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난설헌(許蘭雪軒)에 대하여
본관 양천(陽川)
이명 자'경번(景樊)'
출생-사망 1563~1589
출생지 강원도 강릉
가족 아버지'허엽(許曄)', 오빠'허봉(許篈)', 동생'허균(許筠)', 배우자'김성립(金誠立)'
조선 중기의 여류시인. 본관은 양천(陽川). 본명은 초희(楚姬). 자는 경번(景樊). 난설헌은 당호(堂號). 엽(曄)의 딸이며, 봉(篈)의 동생이고, 균(筠)의 누이. 강릉에서 출생했으며, 안동 김씨 김성립(金誠立)과 혼인했다.
유명한 학자와 문장가를 배출한 명문가에서 태어나 역시 시인, 문장가로 명망이 높은 형제들 사이에서 시에 대한 높은 안목을 기를 수 있었으며, 삼당(三唐) 시인의 한 사람으로 명망이 높던 이달(李達)에게서도 시를 배웠다. 8세에 <광한전백옥루상량문 廣寒殿白玉樓上梁文>을 지었다고 할 정도로 어려서부터 천품과 재주가 뛰어나 신동이라고 불려졌다. 그러나 결혼 후의 생활은 남편과 시집 식구들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고 두 자녀마저 잃게 되는 등 불행했다. 친정집마저 옥사(獄事)를 당하여 오빠 허봉이 귀양 가서 객사하는 등의 비극을 경험하면서 불운(不運)한 일생을 보내다가 27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러한 삶에서 오는 고뇌를 한묵(翰墨)으로 달래면서 많은 시를 지었는데, 현재 213수만 남아 있다.
시는 <소년행 少年行>, <장간행 長干行>, <강남곡 江南曲>, <출새곡 出塞曲> 등과 같이 당시(唐詩) 중에서 이백(李白)의 악부시(樂府詩)를 시제(詩題)로 삼은 것들이 많다. 여성으로서의 허난설의 심경을 드러내기에 적합한, 여인들의 연정(戀情)을 낭만적으로 담은 이들 악부체의 당시(唐詩)를 수용(受容)하여 자신의 정감을 표현해 내는 뛰어난 작품들로 변용(變容), 재창조해 냈다. <규원 閨怨>, <감우 感遇>, <추한야좌 秋寒夜坐> 등과 같이 규중 여인으로서의 불행했던 삶에 대한 고통을 표현한 작품들도 적지 않으며, <곡자 哭子>와 같은 작품은 자녀를 잃은 어머니의 비통한 심경을 절실히 표현한 것으로서 유명하였다. 신선(神仙) 세계를 동경하는 내용을 담은 일련의 시들도 있는데 <유선사 遊仙詞> 87수를 비롯하여 <보허사 步虛詞>, <망선요 望仙謠> 등이 그것이다. 가혹한 현실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염원에서 시를 통하여 초월적 세계로서의 이상적인 선경(仙境)을 추구했음을 보여주는 것들이다. 그녀의 시는 중국에까지 널리 알려져 ≪열조시집 列朝詩集≫, ≪명시종 明詩綜≫과 같은 중국 시집에도 여러 수 수록되었고, 일본에서도 ≪난설헌집 蘭雪軒集≫이 간행될 만큼 일본인들에게까지 널리 관심을 끌었다. 한국 한시사에 있어 여류 한시 시인으로서 부동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난설헌집 [ 蘭雪軒集 ]
작품해설조선 중기의 여류 시인 허난설헌의 시문집.
허난설헌의 시는 임종 때의 유언에 의해 대부분을 소각해 버렸는데, 동생 허균이 남은 작품들을 모아 명나라에서 온 사신 주지번(朱之蕃)에게 준 것이 중국에서 1606년 간행되었다. 역시 같은 해에 우리 나라에서도 개주 갑인자본(改鑄甲寅字本)이 간행되었으나, 1692년 동래부에서 중간한 중간본(重刊本)이 현재 널리 전해져 오고 있다.
이 중간본이 일본에 건너가 1711년 분다이야(文台屋次郞)에 의해 일본에서 간행되었다. 시 210수, 사(辭) 1수, <몽유광상산시서 夢遊廣桑山詩序> 1편, <광한전백옥루상량문 廣寒殿白玉樓上梁文>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대부분의 시가 허난설헌의 시가 아니라 허균의 위작(僞作)이거나 허균이 중국 시를 몰래 섞어 놓은 것 또는 중국 시를 표절한 것이라는 비판이 이수광(李晬光), 김만중, 신흠(申欽) 등에 의해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남용익(南龍翼)은 허난설헌의 시가 그 격이 오빠 허봉(許篈)의 시보다도 높아서 허균이 그에 미치지 못한다고 말할 정도로 허난설헌의 시재(詩才)를 높이 평가했다.
