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이 보다 더 좋을 순 없다’란 영화에서
매사에 냉소적이고 괴팍한 대머리 아저씨 기억나십니까?
배우 잭 니콜슨이 연기한 멜빈이란 홀아비 주인공이
유일하게 친절히 대하는 단골식당 여종업원에게
이런 사랑의 고백을 하지요.
“당신은 나를 더 좋은 남자가 되고 싶도록 만듭니다.”
(You make me wanna be a better man)라고요.
시민합창단을 향한 저의 고백 같아
옮겨 보았습니다.
오늘도
첨부파일에
시민합창단 연습실 ③의 문이 열려 있습니다.
즐거운 주말 되십시오.
김명엽 드림
The Many Mood of Christmas 합창연습실 ③
지난 시간에 음화(音畵)의 일부분을 말씀드렸습니다만 좋은 음악일수록 많은 상징들이 들어있습니다. 종교나 예술이 되도록 공식 같은 것을 삼가기 때문에 상징을 사용하는 것 아니겠어요? 그래서 저는 음악을 연주할 때마다 그 감추어져 있는 것을 찾아내고자 보물찾기를 하곤 하지요. “눈으로 듣고, 귀로 본다”는 유명한 말은 시창법을 창안한 귀도(Guido d’Arezzo)가 들었던 찬사이긴 하지만, 단지 육안(肉眼)뿐만 아니라 심안(心眼)으로도 볼 수 있어야 하거든요.
잘 아시는 내용입니다만 성악곡에 있어서 음표에 가사를 붙이는 양식이 네 가지가 있지 않습니까?
① ‘음절 식’(syllabic style); 가사 한 음절에 음표 한 개
예) “천사들의 노래가”(89p, 319마디)
② ‘네우마 식’(neumatic style); 가사 한 음절에 음표 두개나 세 개
예) “천사찬송 하기를”(72p, 73마디)의 ‘를-’
③ ‘시편 식’(psalmodic style); 음표 한 개에 많은 가사
예) 이 책엔 나오지 않지만 찬송가의 ‘주기도문 영가’
④ ‘멜리스마 식’(melismatic style); 가사 한 음절에 많은 음표
예) “영∼∼∼∼광”(88p, 307-310마디)
가사양식과 관련하여 중세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이 하나 있습니다. 그레고리오 찬트에 있어서 ‘알렐루야’란 가사의 ‘a’ 모음에 멜리스마를 쓰는 건데요, 긴 ‘a-멜리스마’를 가리켜 ‘유빌루스’(jubilus)라 합니다. ‘a’모음을 길게 노래하므로 기쁨과 신앙심을 표현한 것이지요.
모차르트의 ‘알렐루야’의 긴 ‘아∼∼∼∼’도 유빌루스라 할 수 있지요.
근대음악에 들어서면서 작곡가들은 ‘알렐루야’ 가사 이외에도 중요한 단어에 멜리스마 붙여 사용하곤 했는데요, 우리가 잘 아는 헨델의 ‘메시아’중 ‘우리를 위해 한 아기 나셨다’(For unto us a child is born)를 보면 ‘나셨다’의 마지막 음절인 ‘다(born)∼∼∼∼’에 멜리스마 같은 것들입니다. 이같이 중요한 단어에 붙여진 멜리스마를 가리켜 ‘기쁨동기’(joy motive)라고도 하지요. 이 악보에서 88p부터 등장하는 “영∼∼∼광”은 이와 같은 ‘기쁨동기’이므로 즐겁게 불러야 합니다. 늘 강조하듯이 웃으면서 말이죠.
앞선 2부 마지막에 ‘섣달 스무 닷샛날에’와 ‘왕의 행진’이 오버랩 되어 나오지 않았습니까? 3부에서도 마지막에 ‘어서 등불 가져와라’와 ‘천사들의 노래’가 오버랩 되어 나옵니다. 2부에선 들에서 잠자던 목동들의 무리와 멀리 동방에서 별을 따라 찾아가던 왕의 행렬이 만나는 장면이었다면, 3부에선 천상군악대가 부르는 ‘영광송’이 하늘을 진동하는 가운데 지상에선 동네사람들이 기뻐 뛰는 춤판이 벌어져 어울리죠.
저는 바로 이런 극적인 세팅을 보며 로버트쇼의 천재적 착상에 다시금 놀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