앉아서 이야기 꽃. 운파 선생이 더 낀 것 이외에는 저번 주의 재판
날은 약간 흐리고 이따금 팽팽한 바람에 옷주름이 펄럭거린다.
농담 하나 웃음 하나 소강국면에 이르자 누군가 티 타임을 제의 하나둘씩 자리를 뜨는데
아는지 모르는지 윤 원장은 그 자리에 앉아 꾸벅꾸벅 수면삼매.
퇴촌으로 서울로 다시 새벽녘 명상원으로, 피곤했나 보다.
잠에서 깨었는지 혼자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까페 주변을 지나가며 창 안을 기웃기웃거리는 윤 원장의 모습이 재미있다.
인천에서 오신 손님 한분 배낭을 메고 도보로 명상원에 도착.
이곳저곳 안식처를 찾아 다니신 듯.
저녁 식사 때 해프닝 발생.
프라티마, 마악 접시에 밥을 담아 자리에 앉는데 까페아줌마 다가 와
한바탕 설전. 인천 손님 등 서둘러 식당 밖을 나가고.
윤 원장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
식당 아줌마의 표정도 약간은 재미있다. 보기 드문 장면에 웃을 듯 말듯 생글생글.
어디서 문제가 생긴 것일까?
사무실로 들어가니 숙소 문제로 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보다.
밖에 나오니
우리만 해도 한달에 한 두 번은 꼬박꼬박 여기 왔을 걸.
산야신들 명상원을 사랑하는 맘에는 변함이 없고, 떠나는 수피야를 배웅할 겸
아이스크림도 먹을 겸 조금 일찍 함께 양동역으로.
좀체 좌석표를 구하기 어려운 일요일, 마지막 남은 표 한 장이 수피야한테 딱 걸리다.
저번 주에 이어 오늘도 표를 얻었다며 수피야 희희락락.
냉큼 브레이크를 거는 코샤.
“누구 때문인데?”
수피야 즉각, “유”
총알보다 빠른 민첩한 반응에 다들 어안이 벙벙, 까르르.
과일을 사들고 명상원에 돌아오다.
밀린 일지를 올리며 며칠 간의 글들을 훝어보니 문득 첫날 본 정령의 무언이 떠오르다.
사무실 불을 내리고
까페에 들러 혼자 계시는 아줌마와 잠시 얘기를 나누다.
들꽃을 사랑하는 프라티마, 생일 선물로 받은 꽃다발이 더 중요한 아줌마.
꽃다발을 들꽃으로 바꿔놓은 프라티마, 꽃다발이 내포하는 의미와 상징에 애착이 갔던 아줌마. 이해는 가면서도 화해점을 찾지 못한 듯 하여 조금은 울적.
다시 프라티마 방에 가니 카라, 코샤, 우르자 등이 느긋한 자세로 기대거나 누워 한창 이야기 행진곡. 방안에는 프라티마가 꺾어 온 들꽃 화병이 몇 개.
과일, 자기들끼리 해치우고 하나도 없다.
오늘 있은 해프닝에 대한 고견(?)을 잠시 피력한 뒤 여자들을 남겨두고 방으로 돌아가다.
4월 14일 월요일
오전. 엊저녁 4.13 사태의 영향 탓인지 인천 손님 일찌감치 떠나다.
개인적으로 심장이 안 좋다고 말 한 적이 있어 자못 송구스럽다.
까페에서 아줌마, 윤 원장 등과 회의.
감기 기운이 심해 방에서 중간중간 휴식. 윤 원장은 여전히 분주.
니케타나 캠프 계획, 마침내 명상원으로 확정.
서울 윤 원장 사모님 전화, 피라밋홀 개축 공사에 많은 관심.
프라티마 사무실 입구에 화병 하나를 만들어 놓고 떠나다.
병풍에 그린 매화도 한 폭을 연상케 하는데 부랴부랴 가방에서 자신의 비방환단을 꺼내 감기 나으라며 선물. 판대역까지 배웅하다.
결국엔 다시 돌아 온 안 선생.
우중충한 겨울 복장에서 쿵푸 도장 사범 같은 트레이닝복으로 산뜻하게
갈아입은 성 선생과 내둥 잔디밭에 서서 봄볕을 즐기며 교류중.
까페 아줌마 청소도구 챙겨들고 지나가다 합류.
무슨 얘길 저리도 하나 슬그머니 가 보았더니 지금은 중국 동포 출신인
까페 아줌마의 중국어 교습중.
오전에 전화를 준 카라, 오만가지 잡동사니가 적재된 빨간 프라이드 팝과 함께
그예 저녁 나절 찾아 오다.
저녁 식사를 마친 안 선생은 크리쉬나 하우스 앞에서 저편 냇가 건너
달해별 공원을 향해 골프채를 휘두르고 있다. 그냥 심심해서, 라고.
어쩐 일인지 다시 찾아온 손님마다 파티를 잊지 않는다. 카라 또한
술도 못하는 주제에 맥주 운운하며 잉모빠를 종용.
마침내 국산 맥주 몇 병을 앞에 놓고 난롯가에 모였는데, 성 선생도 불러와야지,
해서 특별 초빙하니 방 안에 꼼쳐둔 안줏거리까지 내놓다.
어떻게 알았는지 한 밤중 우르자까지 판대역에 도착, 적시에 합석하다.
여자들의 대화란 첨엔 싱겁다가 나중엔 걷잡을 ?없다.
그간의 소식들을 주고 받고하다가 사생활 부분도 깊이 건드려보다가 무슨 얘기 끝인가,
왜 여자들은 월경 때면 도둑질을 할까?
카라의 한 마디가 도화선, 듣는 이의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넌픽션 <도둑일기> 시작. 간추려보면,
범순이 카라의 도둑일기
어렸을 때: 동전을 한움큼 훔쳐 양말 속에 불룩하게 숨겨 놓고
하나둘하낫둘 보무도 당당히 걸어가는데(카라의 리얼 액션 배꼽잡았슴)
철그럭철그럭. 아버지한테 들켜 뒤지게 맞았다.
대학 때: 마가렛 리드의 책에 반해 서점에 갔으나 없었다.
