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강해-9 부흥의 걸림돌 - 죄
(스 9:1-15)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이 일 후에’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되어진 일들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 일’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전을 회복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천리나 되는 먼 길을 마다 않고 달려왔습니다. 그들의 모든 삶을 헌신하며 대적들의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 성전을 완성하고야 말았습니다. 이제 학사 겸 제사장인 에스라까지 돌아와서 하나님의 전을 아름답게 하고자 하는 일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제사가 회복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그러한 모든 일들이 다 되어진 이후에라는 말입니다. 그 일 이후에 어떤 일이 생긴 것입니까? 모든 것들이 이제 다 잘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 보이는 그 때에 이스라엘의 부흥은 뜻하지 않은 암초에 부딪히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문제였습니다. 지금까지는 주로 그들 밖에 있는 대적들과의 싸움이었습니다. 사실 대적들의 공격이 거세지면, 내부적으로는 더욱 단결하게 되고 더욱 결의에 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들이 순탄하게 진행되는 것 같은 이 시점에서 불거진 문제는 그들 자신의 문제였습니다. 바로 이스라엘 공동체 안의 있는 죄의 문제였습니다.
여러분! 밖에서 일어나는 문제보다 안에서 일어나는 문제가 더 심각하고 해결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겉으로는 참으로 헌신적이고, 열심이고, 거룩해 보이고 아무 문제 없어 보이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죄의 문제들로 인해서 자라가지 못하고 있고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일에 멈추어 있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아직도 여전히 내 발목을 잡고 있는 그 죄의 문제를 바라보면서 여러분은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죄에 대해서 분명한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죄인입니까? 의인입니까? 이런 질문을 던지면 참 대답하기가 난처합니다. 죄인이라고 말하자니, 주님의 대속의 은혜를 부정하는 것 같고, 의인이라고 말하자니, 내 자신을 속이는 것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 성도는 죄인입니까? 의인입니까? 성도는 죄인인 의인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의 신분은 하나님 앞에서 의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해진 완전한 의인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인정해 주십니다. 그러나 그의 모습은 아직도 죄인의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이 땅에서의 그의 삶이 온전히 거룩해 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죄인과 의인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이것이 성도의 딜레마이고, 성도의 고민거리인 것입니다.
로마서 말씀에 보면, 우리는 죄에 대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들입니다. 죄에 대하여 죽었기 때문에 더 이상 죄가 우리를 정죄할 수 없습니다. 죽은 사람에게 죄를 물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로마서 8장에 보면, 바울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여러분 이 말씀이 얼마나 엄청난 말씀입니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을 믿으십니까? 이 말씀을 다시 말해보면 이런 것입니다. ‘혹 우리가 죄를 짓는다 할지라도 그것 때문에 우리가 다시 하나님 앞에서 죄인의 신분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죄가 우리의 구원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내 모습에 따라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 중에 자신의 구원을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아니 한 사람인들 있겠습니까? 어느 누가 과연 구원의 확신 가운데 거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 중에 ‘나는 하나님 앞에서 추호의 잘못도 없다’라고 말할 수 있는 분이 계십니까? 주님은 산상수훈의 말씀 중에 우리의 죄는 단지 행동으로 드러난 것뿐만이 아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음 속으로 생각한 모든 것들까지도 다 동일한 죄로 정죄하고 있습니다. 음욕을 품은 자는 이미 간음한 자이고, 형제에 대하여 노하는 자마다 이미 심판을 받은 자요, 미련한 놈이라고 하는 자는 지옥에 들어갈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엄청난 말씀 앞에서 어느 누가 나는 전혀 흠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산 속에 들어가서 더러운 것 보지 않고 수십년 동안 도를 닦으면, 깨끗해지겠습니까? 어림없는 소리입니다. 우리는 결코 이 죄의 문제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죄에 물든 이 육체를 벗어버리기 전까지는 어림없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는 육체의 소욕으로 인해 탄식할 수밖에 없는 자들입니다. 사도 바울조차도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할 자로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내랴?’
그렇기 때문에 우리 주님이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너무도 잘 아시기 때문에, 주님께서 내 죄의 값을 대신 치루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내 모습과는 관계없이 오직 예수 믿음 때문에 구원받은 자들입니다. (간혹 지극히 양심적인 분들은 이러한 말씀을 인정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 알량한 양심 때문에 여전히 내가 내 죄의 문제를 붙들고 씨름 할 때가 있습니다. 뜻은 가상하지만, 어림없습니다. 우리 중에 한 사람이라도 스스로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면, 주님은 절대로 우리에게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모습과 관계없이 이미 구원받은 자들이요, 천국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법정 앞에서 의인이라고 인정받은 자들입니다. 과거의 우리의 잘못 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우리의 모든 죄악들까지도 포함해서 용서받은 자들입니다. 의인이라고 인정받은 자들입니다.