또 중국에서 처음 출간된 만큼 중국 시를 섞어 놓은 것은 삭제되었을 것이라는 점 등으로 미루어서 허난설헌의 시로 긍정하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작품]
추한(秋恨 가을의 정한)
絳紗遙隔夜燈紅(강사요격야등홍) : 붉은 깁창 저 넘어 밤등불 붉은데
夢覺羅衾一半空(몽각나금일반공) : 비단 이부자리에서 잠 깨니 옅자리가 비었구나
霜冷玉籠鸚鵡語(상냉옥롱앵무어) : 서리기운 차가웁고 새장에는 앵무새 울고
滿階梧葉落西風(만계오엽락서풍) : 뜰에 가득한 오동나무 서풍에 잎이 지는구나
감우(感愚 어리섞었어)
盈盈窓下蘭(영영창하란) : 하늘하늘 창 아래 난초잎
枝葉何芬芬(지엽하분분) : 가지와 잎이 어찌 그리도 향기로운가
西風一披拂(서풍일피불) : 하뉘바람이 한번 스치면
零落悲秋霜(영락비추상) : 시들어버리니 가을서리처럼 서글퍼라
秀色縱凋悴(수색종조췌) : 빼어난 고운 빛 시들어 버려도
淸香終不斃(청향종불폐) : 맑은 향기는 끝내 없어지니 않는구나
感物傷我心(감물상아심) : 느끼는 풍물마다 마음 아파서
涕淚沾衣袂(체루첨의몌) : 눈물을 흘러 옷깃을 적시는구나
감우2(感愚2)
古宅晝無人(고택주무인) : 고택에는 낮에도 사람이 없어
桑樹鳴鵂鶹(상수명휴류) : 뽕나무에는 부엉이와 올빼미만 운다
寒苔蔓玉砌(한태만옥체) : 옥돌 섬돌엔 차가운 이끼와 넝쿨만 무성하고
鳥雀棲空樓(조작서공루) : 빈 누각엔 새들만 깃들어 있구나
向來車馬地(향래거마지) : 지난 날 수레와 마차 오가던 곳
今成孤兎丘(금성고토구) : 지금은 토끼 언국이 되었구나
乃知達人言(내지달인언) : 이제야 알겠구나, 선인의 하신 말씀
富貴非吾求(부귀비오구) : 부귀는 내가 구할 바가 아니라
추한(秋恨 가을날의 한)
縫紗遙隔夜燈紅(봉사요격야등홍) : 비단 창문 저 멀리 등잔 불 밝은 밤
夢覺羅衾一半空(몽각나금일반공) : 꿈에서 깨어보니 비단 이불 한 곳이 텅비어있네
霜冷玉籠鸚鵡語(상냉옥롱앵무어) : 서릿발을 차고 옥초롱에는 앵무새 소리
滿階梧葉落西風(만계오엽락서풍) : 불어오는 서풍에 섬돌 가득 오동잎 떨어지네
기하곡(寄何谷 오빠 하곡에게)
暗窓銀燭低(암창은촉저) : 어두운 창에 은촛불 나직하고
流螢度高閣(유형탁고각) : 반딧불은 높은 누각을 날아다닌다
悄悄深夜寒(초초심야한) : 근심스런 깊은 밤은 차가워지고
蕭蕭秋落葉(소소추낙엽) : 쓸쓸한 가을은 낙엽만 지는구나
關河音信稀(관하음신희) : 오라버니 계신 변방에서 소식 없어
端憂不可釋(단우불가석) : 근심스런 이 마음 풀 수가 없어요
遙想靑運宮(요상청운궁) : 아득히 오빠 계신 청운궁을 생각하니
山空蘿月白(산공나월백) : 산은 비어있고 담쟁이 덩굴에 달빛만 밝다
送荷谷謫甲山(송하곡적갑산 갑산으로 귀양가는 오빠 하곡에게)
遠謫甲山客(원적갑산객) : 멀리 갑산으로 귀양가는 나그네 우리 오빠
咸原行色忙(함원행색망) : 함경도 고원 길에 행차가 바쁘리라
臣同賈太傅(신동고태부) : 귀양가는 신하는 충신 가태부와 같다지만
主豈楚懷王(주기초회왕) : 귀양보내는 입금이야 어찌 어리석은 초회왕이랴
河水平秋岸(하수평추안) : 강물은 가을 강 언덕에 잔잔하고
關雲欲夕陽(관운욕석양) : 변방 함경도의 산 구름 석양에 물들겠지
霜楓吹雁去(상풍취안거) : 서릿발 찬 바람에 기러기 나는데
中斷不成行(중단불성행) : 중간에서 못가고 돌아 왔으면
閨情(규정 여자의 정)
妾有黃金釵(첩유황금채) : 제에게 황금 비녀 하나 있는데
嫁時爲首飾(가시위수식) : 시집 올 때 머리에 꽂았던 것입니다
今日贈君行(금일증군행) : 오늘 그대의 행차에 드리오니
千里長相憶(천리장상억) : 천리 먼 길에 오래도록 기억해 주소서
채연곡(采蓮曲 연꽃을 따며 부르는 노래 )
秋淨長湖碧玉流(추정장호벽옥류) : 가을은 맑고 긴 호수엔 벽옥 같은 물 흐르고
荷花深處繫蘭舟(하화심처계난주) : 연꽃 우거진 곳에 아름다운 목련배 매여 있어요
逢郞隔水投蓮子(봉랑격수투연자) : 임을 만나 물 사이로 연밥을 던지다가
遙被人知半日羞(요피인지반일수) : 멀리 사람들이 알아보아서 반나절이 부끄러웠소
야야곡(夜夜曲 갚은 밤의 노래)
玉淚微微燈耿耿(옥루미미등경경) : 옥 같은 눈물 찌금찌금 , 등잔불 깜박깜박
羅瑋寒幅秋宵永(라위한폭추소영) : 비단 휘장 싸늘하고 가을밤은 길기도 하다
邊衣裁罷剪刀冷(변의재파전도냉) : 변방에 보낼 옷 다 짓고 나니, 싸늘해진 가위
滿窓風動芭蕉影(만창풍동파초영) : 바람 따라 움직이는 파초 그림자만이 창을 채우네
강남곡(江南曲 강남에서)
人言江南樂(인언강남낙) : 사람들 강남을 즐거운 곳이라 하지만
我見江南愁(아견강남수) : 나는 강남의 근심을 보았습니다
年年沙浦口(년년사포구) : 해마다 모래벌 포구에서
腸斷望歸舟(장단망귀주) : 단장의 이별하고 고향 가는 배를 보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