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설명: 60년 후반 광안리 민락동 멀리 수영지역이 보임. 원으로 표시된 건물 - 우측은 민락아파트(당시에는 군인아파트라 불렀고 군인들이 공사에 동원되었다) 좌측은 광안아파트. 우측 흰색의 넓은 공터가 군인 운전 연습장. 신부산 개발 계획에 따라 이미 도로들이 직선으로 나있음>
기억속에 남아있는 60년대 광안리의 모습은 ㅡ
ㅁ 해수욕장 진입로 풍경ㅡ광안대로에서 광안리 해수욕장 진입도로(인쇄창 입구에서 반대편 도로)는 해수욕 시즌이 되면 길 양측 인도에는 인파로 항상 북적였다 그길로 내려가면 중간쯤 오른쪽 도로변에 돋보기 렌즈 만드는 작은 공장이 있었고, 우측 해수욕장 입구 도로변에는 여름철이 되면 쥬스 음료 가판대가 들어섰다 날치 한마리를 유리상자에 넣어 놓고 사람들을 끌어 모아 쥬스를 팔았는데, 메인 메뉴는 오렌지와 포도 쥬스였다 (요즘에는 불량 음료이지만 당시에는 인기가 있었음) 해수욕장 진입하기 직전 좌측에는 서커스 단이 공터에 천막을 둥글게 쳐 놓고 공연을 했다 우측 해변 가까이에는 단층 건물로 건물길이가 아주 긴 숙박 시설이 있었다(친구 유주경 아버지가 사장)
ㅁ 금련산의 동굴과 박쥐, 백산의 매ㅡ 측지부대 뒷편 금련산 중턱에 동굴이 두개 있었는데 박쥐들이 살았다. 여름철에 해가 저물면 떼를지어 광안리 하늘을 날아 다녔다 백산에는 맹금류인 매들도 살고 있었으며 공중에서 큰 원을 그리면서 휘~익 휘~익하는 휘파람 소리를 내곤했다
. 軍시설 ㅡ 금련산에서 내려다보면 수영중학교 왼쪽에 인쇄창과 그 옆에는 측지부대가 있었고 광안대로 건너편에는 각종 군복을 만드는 피복창이 있었다 간혹 피복창에서는 인근에 사는 주민들을 초대해서 군복 만드는 과정과 완제품 군복들을 구경하도록 하는 주민과의 소통 프로그램도 가졌다
. 軍 운전 연습장 ㅡ광안리 해수욕장 근처에는 군인 운전 연습장이 있었는데 정월대보름에는 높은 연습장 공터로 올라가 불놀이를 한 기억이 있다 연습장 언덕 한쪽으로는 넝마주이 거주지가 형성되어 있었는데 약 30~40가구가 판자촌에 모여 살았다
. 논과 밭 & 개천ㅡ 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광안리와 수영쪽에 논과 밭들이 많았고 당시에는 농약을 거의 사용하지 않아서 논에는 미꾸라지와 우렁이를 흔히 볼 수 있었다 늦가을부터 겨울철이 되면 철새들이 광안리 들녘을 거쳐가곤 했을 정도였는데 60년대 후반 즈음에 신부산 개발 계획에 따라 기존 도로는 확장되고 소방도로도 만들어지면서 자연 친화적이던 환경은 사라졌다 인간의 영역 확장과 개발은 필연적으로 환경 파괴와 동식물들의 서식지 소멸을 초래할 수 밖에 없는 것.
개천은 금련산에서 측지부대 뒷쪽을 거쳐서 백산 방향으로 흘러서 광안리 판자촌 마을을 지나, 수영쪽으로 내려가서 수영강 하류로 합류했다 상중류 수질은 깨끗해서 동네 아주머니들이 냇가에서 빨래도 했다 논 옆 작은 개천에는 물고기들이 많았는데 붕어 미꾸라지 뱀장어도 살았다 수영초등학교 정문 진입로 양측 도랑에도 비가 오면 물고기들이 많아서 방과후에는 친구들과 물고기를 잡곤했다
ㅁ 광안리의 큰 연못 두개 ㅡ
위치는 수영초교와 육군측지부대 사이에 있었고 윗연못, 아랫연못이라 불렀다(아랫 연못은 윗 연못의 두배 정도의 크기)겨울이면 썰매를 타고 여름에는 수영도 했다 광안리 사는 얘들 뿐만아니라 수영,민락동에 사는 아이들도 연못을 찾았다 여름과 가을철에는 특히 왕잠자리가 많이 날아 다녔고 다양한 수생식물들도 자라고 있어서 어린이들에게는 좋은 자연 학습장이 되었다
ㅁ 파출소와 판자촌 마을 ㅡ광안리 시장에서 수영쪽으로 가다보면 좌측 길 중간쯤에 파출소와 동사무소가가 있었다 그곳 동사무소에서 묘목을 얻어와 수영초등학교 운동장 한쪽으로 나무를 학급 친구들과 함께 심었다.
