昭公 3年(紀元前 539年)
三年春王正月, 鄭游吉如晉, 送少姜之葬. 梁丙與張趯見之, 梁丙曰 : 「甚矣哉! 子之爲此來也.」
삼년춘왕정월, 정유길여진, 송소강지장. 양병여장적견지, 양병왈 : 「심의재! 자지위차래야.」
[解釋] 소공 3년 봄 정월에, 鄭나라 游吉이 晉나라로 가서, 少姜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이때 진나라 대부 梁丙과 張趯이 유길을 만나자, 梁丙이 말하기를, 「좀 과분합니다. 당신이 이런 첩의 장례식에까지 오시다니.」라고 하자,
子大叔曰 : 「將得已乎? 昔文襄之覇也, 其務不煩諸侯, 今諸侯三歲而聘, 五歲而朝, 有事而會, 不協而盟, 君薨, 大夫弔, 卿共葬事, 夫人, 士弔, 大夫送葬.
자태숙왈 : 「장득이호? 석문양지패야, 기무불번제후, 금제후삼세이빙, 오세이조, 유사이회, 불협이맹, 군훙, 대부조, 경공장사, 부인, 사조, 대부송장.
[解釋] 子大叔은 이렇게 대답했다. 「할 수 있습니까? 옛날 문공과 양공이 패자가 되었을 때에는, 그들이 힘쓴 것이 제후들을 번거롭게 아니하고, 제후들로 하여금 3년 만에 방문하게 하고, 5년 만에 조회하며, 일이 있어야 모이고, 협화가 안 되면 동맹을 맺고, 임금이 죽으면, 大夫가 조상을 오고, 卿이 장례에 참여하고, 夫人이 죽으면, 士가 조상을 오고, 大夫가 장례에 관여했습니다.
足以昭禮命事謀闕而已, 無加命矣. 今嬖寵之喪, 不敢擇位, 而數於守適. 唯懼獲戾, 豈敢憚煩? 少姜有寵而死, 齊必繼室. 今玆吾又將來賀, 不唯此行也.」
족이소례명사모궐이이, 무가명의. 금폐총지상, 불감택위, 이수어수적. 유구획려, 기감탄번? 소강유총이사, 제필계실. 금자오우장래하, 불유차행야.」
[解釋] 이렇게 함으로써 예의를 밝히고 일을 명령하며 부족함을 상의했을 뿐이요, 다른 명령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사랑을 받던 첩의 장례인 데도, 조상하는 자의 지위를 가리지 않고, 예물의 수량도 본부인의 경우와 비슷합니다. 다만 죄를 질까 두려워하니, 어찌 감히 번거로움을 꺼릴 수가 있겠습니까? 소강이 사랑을 받다가 죽으니, 제나라에서는 반드시 계실을 둘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 내 또다시 와서 축하를 드려야 할 것이니, 이번뿐만 아닐 것이오.」라고 했다.
張趯曰 : 「善哉! 吾得聞此數也. 然自今吾子其無事矣. 譬如火焉, 火中寒暑乃退, 此其極也. 能無退乎? 晉將失諸侯, 諸侯求煩不獲.」 二大夫退, 子大叔告人曰 : 「張趯有知, 其猶在君子之後乎?」
장적왈 : 「선재! 오득문차수야. 연자금오자기무사의. 비여화언, 화중한서내퇴, 차기극야. 능무퇴호? 진장실제후, 제후구번불획.」 이대부퇴, 자태숙고인왈 : 「장적유지, 기유재군자지후호?」
[解釋] 이에 張趯이 말하기를, 「좋은 말씀이오! 내 이 몇 가지를 명심해 들었소. 그러나 지금부터는 당신에게 일이 없을 것이오, 비유컨대 화와 같아, 호가 계하의 저녁이 되면 더위가 물러가고 계동의 아침이 되면 추위가 물러가니, 이는 극에 다다른 것이라. 안 물려갈 수가 있겠소. 진나라가 바야흐로 제우들을 잃고 있으니, 제후들이 번거로움을 요구해도 얻을 수가 없을 것이오.」라고 했다. 양병과 장적 두 대부가 물러가자, 子大叔은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張趯은 지혜가 있는데, 도리어 군자의 뒷자리에 있어야 하는가?」라고 했다.
丁未滕子原卒, 同盟, 故書名. 齊侯使晏嬰請繼室於晉曰 : 「寡君使嬰曰, '寡人願事君朝夕不倦, 將奉質幣以無失時, 則國家多難, 是以不獲. 不腆先君之適以備內官, 焜燿寡人之望, 則又無祿, 早世隕命, 寡人失望.
