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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三十回 秦晉大戰龍門山 穆姬登臺要大赦
제30회: 진(秦)나라와 진(晉)나라가 용문산에서 크게 싸우고, 목희(穆姬)가 대에 올라 이오의 목숨을 빌다.
話說,管仲於病中,囑桓公斥遠易牙、豎刁、開方三人,薦隰朋為政。左右有聞其言者,以告易牙。易牙見鮑叔牙謂曰:「仲父之相,叔所薦也。今仲病,君往問之,乃言叔不可以為政,而薦隰朋,吾意甚不平焉。」鮑叔牙笑曰:「是乃牙之所以薦仲也。仲忠於為國,不私其友。夫使牙為司寇,驅逐佞人,則有餘矣。若使當國為政,即爾等何所容身乎?」易牙大慚而退。踰一日,桓公復往視仲,仲已不能言。鮑叔牙隰朋莫不垂淚。是夜,仲卒。桓公哭之慟,曰:「哀哉,仲父!是天折吾臂也!」
한편, 관중이 병상에서 환공에게 역아(易牙), 수조(竪刁;竪貂), 개방(開方) 세 사람을 멀리하라고 당부하고, 습붕을 천거하여 정치를 맡기라고 했다. 그때 옆에서 그 대화를 들은 자가 역아에게 그 말을 전했다. 역아가 포숙아를 찾아가 말하기를, “중보가 재상이 된 것은 대감이 천거해서입니다. 지금 관중이 병이 나서 주군께서 가서 그의 후임을 묻자 대감에게 정사를 맡기면 안 된다고 하면서 습붕을 천거했습니다. 저는 아주 불공평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니, 포숙아가 웃으면서 말하기를, “그래서 내가 관중을 천거했소. 관중은 나라를 위해 충성할 뿐, 친구의 사사로운 정을 앞세우지 않소. 만일 나에게 사구(司寇 ; 형벌 담당)를 시켜서 아첨꾼을 쫓아내게 했으면 여유로웠을 것이오. 그러나 만약에 나에게 국정을 맡겼더라면 그대 같은 사람들이 어찌 발붙일 데가 있었겠소?” 했다. 역아가 얼굴을 크게 붉히고 물러갔다. 다음날 환공이 다시 가서 관중을 보니, 관중은 이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포숙아와 습붕이 흐르는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그날 밤에 관중이 죽었다. 환공이 통곡하며 말하기를, “슬프구나. 중보여! 하늘이 내 팔을 잘랐구나!” 했다.
使上卿高虎董其喪,殯葬從厚。生前采邑,悉與其子,令世為大夫。易牙謂大夫伯氏曰:「昔君奪子駢邑三百,以賞仲之功。今仲父已亡,子何不言於君,而取還其邑?吾當從旁助子。」伯氏泣曰:「吾惟無功,是以失邑。仲雖死,仲之功尚在也。吾何面目求邑於君乎?」易牙嘆曰:「仲死猶能使伯氏心服,吾儕真小人矣!」且說,桓公念管仲遺言,乃使公孫隰朋為政。未一月,隰朋病卒。桓公曰:「仲父其聖人乎?何以知朋之用於吾不久也?」於是使鮑叔牙代朋之位。牙固辭,桓公曰:「今舉朝無過於卿者,卿欲讓之何人?」牙對曰:「臣之好善惡惡,君所知也。君必用臣,請遠易牙、豎刁、開方,乃敢奉命。」
제환공은 상경 고호(高虎)로 하여금 관중의 장례를 주관하여 성대하게 치르게 했다. 관중이 생전에 받은 채읍은 모두 그의 아들에게 주고 대대로 대부로 삼았다. 역아가 대부 백씨(伯氏)에게 말하기를, “옛날 주군께서 병읍(騈邑)에 있던 그대의 식읍 300호를 빼앗아 공로를 세운 관중에게 상으로 주었습니다. 지금 관중이 이미 죽었는데 어찌하여 주군에게 고해 그 식읍을 돌려 달라고 하지 않습니까? 제가 마땅히 옆에서 돕겠습니다.” 하니, 백씨가 울면서 말하기를, “내가 나라에 세운 공이 없어 식읍을 잃었습니다. 중보가 비록 죽었다 하나 그가 세운 공은 아직 없어지지 않았는데 내가 무슨 면목으로 식읍을 돌려 달라고 주군께 청하겠습니까?” 했다. 역아가 한탄하면서 말하기를, “관중은 죽었지만, 오히려 백씨조차도 능히 마음속으로 복종하게 했으니 우리 같은 무리는 진실로 소인배로구나!” 했다. 한편, 제환공은 관중의 유언을 생각하여 공손 습붕에게 정사를 맡겼다. 그러나 한 달이 채 안 되어 습붕도 병이 들어 죽었다. 환공이 말하기를, “중보는 성인이었던가? 어떻게 습붕이 나에게 오래 쓰이지 못할 것을 알았을까?” 했다. 이에 제환공은 포숙아에게 습붕의 자리를 대신하게 했으나, 포숙아가 고사했다. 환공이 말하기를, “지금 조정을 통틀어 경보다 나은 사람이 없는데 경이 누구에게 양보하려는 것입니까?” 하니, 포숙아가 대답하기를, “신은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한다는 것을 주군께서도 아시는 바입니다. 주군께서 저를 꼭 쓰시겠다고 하신다면 역아, 수조(수초)와 개방을 멀리 내치십시오. 그러면 감히 주군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했다.
桓公曰:「仲父固言之矣,寡人敢不從子!」即日罷斥三人,不許入朝相見。鮑叔牙乃受事。時有淮夷侵犯杞國,杞人告急於齊。齊桓公合宋、魯、陳、衛、鄭、許、曹七國之君,親往救杞,遷其都於緣陵。諸侯尚從齊之令,以能用鮑叔,不改管仲之政故也。話分兩頭。卻說,晉自惠公即位,連歲麥禾不熟,至五年,復大荒。倉廩空虛,民間絕食,惠公欲乞糴於他邦。思想惟秦毗鄰地近,且婚姻之國,但先前負約未償,不便開言。郤芮進曰:「吾非負秦約也,特告緩其期耳。若乞糴而秦不與,秦先絕我,我乃負之有名矣。」惠公曰:「卿言是也。」乃使大夫慶鄭,持寶玉如秦告糴。
제환공이 말하기를, “중보가 당부한 말인데 내가 어찌 경의 말을 따르지 않겠습니까?” 하고, 당일로 세 사람을 파직하여 조정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포숙아가 이에 제나라 정사를 맡아보게 되었다. 그때 회이(淮夷 ; 회수 가에 살던 부족)가 기(杞)나라를 침범하니 기나라가 제나라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제환공이 송(宋)나라, 노(魯)나라, 진(陳)나라, 위(衛)나라, 정(鄭)나라, 허(許)나라, 조(曹)나라 등 일곱 나라의 군주와 회합하여 친히 가서 기(杞)나라를 구하고 그 도성을 연릉(緣陵)으로 옮겨주었다. 제후들이 변함없이 제환공의 명령을 따른 것은 포숙아를 능히 임용하고 관중이 지난날에 만들어 놓은 정령을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야기는 두 갈래로 나뉜다. 한편 진(晉)나라는 진혜공이 즉위한 이래 해마다 보리와 벼가 여물지 않는 일이 5년간 계속되다가 다시 큰 흉년이 들었다. 나라의 창고는 텅텅 비고 백성들은 양식이 떨어졌다. 진혜공이 다른 나라에 양식을 빌리려고 했다. 오직 진(秦)나라가 가까운 이웃이고 또한 혼인으로 맺어진 인척의 나라였다. 다만 전에 약속을 어기고 갚지 않아서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극예가 나아가 말하기를, “우리는 진(秦)과의 약속을 저버린 것이 아니라 단지 그 날짜를 늦추었을 뿐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양식을 빌려달라고 요청했는데 진(秦)나라가 주지 않고 먼저 우리와 관계를 끊는다면, 우리가 약속을 저버려도 명분이 있습니다.” 하니, 진혜공이 말하기를, “경의 말이 옳소!” 했다. 이에 대부 경정(慶鄭)을 사신으로 삼아 보물과 옥을 가지고 진(秦)나라에 가서 양식을 빌려주기를 청했다.