도서관에서 발견 꼭 읽어야겠다는 맘에 도난 검색대가 있는 것도 잊고 나오다가
삐이익 삐익.(다들 숨이 멎었슴)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그냥, 이건 서점에 없는데, 읽어야 되는데 그런 맘 뿐이었어.
다들:쩝.(카라의 지적 탐구열에 당황해했슴)
역시 범순이 코샤의 도둑 일기.
중학 때 도둑질에 관한 한 대가급 친구가 있었다. 그거 아무 것도 아냐.
해서 함께 서점에 들렸다. 맘에 드는 책부터 찍었다. 점원과 수작을 주고 받고 있던 친구
점원을 유인해 주의를 돌리는 틈을 타 목표물을 교복 속에 집어 넣었다.
유유히 빠져 나간 친구는 밖으로 나오라며 손짓하는데
어린 코샤, 임산부처럼 배가 부른 채 다리가 후들후들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이때 정말 애처로와 보였슴)
어쨌든 성공. 그 다음부턴 세상 전체가 자기 것처럼 보였다.(정말 그래 보였슴)
그래서 내친 김에 가게에 들어가 이것저것 대담하게 슬쩍.
문밖을 나가는데 앞서 나가던 남 절도생이 주인에게 들켜 귓싸대기를 흠씬 맞고 있는 것이 아닌가? (공포에 질린 코샤의 표정 진짜 심각했슴)
양심의 가책을 받아 훔쳤던 물건을 도로 내려 놓고 나왔다.
.....
대충 이런 식으로 돌고 도는데
카라 재미있는지 손뼉까지 치며 아참! 또 있다, 또 있다를 연발(그 천연덕스러움 정말 웃겼슴) 교수 앞에서 태연히 손바닥에 적은 답안 보다가 어이없이 적발된 얘기....
숙녀의 체통도 교양도 모두 망각한 범법 사실들이 줄줄이 공개되는데
바톤이 성 선생에게로 넘겨진다.
성 선생의 절도수법은 모험정신과 도전 의지가 충만한데다가 대단히 용의주도하고 지능적인지라 좌중의 탄성을 거듭 자아내다.
직장내 상습 절도범을 “집합론”을 이용해 붙잡게 된 사연에 이르러 자신의 우수한 두뇌를 유감없이 과시, 찬탄은 절정에 이르는데...
그 계기가 된 것은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포로노 동영상 시디를 도둑맞으면서부터라고.
(여자들, 독신남 성 선생의 사생활을 다소간 의심함)
당시 회사에 상주해 있던 형사의 반응도 이색 하이라이트.
성 선생, 용의자를 제시하며 의법 조치할 것을 청하자 좀 귀찮았던지,
회사 차원에서 처리하시려면 알아서들 하시고, 감방에 보내고 싶으면
보일러실로 불러내 저와 5분만 함께 있게 해주시면 됩니다. 딱 5분.
청중들 ? 하는 표정과 동시에,
<공공의 적> 설경구의 모습을 떠올리며 다들 까르르 두고두고 박장 대소.
하여간 도둑질의 필연성, 심리학, 사회학, 생리학, 도둑질 상태의 무아경에 기댄 명상론적 조명 등 온갖 이론적 설명들이 제시되는데
유독 한 사람만 굳게 입을 다물고 있어 문초를 약간 가하니
어쨌든 지금 얘기한 것들은 성장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평범한 사례들이고..
하며 무슨 초연 달관한 사람처럼 얘기.
그대는 그럼 도둑질 전혀 안 해봤어?
도둑은 경찰이다, 그 도둑놈이 뿌리 깊이 있다고 어떤 선생이 나한테 그랬어요.
여기까진 그럭저럭 들어줄만 했는데
한데 내게 있어 도둑질은 어머니에 대한 죄의식, 또 하난 비밀스런 지식에 대한 도둑질 이런 것이거든요...하며 제법 고상망칙. 하도 뜬구름처럼 얘기해서 좌중이 잠시 심각.
화제는 연애와 결혼, 성으로 이어지며 활기를 되찾다.
앞서 얘기처럼 수다판으로 시작되다가
성선생, 분방한 성 모랄에 대해 강력한 이의 제기.
한참 좋았는데 예상치 못한 복병의 역습에 당황해하는 여자들.
이론 투쟁에 휘말리는 것이 두려웠는지
몇 마디 훈계성, 방어성 멘트를 가한 뒤 서둘러 일제히 퇴장.
잉모빠도 따라 일어나려는 순간, 성 선생 승기를 잡은 기쁨도 잠시 혼자 남게 됨을 절감, 당황해하는 빛이 역력. 무정하게 탈출하는 잉모빠를 황급히 탁자 앞에 납치, 구금한 뒤 한 동안 토킹 어바웃.. 반 시간 남짓 시간이 흐르고
오늘의 이야기 한마당, 나름대로 완성도를 갖추며 상호 합의하에 終 .
.
4월 15일 화요일
고뿔 때문에 며칠째 고생하다.
인물 열전 <상깃 편> 올리다.
신열이 있어 잘됐는지 어땠는지 가늠하기에 힘이 붙이다.
윤 원장은 여전히 공사 관계로 분주.
코샤, 카라 언닐 데리고 컴 앞에 앉아 명상원 홈페이지 투어 가이드.
게시판에 올라온 다마크의 글과 민우의 댓글을 마악 읽는 중이길래.
“쟤네들 수작부리는 것 봤지? 한 마디 해.”
“그래라 언니야.”
워드는 코샤가 대신 쳐주기로 하니 대뜸
시끄럽다. 디비져 자라. 왈왈.
코샤 깔깔깔.
다마크도 만만치 않은데.. 은근히 겁을 줘봤더니 카라,
후환이 두려운지 추신을 달아 자신도 달마홀에 디비져 있다고 한 발자국 후퇴.
아무튼 생전 처음 카라의 컴 데뷔, 자못 촌철살인의 칼칼함과 독창성.
저녁에 돌아가다.
감기치레 소식에 밤차로 친구가 오다.
난생 처음 숯가루를 먹었는데 신기하게도 열이 떨어지다.
4월 16일 수요일
친구 가다.