정미등자원졸, 동맹, 고서명. 제후사안영청계실어진왈 : 「과군사영왈, '과인원사군조석불권, 장봉질폐이무실시, 즉국가다난, 시이불획. 부전선군지적이비내관, 혼요과인지망, 즉우무록, 조세운명, 과인실망.
[解釋] 丁未日에 등나라 임금 원이 죽었는데, 同盟을 맺었기 때문에, 그 이름을 기록한 것이다. 제나라 임금이 안영으로 하여금 진나라에 후실을 요청하게 하므로 안영이 말하기를, 「우리나라 임금님께서 저로 하여금 말씀을 전하시기를, '과인이 군왕을 섬기기를 원하여 조석으로 게으르지 아니하고, 예물을 바치되 제 때를 잃지 않게 하였지만, 國家가 多難하여, 뜻대로 되지가 않습니다. 우리 선군의 충실치 못한 적녀를 군왕의 내관으로 들여보내, 과인의 희망을 빛내고자 하였으나, 또한 복이 없어, 일찍 죽음으로써, 과인의 기대를 실망하게 했습니다.
君若不忘先君之好, 惠顧齊國, 辱收寡人, 徼福於大公丁公, 照臨敝邑, 鎭撫其社稷, 則猶有先君之適及遺姑姊妹, 若而人君若不棄敝邑, 而辱使董振擇之, 以備嬪嬙, 寡人之望也.'」
군약불망선군지호, 혜고제국, 욕수과인, 요복어대공정공, 조림폐읍, 진무기사직, 즉유유선군지적급유고자매, 약이인군약불기폐읍, 이욕사동진택지, 이비빈장, 과인지망야.'」
[解釋] 그러나 군왕께서 만약 선군의 호의를 잊으시지 않으시고, 우리 제나라를 돌보시어, 과인을 도우시고, 徼福을 우리 大公 丁公에게 구하여, 우리나라를 돌보시어, 社稷을 鎭撫해 주신다면, 오히려 아직도 선군의 적부인의 딸과 선군의 고모나 자매들이 남아 있는 터에, 군왕께서 만약 우리나라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사신을 보내어 간택하시어, 여관에 채우시는 것이, 과인의 희망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고 했다.
韓宣子使叔向對曰 : 「寡君之願也. 寡君不能獨任其社稷之事, 未有伉儷, 在縗絰之中, 是以未敢請. 君有辱命, 惠莫大焉. 若惠顧敝邑, 撫有晉國, 賜之內主, 豈唯寡君? 擧羣臣實受其貺, 其自唐叔以下實寵嘉之.」
한선자사숙향대왈 : 「과군지원야. 과군불능독임기사직지사, 미유항려, 재최질지중, 시이미감청. 군유욕명, 혜막대언. 약혜고폐읍, 무유진국, 사지내주, 기유과군? 거군신실수기황, 기자당숙이하실총가지.」
[解釋] 이에 韓宣子가 叔向으로 하여금 대답하게 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 임금님의 소원입니다. 우리 임금님께서 홀로 나라의 일을 맡을 수가 없고, 또한 배필이 없이, 거상 중에 있으므로, 감히 요청하지 못했던 바입니다. 그런데 귀국의 임금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니, 그 은혜가 막대합니다. 만약 귀국에서 우리나라를 돌보시어, 우리 진나라를 사랑하여, 안주인까지 하사하신다면, 이는 어찌 우리 임금님만의 기쁨이겠습니까? 우리 모든 신하들도 모두 그 영광을 받아들이며, 唐叔 以下 여러 조상의 영혼도 진실로 영광으로 생각할 것입니다.」고 했다.
旣成昏, 晏子受禮. 叔向從之宴, 相與語, 叔向曰 : 「齊其何如?」 晏子曰 : 「此季世也. 吾弗知齊其爲陳氏矣. 公棄其民, 而歸於陳氏. 齊舊四量. 豆區釜鍾, 四升爲豆, 各自其四以登於釜, 釜十則鍾.
기성혼, 안자수례. 숙향종지연, 상여어, 숙향왈 : 「제기하여?」 안자왈 : 「차계세야. 오불지제기위진씨의. 공기기민, 이귀어진씨. 제구사량. 두구부종, 사승위두, 각자기사이등어부, 부십즉종.
[解釋] 그리하여 이윽고 약혼이 성립되어, 晏子가 빈양의 예를 받았다. 叔向도 이 잔치에 참석하여, 서로 여러 가지를 이야기하다가, 叔向이 묻기를, 「제나라는 어떻습니까?」라고 하자, 晏子는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 말세입니다. 내 다른 것은 알지 못하지만 제나라는 앞으로 진시의 것이 될 것입니다. 조정에서 백성들을 내 버려, 모두 진씨네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제나라에는 예부터 네 가지 되가 있습니다. 豆, 區, 釜, 鍾이 그것으로, 4되[升]를 豆라 하고, 각자 4豆를 區라 하며 4區를 釜라 하고, 10釜를 鍾이라고 합니다.
