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 자네의 명민함으로써 이미 학업을 마쳤으니, 사회에서 먼저 그 드러난 모습을 평가하여, 할 일을 맡길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나, 그들은 진짜와 가짜를 분별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니, 선비된 자로서 마땅히 잘 헤아리고 살펴보아서 진퇴를 정해야 함이 옳다.
그렇지만, 또한, 자신의 학식과 인품이, 그 삿됨과 바름을 참으로 분별할 자신이 있는 것인가를 먼저 살펴보고나서, 나아가 그 일을 맡아야 할 것이다.
요즘 세상은 어둡고 험한 시대라, 선왕의 법도가 통하지 않고 있어서, 먼저 문명과 야만을 분간하고서, 야만을 물리치고 문명을 높여야만, 사회를 비로소 건설할 수 있을 것인데, 지금 문명과 야만을 분별할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될 것인가.
높고 밝고 바르고 큰 자가 앞장서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고 해도, 천명(*역사적 소명감)을 받고서 행하는 자는 없나니, 바라건대, 강현 군은 이런 점에 힘쓸 것이요, 다른 것에 헛되이 힘을 쓰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정책을 시행하는 것과 천명을 받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선비의 학문(공맹,정주의 학문)을 터득하여 명백하게 행하는 것, 그것 뿐이다.
우리나라는 율곡선생께서 근본적인 도리를 통찰하셔서, 수기치인의 도리가 그 저서에 하나 하나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음이 없으니, 깊이 탐구하지 않아선 안되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따져 말하자면, 그 성(性)과 심(心)을 분별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것이다.
요즘 세상은 단지 심만 알고 성을 모르는데, 먼저 요즘 세상의 유심,유물론의 시비를 간파한 후에야 문명세계, 그 참된 모습을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강현 군이 두루마기를 입은 것은 성현의 법도로세.
오륜의 도리로부터 음식 예절에 이르기까지 모두 혁신하여 바르게 해야 할 것이다. 강현 군은 먼저 자신으로부터 시작해서 남에게로 미치게 하라.
스스로 다짐하여, 나는 선각자다, 나는 선각해야할 책무가 있다고 말해야 하느니, 이윤(伊尹: *중국 상(商)나라 초엽의 현인)의 마음으로써 자신의 마음을 삼아서 맹자의 호연지기를 길러야 한다.
호연지기를 기르지 않으면 일이 제대로 되는 게 없을 것이니, 호연지기를 기르는 방법은, 언(言)을 체득하고 의(義)를 붙잡음에 있다.
못다한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볼 때 하세.
기사년 2월 5일,
어머니를 여읜 희진 삼가 씀.
<원문>
이군영예기료학업(以君英睿旣了學業),정부사선우용이령야(政府似先優容而令也), 사불변진가(似不辨眞假), 즉위사자(則爲士者) 당량찰이진퇴가야(當量察而進退可也).
연(然)선찰아지식덕(先察我之識德) 과능변기사정이무의부(果能辨其邪正而無疑否), 연후출이임사역가야(然後出而任事亦可也).
현세즉(現世則) 예융지시(裔戎之時) 비선왕지도야(非先王之道也),선변화이척이존화(先辨華夷斥吏尊華), 방가위(方可謂) 창건정부야(刱建政府也).
이금지화이지변자(而今知華夷之辨者) 유기인야(有幾人耶). 고명정대자(高明正大者) 출이집정령(出而執政令),무수기명이행지자(無受其命而行之者). 원군용력어차(願君用力於此) 이불왕용력어타야(而不枉用力於他也).
집정여수명자비타야(執政與受命者非他也),지공맹정주지학이현어행자시야(知孔孟程朱之學而顯於行者是也).
아방즉(我邦則) 율옹통견도체(栗翁洞見道體) 이수기치인지도(而修己治人之道)
무일부저현어서(無一不著顯於書) 불가불정구야(不可不精究也).
추극이언지(推極而言之) 즉성심지변최급야(則性心之辨最急也).
금천하(今天下) 단지심이부지성(但知心而不知性) 선지금세유심유물지비정이후가론화도지진(先知今世唯心唯物之非正而後可論華道之眞).
군지복국복시성현지법야(君之服國服是聖賢之法也),자오륜지도(自五倫之道) 이지의식지절(以至衣食之節) 개혁이정지야(皆革而正之也).
군선자신이급어인(君先自身而及於人), 자서지왈(自誓之曰) 아시선각자(我是先覺者) 아유선각지책(我有先覺之責), 이이윤지심위심(以伊尹之心爲心) 이양성득맹자호기야(以養成得孟子浩氣也).