아침을 딸기로 대신하다.
설탕 대신 죽염 가루에 찍어 먹으라고 해서 그리 했는데
맛이 별스럽다. 과일은 몸을 차갑게 하는데 소금이 그를 중화시켜 준다고.
밀린 일지 때문에 엄중 항의성 글이 게시판에 올라옴.
글투가 낯이 익긴 한데 누군지는 모르겠다.
명상원에 다녀간 부산 손님 전화.
부산에 명상 모임이 없느냐고.
윤 원장, 안 보이길래 물어봤더니,
안 선생이 꾀어 근처 골프장에 데려갔다고.
돌아온 윤 원장과 잔디밭 파라솔에 함께 앉다.
경영상의 고충을 얘기하며 근심어린 표정.
대구에서 오신 초로의 부부가 명상원 이곳저곳을
둘러본 뒤 자리에 함께 앉으시다.
마치 성지 순례하는 기분이었다고.
저녁 먹고 몇 사람 한일전 축구 중계방송을 시청.
전반전 끝나자 안 선생, 분위기를 돋구려는지
코샤와 함께 양동 치킨집으로.
성 선생, 술 생각이 나는지 까페에 들어가 아예 맥주 한 짝을 확보하러 갔으나
뜻을 이루지 못함.
경기가 다 끝날 무렵, 안 선생이 치킨과 함께 맥주 한 봉지를 들고와 그나마 안도하다.
밀린 일지를 올린 뒤 자리에 끼다.
성 선생 다양한 화제로 토론을 주도. 아니 거의 독점.
안 선생이 이따금 변죽을 올려보지만 초강경, 해병대식 고압적 자세에
별 소용이 없다.
술도 거의 안 마신 잉모빠 몇 가지 모순을 지적하자 안 선생 즉각 옆에서 협공,
갑자기 말이 막힌 성 선생, 꼭 종료 직전에 한 골 잡순 한국 대표팀 같다.
타개책을 찾아 이리저리 검색 중인 성 선생의 표정이 재미있는지
코샤, 까르르.
그만 자리에서 일어들 나려는데 성 선생, 잠깐만, 잠깐만.
보름달 탓인가보다.
자정이 넘었지만 결국 성 선생의 차로 간현막?
도로엔 차 하나 없고 계곡가 크고 작은 산들은 다같이 하나로 검게 반죽되어
혼의 침묵 속에 잠겨 있다.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면 오히려 대지의 침묵을
토해내며 웅성웅성 집안 회의 중.
딱 한 잔만 더 합시다는 초라한 시골 노래방으로.
이번에도 역시 성 선생의 독무대, 일인 라이브 콘서트.
율동까지 선 보이며 박자, 음정, 랩까지 완벽한 것이 유흥가에 돈깨나 받친 솜씨.
최신 노래 없나 한참 뒤적이던 코샤, 현지 수준을 인정하며
몇 곡 열창. 안 선생은 구식에다가 다소 거북이 스타일로 몇 곡.
밖으로 나돌며 관망하던 잉모빠도 결국 슬며시 겉옷을 벗고 찬조 출연 한 곡.
코샤, 평생 잊을 수 없는 무대라며 연신 깔깔깔.
오빠 나중에 꼭 <오아시스>봐봐. 거기 오빠와 똑 같은 사람 나오니까.
안 선생, 에이 나도,
노랫발 받으며 연신 불러제끼는데
마지막 한곡은 좀체 끝날 줄 모르고.
<그대 그리고 나>- 포복절도하는 백코러스를 곁들인 감동의 합창 무대에 이어
계속되는 열창. 겨우겨우 마감을 짓고 명상원에 돌아오다. 새벽 두시 사십 칠 분.
아. 오늘 정말 재밌네. 별미였어.
입맛을 다시는 안 선생. 코샤, 갑자기 놀란 듯,
오늘이 보름인가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둥근 만월.
딸그락, 엎지러진 물그릇처럼 칠흑빛 대지에 흥건히 괴어 흐르는 달빛의 둔중한 홍수.
4월 17일 목요일
요가 수련회 참가자가 예상을 초과하다.
더블 캠프에 대해 고민.
윤 원장 보이지 않다.
카라, 그새 며칠을 못 참고 다시 찾아 오다.
저녁 식사 후 각자 산책.
다정한 코샤와 카라, 걸음 걸이에 이야기를 맞추는 것인지 이야기에 걸음을 맞추는 것인지 느릿느릿, 넘실넘실 숲 속으로 사라져 간다.
작대기 하날 들고 진달래 숲을 거쳐 다른 길로 산을 올라가는데 먼 발치서,
야, 이 귀신아. 뭐에 홀려 어디로 가니?
카라가 떠들어대는 소리가 들린다.
무채색 하늘엔 희미한 경광이 꺼져가며 어둠이 짙어지고.
계곡 두 개를 건너질러 동굴 쪽으로 내려와 아무도 없는 흔들그네에 앉아 있다.
사방이 산, 둥그런 하늘.
산과 숲으로 이루어진 분화구 속에 들어 앉아 있는 듯하다.
지저귀는 새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어느새 세차게 흐르는 물 소리.
물 소리 잦아 들면 다시 또 새 소리.
얼굴 없는 하늘엔 근심 한 점 없고 저 아래 명상원은 있기나 한지 없기나 한지
사방은 그저 보는이 없는 고요 일색.
산 허리를 휘감은 가느다란 산책로를 따라 내려오니 예전 선녀탕 흔들 그네 앞에 코샤, 카라 함께 앉아 있다.
연못턱을 넘어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다가 작년 가을 늦시집간 카라에게
“새댁. 빨래 안 하고 뭐해!”
키득키득.
사무실 의자에 앉으니 윤 원장 전화, 토요일이나 일요일 들어올 것 같다고.
카라 사무실로 들어와 또 파티 자청. 이번엔 준비를 단단히 해온 듯 치즈. 햄, 천하장사소시지. 코샤, 카라 바깥에 나갔다 돌아오고, 불이 꺼졌다가 다시 켜진 것처럼 성 선생 홀연히 자리에 합류.
성 선생을 위해 탈독신 후원회 즉석 결성.