파출소 길 건너편에는 개천 양 옆으로 판자집들이 20여채 모여 있었으며 친구 김천록이와 하종생이도 이곳에 살았다 벽돌을 찍어 만드는 집과 마을 근처에는 규모가 큰 산소가 있었으며 주변에 제법 넓은 잔듸 터가 있어서 아이들이 그곳에서 씨름도 하고 무덤 위로 올라가 미끄럼도 타며 놀았다
ㅁ 그외 기억나는 시설과 가게들ㅡ
.근대식 국민주택 단지: 광안리 연못 아래쪽에 근대식 주택 단지가 조성되어 비교적 잘사는 사람들이 거주했다
우리반의 반장인 진영흥과 친구 채병대가 이곳에서 살았고 가끔 반 친구들이 놀러가곤했다
.광안시장: 입구 공터에는 가끔 동동구리무 장사가 구경꾼들 앞에서 구리무 장사를 했고 뻥티기 장사도 가끔 보였다(시장 입구 신발가게 사장 아들 이름 무한이)
.유치원과 호르라기 공장: 남천동에서 광안동으로 넘어가는 고갯길 언덕에서 오른쪽에는 소나무숲에 유치원(유치원 원장 딸이름 신일이)과 인근에 호르라기 만드는 공장이 숲속에 있엇다
.중국집: 광안대로에서 시장 진입로 입구에는 2층짜리 중국집( 중국집 사장은 대만인 교포로 둘째 아들 이름이 만탕)
.철물점: 광안시장 입구 광안대로변에 위치(철물점 사장 딸 이름은 정춘자)
.탁주집: 못살던 시절이라 '탁주' 또는 '왕대포' 간판을 걸고 술장사하는 가게들이 동네마다 있었음 당시 남천탁주가 유명했고 광안리 탁주집(가게 아들 이름은 이우민) 과 주유소 사이에는 김영호형집이 있었음( 동생은 김영애)
.복덕방(부동산을 복덕방이라 불렀음) : 피복창 맞은 편에 복덕방이 한 곳 있었음( 복덕방 주인을 아이들은 권영감이라 불렀다)
.목재소와 주유소: 목재소와 주유소가 있었는데 집이 부자라서 동네에서 유일하게 얘들(두 아들과 딸 한명)은 시내에 있는 사립학교에 다녔음(큰 아들 이름이 김신)
.동산원: 측지부대 앞쪽에 대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동산원이라는 고아원( 기억나는 아이는 키가 큰 맘보, 쌍둥이 형제인 상구와 또구)이 있었으며, 동산원 정문 근처에 별명이 최무룡인 최정수와 임학수 집이 있었다
.원일약국(피복창 입구)과 서라벌 사진관(약국 옆 건물 2층에 위치- 아들 이름은 신민호)
.오리온과자 대리점: 우체국 맞은편에 있었음 (바로 우리집^^광안대로 확장공사로 민락동 백산 중턱으로 집을 지어 이사했고 얼마 후에 집 뒤에 '칠성사이다' 대형 광고판이 들어섰다)
. 학교구내 이발소 - 수영초교 운동장 맞은 편에 학교 지정 이발소가 있었다 친구 김관진 아버지가 이발사였음
.광안극장(극장 옆쪽에 부산 이발관, 앞쪽 측면으로 양장점이 있었는데, 아들 이름은 허동수)
.놀이터: 동네 아이들은 주로, 수영중학교가 이전하기 전에는 광안우체국 뒤에 위치해 있었는데, 운동장에 모여서 많이 놀았다 아주 가끔 밤에 학교 운동장에서 영화 상영을 하기도 했다
혹시 60년대의 광안리 모습을 기억하는지...?
관련된 사진들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아쉽지만~
< 60년대 이전 사진으로 추정; 아랫쪽에 연못 두개가 보이고 그 하단의 검은 색은 측지부대 건물, 중간쯤에 수영로타리와 멀리 뒷쪽의 산은 장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