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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108 성지순례
김제 금산사
2012년 7월 14일(토) 오전6시 인천불교회관 정문서 6대 대형버스 출발. 비가 내린다는 보도에 다소 걱정을 했으나 비가 오다 말다를 되풀이하며 성지순례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조선 성종 23년(1492)에 작성된 "금산사 5층석탑 중창기"에 의하면, 금산사는 이미 석가모니 부처님 이전의 가섭불 때에 있었던 옛 절터를 다시 중창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진표율사 이전에 이미 금산사가 창건되었음을 알게 한다. 철저한 수행에 전념하였다. 17년 간을 몸을 돌보지 않는 망신참의 고행을 통하여 마침내 미륵보살과 지장보살로부터 간자와 계본을 전해 받게 된다.
천왕문 불법을 수호하는 외호신인 사천왕을 모신 전각 외호신이란 불국정토의 외곽을 맡아 지키는 신.
당간지주 금강문에서 동북쪽으로 50m쯤 떨어진 곳에 보물 제28호로 지정된 당간지주가 있다. 절에 중요 한 행사나 법회가 있을 때 깃발을 걸어서 이를 알리는 일종의 안내판이 당간(幢竿)이고, 이를 지탱하는 것이 지주(支柱)이다. 그래서 당간지주는 반드시 절의 입구에 놓이게 마련이다. 장방형의 계단식 3층 기단과 그 위에 당간을 받치고 있던 간대(竿臺), 지주를 놓던 기단석 등이 잘 남아 있다.
보제루 2층 누각식 건물로서 아래층은 절 앞마당을 오르는 계단 역할. 법회와 강설을 주로하며 템플스테이를 여는 곳-오늘 금산사에 관한 설명을 들은 곳.
범종각 불전 사물인 범종(지옥중생), 법고(축생), 목어(수중생물), 운판(하늘생물)로 중생을 교화하는 크나큰 울림.
감로수
대장전 보물 827호. 탑의 형식을 취한 모습.
문수보살 보현보살 대장전 좌 우에 그려진 그림.
대장전 벽화- 안수정등
석가모니불, 가섭존자, 아난존자가 모셔져 있음.
대장전 지붕 위- 복발(탑의 맨 윗부분에 바리떼를 엎어 놓은 것처럼 만든 부분)
명부전 죽은이의 넋을 인도하여 극락왕생하도록 기원하는 전각. 지장보살님과 유명계의 심판관인 시왕(十王)을 봉안하고 있음.
노주 대적광전 오른쪽에는 독특한 형태의 노주(露柱)가 있다. 노주란 ‘노반지주(露盤之柱)’의 줄임말로서 처음에는 전각의 정면 귀퉁이에 세우는 두 개의 장대였다가 나중에 탑의 상륜부를 구성하는 부재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는 탑의 일부인 이 노주가 왜 별도의 조성물로서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가 없다.사중기록에 보면 ‘노주’는 잘못 된 명칭이고, ‘광명대(光明臺)’로서 미륵전 앞에서 미륵불에게 광명을 공양하던 석등이었다고 한다. 이 말이 맞다고 한다면 지금의 모습은 불을 밝히는 곳인 화사석(火舍石)이 없어진 상태가 된다. 고려시대의 조성기법을 간직하고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어 보물 제22호로 지정되었다.
육각다층석탑 대적광전 오른쪽 앞마당에 위치하며 보물 제27호이다. 탑의 재질이 흑색의 점판암으로 된 특이한 경우인데, 완전한 모습은 아니지만 정교하면서도 우아한 공예적 석탑이다. 본래의 자리는 봉천원구가 있던 대웅대광명전의 앞마당에 있었다. 봉천원구는 혜덕왕사가 1079년(문종 33)에 절의 주지로 있으면서 창건했으므로 탑도 이 무렵에 조성된 것이라 생각된다. 그 뒤 조선시대에 들어와 정유재란으로 봉천원구가 모두 소실되자 수문대사가 대사구, 곧 지금의 금산사를 중창하면서 지금의 자리로 탑을 옮겨왔다.