穆公集群臣計議:「晉許五城不與,今因饑乞糴,當與之否?」蹇叔百里奚同聲對曰:「天災流行,何國無之,救災恤鄰,理之常也。順理而行,天必福我。」穆公曰:「吾之施於晉已重矣。」公孫枝對曰:「若重施而獲報,何損於秦?其或不報,曲在彼矣。民憎其上,孰與我敵?君必與之。」丕豹思念之仇,攘臂言曰:「晉侯無道,天降之災。乘其饑而伐之,可以滅晉。此機不可失!」繇余曰:「『仁者不乘危以邀利,智者不僥倖以成功。』與之為當。」穆公曰:「負我者,晉君也。饑者,晉民也。吾不忍以君故,遷禍於民。」
진목공(秦穆公)은 여러 신하를 모아 의논하기를, “진(晉)나라가 황하 밖 다섯 성을 주기로 해 놓고 주지 않았소. 그런데 지금 기근을 이유로 양식을 빌려 달라고 하오. 양식을 보내야 하겠소? 말아야 하겠소?” 하니, 건숙과 백리해가 한 목소리로 대답하기를, “하늘이 내린 재앙은 유행하여 어느 나라인들 당하지 않는 나라가 없습니다. 이웃 나라의 재앙을 구하는 일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순리를 행하면 하늘이 반드시 우리에게 복을 줄 것입니다.” 했다. 진목공이 말하기를, “내가 진(晉)나라에 베푼 것이 이미 적지 않습니다.” 하니, 공손지도 대답하기를, “만약 다시 베푼다면 받아야 할 것이 더 많아집니다. 어찌 우리에게 손해라고 하겠습니까? 혹시 그들이 갚지 않는다면 허물은 그들에게 있게 됩니다. 백성들이 그들의 군주를 미워하는데 누가 우리와 싸움을 하려고 하겠습니까? 주군께서는 반드시 양식을 보내주어야 합니다.” 했다. 비표가 원수를 갚을 생각으로 팔을 걷어부치고 말하기를, “진(晉)나라 군주가 무도하여 하늘이 재앙을 내렸습니다. 그들이 굶주린 때를 틈타서 정벌한다면 진(晉)나라를 멸할 수 있습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하니, 요여가 말하기를, “어진 사람은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틈타 이익을 취하지 않고 지혜로운 사람은 요행을 바라고 공을 이루지 않습니다. 마땅히 양식을 보내주어야 합니다.” 했다. 진목공이 말하기를, “나에게 빚이 있는 자는 진(晉)나라 군주이고, 굶주린 자는 진(晉)나라 백성이다. 나는 차마 그 군주로 인해 그 백성들에게 재앙을 옮길 수는 없다.”고 했다.
於是運粟數萬斛於渭水,直達河、汾、雍、絳之間,舳艫相接,命曰:「泛舟之役」,以救晉之饑。晉人無不感悅。史官有詩稱穆公之善云:「晉君無道致天災,雍絳紛紛送粟來。誰肯將恩施怨者?穆公德量果奇哉!」明年冬,秦國年荒,晉反大熟。穆公謂蹇叔百里奚曰:「寡人今日乃思二卿之言也,豐凶互有。若寡人去冬遏晉之糴,今日歲饑,亦難乞於晉矣。」丕豹曰:「晉君貪而無信,雖乞之,必不與。」穆公不以為然。乃使冷至亦賷寶玉,如晉告糴。惠公將發河西之粟,以應秦命。
이에 곡식 수만 석을 위수(渭水)로 운반하여 곧바로 황하에 이르러, 분수(汾水)와 옹성, 강도 사이로 수많은 배들이 이었다. 사람들이 그 일을 “배를 띄운 일[泛舟之役]”이라고 명명하고 진(晉)나라의 기근을 구했다. 진(晉)나라 사람들은 감격하여 기뻐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사관이 시를 지어 진목공의 선행을 칭찬하기를, “진(晉)나라 군주가 무도하여 하늘이 재앙을 내렸는데, 옹성과 강도 사이에 양곡선이 분주하구나! 누가 원수에게 은혜 베풀기를 좋아하리오? 목공의 큰 도량은 과연 비범했구나.” 했다. 다음 해 겨울, 진(秦)나라에 흉년이 들고, 반대로 진(晉)나라는 대풍이 들었다. 진목공이 건숙과 백리해에게 말하기를, “과인은 오늘 두 분이 예전에 풍년과 흉년은 떠돌아다닌다고 한 말씀을 생각했습니다. 만약 과인이 지난 겨울에 진(晉)나라에 곡식을 빌려주지 않았다면, 금년에 우리나라의 기근을 해결하기 위해 진(晉)나라에 식량을 청하기는 어려웠을 것이오!” 했다. 비표가 말하기를, “진(晉)나라 군주가 탐욕스럽고 신의가 없으니, 우리가 식량을 청한다고 해도 틀림없이 주지 않을 것입니다.” 했다. 진목공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즉시 냉지에게 역시 보물과 옥을 가지고 사신으로 가서 진(晉)나라에 곡식을 청하게 했다. 진혜공이 황하 서쪽 땅의 곡식을 징발하여 진(秦)나라의 요청에 응하려고 했다.
郤芮進曰:「君與秦粟,亦將與秦地乎?」惠公曰:「寡人但與粟耳,豈與地哉?」芮曰:「君之與粟為何?」惠公曰:「亦報其『泛舟之役』也。」芮曰:「如以泛舟為秦德,則昔年納君,其德更大。君舍其大而報其小,何哉?」慶鄭曰:「臣去歲奉命乞糴於秦,秦君一諾無辭,其意甚美。今乃閉糴不與,秦怨我矣!」呂飴甥曰:「秦與晉粟,非好晉也,為求地也。不與粟而秦怨,與粟而不與地,秦亦怨,均之怨也,何為與之?」慶鄭曰:「幸人之災,不仁。背人之施,不義。不義不仁,何以守國?」
극예가 나와서 말하기를, “주군께서 진(秦)나라에 곡식을 주려고 하시는데 그렇다면 황하 밖 다섯 성도 진(秦)나라에 주실 겁니까?” 하니, 진혜공이 말하기를, “과인은 다만 곡식을 줄 뿐이지, 어찌 땅까지 주겠소?” 했다. 극예가 말하기를, “주군께서 곡식을 주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입니까?” 하니, 혜공이 말하기를, “그것은 ‘배를 띄운 일[泛舟之役]’에 대한 보답을 하려는 것이오,” 했다. 극예가 말하기를, “진(秦)나라가 ‘배를 띄운 일[泛舟之役]’로 그 덕을 베푼 일은 즉 옛날에 주군을 도와 진(晉)나라 군주 자리에 앉힌 공덕을 다시 크게 한 것입니다. 주군께서 큰 공덕에는 보답을 안 하고 작은 공덕에 대한 은혜를 갚으려고 하시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하니, 경정이 말하기를, “작년에 신이 주공의 명을 받고 진(秦)나라에 가서 곡식을 청했을 때 진(秦)나라 군주는 두말 않고 승낙했습니다. 그 뜻이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지금 우리가 창고 문을 닫고 곡식을 보내지 않으면 진(秦)나라가 우리를 얼마나 원망하겠습니까?” 했다. 여이생이 말하기를, “진(秦)나라가 우리에게 양식을 보내준 것은 우리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땅을 요구하기 위해서입니다. 곡식을 주지 않아도 진(秦)나라가 원망하고, 곡식을 주고 땅을 주지 않으면 진(秦)나라가 역시 원망을 할 것입니다. 이러나저러나 원망을 할텐데 곡식을 뭣하러 주겠습니까?” 하니, 경정이 말하기를, “남의 재난을 기뻐하는 것을 어질지 못하다고 하고, 남의 은혜를 저버리는 행위를 의롭지 못하다고 합니다. 어질지도 않고 의롭지도 않으면 어떻게 나라를 지키려고 하십니까?” 했다.