陳氏三量皆登一焉. 鍾乃大矣. 以家量貸, 而以公量收之. 山木如市弗加於山. 魚鹽蜃蛤弗加於海. 民參其力二入於公, 而衣食其一.
진씨삼량개등일언. 종내대의. 이가량대, 이이공량수지. 산목여시불가어산. 어염신합불가어해. 민삼기력이입어공, 이의식기일.
[解釋] 그러나 陳氏에게는 세 가지 되가 있는데 곧 豆, 區, 釜,가 있어 왕실의 것보다 한 되씩이 더 큽니다. 곧 5되를 두, 5두를 구, 5구를 부라 합니다. 그래서 종은 훨씬 큽니다. 그래서 진씨들은 백성들에 곡식을 꾸어 줄 때, 진씨의 되로 꾸어 주고 나라의 되로 받아들입니다. 또 산의 나무를 시장에 내어다가 팔 때에도 산에서의 나무 값으로 팝니다. 그리고 물고기[魚],`소금[鹽],`조개[蜃蛤] 등도 바닷가의 시체에다 더 붙이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제나라 조정에서는 백성들의 수입을 3등분하여 3분의 2는 국가에 바치고, 3분의 1만을 의식에 쓰게 합니다.
公聚朽蠹, 而三老凍餒, 國之諸市, 屨賤踊貴. 民人痛疾, 而或燠休之, 其愛之如父母, 而歸之如流水, 欲無獲民, 將焉辟之? 箕伯直柄虞遂伯戲, 其相胡公大姬已在齊矣.」
공취후두, 이삼로동뇌, 국지제시, 구천용귀. 민인통질, 이혹욱휴지, 기애지여부모, 이귀지여류수, 욕무획민, 장언피지? 기백직병우수백희, 기상호공태희이재제의.」
[解釋] 나라에서 거두어들인 곡식에서는 벌레가 생기는데도, 늙은이들은 추워 굶주리며, 나라 안의 모든 시장 안에서는, 신발이 싼데 의족은 비쌉니다. 그리하여 백성들이 괴로워하는데, 이런 때에 백성들을 따뜻하게 돌보면, 백성들은 그를 부모와 같이 사랑하고, 흐르는 물이 모이듯이 그런 사람에게로 귀의하여, 민심을 얻고자 아니해도, 어찌 피할 수가 있겠습니까? 箕伯, 直柄, 虞遂, 伯戲 등이 胡公과 그의 妃 大姬를 도와 모두 제나라에 있으니 진씨들이 제나라를 차지할 것입니다.」고 하였다.
叔向曰 : 「然. 雖吾公室, 今亦季世也. 戎馬不駕, 卿無軍行, 公乘無人, 卒列無長. 庶民罷敝, 而宮室滋侈, 道殣相望, 而女富溢尤.
숙향왈 : 「연. 수오공실, 금역계세야. 융마불가, 경무군행, 공승무인, 졸렬무장. 서민파폐, 이궁실자치, 도근상망, 이녀부일우.
[解釋] 이 말을 듣고 숙향은 이렇게 말했다. 「그렇습니까? 우리 진나라 백성도, 지금은 말세입니다. 전쟁에 쓰이는 말은 수레에 매어이지 않고, 경은 군대의 행렬을 준비함이 없으며, 임금의 수레에는 보호하는 사람이 없고, 사병들의 행렬에는 장이 없습니다. 따라서 일반 백성들은 피폐하고, 궁실은 지나치게 사치스러우며, 길에는 아사자가 즐비하고, 사랑을 받는 여인의 집은 부가 넘쳐흐릅니다.
民聞公命, 如逃寇讎, 欒郤胥原狐續慶伯, 降在皂隸. 政在家門, 民無所依, 君日不悛, 以樂慆憂, 公室之卑, 其何日之有? 讒鼎之銘曰, '昧旦丕顯, 後世猶怠.' 況日不悛, 其能久乎?」
민문공명, 여도구수, 난극서원호속경백, 강재조예. 정재가문, 민무소의, 군일부전, 이락도우, 공실지비, 기하일지유? 참정지명왈, '매단비현, 후세유태.' 황일부전, 기능구호?」
[解釋] 임금의 명령을 들으면, 마치 원수를 만나 도망가듯이 하고, 欒, 郤, 胥, 原, 狐, 續, 慶, 伯의 명문은, 몰락하여 종이 되었습니다. 정치는 대부의 집안에서 하여, 백성들은 의지할 데가 없으며, 임금은 날마다 뉘우침이 없이, 즐김으로서 근심을 잊으니, 왕실의 몰락이, 며칠이나 가겠습니까? 讒鼎의 명에 이르기를, '이른 아침부터 크게 빛내고자 하나, 후세에는 도리어 게으르도다.'고 하였는데, 하물며 날마다 뉘우치지도 않으니, 얼마나 오래 가겠습니까?」라고 하였다.