석련대
대적광전에서 동남쪽으로 10여m 떨어진 곳에 보물 제23호 석련대(石蓮臺)가 있다. 불상의 대좌로서 정확한 이름은 석조연화대인데, 높이 1.67m, 둘레가 10.3m가 넘는 거대한 작품이다.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대형의 연화대좌인데다가 더욱이 하나의 화강석으로 각 면에 조각한 수법이 정교하고 아름답다. 이 석련대의 위치가 지금의 제자리인지 다른 자리에서 옮겨진 것인지 알 수 없다. 규모가 워낙 거대해서 이동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을 감안한다면 제자리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한다면 고려시대 이후 언젠가 절을 중창하면서 석련대가 놓였던 전각은 사라지고 그 위에 봉안된 불상은 다른 전각이 새로 들어서면서 그곳으로 옮겨갔을 것이다. 한편 이 정도의 대좌가 필요했던 불상이라면 그 규모도 엄청나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금산사의 역사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역시 이 대좌의 주인공은 미륵장륙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적광전 대적광전은 연화장세계의 주인인 비로자나불을 본존불로 모신 법당. 앞면 7칸, 옆면 4칸의 다포식 팔작지붕.-복원한 것임.
오여래육보살
오여래(五如來)-약사여래불, 노사나불, 비로자나불, 석가모니불, 아미타불) 육보살(六菩薩)-(월광, 일광, 문수, 보현, 관음, 대세지)
나한전 나한전 앞의 나리꽃
오층석탑 미륵전 우측에 자리잡고 있으며, 석탑의 높이는 7.2m.
1971년 석탑을 해체 수리과정에서 수많은 사리장엄구가 발견됨.
방등계단 송대(松臺)라고 부르는 미륵전의 북쪽 높은 대지에 방등계단(方等戒壇)이 있다. 또한 이 계단의 중앙에 보물 제26호인 부도가 1기 있어 그 형태에 따라 석종형(石鐘形) 부도라고 부른다. 방등계단의 수계법회(受戒法會)를 거행할 때 수계단을 중앙에 마련하고, 그 주위에 삼사(三師)와 칠증(七證)이 둘러앉아서 계법을 전수하는데 사용했던 일종의 의식법회 장소이다. 이러한 예는 경상남도 양산의 통도사 와 개성의 불일사(佛日寺) 등지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한국 불교의 독특한 유산이다. 불교의 정신을 대표하는 계(戒).정(定).혜(慧) 삼학(三學) 가운데 계는 으뜸으로서 계를 지킴은 불교의 기본 토대가 된다. 이 계의 정신이 일체에 평등하게 미친다는 의미에서 방등계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한편 방등계단의 성격을 도솔천(兜率天)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즉 미륵신앙의 근본도량인 금산사에는 미륵의 하생처로서 미륵전을 조성하고, 그 위에 도솔천을 구현하여 미륵상생신앙을 나타냈다는 말이다. 결국 금산사는 미륵상생신앙과 하생신앙을 조화롭게 겸비하였다는 신앙적 성격을 지녔다는 뜻이 된다. 조선조 생육신의 한 사람이었던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이 절을 찾아 이곳 방등계단에서 남긴 시가 한 수 전한다.
구름 기운 아물아물, 골 안은 널찍한데,엉킨 수풀이 깔린 돌에는 여울소리 들려오네. 중천에 별들은 금찰(金刹, 금산사)을 밝히는데, 밤중에 바람과 우레가 석단(石壇, 방등계단)을 감싸도는구나. 낡은 짐대「幢」엔 이끼 끼어 글자가 희미한데,마른 나무에 바람 스치니 저녁 추위가 생기누나.초제(招提,객실)에서 하룻밤자고가니,연기속 먼 종소리에 여운이 한가롭지 않다.
건물안에 불보살님을 따로이 모시지 않고 유리창을 통해 부처님 사리탑 전에 예배하는 적멸보궁.
용수? 용침? ㅋ
미륵전 미륵전은 미래의 부처님인 미륵이 그 분의 불국토인 용화세계에서 중생을 교화하라는 것을 상징한 법당. 먼 미래의 새로운 부처님 세계에서 함께 성불하자는 것은 다짐하는 참회와 발원의 장소.