韓簡曰:「鄭之言是也。使去歲秦閉我糴,君意何如?」虢射曰:「去歲天饑晉以授秦,秦弗知取,而貸我粟,是甚愚也!今歲天饑秦以授晉,晉奈何逆天而不取?以臣愚意,不如約會梁伯,乘機伐秦,共分其地,是為上策。」惠公從虢射之言。乃辭冷至曰:「敝邑連歲饑饉,百姓流離,今冬稍稔,流亡者漸歸故里,僅能自給,不足以相濟也。」冷至曰:「寡君念婚姻之誼,不責地,不閉糴,固曰:『同患相恤也。』寡君濟君之急,而不得報於君,下臣難以復命。」
한간(韓簡)이 말하기를, “경정의 말이 옳습니다. 만일 작년에 진(秦)나라에서 창고를 닫고 곡식을 주지 않았더라면 주군의 마음은 어떠했겠습니까?” 했다, 괵석이 말하기를, “작년에 하늘이 기근을 내려 우리나라를 진(秦)나라에게 주려고 했습니다. 진(秦)나라가 하늘의 뜻을 모르고 우리에게 곡식을 빌려준 것은 심히 어리석었습니다. 금년에는 하늘이 기근을 진(秦)나라에 내려 그 나라를 우리에게 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찌하여 하늘의 뜻을 거슬러 진(秦)을 취하지 않으려고 하십니까? 저의 어리석은 생각은 양(梁)나라 군주와 동맹을 맺어 이번 기회에 진(秦)나라를 정벌하여 그 땅을 나누어 가지는 것이 상책입니다.” 했다. 진혜공은 괵석의 말을 따라, 냉지에게 말하기를. “우리나라도 몇 년 간 기근이 들어 백성들은 흩어져 유랑하다가, 금년 겨울에 조금 이삭이 여물어 유랑자들이 차츰 집으로 돌아오고 있어 겨우 자급할 정도라 이웃 나라를 돕기에는 부족한 실정이오.” 했다. 냉지가 말하기를, “저희 군주께서는 혼인으로 맺어진 나라의 정리를 생각하여 땅을 주지 않았음에도 책망하지 않고, 창고를 닫지 않고 곡식을 주며 말하기를, ‘이웃 나라의 재난을 돕는다.’고 했습니다. 우리 주군이 군주의 급함을 구했는데 군주께서 갚으려 않으시니 제가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돌아가 군주께 복명하기 어렵습니다.” 했다.
呂飴甥郤芮大喝曰:「汝前與丕鄭父合謀,以重幣誘我,幸天破奸謀,不墮汝計。今番又來饒舌!可歸語汝君,要食晉粟,除非用兵來取!」冷至含憤而退。慶鄭出朝,謂太史郭偃曰:「晉侯背德怒鄰,禍立至矣。」郭偃曰:「今秋沙鹿山崩,草木俱偃。夫山川國之主也,晉將有亡國之禍,其在此乎?」史臣有詩譏晉惠公云:「泛舟遠道賑饑窮,偏遇秦饑意不同。自古負恩人不少,無如晉惠負秦公。」冷至回復秦君,言:「晉不與秦粟,反欲糾合梁伯,共興伐秦之師。」穆公大怒曰:「人之無道,乃至出於意料若此!寡人將先破梁,而後伐晉。」
여이생과 극예가 큰소리로 말하기를, “네가 옛날 비정보와 모의하여 많은 재물로 우리를 유인하여 죽이려고 했던 일을 다행히 하늘이 그 간계를 깨뜨려서 너의 계략에 떨어지지 않았다. 이번에 다시 와서 요설을 늘어놓고 있느냐? 빨리 돌아가 너희 군주에게 전하라! ‘우리의 양식을 먹고자 한다면 군사를 이끌고 오기 전에는 불가할 것이다.’라고!” 했다. 냉지가 분함을 참으며 물러 나왔다. 경정이 조당을 나가며 태사 곽언에게 말하기를, “우리 주군이 은혜를 저버리고 이웃 나라의 분노를 샀으니 화가 머지않아 이를 것이오.” 하니, 곽언이 말하기를, “금년 가을에 사록산(沙鹿山)이 무너지고 초목이 모두 쓰러졌소. 무릇 산천이란 나라의 주인이오. 그러니 장차 진(晉)나라에 망국의 화가 닥치지 않겠오?” 했다. 사관이 시를 지어 진혜공을 비난하기를, “먼 길에 배를 띄워 곡식을 보내주었건만, 진(秦)나라에 흉년이 드니 본 체도 않네. 자고로 배은망덕한 사람이 적지 않으나, 진목공을 저버린 진혜공 같은 사람은 없었다.” 했다. 냉지가 돌아와 진목공에게 복명하며 말하기를, “진(晉)나라는 우리에게 곡식을 주기는커녕 도리어 양나라 군주와 규합하여 같이 군사를 일으켜 우리나라를 정벌하려고 합니다.” 했다. 진목공이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사람이 아무리 무도하기로 이같은 생각을 하다니! 과인이 먼저 양나라를 깨트린 다음에 진(晉)나라를 정벌하겠다.” 했다.
百里奚曰:「梁伯好土功,國之曠地,皆築城建室,而無民以實之,百姓胥怨,此其不能用眾助晉明矣。晉君雖無道,而呂郤俱疆力自任,若起絳州之眾,必然震驚西鄙。《兵法》云:『先發制人。』今以君之賢,諸大夫之用命,往聲晉侯負德之罪,勝可必也。因以餘威,乘梁之敝,如振槁葉耳!」穆公然之。乃大起三軍,留蹇叔繇余輔太子罃守國,孟明視引兵巡邊,彈壓諸戎。穆公同百里奚親將中軍,西乞術白乙丙保駕。公孫枝將右軍,公子縶將左軍,共車四百乘,浩浩蕩蕩,殺奔晉國來。
백리해가 말하기를, “양나라 군주가 토목을 좋아하여, 나라 안의 빈 곳에 모두 성을 쌓고 집을 지었지만, 백성들은 살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에 백성들은 원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양나라 군주는 백성들을 동원하여 진(晉)나라를 도울 수 없습니다. 진(晉)나라 군주가 비록 무도하기는 하나 여이생과 극예가 자신들의 힘을 과신하여 강주(絳州)의 백성들을 동원하여 군사를 일으킨다면 반드시 진(晉)나라의 서쪽 변경을 놀라게 할 것입니다. 병법에 이르기를 ‘먼저 군사를 내어 제압하라.’고 했습니다. 오늘 주군이 지혜로써 나라의 대부들에게 출전을 명하고 진(晉)나라 군주의 배덕한 죄를 큰소리로 외쳐 알린다면 반드시 진(晉)나라를 이길 것입니다. 진나라를 제압한 후에 그 여세를 몰아 피폐한 양나라를 도모한다면 이것은 마치 마른 나뭇잎을 떨구는 것과 같습니다.” 했다. 진목공이 옳다고 생각하고, 삼군을 크게 일으켰다. 건숙과 요여는 태자 앵(罃)을 보좌하여 나라를 지키게 하고, 맹명시는 순군(巡軍)을 이끌고 변경을 돌며 오랑캐들의 침입에 대비케 했다. 진목공은 백리해와 함께 친히 중군을 거느리고 서걸술과 백을병은 어가를 호위하도록 했다. 공손지(公孫枝)는 우군(右軍)을 거느리고, 공자집은 좌군을 거느렸다. 모두 합쳐 전차 400대를 몰아 호호탕탕하게 진(晉)나라로 쳐들어갔다.