헤어스타일, 코디, 마인드 변환, 작전 방법 등 여러 가지 후원 사업이 펼쳐지고,
이건 정말 웃긴 얘긴데... 성 선생의 말씀, 결과가 신통치 않다.
나 같으면 그 얘기 절반 하는 동안 다섯 번은 웃겼을 텐데.
누군가 날벌레가 들러붙은 통유리창 밖을 보며 달타령.
카라, 고민이 있어도 마음 때문에 있지 마음 밖에 따로 있나.
갑자기 일지의 리얼리티 문제를 두고 카라, 잉모빠 티격태격.
증거 수집에 나선 카라, 오류임이 드러나자 자신의 편견을
솔직히 시인하다.
숙소로 들어가는데 카라 혼자 개울가에 쪼그려 앉아 있길래
달밤에 왠 청승? 불러도 대답이 없다.
가까이에 가보니 신랑과 통화중.
내버려두고 방문 앞까지 이르니 그제서야 왜~애~~~?.
하는 물음 반 외침 반이 저 너머 소나무 위 달빛까지 미친다.
4월 18일 금요일
오전, 나이 드신 여자 일곱 분이 쑥 훈증요법을 하기 위해 명상원에 들리다.
준비 미비로 그냥 돌아가시다.
카라, 코샤, 아줌마 진공청소기까지 동원 방마다 청소.
정오 무렵 비가 오기 시작하다.
코샤가 사무실로 들어와
오빠, 오빠, 달마홀로 좀 가봐!
호들갑을 떤다.
달마홀에 있던 담요와 요, 베게 등이
분류별로 차곡차곡 개어져 쌓여 있는 것이
꼭 종가집 큰며느리 시아버지 옷 다려 놓은 듯하다.
주말 자원봉사자로 선출된 카라의 작품.
산 언덕엔 운무가 피어오르고 계속해서 비가 내리다.
우산을 받쳐 들고 빗속을 혼자 배회하는 성 선생의 모습.
숲속 명상이 본인한텐 딱 맞다며 덕분에 윤기가 돌고 탄력을 되찾는 피부를 자랑삼아 보여주더니 오늘도 가만히 앉아 비 구경만 하기엔 성이 안찼나 보다.
저녁 식사 후엔 다들 종적을 감춘다.
식당 티브이 뉴스 시간을 전후로 이 사람, 저 사람이 교대로 들락날락.
밤 열한시 이십팔분 양동역에 내리는 손님을 픽업하러 나가려는데
수피야도 온다고. 차키는 트럭것만,
성 선생에게 부탁을 드리고 숙소로 들어가려는데
물이 불은 앞 마을 논에선 개구리 울음 소리가 제법 사납다. 비, 그쳐 있다.
4월 19일 토요일
아침 이슬이 채 가시지 않은 판대역-
최재헌 서승연 커플, 배낭에 통기타에, 도보로 명상원에 입성. 승연, 내리자 마자 춥길래 바지를 세 개나 껴입고 걸어왔는데 더워서 죽을 뻔 했다고. 얼마 후 피라미드 홀 청소한다며 물걸레 내놔라 빨아달라...
카라는 세수대야, 솔을 들고 남자 화장실 변기 청소까지 썩썩.
청소가 아니라 도닦는 분위기인지라 다들 감탄 & 숙덕숙덕.
웹 전문가 박목기씨를 픽업해 오니 마부바가 명상원에 이미 와 있다.
예전의 전통 찻집에서 함께 얘기를 나누는데 일지 형식과 내용을 두고 불만 겸 비판.
매일 거의 같은 사람 얘기로 채워지는 데다 명상원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기타 웹 사이트 운영 등에 관한 많은 조언을 듣다.
옛 친구를 비롯 점심 저녁 계속해서 손님들이 당도하다.
한발자국 한발자국인가 다리가 불편한 전찬석씨도 도착.
얼굴이 더 좋아 보인다며 몇 사람 허물없이 반기다.
이방 저방 옮기다가 5번방으로 숙소를 정하다.
덕분에 그 방을 맘에 들어하던 대전에서 오신 부부분에게
다른 방을 안내하자 하필 보일러가 아직 가동되지 않아 방바닥이 차갑다.
시골 분위기가 낯이 설기도 했는지 그냥 돌아가셔서 아쉬움.
저녁 끝나고 강릉 박주현씨도 연락 한장 없이 등장. 요가 프로그램에 많은 관심.
국세청 아저씨, 까페 아줌마, 윤과장, 성 선생 등은 주말 기분 내려는지
함께 양동으로 외식 나가다.
밤 명상이 끝나고 우르자, 프라티마 달마홀에서 주말 사이코 드라마 2회차.
아예 문까지 걸어 잠그고 밤 열시가 되도록 나오지 않다.
마부바는 까페 아줌마 침실로 들어가더니 보이지 않다.
비는 내리고 식당에 앉아 박 목기, 카라, 홀에서 조금 일찍 나온 프라티마
그리고 우르자, 화장은 다 지워지고 눈두덩은 퉁퉁 부어 거의 알아볼 수 없는 얼굴로 자리에 합석.
박목기씨 처음 마주하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진지하게 자리를 지키고 앉아
오고가는 대화를 경청하는데
앳되고 부드러운 얼굴에 상당한 직관과 통찰력 있는 의견으로 점점 좌중의 시선을 모으다.
저 카라라는 여잔 말야, 왕언니 병이라니까, 어쩌고 저쩌고 하니까
카라, 듣는둥 마는 둥, 왕언니답게 다양한 의견들을 인물평까지 곁들여 교통정리.
자정이 다 되어 양동 외식파 일행 명상원에 도착하고, 국세청 아저씨, 약속대로
맥주 한 봉지를 들고 대표로 자리에 합류.
우르자,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한밤의 빗속을 오락가락.
마음 속의 긴장이 한움큼 녹아내려 그런지 연체동물처럼 비틀비틀.
괜찮아, 괜찮아...
카라가 따뜻하게 감싸 주며 등을 토닥이고, 우르자 숙소로 돌아가다.
계속 내리는 비.