대묘상보살, 미륵존불, 법화림보살. 철제연화대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무쇠솥 위의 미륵존불이 아닌 철제연화대 위의 미륵존불.
금산사에 미륵전이 세워진 데에는 한 가지 전설이 내려옵니다. 진표율사께서 미륵불의 계시를 받고 지금의 미륵전이 위치한 이곳 연못을 메우기 시작했는데, 흙을 아무리 집어넣어도 다음날이 되면 흙은 간 곳 없고 연못은 예전 그대로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장보살께서 진표율사의 꿈에 현몽하시어 흙 대신 숯을 채워넣으면 될 것이라고 일러주시더랍니다. 이에 진표율사는 도력으로 안질을 퍼뜨리고 그 눈병이 나으려면 숯을 한 짐씩 지고 연못에 부은 후 그 물로 눈을 씻으면 눈병이 나을 것이라는 소문을 퍼뜨렸다지요. 그렇게 해서 연못이 메워지고 그 위에 미륵전이 들어서게 되었다는 겁니다.” 현 주지인 평상 스님의 상좌인 지묵 스님이 들려주는 전설에는 신빙성 여부를 떠나 미륵의 하생을 기다리는 민초들의 염원이 서려 있음이 느껴짐이다. 이렇게 건립된 미륵전은 그 규모나 명성으로 인해 전국에서 몰려드는 수많은 불자들에게 반드시 거쳐가야 할 참배의 장소로 인식되고 있기도 하다. 건축상의 가치로 인해 국보 제62호로 지정되어 있기도 한 금산사 미륵전은 외형상 3층 규모를 보이는데, 내부는 통층으로 꼭대기까지 뚫려 있다. 이는 그 높이가 39척(11.8m, 최초 33척 철불이던 것이 화재로 인한 소실로 36척의 목불, 다시 39척의 토불인 석고불로 거듭났다고 한다)에 달하는 미륵불을 안치하기 위한 목적으로 조성된 구조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 이 미륵전 내부 지하에는 철제 연화대가 있는데, 민간에서는 이 무쇠솥(밑이 뚫린) 모양의 연화대를 만지면 속세의 업장을 소멸하고 소원을 성취한다고 알려져 많은 불자님들이 찾는다고 한다. 원통전 대자대비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심.
하얗게 핀 꽃?
오전 10시~11시. 보제루에서 우리 108 성지순례단을 위해 1시간 동안 템플스테이 담당스님께서 기본적인 불교교리와 금산사의 전반적인 사찰 구도와 그에 따른 특징, 전설을 머리에 쏙쏙 넣어주셨다.
보제루에서 바라 본 대적광전
보제루 앞의 보리수 열매 보리수가 올해도 많이 열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보리수는 딱 그만큼의 자기 몸에 맞는 열매만 남기고 나머지는 땅으로 내보낸다고 하더군요. 함부로 열려있는 열매를 따면 안되는 이유를 배웠습니다. 금산사의 보리수열매로 만든 보리수 단주. 보리수나무 아래서.
스님의 1시간 재미난 강의를 마치고 오전 11시. 대적광전으로 자리를 옮겨 주지 일지스님과 함께 금강경 한글독송과 108참회의 절을 하였다.
낮12시30분부터 점심공양 3시까지 자유시간이 주어진다. 나무아미타불
불이문
맛있는 점심을 먹고 청룡사와 혜덕왕사탑비, 심원암까지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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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구경 잘 하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
불국화님 !! 매번 사진 잘 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금산사의 역사와 도량과 보물들을 너무나 자세히 설명하여 주셨습니다. 역시 기자님 다우시네요![^-^](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3.gif)
감사드립니다.()
불국화님을 5호차로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_()()()_
저도 감사합니다. _() () ()_
부처님 도량은 어디든 명승지~~~ 부처님의 제자들 역시 명품의 자식들>>>
불국화님의 소소한 설명을 눈으로 보는 이 공덕 참 언젠가 선 ( 善 )의 씨앗이 움트기를 기원하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_보현행합장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