晉之西鄙,告急於惠公。惠公問於群臣曰:「秦無故興兵犯界,何以禦之?」慶鄭進曰:「秦兵為主上背德之故,是以來討,何謂無故?依臣愚見,只宜引罪請和,割五城以全信,免動干戈。」惠公大怒曰:「以堂堂千乘之國,而割地求和,寡人何面目為君哉?」喝令:「先斬慶鄭,然後發兵迎敵!」虢射曰:「未出兵,先斬將,於軍不利。姑赦令從征,將功折罪。」惠公准奏。當日大閱車馬,選六百乘。命郤步揚、家僕徒、慶鄭、蛾晰分將左右,己與虢射居中軍調度,屠岸夷為先鋒。離絳州望西進發。
진(晉)나라의 서쪽 변경에서 진혜공에게 위급함을 고했다. 진혜공이 신하들에게 묻기를, “진(秦)나라가 까닭 없이 군사를 일으켜 우리나라의 경계를 침범하니 이를 어찌 막아야 하겠는가?” 하니, 경정이 나와 말하기를, “진(秦)나라 군사가 쳐들어오는 이유는 주상의 배덕 때문에 토벌하러 오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까닭이 없다 하십니까?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오로지 죄를 빌고 강화를 청한 후 다섯 성을 할양하고 신의를 회복하여 싸움을 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했다. 진혜공이 크게 노해 말하기를, “우리나라는 당당한 천승의 대국인데 땅을 떼어주고 강화를 청한다면 과인이 무슨 면목으로 군주가 되겠는가?” 하고, 큰소리로 명령하기를, “먼저 경정을 참하고 그런 뒤에 군사를 일으켜 적을 맞이하겠다.” 했다. 괵석이 말하기를, “출병도 하기 전에 먼저 장수를 참하는 것은 군사들의 사기에 이롭지 않습니다. 잠시 용서하시고 싸움에 나가서 공을 세워 속죄토록 하십시오.” 하니, 진혜공이 그 말에 따랐다. 그날로 크게 전차와 군마를 사열하고 그중에서 전차 600대를 골라 극보양(郤步揚), 가복도(家僕徒), 경정(慶鄭), 아석(蛾晰) 등 장수들을 좌우로 나누어 거느리게 했다. 진혜공 자신과 괵석은 중군에서 전군을 지휘하고 도안이를 선봉으로 삼았다. 도성인 강주를 떠나 서쪽을 향해 진군했다.
晉侯所駕之馬,名曰「小駟」,乃鄭國所獻。其馬身材小巧,毛鬣潤澤,步驟安穩,惠公平昔甚愛之。慶鄭又諫曰:「古者出征大事,必乘本國出產之馬。其馬生在本土,解人心意,安其教訓,服習道路,故遇戰隨人所使,無不如志。今君臨大敵,而乘異產之馬,恐不利也。」惠公叱曰:「此吾慣乘,汝勿多言!」卻說,秦兵已渡河東,三戰三勝,守將皆奔竄。長驅而進,直至韓原下寨。晉惠公聞秦軍至韓,乃蹙額曰:「寇已深矣,奈何?」慶鄭曰:「君自招之,又何問焉?」惠公曰:「鄭無禮,可退!」
진혜공의 어가를 끄는 네 마리 말은 이름이 소사(小駟)라고 하여, 전에 정나라에서 바친 것이었다. 말의 체구는 작지만, 영리하고 털은 윤기가 났으며, 그 걸음걸이는 빠르고도 편안했다. 진혜공은 평소에 그 말들을 매우 사랑했다. 경정이 또 간하기를, “옛날 사람도 전쟁은 큰일이므로 반드시 본국에서 난 말을 탔습니다. 그 말이 본국 산이어야 능히 본국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고 훈련을 편히 여기며 길도 익숙하게 되어 전쟁에서 부리는 사람에게 잘 따라 뜻대로 움직여 주기 때문입니다. 지금 주군께서 큰 적을 막으러 가시면서 타국 산의 말을 타는 것은 싸움에 이롭지 않습니다.” 했다. 진혜공이 꾸짖어 말하기를, “이 말은 내가 습관이 되었으니 그대는 더 말하지 말라!” 했다. 한편, 진(秦)나라 군사들은 이미 황하를 건너 동쪽으로 와서 진(晉)나라 군사와 세 번 싸워 세 번 이겼다. 변경을 지키는 진(晉)나라 장수들은 싸움에 지고 모두 도망쳐 버렸다. 진(秦)나라 군사들은 파죽지세로 진격하여 한원(韓原)에 당도하여 그곳에 진영을 세웠다. 진혜공은 진(秦)나라 군사가 이미 한원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얼굴을 찡그리면서 말하기를, “적군이 이미 깊이 들어 왔으니 이를 어찌해야 하는가?” 하니, 경정이 말하기를, “주군께서 스스로 적군을 불러 들여놓으시고 어찌하여 다른 사람에게 물으십니까?” 했다. 진혜공이 말하기를, “경정은 무례하다. 썩 물러가라!” 했다.
晉兵離韓原十里下寨,使韓簡往探秦兵多少。簡回報曰:「秦師雖少於我,然其鬥氣十倍於我。」惠公曰:「何故?」簡對曰:「君始以秦近而奔梁,繼以秦援而得國,又以秦賑而免饑,三受秦施而無一報。君臣積憤,是以來伐,三軍皆有責負之心,其氣銳甚,豈止十倍而已!」惠公慍曰:「此乃慶鄭之語,定伯亦為此言乎?寡人當與秦決一死敵!」遂命韓簡往秦軍請戰曰:「寡人有甲車六百乘,足以待君。君若退師,寡人之願:若其不退,寡人即欲避君,其奈此三軍之士何!」穆公笑曰:「孺子何驕也?」乃使公孫枝代對曰:「君欲國,寡人納之。君欲粟,寡人給之。今君欲戰,寡人敢拒命乎?」
진(晉)나라 군사들이 한원에서 10리쯤 떨어진 곳에 진영을 세우고 한간(韓簡)을 보내서 진(秦)나라 군세를 알아보게 했다. 한간이 다녀와서 보고하기를, “진(秦)나라의 병력은 비록 우리보다 적으나 그 사기는 우리보다 열 배나 높습니다.” 하니, 진혜공이 말하기를, “어찌하여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했다. 한간이 대답하기를, “주군께서는 처음에 진(秦)나라와 친근했으므로 그 나라와 가까운 양나라로 망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진(秦)나라의 도움으로 군주 자리에 올랐습니다. 또한 진(秦)의 양식을 받아 기근을 면했습니다. 세 번이나 진(秦)나라의 은혜를 받았지만 한 번도 갚지 않았습니다. 군신들은 분노가 쌓여 그래서 정벌하러 왔습니다. 진(秦)나라 삼군은 모두 죄를 추궁하려는 마음에 사무쳐 그 기세가 매우 성합니다. 어찌 열 배만 높다고 하겠습니까?” 했다. 진혜공이 화를 내며 말하기를, “그대의 말은 곧 경정이 이미 말한 바다. 정백(定伯 ; 韓簡의 자)도 역시 그런 소리를 하는구나. 내가 마땅히 진(秦)나라 군사들과 죽기를 각오하고 결전을 하리라!” 하고, 즉시 한간에게 명하여 진(秦)나라 군중으로 싸움을 청하게 하고 이르기를, “과인은 무장한 전차 600대를 거느리고 군주를 기다렸습니다. 군주께서 만약 군사를 물리쳐 돌아간다면 그것은 과인이 원하는 바이나 만약 군사를 물리치지 않는다면 내가 싸움을 피하고 싶어도 이 삼군을 어찌하겠습니까!” 하니, 진목공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어린놈이 어찌 이리 교만한가?” 하고, 즉시 공손지를 보내 대신 대답하기를, “그대가 나라를 원해서 나는 군주를 시켜주었다. 그대가 또한 양식을 구하자 내가 공급해 주었다. 지금 그대가 싸우자고 하니 어찌 내가 거절할 수 있겠는가?” 했다.