4월 20일 일요일
오전에 열린 요가 프로그램에 관심들이 많다.
카페에서 별도로 나눔의 시간이 한참 무르익어가는데
이 선생, 스케줄이 빡빡해서 아쉬움.
서울에서 열리는 명상 모임을 위해 양동역으로.
차 시간 맞추기엔 빠듯했지만
이제 갓 초보 딱지를 뗀 마부바, 운전에 자신감을 피력, 무사히 도착하다.
프로그램을 마친 코샤는 저녁 차로 서울로.
원효로 <황금꽃>찻집에 당도하니 반가운 얼굴들이 한참 왁자지껄.
스미타, 나시브, 야미니, 비쉬람, 상카르, 삿타, 미진 기타 등등
명상클럽의 민들레, 바다 등과 일일이 허깅하고
거구에 속하는 회광님과는 슬로우 모션으로 배치기 허깅.
댄스 타임에 이어 저녁 명상.
사트아 울음이 북받쳐 도중에 밖으로 나가기도.
마지막 프로그램이 끝나고 모두 손을 모아 찻집 원상복귀.
니르비, 늘 붙어 다니던 외국인 신랑도 없이 묵은 머리를 딸랑딸랑거리며 등장
늦게 왔네, 혼자 왔네... 다들 인사는 하면서도 그 배경에 의혹의 눈초리.
저녁 식사를 위해 한참 장소를 고르다가 한 식당에 이십여명 가량이 모이다.
주최측 계산을 하려는데 늘 넉넉하고 맏형같은 상카르 슬며시 선수를 치며 모두 계산하다.
이차는 근처 생맥주 집에서 뒷풀이.
명상원으로부터 참여 요청을 받은 나시브
명상원 운영과 관련 공개 토론 주관.
갖가지 의견이 속출하는데 다들 명상원에 관심이 많다.
샹깃이 왔으면 더 재밌을텐데 ..하며 아쉬움.
하나둘 자리를 빠져나가고 샹카르가 버틴 가운데 대여섯 저희들끼리 대화 계속.
그만 자리를 파하려하니 상카르 왈
“나하고 있으면 빠져나가기 어렵지”
추가 계속.
오래전부터 알게 모르게 물심양면으로 명상인들을 도와온 샹카르의 애정이 자못
가슴을 뭉클. 재밌는 일화도 많다.
자신의 아파트에서 묵은 영국의 여자 산야신.
아침이면 씩씩하게 배낭을 메고 나가 꼭 저녁 여덟시쯤 집에 오는데
늘 식사를 하지 않았다고. 채식주의자인 그녀를 위해 알맞은 식단을 준비하는 것도
준비지만 문제는 샤워. 목욕탕에서 나오면 늘 전라 차림이어서 식구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고. 이 여자분이 선식을 너무나 좋아해서 한국을 떠날 때 아예 한보따릴 배낭에 가득 채워주었는데 지금도 감사와 원더풀 멜이 오곤 한단다.
아무튼 팍팍, 푹푹 퍼담아주는 한국의 인심을 확실히 보여준 샹카르의 후덕함에 감사.
알게 모르게 귀를 기울이던 미모의 여사장도 슬며시 안주 서비스.
다시 주제는 명상과 삶. 보통 사람과 명상인과의 인간관계 전반에 애로점이 토로되다.
자리를 정리하고 밖으로 나오니 한산한 일요일 밤 거리엔 여전히 비.
택시를 잡기 위해 상점 샷터문이 모두 내려진 인도를 걸어가는데
정신병 환자인지 한 더벅머리 청년이 갑작스레 소리를 지르며 위협적인 표정으로
앞을 가로막는다. 그냥 지나치니 우와으으--괴성을 지르며 다시 쫓아온다.
그가 나를 위협하는지 그를 누가 위협하는지 절박하기 그지없다.
얼굴을 때리는 몇 점 빗방울. 어두운 서울 밤 거리엔 미친 청년이 혼자 쏘다니고 있다.
4월 21일 월요일
오랜만에 햇빛
쨍.
까페 아줌마, 윤과장, 손님,
잉모빠, 코샤 몽땅 나가 버린 명상원은 썰렁.
성 선생, 안 선생, 식당 아줌마 부부
있는 듯 없는 듯 혼자 분주한 최재현 씨뿐.
윤 원장, 중국에서 귀국하다.
서울, 길연 선생과 만나 점심을 먹다.
짐도 챙겨올 겸 집에 들르다.
초저녁부터 문 걸어 잠그고 잠에 빠져 있는데 밤 늦게 명상원에 돌아온
윤 원장의 전화.
“오늘 안 돌아와요?”
4월 22일 화요일
낮 열차로 양동역에 내리다.
모르는 손님들의 차를 타고 사무실로 들어오니 윤 원장은 모 컨설팅 회사와 회의 중.
비가 내렸다 그쳤다하면서 운무가 오락가락
저녁 나절 오산에서 조경란님이 명상하러 오다.
다섯시에 같이 명상합시다.
최 재헌씨에게 약속하고
명상원의 진로 문제를 놓고 윤 원장과 의견을 교환하다.
하루하루 빠르게 돌아가는 상황에 무슨 변화가 올런가 알 수가 없다.
저녁 식사 때 최 재헌씨와 경란님을 다시 보니 얼굴에 아무런 광택도 보이지 않길래
아까 명상 했어요? 물었더니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아서 달마홀에 앉아 그냥 얘기만 나눴다고. 재헌씨의 고지식함에 피식 웃고 말다.
프라티마 오다. 윤 원장, 안, 성 두 분과 함께 청록원으로 가다.
막차 타고 서울로 가는 최재헌씨를 양동역까지 배웅하다.
“여자 친구는 낮차로 오는 줄 알고 있는데..?”
“오늘 중으로 가면 가는 줄 알테죠”
재헌씨나 여친이나 너무 예사롭지 않게 속 편한 사이들인지라 다들 킥킥.
밤 명상 시간 중, 어두운 홀 벽 앞에 헤드라이트 불빛이 어른거리다가 사라진다.
코샤, 그렇게 들어왔다가 자기 방으로 사라지다.
차 한 잔과 함께 나눔의 시간 중 윤 원장 일행 돌아오다.