晏子曰 : 「子將若何?」 叔向曰 : 「晉之公族盡矣. 肹聞之, 公室將卑, 其宗族枝葉先落, 則公室從之. 肹之宗十一族, 唯羊舌氏在而已. 肹又無子, 公室無度, 幸而得死, 豈其獲祀?」
안자왈 : 「자장약하?」 숙향왈 : 「진지공족진의. 힐문지, 공실장비, 기종족지엽선락, 즉공실종지. 힐지종십일족, 유양설씨재이이. 힐우무자, 공실무도, 행이득사, 기기획사?」
[解釋] 이 말을 듣고 안자는 말하기를, 「그러면 당신은 어떻게 하실 작정이오?」라고 하니, 叔向은 대답하기를, 「진나라 왕족은 망할 것입니다. 제가 듣건대, 왕실이 장차 몰락하려면, 그 종족의 지엽이 먼저 몰락한 뒤, 왕도 그 뒤를 따른다고 했습니다. 저의 종족도 열 한 집안이었으나, 지금은 우리 羊舌氏 만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저도 또한 자식이 없고, 왕실도 법도가 없어 믿을 수가 없으니, 다행히 천수나 누리고 죽으면 그만이요, 어찌 제사를 얻어먹고자 하겠습니까?」라고 했다.
初景公欲更晏子之宅曰 : 「子之宅近市, 湫隘囂塵. 不可以居, 請更諸爽塏者.」 辭曰 : 「君之先臣容焉. 臣不足以嗣之. 於臣侈矣. 且小人近市, 朝夕得所求. 小人之利也, 敢煩里旅?」
초경공욕경안자지댁왈 : 「자지댁근시, 추애효진. 불가이거, 청경저상개자.」 사왈 : 「군지선신용언. 신부족이사지. 어신치의. 차소인근시, 조석득소구. 소인지리야, 감번리려?」
[解釋] 처음에 제나라 景公은 안자의 집을 바꾸게 하고자 말하기를, 「그대의 집은 시장에 가까우며, 터가 낮고 좁아 시끄럽고 더럽소. 그래서 살 수가 없을 것이니, 높고 마른 땅에 다시 짓게.」라고 했다. 그러나 한자는 사양하면서 말하기를, 「임금의 먼저 신하 곧 저희 선친께서 사시던 집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분의 뒤를 잇기에는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런 만큼 이 집만 해도 저에게는 과합니다. 그리고 저는 시장에 가까이 살고 있어, 조석으로 물건을 살 수가 있습니다. 이것만도 저의 이로움인데, 감히 동네 사람들로 하여금 저의 집을 짓는 수고를 끼치게 할 수야 있겠습니까?」라고 했다.
公笑曰 : 「子近市, 識貴賤乎?」 對曰 : 「旣利之, 敢不識乎?」 公曰 : 「何貴, 何賤?」 於是景公繁於刑, 有鬻踊者, 故對曰 : 「踊貴, 屨賤.」 旣已告於君, 故與叔向語而稱之, 景公爲是省於刑.
공소왈 : 「자근시, 식귀천호?」 대왈 : 「기리지, 감불식호?」 공왈 : 「하귀, 하천?」 어시경공번어형, 유육용자, 고대왈 : 「용귀, 구천.」 기이고어군, 고여숙향어이칭지, 경공위시성어형.
[解釋] 경공은 웃으면서 말하기를, 「그대가 시장 가까이 사니, 물건 값이 비싸고 싼 것을 알겠는가?」라고 하자, 대답하기를, 「이미 이로운 줄을 아니, 물건 값인들 모르겠습니까?」라고 대답했다. 경공은 다시 묻기를, 「어느 것이 비싸고, 어느 것이 것이 싼가?」라고 하자, 그때 경공이 형벌을 자주 집행하여, 의족을 파는 것도 있었으므로, 안자는 대답하기를, 「의족은 비싸고, 신발은 쌉니다.」고 했다. 그러나 이미 이런 사실을 경공에게 말한 적이 있으므로, 叔向과 더불어 말할 때 다시 말하자, 景公은 이때부터 처형을 완화했다.
君子曰 : 「仁人之言, 其利博哉. 晏子一言, 而齊侯省刑. ≪詩≫曰, '君子如祉, 亂庶遄已.' 其是之謂乎.」 及晏子如晉, 公更其宅, 反則成矣.
군자왈 : 「인인지언, 기리박재. 안자일언, 이제후생형. ≪시≫왈, '군자여지, 난서천이.' 기시지위호.」 급안자여진, 공갱기택, 반즉성의.