韓簡退曰:「秦理直,吾不知死所矣!」晉惠公使郭偃卜車右,諸人莫吉,惟慶鄭為可。惠公曰:「鄭黨於秦,豈可任哉?」乃改用家僕徒為車右,而使郤步揚御車,逆秦師於韓原。百里奚登壘,望見晉師甚眾,謂穆公曰:「晉侯將致死於我,君其勿戰。」穆公指天曰:「晉負我已甚,若無天道則已,天而有知,吾必勝之!」乃於龍門山下,整列以待。須臾,晉兵亦布陣畢,兩陣對圓,中軍各鳴鼓進兵。屠岸夷恃勇,手握渾鐵槍一條,何止百斤之重,先撞入對陣,逢人便刺,秦軍披靡。
한간이 물러 나와 말하기를, “진(秦)나라의 도리가 옳으니 내가 죽을 데가 어디인지 모르겠구나!” 했다. 진혜공이 곽언에게 차우(車右 : 전차 오른쪽에서 호위하는 무사)을 누구로 할지 점을 치게 했다. 여러 장수가 다 불길한데 오직 경정이 길하다고 나왔다. 진혜공이 말하기를, “경정이란 놈은 진(秦)나라와 한편인데 어찌 그를 차우에 임명하겠는가?” 하고, 가복도를 차우로, 극보양을 마부로 임명하고 한원에서 진(秦)나라 군사와 맞섰다. 백리해가 망루에 올라 진(晉)나라 군사가 매우 많음을 보고 진목공에게 말하기를, “진혜공은 장차 우리에게 죽습니다. 주군께서는 싸움에 나가지 마십시오.” 했다. 진목공이 하늘을 가리키면서 말하기를, “진(晉)나라 군주가 나를 저버리기를 너무 심하게 했는데, 만일 하늘의 도리가 없다면 모를까, 하늘이 알고 있다면 내가 반드시 이길 것이오.” 하고, 곧 용문산(龍門山) 아래에서 전열을 정비하여 기다렸다. 이윽고 진(晉)나라 군사도 전열을 펼치고 양 진영이 대치했다. 중군에서 북소리가 울리자 두 나라 군사들이 전진했다. 도안이가 용기를 믿고 손에 백 근이 넘는 혼철창(渾鐵槍)을 쥐고 먼저 진(秦)나라 진영에 달려 들어가 만나는 병사들을 찔러 죽이니, 진(秦)나라 군사들은 바람에 쓰러지는 초목처럼 흩어져 달아났다.
正遇白乙丙,兩下交戰,約莫五十餘合,殺得性起,各跳下車來,互相扭結。屠岸夷曰:「我與你拼個死活,要人幫助的,不為好漢!」白乙丙曰:「正要獨手擒拿你,方是英雄!」吩咐眾人:「都莫來!」兩個拳搥腳踢,直扭入陣後去了。晉惠公見屠岸夷陷陣,急叫韓簡梁繇靡,引軍沖其左,自引家僕徒等沖其右,約於中軍取齊。穆公見晉分兵兩路沖來,亦分作兩路迎敵。且說,惠公之車,正遇見公孫枝,惠公遂使家僕徒接戰。那公孫枝有萬夫不當之勇,家僕徒如何鬥得過?惠公教步揚:「用心執轡,寡人親自助戰。」
그때 도안이가 백을병을 만나, 두 사람이 맞붙어 50여 합을 싸웠다. 두 사람은 서로가 살기등등하여 각기 전차에서 뛰어내려 서로 움켜잡았다. 도안이가 말하기를, “나와 너는 여기서 사생을 결단하자. 다른 사람의 구원을 받는다면 사내가 아니다.” 하니, 백을병이 말하기를, “맨손으로 너를 잡아서 내가 영웅임을 보여주마!” 했다. 두 사람이 군사들에게 분부하기를, “모두 끼워 들지 말라!” 하고, 두 사람이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찼다. 마침내 백을병이 도안이를 끌고 자기 진영으로 뒷걸음쳤다. 진혜공이 도안이가 적의 함정에 빠진 것을 보고, 급히 한간과 양요미를 불러 군사를 이끌고 진(秦)나라 군의 좌측을 공격하게 하고, 자신은 가복도를 이끌고 진(秦)나라 군의 우측을 공격하여 중군에서 만나기로 했다. 진목공이 진(晉)나라 군이 두 갈래로 공격해 오는 것을 보고, 그 역시 두 갈래로 나누어 대적하도록 했다. 한편, 진혜공의 전차가 공손지를 만나자, 진혜공이 즉시 가복도로 하여금 공손지와 싸우게 했다. 그러나 공손지는 만부지당의 용력을 갖고 있었으므로 가복도가 어찌 그와 싸울 수 있겠는가? 혜공이 어자 극보양에게 명령하기를, “있는 힘을 다하여 전차를 몰아라! 내가 친히 가복도의 싸움을 도우리라!” 했다.
公孫枝橫戟大喝曰:「會戰者一齊上來!」只這一聲喝,如霹靂震天,把個國舅虢射嚇得伏於車中,不敢出氣。那小駟未經戰陣,亦被驚嚇,不繇御人做主,向前亂跑,遂陷於泥濘之中。步揚用力鞭打,奈馬小力微,拔腳不起。正在危急,恰好慶鄭之車,從前而過。惠公呼曰:「鄭速救我!」慶鄭曰:「虢射何在?乃呼鄭耶?」惠公又呼曰:「鄭速將車來載寡人!」鄭曰:「君穩乘小駟,臣當報他人來救也!」遂催轅轉左而去。步揚欲往覓他車,爭奈秦兵圍裹將來,不能得出。
공손지가 극을 휘두르며 큰소리로 외치기를, “모두 한꺼번에 나와서 덤벼라!” 하니, 그 고함소리가 마치 벼락과 같아 하늘을 진동시키는 듯했다. 국구 괵석은 억하고 놀라 전차 바닥에 엎드려 감히 숨도 쉬지 못했다. 전쟁에 나가 본 적이 없었던 소사가 공손지의 벼락과 같은 고함소리에 놀라 마부가 아무리 말고삐를 잡아당겨 진정시키려고 해도 멈추지 않고 날뛰었다. 마침내 진혜공의 전차는 진창 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어자(마부) 극보양이 힘을 다하여 채찍으로 말들을 후려쳤으나 소사는 작고 약해 진창 속에 빠진 수레를 끌어낼 수 없었다. 바야흐로 진혜공이 위급하게 되었을 때, 마침 경정의 전차가 그 앞을 지나갔다. 진혜공이 부르기를, “경정은 빨리 나를 구하라.” 했으나, 경정은 말하기를, “괵석은 어디 있기에 나를 부르십니까?” 했다. 진혜공이 다시 부르기를, “경정은 속히 전차를 끌고 와서 나를 태워 구하라!” 했다, 경정이 말하기를, “주군께서는 소사를 편안히 탄다고 하셨으니 신은 마땅히 다른 사람에게 알려 주군을 구하라고 하겠습니다.” 하고 수레의 끌채를 잡아당겨 왼쪽으로 돌리더니 가버렸다. 극보양이 다른 수레를 찾으려고 했으나 진(秦)나라 군사들이 달려와 주위를 에워싸서 탈출하지 못했다.
再說,韓簡一軍沖入,恰遇著秦穆公中軍,遂與秦將西乞術交戰,三十餘合,未分勝敗。蛾晰引軍又到,兩下夾攻,西乞術不能當,被韓簡一戟刺於車下。梁繇靡大叫:「敗將無用之物,可協力擒捉秦君!」韓簡不顧西乞術,驅率晉兵,逕奔戎輅,來捉穆公。穆公嘆曰:「我今日反為晉俘,天道何在?」纔嘆一聲,只見正西角上,一隊勇士約三百餘人,高叫:「勿傷吾恩主!」穆公抬頭看之,見那三百餘人,一個個蓬首袒肩,腳穿草履,步行如飛,手中皆執大砍刀,腰懸弓箭,如混世魔王手下鬼兵一般。腳蹤到處,將晉兵亂砍。
한편, 한간이 한 떼의 군마를 이끌고 진(秦)나라 군사 속으로 쳐들어 가다가, 마침 진목공의 중군을 만났다. 마침내 진(秦)나라 장수 서걸술과 교전하여 30여 합을 싸웠으나 승부가 나지 않았다. 뒤이어 진(晉)나라 장수 아석(蛾晰)이 군사를 이끌고 도착하여 둘이서 협공하니, 서걸술이 당하지 못하고, 한간이 휘두른 창에 찔려 수레 밑으로 떨어졌다. 양요미가 큰소리로 외치기를, “패한 장수는 무용지물이다. 모두 힘을 합하여 진(秦)나라 군주를 사로잡아라!” 하니, 한간이 서걸술을 돌아보지 않고 진(晉)나라 군사를 휘몰아 목공이 타고 있는 수레를 향하여 돌격했다. 달려가 진목공을 잡으려 하니, 진목공이 탄식하기를, “내가 오늘 도리어 진(晉)나라의 포로가 되니 천도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하고 겨우 한마디 할 때, 서쪽 언덕 위에서 3백 명쯤 되는 한 무리 용사들이 목공 쪽으로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한 사람이 큰소리로 외치기를, “우리의 은혜로운 군주를 해치지 말라!” 했다. 진목공이 고개를 들어 보니 그 3백여 명은 모두 하나같이 흐트러진 머리에 팔이 없는 적삼을 입고, 발에는 짚신을 신고서 나는 듯이 걸어오는데, 손에는 모두가 큰 칼을 잡고 허리에는 활과 화살을 차고 있어, 마치 혼세마왕(세상을 어지럽히고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대악당)의 부하 귀신 군사들 같았다. 그들은 이르는 곳마다 진(晉)나라의 군사들을 어지럽게 베었다.