비양호기(非養浩氣) 무의성사야(無以成事也).양기지법(養氣之法) 지언집의시야(知言執義是也). 여재면진(餘在面盡).
기사(己巳) 이월오일(二月五日), 애자(哀子) 희진(熙鎭) 근소(謹疏 *疏는 발족변)
* 서암(瑞巖) 김희진(金熙鎭) 선생은 본관이 광산(光山)이시니, 광주(光州)에서 나시고, 평생 학문에 정진하시다가, 20세기가 저물어가는 90년대 후반에 별세하신, 우리 시대의 마지막 성리학자이시다.
선생의 학문은, 율곡(栗谷) 이이(李珥),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선생으로 이어지는 기호학파에서 그 마지막 종장인 간재(艮齋) 전우(田愚) 선생 계열에 속한다.
선생의 스승인 양재(陽齋) 권순명(權純命) 선생이 바로 간재 선생의 큰 제자이다.
선생께서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가곡리 고부실(곡부)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는데, 이 마을이 공자의 고향인 중국 곡부(曲阜)와 그 이름이 같았기 때문에 이 곳에 정착하신 것이다.
선생은 학문 뿐만 아니라, 그 덕행도 뛰어나서, 인근의 주민들이 존경해 마지 않았으며, 전국에서 수많은 제자들이 고부실의 ‘곡부강당’으로 찾아들어 선생의 가르침을 받았다. 필자도 1987년 겨울에 선생을 찾아 뵙고, 율곡, 간재 선생의 글을 조금 익혔었다.
위 간찰(편지)은 선생께서 기사년(1989년)에, 붓으로 직접 쓰셔서 필자에게 보내신 가르침이다.
선생께서는 위 글에서, 간재선생의 성사심제설(性師心弟說: 성은 스승이고, 심은 제자라는 주장)에 입각하여, 바르게 정리된 내면의 근본에 바탕하여, 외계에 대응할 것을 주문하고 계시다.
그리고, 평소에 두루마기를 잘 입었던 필자를 지적하여 과찬하시고 계시나, 그 때나 지금이나, 선생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여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다.
위 글에서 선생은 스스로 애자(哀子)라 칭하셨는데, 이는 당시 선생의 모친께서 돌아가셔서 선생께서 복을 입고, 3년상을 치르고 계셨기 때문이다.
선생께서는 고부실 마을 입구 언덕에 모친 장례를 치르시고 묘막을 지었으며, 아침 저녁으로 상식하고 곡하셨다.
아, 선생의 효심이 이와 같으셨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3594A4D500AAE1923)
첫댓글 필자 맹강현은 어떤 사람일까?
나도 잘 모르는 사람....^^ 인터넷 검색을 해 봤는데, 감이 머네....^^
"그 성(性)과 심(心)을 분별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것이다."
어디쯤 내 글에도 같은 내용이 있을 것이다..... 쉽지 않은 내용이지만, 요즘 말로 옮겨보면, 보편성과개별성의 문제이다. 개별성(心)은 다양화시키고 풍부하게 하되, 늘 임기응변으로 대응하고...... 보편성(性)은 함부로 드러내지 않되 늘 내 언행을 비추는 거울로 삼는다.... = 내가 아직 도달하지는 못하였으나 도달하고자 나름 잊지 않고자 하는 곳이다...^^ =
"간재선생의 성사심제설(性師心弟說: 성은 스승이고, 심은 제자라는 주장)에 입각하여, 바르게 정리된 내면의 근본에 바탕하여, 외계에 대응할 것을 주문하고 계시다." -같은 맥락일 것이다.-
"먼저 자신으로부터 시작해서 남에게로 미치게 하라." 앞에 나온 <수기치인(修己治人)의 도리>란 말과 같은 의미.... 유학의 기본 테제 가운데 하나이지.... 거의 절대적인...
"호연지기를 기르지 않으면 일이 제대로 되는 게 없을 것이니, 호연지기를 기르는 방법은, 언(言)을 체득하고 의(義)를 붙잡음에 있다."
언(言)은 표상하고 비슷한데, 개념이 내 안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言은 말로 표현(語)되지 않아도 표정이라든지 등등으로 이미 표현되는 경우도 많다. 발상, 표상, 상상 등과 유사한 개념으로 보아도 된다. 言을 체득하기 위해서 [대학]에서 제시하는 조목이 正心과 誠意이다. 義를 붙잡는다는 것은 결국 지어지선을 말한다..... 공유되는 가치로부터 일탈되지 않는 것, [중용]의 표현에 따르면.... 기탄(忌憚)이 있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