안 선생이 막걸리 두 통을 들고 식당에 먼저 앉아 참석을 권유,
솔잎차의 향기를 음미하던 경란씨의 의견을 물어 함께 자리에 앉다.
부부관계, 결혼 생활의 갈등이 오고 가는데 그 번삽함과 구구절절함이 도무지 끝이 보일줄 모르는데 못내 지겹기만 하다.
자리를 피해 돌아앉고 성 선생이 자꾸 합석을 권장(?)하다.
겨우 화제가 바뀌어 성 선생, 프라티마 등과 얘기.
프라티마와 약간의 설전이 벌어지다.
끝없는 얘기, 공격과 방어들이 역시 또 지겹기만 하다.
계속 내리는 비.
숙소에 들어가 머리를 털으니 어깨 위에 젖은 빗물의 축축함, 몸이 조금 무겁다.
4월 23일 수요일
아침 안개 속 명상원 풍경.
온 종일, 며칠이고 알 수 없는 곳을 떠돌다가 슬며시 돌아와 숲 속에 머물곤 다시 외출하는 안개의 집만 같다.
잠기가 가시지 않은 코샤를 불러 깨우고
늦잠꾸러기라는 경란 씨 방 앞에 가니 이미 불이 환하다.
벌써 일어나서 새벽 산보까지 마친 듯.
명상홀을 두 사람에게 맡겨 두고 잠시 축축한 숲 향기를 따라 산책을 하다.
흐릿한 하늘, 아무 일도 없는 명상원.
윤 원장과 프라티마, 힐링 룸의 물품을 구입하러 원주로 나가다.
오후에 돌아와 구상에 여념이 없는 프라티마.
계획이 많으면 욕심도 많아 얄밉기도 하련만 모두 자기 방식으로 산다.
밤이 되어 사무실에 윤 원장과 함께 이런저런 대화.
명상원 운영팀 문제를 상의하던 중
윤 원장 불현듯 나시브를 만나러 퇴촌으로 출발하다.
개구리 울음 소리가 점령한 앞마을 입구엔 한 점 보안등 불빛이 흔들려 보이고
밤 안개로 눅눅한 숲속엔 휘파람새의 울음이 홀로 외롭다.
4월 24일 목요일
비가 멎고 해가 뜨는 조짐이 보이자 몇 사람 새벽부터 빨래.
어제 또 밀린 일지 항의,
조금은 일부러 하루 더 쉬었다가
아침 일찍 일지 올리다.
내일이면 돌아가는 안 선생은 성 선생과 함께
근처 사우나로 가 한풀 벗기고 돌아오더니
파라솔에 앉아 시원한 맥주 몇 병까지.
윤 원장, 프라티마 힐링 룸 시설 준비로 분주.
나시브 도착. 명상원 참여 문제로 핫이슈를 놓고
입장을 조율하다.
지난 겨울 잠시 자원봉사자로 있던 박 현진씨 9시경 판대역에 내리다.
같은 열차에 탔던 강 수경씨는 경험 부족으로 간현역까지,
승용차를 얻어 타고 밤길을 달려오는 수경씨 픽업해 오는데 서로간에 우왕좌왕.
강, 박 등 사무실에 모여 나시브 참여 문제를 놓고 참모 회의.
나시브, 오라 리딩, 독심술에 일가견이 있는 박, 강씨의
세션까지 받으며 의견을 경청하다.
까페에선 돌아가는 경란씨, 안 선생을 위해 친구가 보내온 딸기, 메론을 놓고 조촐한 송별회.
성 선생, 장기 투숙자인 자기를 위해 아무런 파티도 없었다고 투덜.
안 선생, 명상원 생활 이래 전례없이 절정에 이른 화술과 유머감각을 빛내며 좌중을 흥겹게 만들다. 윤 원장 부인의 전화가 오자 바꿔달라는 사람은 안 바꿔주고 장시간 익살을 곁들여 그간의 한 소식을 포교, 그 소신과 뻔뻔함(?)에 다들 경악하다.
모든 문제를 두루뭉실 포용하는 너그러움과 낙천성이 사뭇 인상적.
경란씨 -첫날 명상 대신 최 재헌씨와 나누었던 대화 중의 한 마디가 가장 감명 깊게 남는다고. 부딪치는 에너지가 오면 튕겨내지 말고 받아들이라 - 어찌보면 자신의 삶은 그 반대여서 문제가 더 어려워졌다고.
마시면 아예 마시고 찔끔 마실 것 같으면 아?안 마신다는 성 선생.
내내 타이밍을 재며 분위기를 몰고 가는 듯 하더니 마침내 행동 개시.
자정이 다 되어 차를 끌고 알콜 보급작전에 나서다.
가게들이 모두 문을 닫은 터라 한 갈비집에 들어가 남아 있는 맥주 반 박스를 사들고 돌아오다. 여직도 사무실에 있던 나시브팀도 초청, 다같이 웃고 즐기다.
약간의 우려, 약간의 공방전, 희망과 분석, 쾌활한 농담들이 오고가다가 새벽 세 시 반경에 파하다.
4월 25일 금요일
먹구름 잿빛 구름 간간이 흰 구름 뭉실한 구름 바구니들이 몰렸다가 흩어졌다가 ..
비가 계속 내리다.
오전 윤 원장 부인, 서울 직원 등 도착.
안 선생, 그동안 정들었던 사람들과 일일이 포옹을 하고 명상원을 떠나다.
경란씨, 부군과 함께 점심을 들고 역시 떠나다.
사무실-윤 원장, 나시브와 명상원 운영안을 놓고 전격 계약체결 작업.
일대일 구도로 축소되었던 상황이 다자간 구도로 옮겨지는 듯 좀체 성사되지가 않다.
배경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어서인지 몇몇 옵저버?)들 다소 격앙된 분위기.
기업인수식의 빅딜 분위기를 연상케 하며 계약서 내용을 두고 대부분 혼돈에 쌓여 있는데
막상 작성된 조문은 두서너줄 짜리.
껄껄 웃는 나시브, 윤 원장과 함께 양동으로 저녁을 먹으러 가다.