韓簡與梁繇靡慌忙迎敵。又見一人飛車從北而至,乃慶鄭也。高叫:「勿得戀戰,主公已被秦兵困於龍門山泥濘之中,可速往救駕!」韓簡等無心廝殺,撇了那一夥壯士,逕奔龍門山來救晉侯。誰知晉惠公已被公孫枝所獲,並家僕徒、虢射、步揚等,一齊就縛,已歸大寨去了。韓簡頓足曰:「獲秦君猶可相抵,慶鄭誤我矣!」梁繇靡曰:「君已在此,我輩何歸?」遂與韓簡各棄兵仗,來投秦寨,與惠公做一處。再說,那壯士三百餘人,救了秦穆公,又救了西乞術。秦兵乘勝掩殺,晉兵大潰。
한간과 양요미가 황망 중에 적에 맞서고 있는데, 또 한 사람의 장수가 북쪽으로부터 전차를 비호같이 몰고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 장수는 바로 경정이었다. 큰소리로 외치기를, “지금 싸움에 연연할 때가 아닙니다. 주공께서 용문산 아래의 진창 속에 빠지는 바람에 진(秦)나라 군사의 포위망에 갇혔습니다. 빨리 가서 주군의 어가를 구하십시오.” 했다. 한간 등이 더 싸울 생각이 없어져 그 한 무리의 장사들을 버리고 진혜공을 구하기 위해 용문산을 향하여 곧바로 달려갔다. 누가 알았으랴. 그때 진혜공은 이미 공손지에게 사로잡혔고, 아울러 가복도, 괵석, 극보양 등도 모두 묶여서 진(秦)나라 본영으로 끌려간 후였다. 한간이 발을 구르며 말하기를, “진(秦)나라 군주를 사로잡았으면 주군과 교환할 수 있었는데 경정이 나의 일을 그르쳤구나!” 했다. 양요미가 말하기를, “주군이 이미 거기에 사로잡혔는데 우리만 어떻게 돌아갈 수 있단 말인가?” 하고 마침내 한간과 같이 병장기를 버리고 진(秦)나라 영채에 투항하여 혜공과 같은 곳에 갇혔다. 한편, 그 장사 3백여 명은 진목공을 구하고, 또 서걸술도 구출했다. 진(秦)나라 군사가 승세를 타고 공격하니 진(晉)나라 군사가 크게 무너졌다.
龍門山下屍積如山,六百乘得脫者,十分中之二三耳。慶鄭聞晉君見擒,遂偷出秦軍,遇蛾晰被傷在地,扶之登車,同回晉國。髯翁有詩,詠韓原大戰之事。詩曰:「龍門山下嘆輿屍,只為昏君不報施。善惡兩家分勝敗,明明天道豈無知!」卻說,秦穆公還於大寨,謂百里奚曰:「不聽井伯之言,幾為晉笑。」那壯士三百餘人,一齊到營前叩首。穆公問曰:「汝等何人,乃肯為寡人出死力耶?」壯士對曰:「君不記昔年亡善馬乎?吾等皆食馬肉之人也。」
용문산 아래에는 시체가 산처럼 쌓였다. 전차 6백 대 중에서 달아난 사람은 십분의 이삼일 뿐이었다. 경정이 진(晉)나라 군주가 사로잡혔다는 말을 듣고 마침내 진(秦)나라 군사의 포위망을 뚫고 도망치다가 부상을 입고 쓰러져 있던 아석(蛾晰)을 발견하고 부축하여 자기 전차에 싣고 진(晉)나라로 돌아갔다. 염옹이 한원의 큰 싸움에 대해 시를 지어 노래하기를, “용문산 밑에 수레와 주검을 탄식하노니, 그것은 단지 어리석은 군주의 배은망덕한 짓 때문이었다. 두 나라의 옳고 그름이 승패로 갈렸으니, 밝고 밝은 하늘의 이치를 어찌 모른다고 하랴.” 했다. 한편, 진목공이 본영으로 돌아와서 백리해에게 말하기를, “정백(백리해의 자)의 말을 듣지 않았다가 하마터면 진(晉)나라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뻔했습니다.” 했다. 그 장사 3백여 명이 일제히 진영 앞으로 와서 머리를 조아렸다. 진목공이 묻기를, “그대들은 어떤 사람들이기에 과인을 위하여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는가?” 하니, 장사가 대답하기를, “군주께서 옛날에 좋은 말을 잃어버렸던 일을 기억하십니까? 우리는 모두 말을 잡아먹었던 사람들입니다.” 했다.
原來穆公曾出獵於梁山,夜失良馬數匹,使吏求之。尋至岐山之下,有野人三百餘,群聚而食馬肉。吏不敢驚之,趨報穆公:「速遣兵往捕,可盡得。」穆公嘆曰:「馬已死矣,又因而戮人,百姓將謂寡人貴畜而賤人也。」乃索軍中美酒數十甕,使人賷往岐下,宣君命而賜之曰:「寡君有言:『食良馬肉,不飲酒傷人。』今以美酒賜汝。」野人叩頭謝恩,分飲其酒,齊嘆曰:「盜馬不罪,更慮我等之傷,而賜以美酒,君之恩大矣。何以報之!」至是,聞穆公伐晉,三百餘人,皆舍命趨至韓原,前來助戰。恰遇穆公被圍,一齊奮勇救出。真個是:「種瓜得瓜,種豆得豆。施薄報薄,施厚報厚。有施無報,何異禽獸!」
원래 진목공은 일찍이 양산(梁山)에 사냥을 나갔다가 밤중에 좋은 말 몇 필을 잃어버렸다. 진목공이 관리들을 시켜 잃어버린 말을 찾아오도록 명했다. 관리가 기산(岐山) 아래에 이르러 3백여 명의 야인들이 말을 잡아먹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관리가 감히 야인들이 놀라게 하지 못하고 즉시 진목공에게 보고하기를, “빨리 군사를 보내시면 도적들을 모두 잡을 수 있습니다. ” 하니, 진목공이 한탄하면서 말하기를, “말은 이미 죽었는데 또한 그 때문에 사람을 죽인다면 백성들이 장차 나를 가축은 귀히 여기고 사람은 천하게 여긴다고 말하지 않겠는가?” 했다. 진목공이 즉시 군중에 있던 좋은 술 수십 항아리를 기산 아래에 가지고 가서 군주의 명으로 하사하며 말하기를, “우리 주군이 말하기를, ‘좋은 말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지 않으면 몸이 상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지금 좋은 술을 그대들에게 내린다.” 했다. 야인들이 머리를 조아려 은혜에 감사하고, 하사한 술을 나누어 마시면서 일제히 감탄하여 말하기를, “말을 훔친 죄를 묻지 않고, 우리들이 몸을 상할까 걱정하여 좋은 술까지 내려 주시니 주군에게서 입은 은혜가 너무 크다. 어찌하면 이 은혜를 갚을 수 있겠는가?” 했다. 이에 진목공이 진(晉)나라를 정벌한다는 소식을 듣고 3백여 야인들이 모두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하고 한원까지 따라와서 싸움을 돕고자 했다. 그때 마침 진목공이 진(晉)나라 군사들에게 포위를 당하자 야인들이 일제히 용기를 떨쳐 일어나 진목공을 구했다. 참으로 이런 시가 있으니, “외를 심은 곳에 외가 나고, 콩 심은 곳에 콩이 나네. 박하게 베풀면 박하게 받고, 후하게 베풀면 후하게 받는다. 은혜를 입고도 갚지 않는다면, 짐승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했다.