아마 이렇게 말씀드리면, 여러분 중에 ‘그러면, 예수 믿는 사람들은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는 것입니까? 죄를 지어도 상관이 없단 말입니까? 교회에서 그런 식으로 가르치니까,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세상에 나가서 바르게 살려고 하지도 않는 것이 아닙니까?’ 라고 따지고 싶은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따져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 부분을 분명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의 진리입니다. 내가 힘써서 들어가는 천국이라면 그 소식은 더 이상 복음이 아닙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우리가 잊어버리면 안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어떻게 우리가 그 죄의 문제로부터 벗어났느냐는 것입니다. 성경의 표현대로 우리는 값없이 아무런 댓가 없이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대가는 우리가 지불할 수가 없었을 뿐이지 아무런 값이 지불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어마 어마한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그 값으로 지불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으시는 사건을 통하여 죄의 무서움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그 대속의 은혜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받은 성도들은 그 은혜와 함께 죄의 심각성도 깨닫습니다. 죄는 하나님의 아들이 죽어야 할 만큼 엄청난 위력을 가진 것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죄가 세상에 들어오자 하나님의 창조하신 세상이 완전히 깨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요즘 북한의 핵문제가 세계적인 관심사입니다. 그것은 핵이라는 것이 그마만큼 무서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지구상에 있는 핵폭탄은 지구를 수십번 파괴할 수 있는 가공할 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끔 핵폭탄이 터지는 장면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서 보여주는데, 거기에 보면, 그 핵폭풍으로 인해서 모든 생명체들은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녹아버리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핵폭탄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죄’입니다. 핵폭탄은 지구를 수십번 깨뜨릴 수 있지만, 우리의 영혼의 털끝하나도 건드리지 못합니다. 핵폭탄이 터져서 지구가 불바다가 된다 할지라도 우리의 영혼은 조금도 해를 입지 않습니다. 그러나 죄는 우리의 영혼까지 죽게 하는 어마 어마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죄로 인해 인류는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단절되었습니다. 죄로 인해서 세상은 하나님을 떠나 죽은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세상의 모든 문제와 고통하는 문제들의 원인이 바로 이 죄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세상은 철저하게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성도는 바로 그 죄의 위력을 너무도 잘 아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그것을 분명하게 보았습니다. 죄의 형벌 앞에서 주님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고 호소하셨습니다.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여러분, 이것이 바로 죄의 형벌 앞에서 인간이 외칠 수 있는 한마디 외침입니다. 그 형벌을 주님이 대신 받으시고 나를 구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다시 그 죄악 가운데 거할 수가 있겠습니까? 어떻게 우리가 내 안에 있는 죄의 문제를 쉽게 생각할 수가 있겠습니까? 어떻게 우리가 죄에 대해서 단호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탄식하는 에스라의 탄식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에스라가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3절을 보십시오. ‘내가 이 일을 듣고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으니’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를 아는 자의 죄에 대한 태도입니다. 이제 죄에 대해서 자유하였으니, 죄의 형벌로부터 벗어났으니, 아무렇게나 살아도 됩니까? 만약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직 구원이 무엇인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의 은혜가 어떤 은혜인지 알지도 못하는 사람입니다. 주님의 대속의 은혜를 아는 자, 십자가가 무엇인지 아는 자, 그는 결코 죄에 대하여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습니다. 결코 죄를 쉽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은혜를 아는 자, 십자가를 아는 자는 죄로 인하여 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탄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 안에 있는 죄의 모습을 바라보면서도, 아무렇지가 않습니까? 십자가의 도를 배우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배우시기 바랍니다. 그 주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내 안에 있는데, 죄가 아무렇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빛과 어두움이 절대로 함께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함께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고후6:14-15)
여러분 에스라가 백성들의 죄를 앞에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뭐라고 호소하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6-10절을 보십시오.)
