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늘 St. Wendel로 관전을 다녀왔습니다.
결과는 다들 아실테니 생략하고.. 본선 통털어 가장 명승부였던 결승전만 조금 요약해보겠습니다.
백전노장 마르코 자네티와 명실상부한 세계 탑 토브욘 브롬달 선수가 결승에서 만났습니다.
브롬달 선수는 최근 우승이 별로 없어 이번 대회를 야심차게 준비했을터이고, 자네티 선수 또한 꾸준히 랭킹
20위권 이내에 머물기는 했지만, 최근 몇년간 입상 경력이 전무한 상태라 더더욱 우승을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을겁니다.
자네티 선수는 본선에서부터 힘들게 올라왔습니다. 특히나 준결승에서는 프랑스의 버리(Bury) 선수를 만나
세트스코어 2:0으로 앞서던 3세트에서 14점을 먼저 득점해 놓고도 연달아 실수를 하며 역전을 당했습니다.
뒤이어 4세트도 내주고, 마지막 5세트에서 여렵게 신승했죠.. 반면 브롬달은 연신 상대방을 압도하며 버그만과
드베커 선수를 세트스코어 3:0으로 완승했습니다. (두 경기 모두 에버리지가 상대선수의 2배 가까이 됩니다 -0- )
위 표는 결승전 경기 결과입니다. 결승전은 첫 세트부터 팽팽했습니다. 자네티의 선공으로 시작된 첫 세트에서 자네티가 먼저
14점 고지에 도달했습니다만 3번 연속 쉬운공을 빠트리며 브롬달에게 귀중한 한세트를 헌납합니다. 기세가 오른 브롬달은
자신의 선공인 두번째 세트에서 5이닝까지 8:2로 앞서갔지만, 자네티 선수는 13점을 몰아치며 저력을 보여줍니다.
흔히들 5전 3선승 경기에서 3번째 세트가 가장 중요하다고 합니다. 경기의 흐름을 좌우하는 세트이기 때문이죠. 역시나
두 선수 모두 3번째 세트의 중요성을 생각한 것인지 엄청나게 서로 디펜스를 하며 조심스런 진행을 합니다. 이 세트에서
자네티의 디펜스는 실로 엄청났습니다. 적어도 제 기준에서 칠 수 있을만한 공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예를들어 자신의 공이
단쿠션에 붙어 있는 상황에서 나머지 두 공이 반대쪽 단쿠션에 2포인트 간격으로 붙어 있는 배치.. 이건 뭐 칠 마음이
안생기죠;;;) 그런 공들을 풀어내며 11점이나 득점한 브롬달도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0- (야스퍼스 같은 자로 잰 듯한
정교함은 떨어지지만 특유의 창의력과 공을 다루는 기술만은 정말 세계 최고가 틀림없을 겁니다)
이번 결승전의 하이라이트는 자네티가 세트스코어 2:1로 앞서고 있던 4번째 세트였습니다. 자네티 선수는 단 3이닝만에
14점에 도달하여 매치포인트를 만듭니다. 이 상황에서 자네티에서 주어진 공 배치는 대충 아래 그림과 같습니다.
자네티의 공은 흰공입니다. 노란공이 쿠션에서 적당히 떨어져 있기 때문에 큰 실수만 하지 않으면 무난히 득점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게다가 매치포인트 이므로 포지션이나 디펜스 등을 생각할 필요도 없구요.. 이 쉬운 공에서 자네티는 굳이 타임아웃을 신청합니다.
좀 더 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싶어서 그랬을까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장고 끝에 악수'가 되어 버립니다. 팔에 힘이 너무 들어가
흰공이 너무 많이 끌려버렸고, 말도 안되게 짧아져 득점에 실패합니다. 다행히(?) 브롬달에게 어려운 공이 섰고, 브롬달은 멋진
예술구같은 공을 시도했지만 힘이 조금 모자라 흰공을 2mm 앞에두고 멈춥니다. 자 이제 자네티에서 다시한번 경기를 끝낼 수 있는
찬스가 왔습니다.
이건 뭐.. 교과서에도 나온다는 뒤로돌려치기 아니겠습니까? ^^;; 매치포인트 이기에 좀 더 신중을 기하고 싶었는지, 자네티는
테이블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분석을 합니다. 그런데 너무 신중을 기했나봅니다. 어느덧 시간이 10초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
타임아웃은 이미 써버린지라, 서둘러 자세를 취하고 샷을 했습니다. 하지만 흰공과 빨간공이 어이없이 키스를 내고맙니다..
아.. 그때 자네티의 표정이 너무도 생생합니다. ㅠ.ㅠ 브롬달 선수는 나머지 4점을 기가막히게 득점하며 역전승을 합니다.