穆公仰天嘆曰:「野人且有報德之義,晉侯獨何人哉?」乃問眾人中:「有願仕者,寡人能爵祿之。」壯士齊聲應曰:「吾儕野人,但報恩主一時之惠,不願仕也!」穆公各贈金帛,野人不受而去。穆公嘆息不已,後人有詩云:「韓原山下兩交鋒,晉甲重重困穆公。當日若誅牧馬士,今朝焉得出樊籠?」穆公點視將校不缺,單不見白乙丙一人。使軍士遍處搜尋,聞土窟中有哼聲,趨往視之,乃是白乙丙與屠岸夷相持滾入窟中,各各力盡氣絕,尚扭定不放手。軍士將兩下拆開,抬放兩個車上,載回本寨。
진목공이 하늘을 쳐다보며 한탄하기를, “야인들도 은혜를 갚고자 하는 의기를 갖고 있거늘, 도대체 진(晉)나라 군주는 홀로 어찌 된 사람인가?” 했다. 이에 야인들에게 묻기를, “너희들 중 벼슬하기를 원하는 자가 있다면 벼슬을 주겠다.”고 하자, 장사들이 일제히 말하기를, “우리는 야인들입니다. 단지 주군께서 베풀어 준, 한때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했을 뿐입니다. 벼슬은 원치 않습니다.” 하니, 진목공이 그들에게 각각 황금과 비단을 하사했으나 야인들이 받지 않고 돌아갔다. 목공이 탄식해 마지않았다. 뒷사람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한원의 산 밑에서 진(晉)나라와 진(秦)가 싸웠는데, 진(晉)나라 군사들은 진목공을 겹겹이 에워쌌다. 지난날에 만약 말 도둑들을 잡아서 죽였다면, 진목공은 어찌 포위망에서 벗어날 수 있었겠는가?” 했다. 진목공이 장군과 장교들을 점검하니 모두가 무사했으나 단지 백을병 한 사람만이 보이지 않았다. 군사들을 시켜 두루 찾아보게 했다. 한 토굴 안에서 신음소리가 들려서 들어가 보니 백을병과 도안이가 기진맥진하여 누워있었다. 두 사람은 아직도 상대방을 붙잡고 놓지 않았다. 군사들이 두 사람을 떼어서 두 대의 수레에 싣고 본영으로 데려왔다.
穆公問白乙丙,已不能言。有人看見他兩人拼命之事,向前奏知如此如此。穆公嘆曰:「兩人皆好漢也!」問左右:「有識晉將姓名者乎?」公子縶就車中觀看,奏曰:「此乃勇士屠岸夷也。臣前弔晉二公子,夷亦奉本國大臣之命來迎,相遇於旅次,是以識之。」穆公曰:「此人可留為秦用乎?」公子縶曰:「弒卓子,殺里克,皆出其手。今日正當順天行誅。」穆公乃下令將屠岸夷斬首。親解錦袍,以覆白乙丙,命百里奚先以溫車載回秦國就醫。丙服藥,吐血數斗,半年之後,方纔平復。此是後話。
진목공이 백을병에게 물었으나 기진하여 대답하지 못했다. 그때 두 사람이 목숨을 걸고 싸운 것을 본 사람이 있어서 그 전말을 상세하게 고했다. 목공이 탄식하기를, “두 사람은 모두 장사로다!” 하고, 좌우에 묻기를, “진(晉)나라 장수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있는가?” 하니, 공자집이 도안이를 실은 수레를 보더니 아뢰기를, “이 용사는 도안이입니다. 신이 전에 진(晉)나라 두 공자에게 조문을 갔을 때 도안이도 본국 대신들의 명을 받아 중이를 모셔 가려고 와 있었습니다. 그때 저와 여관에서 서로 만난 적이 있어 제가 알 수 있습니다.” 했다. 진목공이 말하기를, “이 사람은 우리 진(秦)나라에 머물게 하여 내가 쓸 수 있겠는가?” 하니, 공자집이 말하기를, “탁자와 이극을 죽인 것이 모두 저 자의 손으로 한 짓입니다. 오늘 하늘의 순리를 따라 마땅히 죽여야 합니다.” 했다. 진목공이 즉시 명을 내려 도안이를 끌고 가서 참수하도록 했다. 그리고 자기의 비단 전포를 벗어 백을병을 덮어 주고, 백리해에게 명하여 먼저 온차(溫車)에 싣고 귀국하여 의원의 치료를 받게 했다. 백을병은 약을 먹고 피를 여러 말 토하더니 반년 후에 가까스로 평상시의 체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이것은 후일의 이야기이다.
再說,穆公大獲全勝,拔寨都起,使人謂晉侯曰:「君不欲避寡人,寡人今亦不能避君,願至敝邑而請罪焉!」惠公俛首無言。穆公使公孫枝率車百乘,押送晉君至秦。虢射、韓簡、梁繇靡、家徒僕、郤步揚、郭偃、郤乞等,皆披髮垢面,草行露宿相隨,如奔喪之狀。穆公復使人弔諸大夫,且慰之曰:「爾君臣謂要食晉粟,用兵來取。寡人之留爾君,聊以致晉之粟耳,敢為已甚乎?二三子何患無君?勿過戚也!」韓簡等再拜稽首曰:「君憐寡君之愚,及於寬政,不為已甚,皇天后土,實聞君語。臣等敢不拜賜!」
한편, 진목공이 대승을 거두고 진영을 거두어 회군하면서 사람을 시켜 진(晉)나라 군주에게 말하기를, “그대가 나와 겨루기를 피하지 않았으니 나도 역시 그대를 피할 수 없었소. 그대를 우리나라에 데려가서 그 죄를 묻겠소!” 하니, 진혜공이 머리를 숙이고 말이 없었다. 목공이 공손지를 시켜 전차 백 대를 거느리고 진혜공을 진(秦)나라로 압송하도록 했다. 괵석, 한간, 양요미, 가복도, 극보양, 곽언, 극걸 등도 모두 풀어헤친 머리와 때 묻은 얼굴로 노숙하며 따라오니, 마치 초상을 치르는 사람들 같았다. 진목공이 다시 사람을 시켜 진(晉)나라 대부들을 위로하여 말하기를, “그대들 나라의 임금과 신하가 ‘진(晉)나라 곡식을 먹고 싶으면 군사를 끌고 오라’고 했는데 과인이 지금 그대들의 임금을 붙잡고 있는 것은 오로지 진(晉)나라 곡식을 구하고자 함이니 내가 너무 심하다고 할 수 있는가? 여러분들은 어찌 임금이 없다고 근심하는가? 너무 슬퍼하지 말라!” 했다. 한간 등이 두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려 말하기를, “군주께서 우리 주군의 어리석음을 불쌍히 여겨 용서하셨는데 어찌 심하다고 하겠습니까? 하늘과 땅의 신령이 모두 군주의 말씀을 들었으니 신 등이 감히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했다.
秦兵回至雍州界上,穆公集群臣議曰:「寡人受上帝之命,以平晉亂,而立夷吾。今晉君背寡人之德,即得罪於上帝也。寡人欲用晉君,郊祀上帝,以答天貺,何如?」公子縶曰:「君言甚當。」公孫枝進曰:「不可。晉大國也,吾俘虜其民,已取怨矣。又殺其君,以益其忿,晉之報秦,將甚於秦之報晉也!」公子縶曰:「臣意非徒殺晉君已也,且將以公子重耳代之。殺無道而立有道,晉人德我不暇,又何怨焉?」公孫枝曰:「公子重耳,仁人也。父子兄弟,相去一間耳。重耳不肯以父喪為利,其肯以弟死為利乎?若重耳不入,別立他人,與夷吾何擇?如其肯入,必且為弟而仇秦。君廢前德於夷吾,而樹新仇於重耳,臣竊以為不可。」
진(秦)나라 군사가 옹주 경계로 돌아오자 목공이 신하들을 불러모아 의논하기를, “과인이 상제의 명을 받아 진(晉)나라의 난을 평정하고 이오를 군주로 세웠소. 오늘 진(晉)나라 군주가 과인의 은덕을 배반한 것은 곧 상제에게 죄를 지은 것이오. 내가 진(晉)나라 군주를 죽여 상제에게 제사를 지내어 하늘의 은혜에 답하고자 하는데 대부들의 생각은 어떻소?” 했다. 공자집이 말하기를, “주군의 말씀은 심히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니, 공손지가 나와 말하기를, “불가합니다. 진(晉)나라는 대국입니다. 우리가 그 나라의 백성을 잡아와서 이미 그들의 원한을 샀습니다. 더욱이 그들의 군주를 죽인다면 그 분노는 더해질 것입니다. 그리하여 진(晉)나라가 진(秦)나라에 보복할 때는 지금 우리가 진(晉)에게 보복했던 것보다 훨씬 심할 것입니다.” 했다. 공자집이 말하기를, “신의 뜻은 진(晉)나라 군주를 까닭 없이 죽이자는 말이 아니라 장차 공자 중이로 하여금 대를 잇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무도한 자를 죽이고 어진 사람을 군주로 세운다면 진(晉)나라 사람들도 우리의 은덕에 감사하여 몸 둘 바를 모를 것입니다. 어찌 우리를 원망하겠습니까?” 했다. 공손지가 말하기를, “공자 중이는 어진 사람입니다. 부자와 형제는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지난날 중이가 부친상을 이용하여 이익을 취하지 않으려 했는데, 동생의 죽음을 이용하여 이익을 취하겠습니까? 만약에 중이가 진(晉)나라에 들어오지 않고 다른 사람이 선다고 하면 이오와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중이가 입국하여 진(晉)나라 군주 자리에 오른다면 동생을 위하여 진(秦)에 원수를 갚으려고 할 것입니다. 주군께서는 전날 이오에게 베푼 은혜를 버리고, 새로이 중이에게 원한을 사게 될 뿐입니다. 신은 암만 생각해도 불가하다고 생각합니다.” 했다.
