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장, 여 행
바다로 출발을 하기 전에 병원엘 들려서 약을 타기 위해서다. 그리고 아내를 위해서 두둑한 옷도 준비를 하고 먹을 것도 준비를 한다. “정말 바다에 데리고 가도 괜찮을까요?” 정민은 걱정스럽다. “네! 의사선생님도 본인이 원한다면 해 주라고 했어요. 약도 충분히 타 왔고 아내가 먹을 음식도 준비를 했으니 그렇게 오래 있지만 않는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겁니다.“
“그래도.........” “처형! 너무 걱정을 하지 마십시오. 설사 지석이 엄마가 잘못되는 한이 있다 해도 무엇이든지 해 달라는 것은 다 해줄 생각입니다.“ “에그~~~ 조금만 진즉에 그런 생각을 했다면.......“ 정민의 눈에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다. 최종현이 모든 것들을 뒤로하면서 정은을 돌보는 것을 보면서 더 가슴이 미어진다. 원래가 그렇게 따뜻하고 자상한 사람이었다. 여자 문제만 아니었더라면 정은의 병이 저토록 깊어지기 전에 알아차리고 미리 손을 썼을 것이다.
또 정은이 그렇게 마음고생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런 병에 걸리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니 순간순간 최종현이 미워지면서 원망이 되는 것이다. “너무 무리는 하지 말아요! 여행을 다니는 것도 얼마나 힘이 드는 일인데.......“ “네! 조심해서 다녀오겠습니다.“ “언니! 우리 지석이하고 지원이를 부탁해요!“ “그래! 아이들 걱정은 하지 말고 잘 다녀와라!“ 최종현은 차를 조심스럽게 운전을 한다.
차가 영동고속도로에 올라서자 정은은 감탄을 한다. “아! 너무 좋다!“ “정말 좋아?” “그럼요! 그동안 병원냄새에 약 냄새가 정말 싫었는데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당신이 그렇게 좋아하니까 나도 좋소! 그리고 피곤하면 기대서 눈을 감고 잠을 자고......“
“여보! 당신하고 이렇게 단 둘이서 여행을 해 보는 것이 얼마만인지 알아요?“ “글쎄?...............” 최종현은 가슴이 아리다. 그동안 아내와 단 둘이서 여행을 해 본 것이 언제였던지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 “미안하군! 기억이 나질 않는 것을 보니 상당히 오래 되었나보네!“ “후후후............. 우리 신혼여행 때 말고 어디 있었어요? 결혼을 하고 바로 지석이를 가졌는데 우리 둘만의 시간을 가질 수가 없었지요.“
“그랬었나?” “그러나 우리 지원이를 낳고나서 가족 여행을 단 한 번도 해 보지를 못했어요. 그래서 우리 가족사진이 없어요.“ “미안해! 내가 너무나 커다란 잘못을 저질렀어! 당신에게 너무 미안해서 용서해 달라는 말도 할 수가 없어!“ 최종현은 진심으로 아내에게 미안하고 죄스럽다. 그러고 보니 자신은 지원이를 사랑해 준 적이 없다. 딸이 태어나는 것도 별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여행에서 돌아가는 대로 가족사진을 찍읍시다.” 강릉에 도착을 하자 바다가 보이는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여보! 저 푸른 바다를 보니 가슴이 다 시원해요!“ 커다란 거실의 창을 통해서 바다를 내다보는 정은이는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이렇게 좋아하는 당신을 보니 그동안 내가 너무 무심했고 당신한테 너무나 소홀해서 정말 할 말이 없소! 우리 오래오래 이렇게 여행도 다니고 함께 살아가는 거요!“
“그래요! 당신이 다시 내 곁으로 돌아와 준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어요.“ 정은은 행복하다는 듯이 남편의 가슴에 살며시 기댄다. 그들은 그렇게 바다를 바라보면서 잔잔한 음악소리와 함께 서로를 기대어 휴식을 취한다. 잠시 후에 정은의 잠이든 숨소리가 들린다. 최종현은 아내를 안아서 침실로 들어가 편안하게 침대에 눕힌다. 아내의 체중이 너무나 많이 줄어서 가벼워진 것을 알고는 그는 긴 한숨을 내 쉰다. 그리도 통통하고 살집이 좋았던 아내였다. 이제는 너무나 바짝 말라서 그 통통하던 모습은 어디로 간 곳이 없고 너무 가벼워 있었다.