마침 양동역에 내린 우르자, 합석하다.
명상원에 3윤 시대가 오는가 보다, 어쩌구 하며 이런저런 얘기.
이따금 혀끝에 갈구리를 달고 남자 셋을 내쳤다 주물렀다 제멋에 흥이 겨운 우르자.
파안대소하는 나시브를 배웅하고
명상원에 돌아오니 컨설팅 회사팀 및 윤 원장 부인의 지인들이 도착.
체결 일보 직전까지 갔던 컨설팅 회사와의 계약건이 서울 팀의 개입으로 극적으로 무산되다. 부당 계약의 여지가 있어 한편으론 다행.
밤 늦도록 까페에 불이 켜지고
명상원 터줏 대감 성 선생, 안 선생도 없는 터에 의전 담당에 발탁,
명상원지기 대접을 받으며 늦도록 불려 다니다.
대부분의 숙소에 불이 켜진 채 어른들의 대화, 아이들 뛰어다니는 소리.
하루종일 어수선한 하루.
밤 늦게 배가 고파 식당에 내려가니 윤 원장 부인이 호두 과자 한 상자를 선물하다.
비는 그?斂?
인적 없는 명상원 앞 마당과 잔디 밭엔 하얀 빛 노오란 빛 조명등 두엇이
다정한 친구들처럼 다소곳이 불을 밝힌 채 깊어가는 밤 풍경을 지켜보고 있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비에 젖지 않는 하늘과 같이....
그 마음처럼 살라던 어떤 이의 말이 불현듯 떠오르다.
4월 26일 토요일
우르자 아침에 상경, 저녁에 다시 돌아오다.
윤 원장 부인과 어제 일, 명상원 운영 방향 등을 두고
이런저런 얘기. 좀더 많은 대화가 필요할 듯.
일은 일, 휴식은 휴식, 하루를 지낸 컨설팅 팀에서 다이나믹 명상을 요청.
정오 쯤 달마홀에서 명상이 열리다.
자아, 핸드폰은 꺼두고 몸에 있는 쇠붙이는 떼어 놓고, 양말도 벗으면 더 좋고..
컨설팅 사장님의 자세가 자못 진지.
밖에 있던 일반 손님들은 명상 중에 들려오는 비장한 샤우팅에 다소 경악.
점심 식사 후 윤 원장과 대화를 마친 부인 및 서울 직원들 돌아가다.
컨설팅 회사 팀들도 모두 나가고 조용한 명상원.
카라, 전화가 오다. 어떻게 됐어? 나는 모르지.
윤 원장, 나시브와 통화.
예기치 않은 상황이 발생한 듯
윤 원장 난감해 하다.
웹 자원봉사차 박 목기 오다.
강 수경 씨, 네시 반 통일호 열차를 타고 서울로.
코샤 낮 시간 내내 수경씨의 오라 리딩을 받았다는데
그 정확성에 대단히 놀라워하다.
자기 일은 자기가 가장 잘 아는 것 아닌가.
그건 정말 맞아- 또 다시 온 수피야 제일 좋아함.
이 자명씨 오다.
서울 박 용대님 부인과 함께 오다.
용대님은 알고 보니 산야신 니르비카와는 친구 사이라고.
혼자 돌아가려는 부인, 등산을 함께 하더니 생각이 바뀌었는지
남편과 함께 남겠다고.
스톱 댄스 명상 시간.
달마홀에선 어쩐 일인지 신나는 음악 소리 대신
미스틱 로즈 분위기, 울음 명상이 일어나고 있다.
용대님은 사전 설명을 듣고 적응이 안되겠다 싶은지
홀을 나오다.
저녁부터 자정녘까지 기천무 수행인들이 도착하다.
목기씨, 늦도록 사무실과 숙소를 오가며 장비들을 늘어 놓고 컴 작업.
오늘도 눈이 퉁퉁 부은 우르자.
조명빛이 환히 밝혀진 피라미드 홀을 두고 저기선 다른 명상이 있나 보지.
우리도 한판 모여 피라미드 홀에서 명상 했으면 좋을텐디.
4월 27일 일요일
나시브의 전화.
사안이 아직 종결되지 않다.
윤 원장, 나시브, 서울 3자 중재안이 제시되다.
윤 원장 공사 관계로 외출.
니르비와 웡 오다. 삼봉 계곡에서 멋진 촬영 몇 컷,
강렬한 타악기 음악이 흘러나오는 달마홀.
점심시간이 지나서도 요가 프로그램이 끝나지 않다.
니르비 한달음에 들어가고
호기심이 동한 몇 분이 기웃거리다가 도중에 참여하는 분이 있기도.
기천무 수행자들 모두 돌아가다.
캠프 화이어가 열리던 화이트 하우스가가 크리슈나 하우스 쪽으로 자리를 옮기다.
박 용대님 부부 돌아가고 삼봉, 프라티마 오다.
황혼 무렵 샹깃 갑자기 나타나다.
니르비와 웡, 수피야를 배웅할 겸 코샤, 우르자 등과 양동역에 나가 짜장면을 먹다.
플랫홈에서 떠나는 사람들과 작별인사를 하는데 박 목기씨가 윤 과장 픽업으로 나타나다.
모두가 익숙한 허깅 타임, 박 목기씨 할까말까 멈칫멈칫, 시간에 쫒기어 열차에 오르다. 목기씨 혼자만이 입석표여서 왠지 아쉬움.
예전 전통찻집에서 돌아온 탕자 샹깃을 위해 파티.
잠시 밖에 나간 성선생과 샹깃이 돌아오자 과일 위주의 상차림이
일약 눈부시게 변하다. 과연 샹깃 하며 화제 집중. 삼봉은 별 말이 없다.
사람들이 있건 없건 샹깃을 그리워玖?그의 얘기를 재미있어 하는 이유.
샹깃의 화제나 관심이 어디까지나 성센터를 맴돌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
아니나 다를까, 성 선생이 파가니니 운운하며 화제가 클래식 분야로 옮겨가자
샹깃: 에이 씨, 나 그만 갈래.
자리를 떠나가는 샹깃을 붙잡아 앉히기 위해 몇 사람 총력전.