‘말하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러워 낯이 뜨뜻하여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 우리의 열조 때로부터 오늘까지 우리 죄가 심하매 우리의 죄악으로 인하여 우리와 우리 왕들과 우리 제사장들을 열방 왕들의 손에 붙이사 칼에 죽으며 사로잡히며 노략을 당하며 얼굴을 부끄럽게 하심이 오늘날 같으니이다 / 이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잠간 은혜를 베푸사 얼마를 남겨두어 피하게 하신 우리를 그 거룩한 처소에 박힌 못과 같게 하시고 우리 눈을 밝히사 우리로 종노릇 하는 중에서 조금 소성하게 하셨나이다 / 우리가 비록 노예가 되었사오나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그 복역하는 중에 버리지 아니하시고 바사 열왕 앞에서 우리로 긍휼히 여김을 입고 소성하여 우리 하나님의 전을 세우게 하시며 그 퇴락한 것을 수리하게 하시며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우리에게 울을 주셨나이다 / 우리 하나님이여 이렇게 하신 후에도 우리가 주의 계명을 배반하였사오니 이제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히브리서6장4-6절을 보시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무슨 말씀입니까? 내게 있는 죄의 모습이 발견될 때마다 또 다시 주님을 십자가 앞으로 끌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거기서 주님을 또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고난주간이 되면, 예수님을 팔아먹은 가룟유다를 미워하고 예수님을 직접 십자가에 못박은 로마병정들을 원망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까? 가룟유다입니까? 로마병정들입니까? 본디오 빌라도입니까? 아니요, 바로 저와 여러분들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그것을 아는 자가 어떻게 죄의 문제를 쉽게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내 안에 있는 죄를 바라보면서 탄식하지 않을 수 있단 말입니까? 어떻게 다시 죄에게로 돌아가 죄의 종노릇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우리 안에 죄로 인한 에스라와 같은 탄식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에스라가 오늘 이처럼 탄식하는 이스라엘의 죄의 문제는 바로 그들이 이방 족속들과 함께 통혼하는 문제였습니다. 그 땅의 백성들과 하나가 되는 문제였었습니다. 그것이 어째서 그토록 잘못된 것입니까? 믿지 않는 이웃과 사이좋게 평화롭게 지내는 것이 어째서 나쁘단 말입니까?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그것은 평화가 아니라, 함께 망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노아시대의 심판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세상에 죄가 관영했기 때문입니까? 맞습니다. 죄가 가득 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죄의 가득참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는 것으로 완성됩니다. 다시 말하면 믿음의 사람들이 믿지 않는 사람들과 하나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으로 죄는 세상에 가득 채워지게 되었고 하나님은 세상을 심판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함께 육체가 되는 것, 세상과 함께 하나가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심판의 원인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세상을 떠나가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세상 가운데서 살아가야 합니다. 믿지 않는 자들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들이 파는 물건을 사기도 하고 그들에게 내 물건을 팔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과 하나가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처럼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구별된 자들입니다.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귀고리를 하고 성경을 옆에 끼고 다니고, 대문에 교패를 붙이고, 자동차 뒤에는 물고기 형상을 붙이고, 입만 열면 ‘주여!’ 소리가 나옴으로 구별되는 것이 아니고, 세상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전혀 다른 삶의 양식을 가지고 살아감으로 구별되는 자들인 것입니다.
사람은 그 속에 있는 것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의 말이나, 행동은 다 그 속에 있는 그의 생각이나, 가치관이나, 그의 됨됨이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 안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구별되기 위해서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구별되는 것입니다. 죄를 짓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하고 결심해서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지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새로운 피조물인 것입니다. 죄를 좋아하던 이전의 나는 지나갔고, 이제 하나님의 뜻을 좋아하는 새것이 온 것입니다. (고후5:17)
성도는 이 땅에 뿌려진 거룩한 씨앗들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에 두신 희망입니다. 그 씨가 썩어 버리면 안되는 것입니다. 씨가 열매 맺기 위해서는 썩는 것이 아니고 희생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죽임으로 싹을 틔우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세상 속에서 함께 썩어가면 안되는 것입니다. 썩는 것이 아니고 죽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의 부흥에 마지막 걸림돌은 바로 그들 자신의 죄의 문제였습니다. 그 죄가 그들의 발목을 잡고 있었습니다. 대적들의 숱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결국 하나님의 전인 건물은 완성하고야 말았지만, 정작 자신들의 죄의 문제로 인하여 저들은 참 하나님 나라를 회복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죄가 우리의 최대의 적입니다. 죄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의 그 풍성하신 은혜를 내 것으로 누리지 못합니다. 죄로 인해 우리는 우리 안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을 방해합니다. 죄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지 못합니다. 죄로 인하여 우리의 기도가 막히며,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됩니다. 죄에 대하여 단호하시기 바랍니다. 내 안에 있는 죄를 용납하지 마십시오. 그 죄로 인하여 탄식하시기 바랍니다. 그 죄를 가지고 하나님께로 나아가서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절대로 죄에 대하여 무디어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늘 민감하게 반응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다 함께 로마서 6장 말씀을 읽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10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12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14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18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20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 자유하였느니라 21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니라 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