[解釋] 그러기에 군자가 말하기를, 「어진 사람의 말은, 그 이로움이 넓도다. 晏子의 한마디 말에, 제나라 경공이 처형을 환화했다. ≪詩經≫에 말하기를, '군자가 만약 복을 행하면, 어지러움이 곧 없어진다.'라고 한 것이, 이것을 두고 하는 말이로다.」고 한다. 안자가 진나라로 가자, 경공은 그의 집을 다시 짓기 시작하여, 그가 돌아오자 다 완성했다.
旣拜乃毁之, 而爲里室, 皆如其舊則使宅人反之曰. 諺曰 : 「非宅是卜, 唯鄰是卜. 二三子先卜鄰矣, 違卜不祥, 君子不犯非禮, 小人不犯不祥, 古之制也. 吾敢違諸乎?」 卒復其舊宅. 公弗許, 因陳桓子以請, 乃許之.
기배내훼지, 이위리실, 개여기구즉사댁인반지왈. 언왈 : 「비댁시복, 유린시복. 이삼자선복린의, 위복불상, 군자불범비례, 소인불범불상, 고지제야. 오감위저호?」 졸복기구댁. 공불허, 인진환자이청, 내허지.
[解釋] 안자는 이 집을 받자마자 곧 허물어, 동네 다른 집과 마찬가지로 작은 집으로 만들어, 전과같이 옛 식구들을 불러들였다. 그러고서 속담을 인용하여 말하기를, 「집을 점치지 아니하고, 이웃을 점치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이에 이웃을 점쳤으니, 점을 어기면 상서롭지 못하오. 君子는 비례를 범하지 않고, 小人은 불상을 범하지 않는 것이, 옛 제도입니다. 그런 만큼 제가 감히 이것을 어길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고서, 그의 옛 집으로 돌아갔다. 경공이 허락하지 않았으나, 陳桓子의 요청에 의하여, 경공은 이를 허락했다.
夏四月, 鄭伯如晉. 公孫段相, 甚敬而卑, 禮無違者. 晉侯嘉焉, 授之以策曰 : 「子豐有勞於晉國, 余聞而弗忘, 賜女州田, 以胙乃舊勳.」 伯石再拜稽首, 受策以出.
하사월, 정백여진. 공손단상, 심경이비, 예무위자. 진후가언, 수지이책왈 : 「자풍유로어진국, 여문이불망, 사녀주전, 이조내구훈.」 백석재배계수, 수책이출.
[解釋] 여름 4월에, 정나라 임금이 진나라로 갔다. 그때 公孫段이 따라갔는데, 매우 공경스럽고 겸손하여, 예의에 어긋남이 없었다. 그래서 진나라 임금은 그를 칭찬하고, 문서를 주면서 말하기를, 「그대의 부친 子豐이 우리 진나라에 공로가 있는데, 나는 그것을 듣고서 잊지 못하여, 그대에게 주의 땅을 주어, 그대 집안의 옛 공로를 잊지 않으려 하네.」라고 하자, 伯石은 두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문서를 받아 가지고 나왔다.
君子曰 : 「禮其人之急也乎. 伯石之汏也, 一爲禮於晉, 猶荷其祿, 況以禮終始乎? ≪詩≫曰, '人而無禮, 胡不遄死?' 其是之謂乎.」
군자왈 : 「예기인지급야호. 백석지대야, 일위례어진, 유하기록, 황이례종시호? ≪시≫왈, '인이무례, 호불천사?' 기시지위호.」
[解釋] 이에 군자가 말하기를, 「예의는 사람의 매우 긴요한 것이다. 伯石은 원래 교만한데도, 한 번 진나라에 가서 예의 바른 행동을 하자, 오히려 녹을 받았으니, 하물며 시종일관 예의에 바른 사람이라 말해 무엇 하겠는가? ≪詩經≫에서도 말하기를, '사람으로서 예의가 없으면, 어찌 죽은 것과 같지 않는가?'라고 했는데,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고 했다.