“정은아! 이대로라도 좋으니 오래오래 우리 곁에 있어줘!“ 최종현은 잠든 정은의 모습을 내려다보면서 말을 한다. 자신의 사랑이 아무리 소중하고 진실하다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불륜이었다. 서로의 가정을 이처럼 엉망으로 만들만큼의 가치가 있었던가? 최종현은 자신의 잘못이 너무나 컸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또한 자신이 어떠한 잘못을 저지르든 영원히 자신의 곁에 머물러 줄 아내라도 너무 등한시 하고 소홀하게 내 버려두었던 것이 커다란 화근이었음을 다시 깨달으면서 그의 가슴은 회환으로 가득 차오른다. “아!~~~~” “어디 아파?” 아내는 심한 통증을 호소한다. 최종현은 얼른 약을 꺼내어 아내의 입안에 넣어준다.
“아프면 비명이라도 질러! 내가 당신의 아픈 것을 다 받아 줄게!“ 그러나 정은은 입술을 물고는 신음소리가 커다랗게 들리지 않도록 애를 쓴다. “여보! 정은아! 참지 말고 아프면 아픈 대로 비명이라도 질러!“ “이제 조금씩 괜찮아 지고 있어요.” 정은의 이마에는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린다.
“여보! 내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죠?“ “무슨 소리야! 당신은 오래오래 우리 가족들의 곁에 머물면서 그렇게 살 수 있어! 내가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로 당신을 먼저 가게 하지 않아!“ “고마워요! 허지만 나도 내 병이 어떻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내 남은 생명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아야만 하나씩 정리를 하죠!“
“그런 말 하지 마! 우리에게 지석이하고 지원이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그 애들은 아직 당신의 손길이 필요한 애들이고 나 또한 당신이 없이는 견딜 수가 없을 거요. 그 동안 당신이 내 곁에 있었기 때문에 내가 마음을 놓고 그렇게 내 멋대로 당신에게 커다란 잘못을 저지른 것 같소! 절대로 이대로 당신을 보내지 않겠소!“ 최종현의 안타까운 몸부림이다.
정은은 몇 시간차를 타고 온 것이 힘이 들었는지 밤새 열이 오른다. 최종현은 잠을 자지도 않고 연신 물수건을 갈아서 이마에 대 주면서 수시로 체온계로 열을 체크하면서 아내를 돌본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간신히 열이 내리면서 정은이 잠이 든다. 그제 서야 최종현도 잠이 들 수가 있었다. 잠이 든 아내의 손을 꼭 잡고서 수면으로 빠져든다. 정은은 새벽의 파도치는 소리에 잠이 깬다.
남편이 잡은 손을 가만히 빼고서 침대에서 내려와 거실의 커튼을 거두고 밖을 내다본다. 희뿌연 새벽의 여명 속에서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이렇게 세상은 생동감이 넘치게 살아서 움직인다. 정은은 망부석이라도 된 듯이 그렇게 하염없이 부숴 지는 파도를 바라보면서 서 있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서 있는 거요?” 최종현이 아내의 등에 가디건을 걸쳐주면서 옆에 선다. “잠이 깼으면 나를 깨우지 그랬소?”
“당신이 밤새 나 때문에 잠도 못자고 고생을 했는데 왜 깨우겠어요? 좀 더 잠을 자지 않고요........“ “자다가 보니까 당신이 없어서 놀래서 일어났지!” “미안해요! 파도치는 소리에 잠을 깼어요. 여보! 우리 아침을 먹고 바닷가를 거닐고 싶어요.“
“그러지! 헌데 아침은 여기서 먹을까?“ “아뇨! 나가면 식당들이 있을 것 아닌가요? 당신이 먹고 싶은 음식을 찾아서 들어가서 따끈하게 먹어요.“”당신은 그럼 지금 죽을 좀 줄까?“ “조금만 줘요!” 보온병속에 넣어 가지고 온 죽은 아직도 따뜻했다.