穆公曰:「然則逐之乎?囚之乎?抑復之乎?三者孰利?」公孫枝對曰:「囚之,一匹夫耳!於秦何益?逐之,必有謀納者。不如復之。」穆公曰:「不喪功乎?」枝對曰:「臣意亦非徒復之已也。必使歸吾河西五城之地,又使其世子圉留質於吾國,然後許成焉。如是,則晉君終身不敢惡秦,且異日父死子繼,吾又以為德於圉。晉世世戴秦,利孰大乎?」穆公曰:「子桑之算,及於數世矣!」乃安置惠公於靈臺山之離宮,以千人守之。穆公發遣晉侯,方欲起程。忽見一班內侍,皆服衰絰而至。
진목공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이오를 쫓아내야 되겠소? 아니면 감옥에 가두어 놓아야 하겠소? 그것도 아니라면 그를 진(晉)나라 군주로 복귀시켜야 하겠소? 이 세 가지 중에 어느 편이 가장 좋겠오?” 하니, 공손지가 대답하기를, “감옥에 가두어 둔댔자 한 필부인데, 우리에게 무슨 이득이 있겠습니까? 그를 군주 자리에서 쫓아내면 그는 틀림없이 음모를 꾸밀 것입니다. 차라리 복위시키는 것이 낫습니다.” 했다. 진목공이 말하기를, “그러면 우리의 공이 헛되지 않겠소?” 했다. 공손지가 말하기를, “신의 뜻은 덮어놓고 복위시키자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황하 서쪽 다섯 성을 돌려주게 하고, 또한 그의 세자 어(圉)를 인질로 우리나라에 머물게 한 후에 강화를 허락해야 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진(晉)나라 군주는 평생토록 감히 우리에게 못된 짓을 못할 것이며, 또한 앞으로 아비가 죽고 아들이 이어도 우리가 또한 어(圉)에게도 은덕을 베풀었으니 진(晉)나라는 대를 이어 우리나라를 받들 것입니다. 이로움이 어느 편이 크겠습니까?” 했다. 진목공이 말하기를, “자상(子桑 ; 공손지)의 계책은 몇 대까지 내다보는구려.” 했다. 이에 진혜공을 영대산(靈臺山) 이궁에 안치하여 천 명의 군사가 지키게 했다. 진목공이 진혜공을 이궁으로 보내고 도성으로 행군을 계속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한 떼의 내시들이 상복을 입고 이르렀다.
穆公意謂有夫人之變,方欲問之。那內侍口述夫人之命,曰:「上天降災,使秦晉兩君,棄好即戎。晉君之獲,亦婢子之羞也。若晉君朝入,則婢子朝死,夕入,則婢子夕死!今特使內侍以喪服迎君之師。若赦晉侯,猶赦婢子,惟君裁之!」穆公大驚,問:「夫人在宮作何狀?」內侍奏曰:「夫人自聞晉君見獲,便攜太子服喪服,徒步出宮,至於後園崇臺之上,立草舍而居。臺下俱積薪數十層,送饔飱者履薪上下。吩咐:『只待晉君入城,便自殺於臺上。縱火焚吾屍,以表兄弟之情也。』」
진목공이 마음속으로 부인이 죽었다고 짐작하고 그 연유를 물으려는데, 내시가 부인의 말을 목공에게 구술하기를, “‘하늘이 재앙을 내려 진(秦)나라와 진(晉)나라의 두 군주가 우호를 버리고 서로 싸워 진(晉)나라 군주가 포로로 잡혔습니다. 나 또한 형제자매로서 매우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약 진(晉)나라 군주가 아침에 잡혀 오면 이 몸은 아침에 죽고, 저녁에 잡혀 오면 이 몸도 저녁에 죽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부인께서는 특별히 내시들에게 상복을 입고 주군의 군사를 맞이하라 하였습니다. 만약 진(晉)나라 군주를 용서하여 주신다면 부인께도 역시 용서한 것으로 여기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주군께서 결정하십시오.” 했다. 진목공이 크게 놀라 묻기를, “부인은 궁에서 무엇을 하고 계시느냐?” 하니, 내시가 아뢰기를, “부인께서는 진(晉)나라 군주가 사로잡혔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태자와 함께 상복을 입으신 후 걸어서 궁궐을 나와 후원의 숭대(崇臺)에 올라 초막을 짓고 기거하십니다. 숭대 밑에다 장작더미를 수십 층 쌓게 하여 아침과 저녁 식사를 나르는 내시들은 그 장작더미를 밟고 오르내립니다. 부인께서 분부하시기를, ‘진(晉)나라 군주가 잡혀서 입성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대 위에서 죽을 것이니, 너희들은 즉시 장작더미에 불을 놓아 내 시체를 태워라! 이로써 내가 형제간의 정을 표하고자 함이다.’라고 했습니다.” 했다.
穆公嘆曰:「子桑勸我,勿殺晉君。不然,幾喪夫人之命矣!」於是使內侍去其衰絰,以報穆姬曰:「寡人不日歸晉侯也。」穆姬方纔回宮。內侍跪而問曰:「晉侯見利忘義,背吾君之約,又負君夫人之託,今日乃自取囚辱,夫人何為哀痛如此?」穆姬曰:「吾聞『仁者雖怨不忘親,雖怒不棄禮。』若晉侯遂死於秦,吾亦與有罪矣!」內侍無不誦君夫人之賢德。
진목공이 탄식하며 말하기를, “자상이 권하여 진(晉)나라 군주를 죽이지 말라더니 그러지 않았더라면 내가 부인을 잃을 뻔했구나!” 했다. 이에 내시들에게 상복을 벗게 하고, 돌아가서 목희에게 보고하게 하기를, “과인은 머지않아 진(晉)나라 군주를 귀국시키려고 합니다.” 했다. 목희가 비로소 궁궐로 돌아갔다. 내시가 무릎을 꿇고 목희에게 묻기를, “진(晉)나라 군주가 이익을 탐하여 의리를 저버리고 우리 주군과의 약속을 배반했습니다. 또한 부인의 부탁마저 저버리고 오늘 스스로 포로가 되는 치욕을 당했는데 부인께서는 어찌하여 이토록 애통해 하십니까?” 하니, 목희가 말하기를, “내가 듣기로, ‘어진 사람은 비록 원한이 있을지라도 부모 형제를 잊지 않고, 비록 분노하는 마음을 갖고 있을지라도 예를 버리면 안 된다’라고 했다. 만약에 진(晉)나라 군주가 마침내 우리나라에서 죽었다면 나 역시 죄가 있는 것이다.” 했다. 내시가 부인의 어진 덕을 칭송해 마지않았다.
畢竟晉侯如何回國,且看下回分解。
마침내 진(晉)나라 군주는 어떻게 귀국할까? 다음 회를 보면 풀릴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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