初州縣, 欒豹之邑也, 及欒氏亡, 范宣子, 趙文子, 韓宣子皆欲之. 文子曰 : 「溫吾縣也.」 二宣子曰 : 「自郤稱以別, 三傳矣, 晉之別縣不唯州? 誰獲治之?」
초주현, 난표지읍야, 급란씨망, 범선자, 조문자, 한선자개욕지. 문자왈 : 「온오현야.」 이선자왈 : 「자극칭이별, 삼전의, 진지별현불유주? 수획치지?」
[解釋] 처음에 州란 땅은, 欒豹의 읍이었는데, 欒氏가 죽자, 范宣子, 趙文子, 韓宣子가 그곳을 바라고 있었다. 文子는 말하기를, 「주라는 땅은 나의 영지인 溫에 속해 있는 고을이다.」고 했다. 이에 범선자와 한선자는 말하기를, 「郤稱이 이주라는 땅을 얻은 위로 溫으로부터 갈라져 나가, 세 집으로 전해졌으니, 진나라로부터 떨어져 나간 고을이 주라는 땅이란 말입니까? 그러니 누가 그곳을 통치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文子病之, 乃舍之. 二宣子曰 : 「吾不可以正議而自與也.」 皆舍之. 及文子爲政, 趙獲曰 : 「可以取州矣.」 文子曰 : 「退. 二子之言, 義也. 違義, 禍也. 余不能治余縣, 又焉用州? 其以徼禍也.」
문자병지, 내사지. 이선자왈 : 「오불가이정의이자여야.」 개사지. 급문자위정, 조획왈 : 「가이취주의.」 문자왈 : 「퇴. 이자지언, 의야. 위의, 화야. 여불능치여현, 우언용주? 기이요화야.」
[解釋] 그리하여 조문자는 이를 걱정하고, 곧 그 땅을 내 버렸다. 그러자 범선자와 한선자도 말하기를, 「우리가 정당한 의론을 내세웠다고 스스로 차지할 수는 없다.」고 하고, 곧 내버려 두었다. 조문자가 정권을 잡자, 그의 아들 趙獲이 말하기를, 「州라는 땅을 차지하십시오.」라고 하였으나, 조문자는 말하기를, 「물러가 있어라. 두 분의 말이, 옳다. 옳은 것을 어기면, 화를 만난다. 우리는 우리 고을도 다 다스리지 못하면서, 어찌 주 땅까지 차지하겠느냐? 그것은 화를 초래하는 요인이 된다.」
君子曰 : 「弗知實難, 知而弗從, 禍莫大焉. 有言州必死.」 豐氏故主韓氏. 伯石之獲州也, 韓宣子爲之請之, 爲其復取之之故.
군자왈 : 「불지실난, 지이불종, 화막대언. 유언주필사.」 풍씨고주한씨. 백석지획주야, 한선자위지청지, 위기부취지지고.
[解釋] 君子는 말하기를, 「알지 못하면 실로 어려우나, 알고서 따르지 않으면, 이보다 더 큰 화가 없다. 다시 州땅에 대하여 말하는 자가 있으면 죽음을 당하리라.」고 하였다. 豐氏는 항상 韓氏네를 주인으로 삼고 있었다. 伯石이 州땅을 얻은 것은, 韓宣子가 그를 위해 요청해서 얻은 것으로, 백석이 그 당을 반환하면 한선자가 그 땅을 다시 차지하고자 해서였다.
五月, 叔弓如滕, 葬滕成公. 子服椒爲介. 及郊, 遇懿伯之忌. 敬子不入, 惠伯曰 : 「公事有公利, 無私忌. 椒請先入.」 乃先受館, 敬子從之.
오월, 숙궁여등, 장등성공. 자복초위개. 급교, 우의백지기. 경자불입, 혜백왈 : 「공사유공리, 무사기. 초청선입.」 내선수관, 경자종지.
[解釋] 5월에, 叔弓이 등나라로 가서, 滕나라 成公을 장례 지냈다. 이때 子服椒가 부사가 되었다. 그들은 등나라 교외에 이르자, 懿伯의 기일을 당하였다. 그래서 경자가 도성 안으로 들어가고자 하지 않으니, 惠伯이 말하기를, 「공적인 일에는 공적인 이익이 있으니, 개인의 기일 같은 것은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먼저 들어가겠습니다.」고 하고서, 먼저 들어가 관소를 찾음으로, 敬子도 따라 들어갔다.
晉韓起如齊逆女. 公孫蠆爲少姜之有寵也, 以其子更公女, 而嫁公子. 人謂宣子, 「子尾欺晉, 晉胡受之?」 宣子曰 : 「我欲得齊, 而遠其寵, 寵將來乎?」
진한기여제역녀. 공손채위소강지유총야, 이기자경공녀, 이가공자. 인위선자, 「자미기진, 진호수지?」 선자왈 : 「아욕득제, 이원기총, 총장래호?」
[解釋] 晉나라 韓起가 제나라로 공녀를 맞이하러 갔다. 公孫蠆는 少姜이 제나라 경공의 총애를 받았으므로, 자기 딸을 경공의 딸 대신 공녀로 삼아, 진나라로 보내려했다. 사람들이 한선자에게 말하기를, 「자미가 진나라를 속이니, 우리 진나라가 어찌 그녀를 받아들이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이에 한선자는 대답하기를, 「우리가 제나라를 얻고자 하는 터에, 제나라총신 자미를 멀리하면, 그 총신이 우리에게 다가오겠는가?」라고 했다.