최종현은 조금 따라서 정은에게 가져다준다. “이것을 다 먹어야 하오!” 그러나 정은은 두어 수저를 뜨고는 그대로 수저를 놓는다. “왜? 먹지를 못하겠어?“”못 먹겠어요!“ “조금이라도 먹어야 약을 먹지! 자, 조금만.........“ 최종현은 수저로 떠서는 정은에게 먹인다.
정은은 받아먹는다. 그러나 더는 안 먹으려고 입을 손으로 막는 것이다. “한 번만 더........응?” 남편의 간청에 마지못해서 한 수저를 더 받아먹는다. 최종현은 그렇게 달래면서 간신히 죽을 먹인다. “역시 당신은 내 말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들어주거든! 내가 그래서 지금까지 아무런 불편도 모르고 편안하게 살아왔지!“ “당신도 참으로 자상하고 따뜻한 사람이었어요. 그 여자를 만나기전 까지는 말이에요.“
“.......................” 최종현의 가슴은 갑자기 비수로 가슴을 도려내는 듯이 심한 아픔이 몰려온다. 아직도 아내의 가슴에 상처는 치유가 되지를 않고 있었던 것이다. “여보! 이제 그 일은 그만 잊으면 안 될까? 당신이 그 일을 생각하면 할수록 당신 건강이 더 나빠질 수도 있으니 걱정스럽다.“ “나도 잊고 싶고 잊었다고 생각을 했어요. 허지만 당신이 지금 내게 이렇게 잘해 주면서도 마음은 얼마나 그리움에 꽉 차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요.“
“절대로 그렇지 않소! 이제는 그 여자에 대한 생각은 조금도 하지를 않소! 아무리 그 여자가 아름답고 좋다고 해도 당신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사람이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여자에 대한 미움 때문에 난 당신을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오. 허나, 지금은 그런 미움조차도 사라져 버렸소!“ “그 말이 사실이에요?”
“그렇소! 내겐 오직 당신뿐이오.“ 정은은 남편의 모습만 바라다 볼 뿐이다. 아직 정은의 마음은 남편의 마음을 예전처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이제 그만 밖으로 나가요. 당신도 아침을 먹어야 하지 않아요? 그러고 나서 바닷가를 걷고 싶어요.“ “알겠소!” 최종현은 아내가 걸친 조금 두툼한 옷을 챙겨서 가지고 나간다.
그는 아침을 간단히 곰탕으로 먹고는 기다리는 정은을 데리고 바닷가로 나간다. 바닷바람이 매우 차갑다. 옷을 아내의 등에 덮어주고는 아내의 손을 잡고 바닷가를 거닌다. 모래사장이 걸음을 조금 힘들게 하고 있지만 아내의 표정은 밝아져온다. “여보! 마치 파도가 나에게 용기를 내라고 말을 하고 있는 것만 같아요!“ “그렇소! 내 귀에도 그렇게 들리고 있군!“
“아! 진작에 우리 애들을 데리고 와보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워요! 아직 우리 지원이를 데리고 어디든 가본 곳이 없어서 만일 내가 죽고 나면 우리 지원이는 이 엄마를 어떻게 기억을 하고 있을지........“ “아직도 기회가 많이 남아 있으니 걱정할 것은 없소! 당신의 몸이 조금만 좋아진다면 아이들을 데리고 어디든 여행을 다닙시다. 그리고 당신은 절대로 죽지 않을 테니 죽는다는 말은 하지 말아요.“ 최종현은 이따금씩 아내의 입에서 죽음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가슴이 서늘해진다.
아내를 절대로 이대로 떠나보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어야 했고 조금이라도 더 아내를 따뜻하게 보살펴주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이 그의 머리와 가슴을 지배한다. “바람이 너무 차가우니 그만 들어갑시다.” 그는 아내를 안다시피 하고 다시 호텔로 돌아온다. |
첫댓글 즐감 하고 갑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고향설 시인님의 좋은글 "애증 30회"와 아름다운 영상 즐감하고 갑니다.
오늘은 좋은것은 양보하고 배려하며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