자, 이제 대망의 5세트가 되었습니다. 브롬달은 무득점에 머물르는 동안 자네티는 3이닝에 7점을 득점합니다. 하지만 쉬운
제각돌리기에서 또 실수를 하고, 브롬달은 그 찬스를 놓치지 않고 바로 7:7로 따라 붙습니다. 그 다음이닝에는 브롬달의
6연속 득점으로 브롬달이 13:8로 상황을 완전히 역전시켜 놓습니다. 2점이 남은 브롬달에게 다음과 같은 공이 섰습니다.
정확한 배치를 재현을 못하겠네요.. 현장에서 봤을때는 분명히 흰공 빗겨치기 대회전이 가능한 배치였는데, 아무리 다시 그려봐도
키스를 피할 수 없는 배치가 나오네요;;; 암튼, 대략적으로 위와 같은 배치였습니다. 세 공이 거의 일직선 상에 있고, 흰공 빗겨쳐서
대회전이 키스없이 가능한 상황이었음에도(제 기준에서는;;) 브롬달은 굳이 빨간공 원쿠션 뒤로걸어치기(구멍치기)를 선택합니다.
하지만 회전이 부족하여 흰공 안쪽으로 빠졌고, 자네티가 침착하게 따라붙어 동점에 이어 14:13으로 역전하며 다시한번 매치포인트를
만듭니다.
아까의 '장고 끝에 악수'가 떠올랐는지, 이번에는 너무도 빨리, 또 너무도 쉽게 각을 재고 바로 샷을 합니다. 상단 장쿠션을 시작으로
3쿠션을 맞고 정확히 3뱅크샷을 성공시키며 유난히도 길었던 결승전을 마무리합니다. 관중들은 기립박수로 자네티의 부활에 축하를
보내줬고, 자네티 선수는 큐를 들고 환호하다 끝내 눈물을 보이더군요.. 브롬달 선수도 너무너무 아쉽겠지만, 상대선수가 브롬달 이었기에
이런 명승부가 가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한국 선수들이 예선전에서 모두 떨어져서 너무 아쉬웠지만, 월드 챔피언쉽이라는 이름은 역시나 명불허전이었습니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대회에 제가 가서 관전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았는데, 매 경기가 모두 손에 땀을 쥐는 승부라
더욱 대단했습니다. ^^ 앞으로 한국 선수들이 이런 큰 대회에서 입상하는 소식을 전해드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첫댓글 참고로 이번 챔피언쉽 우승자인 마르코 자네티와 올해 월드컵 우승자인 딕 야스퍼스가 내년 2월에 상금 5000만원을 놓고 7전 4선승제로 이벤트 경기를 합니다. 일명 오천만원빵. ^^;;
아 한가지 좋은 소식은.. 이번에 대한당구연맹 진남국 부회장님이 오셨는데, 약 2~3년 후 한국에서 월드 챔피언쉽 개최를 제의받았다고 합니다. 아직 정해진 바는 없으니 소문내시면 안됩니다 ;;;
내년 월드 챔피언쉽은 스위스 로잔에서 열리며, 다음 UMB 월드컵 대회는 다음달 16일에 이집트 HURGHADA에서 개최됩니다. 한국 선수들의 선전을 기원합니다.
아참.. 사진이 없어서 죄송;; 이번에는 경기만 집중적으로 볼 요량으로 사진을 아예 안찍었습니다(한국 선수들도 모두 떨어졌고 해서;;)
생생한 관전기 정말 잘~읽었습니다~ 좋은 글을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브롬달 아깝군요 ㅠ.ㅠ
브롬달이 아까운게 아니고 자네티가 잘 한거야. ㅋㅋㅋ
간단후기.........잘 읽었습니다..........
독일 현지 특파원 매드박님 수고하셨습니다. 경기기록표만 봐도 박빙의 승부가 예상됐었는데 실제로도 그랬었군요. 제가 알기로 자네티가 늦장가를 갔는데 역시나 남자는 장가를 가야 일이 잘 풀리나 봅니다. 구슬모아의 많은 노총각 회원님들 명심하세요. ㅋㅋㅋ
니가 더 명심해야 할거같다. ㅋㅋㅋ
매드박님과 왕초님은 뭔가 통하는 면이 있는 듯 하네요, 왕초님도 이번에 수원월드컵 경기를 오로지 관전에 포인트를 두고 어느 기자 못지 않은 관전 평을 남기셨어요, 역시 사진은 없는 부분이 아쉬웠지요 ,, 그래도 글이 더 생생하다는 것...
잘봤습니다...그런데 쿠드롱은 예선에서 떨어졌나요??
예선C조에서 세트득실에 밀려서 탈락했음.....오늘 클럽에 오겠구나...
잼있었겠다 담에두 즐거운 소식 부탁합니다 매드박님 홧 ^****^팅
이 경기의 결승전 을 볼수 있었으면 ㅋㅋㅋ 명승부 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