秋七月, 鄭罕虎如晉, 賀夫人, 且告曰 : 「楚人日徵敝邑, 以不朝立王之故.」 敝邑之往, 則畏執事其謂, 而固有外心其不往, 寡君則宋之盟云. 進退罪也. 寡君使虎布之.」
추칠월, 정한호여진, 하부인, 차고왈 : 「초인일징폐읍, 이불조립왕지고. 폐읍지왕, 즉외집사기위, 이고유외심기불왕, 과군즉송지맹운. 진퇴죄야. 과군사호포지.」
[解釋] 가을 7월에, 鄭나라 罕虎가 진나라로 가서, 부인을 맞이해 들인 데 대하여 축하를 드리고, 또 고하기를, 「楚나라 사람이 날마다 우리나라에 대하여, 새로이 즉위한 초나라 영왕에게 조회하러 오지 않는다고 꾸짖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나라에 간다면, 귀국의 담당 관리가 우리나라 임금님이, 두 마음을 품는다고 말할까 두렵고 아니 가자니, 송나라와 맺은 동맹에 위배됩니다. 그러니 나아가도 물러가도 죄를 짓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임금님께서는 저에게 이런 사실을 진술하라고 하셨습니다.」고 했다.
宣子使叔向對曰 : 「君若辱有寡君, 在楚何害? 脩宋盟也. 君苟思盟, 寡君乃知免於戾矣. 君若不有寡君, 雖朝夕辱於敝邑, 寡君猜焉. 君實有心, 何辱命焉? 君其往也. 苟有寡君, 在楚猶在晉也.」
선자사숙향대왈 : 「군약욕유과군, 재초하해? 수송맹야. 군구사맹, 과군내지면어려의. 군약불유과군, 수조석욕어폐읍, 과군시언. 군실유심, 하욕명언? 군기왕야. 구유과군, 재초유재진야.」
[解釋] 이에 한선자는 숙향으로 하여금 대답하게 하기를, 「당신네 임금이 만약 우리 임금님을 받들 생각이 있다면, 초나라에 간들 무슨 해로움이 있겠소이까? 송나라에서 맺은 동맹을 수호하시오. 당신네 임금이 진실로 동맹을 생각한다면, 우리 임금께서는 곧 죄를 면해 주게 됩니다. 그러나 당신네 임금이 만약 우리 임금님께 복종할 생각이 없다면, 비록 조석으로 나라에 와서 문안을 드려도, 우리 임금님께서는 의심하실 것입니다. 당신네 임금에게 진실로 생각이 있다면, 어째서 꼭 와서 말할 필요가 있겠소. 임금님께서 가시도록 하시오. 진실로 우리 임금님을 생각하신다면, 한나라에 가 있어도 우리 진나라에 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집니다.」고 했다.
張趯使謂大叔曰 : 「自子之歸也, 小人糞除先人之敝廬曰, 子其將來, 今子皮實來, 小人失望.」 大叔曰 : 「吉賤. 不獲來. 畏大國, 尊夫人也. 且孟曰, '而將無事.' 吉庶幾焉.」
장적사위태숙왈 : 「자자지귀야, 소인분제선인지폐려왈, 자기장래, 금자피실래, 소인실망.」 태숙왈 : 「길천. 불획래. 외대국, 존부인야. 차맹왈, '이장무사.' 길서기언.」
[解釋] 張趯이 사람을 시켜 大叔에게 말을 전하기를, 「당신이 정나라로 돌아간 뒤, 저는 조상이 쓰시던 집을 청소해 놓고 마음속으로 오래지 않아, 당신이 오리라 했는데, 지금 子皮가 왔으므로, 나는 실망했습니다.」고 했다. 이에 유길[大叔]이 대답하기를, 「저는 천한 신분이라. 갈 수가 없습니다. 大國을 두려워하고, 부인을 존경할 뿐입니다. 맹형께서 말하기를, '그대는 앞으로 일이 없으니라.'고 하셨는데, 저도 그러기를 바라고 있을 뿐입니다.」고 했다.
小邾穆公來朝, 季武子欲卑之. 穆叔曰 : 「不可, 曹滕二邾實不忘我好. 敬以逆之, 猶懼其貳. 又卑一睦, 焉逆羣好也. 其如舊而加敬焉. 志曰, '能敬無災.' 又曰, '敬逆來者, 天所福也.'」 季孫從之.
소주목공래조, 계무자욕비지. 목숙왈 : 「불가, 조등이주실불망아호. 경이역지, 유구기이. 우비일목, 언역군호야. 기여구이가경언. 지왈, '능경무재.' 우왈, '경역래자, 천소복야.'」 계손종지.