방법은 하나 - 화제를 샹깃이 좋아할만한 얘기로 바꾸는 것.
해서 샹깃 다시 흐뭇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다.
음악이 빠질 수가 있나.
촛불이 일렁거리는 가운데 댄스 파티, 그런 대로 우아하게 끝나고
예정된 삼부는 사정상 열리지 않다.
4월 28일 월요일
상깃, 삼봉, 우르자 아침에 떠나다.
오후가 되어서도 대부분 세 사람의 소식을 몰라하다.
하얀집 공사 분주.
윤 원장 나시브와 통화.
얘기를 들으니 착잡.
코샤,
프라티마에게 요즘 독기가 올랐으니 좀 빼라고.
부산에서 장 숙란님이 오다.
파라솔에서 같이 식사하다.
지금 시간을 놓치면 평생 쉬지 못할 것 같아 인터넷 검색을 통해 오셨다고.
힐링 룸에서 테스트를 받아 보다.
잠이 엄청 쏟아지다.
밤 열 한시 반 코샤 친구를 픽업나가는 것도 잊고 계속 자다.
코샤 역시 얘기 삼매에 빠져 시간을 잊어 버리다.
둘이서 바쁘게 양동역에 나가다. 막차가 지나간 역사 불이 모두 내려지고
혼자 남은 친구. 무서웠지? 아니.
어둠 속이라 얼굴은 모르겠고 들어본 이름인데
코샤의 친구는 내 친구와 한 직장에 있던 사이.
우리 전에 만난 적 있죠?
첨엔 기억하지 못하다가 아! 맞다, 신촌에서요.
나보다도 더 기억을 잘하다.
다음부턴 이야기를 무척 아끼다.
다시 잠, 하루가 마침표처럼 똑 떨어지다.
4월 29일 화요일
비가 많이 내리다.
아침 회의 후 윤 원장 서울로.
잠이 많이 오다.
내일 맞을 손님 준비.
원주 장에 갔다 온 까페아줌마.
식당 아줌마에게 맹공을 당하다.
배추, 맛도 없고 게다가 상한 것들만 잔뜩(떨이라니까 속도 없이 앵기는 대로 모두) 사왔다고.
나시브의 전화 몇 통.
코샤가 니케타나 게시판에 올린 다소 엽기적인 글을 읽은 지 얼마 안 되어
지낫의 전화.
어디선가 날아온 조그만 벌레를 따뜻한 시선으로 관찰하며,
‘연약한 더듬이가 기억하는
작고 사소한 일들이 너무나 부럽다’는 그녀의 댓글이 맘에 든다.
다마크와 통화.
첨엔 빼더니 이번 캠프에 꼭 오겠다고.
주룩주룩 내리는 비.
코샤 친구 돌아가다.
윤 원장 돌아오다.
밤이 늦도록 함께 사무실에 앉아 얘기를 나누다.
한 밤중에 계속 걸려 오는 전화들.
멀리 오오사카에서도 오는데 이곳이 그립다기하기도
외롭다하기도.
그리운 이곳인들 시름이라커니 번뇌라커니 없을까?
마침내 성 선생이 삼분지 이쯤 먹다가 보관해 둔 막걸리를 찾아와
윤 원장과 한잔씩 나눠 마시다.
산중의 사람 이야기는 한층 무르익어 가는데
더 깊어졌으면 하는 취기가 자정 넘어 삼 분에서 멈춘 채 더 이상
바늘이 움직이지 않다.
4월 30일 수요일
날이,
처음엔 흐리다가 나중엔 차츰 개이는 듯하다.
자욱한 운무 속에 숲 속의 숲, 길 속의 길.
숲과 산, 오솔길. 처음엔 신발을 벗고 그림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하더니
나중엔 좌선하는 중이 눈을 떳으되 향기만 자욱하고 새벽인지 저녁인지
구분 못하는 듯하다.
부산에서 마야 오다.
중앙고속도로에 차들이 없어 백칠십을 밟고 와도 그리 하는 줄은 몰랐다고.
만낭포 주유소에서 만나 명상원까지 데려 오다.
오후 네 시 반쯤 날이 그런대로 화창해지고
윤 원장이 노래방 기계를 들여와 셋팅을 끝낼 즈음
서울 모 구청 소속 미화원 팀 40여명이 컨설팅 회사 주선으로 야유회를 오다.
버스 안에서부터 거나하게 취해 있는데 소주가 백 병, 맥주가 열 박스인데
올해는 그 두 배를 가지고 왔다고.
통돼지 바베큐가 전문 차량까지 동원되어 구워지고 있는데
일부는 족구차고 놀고 일부는 짐 풀자 화투판부터 벌이다.
사무실에 홀로 조용히 들어온 운전기사 아저씨,
프로그램 안내문, 숙박비 등등을 훝어보더니 명상원 안을 다 둘러보고 왔는데
“저, 제가 개인적으로 아무 때나 와도 될까요..?”
조심스레 묻다.
양동역에 내린 수피야를 데려오니 술병과 안주, 파란 단체복으로 뒤덮인
식당 안은 자못 자유분방하기 이를데 없다.
수피야 얼굴이 불그락 푸르락
명상원이 이게 뭐야. 한번만 더 이런 분위기면 다시는 여기 안 올꺼다. 화를 내다.
코샤, 이날 일을 쓰기를,
‘잉모빠, 아저씨들 달마홀서 주무신다며 거기에 있는 거 다 들고나오자, 사무실 문도 잠근다. 술 드시고 노래 부르시고 오줌 누시고 오바이트하시고 새벽까지 바쁘신 아저씨들...명상은 아니지만 어쩌랴....’
밤에 코샤, 수피야, 프라티마 종적을 감추고 윤 원장, 명상원 식구들, 마야 등등 카페에 앉아 있는데 컨설팅 회사 직원분이 와서 명상원 운영 방안과 자신들의 비전을 들려주다.
비즈니스화된 명상원과 비즈니스 속의 명상원의 차이점, 명상원의 숙명에 대해 해설 겸 공박. 윤 원장, 돌처럼 굳은 얼굴로 내내 말이 없더니 슬며시 숙소로 들어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