[解釋] 小邾의 穆公이 노나라로 내조하니, 季武子가 이를 천대하려 했다. 이때 穆叔이 말하기를, 「그것은 안 되오. 曹나라 滕나라와 두 邾나라는 모두 우리와 우호를 잊지 않고 있는 나라들입니다. 그러니 공경하여 맞이해야 하고, 그래도 혹시 두 마음을 품을까 두렵소이다. 그러니 한 친한 나라를 천대했다가는, 모든 친한 나라들과도 사이가 나빠집니다. 그전대로 공경해야 합니다. 기록에도 이르기를, '공경하면 재앙이 없다.'고 했소. 또 이르기를, '오는 사람을 공경하여 맞으면, 하늘이 복을 내린다.'고 했소이다.」고 하니, 계무자도 이 의견을 따랐다.
八月, 大雩, 旱也. 齊侯田於莒, 盧蒲嫳見泣, 且請曰 : 「余髮如此種種. 余奚能爲?」 公曰 : 「諾. 吾告二子.」 歸而告之, 子尾欲復之, 子雅不可, 曰 : 「彼其髮短而心甚長, 其或寢處我矣.」
팔월, 대우, 한야. 제후전어거, 노포별견읍, 차청왈 : 「여발여차종종. 여해능위?」 공왈 : 「낙. 오고이자.」 귀이고지, 자미욕복지, 자아불가, 왈 : 「피기발단이심심장, 기혹침처아의.」
[解釋] 8월에, 기우제를 크게 지내니, 가물었기 때문이었다. 제나라 경공이 莒나라로 가서 사냥을 할 때, 盧蒲嫳이 와서 뵙고 울면서, 요청하기를, 「저는 이렇게 머리가 세고 늙었습니다. 저는 어찌했으면 좋겠습니까?」고 하였다. 그래서 경공은 대답하기를, 「좋다. 내 가서 자아와 자미에게 알리리라.」고 하였다. 경공이 귀국하여 이런 사실을 알리니, 子尾는 盧蒲嫳을 돌아오게 하고자하나, 子雅는 불가하다고 하여서, 그가 머리카락은 늙었으나 마음은 아직도 여유가 있으니, 혹 우리를 죽이려 들지 모르오.」라고 했다.
九月, 子雅放盧蒲嫳于北燕. 燕簡公多嬖寵, 欲去諸大夫而立其寵人. 冬燕大夫比以殺公之外嬖, 公懼奔齊. 書曰 : 「北燕伯款出奔齊.」 罪之也.
구월, 자아방노포별우북연. 연간공다폐총, 욕거제대부이립기총인. 동연대부비이살공지외폐, 공구분제. 서왈 : 「북연백관출분제.」 죄지야.
[解釋] 9월에, 그래서 子雅는 盧蒲嫳을 北燕으로 추방했다. 북연의 簡公은 총신이 많아, 대부들을 제거하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대신하려 했다. 그래서 겨울에 북연의 대부들이 함께 簡公이 사랑하는 충신들을 죽이자, 簡公은 두려워 제나라로 달아났다. 경문에 이르기를, 「北燕의 임금 관이 제나라로 달아났다.」고 한 것은, 簡公의 죄를 꾸짖은 것이다.
十月, 鄭伯如楚, 子産相. 楚子享之, 賦吉日. 旣享, 子産乃具田備, 王以田江南之夢. 齊公孫竈卒. 司馬竈見晏子曰 : 「又喪子雅矣.」 晏子曰 : 「惜也. 子旗不免, 殆哉! 姜族弱矣, 而嬀將始昌. 二惠競爽猶可, 又弱一个焉, 姜其危哉.」
십월, 정백여초, 자산상. 초자향지, 부길일. 기향, 자산내구전비, 왕이전강남지몽. 제공손조졸. 사마조견안자왈 : 「우상자아의.」 안자왈 : 「석야. 자기불면, 태재! 강족약의, 이규장시창. 이혜경상유가, 우약일개언, 강기위재.」
[解釋] 10월에, 임금이 초나라로 갈 때, 子産이 부사가 되었다. 초나라 임금이 그들을 대접할 때에, 吉日이란 시를 읊었다. 잔치가 끝나자, 子産이 곧 사냥할 도구를 갖추어 놓자, 초나라 임금은 정나라 임금과 함께 강남의 운몽에서 사냥을 했다. 齊나라 公孫竈가 죽었다. 제나라 대부 司馬竈가 晏子를 보고서 말하기를, 「또한 자아를 잃었군요.」라고 하니, 晏子는 말하기를, 「아깝도다. 자기도 면하지 못하리니, 위험하도다! 姜氏 족속이 약해지고, 嬀氏 족속이 번창하리라. 二惠가 서로 경쟁해 번창해야 좋을 것인데, 한쪽이 약해졌으니, 강씨는 위험하도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